2월 8일 새벽예배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행 26:19-23)
녹취자: 추진호
그러면서 사도가 자기가 왜 이렇게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밖에 없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자기가 경험한 일을 그대로 이야기 했는데, 그 경험한 일의 확신이 예수그리스도를 다메섹 가는 길에서 만났다는 것이고, 그렇게 예수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에 살 수 밖에 없었던 삶을 오늘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다음에 와서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만났다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그렇게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다음에는 사도바울이 그러니까 너희들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그리고 그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살아라. 그거를 자신이 외쳤다는 겁니다. 회개하라 그리고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그렇게 하면서 외쳤다는 겁니다.
그러면 그게 무슨 상관이 되는 것인가 예수그리스도를 만났는데 사도가 한 일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가르쳤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이제 하나님께로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셨는데,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시는 방법이 뭐냐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시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사건이 그렇게 엄청나게 중요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이 당신을 멀리 떠나 당신을 등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인간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그걸 보여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외견상으로 보면 유대인들이 말하는 거나 이 바울이 이야기하는 것이 틀리지가 않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의도적으로 사도바울이 여기에서 하나님을 강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직 사람들의 눈에는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나사렛의 예수가 하나님으로 믿어지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강조점을 하나님 아버지에게 두고 그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나를 부르셨는데 내가 바로 그렇게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간 사람의 대표적인 본보기다. 그러면서 얘기하는 겁니다.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봐라. 그리고 아그립바왕 당신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봐라. 유대인이건 아그립바건 간에 공통적으로 그들이 그 시대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건 뭐냐면 신의 존재입니다. 로마가 굉장히 종교적인 국가였습니다. 신의 존재는 모두 인정하는 겁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그게 하나님입니다. 이제 얘기하는 겁니다. 신이 만약에 그렇게 당신을 불렀다면 당신들이 누구관대 그것을 거역하겠느냐. 그 신이신 하나님이 나를 그걸 전하라고 부르셨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하겠나. 이렇게 할 수 밖에 더 있겠느냐.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느껴지지 않아도 아마 이 연설이 아그립바에게는 상당히 어필하는 연설 이였을 겁니다.
그래서 자기 간증을 여기에서 이렇게 상세히 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들은 나보고 하지 말라 그러는데 내가 만약에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면 그건 내가 그만 둘 수 있다. 그런데 이거는 하나님이신 그분이 나를 직접 부르셔서 나를 사로잡으셨다. 그래서 내가 이것을 전할 수밖에 없고, 외칠 수밖에 없는 거다. 그걸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사도 바울의 증언의 핵심입니다. 그렇게 증거 했더니 지금하고 있는 일 같은 똑같은 일들이 유대인들 가운데서 일어났다. 그래서 그들이 나를 잡고 그리고 심문하고 나를 핍박했다. 그걸 여기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일도 이상한 일들이 아니라, 예전에 내게 일어났던 똑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벌써 내가 죽었어야 될 텐데, 하나님 한분의 도움으로 말미암아서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이것을 전하는데 이 전파하는 이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신적인 소명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명이고, 살아있는 한 내가 이것을 그칠 수가 없다. 이것을 사도가 말하는 겁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들이 아 진짜 주님께 붙들려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그 정체를 보게 되는 겁니다. 주님께 붙들려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그 정체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게 뭐냐하면 그리스도 예수께 강하게 사로잡혀서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로 돌아오게 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께 사로잡혀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인제 우리에게 부끄러운 것은 그런 겁니다. 뭐냐면 이렇게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로 돌이킬 수 있는 유일한 도구로 주셨습니다.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 사도가 그리스도예수를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역사가 많이 흘러가도 지금도 역시 똑같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예수를 통해서 돌이켜야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예수를 통하지 아니하고서는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시대에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께 사로잡히고 붙들려서 그래서 주님을 위해서 사는 것이어야 하는데 정말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또 정말 그리스도예수만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그래서 정말 인간에게 의도된 그 목적을 따라서 행복의 길을 걸어가며 살 수 있을 것으로 우리가 믿고 있는가. 정말 이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가 아니면 희망이 없다고 믿고 있는가. 그걸 배우게 되는 겁니다.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사도는 그것을 확신했습니다. 담대하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