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14일 교직원예배
“저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전히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빌 1:17-19).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에는 옥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옥에 갇혀서 이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투옥이 되자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투옥된 것을 두고 많은 화제 거리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울선생님이 투옥되셨으니 우리가 더 열심히 그분의 몫까지 예수를 전해야한다고 고백하면서 서로 격려하며 복음을 전했던 것 같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순수하게 전하기보다는 바울에 대해서 안 좋은 소문을 내거나 혹은 비난하면서 그리스도 예수를 화제로 삼았고 그로 인해서 그들의 동기와는 상관없이 또 그리스도 예수가 전해졌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간에 이제 사도 바울이 옥게 갇혔을 때에 이 빌립보라는 중요한 도시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은 어떤 사람에게는 뉴스요, 화제 거리처럼 관심사가 되었고, 어떤 사람에게는 진실한 전도자의 복음처럼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어떻게 전파되는 지간에 결국은 이 빌립보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을 인해서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이 빌립보는 아시아대륙에서 이제 건너 유럽대륙으로 넘어가서 만나는 첫 번째의 큰 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로마가 로마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로마제국의 치하에 있는 사람들에게 친히 로마에 가보지 않아도 로마의 영광과 번영을 보여주고 싶다는 의도에서 로마를 본떠서 만든 아주 번영한 도시였습니다. 그 교통의 요충지인 이 빌립보교회는 선교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했지요. 바로 그런 의미심장한 도시에서 일취월장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은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또 그것을 통해서 어떤 사람들이 복음을 듣게 되어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지요. 감옥 속에 있었어도 사도 바울의 마음은 너무 너무 기뻐서 감격하면서 이 편지를 써서 이 작은 편지의 이름은 기쁨의 서신입니다. 24번이나 넘게 이 작은 서신에 ‘기쁨’, ‘기뻐하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편지를 읽으면 도대체 누가 감옥에 갇혀있고 누가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그렇게 기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사도는 이렇게 일어나고 있는 복음 사역의 현장의 상황을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구원과 연결 짓고 있습니다. ‘이로써 너희 간구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될 줄을 아노니’ 라고 고백하는 것이죠. 무슨 뜻이냐 하면 결국은 이렇게 복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구원을 얻는다는 이야기, 또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이 죄수가 된 상황, 어떤 사람은 이 복음을 순전함으로 전파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하게 전하는 상황을 지켜보는 자기 자신의 영적인 긴장과 고통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자기가 구원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죠.
이제 여러분들은 아직은 잘 모르지만 나이 한 40이 넘어서 50이 되어서 아직도 활동할 기력이 있는데 직업에 정착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참된 기쁨이 없습니다. 그나마 어떤 일생의 사역에 이십년이고 삼십년이고 직업 활동을 하다가 연금이라도 받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끝난 사람들은 그래도 좀 낫습니다만 그것이 아니라 정해진 직업이 없이 이리저리 떠돌면서 불안한 삶을 살면서 40, 50 그렇게 되어 가면 그 사람의 인생은 기쁨이 없습니다. 밥은 먹고 살지 모르지만 자기의 발전이나 비전이 없기 때문이지요. 똑같이 우리가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여러분은 그저 아무데서나 교회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면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겨우 신앙생활의 기초일 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이후에는 하나님이 우리는 그 구원의 은혜에 맞게끔 우리의 인생을 향한 당신의 계획을 보여주셔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교역자로 부르시고, 목회자로 부르시고, 선교사로 부르시고, 또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이런 일군으로 저런 일군으로, 또 그런 것은 가정에서 이런 위치로 저런 위치로 부름과 연결되기도 하지요. 문제는 그렇게 주님이 나를 세워주시는 그 자리가 무엇인지 나이 30이 넘고 40이 넘도록 알지 못하고 교회를 출석하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 살아있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보기에 나이 30, 40이 넘어 50이 되어 심지어는 머리가 하얘서 주님 만날 날이 가까워도 하나님이 나를 왜 구원하셨는지? 하나님이 나를 보내주신 사명의 자리가 어디인지? 정함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매한 성화의 구원에 이르게 된 것을 본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오늘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의 큰 고난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은 그 후에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들이 생명을 얻는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 그의 소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로마제국 방방곡곡에 이런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삼았습니다. 자신은 비록 그것 때문에 옥에 갇혔지만 옥에 갇힌 고난 때문에 그리스도의 복음은 전파되니 그는 옥에 갇힌 자신 때문에 불평하기보다는 전파되는 예수의 복음 때문에 행복해 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렇게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 일에 노심초사하고, 그 일에 성공을 인하여 기뻐하고, 실패를 인하여 마음 아파하고, 그러한 하나님의 복음사역을 거스르고자 하는 자들과 끊임없이 분투하고 괴로워하는 그것을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가슴 저미는 고통과 좌절, 기쁨과 행복, 기대와 실망 이 모든 속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었고 그러한 경험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돌아보며 부패하고 악한 자신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성화의 구원을 이루어 갈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들에게 어디에 서계시라고 합니까? 거기에 서계셔야 합니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고...
(찬양) 거친 바다, 험한 산, 피가 맺혀도 십자가 내가 지고 끝내 이기리
그렇게 가야합니다. 얼마 안 되는 우리의 인생의 날들은 속히 사라질 것이고 그리고 우리는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비록 우리에게 많은 죄와 악함, 부분적인 연약함, 이런 것들이 있어도 결국은 주님의 이 은혜 안에 다듬어져서 영광스러운 날에 이르도록 거룩해져 갈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섬기면서 잘 섬기면 일도 잘되고 자신도 거룩해지지만 그렇지 못하면 일도 망가지고 자신도 파괴되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우리를 부르신 각자의 자리를 잘 알고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실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가 우리를 두신 주님의 계획안에 있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여러분들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 여러분들이 구원에 이르는데 아주 유용했던 시간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