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3. 12 새벽예배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히 12:12-13)
녹취자: 윤은정
이제 작은 결론을 여기서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결론이냐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 믿음이라면 이제 그렇게 그 주님만 바라보고 살지 못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 믿음을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징계하시는데 그 징계 속에서 낙심하거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심하면서 미끄러진 사람들이 이제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이제 쭉 설명을 했습니다. 그래서 징계가 당시에는 슬퍼보이지만은 후에는 반듯이 연달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은 이제 평강의 열매를 우리들이 거두게 된다. 그러니까 ‘그 피곤한 손과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우리들이 읽은 내용들이 계속 이어서 나옵니다.
이게 크게 두 절을 둘로 나누어서 볼 수 있는데, 앞절에서는 피곤한 손과 저는 다리를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이것은 손을 들고 기도하는 모습을 염두해 두고 쓴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까 그 시대에 무릎을 꿇고,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던 그런 모습, 그것을 염두 해두고 쓴 것 같다 이 얘기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깊이 깨닫게 되었으면 너희들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가운데, 낙심하고 좌절해서 그래서 징계의 본뜻으로부터 멀어지는 사람들이 되지 말고, 손을 들어라. 하나님을 부르라는 것입니다. 손을 들고, 그리고 무릎을 세우고, 다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서 하나님을 부르라, 하나님을 찾으라,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을 구하면서, 그러면서 자기를 징계하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고 지금은 이 징계가 슬퍼 보이지만 그러나 이 징계를 받는 것이 사실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손을 높이 들고 그리고 무릎을 꿇고 그리고 주님을 찾으라하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우리들이 하나님께, 우리들이 잘못하고 주님의 공정하신 성품을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거리감을 느끼고 그리고 불화한 것을 경험하고 그래서 하나님께로부터 내 자신이 이렇게 멀어진다 라는 느낌을 받을 때에, 그 때에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집중적으로 주님을 찾고 주님을 추구하는 과정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우리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추구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우리를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를 바라보는 삶으로 그렇게 회복시키실 때에 그 때에 우리들이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로 돌아오게 된다’ 라는 이 말씀 입니다. 그러니까 징계를 받고 하나님 앞에 책망을 받으면서 낙심될 그때가 사실은 가장 하나님을 앙망해야할 때이고, 또, 하나님 앞에 가장 무릎을 꿇고 매달려야 할 때라고 하는 사실은 우리들이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얘기입니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는 저는 다리의 이야기, 그다음에 길을 곧게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뭐라고 표현 하냐면은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전자가 하나님께 매어달리는 것이라고 하면은, 이 후자는 실제적인 삶의 개혁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징계가운데서 낙심하고 하나님께 많은 거리감을 느끼고 있는 이 사람이 결국은 살아가는 삶이라고 하는 것은 흐느적거리는 삶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올곧고 똑바른 삶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자신의 내면의 세계가 올바라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직하고, 곧게 되어 있을 때에 그 때에 그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자원을 힘입음으로서 우리들이 올바르게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도 실제로 그런 삶을 살기에는 힘이 공급되지 않으면은 지식만을 가지고 그렇게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방법을 많이 안 쓰는 것 같습니다 만은, 외국에서는 술 먹은 사람들을 잡아낼 때에 차에서 내리게 해서 걸어보게 하는 것입니다. 걸을 때에 도로 같은 데에 보면은 차선 그린 것이 있습니다. 그런 플레이트판을 이렇게 놓고, 그 노란판위를 걸어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넓지가 않고 좁습니다. 그러니까 거기에 발자국을 한발 한발씩 걸어서 비척거리지 않고 올바로 걸을 수 있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걷나 안 걷나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일본 같은데는 말이죠. 술을 먹어서 몸을 못 가눠도 저 앞에서 경찰이 있으면은 알약 하나를 먹으면은 말이죠. 금방 온 몸에 퍼져서 그 알콜 측정기를 갔다 데서 아무리 불어도 0으로 나오는 그런 약이 있답니다. 그 약을 일부로 만들어서 파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또, 뭐 아이들이 왜 그 학교에 가면은 컷닝 합니다. 이렇게 모이르 컷닝이라 하는데, 원래 취팅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이렇게 자기가 이렇게 씁니다. 그것을 걸리잖아요. 꼬닥 증거가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을 쓸때, 그런 것을 쓰기 위해서 만드는 종이가 있답니다. 그래서 걸리면은 입에다 집어 넣으면은 입에서 쓱 녹아서 없어져 버린답니다. 증거가 없습니다. 오리발을 내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그 부는 것만 가지고는 마음이 안 놓이니까 경찰이 사람을 내리라고 해서 걸어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술을 먹었어도 경찰이 자기를 음주 단속을 하는데 그 노란 판데기 위를 똑바로 걷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아무리 걸으려고 애를 써도 다리가 흐느적거리면서 자꾸 옆으로 가는 겁니다. 그런 것입니다. 아무리 머릿속에서는 올바른 삶을 살려고 하더라도 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우리들이 있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그 은혜의 자원들이 공급되지 않으면은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는 그렇게 손을 들어서 그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이 은혜의 회복과 함께 동시에 그 다음에는 삶의 실제적인 개혁이 있어야 된다. 이것입니다. 그래서 어그러진 길을 곧게 하고, 저는 다리를 일으켜 세워서, 그래서 똑바로 그 길을 걸어가도록 노력을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들이 걸어가는 길, 이것을 인생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하는 것은 아주 자주 나오는 묘사법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가게 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의 변화를 통한 은혜의 회복과 실제적인 자신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개혁들이 뒤따르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징계의 상태에 있던 사람이 그 회복되어서 그래서 다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를 바라보면서 죄와 더불어 싸우기를 피흘리기까지 하며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낙심하고 쓰러지는 것 같지만은 그러나 결국은 다시 구름같이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서 주님 앞에 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 모두 그런 오류 속에서 구출을 받고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죄의 용서를 많이 경험하면서 그러면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그런 구름같이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