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19일 교직원예배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8-10).
인생을 살다가 보면 하나님의 도움이 끊어진 것 같은 때가 있어요. 아마 모든 신자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고 횟수의 차이는 있지만 그런 때를 지나게 될 거에요. 하나님께서 그런 때를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살아가는 모든 삶과 살아가는 삶의 희망, 이런 것들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만 온다는 것, 그리고 그분만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그 무한한 지혜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시간들을 허락하시는 거죠!
저는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면서 그 아브라함의 생애를 보면서.... 이스마엘을 낳은 이후로부터 캄캄한 영혼의 어두움이 찾아오죠! 다시 주님을 만날 때 까지 그 긴 세월동안에 영혼의 어두운 침체가 없었더라면 그가 일평생 남은 생애동안에 주님을 그렇게 붙들고 살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다윗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그 이전에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해서 순전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속에서 깊은 영혼의 어두움을 지났기 때문에 다시 만난 그 하나님을 꼭 붙들고 살 수가 있었고 베드로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평생 닭 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사도바울이 다메섹의 사건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핍박자요 포행자 이었던 것을 반복해서 회상했듯이 닭 우는 소리를 들을 때 마다 주님을 배반했던 것을 아마 기억하지 않았을 수가 없을 겁니다. 여러 해 됐죠! 벌써... 유럽을 여행할 때 쿼바디스 교회에 갔습니다. 그 골목에 서서 가장 큰 감명을 받았어요. 어떻게 눈물이 나던지.... 어..... 로마에 박해가 시작이 되니까 그 베드로가 황급히 제자들과 함께 도망을 갔죠. 그... 오히려 로마로 들어오는 예수님을 바로 그 골목에서 만납니다. 그때 물었던 유명한 질문이 ‘쿼바디스 도미네’ ‘당신 어디로 가십니까 주님이시여’ 그랬죠. ‘나는 네가 버리고 온 로마에서 다시 못 박히기 위해서 가노라··’ 거기 주님이 만나주셨던 그 자리에 부활하신 주님이 서 계셨던 그 자리에 돌맹이를 이렇게 파서 교회 앞에다 심었는데 그게 그 돌인지는 확신이 없지만 어쨌든 참 감격적이었어요. 아마 일평생 그 큰 능력을 행하면서 살아도 아마 그 새벽닭이 울 때 마다 그날 있었던 그 일을 생각하지 않았을 수가 없었을 거예요.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로는 인생을 지나면서 앞을 보아도 길이 보이지 않고 좌우를 보아도 아무 길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그런 시기를 지나게 하셔요. 때로는 우리자신의 죄 때문에도 그렇게 하시고 혹 우리의 죄가 아니더라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떤 한계 때문에 고난에 깊이 직면하면서 그런 시련과 어려움을 당하게 될 때도 있어요. 그런 그 시련 혹은 캄캄한 영혼의 어두움, 이런 것들을 하나님께서 주실 때가 있는 거죠. 그래서 목회를 하다가도 그런 때가 있는 거 같아요. 어떤 희망도 다사라지고 그리고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다 그리고 아무리 내가 고통을 참고 괴로움을 견뎌도 내가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어떤, 사도바울이 고백했듯이 살 소망까지 끊어지는 그래서 마음에는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 수밖에 없는 그런 때가 있는 거 에요. 욥도 아무리 자신을 돌아보아도 자기가 그렇게 잘못한 것은 생각이 나지 않아요. 그런데 시련과 고난이 겹치고 친구들은 끊임없이 공박하기를 잿더미에 앉은 자신을 보면서 ‘네 죄를 알렸다’라고 외치는 것이었어요. 거기에서 욥이 위로의 탈출구를 발견하게 되요. 그게 뭐냐 하면 모르는 것은 때때로 모르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믿음이에요. 다시 한번, 모르는 것은 때때로 그대로 모르는 체 내버려두는 그것이 믿음이에요. 그래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모르는 게 있어요. 그리고 할 말이 없을 때가 있는 거죠. 요셉이 대표적인 사람이 아니었을까요? 보디발의 집에서 충성을 다 했으나 옥에 갇히고 고난을 당할 때 왜 그런 일이 생겨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근데 그것을 궁금해 하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러지 않았죠. 그것은 결국 마지막에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게 하는 거죠. 그래서 믿음은 항상 단순하고 모르는 것이 있는 거 에요. 그래서 오늘 여기서 욥이 그러잖아요. 어디서 욥이 위로를 얻냐 하면 오직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오직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거기서 위로를 얻는 거예요. ‘주께서 내길 예비 하시네(찬양)’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거예요.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데 가고 보면 거기에 주님이 원하시는 그곳 이예요. 그러니까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주님이 내 길을 아신다는 것이 우리에게 위로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을 깊이 의지하고 주님께 순종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충분 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것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그제 목회자들이 모였는데 그중에 사모님 한분이 비타민c를 그렇게 열심히 챙겨 먹어요. 하루 필요한 게 500mg 밖에 안 되는데 6000mg씩 먹어요. 왜 그러냐 그랬더니 그게 비타민 요법인데 그렇게 먹으면 몸에 필요없는 건 몸밖으로 배출이 되는데 배출 될때 몸에 해로운 것을 끌고 나가기 때문에 이 몸에 좋다는 거예요. 잠깐 하룬가 이틀 쉬러 수련회를 갔는데 남편 목사가 와서 ‘여보, 나도 하나줘!’ 그러니까 감추면서 나 먹을것도 모자라는데 당신 줄게 어디 있냐고...ㅎ ㅎ 딱 갯수 맞춰가지고 왔기 때문에 안 된다고... 난 참 황당했어요. 차타고 가다가 하나 사면되는데 남편한테 그러나... 이번에 서울대 병원 가서 건강검진을 했더니 의사가 당신 뭐 먹었냐고 그러더래요. 비타민c 많이 먹었다고 그러니까 당신 간 다 망가졌다고 당장 모든 약을 중지하라고 그러더래요. 우리는 모든 걸 아는 거 같아도 그게 우리 몸에 무슨 일을 일으킬지 몰라! 그게 우리의 한계야. 우리는 그래서 하나님을 깊이, 내 눈에는 그것이 가장 좋은 거 같아도, 했더니 그게 몸에 그렇게 나쁘다잖아요. 간에다가 약을 보통사람 먹는 거 열 두 배씩 쓸어 넣으니 그게 간이 무슨 쇳덩어리도 아니고 매일 그러는데 간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니까 그것도 다 하나의 탐욕이지 많이 건강해 지려고 그러면 몸을 상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는 우리를 잘 아는 거 같아도 몰라요. 우리의 인생길을 걸어가면서도 이런 일들은 언제든지 일어나요. 근데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위로를 삼는 거 에요.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러면서 그분을 깊이 의지하면서 때로는 할 말이 없을 때도 많죠. 욥이 지금 그러잖아요. 네가 그렇게 하나님 앞에 회개할 죄가 없다면 의인이 이렇게 하나님께 벌을 받는 것을 봤느냐.. 할 말이 없는 거죠. 그래서 뭐라 그래요. 오직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내 인생은 당신의 손에 있습니다. 주님의 계획안에 있습니다. 이런 신앙을 가졌던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