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9일 새벽예배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히 6 : 11)
녹취자 : 김용재
그렇게 배교에 대해서 설명하고 히브리서를 받는 교인들은 안전해서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들을 깊이 알 수 있었으니까 끝까지 믿음 생활을 잘할 것을 기대한다고 해놓고 사도가 이 사람들에게 자신 속에 있는 간절한 소원을 표합니다. 그게 뭐냐면 간절한 소원이 있었는데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통해서 소망의 풍성함에 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배교를 하는 것은 결국은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전부다. 그리고 그 분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 그런 진지하고 깊은 신앙의 고백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배교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그리스도가 자신의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을 안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배교의 기회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배교의 기회가 옵니다. 그리고 그 기회는 결국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 때문에 신앙을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소극적으로는 죽음이나 환란의 위험이 올 때에 그렇게 되고 적극적으로는 세상에서의 어떤 더 좋은 기회를 주고 물질을 주고 그럴 때에 그런 상황이 벌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서 흔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믿음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세에 대한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죽음과 싸우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내세 신앙을 굉장히 중요합니다. 자기 속에 일어나는 정욕을 다스림에 있어서도 내세신앙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야지만 내세를 생각하면서 현재 내가 너무 하고 싶어 하는 이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고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그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가기 위해서는 내세 신앙이 꼭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를 지고 많은 욕을 보고 고생을 하지만 여기서 내가 많이 위로를 못 받고 그리고 하나님의 상급이 없어도 내세에는 반드시 주님을 뵈옵고 만날 것이라는 그 내세신앙이 중요합니다.
그런 것들이 소망입니다. 물론 현세적으로도 내가 지금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이라고 하는 것도 소망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내세신앙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을 박해 속에서 견디게 만드는 두 개의 신앙의 기둥이 있는데 하나는 십자가 신앙이고 하나는 내세신앙입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 신앙과 내세 신앙으로 이기면서 그러면서 죄를 죽이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이 사람들 가운데 풍성하게 되기를 사도가 간절히 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풍성하게 되어서 그것으로써 이 사람들이 배교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서 그래서 흔들리지 않고 이기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냐면 부지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게으른 사람들은 소망이 없거나 아주 엉뚱한 낙관에 빠지거나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소망에 관해서 근거도 없는 낙관에 빠지거나 혹은 근거도 없는 낙심에 빠지거나 하는 그런 기질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면 눈에 보이는 것들이나 자기 생각을 의지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부지런하게 이 핍박의 때에 모이기를 힘쓰고 자신의 경건에 힘쓰고 그리스도 예수를 생각하기를 힘쓰고 하는 사람들은 마음에 틀들을 늘 새롭게 함으로 은혜의 질서 속에서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상황을 보고 상황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서 끊임없이 상황 속에서 주님과 대화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게으른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게으른 것은 굉장히 커다란 재앙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면 절대 안 됩니다. 그리고 정욕과 많은 부패가 우리를 죽입니다. 그래서 부지런하게 살아야 됩니다. 핍박 속에서도 이 배교의 위협 속에서도 부지런함이 그렇게 자신의 마음의 틀을 소망에 넘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누구에게 일어나길 원했냐면 각 사람에게 입니다. 사도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누구도 배교하지 않고 이런 믿음 가운데 서서 신앙생활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렇게 믿음의 싸움을 하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가 한 사람도 낙오됨이 없이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나라에 이르기 까지 아름답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실족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고 믿음 가운데 돕고 하는 그런 일들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