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4일 새벽예배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히 12:6-7)
녹취자: 김은정
잘못하면 하나님이 야단을 치십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렇게 징계를 받을 때 노여워하거나 혹은 낙망하거나 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면 징계의 의미, 징계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할 때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길러도 마찬가집니다. 부모는 분명히 좋은 뜻으로 아이를 야단치고 책망했는데 부모가 가지고 있는 아이를 향한 깊은 뜻 그리고 심중의 사랑 끊을 수 없는 관계에 대한 부모의 헌신은 하나도 기억이 안나고 말 몇 마디에 옥상에서 뛰어 내버리고 약 먹어 버리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더욱이 인간 부모도 아니고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 아버지가 징계하실 때 신앙이 부족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렇게 낙심하거나 노여워하는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사단이 그런 감정들을 부추깁니다. 징계를 받을 때에 그 상태는 영적으로 충만하고 하나님과 뜨겁게 교제하는 상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멀리 떨어져 나온 거리감도 있고 적대감도 있는 상태에 놓였을 때 하나님께로 부터 책망을 받는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책망을 받고 야단을 맞는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될 때 하나님의 자녀들을 자칫하면 낙심하고 주저앉기 십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명백하게 그들이 잘못했을 때의 책망하고 징계하시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들은 점점 방종한 삶을 살고 하나님을 멀리 떠난 불법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시고 일깨우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무엇이라고 말 하냐면 사실은 이 징계가 그렇게 우리가 낙심해야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아들, 사랑하는 아들을 그렇게 징계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 관계를 가지고 계시고 우리가 참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이 징계를 통해 나타나는 것임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도대체 역설적으로 무슨 이야기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역시 부패한 본성을 가진 인간입니다. 그래서 자식을 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식을 징계할 때 전혀 자식에 대한 보복적 징계가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어제 말씀드렸듯이 선생님이 아이들을 때리는데 "너희들 잘되라고 때린 줄 아냐? 열 받아서 때리는 거다" 그런 것입니다. 부모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 해석할 때에는"내가 너를 미워서 때렸겠냐?" 사실 미워서 때렸다는 것입니다. 하도 불순종하고 말 안듯고 하면 때릴 때 어느 정도는 미움마음이 생겨서 때릴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보편적인 우리의 경험입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들을 징계할 때 그런 부모의 아이를 향한 보복적 마음이 있으면 아이들이 노여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는 그런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복하시는 것은 당신의 원수들을 향해서 보복하시는 것이지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해 택한 백성들에 대해서 보복하시지 않습니다. 자기에 잘못한 것 때문에 보복하시고 절대 그러시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보복하신다고 할 것 같으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서 우리들이 낙심할 수 있고 노여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향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창조의 목적이 곧 구속의 목적이고 그리고 섭리의 목적이 곧 구속의 목적입니다. 섭리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결국은 우리를 구속해 놓은 우리들을 징계하시고 책망하시는 것은 결국은 그 구속의 목적을 따라서 살고 궁극적으로는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책망하시고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징계라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아주 중요한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갖는 매우 중요한 특권입니다. 그래서 그 특권을 누리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해야 할 일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허락된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허락된 큰 특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우리를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습니까? 사랑하기만 할 뿐 아무 계획이 없다면 그렇게 징계하실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애완견 같은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뜻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를 당신의 자녀를 삼으신 분명한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뜻대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무슨 애완견대려다 공부안한다고 때리고 버릇없다고 때리고 손들고 벌세우는 것 봤습니까? 그러나 자녀들을 향해서는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계획대로 자녀가 살지 않을 때 그 자녀는 모릅니다. 공부해야 될 때 공부안하고 까불고 돌아다니면서 놀고, 나쁜 친구와 어울려서 순간의 즐거움에 빠져서 방종한 삶을 살고하면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그러니까 아이를 냉철하게 책망하고 깨우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아이를 징계하는 목적인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를 향해 더 큰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살아드리려 애를 쓰는 사람들은 징계를 덜 받습니다. 왜냐면 시키는 대로 잘하고 미리 부모의 뜻을 따라 사는 아이가 왜 부모의 징계를 받겠습니까? 마지막 두 번째로는 징계에는 참음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참음은 무조건 견디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깨닫기까지 참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책망할 때 그 관심이 아프다, 하나님이 치신다는 것에 관심을 갖지 말고 이렇게 사랑하는 아들을 징계하심으로 무엇을 얻고자 하시는 것일까에 깊이 깨달으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인내를 이루어감으로써 아주 단련된, 얻어맞는데 단련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분별하고 이해하는데 단련된 사람으로 하나님께 준비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만큼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뜻에 익숙해진 가운데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