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새벽예배
석 달 후에 그 섬에서 과동한 알렉산드리아 배를 우리가 타고 떠나니 그 배 기호는 디오스구로라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거기서 형제를 만나 저희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유하다가 로마로 가니라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사도행전28:11-15)
녹취자 : 이민희
한편으로는 배가 난파되었기 때문에 그 섬에 갇히게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그 때가 폭풍이 이는 계절이었기 때문에 그 바람이 멎을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겠고 그래서 거기서 석달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든 상황이 나아진 다음에 로마가 가는 다른 배편을 잡아서 처음 가던 길을 계속가게 되었습니다. 아마 여러 가지 복잡한 절차가 있었겠지요. 그러면서 사도바울 일행은 다시 재판을 받기 위해 다시 로마로 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커다란 제국이었고 큰 땅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로마황제는 중국황제와 틀립니다. 중국황제는 자신을 신격화하고 한 사람을 위해서 만민이 봉사하는 그런 체제로 되어있었지만 이 로마는 그리스문명의 영향을 받아서 상당히 민주정치가 발달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이방사람이나 노예는 예외였지만 로마시민에게는 광범위하게 정치에 참여하는 권리가 있었습니다. 백성들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였고 황제라고 할지라도 그 백성을 자신의 소유처럼 생각하고 함부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로마시대 때도 보면 하나의 도시가 있으면 도시 마다 꼭 들어가 있는 것이 세 가지가 있었는데 신전, 원형극장, 목욕탕이었습니다. 신전에서는 많은 신들을 섬기고 원형극장에서는 공연도 하고, 재판도 하고 또 검투사들의 경기도 있고, 뭐 이렇게 있습니다. 경기장도 둘로 나뉘는데 마차경주나 달리기를 할 수 있는 경기장이 있고, 또 사람들이 연설할 수 있는 경기장이 있었습니다. 산등성을 깎아서 반쪽짜리 경기장이 나뉘었습니다. 음향학적으로도 기가 막히게 설계되어있어서 수만명이 모여도 다 들리게끔 설계가 되어있었습니다. 목욕탕은 황제들이 로마시대 때 열심히 만들었는데 그 목적은 백성들의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보건적인 목표였습니다. 정말 인기 있는 황제는 공중목욕탕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자유민들뿐만 아니라 노예들도 돈만내면 들어와서 목욕을 할 수 있을 정도였는데 황제가 거기까지 와서 목욕을 할 정도니 사회가 굉장히 민주적인 사회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갖춘 공화제였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면 그런 나라였기 때문에 이런 일개 소시민이 황제에게 재판을 청구해도 재판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로마로 가기로 했고 더구나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이 황제에게 재판을 청구했다라고 하는 것은 지방에 있는 관리들에게는 엄청난 사건이었고 이 일을 끝까지 잘 처리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신변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지성으로 바울을 로마로 압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에 도달해서 압비오 저자거리에 가게 되었습니다. 압비오라는 저자거리는 압비오가도에 일렬로 있는 시장거리인데 로마에서 밀라노까지 약 300킬로의 길을 닦아 놓은 곳으로 엄청난 곳입니다. 나라가 워낙 크니까 국경도 넓고 다스리는 민족도 수 없으니 로마가 워낙 크니 감히 외적이 침입하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만약에 반란 같은 것이 일어나게 되면 신속하게 제압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군인을 위해서 길을 닦은 것이고 두 번째는 당시 세금을 바치는 사람을 위해서 길을 닦은 것입니다. 일찍부터 도로가 발달하여 성을 쌓는 대신 도로를 많이 만들어서 어디에서 적이 쳐들어오거나 전쟁이 나도 질풍같이 달려가서 제압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군인이 하루에 60킬로미터를 진군할 수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굉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엄청난 길을 만들었는데 거기까지 사도가 가게 되었습니다.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했던 사도의 비전을 여기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로마에 있는 많은 형제들이 사도바울을 맞이하러 옵니다. 말씀드렸지만 바울이 무슨 엄청난 중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상당한 자유가 허락이 되었고 한걸음 더 나아가 그 풍랑과 그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그 사람들을 살려주었으니까 많은 호의를 받았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형제들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벌써 몇 달 동안 배을 타고 오게 되었는데 얼마나 많이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그곳에서 사랑하는 형제들을 만난 것이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성도들은 이처럼 성도들의 교제를 통해서 위로와 쉼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그 안에 쉼이 있고 용기가 있는 것은 그 성도의 교통 안에 우리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에 성도는 그 안에서 힘을 얻고 용기를 얻으면서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특권이고 기쁨입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에서 이것을 누린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으로 충만하게 위로를 받고 그래서 로마에 자신이 도착한 본질적인 아주 근본적인 이유를 잘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각성하고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들이 로마에 온 바울을 그것도 죄수로 끌려온 바울을 맞이하러 나왔는데, 로마로 죄인의 몸으로 압송되어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사랑하는 형제들이 맞으러 오기 전 까지 얼마나 많이 사도를 위해 기도했겠습니다. 그런 모든 성도들의 기도가 어우러져서 하나님이 그 뱃길을 끝까지 지켜주시고 자신의 사명을 따라서 로마에까지 도착하도록 하나님이 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교제요 교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살아가는 이 신앙의 길에서 개인적으로 기도가 잘 되고 은혜를 많이 받아도 함께 이렇게 주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지체들이 기쁨이 아니라 괴로운 짐이 되고 있다고 한다면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얻을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축복 들 중의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보십시오. 사도바울은 정말 하늘의 능력을 소유한 위대한 사도였고 그리고 그 사도를 따르던 이 사람들은 그냥 로마에 있는 평범한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과의 만남이 이 위대한 사도에게 커다란 용기와 격려를 주었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들이 주는 위로와 격려가 아니라 그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위로와 격려, 그리고 힘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아주 커다란 용기와 위로와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부르심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