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강 아내를 사랑하라
가족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프로젝트 오늘 다섯 번째 강의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다루어 볼 것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 중에서 지난 시간에는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된다는 이야기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이 복종은 기계적으로 혹은 노예적으로 하는 복종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하나님이 가정에게 주신 질서를 받아들이는 복종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오늘 살펴볼 것은 남편이 아내를 향해 가져야 할 덕목입니다. 그것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와 유교는 가정의 기본 단위를 보는데 있어서 시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은 이런 관성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오랫동안 유교적인 의식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교에서는 기본적으로 가족의 기본 단위를 아버지와 자식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그렇죠. 여자가 시집을 와도 그 집 성을 안줘요. 그것이 어떤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페미니스트 같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여성의 독자성을 중시한다라는 해석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시대에서는 그 사람이 시집을 와서 10년, 2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자기의 울타리 속에 안넣어 주려고 하는 의식을 보여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마냥 좋게 해석할 수만은 없는 거예요. 외국은, 서양 같은 곳은 당연히 그 집 성을 갖게 되는 거잖아요. 그것은 시집왔으니까, 나와 결혼했으니까 너는 우리 집안의 한 식구다 라는 것을 받아들여주는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들이 이렇게 결혼하고도 성을 원래 가지고 있던 성을 계속 사용하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인가 라는 것은 생각을 해봐야 돼요. 그 대신 불편한 것이 있어요. 두 번, 세 번 재혼을 하게 되면 그 성을 다 달아야 돼요. 참 어렵죠?
그에 비해서 기독교는 그러지 않아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하찮게 보는 것은 아닌데 기본 단위가 남편과 아내라는 거예요.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서 사실은 어떻게 보면, 우리들이 개화되기 이전에 축첩제도가 있었잖아요. 생활이 형편이 원만하거나 가난한 사람들도 축첩을 했어요. 그것에 대해서 관용했던 이유도 이런 것과 관련이 있는 거죠. 생각해볼 문제에요.
아무튼 이 서신이 쓰여질 때에는 로마시대였잖아요. 로마시대에 가족은 이제까지는 사람들이 로마 시대에 가족이 대가족이었을 거다 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이루어진 로마에 대한 연구에 보면,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대가족부터 시작해서 몇 명이 모여 사는 소규모 가족까지 아주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있었다고 합니다.
로마는 아주 영특했어요. 그래서 어마어마한 제국을 통치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로마인들의 가정이라고 본 거예요. 왜냐하면, 가족이 올바른 질서를 가지고 세워질 때 견실한 사회가 되고 거기서 애국자를 길러낼 수 있다고 본 거죠. 그래서 로마에서는 이 가정을 매우 중시했어요. 그래서 그 가정이 사회를 지탱하게 해주고, 사회가 국가를 지탱하게 해준다는 명확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로마 시대 때에 남녀에 대한 이해는 우리나라 개화되기 이전에 우리나라하고 유사했어요. 그래서 사회가 철저하게 남성중심 사회에요. 그리고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아주 뚜렷한, 여기서 남자와 여자라고 하는 것은 일반적인 남자와 여자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내 사이에 역할 구분이 철저했어요. 그래서 신기한 것은 14세기, 길게는 12세기부터 14세기부터 르네상스가 일어나죠. 그 르네상스에 조각, 예술, 건축 탁월한 천재들이 쏟아져 나오잖아요. 여자는 없어요. 여자 중에 재능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사회가 기회를 안주는 거예요. 여러분, 이상하지 않아요? 베토벤, 모차르트, 이런 사람들 나오는데 한 둘 쯤은 여자가 한 10명중에 한 두명 낄법한데 왜 없을까? 사회가 기회 자체를 안주는 거예요. 로마 사회의 시대도 그랬어요. 그게 오래도록 이어져요.
그래서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잖아요. 민주주의의 선진국이라 하는 미국도 1921년도에 여성의 참정권이 헌법에 명시돼요. 얼마 안돼요. 그 사람들이 건너간 것이 1770년대인데, 그 참정권을 받은 것이 1921년이니까 실로 장구한 세월이 걸린 거죠. 100년도 안돼요.
그리고 가정이 세포처럼 모여서 제국을 이룬다 라고 본거예요. 그래서 그 세포의 건강함은 굉장히 중요했죠. 그래서 아이들을 교육시킬 때 철저하게 교육시켜서 이런 가정을 이루게 한거죠.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로마시대를 기준으로 볼 때 남편과 아내의 역할은 이런 거예요. 남편은 노동과 직업활동에 참여하고, 시민 정치에 참여해요. 국가에 헌신하고 가정을 지도하는 거죠.
아내는 자녀의 생산과 양육은 아내의 몫이고, 가사를 꾸려감. 이게 무슨 뜻이냐면, 경제권이 여성에게 일반적으로 없었어요. 여러분 가정에도 그런 가정이 있죠. 이상하게 돼서, 남편이 경제를 워낙 탁월하게 알고, 어떻게 살림해야 하는 자매들이 있잖아요. 훈련이 안됐거나 씀씀이가 워낙 절제력이 없어서 남편이 경제권을 초창기에 회수해 가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럴 경우에 아내는 남편이 버는 돈이 얼마인지 모르고, 남편이 관리를 하고, 그 중에 생활비 200만원 이런 식으로 떼어 주는 거죠. 더 쓸려고 하면 남편에게 특별 청구를 해야 돼요. 그것은 전적으로 남편의 기분에 달려있는 거죠. 이런 의존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 거죠. 살림살이를 그렇게 하는 사람은 아내가 뭐든지 하나 더 살려고 하고, 그리고 반대로 되어 있는 사람은 남편이 뭐라도 하나 더 살려고 해요. 그런 그림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처음에는 엄격하게 그것이 옳지 않다 생각되었는데, 지금은 노래를 절대로 못 부르는 음치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듯이, 워낙 그쪽 방면에 능력이 없어서 도저히 살림살이가 감당이 안되는 여성들이 있더라구요.
어쨌든 아내의 역할은 이런 것이고, 가정 밖의 일에 간섭을 하는 것이 여자의 수치였어요. 그다음에 침묵과 인내, 정숙함으로 섬기는 거예요. 이게 뭐에요?(웃음) 조선 시대의 여성상이에요. 로마시대에도 다르지 않았다 이거예요.
그런데 이제 아내를 사랑하라는 거예요. 그 로마시대의 문맥에서. 물론 이것은 로마의 모든 사람에게 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교회에게 주는 편지에요. 그래서 두 가지에요. 아내를 사랑하라. 그런데 남편들이 있어야 이 이야기가 호소력이 있을 텐데. 어쨌든 아내를 사랑하라. 가서 잘 전해요. 적어놨다가. 아내를 사랑하라. 두 번째는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라. 이 얘기는 무슨 뜻이에요? 이것을 뒤집으면 남자에게는 남편에게는 어떠한 성질이 있다는 거예요?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매우 특별히 노력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다음에 두 번째, 그냥 생각 없이 살면 아내를 괴롭히는 것이 남편과 아내의 관계라는 거예요. 물론 결혼하고 며칠 동안은 사랑하겠죠. 왜? 사랑이 되니까. 그런데 살아봐요. 그러면 사랑하게 되는 때도 있지만, 그러나 사랑이 안되는 경우도 많거든요. 솔직히. 그리고 사랑해야 돼요.
그런데 종종, 남편들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고, 아내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는데, 완전 해바라기들이 있어요. 진짜 사랑해요. 결혼 한지 내가 만난 몇 사람들은 남자인데도 결혼하고 25년 정도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내가 멀리서 걸어오면 마음이 설렌 데요. 그것은 진짜 별종이거든요. 수십만 명 중에 한두 명이에요. 그런데 아내는 많이 만났어요. 저기서 남편의 얼굴을 보면 가슴이 뛴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무엇이냐면,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한번쯤 남편에게 실망하도록 만들어주셔. 그래서 결국은 뭐냐면, 아 이게 자가 발전적인 사랑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아 이렇게 저절로 사랑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해야 될 때가 있구나.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거죠.
그러니까 남자가 생각 없이 살면 아내를 사랑하지 않게 되고, 그냥 특별히 노력안하고 살면 아내를 괴롭게 하게 된다는 얘기에요. 그런 위험을 생각하면서 반대의 삶을 살아야 되는 거죠.
자, 당시 로마 사람들은 그 이전에 희랍 사람들은 사랑을 우리는 그냥 사랑 하나 밖에 없잖아요. 애정 이것은 중국말이고. 옛날 말로 고이다, 괴다. 그게 예뻐하다 이런 뜻이잖아요. 사실은 다 비슷비슷하잖아요. 그런데 이 희랍사람들은 사랑에 대해서 네 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에로스는 남녀 간의 사랑이에요. 우리말로 말하자면 남녀상열지사이고, 필리아는 형제들 간의 사랑, 그런가하면 부모와 자식 간의 운명적인 사랑은 스톨게라고 보고,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을 아가페라고 불렀어요. 물론, 이런 신의 사랑으로 부르는데, 기독교 안에서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도 아가페라고 불렀어요.
자 그러면은 아가페는 하나님의 사랑이거나 혹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하나님처럼 사랑하는 것이 아가페에요. 그럼 사람의 사랑은 철저하게 이익에 묶여있죠. 나에게 도움도 안되는 사람인데 내가 뭐하러 그렇게 해줘야해? 딱 자르죠. 그러나 아가페의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니잖아요. 아가페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에서 나오는 사랑이에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고 오래 참고 긍휼히 여기시는 거죠. 그 사랑에 감화를 받으면 저 사람이 나한테 요만큼도 해준 것이 없고 오히려 나를 굉장히 해롭게 했는데도, 불쌍하잖아. 가엽잖아. 그리고 참고 견디고 긍휼히 여겨주는 거죠. 그런 사랑이 아가페의 사랑이에요.
그런데 아내를 사랑하라고 할 때, 그 단어가 아가페의 동사에요. 그래서 아가페테, 명령형이에요.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라 이 뜻이잖아요. 그런데 그 당시 로마 사람의 문맥에서 보면 아내는 아까 말한 정도로 사회 적으로 가정에서 열등한 존재였기 때문에 아내는 아가페의 대상이 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에서 아가페의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령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처음에 편지를 받아본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생경스럽고 불신자들이 보기에는 아주 특별한 편지였겠죠.
맨 처음에 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에로스로 이루어져요. 그래서 딱 보면서 애기를 참 잘 낳겠다, 머리가 좋다. 그런 이유 하나만으로 결혼한 사람은 없잖아요. 물론 저 여자 아버지가 돈이 많다. 이런 이유 때문에 결혼한 사람들은 있어요. 아무 애정이 없어도. 그러나 그건 결혼이 아니죠.
결혼의 원리는 우리가 첫 시간에 공부했듯이 사랑이 토대가 되어야 해요. 어쨌든 그런 고상한 사랑이기 이전에 일단 불꽃이 튀어야만 불이 붙을 것 아니에요. 그게 뭐에요? 에로스의 사랑이에요. 남녀가 사랑하게 되는 거죠.
무슨 뭐 저 여자랑 결혼해서 인류를 구원해야지 그러려고 결혼하는 것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을 볼 때는 별로였는데 저 사람을 보니 가슴이 뛰고 좋고 숨이 차고 화학 반응이 일어나고 같이 있고 싶고 그러니까 좋아하는 사랑에 빠지는 거잖아요,
그런 사랑으로 시작을 해요. 그런데 그게 얼마나 갈까? 얼마나 갈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 사랑은 무엇인가로 발전해야 돼요. 그것을 이제 결혼을 하게 되죠. 결혼을 하고 그런데 결혼생활을 지속해 나가게 만드는 그것이 에로스의 사랑 하나만으로는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거예요. 될 수가 없는 거죠.
모르겠어요.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넉넉잡아서 한 20년쯤 살고 나면 무슨 그렇게 에로스의 사랑이 넘칠까요? 그런 사람도 있겠죠. 그런데 대부분은 내가 이만큼 결혼하고 한 38년을 살아보니까, 처음에는 애인으로 출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처럼 되는 거예요. 그 친구가 잘 될 수 있는 사람들이 결혼생활에 롱런을 하는 거예요. 길게 결혼생활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에로스의 사랑 하나만 가지고는 안되는 거죠. 만약에 이것이 영원한 것이라면 사람들이 왜 바람을 피겠어요. 영원하지 않은 거죠. 그러니까 결혼생활이라고 하는 것인 잠깐 동안에 불붙는 연애가 아니라 긴 세월동안 함께 해야 돼요.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은 이미 다 결혼하신 분들이지만, 결혼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나. 이것이 제일 중요해요.
신앙도 소통이 안되면 저 사람이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이 가정생활에 큰 도움이 안되는 거예요.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그것이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외국인이랑 결혼하는 사람은 아주 특별한 사람이에요. 왜냐하면 소통의 능력이 월등하게 뛰어나야 하고, 소통을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해야 하고, 소통을 안해도 충분히 그 사람을 데리고 살 수 있어야 하니까, 진짜 갑절의 사랑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무튼 그래서 부부로서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아가페의 사랑이여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에로스의 사랑을 몰아내고 아가페가 들어온다기보다는 에로스의 사랑이 있지만 그 위에 아가페의 사랑이 그것들을 융합하면서 그러면서 여전히 남자와 여자로서 매력을 느끼고 가슴 설레고 하는 삶이 잘못된 삶은 아니잖아요. 70이 된 다음에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역시 당신은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뛰누나가 아니라 당신을 보면 가슴이 뛰누나 하면 얼마나 아름다워요. 못해서 그러는 거지,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요. 그런데 그 사랑 위에 아가페의 사랑이 이 모든걸 통합하면서 그러면서 결점과 단점을 보더라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에로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가페에서 나오는 거란 말이에요.
아내는 사랑의 대상이에요. 지금 야단치는 거죠. 무릎 꿇고. 이게 뭐 조폭도 아니고 어린애들 훈육하는 것도 아니고. 이것은 잘못된 거죠. 그래서 어떻게 봐야 되냐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다. 형상에 대해서 말씀드렸잖아요. 하나님을 닮은 영적이고 정신적인 특징이에요. 그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빛나는 존재다 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그를 존중히 여길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 정말 그게 중요한 거죠. 그래서 폭력이 나쁜 이유는 때리잖아요. 그러면 이 사람 속에 이미 상대방을 이미 상대방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보고 그를 긍휼히 여기고 가엾게 여기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는 그것이 없는 거예요.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옛날에는 얘기했어요.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면 바로 경찰서에 집어넣고 그 다음에 얘기해라. 유치장에 집어넣고 그 다음에 얘기해라. 그리고 목사에게 알리고 지휘를 받아라. 그런데 문제는 그게 쉽게 극복이 안된다는데 문제가 있는 거죠.
재밌는 얘기가 있어요. 남편이 그렇게 여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거예요. 아내가 죽겠는 거예요. 그런데 또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들이 폭력이 끝나면 또 그렇게 부드러워지면서 술 먹고 폭력을 하잖아요. 그리고 너무 잘해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걸 중독 걸린 것처럼 그 남자하고 인연을 못끊고 살아가는 거예요. 그런데 이 여자가 몸이 이렇게 까부러지는 거예요. 기운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운동을 했는데 헬스를 하고 뭘 해도 이 사람에게 즐거움을 못줘요. 그런데 딱 하나 운동이 떨어졌는데, 권투. 권투가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이 여자가 밥만 먹으면 가서 운동을 해서 대회에 나갈 정도로까지 이 여자가 취미로 너무 잘하는 거예요. 남편이 계속 폭력을 행사했을까요? 못했을까요? 네. 오히려 남편을 제압했는데, 남편이 뭐라고 대드는 거예요. 그러면 붕대 감을 시간은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권투하는 사람들은 우선 맨주먹에다가 붕대를 감아요. 칭칭 감아서 타이트하게 탄탄하게 감아서 그 다음에 글러브를 끼는 거예요. 그래서 뭐라고 뭐라고 하면 지금 붕대 감는다. 붕대 감을 시간은 있다. 무슨 뜻이에요? 빨리 도망을 가던지, 잘못했다고 하던지. 그래서 가정이 놀랍게 평화롭게 됐다고 하는 거예요.
누가 찍어다가 붙인 이야기인지, 내가 직접 그 가정을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폭력이 얼마나 끊을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그런데 권투를 그 정도 한 사람은 아무도 이길 수 없어요. 남자하고 붙잖아요. 열대를 때리고 한 대도 안맞아요. 그러니 무슨 수로 당하겠어요. 배워보실래요?(웃음)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고, 남편과 아내는 서로를 자유스러운 존재로 받아들이고 평등해야 해요. 그리고 인격적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되는 거죠. 이렇게 해야 돼요. 그래서 결혼할 때 처음 6개월이 매우 매우 중요해요. 그래서 저는 어떤 생각이 드냐면, 6개월 동안 해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처음에 룰을 정하는 거죠. 그래서 나무를 처음에 심을 때 비스듬하게 심으면 비스듬하게 자라잖아요. 그러니까 똑바로 뿌리를 내려서 똑바로 뿌리를 내려서 가정을 시작하는 것이 너무 중요한 거예요. 그런데 그게 뭐냐면, 서로를 자유스러운 존재로. 막 압박하고 그러면 안돼요. 그래서 그냥 할 수만 있으면 좀 자유롭게, 뭘 그래. 좀 자유롭게. 우리 할머니 말씀을 따르자면, 놔 둬라. 하고 싶대잖냐. 남편이 좀 하고 싶다는데, 아내가 좀 하고 싶다는데, 예를 들어 남편이 월급이 300-400만원밖에 안되는데 내일 대출을 받아서 스포츠카를 사겠다 그러면 그거 안되지. 그런데 아이패드라도 하나 사겠다고 그러면 그거 한 6개월 할부라도 해서 사주고, 아내가 옷이라도 사 입겠다면 적절히 사 입게 하고. 자유를 좀 줘라 자유를. 그리고 놀러 가고 싶다고 하면 좀 데려가고, 집에서 쉬고 싶다면 좀 쉬라고 하고. 그럴 수 있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남녀가 서로를 서로 평등하게 존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관계적인 존재에요. 그래서 어디로부터 왔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이 관계적인 존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아 이 세계는 나에게 무엇이고 가족과 인간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자기가 어디로부터 왔는지도 알게 되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게 돼요. 그렇게 알게 되는 것은 관계를 통해서 알게 돼요. 관계에요.
그래서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너와의 관계, 그와의 관계를 통해서 파악이 되는 거죠. 인간의 기본적인 고민이 있어요. 그것은 자기가 불완전하다는 거죠. 그래서 그렇게 불완전한 자신은 불결한데, 이 불결한 자신이 정결케 되고 그 다음에 그렇게 정결한 사람으로서 현재의 이 모습은 불완전하지만 이상적인 모습으로 다가가서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 인간의 고민이에요.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에요. 그러니까 돈이나 많이 쓰고 재산이 있는 남편 만나서 손에 물 안묻히고 편안하게 살겠다. 그런 생각은 말하자면 영화배우 같은 여자를 만나서 매일 연애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만큼 허망한 거예요.
그런 사랑이 만약에 미모에 달렸다면 그 유명한 영화배우들이 왜 이혼을 했겠어요. 그래서 이렇게 한 사람이 결혼을 해요. 그래서 가정을 이뤄요. 그런데 이 사람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잖아요. 그 다음에 살아가요. 수많은 삶의 사태들을 만나는 거예요. 이 사태가 뭐에요. 수많은 사태들, 삶의 상황이랄까 이러한 것들을 만나는 거예요. 이런 일 저런 일 만나잖아요. 슬픈 일도 있고, 엄청 기븐 일도 있고, 괴로운 일들도 있고, 가슴 아픈 일들도 있고 이런 일들을 만나요. 그런 일들을 다 겪으면서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겪으면서도 두 사람이 더욱 인격적으로 결합이 되고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결혼생활의 이상이에요. 그러면서 이런 사태들을 겪으면서 그러면서 사람이 온전하게 되어 가는 거예요.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자기를 완성해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면, 내가 청년들보고 늘 하는 얘기가, 너희들이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어도 너희들은 영원히 애들이다. 왜? 결혼이라는 강을 안건너 봤기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강을 건넌 사람이 모두 위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한 인간을 마음을 바쳐서 사랑하고 희생해보기 전까지는 자기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몰라. 자기가 잘난 줄 알아요. 그런데 진짜 한번 살아보면, 이야, 내가 이렇게 불완전한 존재구나 이것을 깨닫게 돼요. 그런데 처음에 이것을 깨닫느냐. 그것이 아니라, 이야, 이 여자 정말 불완전한 여자구나 그렇게 밖에 생각을 안해요. 내가 어쩌다 이 남자를 만났을까, 어쩜 이렇게 사람이 이렇게 불완전할까 이렇게밖에 생각을 안해요. 그런데 사랑하고 용서하고 긍휼히 여기면서 그 사람이 얼마나 불완전한가 이런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자기가 얼마나 모자란 존재인가 그것을 깨닫게 되는 거예요.
여기에 보면 이렇게 구명이 뚫려 있어요. 이것이 뭐냐면 결함이에요 결함. 그러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남자 여자 다 결함이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그냥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요. 그런데 이제 결혼하기 전까지 몰랐는데, 결혼하고 난 후 이 결함이 발견되는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하겠어요?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어요.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냐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해서 이러한 결함이 있는 사람이 온전해 가도록 자신을 들여 이바지하는 거예요. 그래서 필요한게 뭐에요? 신앙이 필요한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거예요.
오늘의 배운 내용이에요. 남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이 에로스의 사랑일 뿐만 아니라 아가페의 사랑으로 승화된 사랑이어야 한다. 왜요? 부부의 관계는 자유스럽고 평등하고 그리고 서로의 결함을 자신의 소명으로 느껴서 저 여자가 저런 결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남자가 이런 단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아내로 남편으로 부르셔서 저 모자란 것을 보충하게 하셨구나 이렇게 생각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서로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거죠. 상대방의 결정을 소명으로 여기고, 마지막으로 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한 사람을 죽도록 사랑하는 일을 통해서 자기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알게 되고 그를 사랑함으로써 그 사람을 완성하고 자기도 완성되게 하는 것이 남편과 아내를 주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Q&A
Q. 저는 이게 초신자로서 너무 초보적인 질문인데, 성경에서는 남녀의 결혼을 권면하는지, 결혼생활에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많으니까 차라리 독신의 삶을 ㄱ더 권하는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A. 성경에서 특히 신약성경에서 독신을 권하는 구절들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그것은 남편과 사는게 힘들어서 독신을 택하라 그런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부르심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래서 특히 주님이 오실 날이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자신이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고 하나님께만 자신이 바쳐지기 위한 독신을 권해요. 그러나 남편하고 사는 것이 너무 힘들지도 모르니까 차라리 쉬운 길을 택하라. 아내를 데리고 사는게 너무 힘든 길이니까 그러니까 너희들이 차라리 독신으로 살아라 성경은 그렇게 권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결혼을 해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좋은 것이죠.
외국에 있는 목사님하고 대화를 하다가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어느 날 지니가 나타났데요. 지니 알죠? 지니의 램프. 펑 하더니 나타났데요.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뭘 도와드릴까요. 아프리카에 와서 일하고 있는데 집이 남미에요. 그러니까 당시에는 너무 뱃길이 멀고 이러니까 아프리카부터 남미까지 이렇게 고속도로가 있다면 자기가 한 번에 차를 몰고 갈수 있는데 그거 해줄 수 있냐? 그랬더니 짜증을 내면서 아니 콘크리트가 얼마나 많이 들고 바다가 얼마나 깊은데 그것을 아프리카에서 태평양을 건너서 고속도로를 만드는 것이 말이 되냐고, 그래서 다른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니까, 난 아내의 마음을 모르겠으니 아내의 마음을 좀 가르쳐줘. 그랬더니 지니가 한참 생각하더니, 에이, 몇 차선으로 놔드릴까요? how many lanes do you want? 그러니까 고속도로를 아프리카부터 남미까지 놓는게 아내의 마음을 아는 것보다 훨씬 쉽다 이거예요. 그러면 남편은 단세포 동물일까? 아니죠, 평생 몰라요. 두고두고 탐구해야 돼요. 그런데, 사랑하면 알게 돼요. 그래서 한 20년 살고 난다면, 아내와 남편이 서로에 대해서 한 600페이지 한권을 쓸 수 있어야 돼요. 내가 파악한 우리 남편. 심리 상태부터 시작해서 기분 좋을 때 표정과 싫을 때 표정. 왜? 지식이 있어야 맞춰서 살잖아요.
또 다른 질문.
Q. 저는 연해를 9년 하고 결혼 한지 7년차인데, 연애 때도 제가 그렇게 신랑을 막 많이 사랑한다는 표현안하는 저의 타입이 있는데, 결혼하고 나서 애기 낳고 나서 그게 더 심해진 거예요. (아, 표현을 안하는 구나?) 제가 남편이 동갑이고 연애도 오래하고 보니까 친구 같고 동지 같고 가족 같고, 그런데 남편은 여전히 저를 굉장히 많이 사랑해주고 표현해주는데, 그게 상대적으로 서로 지금 힘든 거예요. (저쪽은 표현을 많이 하는데, 이쪽은 표현을 안하니까 표현 안하는게 불만이구나?) 그쪽은 불만이고, 저도 약간 성가시고. (아~그렇구나) 그럴 때가 있는 거예요. 아이를 양육하다보면 너무 힘들고 피곤하니까, 마냥 그렇게 자기한테 애정을 쏟아달라고 하는게 한편으로는 대게 철없이 느껴지고 (연하에요?) 동갑이에요. 초등학교 동창이고, 그런 여러 상황 때문에 막내고 저는 첫째고. (그럴 수도 있겠다) 굉장히 많이 대화도 하고 서로 울기도 하고 그랬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A. 아, 참. 여러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하죠. 대게 이제 여자가 아내가 정 반대인데 남편이 무뚝뚝해가지고 거의 표현을 안하고. 그런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데, 분명한 것 하나는 우선 첫 번째로 말하자면은, 본인의 성향이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한 번에 그냥 칼로 무 자르듯이 그렇게 하고 돌변하는 사람이 되기에는 어려울 거예요. 어려우니까 우선 남편이 그것을 좀 이해를 어느 정도 해야 돼요. 그러나 동시에 또 한 가지 강조해야 될 것은 무엇이냐면, 남편이 계속 그 불만이 쌓이고 그렇게 불만이 쌓일 때 남편은 소외감을 느끼거든요. 그러면 아내가 약간 낯설어지기 시작하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그냥 너는 4너, 나는 나 이렇게 살아가게 되죠. 그럴 경우에는 많은 위험들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우선 결혼생활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정신적인 결합이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남편도 성향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이해를 해야겠지만, 아내도 노력을 좀 해야 돼요. 그래서 예를 들자면, 남편이 가는 길이 이쪽이고, 아내가 가는 길이 이쪽이라면 그러면 그 중간 어디쯤에선가 방향을 잡고 조금씩 조금씩 이동을 해가지고 딱 90도 각도에 설수 있는 그런 위치를 찾아야 해요. 우선 작은 것부터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주 작은 것에서 남편을 위해서 사랑을 표현하고, 그 사랑을 받아주고. 그리고 내가 보기에 남편이 약간 로맨티스트 아닐까 그렇게 생각되는데? 그죠? 그러니까 초등학교 다니던 친구하고 결혼도 했겠지. 로맨티스트 같은 경우에는 자기가 표현하면 저쪽에서 반응해주기를 원하는 거죠. 그래서 내가 실질적 충고를 해 주자면, 남편이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10번을 다 맞춰주기에는 아마 성향적으로 쉽지는 않지만 몇 번은 맞춰줘야 한다. 그리고 내가 책에서도 썼는데, 남편이 홀로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 눈물이 땅에 떨어질 때 발등을 직는 칼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부부가 돌아서서 혼자 우는 부부가 되어서는 안되는 거예요. 한 번 그런 강의들을 들어보세요.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어떻게 하면 싹싹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까 그런 사람들하고 대화도 해보고, 천상적으로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애교가 배어 있는 사람이 있어요. 저희 집사람 같은 경우가 그랬거든요. 그래서 뚝뚝 넘쳐흘러요. 그런데 나는 그게 너무 부자연스러웠어요. 그래서 초창기에 싸웠던 게 뭐냐면, 베개에 팔베개하고 안재워준다고. 그런데 저는 어려서부터 잠 잘 때는 혼자 자버릇 했기 때문에, 우리 집사람은 언니하고 맨날 끌어안고 잔거야.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고는 굉장히 불편해서 잠을 잘 수가 없는 거예요. 초창기에 조금 했어요. 팔이 너무 아파. 그래서 팔을 비틀었더니, 아침에 일어나서 목을 못 움직이겠다고 원망을 하는 거야. 지금까지도 그런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좀 더 잘 맞춰줄걸. 그래서 요즘은 잘 맞춰줘요. 그래서 아내가 뭘 하자고 한 것을 나는 반대해 본 적이 없어요. 마지막 말다툼 한게 26년 전이에요. 말다툼 한다고 막 이러지는 안잖아요. 목회자 부부간에. 약간 언성을 높인게 26년 전이에요. 싸울 일이 없어요. 왜? 아내 해달라는 대로 해주면 되잖아요. 남편도 마찬가지로, 원하는게 뭔지 쭉 대화를 해요. 너무 이상적인 것 말고, 사소한 것, 그리고 딜을 하세요 딜을. 그래서 내가 당신이 얘기한 것 100퍼센트는 내가 잘 안된다. 마치 다리가 저리는 사람 보고 목숨을 걸고라도 100미터를 뛰라고 하는데, 한번 뛰고 죽을거 아니지 않느냐. 계속 뛰어야 하는데. 그러니까 내가 연습할게. 그런데 당신도 이걸 조금 줄여라. 이제 로맨티스트로 살아가는 것도 이제 나이도 들었으니까 좀 줄여라. 그리고 여기서 좀 늘이고. 그래서 100개면 30개 정도는 딜을 해요. 그러면 이것은 내가 꼭 하마. 마음이 안내켜도 할려고 노력하고 표현하고. 그런데 그게 중요한게 애들에게 영향을 줘요. 아이 있어요? (아들 하나 다섯 살) 부모가 스킨쉽도 없고 사랑하더라도 냉랭하게 살아가는 집 애들은 커서 스킨쉽도 못해요. 그런데 늘 스킨쉽이 있고 사랑을 표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그렇게 돼요. 그러니까 잘못하면 반대가 될 수 있어요. 자매 같은 남편이 되고 남편 같은 아내를 만날 수 있어요. 그것도 굉장히 힘든 거예요. 아이들에게 그게 굉장히 중요해요. 따뜻하게 이렇게 사랑을 표현하면서 자라나는, 그 환경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노력을 해야 돼요. 그리고 난 힘들다 그리고 난 힘들다 애 기르는데 얼마나 힘든데, 남편과의 친밀한 시간에는 오히려 쉬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그거는 지혜로운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어떤 생각을 하냐면,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은 남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자기는 쉬는 시간이다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겠지만, 남편이 그렇게 도와야겠지만, 내가 에너지를 어떻게든 축적했다가 남편하고 있는 시간에 그 에너지를 발산해서 우리 관계를 좋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야 돼요. 자기만 힘들어? 남편도 아침서부터 밤까지 되게 힘들고, 때로는 너 그따위로 할려면 때려쳐! 이런 소리까지 듣는다 이거예요. 무능해가지고 말이지 과장이란게. 이런 소리도 듣는 거예요. 그렇게 사는데, 그 얘기를 집에 돌아와서 해요 못해요? 못하지. 그러면 아내만 힘든게 아니잖아. 그거를 서로 에너지를 비축했다가 둘이 만났을 때 그 에너지를 쓰면서 아내 때문에 내가 채워지는 경험을 하고 남편 때문에 채워지는 경험을 하고 그렇게 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죠. 원래 힘든 거예요.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