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괴롭게 하지말라
녹취자 : 오희열
반갑습니다. 가족관계의 회복을 위한 세미나, 오늘 여섯 번째의 시간입니다. 오늘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덕목 두 번째를 다루어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아내를 사랑하라” 라는 것을 다루었습니다. 이번에는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라” 입니다. 같은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아내에 대한 남편의 덕목으로 서로 다른 두 면을 보여줍니다.
지난 시간에 공부한 내용은, 남편에게 두 덕목이 있는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괴롭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에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하고 나옵니다. 남편의 중요한 두 번째 덕목은 아내를 괴롭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괴롭게 하다’라는 말은 원어로 보면 ‘격분하게 하다’, ‘쓰라리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부부 관계의 적극적인 측면이라면 괴롭게 하지 않는 것은 소극적인 측면입니다.
결혼생활에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상대방에게 잘 해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상처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한 번 상처가 남게 되면 잘해주는 것을 여러 번 해도 만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괴롭게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 위에 서로 사랑할 때 부부간의 사랑이 증진될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라” 할 때의 그 ‘괴로움’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어차피 세상 속에 있습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이 아무리 잘해줘도 이 세상 속의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괴로움은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남편이 아무리 사랑해도 내가 아닌 타인이기 때문에 도저히 파고 들어올 수 없는, 자기만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고 외로움도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말 못 할 것이 뭐가 있냐고 하는데 그 말도 맞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뜨겁게 사랑해도 내 인생에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때 외로움을 느끼는데 그것은 감당해야 할 외로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잠시 그 문제를 마취제를 맞은 것처럼 잊을 수는 잊겠지만 그 문제는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생활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들과 씨름하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 속에 있는 인간으로서 수많은 삶의 사태들을 겪습니다. 많은 사태들을 자기 자신이 감내해야 합니다. 많은 고난이 있습니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고 나도 남편을 사랑해서 두 사람이 뜨겁게 사랑하는데 두 사람의 관계와는 상관없이 자기 주변에서 어려움이 생기면 함께 어두운 터널을 지나기도 하고 시련의 계속을 통과하기도 합니다. 그런 종류의 괴로움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런 일반적인 고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순종하며 걸어가다 보면 시련을 만납니다. 그런 시련을 만나는 데에서 오는 고난도 그 ‘괴로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괴롭게 한다’ 라는 것은 남편이 정당하지 않게, 그리고 아내를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괴롭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알고 사명을 받아 하나님을 향해서 걸어가다 보면 많은 고난과 시련을 만납니다. 이런 데에서 오는 고난, 괴로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균형을 잡을 줄 모르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어느 가정이든지 보게 되면 권력을 누가 쥐고 있는지 한눈에 들어옵니다. 결혼하고 초창기에는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하고 보니 이 여자가 어마어마하게 대가 센 여자였습니다. 남자가 몇 달을 해보다가 도저히 안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것을 뜯어고치려면 함께 살지 않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럴 용기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에게는 그럴 용기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남자가 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우라가 확 풍겨납니다. 자기의 엄마 아빠나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고 살아온 무지막지한 완고함이 있는 것입니다. 잘 몰랐던 것입니다. 알았다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혼식에서 웨딩마치가 울려 퍼집니다. “딴 딴따단 딴 딴따단, 또 속았네 또 속았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해부를 해서 증명을 할 수도 없고 국민투표에 부쳐서 결정할 수도 없습니다. 한순간에 결정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어떻게 됩니까? 아내 중심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남편은 결혼할 때는 자기에게 빠져서 미친 듯이 잘 해 줍니다. 결혼하고 나니까 완전히 다른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상남자를 만난 것입니다. 국은 3일 이내에 똑같은 국이 올라오면 안 되고 반찬은 일곱 가지 이상이어야 한다. 돈은 쥐꼬리만큼 벌어다 주면서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좀 대들었습니다. 총 쏘듯이 대들었는데 대포알이 날아옵니다. 꺾을 수 없는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피하는 길은 갈라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에게 그럴 용기가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남편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쪽을 중심으로 질서를 잡으면서 평화가 이루어지고 이쪽을 중심으로 질서를 잡으면서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서로가 지배하고 지배당하는 관계가 아니라 자유스럽고 평등하고 인격적인 관계가 되어야 하고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는 책임져야 합니다. 자기가 잘못했을 때에는 깨끗하게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폭력과 폭언이 아니라 말입니다. 그것이 책임을 지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결혼을 할 때 아주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인지가 중요합니다. 전혀 책임을 안 지는 사람을 만날 경우에는 대책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서점에 갔습니다. 아내 때문에 너무 시달리니까 혹시 서점에서 아내를 길들이는 법에 대한 책이 있는지 물어보니까 서점 주인의 대답이 “공상소설 쪽으로 가 보십시오.” 하더랍니다.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는 쉽게 길들일 수 있겠습니까? 여자들의 착각이, 여자는 남자들이 길들이기가 어려워도 남자는 쉽게 길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너무 좋아한다는 에로스 사랑의 관성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한 착각입니다. 유효기간이 짧으면 6개월 길어야 4, 5년 밖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여자로 보이기보다는 가족, 친구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결혼을 하면 데이트를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집에서 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자기에게 푹 빠져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자기는 남자를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말을 하면 듣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것은 귀찮아서 듣는 척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눈치가 없습니까? 바가지를 막 긁으면 남자는 그것을 한 번에 저어할 수가 없습니다. 바가지는 여자가 뼛속 깊이 타고난 DNA입니다. 그것이 있음으로 삶이 재밌는 것입니다. 마치 산 속에 있는 돌멩이와 같아서 산에서 물이 그 돌멩이를 타고 흐르면서 재잘재잘 하는 소리를 냅니다. 잔소리가 없으면 얼마나 시시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되면 남자들은 이런 생각을 합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뭔가 갖고 싶은데 잔소리를 듣게 되면, “에이, 안 사고 만다.” 합니다. 뭘 하고 싶은데 못 하게 하면 “내가 대출을 받아서 쓰고 차라리 연차수당을 받아서 갚고 말겠다.” 합니다. 그런데 여자는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하고 마지막에 남는 것은 관계에 스크래치가 남을 뿐입니다. 왜 그렇게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화를 냅니다. 삿대질을 해 댑니다. 당하는 남편은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남자가 정말 잘못했을 수도 있고, 조금 잘못했는데 기가 너무 강해서 제압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반복이 됩니다. 그러면 남편과 아내 사이에 중요한 균열이 생깁니다. 깨집니다. 그러면 남편과 아내 사이에 무엇인가 서로 통할 수 없는 벽들이 쌓여갑니다. 결국 서로 소외됩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나와 똑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연애할 때는 한 사람을 만났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게 착각이라는 것을 결혼하고 6개월만 지나면 알 수 있습니다. 각자의 집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인간이라는 것은 자신과 융합이 되어서 자신처럼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통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 하기 싫으면 혼자 살아야 하는데 결혼을 해서 서로를 불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되면 “나는 당신과 어떤 일이 있더라도 소통하며 살겠습니다. 인격적인 관계를 맺겠습니다.” 라는 약속, 새김이 있는 것입니다. 한 쪽에서 소통이 안 되고 갑갑하고 공감이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하면 그것에 대해서 자기 책임도 있다고 긍정을 해야 그 관계가 되는 것이지, “나는 놔둬. 나는 그냥 이대로 살 테니까 너는 나에게 적응하면서 살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너무 아름다운 미모와 기가 막힌 조건을 가지고 있어서 매달리는 남자들이 수십 명이던 연애시절에는 그것이 잠깐 동안 가능할지 모르지만 결혼하고 살아가고 세월이 흐르고 서로 늙어 가면, 서로의 사랑이 얼굴의 예쁨 같은 데에서만 나오는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소통을 하지 않고 균열이 생기게 되면 소외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혼자 사는 것이 훨씬 편하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사랑 없음에서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이 두 사람에게 남편과 아내로서 이렇게 가정을 어떻게 꾸려가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무지합니다. 이렇게 무지하니까 무지의 어둠 속에서 소위 말하는 갑질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갑질을 하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아내들도 남편에게 철이 없어서, 남편은 철이 늦게 듭니다. 그래서 잔소리를 합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이 남편은 확실히 틀렸고 아내인 자신은 맞았다고 합시다.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여자들은 보통 결혼을 하면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객관적으로 맞는다고 해서 너무 갑질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옳다는 것 하나 때문에 남편을 무참하게 을로 보고 거기에 갑질을 하게 되면 아까 이야기한 대로 부부 사이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기르면서도 똑같습니다.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에는 지적을 하고 야단도 쳐야 합니다. 그러나 한도가 있습니다. 부모와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깨어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야 합니다. 그 정도의 야단을 쳐서는 아이가 변하지 않는다고 하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진리의 말씀이 남편과 아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가르침에 대해서 이 친구는 모르고 이 친구는 압니다. 알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게 되고 끊임없이 그런 사랑의 감화를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결혼과 함께 이상 속에서 그리던 사랑은 다 버리십시오. 어차피 이제는 끝났습니다. ‘일수불퇴’인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남자와 살아야겠구나!’, ‘이 여자가 내 운명이구나!’ 하면서 맞춰가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남자들이 왜 아내를 그렇게 괴롭게 할까? 쓰라리게 할까? 확 격분하게 만들까? 이유가 무엇입니까? 두 가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자기사랑’과 ‘사랑없음’ 입니다. 이 사랑은 어떤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까? 아가페의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니까 남을 향한 배려가 없는 것입니다. 너무나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남을 향해 ‘배려’를 해 주어야 합니다. 따뜻하게 말입니다. 가장 많이 배려해야 할 사람은 부부입니다. 지난주 설교 시간에도 제가 설교를 했는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과라는 것을 합니다. 그런데 매일매일 사과만 하면서 사는 사람은 잘못 하는 사람이고 절대로 사과를 하지 않는 사람은 인성이 굽은 사람입니다. 보통 평범한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기가 늘 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용서를 빌고 사과를 합니다. 그것이 관계가 망가지지 않고 과오가 있더라도 관계가 지속되게 하는 힘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남편이나 아내는 서로에게 잘 사과하지 않습니다.
아래층 아줌마가 올라옵니다. “천장에서 소리가 너무 납니다. 조용히 해 주세요.” 하면, “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나중에 집에서 떡이라도 하게 되면 갖다 주며 관계를 맺습니다. 그런데 부부는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도 남편에게, 아내에게 사과를 잘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 말로 그냥 뭉개 버리고 개깁니다. 그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웃집 아줌마에게 하는 것보다 더 사과를 잘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람이 살면서 나쁜 일이 없을 수 없고 상처를 주는 일이 없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완전무결한 인간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것을 씻어내지 않으면 그것이 계속 빗줄기에 바위가 패이듯이, 혹은 계속해서 균열이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털어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는 부부 간에 대화를 한다고 해봐야 가정에 근심거리가 있을 때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서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저희 집사람이 한참 아플 때, 저는 인터넷을 열심히 찾아서 아내를 웃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것을 핸드폰에 저장하고 가서 마사지를 해줍니다. 처음에는 일어날 기운도 없어서 누운 상태에서 마사지를 합니다. 마사지를 해 주다 보면 기운이 돌아옵니다. 그러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 줄까?” 열 개를 이야기 해 주면 여섯 개는 합격점이고 나머지 네 개는 불합격이지만 그렇게 이야기를 해 줍니다. 다시 돌아와서 열심히 찾습니다. 아내를 위해서, 남편을 위해서 노력을 해 보십시오. 찾아보고 남편에게 기가 막힌 이야기를 해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친구나 동생에게 먼저 시도해 보고 웃기지 않으면 불합격입니다. 검증을 먼저 해보고 확실하면 저녁에 와서 우울하게 있을 때 세 개만 해 보십시오. 그러면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아내들도 남편을 무시하는 아내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남편이 아내를 괴롭게 하는 것이나 아내가 남편을 괴롭게 하는 것은 모두 자기사랑과 사랑없음에서 나옵니다. 남자에게 어떤 결함이 있고 여자에게 어떤 결함이 있다면 남의 결점을 보기 전에 자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자신이 자각해서 성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비결은 무엇입니까? 두 가지인데, 반성이라는 것은 지식에서 나오는 것인데 지식이 없으면 반성도 나오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혹은 친구들에게 아주 정성껏 그의 문제를 이야기해줬는데, “그게 뭘?” 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그것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비결은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이 아내인 우리에게 어떤 아내가 되라고 말하는가? 어떤 사람은 어떤 아내였기 때문에 어떻게 불행해졌는가? 혹은 행복해졌는가? 를 성경 속에서 찾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상적으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물론 어떤 점에서는 자신이 훨씬 우월할 수 있습니다. 돈을 벌어온다거나 시댁과의 관계든지 말입니다. 그러나 남편과의 관계에서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지식들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교류하면서 지금의 자신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남편이 되어가고 나은 아내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어차피 결혼해서 우리는 서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을 인정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노력해야 합니다. 당연히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남편과 결혼했다고, 아내와 결혼했다고 해서 편한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의를 차릴 줄 알고 서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결점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런 결점으로부터 자기가 먼저 변화된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열망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 알게 됩니다. 자기의 결함을 발견하고 고쳐야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잘 안 고쳐집니다. 그래서 평생 그렇게 살아온 것입니다. 안 고쳐집니다. 그때 비로소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아내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도 뿌리로 내려가 보면 자기 자신의 결점, 결함입니다. 사랑없음 입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제가 어디서 읽은 것이 아니라 많은 묵상 속에서 깨달은 것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아도 외로울 수 있지만 한 사람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그렇습니다. 영국의 속담에 “우유를 마시는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아도 그 사람은 자신의 인생의 외로움과 자기 자신이 고립된 존재라는 고독을 극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안 되는 것입니다. 어리고 젊은 시절에는 정말 나만을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서, 나만을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서 둘이 살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 속에 섞여서 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둘이서만 살면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살아보라고 하십시오. 하나도 재미없습니다. 불과 몇 달, 몇 년 가지 못합니다.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커플에게 꼭 물어봅니다. “잘 다녀왔니?”, “네”,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히 말해봐라. 거기서 다퉜니 안 다퉜니?” 물으면 열 명 중에 다섯 명은 절대 안 다퉜다고 하고 다섯 명은 조금 다퉜다고 합니다. 형제가 옆에 잇는데 하는 말이, “제가 목사님의 설교를 긴 세월 들었는데 동의하지 못하게 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 “목사님께서는 결혼하면 외모의 유효기간이 6개월이라고 하셨지요? 틀렸어요, 목사님. 4박 5일입니다.” 예쁜 자매를 만나면 6개월 동안 효력을 발휘해서 어디 함께 나가게 되면 우월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 유효기간이 6개월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외모를 넘어서서 인간성과 마주하게 될 때, 그때 우리는 결혼생활에 있어서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외로운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잘 들어보십시오. 인간은 성경적으로 보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가장 사랑받는 존재가 됩니다.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인간은 누군가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때, 그때 가장 사랑받는 존재가 됩니다. 그것을 터득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인생을 살고 난 후 수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추앙할 수 있습니다. “우와! 저 사람은 정말 훌륭하다!”, “대단한 삶을 살았구나! 누가 저 업적을 이룰 수 있으랴!”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것이 한 인간으로서의 궁극적인 평가일 수는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박수를 쳐도 자기와 함께 살았던 가족들이 “당신 때문에 우리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정치인으로, 사업가로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사람으로서는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은 나머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기초가 있고 이 위에 이렇게 집이 세워집니다. 이것이 우연적인 삶입니다. 이 사람이 사업가이거나 정치가이거나 목사, 혹은 운동선수였다는 것은 다양한 삶입니다. 이 삶은 그냥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운동선수였더라도 그만두고 사업을 하면 사업가가 되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다가 집어치우고 정치를 하면 정치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다 집어치우고 소명을 받아서 목사가 되면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삶이라는 것은 우연적으로 자기가 선택한 삶입니다. 그런데 운동선수도 사업가도 정치인도 목사도, 이 네 가지 이전에 그 사람은 사람입니다. 운동선수가 운동을 잘 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사람다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경기장에 모여서 박수를 치면서 축구하는 선수들을 보며 환호하는 것은 선수들이 골을 넣고 승리할 때입니다. 그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제가 여기 올라와서 설교를 해서 여러분에게 감동을 준다고 해봅시다. 여러분이 저의 인간됨에 대해서 얼마나 아시겠습니까? 물론 엿볼 수 있을 것 입니다. 설교는 운동선수들이 하는 스포츠, 타이거 우즈가 하는 골프가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마음을 알 수 있겠습니까? 천사도 모르는 그 마음을 말입니다. 그런 모든 것들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됨’입니다. 그 사람됨은 누가 잘 알 수 있겠습니까? 가족입니다. 가족이 가장 잘 압니다. 여러분이 인생을 삽니다. 언젠가는 죽습니다. 죽을 때, 살을 맞대고 살았던 아내가, “우리 남편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먼저 죽습니다. 그때 남편이, “그런 여자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우리 엄마 아빠는 평촌에서 살다가 괄목할 만한 업적 없이 돌아가셨지만 정말 선하고 훌륭하신 분들이었습니다.”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쉽지 않은 일이겠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능력이 있어서 이런 업적을 이루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결국은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깎는 고통이 없이는 누구도 진정한 사랑 속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거울처럼 마주봅니다. 아내가 불행하고 괴로우면 남편이 잘못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의 결론, 아내를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연약한 그릇으로 여기고 괴롭게 하지 말고 관계를 위해서 헌신하고 그럴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 오늘 배운 내용,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라. 억압과 폭력으로 지배하지 말라.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이다. 괴롭힘은 사랑 없음에서 나온다. 서로를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여기라. “냅 둬! 이대로 살다가 죽을 거야!” 이런 것은 “배 째라.” 입니다. 혼자 살았어야 할 사람입니다. 괜히 여자를 만나서 고생을 시키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 자체가 마지막에 책임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푹 받으면 긍휼히 여기며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질문 1) 결혼을 꿈꾸는 청년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때로는 순종하며 사는 것도 중요한데 인성적인 자질이나 도덕적인 덕목의 측면에서 어떤 것을 더 양성해야 결혼생활을 순탄하게 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답변 1) 우선 중요한 것은 아까 이야기했지만 그런 것을 열거하려면 수없이 나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기준들을 가지고 남자를 고른다고 할 때, 그런 조건을 다 만족시키는 사람이 왜 우리를 선택하겠습니까? 더 좋은 여자에게 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결혼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신앙과 함께 인성입니다. 신앙이라는 것 자체가 인성이라는 그릇에 담기는 것입니다. 경솔한 사람에게는 신앙이 담겨도 경솔합니다. 판단력이 떨어지는 사람에게 신앙이 들어가도 여전히 판단력이 떨어집니다. 허풍이 센 사람에게는 신앙이 들어가도 여전히 허풍이 남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인간성이 어떤 인간성인지를 신앙의 깊이와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일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끊을 사람이 아니라 결혼하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인성이 좋고 신앙이 없는 사람을 택하면 안 됩니다. 인성과 신앙을 골고루 고려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도덕적인 성품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 것, 정절을 지킬 것 등등 수없이 많습니다. 이런 것들을 다 뭉쳐서 이야기하자면, 남을 존중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기의 확고한 주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벽창호와 같이 도저히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전부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친구라고 만났는데 입에 거품을 물고 이야기를 다 하다가 “어머, 시간 없다. 나 갈께!” 이런 사람과는 결혼하면 안 됩니다.
또 한 가지는 기본적으로 남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성품과 교육에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이런 인성이 안 되어 있을 때 오늘날의 갑질 사태가 나오는 것입니다. 어떻게 돈이 조금 없다는 이유로, 자기보다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그렇게 막 대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것은 불행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꼽자면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어려부터 훈련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 안에서 자기의 선택에 대해서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자기가 선택한 결혼에 대해서 책임을 집니다. 주변에서 보면 아무 책임감이 없는 남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이를 낳아 놓고 가정을 가지고 있는데 일은 안 하고 집에서 TV 나 보고 게임이나 하고 놉니다. 밥을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 “어떻게 되겠지.” 합니다. 그러면 아내가 발 벗고 나서서 직업전선에 뛰어 듭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고려를 많이 해봐야 합니다. 저는 회심하기 전 어렸을 때는 연애지상주의자였습니다. 그런 작품들을 읽으며 감동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가슴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머리로 하는 것입니다. 정말 객관적으로 저 사람이 나와 맞는 사람인지, 그리고 그 다음에 사랑의 감정이 일어나고 결합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