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 새벽예배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식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식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히 13:9)
녹취자: 윤은정
종종 우리는 상당히 견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믿어지는 사람이 어느 한 순간에 아주 확 미끄러져서 거의 신앙이 없는 사람처럼 그렇게 나타나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게 되냐면은 ‘사람은 참 믿을 수가 없다. 어떻게 그렇게 신앙을 좋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보이던 사람이, 교회를 출석하고 그러던 사람이, 어느 한순간에 저렇게 신앙이 없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우리들이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원인이 어디에 있냐면은, 우리들이 그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 때에 내가 무엇을 믿는가, 그것도 중요하지만은 그러나 그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계속해서 자신이 믿는바 내용이 자신의 내면의 세계 속에서 경험될 때에 비로서 그것이 진짜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경험이 일단 사라지게 되면은 그러면 자기가 이렇게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는 내용이 자기를 믿음으로 살도록 붙들어 주는데에는 금방 한계가 드러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서 사도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했습니다. 그래서 뭐라고 하냐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그랬습니다.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그 당시에 여러 가지 많은 이단들과 그리고 이 사람들이 특별히 히브리인들이었으니까 율법의 문제를 두고 그리고 여러 가지 많은 복음이 아닌 다른 가르침이 있을 수 있었단 말입니다. 특별히 갈라디아서 같은 데 보면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얻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도 지켜야 될껄? 이렇게 하면서 유대인들을 꼬이는, 그 유대인들이나 혹은 이방인들, 아주 신앙이 어린 그리스도인들을 꼬이는 그런 거짓 교훈들이 있었단 말입니다. 그런 것들의 떠밀린다는 표현을 하는데, 그런 거짓교훈들이 이제 미혹이 되게 되면은 떠밀리게 되는 것입니다.
떠밀리지 않고 살아가는 신앙생활을 거짓교훈에 떠밀리는 것과 반대되는 모습을 성경에서는 ‘믿음의 도리를 굳게 잡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거기서 이야기 하는 ‘믿음의 도리’라고 하는 것이 뭐냐하면, 교리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교리에 대한 즉, 분명한 이해가 없이는 그 연체동물처럼 흐느적 거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번 사경회때 낙지신앙을 얘기했습니다. 낙지는 아무그릇에 담아도 담긴다고 합니다. 그게 그리스도인의 삶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믿느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교리에 대한 이해, 거기에 기반해서 믿는 확고한 신앙이 없으면 아무 그릇에나 들어가서 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체동물처럼 아무 교리에나 들어가서 자기가 담겨진다 이겁니다. 그렇게 해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이겁니다. 단순히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바른 것을 믿을 때에 바른 신앙, 그리고 올바른 삶이 나오는 것이지, 바른 것을 믿지 않으면서 올바른 신앙, 올바른 삶, 이런 것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도리를 굳게 붙들면서 살아야 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우리들이 거짓된 교훈에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첫째로는 믿음의 도리를 우리들이 알고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일평생 공부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것 없이는 아름다운 신앙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래도 과언이 아니다 이겁니다. 물론, 많이 교리를 배우고, 신앙에 대해서 배우면서 마음이 흐트러져서 배우기만 할 뿐, 순종하거나 그 뜻데로 살지 않고, 단순히 지식적으로 그것들을 알려고 하는 사람보다는 그렇게 공부를 안하고 조금밖에 아는 게 없지만 그거라도 붙들고 정말 주님의 뜻데로 순종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더 신앙생활을 잘 합니다. 그러나 왜 그렇게 반대만 비교를 하냐 이겁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잘 하는 착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만약에 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공부하고 교리를 터득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지성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간다면은 그것은 타오르는 불에다가 잘 마른 장작을 계속 집어넣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탐구해 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루 이틀만 기도 안 하면은 마음이 갈급해지듯이, 하루 이틀만 말씀에 대해 깨닫지 못하면은 갈급해지는 똑같은 영혼의 목마름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느끼지 않은 사람은 망가진 사람입니다. 병든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그렇게 다른 교훈에 미끌리지 않기 위해서는 교리를 바로 알아야 되겠지만 또 하나는 뭐냐하면 ‘은혜로써 마음을 굳게 함이 아름답고’, 성경이 ‘마음이 굳었다’ 이렇게 이야기 할 때 대부분 나쁜 의미 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굳어짐은 근본적으로는 우리의 부패성, 그리고, 우리의 죄성 때문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우리들이 마음의 굳어지는 것은 우리가 범죄하고 그리고 우리가 마음을 지키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굳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마음이 굳어졌다’, ‘굳은 마음이다.’ 이렇게 얘기할 때 ‘스클레로스’라고 하는 히랍어 단어를 쓰는데, 이 단어의 원래의 뜻이 뭐냐하면은 그 딱딱해지기까지 마른, 그러니까 마르는 과정을 통해서 딱딱해지는 그런 뜻입니다.
그런 것들을 잘 생각해주는 것이 뭐냐하면은 옛날의 북어입니다. 요즘도 물론 북어가 그렇지만은요. 옛날에는 글쎄. 모르겠습니다. 북어를 사 본적이 없지만은 하여튼 옛날 북어는 왜 이렇게 딱딱했어요. 그래서 여성도분들한테 죄송합니다만은 그때에 사람들이 흔히하는 얘기가 ‘북어하고 여자는 패야지 된다.’ 요즘 그런 소리 어디가서 했다가는 아마 큰일날겁니다. 그래서 그 북어를 가지고 딱딱해서 뭐, 이빨도 안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것을 물에다가 집어넣고 불리거나 아니면은 베보자기 같은 데다가 물기 있는 베보자기를 싸서 저녁때 요리 해야 될꺼면은 아침에 그렇게 싸서 놓습니다. 그러면 서서히 습기가 스며들어서 이제 풀어지죠. 그러면 이제 부뚜막에 놓고 방망이로 진짜 막 두드립니다. 두들기면은 이제 헤체가 되면서 그러면서 습기를 먹여서 두들겨야지, 그냥 두드리면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집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부서진 뼈대를 꺼내고 갈라서 그래서 뭐 찜도 하고 그렇게 해서 먹었습니다.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굳은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딱딱해지기까지 말라서 굳어버린’ 그런 것입니다. 그런 ‘스클레로스’라고 하는 단어만을 보더라도 상당히 오랜동안 진전이 되어서 그래서 바위처럼 굳어진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위보다도 더 단단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딱딱해진 것입니다. 그런 것의 반대가 바로 이제 그 부드러운 것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영향을 잘 받는 그런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굳은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딱딱하고 물러진 그런 종류의 굳은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깊이 박혀서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히브리서 12장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뭔가에 대해서 사도가 아주 간결하게 말했습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이이신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거기에서 입증을 했고, 그리고 그것이 바로 피흘리기까지 죄와 더불어서 싸우는 삶이라고 하는 것을 입증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모두 보면서 이제 우리들이 하나 배우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은 우리의 마음이 아까 말씀드린 의미에서 부드럽고 그래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잘 섭취하고 이러는 마음은 뿌리를 박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깊이 뿌리를 박고 무엇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그런 마음입니다. 그렇게 무엇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인데 그 마음인 사람들이 결국은 요동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마음이 깊이 뿌리를 박아서 그래서 마음자체가 딱딱해 진다기 보다는 마음을 나무라고 한다면 그것이 깊이 뿌리를 내려서 요동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나무 같은 것들을 보면은 이제 나무를 심습니다. 심어서 우리도 그랬지만은 한 6개월 이상을 거기에다가 이 나무를 바쳐놓습니다. 부목을 대어서 그래서 그 나무가 흔들리지 않게끔 이렇게 바쳐놓습니다. 상당히 오랬동안 놔둡니다. 큰 나무의 경우에는 1년씩 그렇게 놔둡니다. 왜? 그래야지만 뿌리가 착상이 된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잘 굳어져서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깊이 뿌리를 내린 다음에 그 다음에 부목을 때어버려도 그때는 뭐 상관이 없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부드러운 마음에 뿌리를 내려서 쭉 내려가서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기는 할 지언정 뿌리가 뽑히지 않는, 자리자체가 움직이지 않는 그러한 마음이 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상태가 이 거짓교훈은 밀리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게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냐면은 ‘은혜로서 마음을 굳게 함으로써’ 여기서 뭐냐하면, 하나님이 신자에게 베풀어주시는 복음과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현재적인 경험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이 참 좋으신 분이고, 내가 믿고 살아가는 이 복음진리가 정말 행복한 것이고, 정말 아름다운 것이다라고 하는 신앙 그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에 의해서 마음을 굳게 하면 그러면은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니까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그 하나님이 아름답게 보는 신앙이 어떤 신앙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신앙이에요? 흔들리지 않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부지런히 교리를 공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에요? 그래야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이겁니다. 여러분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이 너무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거미줄과 같아서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동안에는 그 믿음이 있는 것 같지만 주님의 곁에서 우리들이 미끄러지기만 하면은 우리가 믿음 있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그렇게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위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전에 하나님을 잘 믿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의 믿음이 온전해지는 것이 아니고, 옛날의 은혜는 옛날 살았고 그래서 오늘은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오히려 강한 사람들이 아니라 약한 사람들입니다. 왜? 믿음의 비밀이 무엇인지 깨달은 사람들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수 없는 사람이라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붙들어준다 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붙잡고 계실 때만 우리가 주님의 사람이지 주님이 우리의 손을 놓으면 우리는 결코 주님의 사람일 수 없고,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굳게 붙들고 하나님의 뜻데로 그리고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에게 날마다 우리가 살아가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이러는 신앙생활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교리를 많이 배우고 또 한편으로는 그 하나님의 현재적인 은혜를 끊임없이 경험할 때에 그 때에 그 신앙이 아름다운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 나는 이미 그 신앙에 도달했고, 도달했는데, 나의 이 신앙은 안전하다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해 나가 보면은 매 순간 내가 그 해명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납니다. 신앙은 마치 가보지 않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아서 어떤 때는 우리가 신앙을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아도 어떤 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그러나 바람이 불고 풍랑이 일어나면은 항상 그 경험은 새롭습니다. 그래서 문득문득 자신을 발견하게되고, 내가 이렇게 악한 사람이었는가, 그리고 내가 그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는데, 이렇게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는가, 그런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매순간 깨닫지 못했던 자기 자신의 새로운 면을 보고, 깨닫지 못했던 인간들의 새로운 면을 봅니다. 그리고, 깊은 수렁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비롯해서 많은 지체들을 보면서 진짜 우리들이 알고 있는 이 하나님의 관한 지식의 빛, 우리들이 깨닫고 있는 이 교리의 빛은 지극히 부분적일 뿐이라는 사실을 또다시 깨닫게 됩니다. 진짜 더 많은 빛을 필요로 하구나...
그래서 마지막에 죽어가면서 옆의 있는 지인들에게 ‘창문을 열어서 더 많은 빛을 내게 보여주오’라고 유언을 남기고 죽었던 것처럼 우리들이 그렇게 마지막 숨질때 될 때까지 그렇게 진리를 더 많이 알고 싶어하고 그것을 깨닫고 싶어하는 이유도 바로, 우리들이 너무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느 복음송 가수가 자기가 지은 노래 속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속에는 내가 너무도 많아.’ 그래서 주님이 들어와서 쉬실 자리가 없고, 그것이 자신의 마음입니다. 자기도 누구인지 자기를 깨닫지 못할 정도로 자기 속에는 자기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매일매일 새롭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얼마나 연약한 인간인지를 깨닫고 그리고 매순간 하나님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이것이 신앙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