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인턴십 종강예배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
녹취자 : 김미현
이 시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70년 동안 포로로 잡혀 있다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던 때에 쓰여진 시입니다. 그 역사적인 사실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갑자기 이스라엘 백성들이 디아스포라에 있던 사람들 중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 그 제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종교적인 관용정책의 하나로 이루어진 조치였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큰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예루살렘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이 수축되고 성전이 다시 지어지는 일들이 1차, 2차, 3차 포로귀환 속에서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야아, 정말 그 임금 마음이 좋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호의를 베풀어서 유대 민족에게 자기 땅으로 돌아가고 성을 짓기 위해 필요한 물건들까지 주도록 제국의 방백들에게 명령할 수 있을까? 야 정말 요즘말로 대박이구나.’ 그러나 오늘 시인은 이 꿈꾸는 것 같은 놀라운 일들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간 사람들의 수고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었다라고 역사를 해석을 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다니엘을 비롯한 경건한 뿌리들로 남아 있었던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70년 바벨론 생활 속에서도 자신들이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고 주님 앞에 예루살렘의 회복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고 그것이 씨가 되어 뿌려져서 70년 후에 예루살렘 귀환이라는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 목회자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그냥 허접하기 짝이 없게 이 교회 청빙 받아 가면 장로들의 발에 치이고 권사들의 입술에 치여서 이리저리 나뒹굴고 또 다른 교회 가면 ‘이 목사님은 언제쯤이나 우리 교회를 그만두실까?’ 하다하다가 안되겠으니까 어느 교회에서는 아예 ‘미리 은퇴하시면 70세까지 월급을 미리 드리겠습니다.’ 그러더라고 합니다.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기왕에 주님을 위해 이 길을 들어섰으니까 내 자신의 영광은 나중 문제라도 그저 사람들에게 본받을만한 목회를 하고 또 세속적인 마음이 그에게 남아있다면 성공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보면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일을 한다고 하지만 정말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그렇게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이것은 단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사역에 크기라든지 이런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목회자의 임무가 무엇인지를 알고 옳은 길을 걸어가면 힘이 많고 기회가 많이 주어지면 한 100m쯤 갈 것입니다. 능력이 적고 기회가 적게 주어지면 한 50m쯤 갈 것입니다. 일찍 죽는 다든지 질병이 있어서 고난이 있으면 30m쯤 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딴 방향으로 간 것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힘이 모자라고 능력이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올바르지 않을 때에는 오히려 능력이 있고 힘이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예화) 여러분! 바다 위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배가 있는데 조향장치가 망가졌습니다. 그러면 차라리 엔진이 꺼지고 바다위에 멎는 것이 낫겟습니까 아니면 시속 100km로 그냥 물살을 가르며 달려가는 것이 낫겠습니까? 방향이 조정이 안 되는데 그러다가 절벽에 부딪히면 커다란 굉음을 내면서 폭발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능력은 능력이고 올바른 것은 올바른 것입니다. 올바르게 가야합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은 제가 그래도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하나님 은혜도 받았는데 교회를 지하실 교회를 하고 5년이 지난 후에야 ‘아! 목사가 이런 것을 하는 사람이구나. 그리고 이만큼의 일이 목회자가 해야 할 일이구나.’ 그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큰 축복을 기대하고 기도하는 것은 좋지만 실제적으로 그런 사람이 되도록 자기를 훈련하는 실제적인 헌신이 없이 그것을 바라기만 하는 것은 요행을 원하는 것과 다름이 아닙니다.
(예화) 지구 역사상 아마 가장 강력한 나라가 로마였을 것입니다. 거의 1000년의 세월 동안 그 나라가 버티지 않았습니까? 그 나라가 그렇게 강할 수 있었던 것은 군인들 때문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문양이 독수리입니다. 이 독수리를 나라마다 자기네 국가의 상징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오스트리아도 독수리였습니다. 신성로마제국도 독수리였습니다. 지금 미국도 독수리가 국가의 문장입니다. 그렇게 강력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로마의 훌륭한 군인들이었습니다. 부패와 타협할 줄 모르는 철저한 애국정신으로 무장된 엘리트들, 그 사람들은 아예 어린 나이부터 짐나지움에서 따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훈련받은 사람들이 이제 군인의 장교가 되었고 영광스러운 내 조국 로마를 위해서 언제든지 죽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로마는 한 개 군단이 6000명 정도로 이루어진 독특한 체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15000명, 20000명이 되었지만 이 사람들은 6000명 정도, 그리고 그들은 짧은 칼에 그리고 작은 방패를 지녔습니다. 그리고 군인 숫자가 많으면 전쟁에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철저하게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군사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시오노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로마의 힘은 군인들에게서 나왔다. 군인이 강할 때 로마는 강성했고 그들이 약해지면서 나라도 약해졌다.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강한 군인이 될 수 있었느냐? 로마의 군인들에게 훈련은 피 흘리지 않는 전투였고 전투는 피 흘리는 훈련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엄청난 노력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훌륭한 훈련이 훌륭한 군인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남다른 집안에서 태어날 이유는 없습니다. 왜? 우리도 남다른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불신자이셨습니다. 나중에 다 믿으셨습니다. 가정에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가 결혼할 때에 우리 집안에 예수 믿는 사람은 우리 동생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꼭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하고 똑같은 준비의 과정을 거쳐서는 남다른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에서도 한 35명 정도의 교역자가 있는데, 저는 한 3년만 데리고 있어보면 이 사람이 어느 정도 목회를 할 수 있을 것이 거의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습니다. ‘그저 100명도 못 모으고 끝나겠구나.’, 이런 사람도 있고 ‘진짜 1000명 정도 되는 교회를 맡겨 주어도 하겠구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마치 한 송이 국화꽃이 피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었던 것처럼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꿈을 꾸는 것 같은 행복한 때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씨를 뿌리러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곡식 단을 거두어서 집으로 돌아올 때에 기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오늘 씨를 뿌리러 나갈 때에 신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인간은요 배운대로 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내가 모시고 있던 내수동 교회 박희천 목사님이 ‘기름이 많이 들었으면 확 쏟으면 콸콸콸콸 나오고 별로 기름이 없으면 한참을 기울여야 한 방울 두 방울 나온다.’ 고 합니다. 그런데 참기름 병에서는 참기름이 나오고 들기름 병에서는 들기름이 나오는 것이지 들기름 병에서 참기름이 나오지는 않는 것입니다. 기울이든지 콸콸 쏟아지든지 간에 그것은 능력의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우리 목회자들에게 신학교 다닐 때 늘 권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전기를 많이 읽어라.’ 왜? 친구들하고 키재기를 하면 그래도 나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저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입니다. 특별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읽으면서 ‘나의 신앙은? 나의 기도는? 나의 헌신은? 나의 소명은?’ 생각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 앞에 겸비해지게 되고 높은 목표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능하게 사역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모님들이 신학적으로나 어떤 판단에 있어서 목사님들보다 더 정확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축구 선수가 그라운드에 들어가서 볼을 몰고 달리면 그 21명이 다 잘 안보입니다. 같은 눈높이에 서있으니까 그러나 관중에서 내려다보는 사람은 훤히 보입니다. 목사는 사모님들보다 공부를 더 잘하고 경험이 더 많아도 언제나 그렇게 판단이 부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올바른 것이고 무엇이 좋은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판단이 아주 정확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말씀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목회의 길은 끊임없는 고난의 길이기 때문에 많은 시련이 있습니다. 먹고 살 경제력이 안 되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삼시세끼 잘 먹고 물질의 고통을 안 받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참 진짜 세상에 걱정할 일이 없겠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자기가 진 십자가가 제일 커 보이는 법입니다. 돌아가신 옥목사님이 개인적인 사석에서 그런 얘길 하셨습니다. ‘오늘날 3D업종이 셋이 있습니다. 대학병원장, 그다음 대학총장, 대형교회 목사’ 그 때 나는 대형교회도 아니었지만 그분도 결국은 그렇게 큰 교회가 아니셨다면 그렇게 일찍 안돌아가셨을 것입니다. 그러한 높은 고통들을 당하게 되는 것이 목회의 길이고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없고 저것이 있으면 이것이 형통하면 저것이 아프고 해서 결국은 누가 걸어가도 결국은 이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제 담임목사가 되고나면 가르칠 사람이 없습니다. 나의 제자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담임목사가 되고나면 더 이상 배우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담임목회를 하기 전까지 온 마음을 다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가 다양한 목회적인 상황 속에서 나는 어떻게 이 목회 사역을 신앙과 일치를 이루며 그 하나가 되도록 그렇게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가 이것을 깊이 생각하고 여러분들이 남편을 의지하면서 걸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들을 여기로 불러준 것은 남편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남편과는 상관이 없이 하나님이 이 길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잘 걷고 못 걷고 하는 것은 전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그분께 순종하느냐에 달린 것이지 남편이 성격이 독특해서, 가정을 돌아보지 않아서, 돈이 없어서 그래서 힘들어서 이 길을 못 갔습니다.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고난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위로도 많습니다. 시련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도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때로는 넘어져도 최후 승리를 믿으며 믿음으로 그 길을 가려고 하나님 앞에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대한 커다란 이상을 가슴에 품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온전케 하는 그 하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나를 성도들의 어머니로 불렀다, 부르셨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모든 교인들이 자기와 맞서는 맞수나 경쟁자나 도전하는 자나 이렇게 느껴서는 안 됩니다. 양떼들로 느껴져야 합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희생의 길을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슴 아픈 얘기지만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성도들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고 우리를 그리스도를 위해 교회를 위해 죽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자리매김하고 걸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들이 배운 것은 진짜 목회자의 아내로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커다란 약도 정도를 받은 것이지 우리나라 지도로 말하자면 고속도로 몇 개 그려놓은 길을 제공받은 것이지 모든 것을 배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 부부도 20년 동안 열린교회를 목회해 왔지만 참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때로는 잘 몰라서 때로는 사랑이 부족해서 때로는 사랑도 하고 잘 알기도 하는데 아는 대로 행할 힘이 없기 때문에 우리들이 올바르게 못한 적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것들을 모두 거울로 삼으면서 여러분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니까 어디에 계시든지 믿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여러분들을 불러주신 것을 잊지 말고 다른 아무 것도 핑계대지 말고 하나님 한 분 앞에서 바르게 사랑하고 헌신하며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