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새벽예배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히 13:16)
시와 찬미로 신령한 제사를 드리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가운데 예수님이 성문밖에서 고난을 당하고 죽으신것을 본받아서 우리도 그 능욕을 치고 성문밖으로 나아가서 이세상에서 우리들이 이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며 고난을 받는거 이것이 사실은 성도의 삶입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그 어두운 고난만 있는것이 아니라 예전에 하나님을 몰랐을 때에는 없었던 그러한 그 영생 하나님과 자녀의 관계를 가지면서 이 세상을 이기며 살게하는 거룩한 자원들을 끊임없이 공급을 받게 되잖아요. 그런것들을 공급받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능욕을 치루고 세상을 위해서 살아가는것도 감당할 수 있는것이예요. 그러면서 이제 오늘 사도는 말하기를 그러므로 선을 행하는 것과 그리고 나누어주는 것을 잊지 말자. 그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을 행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은 착한 행동을 가르키는 것 아닙니까? 무엇이 착한 것이냐?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선을 행한다 라고 하는 것은 예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이 당신의 선한 계획을 가지고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리고 모든 인간들을 그 선한 목적을 따라서 존재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또 그런 선한 목적대로 살 수 없도록 타락한 인간을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셔서 다시 그 선한 목적을 따라서 살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또 하나님께서 섭리 하실 때에도 그러한 목적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되도록 섭리하신다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리고 무엇이 선한 것인가? 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배우고 그리고 깨달아 알면 알수록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많이 소유하면 소유할 수록 무엇이 선한 것인가를 잘 깨닫게 되요. 그리고 무엇이 선한 것인가하는 것을 잘 깨닫게 될 때에 그때에 그 무엇이 선한것인가를 깨달은것 만큼 은혜를 받으면 또 깨달은것 만큼 살게 되는 것이죠. 그런 결과로써 이제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이야기하는 선을 행한다 하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분이신지를 알고, 그리고 전적으로 자기를 포기한 그러한 결과로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부합하는 그런 선을 가르키는 것이예요. 그리고 그것들이 구체적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날 때에 선한 행실로 나타나는 것이죠. 그러니까 바로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성문밖에서 능욕을 치고 고난을 당하며 살아가는 거, 그런 모든 삶이 선한 것이예요.
인간의 이기심이라고 하는것, 빗나간 자기 사랑이라고 하는 이것을 간직하고는 절대로 선한 삶을 살아갈 수 없는거예요.. 선한 삶을 살게 되기 위해서는 주님이 그 선을 행하는사람의
마음에 전부이어야 해요. 어떻게 하든지 자기를 버리고 주님을 택하고 그리고 자신은 희생해도 주님이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는 진실한 삶을 사는것, 이것이 말하자면 믿음생활에 있어서 가장 근본이 될 때에 그때에 선한 삶을 살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선한 삶의 기초는 한 사람의 도덕성이나 도덕교육의 기초가 모인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사람을 새사람으로 만드시는 영혼의 변화, 그리고 그 안에서 성화의 과정을 통해서 얼마나 철저하게 자기를 버리고 주님을 온전히 택하면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모든 선한 삶, 선한 행위의 기초가 되는것이예요.
그래서 우리들이 매순간마다 그 하나님 앞에 싸워야 될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려고 하는것, 그리고 자신의 기쁨과 행복을 구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 하나님보다 자신의 즐거움과 인생의 행복을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하려고 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자기 사랑이예요.. 그래서 이런 자기 사랑이 진실한 참회를 통해서 깨뜨려지지 않고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행하는 그러한 향기로운 삶을 살수가 없어요. 그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이러한 자기 사랑이 있어서 깨뜨려지지 않으면 그 모든 행동과 삶은 하나니앞에서 불결한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깨뜨려질때 자기사랑을 부인하게 되고, 그렇게 될 때에 그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는 것이죠.. 그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게 될 때에 바로 그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 구속을 통해서 회복하고자 하는 그 질서, 하나님께서 그 질서의 회복을 위해서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주신 하나님의 모든 계명들을 함께 사랑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거기서 기쁨을 느끼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예요.
그러면서 그 선을 구체적으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적용할 때에,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그 구체적으로 우리들이 가진 소유를 나누어 줘야 한다라고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선한 삶이예요. 당시는 고아와 과부의 문제들이 특히 커다란 문제였고, 그리고 그것은 사실은 이미 율법이 주어진 때부터 계속해서 하나님의 관심사였고 그리고 중요한 하나님의 계명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이제 이때 이미 피박이 일어나고 있는 때이니까 이제 피박을 받아서 가족과 절연하고 그리고 신앙속으로 들어온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의 힘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교회가 떠맡을 수밖에 없었고, 그 사람들을 떠맡아서 무엇인가 그들을 섬기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처지에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날마다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 바로 이러한 삶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자기 사랑을 십자가에 못박고 주님을 사랑하고 그리고 주님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그 많은 사람들을 깊이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들에게 나누어주고 하는 이런 이타적인 삶을 사는데에 거기에 성도의 진정한 행복이 있는것이죠.. 그래서 한편으로는 자신이 주님의 형상을 닮기까지 거룩해 지고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이루시기를 원하는 모든 계획들을 따라 살면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살아가는 그것이 자신이 이 세상에서 즐거움을 누리고 행복해지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가 될 때에 그 사람의 삶이 비로소 그리스도께 승복된 삶이라고 우리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이 모든 아름다운 모본을 예수그리스도께서 이세상 오셔서 보여주신 것이죠.. 예수님은 권력있는 사람들에게 아부하거나 빌붙지도 않으셨고 그렇다고 해서 가난한 사람을 무조건 두둔하고 그러신것도 아니죠. 그분이 사신 삶은 이 세상의 평가와 이 세상의 환호, 이 세상의 비난과는 관계가 없이 하나님께서 선이라고 생각하시는 그 길을, 올곧게 걸어간 발자취였어요. 그래서 그 분 주위에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도 있었고 또 돈 많고 가난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건강한 사람도 있었어요.. 후에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신 후에 복음이 전해질때 그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복음선포를 통해 제시받았을 때에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그리스도예수께 엎드린 많은 헌신자들 중에 그것이 어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라 모두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회심하고 돌아온것을 보면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사신 생애가 바로 그런 삶이였어요. 그러면서도 예수님의 생애 전체는 가난하고 병든사람들을 먹이고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베풀고 나누어 주시는 그런 삶을 사셨던 것이죠. 우리에게도 그런 삶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 속에서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발자취를 보고 그래서 예수님에게는 고통받고 그리고 굶주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의 대상이었고 그들을 위해서 섬기시는 삶, 그런 일생이 었던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은 누구의 편에서기 보다는 이렇게 하나님이 선이라고 여기시는 그 길을 따라서 살고, 그리고 모든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고 긍휼히 여기면서 그들을 사랑하고 그리고 베풀고 사는 거기에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행복과 삶이 있어야 해요.. 그것이 바로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계명이예요.. 그 계명은 또한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라는 계명과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죠. 이런 삶을 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