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새벽예배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히 13:17)
녹취자: 이새봄
은혜를 받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찬미의 제사를 드리고 구체적으로 그런 찬미의 제사가 자신의 삶에 적용될 때 선을 행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삶이 된다는 사실을 밝힌 후에 여기서 이제 그들이 영혼을 인도하는 말씀의 종들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성경에 뭐라고 나오냐면 이렇게 나옵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핍박가운데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내로라하는 훌륭한 교회의 조직은 없었겠지만 그러나 그들이 어디에 있든 지간에 그들에게는 영혼을 인도하는 교역을 하는 말씀의 일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 사람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너희를 인도하는 자라, 이렇게 호칭한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들도 다양했을 것입니다. 때로는 사도바울과 같이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또 에바브로 디도나 이런 사람들처럼 바울이 교역자로써 보낸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자기들 안에서 먼저 하나님을 믿고 그들의 신앙을 지도하는 평신자 지도자들도 있었을 것이고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아마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이들을 격려하고 붙들어주었고 그랬을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향해서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이라” 이렇게 표했습니다.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뭐 다양하지 않았겠습니까? 히브리인들이었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면에서는 동일한 사람들이었겠지만 믿음의 수준도 다양했을 것이고 그들이 행하고 있는 직업이나 소득의 정도 이런 것도 다양했을 것이고 지식의 정도에서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떤 처지에 있든 지간에 그것과는 상관없이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이 있다, 그래서 이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자기가 믿고 자기가 하나님 앞에 거룩해져가고 결국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혼자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함께 믿는 사람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을 보더라도 모두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적 표현으로 나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리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렇게 그 기도 자체가 공동체적 기도란 말입니다. 그래서 함께 형제로써 함께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함께 거룩해져가는 공동체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또 거기에 필요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그게 바로 그들이 올바로 믿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그런 영혼의 목자들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신앙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터득하고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 그리고 정말 신자가 되어가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들을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배워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항상 구약이든 신약시대이든 그것과는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보내어서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고 믿고 따라가고 신앙생활하고 하는 것들을 보여주셔서 그들을 목자 없는 양같이 유리하고 고생하지 않게 하시고 그래서 그들이 참된 신앙을 가지고 믿음생활을 해나가도록 그렇게 돕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들에게 너희는 순종하고 복종하라, 반복해서 비슷한 명령을 두 번이나 성경이 내리고 계십니다. 그 의미를 굳이 나눌 수는 없겠습니다만 너희는 순종하고 복종하라. 순종한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이요, 복종한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그것이 내키지 않아도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이라 생각하고 거기에 머리를 숙이고 그 뜻대로 하는 것이 복종의 자세입니다.
이제 그 다른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거나 혹은 우리 자신이 함께 모여서 신앙생활을 하는 거나 어느 현장에서든지 이렇게 보면 말씀으로 자기를 인도하는 사람, 뭐 가깝게는 부교역자들로부터 시작해서 멀게는 담임 목회하는 목사에 이르기까지 그 관계를 올바로 갖지 못하고 실망하고 그리고 또 낙심하고 그래서 결국은 순종하지 않고 불순종하고 하는 그런 신앙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이라면 목회자는 발군의 탁월한 인격을 가져서 가장 어리고 신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라고 할지라도 한없이 존경받을 수 있는 그런 훌륭한 인격, 그리고 아무리 그의 삶이나 언행을 샅샅이 살피고 조사해도 어떠한 흠도 찾을 수 없는 그런 완벽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고 또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또 목회자가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인줄 알고 그의 말씀에 깊이 순종하고 그리고 또 자신이 좀 이해가 가지 않을 때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일하신다, 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깊이 순종하고 그래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일하시는 것들을 자신의 마음속에 오히려 나중에라도 받아들이고 승복하고 그리고 시간이 모두 흐른 후에 역시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꾼들이 일한 것들이 맞다, 그 판단이 맞다, 그의 가르침이 정확했다, 나중에라도 이렇게 승복하고 그렇게 순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관계이겠습니까. 그런데 보면 안타깝게도 그렇게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는 그런 목자와 양떼들이 참 많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항상 아픕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제 복잡하게 목회자의 인격적인 미성숙이나 교인들의 교만, 이런 것들도 섞여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렇게 그 가르쳐주는 말씀대로 주님을 찾으면서 자기 자신을 부인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 그 자체에 대해서 힘겹게 느끼는 반감이나 누적된 거부감 같은 것들이 어느 한 순간에 작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서 결국 그 목자와 양의 관계를 부인하고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신앙생활 자체를 향해서 하찮게 생각하는, 그러한 실패로 나아가는 것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 모든 것들을 보면 얼마나 우리 인간이 불완전하고 악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많이 아프고 그렇습니다. 주님의 마음도 아마 그러실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당신의 구원받은 자녀들을 인도하실 때에 홀로 내버려두시고 홀로 성령으로 그들과 직접 대면하심으로 인도하시기보다는, 이 목양이라는 방편을 통해서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고 그리고 이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절대로 완전한 목자를 주시지 않습니다. 만약에 완전한 목자를 주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는 보이는 그 사람을 훨씬 더 의지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지 아니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그 사람이 아무리 뛰어난 훌륭한 목회자요 내 영혼을 인도하는 목자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붙들고 있는 동안에만 그 사람이 그런 일꾼일 수 있고 하나님이 손을 놓으시면 하나님의 사람일 수 없다, 라고 하는 어떻게 보면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목양을 받게 되고 목양을 하는 목자들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죠?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만 그 사람들이 자신의 양떼이지, 그 하나님의 은혜가 사라지고 나면 양떼가 아닙니다.
(예화) 언젠가 경기도 인근 지역에서 아주 목회를 크게 이름만 대면 여러분 누구나 다 아시는 분이신데, 불과 한 7-8년 됐나요? 한 만 여명이서 모이는 교회로 개척을 하고 성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많은 비난을 좀 받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워낙 설교도 잘하시고 뛰어나니까 다른 교회 교인들이 이제 막 가서 숫자가 불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같이 모여 있는데 어느 분이 그 분에게 그랬습니다.
“목사님 주위의 교회에서 자기네 양떼가 거기로 다 간다고 그 불평이 많습니다.” 라고 하니까 그 목사님 말씀이 참 재미있었습니다.
“나는 남의 양떼를 뺏어온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교회에 온 사람들은 모두 그 교회 염소였습니다.” 그게 그래서 우리가 참 뱃살을 잡고 웃었는데, 나중에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그것도 또 일리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교회에서 목사님 존경하고 말씀 잘 듣고 그 배부르고 만족을 했다면 왜 자기교회 버리고 거기로 갔겠느냐,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목사님 이야기 속에는 뭐가 있었냐면
‘어차피 그렇게 와서 우리교회 와서 은혜를 받고 새로운 신앙생활을 할 사람들은 거기서 만족이 안됐고 만족이 안됐으면 결국 그 교회와 목사를 향해서 적당한 반감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그 교회 양떼일수 있느냐, 그게 염소지, 그런데 그 교회 염소가 우리교회에 와서 양떼로 바뀌었는데 그러면 됐지.’
그런가보다 그러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절대로, 그러니까 교인들을 이렇게 보면서도 처음에 이렇게 교인들을 보면서 교회에 와서 말씀에 은혜를 받고 엎드려지고 그저 예배시간에 설교를 계속하지 못할 정도로 울고 이러는 모습을 보면서 ‘아 정말 저 사람이 얼마나 저렇게 은혜를 받았으니, 얼마나 교회에 충성을 할까’, 그런데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그런 생각들이 얼마나 낭만적인 생각이었는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많이 회심을 해도 안 믿으신다는, 아니 안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뭐 믿으라면 믿습니다. 믿으라면 믿는데, 결국은 어느 한 순간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나를 계속 붙들고 있을 때에만 내가 선한 목자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 그 양떼들도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붙들고 있는 동안에만 염소가 안 되고 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결국은 교회 안에 은혜가 많이 넘치면, 그리고 목회자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은혜를 많이 받으면 목회자다운 목회자가 되고, 교인다운 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그렇게 좋은 목자와 양떼로 살다가 헤어지는 것입니다. 그게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필요하겠는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래서 한 교인이 은혜를 많이 받았을 때에는 그 사람의 옛 모습이 간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은혜가 사라지고 성품이 드러나고 성격이 나타나게 되면 옛날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적나라하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하지 않습니다. 오늘 여기 보십시오. 순종하라, 복종하라. 절대로 순종하지 않고 복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할 일이 없는 것입니다. 목회하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순종하지 않고 복종하지 않으면 더 이상 할 일이 없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든지 나는 가르쳐주는 대로 믿고 그리고 우리에게 교훈하는 대로 받아들이고 살라고 우리에게 추구하는 대로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복종하지 않습니다. 할 일이 없습니다. 그냥 가슴아파하면서 은혜받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 이외에 무슨 할 일이 있겠습니까. 이런 것들은 불행한 신앙생활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깊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부족한 성도들을 보면서 나도 하나님 앞에 완전한 목회자가 아니지, 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또 교인들은 자신의 불완전하고 불순종하는 신앙생활을 보면서 나도 완전한 존재가 아니지, 하면서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면 그것을 따라서 순종하고 그리고 자신에게 그 모든 것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도 목회자에게 복종하고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인데, 이것은 결코 군대적이고 기계적인 복종이 아닙니다. 주님 때문에 목회자에게 순종하고 목회자의 권위보다는 목회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때문에 복종하고 그렇게 하면서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칼이나 창, 그리고 총과 방패 같은 무기를 들려서 이 세상에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할 때에도 역시 그랬습니다. 그들에게 주신 것은 오직 하나였으니,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전해줄 수 있는 그 계시의 도구,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 그 하나였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의 뜻을 깨닫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으로 반응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고 복종하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러면 결국은 신앙생활이 불가능하고 오히려 선지자들이 박해를 받기도 하고 피 흘리며 죽어가기도 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무력적인 권한이나 강압적인 힘 같은 것들을 목회자에게 부여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서 세상에 보내시고 그리고 교회를 만드시고 그래서 그들을 그 말씀으로 가르치고 교화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께서 올바르지 않은 자들을 견책할 수 있는 그런 영적인 징계의 권한을 주셨다고 할지라도, 그것도 역시 신앙으로 받아들일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당신은 행실이 바르지 않고 부도덕하니까 6개월 동안 성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판결을 내려도 “네가 뭔데” 라고 떠나면 그만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어떠한 무력적인 수단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목양의 관계는 그런 것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깊이 깨닫고 그리고 은혜 받고 그러면서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가는, 그런 순종하고 복종하는 삶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성숙해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살아가는 신앙생활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