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새벽설교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시라(시편73:26)
녹취자: 이춘수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특별히 우리마음이 하나님의 은혜에 잠긴 때를 제외하고는 우리가하나님을 바라보는 시선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처럼 열렬하거나 투철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볼 때 세상에 대한 사진이 우리의 마음속에 찍히게 마련입니다. 시인도 똑같이 그런 것을 경험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매일 매일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지만 어느 순간에 그렇게 하나님을 찾으면서 살아가는 모든 일에 있어서 영혼이 피곤함을 느끼게 되고 그렇게 하나님을 믿으면서 살아가는 이 일에 피곤함을 느끼게 되니까, 그 다음에 하나님이 자신을 매우 부당하게 다루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과 교제하고 주님의 은혜를 받으면서 살아온 사람이었지만, 일단 영혼이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진실한 신앙의 틀에서 벗어나게 되자, 그는 불순종하면서도 세상에 번영하는 사람들에 대한 광경이 마음에 찍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너무나 또렷하게 가슴에 새겨졌고, 그것과 함께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별로, 축복 받는 것이 없다 라고 하는 그 그림이 자신의 마음 속에 동시에 아주 크고 분명하게 찍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백성들에게 베푸시는 은혜나 축복, 그리고 그 놀라운 사랑, 이런 것 들은 가슴에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시인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고자 하는 은혜마저도 서서히 식어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시인의 경험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도 이런 경험은 우리 안에서도 여전히 반복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모든 사람들을 굽어보시면서 우리가 그분의 은혜 안에 살기를 원하시지만, 그러나 시시때때로 우리들이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찍히는 그 그림이 우리에 가슴에 너무나 크고 선명한 나머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 은혜와 사랑, 이런 것 들을 붙들고 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들의 신앙이, 만약에 이 세상 안에 갇히기만 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힘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이 신앙에는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의 신앙 이어야한다는 그런 역사성과, 또 하나는 비록 우리가 이 땅에 살지만 우리의 궁극적인 신앙은 이 땅에만 매이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이 있기 영원 전부터,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 끝난 저 하늘나라까지, 이어지는 인생이라고 하는 기대 속에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신앙의 초월적인 요소입니다. 그래서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기를 원합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왜 만나고 싶어 합니까? 주님이 능력 주시기를 바랍니다. 왜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능력을 받으려고 합니까? 결국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나 자신에 대한 만족, 내가 마음이 불편하니까, 힘드니까, 이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은혜, 그런 능력, 그런 만남 이런 것 들을 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이 세상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그런 능력과 은혜, 하나님과의 만남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주님이 은혜를 주셔야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목숨이 붙어있는 날 동안 조금이라도 더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주님의 영광을 나타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분명한 자기중심을 가져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이 은혜를 많이 주셨는데도 이 땅에서 고난이 싫어서, 혹은 육신의 안일함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불순종하며 사는 것을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든지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잘 살아서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어디에서? 이 땅에서, 이 땅에서,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님의 은혜를 많이 주셔도 이 땅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자할 때, 그것은 마치 흐르는 물을 거스르며 헤엄치는 것과 같습니다. 흘러가는 세상에 물의 흐름 따라서, 떠내려가고 있는 동안에는 이 세상이 그렇게 더럽고, 그리고 이세상이 그렇게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있고, 이세상이 그렇게 완고한 곳인지 알지못 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해보십시오.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려고 한번 몸부림 쳐보십시오. 그때에 비로소 우리는 그 삶이 얼마나 어려운 삶인가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내 자신 안에만 대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도 대적이 있고, 하늘에도 영적인 대적들이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그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힘이 굉장히 큽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세상의 정신을 따라서 흐르는 몸에 자신을 맡기듯이 떠내려가는 것처럼, 세상풍조를 따라 살았던 사람들이 고난을 받았습니까? 박해를 받았습니까? 핍박을 받았습니까? 사람들에게 싫어 버린바가 되었습니까? 만약에 예수님이 오셔서 먹고 마신 사람들이 세리와 창녀들이 아니라 그때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이나 종교지도자들이였다고 하면, 예수님이 무슨 핍박과 박해를 받으셨겠으며, 왜 십자가에서 마지막 못 박혀 죽으셨겠습니까 오히려 주님께서는 그렇게 복음을 받아들이는 창녀와 세리들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셨고, 그 시대의 흐름을 거스려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사시려고 애를 많이 쓰셨기 때문에 그런 핍박과 고난을 당하게 되신 겁니다. 그런 생애를 점철하며 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인을 어떻게 다루고 계신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은혜에 묶여서 신앙생활을 해오며, 경건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어느 한순간에 자신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고, 주님을 마음에 두지도 않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악한 인간들은 이 세상에서 번영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경건하게 사는 것이 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생각했습니다. 신앙이 너무 이 땅에만 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고통을 위해, 그리고 자기의 번영을 위해 몸부림치는 신앙, 이것은 정말 이 땅에서 열렬한 신앙 같지만 그러나 오늘 이 시인에게서 보는 것과 같이 결정적인 위기의 때가 올때에 그 신앙은 강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키는 크지만은 뿌리를 얕게 묻어놓은 옮겨심은 나무와 같아서 바람이 불며는 쓰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시인의 신앙의 수준을 너무나 잘 아셨기 때문에, 이 사건을 통해서 이 시인이 깊이 갈등하게 하셨고, 성소에 들어 갈 때에 번뜩이는 깨달음을 이 시인의 가슴속에 확 불어넣으시므로 말미암아 이 시인을 일으켜 세우셨고, 신앙의 수준을 높이셨습니다. 그때에 이 시인이 깨달은 것이 바로 그 하늘에 높은 궁창위에 하나님이 계시며, 그 하나님은 우리인간의 눈에 보기에는 모순이 있는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은 자신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지혜와 권능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있으며, 이 땅에 사는 인간에 삶이, 이 땅 안에서 모두라고 생각했던 이 시인의 생각이 그릇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이 시인이 성소에 들어갈 때 우리의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고, 그 하늘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 즉 영원한 세계가 있다고 하는 것 을 보여주심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든지 그 하늘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시는 하나님께서, 죽음 이후에 악인과 선인을 심판 하신다라는 교리를 깊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지성을 찢으며 정오의 햇빛같이 종말에 대한 인식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모순처럼 보이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당하는 고난이 섭섭해 보이던 마음이 변해서, 오히려 이 땅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사랑할 분이 하나님 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이 믿음의 사람은 절대 여호와라고 하는 신앙을 같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종종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나 혹은 하나님이 왜 나에게는 좀 냉정하게 대하시는가? 이런 의문들이 들 수 있습니다.그러나 그것은 모두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당하게 대하셔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의 권태감과, 그리고 우리의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생생한 교통을 상실하고 살아가는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이런 은혜를 많이 부어 주시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이 땅에 있는 것들에 골몰하기만 하는 동안에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에 부어 주심이 멎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인생을 좁게 바라보고, 때로는 인생을 넓게 바라보면서, 우리의 진정한 소원이 이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우리의 진정한 소원은 언제든지 주님이 부르시며는 우리가 달려갈 그 하늘나라에 있으며, 거기에서 우리가 누리게 될 그 영광과 말할 수 없는 안식이, 우리에게 신음하듯이 그것을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사모함이 우리 마음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하나님이 바라시는 바가 아니고 무엇 이겠습니까?
오늘 이 시인이 이 세상에서 이렇게 주님을 만났지만 세상에서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었습니다. 여전히 악인은 번영하고 있었고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매일 매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위에 주를 뵈옵고 나니까 자신이 그렇게 부러워하던, 형통하게 살던 악인으로 인해서 마음 아파할 수 있는 그런 심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들은 아침 이슬 같고, 그리고 깨어진 그릇조각과 같다 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행복은, 죄 많은 이 땅에 살면서도 그 거룩하시고 영존하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이 영혼의 행복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깊이 터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그 하나님에 창조에 참뜻을 모르고 죄 가운데 살아가는 이세상은, 확실히 미친 세상입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 깊이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은 아침마다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을 읽으면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제가 쓴 책이지만, 세 번을 읽었는데 요새 계속 마음에 은혜를 주시는 것이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세계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피조세계에 깃들여 있었고, 그리고 온 땅과 하늘과 구름, 나무와 풀과 물, 흐르는 시내와 날아다니는 새들이 합창을 하고 그것들 하나 하나가 정교한 악기였다면, 인간은 지휘대 위에 올라가서 힘차게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는 지휘자 였습니다. 그렇게 아름답고 그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드러내는, 더할 나위 없이 좋던 그 하나님의 아름다운 세상을, 더 하나님의 영광을 잘 드러내도록 돌보기위해서 보내심을 받은 것이 인간 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지휘자가 죄를 지었습니다. 죄가 들어와서 그 모든 피조세계의 아름다운 영적인 연결을 다 파괴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창조세계에 깃들었던 그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의 대부분은 하나님께 돌아가 버렸습니다. 인간 자신 안에 있는 그 아름다운 영광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께로 또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거의 다 돌아갔는데도 그 그림책만이라도 이렇게 넓은 바다, 높은 산, 눈 쌓인 하얀 들판 보기만 하더라도 경이롭습니다. 그러니까 원래의 그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워겠습니까?
그런데 무엇이 그렇게 모두 이 자연 속에 있는 이 아름다움, 그 가족과 같은 연결들을 파괴하고 인간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거꾸로 다시 하나님께 돌아가게끔 만들었을까요? 인간에 죄가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모두 알고, 그 창조세계를 그리워하는 우리들이 다시 죄를 짓는다고 하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았으면, 이제는 그 죄로 말미암아 망가진 세상 때문에 그렇게 가슴저려하면서, 그 구속의 참뜻이, 죄로 말미암아 망가진 이 인생의 목적을 다시 회복시키시고, 그리고 성화를 통해 우리들이 하나님께 돌아갔던 영광을 다시 받게 하시고 이 창조세계와 함께 구속의 날을 기다리며 살도록 소명 받은 것이 바로 믿는자를 향한 부르심입니다. 그런데 그가 죄를 선택한다면 도데체 미친짓이 아니고 무엇이냐 하는 것 입니다. 무엇을 위해 죄를 짓는 것입니까? 천사도 싫어하고 먼저 간 믿음의 성도들도 싫어하고, 이 땅에 남아있는 신앙의 동지들도 싫어하고,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에 말 못하는 모든 피조물도 신음하면서 싫어하는 그 일을 인간이 그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그리고 여러분 한번 우리의 인생을 한번 돌아 보십시오 주님을 위해서 진실하게 살고, 그리고 나의 죄를 인식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쓰고, 그리고 미력이나마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았던 우리의 삶의 발자취는, 지금은 여러분은 여러분들조차도 잊어버렸을지 모르지만 그 발자취들은 하늘나라까지 이어져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 거짓된 신자들이 예수님께 책망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리가 무엇도 하고 무엇도 하지 않았습니까? 너희들을 모른다. 오히려 참된 신자들은 주님이 너희는 정말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 들이다. 내가 갇혔을 때 너희가 나를 찾아와 위로하였고, 내가 주렸을 때 먹였고.. 우리가 언제 그랬습니까?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늘나라까지 모두 연결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죄를 지으면서 어떤? 기쁨을 누렸었습니다. 지금 뭐가 남아있습니까?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그 나라에 가면 우리가 진실로 거듭난 신자이기 때문에, 정죄함은 없습니다. 심판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하지 않으셔도, 지금 살아봐도 이제껏 까지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죄를 짓고, 그리고 사람들을 미워하고, 악한 원수를 맺고, 그러면서 살아갔던 것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주었습니까? 그래서 사도요한이 말합니다. “세상도 지나가고,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영원히 있느니라” 다 지나가는 것 들입니다. 그것을 택하면서 거기에 사로잡혀서 사는 것입니다. 청교도 존 번연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죄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열지 말아라 일단 그것이 한번 들어오면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그러니까 죄 그 자체가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인데, 그것을 품고 어떻게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는 고백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 아니면 모 입니다. 믿든지 안 믿든지 둘 중의 하나이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가운데 살아가든지, 죄에 대한 사랑 속에서 살아가든지 말입니다.
오늘 시인을 보면 모두 지나갔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불쌍하니까 이 시인의 세상에 갇힌 어두운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늘에는 주밖에 없으며, 이 땅에서는 사모할 자가 여호와밖에는 없다고 하는 사실을, 하나님이 이미 안 가르쳐 주셨습니까? 이미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묻고 싶습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거기서 징책을 본다고 하였는데, 도데체 하나님이 천지에 뛰어나신 하나님이시며 이 땅에서는 우리의 사모할 자가 하나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빼고, 무슨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 하면서 하나님 앞에 혼났었는지 우리는 묻고 싶습니다. 다 건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에 항상 아침마다 또 저녁마다 우리의 온 눈을 들어서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맛보는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은, 그림자일 뿐이고, 그리고 정말 죽음너머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세상, 거기서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나팔소리와 주의호령으로 말미암아 홀연히 죽은자들이 다시 부활하여 육체와 결합하고 주님과 만나게 될, 그 영화의 때는 얼마나 아름다운 때인가, 그리움으로 우리의 눈에 그런 그리움으로 말미암는 눈물이 사라지지 말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얼마를 우리들이 살든지 간에 죄 많은 이 세상에 우리의 꿈을 두지 아니하고, 그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마음의 소원을 품고, 그 완성될 세계가, 그 창조의 세계가 그렇게 잃어버린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아름다웠지만은 영화를 통해서 완성될, 새 하늘과 새 땅의 아름다움은 그것보다 훨씬 능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그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할, 영광스런 날을 바라보면서 우리들이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런 것을 바라보면서 살아가기 위해서 또 매일 매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찬양) 주의 인자는 끝이 없고~~ 주의 자비는 무궁하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큼이라 성실하신 주님~
그런 마음을 품고 살다가 보면, 정말 우리의 인생이 잠깐 지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얼마 안 되는 한줌도 안 되는 우리의 인생의 날 동안에, 한편으로는 주님을 알게 된 그 은혜 때문에, 또 한편으로는 주님을 몰라서 허무하게 살면서 낭비한 인생의 시간들에대한 안타까움 때문에, 더더욱 촛점에 맞추어서, 그래서 그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 갔을 그 때에, 정말 그렇게 살기를 잘했다 생각되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주께서 못 박혀 고난당하신 주간에 집회를 열고, 그리고 우리를 돌아보고, 다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경험하고, 그것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행복 합니까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재생의 삶 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다시 시작 한다 라고 하는 재생의 삶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것을 주십니다 왜? 예수님 우리에게 이루신 십자가의 공로를 통해서, 우리를 자기백성 삼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기회를 주셨습니다. 감사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