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통 좌담회 ‘직업’
녹취자 : 신현숙
먼저 그리스도인의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서두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직업이라고 하는 것은 대개 뭐냐면 밥벌이입니다. 사실 모든 사람들이 밥벌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가장 현실적인 것은 결혼을 한다든지 할 때 직업이 무엇인지 또는 그런 현실적인 밥벌이가 아니더라도 그 사람의 지위와 관련해서 그 사람이 무슨 직업을 가졌는가? 그래서 그 직업이 예를 들자면 고상하고 사람들에게 굉장히 나도 한번 해봤으면 하는 직업이라면 그 사람도 덩달아서 영광스러워지고 그렇지 못하면 사람이 참 좋은 인상을 가졌어도 사람들이 얕잡아 보기가 싶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존경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예술이라든지 학문이라든지 이런데 봉사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그런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직업이라는 것 자체는 이렇게 우리의 실제적인 인생의 실존과 떨어져서 생각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말해주는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돈만 주면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교회에 텔레비전 홈쇼핑 쇼호스트로 일하는 어느 집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연봉이 1억 이상 받는 집사님이셨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사표를 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일하고 싶어 하고 좋은 대우를 받는데 왜 사표를 내겠다고 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꼭 돈으로만 사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매순간 거의 피가 말린다고 합니다. 홈쇼핑에 나가는 것이 한 시간에 3억원 어치를 팔아야 손익 분기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깐 얼마나 많이 팔아야 그것이 유지가 되겠습니까? 그것으로 평가를 받고 대우를 받으며 경쟁하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하는 이런 것들이 거의 사람들을 돌게 만들고 내가 꼭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 되나 반성해 보는 가치문제를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직업은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문제는 우리는 직업을 안 갖고 우리들은 살수가 없습니다. 부모님이 돈이 많고 유산이 있는 사람들은 밥벌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보면 직업을 안 가져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겠습니다. 그래도 직업은 그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직업 그 자체가 자기를 구연해 나가는 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직업이 굉장히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인데 더욱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경우에는 이 세상을 살아 갈 때 우리들이 단순히 밥벌이하고 이 세상에서 우리 자신을 즐기며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는 자아를 실현하고 생계를 유지하고 하는 정도의 수단일지는 모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모든 것들을 해결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을 섬기는 기회인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내가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식으로 살아야지만 하나님 앞에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일반적인 사람들도 직업의 문제를 접근하기 어려운데 그리스도인은 거기에 한 술 더 뜨는 경우입니다. 더군다나 오늘날과 같은 무한경쟁의 사회에서는 거의 오늘날의 직장생활은 종교집단 비슷하게 되어 갑니다.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을 다 바치지 않으면 그것은 절대 살아남을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들이 생각해야 될 것은 무엇이 나면 확실히 이런 것들은 잘못된 것입니다. 제가 언젠가 현대 신앙의 동향에 대해서 복음주의 동향에 대해서 강의를 할 때도 얘기했지만 데카르트 칸트 이후로 근대주의가 들어서면 이성의 혁명이 일어나고 폭발적인 물질문명의 발전 그리고 도시화들이 진척되면서 인간의 삶의 질이 어마하게 높아졌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중산층이 누리는 삶이 17세기 왕족들이 누렸던 소비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은 17세기 왕족의 소비생활도 그렇게 화려하진 않았겠지요. 그때는 노예들이 다하는 일도 지금은 로봇 진공청소기가 해결을 해줍니다. 그런 것 까지 생각하면 왕족들의 삶보다 우리들이 더욱 능가하는 삶을 우리들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당장은 좋지만 그것이 우리들에게 정작 행복하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전 세계의 나라들을 보더라도 삶의 만족도가 높은 나라들 중에서는 선진국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오히려 아프리카 같은 나라에서 삶의 만족도 1~2위에 속하는 나라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이렇게 사회가 미친 듯이 경쟁하고 돌아가는 자체가 마지막에 일궈내는 것들이 정신적이고 영적이고 우리에게 안식을 주고 그런 것은 없습니다. 대부분은 물질을 어떻게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향유하고 그리고 그런 욕구를 활용해서 어떻게 하면 내가 재화를 더 많이 모아서 물질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지배 할 수 있는가 이런 쪽으로 발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 자체가 사실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구조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항거하면서 나는 이런 식으로 살 수 없다 그리고 뿌리치고 시골에 가서 토구를 찾아서 거기서 그냥 냄비도 필요 없고 토기 그릇에다가 끓여서 먹고 텔레비전에 보면 세상에 이런 일이에 가끔 나오죠? 그렇게 살면서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아니면 법정스님처럼 최소한의 월세를 얻어서 빠삐용의자 하나 만들어 놓고 인생을 이렇게 살 것인가하는 생각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에 세상사람 모두가 다 그런 식으로 산다면 그럼 우리도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만약에 온 국민이 법정스님처럼 산다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경제도 학문도 없고 다들 남이 해주는 밥을 먹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러고 있을 것 아닙니까? 온몸이 뇌 덩어리라면 그게 인간입니까? 뇌가 있으면 여기에서는 불타는 가슴과 비전이 있고 창자에서는 남보다 더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구경도 하고 싶고 그래야만 발이 움직이면서 돈 좀 더 벌어야 이러면서 이런 것들이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사람이며 그게 바로 플라토닉 이상국가에서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선이란 무엇인가 대해서 어떤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인가 생각하면서 나오는 내용들입니다.
그런 모든 것들을 놓고 볼 때 우리들이 항거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항거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또 하나 우리들이 생각 할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은 선교적인 존재입니다. 가끔 보면 교역자들이 텔레비전을 사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도 텔레비전을 못 보게 합니다. 나는 그런식의 교육방법은 정말 나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적당히 때를 묻히면서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못된 세상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보여주면서 그러면서 오히려 갈등을 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갈등 하는 것이 너무 커서 정체성을 함몰 시킬 정도가 되면 안 되므로 그것은 조절을 해줘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문화에서 완전히 차단 시켜 놓는 것은 굉장히 나쁜 교육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늘 염려하는 그런 세상에 대해서 앙심을 품고 세상 문화에 대해서 복수심 같은 것을 품고 파괴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 우리들이 그 문화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끌어 앉고 그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고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교류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는 강한 명확한 명제를 가지고 사람들과 교통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학교에 가도 텔레비전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깐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것입니다. 두세 번 이야기하다 그 아이들과 말이 통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따돌림까지 시킵니다. 그러면 이 아이에게는 이 세상 자체는 이 세상에는 겪는 모든 소외와 외로움 이런 것들은 대개 예수를 믿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기 때문에 우리들을 멀리 하거나 안 만날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해 받지 못한다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런 고립의 문제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열린교회에서 생활하면서 많이 봐서 알겠지만 그런 태도는 하나님이 뜻하시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너희는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이라고 말씀하셨지 조명가게에 한 등불이라고 말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의 직장생활이 너무 우울합니다. 그리고 현실 부적응자들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아주 많습니다. 그러면 너무 높은 하늘나라의 이상을 가지고 있고 너무 정결하고 경건하기 때문에 느끼는 그런 모습인가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개인의 삶을 보면 또 도덕적이지도 않습니다. 뒷골목에서 호박씨를 다깐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자기 자신이 그런 이해의 결함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외국을 갔는데 누가 그런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목사님 그렇게 신실하고 열심히 기도하는데 제 주위의 있는 어떤 사람은 물질적으로 너무 연단을 받습니다. 시간이 20년이 됐는데도 가난을 못 면하고 삽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는 건가요?’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만나보지 않았기 때문에 한 마디로 판단 할 수는 없지만 내 생각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연관된 문제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삶의 태도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니깐 신앙이 있어도 삶의 태도가 잘못 되면 그 삶의 잘못된 태도 때문에 계속해서 같은 문제들을 만들어 내고 그 문제들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자신이 숙명과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깐 어떤 현상이 나오냐하면 은혜를 받고 신앙이 깊어지면 전부다 교회에나 선교단체에 취직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온누리교회 다니는 한 형제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똑똑한 형제들이 은혜를 못 받을 때는 씩씩하게 직장생활을 잘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은혜를 받고 나면 굉장히 부적응자가 되면서 괴로워하다가 할 수만 있으면 자기가 근무하는 부서와 관련된 일들을 교회에 와서 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방송하는 사람은 방송실에 취직하고 싶어 하고 카페하는 사람들은 교회카페하고 싶어 하고 직장생활하는 사람은 교회의 선교기간에서 직원이 되고 싶어 하고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신앙이 깊어지고 경건이 깊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자기 삶의 태도와도 관계가 있고 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바뀌어야 하는데 생각과 성품 자체가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기도 하지만 직업과 이런 것들과 관련된 것들은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본성의 빛과도 관련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 전혀 안 믿는 사람도 잘 교육을 시키면 그 사람의 생각이나 태도가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것보다 더 좋은 이점이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이 직업에 대해서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질문1] 1. 화장실 변기를 닦는 것도, 설거지도 모두 주의 일처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직업은 다 가치가 있는 것인가요?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는 직업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서는 안 되는 직업이 있을까요?
화장실의 변기를 닦든 설거지를 하던 무엇을 하듯 주께 하듯하라. 무슨 뜻인가 하면 이 세상에서 어떤 직업 활동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기 자체가 하나님이여만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오래전에 설교한 기억이 납니다. 영국에서 어느 한 하원의원이 출근은 하는데 승용차를 타고 출근을 하는데 여러 가지로 국사와 관련 너무 짜증이 나고 힘들어서 통증이 있는 배를 움켜지고 출근을 하는데 청소부 한사람이 너무 경쾌하게 노래를 부르면서 골목을 청소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창문을 열고 그 청소부를 불러서 물었다고 합니다. 나는 대형제국의 의원이라도 이렇게 괴롭게 출근을 하는데 당신은 미화원을 하면서도 그렇게 기쁘게 노래를 부르며 청소를 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 입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 청소부가 대답하였습니다. 의원님 저는 청소부가 아닙니다. 저는 지금 청소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의 한 모퉁이를 점검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게 무슨 얘기인가 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던지 간에 신앙적으로 볼 때 제일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하는 동기입니다. 만약에 그 동기가 돈이라면 모든 사람들을 지배하면서 그 직업 활동을 해도 그는 돈의 노예이지만 그가 하는 일이 노예의 일이라고 할지라도 동기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면 그는 하나님께 봉사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은 신앙의 영역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저희교회에 가정형편이 아주 어려운 자매님이 한분 있었습니다. 이것저것 일을 하다가 어려우니깐 마지막에 미천이 필요 없는 파출부로 일을 하였습니다. 근데 여러분들도 한번 해보면 어떨까 생각을 합니다. 경험을 해보는 거죠. 그런데 굉장히 힘들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집에 가서 가사 노동을 하며 우리도 가끔 교회에서 용역하는 사람들을 사용하는데 교회에서는 인격적으로 대해주는데 개념이 없는 돈 있는 아줌마들이 파출부 쓸 정도면 여유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아주 우습게 보게 되는 것입니다. 돈도 있고 너무 초라해 보이는 아줌마가 와서 일한다고 하면 이거하세요 저거하세요라며 딸밖에는 안 되는데 나이인데도 심하게 구박을 당하는 것이 개인적인 모멸감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한때 IMF때는 강남에서 잘 살던 사람들이 어려워지면서 갑자기 파출부가 되고 파출부가 자기가 갈아입고 옷을 들고 온 가방이 루이비통이었다고 합니다. 그럴 때는 고통이 가중되는 것이지요. 원래 그런 일을 하던 사람들은 그러려니 할 텐데 옛날에는 파출부를 야단치고 그러던 사람이 얻는데 말입니다. 어느 날은 잡지를 보는데 한 파출부가 일을 하고 내려오는 계단에 앉아서 하염없이 통곡하면서 울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활들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실은 거의 노예수준입니다. 오늘날의 노예는 더 비참하지 않을까요? 옛날의 노예는 운명이려니 하였지만 오늘날은 운명이 아닌데도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자매가 하는 얘기가 사람들이 구박하도 하였지만 성실하게 일을 하였습니다. 결국 단골이 되고 그 아줌마가 제일 잘해라고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워낙 성실하게 일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늘 하나님을 향한 은혜생활을 참 잘하는 자매였습니다. 늘 새벽기도에 나와서 새벽기도 하고 항상 눈물이 가득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돈이 많지만 오히려 파출부가 더 행복합니다. 아줌마 사실 내가 고민이 있는데 그러면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기 시작합니다. 아줌마 그렇게 사시면 안 됩니다. 그런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하나님 전에는 파출부로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렇게 새로운 사람이 자기를 부르면 가슴이 셀렌다고 합니다. 이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시는 걸까? 파출부가 가서 성경공부까지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졸지 파출부가 멘토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의 방향을 결정해 주는 것은 단순한 외적인 것이 아닌 내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사는 것인가? 신앙 이외에는 이런 식의 삶의 방향을 바꿔 놓을 수 있는 것이 없게 됩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될 것은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심지어는 더 별 볼일 없는 직업 일수록 아름다운 직업이라고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번 청년1부 모임 때 ‘어떤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는가?’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직업이 그런 것을 물어봐 주지도 않습니다. 선택할 기회도 주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치열한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10명의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 중에서 모든 사람들이 동의 할 수 있는 그것은 평생에 보장되고 완전하고 정말 사회적으로 어느면으로 보든지 간에 가고 싶어 하는 제대로 된 직장에 다니는 청년들은 두 사람 정도 밖에 안 됩니다. 그런 직장들이 보통 회사에서 채용공고를 내면 평균 150:1 정도입니다. 옛날에 사실 대학에 직원으로 들어가는 것은 고등학교 졸업한 사람들이 들어가서 일했습니다. 무슨 장래성과 미래성 있습니까? 작년에 성균관대학교에서는 취업 경쟁률이 300:1이 였습니다. 거기에는 탑클래스 학생들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연봉이 3,200에서 시작하며 65세까지 노동조합에서 보장하고 소위 칼 퇴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방학 때는 3시에 퇴근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선망하는 직업이 되는 것입니다. 오후 시간에는 자기발전을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고 요즘에는 가치관이 바뀌어서 내 온몸을 불사르며 일하다가 작렬이 죽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사람이 없습니다. 거래 관계이며 자기를 부연 할 수 있는 직장을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우리들이 모든 직업이 가치가 있다고 할 때 그 가치를 어디에다 두느냐에 따라서 그렇다고 말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 라고도 말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카메라를 만드는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가기 위해서 둘 다 공대를 졸업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들어가자마자 너무 열심히 공부하며 선배를 찾아다니며 공부하며 기술을 익히고 학습정보를 보며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해서 갈수록 더 이 사람이 점점 더 필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학교에서 배운 내용으로만 사용하여 일하여서 카메라는 점점 업그레이드되고 생성 체제가 바뀌니깐 점점 더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회사에서 당신은 카메라를 연구하기 보다는 차라리 관리실에 내려가서 서무업무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사실은 전자에 계속 노력한 사람들은 더 가치 있는 직장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비교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가치 있고 연봉도 많이 받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리고 처진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렇게 비교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자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서는 안 되는 직업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범죄를 구성하는 일 외에는 그리스도인이 가져서는 안 되는 직업이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리를 하자면 문제는 두 방면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정검을 해야 합니다. 첫째는 나의 직업 활동에 동기와 방향이 올바른 가입니다. 즉 신앙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아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은혜를 못 받았을 때는 저 고객들을 어떻게라도 후려 쳐서 돈을 뜯어내야 겠다고 생각하지만 은혜 받은 다음에는 오히려 그렇게 얘기합니다. 당신은 명백하게 죄를 져서 당신은 벌을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너무 과하게 받으면 당신이 억울하니깐 적정선에서 벌을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장사가 될까요? 관심사가 후려쳐서 돈을 뺏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정말 억울하다 내가 진짜 돈하고 상관없이 이 사람을 꼭 건져줘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 되어 있으면 무엇을 하던지 간에 그 직업 활동은 사람들에게 능력에 따라 박수를 받을 수 있지만 방향자체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그런 사람이였잖아요. 이 사람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내세운 적 없었습니다. 열심히 국가의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 왕은 자기를 섬긴다고 생각 안하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공직사회에 들어가서 돈탕질을 하고 돈을 받아먹고 그렇게 해서 그 교회에 먹칠을 하고 그렇겠습니다. 기본이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일반은총 차원에서 자기가 만약에 어떤 직장에 들어갔다고 하면 그 사람의 능력이 변기를 닦는 것 밖에 안 되면 변기를 가장 잘 닦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노력을 해야 됩니다. 요즘은 일은 조금하고 돈을 많이 받는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엄청난 영광이지만 성경적인 관점에서는 옳은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공의대로 살도록 기회를 제공 받았다고 생각해야합니다. 그런 점에서 세상의 가치관에서 세뇌된 많은 것들을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19세기 프랑스의 천재수학자 그레고리 페렐만이라는 사람이 푸앙카래의 추측을 풀어서 내세웁니다. 이 이론은 폐곡선이 계속 응축 되어서 한 점으로 수렴 할 수 있다면 이 우주는 구형이다라는 이론입니다. 그래서 우주 가장자리를 다 끈으로 돌리고 돌렸는데 그것을 꽈서 잡아 당겼을 때 다 원이 줄어들어서 영의상태로 될 수 있다면 중간에 과로 막힌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것이 우주가 둥글다는 추축입니다. 그것을 추측으로만 내놓았지만 아무도 증명을 못했습니다. 페렐만이 증명을 하였습니다. 백 년 동안 풀었다는 사람이 모두 나타났는데 사실은 다 틀렸습니다. 그래서 기대를 안했지만 이 사람이 운동화를 신고 꾸겨진 바지를 입으며 와서 미국에서 두 달 동안 다니면서 풀었는데 결국은 풀었다고 인정을 하고 필츠상을 받았는데 백만 불이 넘는 상금도 이 사람은 안 받겠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심사위원 중에서는 나의 수학실력을 평가할 사람이 없고 나는 문제를 풀었기 때문에 나에게 충분히 보상이 되었다. 돈과 명예는 나에게 필요 없다. 그 사람이 월급봉투를 받아서 집에 갔는데 도로 회사로 왔습니다. 경리한테 월급을 되돌려 주고 싶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무슨 프로젝트에 참여 비라고 봉급이 나왔지만 그 사람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부서에 주어진 프로젝트였는데 다른 이들은 다 받아갔지만 나는 참여하지 않았다며 돌려 주었다고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그렇게 살고 있는데 생각과 처지를 바꾸고 자기 자신의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해서 내 능력이 이 만큼이면 공의에 합당하다는 생각들을 해야 합니다. 그런 생각을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문제2번] 직업적 소명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소명을 찾는 법을 구체적으로 제시받기 원합니다. 일반적으로 왠지 그 직업에 끌린다거나, 그 일에 재능이 있거나, 그 일을 하는 것이 즐겁거나, 상황이 그 일로 나를 밀어가고 있다거나, 그 일 밖에는 나를 필요로 하는 분야가 없다는 것들로 ‘소명이거니’ 하고 살아가는데, 그래도 되는 것입니까?
소명이라는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보케이션(vocation), 라틴어 보카치오(vocacio-부르심)에서 나옵니다. 직업 소명론이라는 것이 본격적으로 대두 되는 것은 아브라함 카이퍼라고하는 화란의 신학자가 영역주권을 신학적으로 정리해서 내놓으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을 하나님의 통치를 즐겨 받는 세상으로 만들 소명을 가진 사람들이다라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남으로서 회심함으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만 그 하나님의 통치가 구체적으로 이 세상의 문화와 사업 속에서 실현되기 위해서 직업 활동은 아주 중요한 그 가치의 실현의 수단으로 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결국은 모든 직업이 소명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헤르만바빙크라는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모든 소명은 재능에 의해서 확인이 된다’. 여러분 아마데우스라는 영화에 보면 마지막 셀리에르의 대사가 심여를 기울여서 작곡을 했는데 모차르트가 와서 띵동띵동 치니깐 그 곡이 나중에 훨씬 유명한 곡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원망을 하였습니다. 소명을 주셨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지 소명만 주고 재능은 안주시다니 그러면서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합니다. "I am the champion of ordinary men." ‘나는 챔피언이긴 챔피언이나 모든 평범한 사람들의 챔피언이다‘ 한마디로 천재들 중에서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명을 주셨다면 반드시 재능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재능을 안주셨다면 소명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렇게 물을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 소명은 맞는데 재능은 없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더욱 파보야 합니다. 자신이 묻어놓은 달란트가 있기 때문에 더욱 파보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예 파보치도 않고 없다고 체념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런점에서 소명은 소명인데 이 소명도 일반적인 소명과 특별한 소명으로 나누어져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일반적은 소명은 나를 어느 직업에서 일하게 하신 소명입니다. 예를 들자면 나에게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학교 선생님이 된다는 것도 굉장히 의미 있고 중요한 일입니다.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는 것은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을 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소명입니다. 그러나 그런 소명만으로는 충분하기 않고 특별한 소명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그런 신앙과 경건의 영역에 속한 삶의 동기들을 합으로 세우고 그것을 엔진으로 해서 자기의 직업이라고 하는 차에다가 그 엔진을 달아서 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배이면 바다 위를 달려가는 보트가 될 것이며 비행기면 하늘을 날아 갈 것이며 기차면 레일을 달릴 것이며 오토바이면 두발을 달고 달릴 것입니다. 그런점에서 모든 직업이 소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직업을 강력하게 권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이 있었냐면 신방을 갔는데 그 자매가 비디오 가게를 하는 자매였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비디오가게를 열심히 경영 할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이고 그 직업에 대해서 갈등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디오가게라는 것이 보이는 곳에는 건전한 비디오를 놓고 보이지 않는 곳에는 불건전한 비디오를 가져다 놓게 되지요. 사람들이 와서 야한 비디오를 빌려가고 그것을 재촉하며 저런 것을 사람들이 봐서 뭐하나라는 생각이 되는 것을 자신이 돈 받고 대여를 해주는 것입니다. 그 자매는 광징히 낙심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을 바꿔 보도록 권면하였습니다. 이 가게에 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권고하면 퇴근해서 가족들과 얼굴을 마주보면서 단란하게 보내지 못하고 비디오나 보고 있는가하고 말입니다. 우리교회에 변호사가 한 사람이 있었는데 퇴근길에 비디오가게 데스크에서 검사의 친구를 만났습니다. 검사가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우리 왜 이러고 사는 걸까?’ ‘그런 말 하지 말아라 나에겐 지금이 하루 중에 유일한 위로의 시간이다.’ 사는 게 얼마나 팍팍하고 외로우면 그러겠습니까? 그 사람들도 이미 내 영혼은 참 공고합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도를 하라고 어떻게 전도를 하나면 교회에서 설교 테이프를 빌려주었습니다. 보다가 보다가 이것도 시시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을 조용히 불러서 전도용으로 빌려 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진짜 사람들이 빌려간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자기가 괴롭고 공고한데 야한 비디오 한편 보고 와서 머릿속에 복잡해지고 인생의 시원한 답이 보이겠습니까? ‘시편23편’ ‘벼랑 끝에선 그대에게’ ‘이혼을 생각하는 그대에게’ 를 대여해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 사람들이 회심을 했습니다. 결국은 직업 자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그런 개념이 굉장히 많습니다. 의사가 되었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구나 하지만 사실은 의사가 되어서 낙태만 하고 먹고 산다면 한다면 그 인간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시겠습니까? 하지만 그러한 직업은 어떻게 볼 때 우리 모두가 기피하고 사실 성격적으로 보더라도 그런 직업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누구한테 상담하더라고 한마디로 줄을 긋지만 그 사람의 마음의 동기가 하나님을 향하고 있으면 그런 직업을 통해서도 일반적인 비디오업자들로서는 상상 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결국은 소명이라고 하는 그 자체를 일반 소명만을 갖고 생각하지 말고 특별소명도 함께 묶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 믿는 청년들이 너무나 나태합니다. 대학에서도 분명히 공부 잘하고 도전의식이 있는 학생들은 성경공부도 잘 안 나옵니다. 나쁘게 말하면 자아가 강하다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인의 청년이 된 다음에는 무엇인가 세계관과 성경에 대한 기독교의 대의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나마 무언가 인생을 가치 있고 도전적으로 살아야겠다라고 하는 날개 자체가 꺾는 그것이 신앙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파괴적인 신앙관을 자꾸 갖게 되는 것입니다. 죄 많은 이세상은 내집 아니네 내 모든 것은 천국에 있네 그러면서 죄하고 상관없는 순결한 삶을 사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폐해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독교에서 세계관을 잘못 가르치는 것입니다. 언젠가도 설교시간에 얘기했지만 지금 사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발 벗고 나가야 될 직업이 굉장히 많이 있지만 사실 모든 직업이 다 우리가 나가야 할 직업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얘기한 그런 정신으로 비디오 가게를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정신을 가지고 비디오 가게 주인을 하고 또한 비디오 가게 주인이 그 비디오 내용을 모르면 장사를 못하겠지요. 비디오 가게에는 야한 비디오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굉장히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비디오도 많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이드를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한 비디오를 빌리려고 왔던 사람이 사실은 하모니 같은 비디오를 빌려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바타를 보고 왔는데 대화를 해주는 것이지요. 무슨뜻인가하면서 말입니다. 이번에는 이비디오를 보세요라며 잘못된 세계관들이 많은 사람들이 빌려주는 것이 주인에 따라 달라 질수 있습니다. 비디오 가게를 하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직업에서 치열하게 노력을 해야 합니다. 지금 어떻게 보람 있는 직업을 갖고 있는가 왜냐하면 세상이 개판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어디가든지 다 보람을 느낍니다. 하다못해 비디오 가게를 해도 보람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무 개판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먹고만 살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남에게 이익을 초월해서 일을 한다면 하면 더욱 강한 추진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학교 선생님 되라. 학교 청소년들이 너무 방황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딸이 현재 대학교 2학년인데 ‘아빠 나는 지금 고3인데 내 인생에서 제일 행복해요.’ 공부를 너무 잘해서 수석을 해서 보람 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런 고백을 나오게 만들었던 것은 좋은 선생님 이였습니다. 신앙을 가진 친구들이였습니다. 주위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부인들이 자식들이 고3이면 너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서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방황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요즘은 선생님을 고발하고 하는 일들이 일어나는데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완전히 신임을 얻는 선생님은 따귀를 때려도 고발하지 않습니다. 포스트모던니즘 시대에는 자기를 구연해서 이 세상과 우주의 중심이 되고 싶어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그런 사람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타인을 통한 자기실현의 대리 만족입니다. 선생님이 자기를 사랑하고 확고하게 도덕적이고 일관성 있다고 생각하면 거의 교주 수준으로 선생님을 따르게 됩니다. 선악이 상관이 없이 선생님이 법이 됩니다. 그러면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최하나) 선생님이 쓴 책을 보았는데 졸업한지 몇 년 된 제자들이 술 먹고 집에 찾아와서 펑펑 운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얘기인가 하면 이 세상에서 멘토가 없다는 것입니다.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도 몇 년전 선생님이 생각나서 술 먹고 찾아가서 펑펑 우는 것입니다. 요즘에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말합니다.목사님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세요? 그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 틀렸습니다. 해봤습니까? 하나님 앞에 내게 이 소명이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하고 싶습니다. 나에게 힘을 주십시오라고 매달려 보았습니까? 안 해 보았지요? 그런 자세를 가지고 하다못해 변기를 닦아도 더 잘 닦는 사람에게 계속 밀리는 것이지요. 저는 엘리트주의는 아니지만 책임의식이 너무 없습니다. 모든 직업 중에서 직업 그 자체가 천하다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하는 직업은 없습니다.
[질문3] 3. 지금껏 어떤 일이 소명이 있다고 생각해서 직장을 다녔는데, 어느 순간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과연 이것이 내 소명이 맞았던 것일까?’ 의구심이 들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를 들자면 방송작가로 일한다고 할 때 노골적으로 전도 할 수는 없지만 유사한 내용으로 각본을 잘 써서 시크릿가든처럼 대히트를 치면 여러 사람들이 굉장히 감동을 받을 것이며 그러면 전도할 간접적으로 기회도 주어질 것이며 예를 들어 나영숙씨 극본 보면 항상 새벽기도 장면이 나오고 김수현씨의 각본에서는 늘 불교신자가 등장합니다. 그런식으로 각본에 교회당 건물이 여러 번 나오게 한다든지 인물에 목사를 설정한다든지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자만 막상 들어가 보니깐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굉장히 세속적이고 심지어는 밤도 세어야 하고 심지어는 옳지 않은 방법으로 비윤리적으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많은 혼란들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이 잘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면 우선 그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들이 과연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정직하고 내가 그런 소명을 따라서 살려고 할 때에 그런 소명을 따라서 사는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가득한 환경을 과연 우리가 과연 현실적으로 만날 수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런 현실이 있다면 선교가 필요 없는 현실이 아니겠습니까? 교회 같은 경우는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 교회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영혼이 제일 위험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긴장감이 없고 예배드리고 시작하며 목사님 선교여행 갔다오겠습니다라고 하면 갔다오라고 하고 심지어 핍박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것들이 본인의 영혼에는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일단 우리들이 이 세상속에 보냄을 받았다고 할 때 어차피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것과는 다른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것이며 우리는 빛이고 어두움 속에서 빛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속으로 보냄을 받은 것이며 내가 그 속에서 갈등은 안 일으킨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세상이 원래 그런 곳입니다. 문제는 세상이 자기와 다른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다른 것을 감당해 나갈 수 있는 에너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사상적으로 이렇게 부조화한 현실들의 세상 속에서 이해 할 수 있는 이해력이 있다면 힘이 좀 떨어져도 혼란스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해도 못하는데 힘도 없다면 무능력 위에 혼란까지 겹쳐져 버리면 순간적으로 이런 관계들을 싹 잘라서 절단해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 자기를 둬야 되겠다라는 마음이 생겨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교회에 들어오기 전에 이 방송국에서 저 방송국으로 옮긴 듯 무엇이 차이가 나겠습니까? 어디에 가든지 그 직업 활동을 할 때 어차피 예수 믿는 사람들만 상대하는 것이 아닌데 그러면 면밀하게 분리를 해서 그 어려움들을 분석을 해서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원래 세상인데 그러면 도대체 이 세상 속에서 더 이상 못 있게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가? 제일 중요한 것은 체계적으로 교리를 공부하고 세계관을 이해서 이런 것들을 스스로 자신 속에서 해명 할 수 있는 안목들을 갖추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나이 서른이면 그런 정도의 신학적이고 성경적인 판단을 내일 정도로 성숙해야 합니다. 종종 보면 질문을 하는데 그 질문이 너무 실망스러운 질문이 있습니다. 열심히 교회를 다녔는데 생각의 구도들이 정리가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떻게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반성이며 두 번째는 그런 것들을 다 안다고 할지라도 그 속에서 그것들을 이기며 살게 하는 것은 별도의 힘입니다. 옳은 것을 다 알아도 옳다는 이유만으로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힘이 없으면 백번 옳은 줄 알아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옳은 줄 을 잘 몰랐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으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눠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성경에서 생각하고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오히려 거기에 나의 소명이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장생활하면서도 계속 말씀의 은혜를 받고 열렬하게 기도를 해서 은혜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이 바쁘다는 핑계 때문에 끈을 놓치게 될 때 자기 자신이 커다란 물결속에서 뒤움칠 치면서 혼란이 더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4. 백수로 지내는 것이 두려워 소명의 확신이 없어도,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자신이 하고자 했던 일이 아니더라도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기도 합니다. 어렴풋이 소명이라고 느끼는 분야가 있는데도, 당장 길이 보이지 않아 접기도 합니다. 믿음이 없는 것입니까? 기도하며, 감사함과 기쁨으로 일할 수 있는 직장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맞습니까?
아무리 기다려도 능력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 저는 폴포츠나 수잔보엘 이번에는 허각 스토리를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길거리 캐스팅이 되어서 그 사람이 부른 노래가 넬슨 도르마를 들으며 가슴이 터지는 것 같습니다. 사라 브라이트만이나 파바로티같은 사람들이 전성기 때 불렀던 넬슨 도르마는 감동을 전해 줍니다. 근데 그런 그 사람이 상금도 받았지만 두달 만에 졸지에 7억이 넘는 계약을 했다고 합니다. 상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질문에 대답이 저에게 상당한 충격이였습니다. 상금으로 과외비를 내야 한다 대답하였습니다. 핸드폰을 팔면서도 계속 성악 레슨을 받은 것이지요. 사실은 그것이 실현 가능성이 있는 투자였을까요? 자기한테 그런 기회가 오리라고 생각 할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상당한 액수의 돈을 주면서 한 달에 60만원정도의 과외비를 돈을 주면서 과외를 받았다고합니다. 기다려도 능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교회 공사를 하면서도 우리나라 어떻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억 5천만원짜리 넘는 공사를 하면서 공정하게 하고 싶었는데 공정하게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3회사 입찰을 하였는데 현장 설명을 하였더니 두 회사가 뭐가 그리 복잡하나며 보따리를 싸고 가버렸습니다. 우리라나는 발전이 근본적으로 세계의 무대에 나가서 우라들이 명함을 내놓으려면 어려워서 밥을 굽는 배를 움켜지고 그래서 독해져서 그래 나도 밥을 먹어야지 그런 마음을 갖고 사회에 발을 들여놓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발전이 있는것입니다. 요즘 같이 어려울 때 3억 5천짜리 공사에서 뭐가 그렇게 어려워요?라며 우리는 안할래요라며 그냥 갈 수가 있을까요? 노력을 해야 겠지요. 백수로 지내는 것이 두려워 그냥 일을 하게 되면 돈 벌려고 일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굉장히 잘못된 것입니다. 이럴 수는 있겠습니다. 내가 정식적인 회사를 가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아직 안 온 겁니다. 내가 능력이 안 되어 아직 일을 못할 수도 있지만 저 사람이 아직 보석 같은 나를 못 봤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 못 찾아서 가랑잎에 묻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기다릴 수 없으니깐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되지요. 하지만 시급 얼마를 받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신이 아닙니다. 물론 돈을 안줘도 그것을 할 이유는 없겠지만 일단은 그 일을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냐면 예를 들어 내가 오늘 이일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직업이 없는데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더니 세차하는 사람 구함 한 시간에 오천 원을 줌 6시간씩만 하면 3만원이고 밥중에 일을 하면 9십만 원을 벌수 있다는 것입니다. 밤중에 아파트에 가서 세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단은 그렇게 하게 되었다면 9십만 원을 받기 위해 그일을 한건 사실이지만 돈만 목적이 되어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니깐 차 한대를 세차하더라도 더욱 깨끗이 해야지 아니면 무엇인가 소명감을 가지고 그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을 시켜보니깐 무언가 다르더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일할 수 있어야 겠지요 그러다가 기도 열심히 하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직장을 줄 수 도 있겠지요. 문제는 소명이라는 것은 직업의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직업 활동을 통해서 그 직업을 어떤 동기로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가 하는 것입니다. 가장 하나님께 가까이 가있는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과 가장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을 하는 것 같을지라도 하나님과 가장 가깝게 일을 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우리교회에 업자들이 와서 일을하고 리베이트를 주고 갔는데 우리교회는 안받습니다라고 했더니 무슨소리입니까? 받으십시오 우리가 S교회 D교회는 다 주었고 심지어는 10% 갔는데 신학대학교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인과 같이 일하고 있지만 아까 말씀드린 비디오 가게 하는 사람이 훨씬 하나님께 더욱 영광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 가까이 가있는 일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수행을 하자면 더욱 크고 직접적인 영광을 돌 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5. 학창시절, 중국으로 들어가 중국 복음화에 이바지하며 살아야겠다는 소명을 발견했습니다. 지금은 한국에서 취업을 하였으나, 소명을 등지고 현실과 타협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때’가 되면 중국으로 가리라 결심하고 있는데, 과연 그 때를 잘 분별할 수 있을지, 그 때에 올바른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소명과 직업이 항상 같을 수는 없는데, 어떻게 해야 그 가운데서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요?
소명 그 자체를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순종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런점에서 자유롭습니다. 내가 중국가려면 어떡하나?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러면 어떡하지? 그러면 거기 굉장히 힘들고 환경도 불편하고 우유도 잘못 먹으면 큰일 나고 우리 아기가 분유 먹다가 죽으면 어떻하지라고 생각 살 수 있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 안하고 신앙생활도 잘 안하고 제가 200명 이상을 신학교를 그만두게 하였습니다. 그만두고 일반학과로 전과를 하던지 다시 시험을 봐서 좀 더 좋은 대학에 가거라고 하였습니다. ‘교수님 저 그럴 수가 없어요. 제가 소명을 받았거든요. 서원을 해서 소명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부흥회를 하는데 주의 종의 될 사람 지금 부르고 계십니다라고 해서 제가 주의 종이 되겠습니다라고 소명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주님이 그대를 부르셨다고? 정확히 말하면 주님이 부르신 것이 아니고 부흥강사가 부른거 아니니? 주의 종이 될 사람하고 그래서 주님 제가 여기 있사오니 선교에 써주시옵소서라고 응답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뭐라고 했니라고 물었더니 하나님은 아무말도 안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책임 질테니깐 그냥 그만두거라 소명 받은 것이 아니니깐 그만 두어라 내가 책임질게 정말 책임 질수 있으세요? 안심하고 가라. 그게 무슨 소명입니까? 소명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도자가 되라 목사가 되라 아니면 선교사가 되라 이런 것을 운명처럼 정해놓은 것이 소명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물론 영원한 작정 속에서 우리의 인생을 향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다가오는 소명이 자의식 속에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 형제가 소명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소명과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막연한 하나의 부담입니다. 소명은 열심히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면서 내가 중국이 아니라 순교라도 하라고 하면 내가 기꺼이 주님께 순교라도 할 수 있는 마음을 갖고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중국을 안보내실수 있습니다. 보내실 때가 때면 중국 있는 영혼들이 너무 불쌍해서 도저히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끄십니다. 그것이 소명입니다. 소명은 결국 은혜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소명이라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명은 은혜의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이생명도 달라시면 십자가에 놓겠습니다. 그런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 없이 이렇게 막연히 옛날에 내 마음속에 중국이 생겼는데 자신 없으면 지금 열렬히 기도하면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나의 혼자 생각이기 때문인가요? 내 마음속에 찜찜한 느낌이 진짜 하나님이 소명에 불순종하기 때문에 늘 불안하고 확신 없는 기로 가는 것입니다. 목숨 걸고 열심히 기도해서 그렇다 안 그렇다 매달리기도 싫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불안하고 확신 없이 인생길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이 모든 것들이 명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직장 에서 인간관계에 관하여
6. 직장 내에서 전도를 하게 되었는데 상대방이 지나치게 의지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교회에 나가는 것을 빌미로 이것저것 요구하고, 그리스도인이니 당연히 모든 것을 양보하리라 기대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선을 그어야 하나요?
사회 전체가 줄것은 주고 받을 건 받는다는 아주 냉혹한 경쟁사회 속에서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면 시대를 알아야 합니다. 미국에 가보면 미국이 굉장히 많은 모순을 가지고 있음에도 어떻게 발전한 나라일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보았는데 정확하게 일한만큼 일한 것에 정확하게 값을 주고 삽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제공한 만큼 공정하게 댓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미국까지 가는데 항공기 1등석 왕복이 얼마쯤 될 것 같습니까? 제일 싼 아반떼 한 대 값입니다. 1200만원 조금 넘습니다. 우리로서는 상상을 못하는 돈입니다. 3등석의 열배쯤 됩니다. 정상가격으로 산다고 하더라도 170만원 되니까 8배이상 됩니다. 미국회사 다니는 직원들 중에는 1등석 쿠폰을 가지고 다니면서 쓰는 직원들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끊어준 것입니다. 우리는 지위가 높아야지만 나오지만 미국회사에서는 일을 잘하면 아예 쿠폰북을 끊어줍니다. 그 쿠폰하나에 일억이 넘습니다. 그게 무슨 이야기냐하면 그만큼 미국 사회는 경쟁이 치열하고 그 대신 그런 거래관계가 있습니다. 미국의 좋은 점이 뭐냐하면 일을 못하고 회사에 주지 못하면 해고를 시키는 완벽한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너 어제 6시로 해고됐다. 출근하지 마라. 아침에 짐을 싸기 위해 부랴부랴 회사에 가도 문이 안 열리고 택배로 보내준다’라고 합니다. 칼같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스펙을 쌓고 능력을 쌓아서 엄격하게 거래 대 거래 관계로 튼다는 것인데 그것은 사실 좋은 내용이 아닙니다. 두 번째는 정으로써 내가 다닌다. 외국계 회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회장지시를 받고 직원들을 자릅니다. 한국 부사장이 ‘저기 아무개 부장은 자르지 마시죠’ 하니까 ‘왜?’ 하니까 ‘정말 성실합니다.’ ‘그래?’ ‘회사를 정말 사랑했습니다.’ ‘그 사람이 회사를 사랑하고 성실한 게 우리한테 보태준 게 있냐?’ ‘우리 회사 사랑 안 해도 돼. 성실하지 않아도 돼. 십자가를 지고 우리에게 이익을 남겨주면 That's okay.'합니다. 우리나라 직장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닙니다. 물론 우리도 그런 것들에 많이 압박을 받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도 직장생활에서 승진이나 이런 모든 기회들이 불건전한 거래 백등으로 많이 움직이고 또 하나는 그 사람의 인간관계에 의해서 많이 움직입니다. 능력이 뛰어나도 사람이 개념이 없는 행동들을 자꾸 하면 안 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정으로 개길려고 해도 안 되고 너와 나는 거래관계일 뿐이다라고 해도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갖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보내신 뜻을 이루어야 되겠다. 이런 것이 소명입니다. 돈 버는 것 자체가 소명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접근을 하면 하나님이 물질적으로도 복을 주십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직장을 접근해야 합니다. 돈을 여기서 벌어서 저기서 소명을 이루겠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12. 오늘날 빈부의 격차는 피해갈 수 없는 현실입니다. 우리의 존재가치가 물질의 많고 적음에 따라 평가되는 이 시대, 우리를 둘러싼 물질주의 세태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물질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물질이 있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거기에 굴복하려고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만 해도 모두 그렇지는 안잖아요?. 물론 그런 면이 조금 있을 수 있습니다. 김영철 변호사가 쓴 책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이건희 회장이 칠순인가를 맞았답니다. 그래서 방송국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표 아나운서가 와서 사회를 보고 온갖 조수미 같은 소프라노 가수들로부터 시작해서 다 왔는데 마지막에 누구한테 섭외가 들어왔냐면 가수 나훈아씨한테 섭외가 들어왔답니다. 그래서 삼성그룹 회장실인데 우리 회장님이 나훈아씨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이번에 칠순잔치를 하는데 꼭 오셔서 한곡 불러달라는 부탁을 했답니다. 여러분 가겠어요? 안가겠어요? 나쁠게 뭐 있겠어요? 제계를 쥐락펴락하는 사람이고 더군다나 그 사람이 자기 팬이라는데 안가겠어요? 그런데 나훈아씨가 ‘안 가겠습니다. 대중가요 가수는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입니다. 개인 앞에서 노래를 부르면 대중가수가 아니라 딴따라입니다.’고 끊었답니다. 그런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영철 변호사가 나훈아씨를 다시 봤다고 합니다. 굉장히 존경하게 되었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게 돈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다른 것에 대해서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돈을 내가 많이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 줄 것이고 내가 인정을 못받는 것은 내 인격이나 교양이나 이런 것 때문이 아니라 돈이 없으니까 이 자식들이 나를 무시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말이 맞을 때도 있지만 안 맞을 때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돈 많다고 사람들이 다 존경하고 여러분들이 하찮게 보는 사람들은 모두 돈이 없어서 하찮게 보는 것입니까? 일반적인 사람들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사람이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치라고 하는 것은 일관된 심령 속에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 그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지요? 그렇게 살아가는 사상을 기독교가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존귀함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에 있고 인간의 아름다움은 육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영혼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 때문에 지나치게 자존심이 상하고 내가 후진 차타고 안 좋은 집에서 살고 값싼 음식을 먹어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존감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에 의해서 겨우 지탱되는 자존감이 가면 얼마나 가겠습니까? 제가 직장다닐 때 전도한 자매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 믿고 나서 뭐가 변했습니까’ 하고 물어보니까 예전에는 만원이 항상 주머니에 있어야 든든했는데, 그 당시에는 만원이 큰 돈이었습니다. 이제는 토큰만 있어도 마음이 넉넉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조심해야 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예수믿는 사람들이 물질에 집착하지 않는 건 좋은데 중요성을 생각을 안 하고 규모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느 기도 많이 하고 나중에 선교사로 간 자매가 어디서든 항상 자기가 밥값내고 심지어 목욕탕을 가도 자기가 돈을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그리스도인으로 물질을 모으면서 사는 것에 대해서 자유함이 없고 죄악이라고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돈을 계속 꾸고 안 모으고 사니까 자기 자신이 대비가 안 되는 것이고 제때 또 못 갚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게 더 그리스도인의 삶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모으는 것에 대해서 절대 죄책감을 느끼면 안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부목사님들에게도 남자가 10만원 정도는 주머니에 넣든지 자유롭게 쓸 수 신용카드를 넣고 있어야 된다고 항상 이야기 합니다. 누구와 밥을 먹어도 눈치 보지 않고 그 사람 것을 대주거나 자기 것을 지불할 수 있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때 결혼해서 남자가 외출할 때 세 가지를 준비해 주어라고 했습니다. 지팡이, 도장, 돈 한냥. 이게 남성으로서의 품위입니다.
그래서 내가 자매들보고 말합니다. 아껴써라. 대신 늘 저축해라. 그래서 내가 갑자기 병이 나든지 혹은 위기가 닥쳤을 때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스스로를 도울 수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것, 이것은 사회인으로서 기본이다. 특히 나이 많이 든 자매들에게는 더 강조해서 말합니다. 반드시 물질적으로 넉넉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거나 기대지 않는 자기관리의 계획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건강에 대한 계획을 세우듯이 제정에 대한 계획을 세워서 일정한 수입이 예를 들어 300만원이다면 이것은 무엇을 위해서, 저것은 무엇을 위해서 쓸 것인지 잘 배열을 시켜서 대비하면서 살고 자신이 품위를 유지하면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젊어서 소비에 눈 뜨고, 명품 좋아하면 아주 쓸모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다 업그레이드를 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나이 든 사람한테 어려서는 화장품 싸구려 썼어도 나이들면 좋은 것 써라. 옷도 어렸을 때는 아무거나 입어도 예쁘지만 나이가 들면 포장을 잘 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 자존감을 유지하는 길입니다.
13. 마태복음 6장 25-26절에서 하나님이 쓸 것을 다 채우신다고,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종신보험, 생명보험, 적금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염려하지 말라고 그랬지 적금들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다 써버리고 늘 꾸러 다닙니다. 주님께 의지해야지 왜 돈꿔 줄 사람 찾습니까? 아까 답이 다 나왔는데 이런 생각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예전에 교역자 수련회를 갔는데 우리 집사람이 ‘여보, 이번에는 무슨 주제로 했으면 좋겠어요?’하길래 매번 기도, 전도, 영적생활 이런 것이었는데 ‘경제’라고 했더니 ‘왠 경제’라고 했습니다. 잘 들어봐라. 경제 잘 못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집 사람이 가기전에 책을 10권정도 읽었습니다. 경제에 대해서 나누기로 하고 필독서들을 준비했습니다. 그랬더니 진짜 내가 예측했던대로 가관이었습니다. 어느 전도사 부인은 늘 어려운데 그 이유가 사례금을 받으면 절반을 헌금하는게 철칙이었습니다. 사례금은 조금 주는데 절반을 헌금하니까 TV도 없고 라디오도 없고.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그것은 잘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많이 바치겠다는 생각은 나쁜 게 아닌데 균형을 유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 것들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절반을 헌금하기위해서 다른 면에서 규모있게 사느냐면 그것도 아니거든요. 어느 교역자는 늘 카드를 긁습니다. 카드를 여러개 만들어서 돌려가면서 쓰는 것입니다. 왜? 뭐만 보면 사고 싶은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다 경제생활을 잘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핵심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다른 곳에서 그것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모든 좋은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믿음 속에서 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직장도 다니고 사회생활도 하는데 뒤져봐야 100만원도 저금이 없다, 주머니에 단돈 10만원이 없이 다닌다면 그건 잘못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노트북값 내고 자동차할부금 내고 하면 항상 마이너스인것도 잘 못 사는 것입니다. 그 처지에 노트북사면 안되는 것입니다. 250만원을 받았으면 다 털고도 50만원 내지 70만원은 저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쓸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소비생활을 해나가면서 규모있게 살아야 합니다.
(직장 내 윤리적 갈등에 대하여)
14. 직장 내 편 가르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아무 편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여러 가지로 불이익을 당하며 소외받게 되고, 어느 한 편에 속한다면 다른 편을 향한 불의한 태도를 강요받게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윤리적인 판단에 있어서 내가 A,B 두 개의 판단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내 신앙과 양심, 모든 것들로 볼 때 A라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근데 나와 같은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많이 있어서 뜻을 같이 하는 것은 편이 아닙니다. 여기서 편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윤리문제를 포함한다고 할지라도 다른 의도에서 혹은 그런 판단과 상관이 없이 그렇게 무리를 형성하면서 자기의 모임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상대적일 수 밖에 없는데 옛날에 하나회라고 있었는데 일등하고 잘하는 사람들 다 끌어들여 하나회를 만들어서 조직시켜서 계속 위에서 끌어줘가면서 승진시키고 해서 들어가고 싶어서 안달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는 거기 들어간 사람들이 엄청난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김영삼대통령 때 하나회 해체되고 옷 벗고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한편에 속해있는 것이 나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지만 그 다음에는 그것이 나에게 굉장히 나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회색분자처럼 되라는 뜻이 아니라 그것이 윤리적이고 신앙적인 가치판단을 요구하는 문제가 아니라면 말을 아껴서 이 사람도 나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게 하고 저 사람도 나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서는 정치이야기를 별로 안합니다.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저 개인적으로 보자면 신공항은 웃기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에는 대전에 공항하나만 있으면 되고 고속도로 뚫어가지고 가면 됩니다. 일본에 집회하러 갔는데 공항에 내려서 조금만 가면 된다고 했는데 6시간 30분을 달리는 것입니다. 밤에 달리는 데 그 근처에는 공항이 없었습니다. 이 코딱지만한 나라에서 그런게 어딨습니까? 공항 만들어 놓은 것마다 문닫고, 비행기 연습장으로 쓰고, 근무하는 직원수보다 이용객 수가 더 작습니다. 그 바보같은 짓을 한 것입니다. 무슨 공항이 필요합니까? 물론 폭격을 맞고 위험하면 대치할 공항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나도 공항, 너도 공항하면서 수없이 만드는 데 공항들마다 다 적자입니다. 그런데 무슨 공항을 또 세웁니까? 그것도 100km를 사이에 두고 공항을 세우겠다고 새만금하고 군산하고 다투는데 전 세계에 그런 나라 없습니다. 이게 무슨 오토바이입니까? 그 돈 가지고 10차선으로 뚫어서 시속 110이 아니라 180까지 밟을 수 있게 허가를 내주면 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나라 시속160km 고속도로 착공한다고 그러는데 속도제한 없애고 자기들이 책임지라고 하면 됩니다. 독일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아우토반 길이 고속도로인줄 아는데 시골길입니다. 달리면서도 아우토반 어디있냐고 한답니다. 그런데 내가 가서 보니까 220km라고 하는데 대개 150~160km 밟습니다. 빨리 달려서 사고도 많이 납니다. 그런데 죽지 않습니다. 70km마다 응급 병원이 있는데 최고의 의사들이 헬기까지 가지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사고나도 15분안에 도착합니다. 그런 곳에 투자를 해야합니다. 160km로 달리면 30분이면 가는데 무슨 공항이 또 필요합니까? 오히려 차 좋게 만들고 도로시설 잘 만들어서 20차선으로 뚫어서 바람처럼 날아가게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가 이런 얘기 잘 안합니다. 그런 얘기하면 목사님 전라도냐고 물어봅니다. 왜 쓸데없이 복음의 본질을 가지고도 대적하기가 쉬운데 그런 걸 가지고 합니까? 그래서 얘기 잘 안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이런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고, 내가 지금 공항을 왜 만드냐고 열내는 것은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의 성경구절에 의해서 열내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으로서 세금을 가지고 왜 그렇게 하느냐하는 것입니다. 신앙문제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장생활에서 바보같은 사람이 복음을 전하다 반대를 받으면 핍박이라도 됩니다. 괜히 쓸데없는 얘기 꺼내가지고 경상도 사람한테 바가지로 욕 먹는 것은 바보같은 것입니다.
15. 직장 상사나 동료가 비윤리적으로 행동하는 경우, 고발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요? (예를 들면 유치원 교사인데 원장 선생님이 겉으로는 국내 유기농 제품만 쓴다고 하면서 식재료를 싸구려 중국산으로 쓰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 혹은 동료교사가 너무 비윤리적으로 영, 유아를 체벌하는 것을 보고 권유했더니 교권침해라고 도리어 화를 내는 경우)
성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마라. 남들이 싸우는 곳에 이해관계 없이 나서서 어려움을 당하지 말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정말 참을 수 없는 불의같은 것을 볼 때 고발을 합니다. 대개 퇴직한 사람들이 고발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왜 체벌을 하느냐?’고 했을 때 교권침해라고 강력하게 항의를 합니다. 평소에 충고하는 사람이 충고받는 사람에게 깊이 존경심을 가지고 있고 충고하는 사람이 진심으로 자기를 염려해서 충고를 한다면 이런 식으로 반응하지는 않지 않겠습니까? 평소에 자기도 후지게 살면서 어느 한 순간에 열받아가지고 자기를 비판하려고 할 때 니가 얼마나 잘났느냐고 반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계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식 이것밖에 못해? 내가 너 이러라고 여기 데려온 줄 알아? 잘 해, 이녀석아.’라고 욕을 먹어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상사가 있고, ‘이것 밖에 못해’라고 한 마디만 얘기를 해도 ‘지는 맨 날 근무시간에 기원에 가서 바둑이나 두면서’라고 반응하는 상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매번 이야기하는게 좋은 진리가 사람들에게 스며들 수 있는 통로가 있는데 그것은 사랑입니다.
16. 한 개인이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부정직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을 때, 그런데 그것이 업계에서 너무나 당연시 되고 있는 일이라 딱히 범죄라고 생각하기도 쉽지 않을 때, 나아가 실제로 그러한 업무의 일부를 담당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요? (정부 사업 등에 있어서 돈을 돌려 다른 것을 산다거나 하는 일. 탈세 또는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로비하는 일, 가짜 영수증 발행 등)
이런 것은 현실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질문입니다. 예를 들면 직장생활을 하는데 거짓 보고서를 써야 되는 상황, 뇌물을 받지 않으면 윗사람을 섬길 수 없는 지위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둘 중 간에 택일을 하세요. 그래서 내가 그냥 이 회사에서 이번에 정리를 하고 나갈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이건 잘못된 것이다라고 얘기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까 얘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똑같은 이야기를 할 때에 우리 회사까지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까라고 건의를 할 때에 그 사람이 그동안 회사에 정말 성실하고 회사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모두 받아들이지는 않겠지만 상당수 사람들에게는 권위있게 받아들여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소에 일도 쳐지고 대개 못하면서 자기도 약삭 빠르게 살아오면서 어느 순간에 의협심에 넘치는 것처럼 어떻게 이럴 수 있냐라고 할 때 사람들 눈에는 아주 우습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직장생활하면서 하나의 모토가 있었습니다. 이해관계가 걸린 부서에는 의도적으로 나는 발령을 받지 않겠다. 그것은 어느 정도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게 후진 자리면 결정할 권한이 없는데 예를 들면 ‘당신 요번에 계약 담당자 자리가 났는데, 내가 당신 밀고 있어’ 이렇게 얘기할 때 거기가면 뇌물도 생기고, 아는 사람도 생기고, 골프접대도 받고, 술도 마실 기회가 있고 또 거기서 돈을 잘 모으면 승진할 기회도 더 주어집니다. 나만이 아니라 여러사람이 가고 싶어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안갈 수도 있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나는 직장다닐때 일은 많이 하지만 이권은 없어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리를 간다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돈 문제 가지고 휘말리고 그런 경우는 없었습니다.
17. 시키는 대로 일을 하다 보니, 내가 최선을 다한 일의 결과가 어디로 향하는지 미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수고가 알고 보니 불건전해 보이는 대부업체의 홍보영상물 또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게임의 프로그래밍 작업 등에 사용될 때, 내 직업 자체에 대한 심각한 혼란과 회의를 느꼈습니다. 내 직무 자체는 잘못된 것이 없으나 그 결과물이 악한 의도로 사용되기도 할 때, 상명하복의 구조 속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합리화하고 넘어가도 될까요? 심적 괴로움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것도 잘 생각해야 합니다. 아까 얘기한 바와 같이 사회구조 자체가 악하니까 나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내 일에 충실했는데 나의 결과를 가지고 사람들이 나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예가 바로 원자폭탄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에 있는 어느 학자가 아인슈타인한테 비난을 많이 하면서 당신 때문에 원자폭탄이 생겼다고 그러면서 욕을 하면서 편지를 썼습니다. 아인슈타인이 그 사람이 쓴 편지를 뒤집어서 뒤에 쓰기를 당신이 일본이 2차대전을 일으키는데 아무것도 막을 수 없었듯이 나도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아무것도 막을 수 없었다고 했답니다. 아인슈타인이 사실은 그런 점에서 공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소련이 원자폭탄 개발을 미국보다 먼저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중간에 그만 두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거기서 만약 먼저 만들었으면 역사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다급하게 미국의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여기서 지금 만들려고 한다. 만약 이사람들이 먼저 만들면 전쟁은 해보지도 못하고 끝나는 것입니다. 빨리 개발을 해라.’ 그래서 독일은 개발을 하다가 그만 두었는데 미국은 연구비를 4배로 늘려서 결국 원자폭탄이 만들어졌습니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터지면서 전쟁은 끝이 났는데 그것이 옳았는가 그렀는가는 여기서 판단할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들어 놓은 것들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이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요번에 어느 신문인가 잡지를 보니까 3D영상물이 나오니까 제일 먼저 최대의 고객이 모텔이라고 합니다. 모텔이 그것을 설치해서 야한 동영상들을 넷케이블을 통해서 보내는데 그게 어마어마한 잠재고객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3D를 개발한 모든 사람이 인생의 회의를 느껴야 합니까? 무슨 얘기냐 하면 내가 이런 결과물들을 내놨을 때에는 할 수 있으면 이 결과물들이 이렇게 쓰이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가지고 그것까지 내가 확보할 수 있으면 좋은데 사실은 이것을 내놨는데 나는 이런 의도가 없었는데 사람들이 이쪽의도와 연결시켜서 굉장히 나쁜 쪽으로 사용을 했다면 내 책임은 아닙니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 문화 속에서 선과 악에 의해서 공유되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안그래요? 적당한 포도주는 심장병을 예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술을 먹고 사람들이 죄를 짓습니다. 그렇게 문화는 선, 악과 상관없이 중립적으로 존재하지만 그것을 끌어다 쓰는 사람들이 악하게 쓰느냐에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나에게 매춘을 광고하는 광고물을 만들어라고 할 때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만들면 안 됩니다. 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목적하는 바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개발한 기술이 그 쪽으로 사용되는 것은 내 문제는 아닙니다. 물론 그런 현실을 아파하면서 기도하고 어떻게든 나의 기술이 그런 곳에 쓰여지지 않도록 하는게 좋겠죠? 비행기 전투기 아래에 엄청난 화질의 촬영기가 달려있습니다. 버튼만 누르면 탁월한 해상도로 찍힙니다. 그것을 가지고 위치를 파악하고 폭탄을 던져서 아래 있는 사람들을 전멸시켰다. 그런데 그것이 불행하게도 민가에 떨어져서 사람들이 죽었다고 할때 촬영기를 내가 만들어서 책임을 져야 합니까? 우리들이 너무나 자유로워도 안 되지만 이런 식으로 직업활동에 위축을 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18. 수요예배와 때로는 주일까지 침해받는 직장 생활을 계속 해야 할까요?
언젠가 어느 사람이 나한테 와서 자기는 정말 신앙생활 잘 하고 싶어서 일반회사 들어갈 수 있는데 안 들어가고 극동방송 들어갔는데 들어가서 주일마다 이 교회 가서 촬영, 저 교회 가서 촬영하느라 한번도 주일을 못 지켰답니다. 사실 그걸 누가 알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수요예배와 때로는 주일예배까지 침해받는 직장생활을 계속 해야 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지하철 운전수, 소방 공무원, 군인, 경비시설에 근무하는 사람들, 비행기 컨트롤 타워에 있는 사람들은 어떡하겠습니까? 그런 일을 그만 두면 그런 영역에는 불신자들만 모여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아니라고 보고, ( 허쉐 )포드 목사님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걸로 이 부분은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교인 한 사람이 장로님인데 주일에 수시로 빠져서 왜 안나오셨어요 하니까 교회를 가려고 했는데 송아지가 또랑같은데 빠져가지고 나오지도 못하고 들어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돼서 그걸 보고 안식일을 지켜야 되겠다고 그냥 나와야되겠습니까? 성경에도 그런 소는 꺼내주라고 하지 않습니까? 제가 뭘 잘못한게 있습니까? 아닙니다 장로님, 정말 잘 하셨어요. 성경적으로도 동물들이 고통 받는 걸 보면 그냥 지나가면 안 되고 꺼내 주셔야죠. 잘하셨어요. 그런데 장로님, 그 소가 너무 자주 빠지면 팔아버리세요. 회사를 다니는 데 어떤 사람은 퇴직할 각오를 하고 회사가 되든 말든 주일에 교회나온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제시대 때 핍박받고 순교당할 때 이야기지 직장에서 내가 있지 않으면 회사가 심각하게 겪을 위기가 있다든지 예배드리러 나오는데 회사에 불이 났다면 당연히 달려가야 합니다. 그런데 자주 불이 나면 직장을 옮겨야 합니다. 자기 영혼에 도움이 안 됩니다.
19. 발전가능성이 적거나 돈을 적게 벌더라도 경건생활을 지킬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회사를 다니고 싶은데, 결혼하여 한 가정을 부양할 책임을 생각할 때 이기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적으로 결혼이 더 어려워질 것 같아 고민이 됩니다.) 청년실업이 이토록 극심한 때, 공 예배 참석과 개인경건생활이 가능한 회사를 찾는 것이 대책 없는 행동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발전 가능성이 적거나 돈을 적게 준다고 해서 그 회사가 항상 경건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기독교 학생회가운데 가장 열렬한 학생회가 어느 학생회인줄 아십니까? 동국대학교 학생회입니다. 너무 재미있죠?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직장생활에서 주일, 수요일 모두 자유를 주어도 까불고 교회 안 나오는 사람이 있고, 정상적으로 내버려 두어서는 정말 주일 지키기 힘든데도 눈물로 기도하면서 주일을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조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일 안 나오려면 퇴직을 하라 그런 식으로 공갈을 치면 그런 직장은 그만 둬야겠죠? 그렇지만 가능하면 그 사람이 너무 필요해서 회사가 룰을 바꿀 정도의 사람이 된다면 괜찮지 않겠어요? 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사장한테 뭐라고 하지는 않겠죠?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질문하는 것도 굉장히 패배주의적 생각이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가능하면 주일을 지킬 수 있는 직장을 골라야지 주일을 지킬 수도 있고 못 지킬 수도 있는 것을 다 알면서도 내가 이 직장을 다니겠다라고 하면 처음부터 자기를 시험에 들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안 맞으면 자유함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공부를 많이 해서 변호사가 되든지, 문닫고 싶으면 닫고 열고 싶으면 여는 의사가 되든지, 프리랜서가 되어서 전문적인 컨설턴트가 되어서 한달에 한건만 해도 먹고 살만한 컨설턴트가 되든지 해야 합니다. 그런 능력은 안 되니까 계속 고생을 해야 합니다.
20. 어쩔 때는 일에 몰입이 되어서, 며칠 동안 다른 생각도 하기 싫고 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에 매진하면서도 하나님 중심으로 살 수 있는 비결이 있나요? 일에 몰두하다 모면 경건생활도 무너지기 일쑤인데, 그렇다면 지나치게 일 자체에 몰두하는 것도 죄가 아닐까요?
이것도 일에 몰두하면 신앙을 까먹은 것도 아니고, 일을 없애버리면 신앙에 몰두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은혜생활 잘 하면서 열렬히 기도하던 때를 생각해보면 , 한가했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런 생활을 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바쁘고 어려운 때에 마음이 하나님께 고정되어서 열렬하게 기도생활하고 주일이 감격스럽게 기다려지고 위로가 있는 시절이 더 낫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획일적으로 그런 식으로 얘기할 수 없습니다. 항상 무슨 일들이 이루어지면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다루실려고 하고 무슨 하나님의 뜻이 있는가라는 것을 항상 생각하고 연결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 거기서 영적인 의미들이 파악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해야합니다. 그래서 내가 우리 직원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요새 니가 하는 일 중에 제일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하면 목사님, 제가 지금 삼위일체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그게 지금 제일 중요하냐?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게 제일 간절한 기도제목이 되게 해라. 요새 니가 하는 일 중에 제일 중요한 일이 무엇이냐? 지금 새가족 동영상을 만드는데 거기에 온 신경이 꽂혀 있어서 제가 지금 정신이 없습니다. 그럼 그게 제일 간절한 기도제목이 되게 해라. 하고 있는 중심적인 일과 기도제목이 분리될 때 박리현상이 일어납니다. 마음은 A라는 일에 꽂혀가지고 정신이 없는데 기도순서에서는 하순위로 밀려나고 하지도 않는 일은 일순위로 올라가면 그게 간절해 질 수 있겠습니까? 무엇을 하든지 간에, 직장생활을 하든, 프로젝트를 하든 그게 간절한 기도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런 것들이 의미를 가지고 자신에게 다가오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직장에서 있었던 일인데 내 일도 죽을 지경인데 옆에 사람이 갑자기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일을 더 떠 맡게 되어서 너무 괴로운 것입니다. 나는 사람이 빨리 오게 해달라고만 기도했는데 이상하게 기도의 응답이 없고 사람이 계속 안 오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두 가지 일을 하면서 이쪽 일에 대해서 많은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두 가지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준비하게 되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그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게 됩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타이피스트로 취직을 했으면 빨리 편집을 배우시는 것입니다. 타이프치는 것은 단순노동이고 편집은 고차원적인 노동입니다. 할 수 있니? 예, 조금 배웠는데 가르쳐주시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회가 계속 주어집니다. 타이프치는데 이거 한번 해볼래 했는데 저는 이거 해본 적도 없구요, 하고 싶지도 않아요. 점점 쓸모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그런 노력들을 잘 안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내가 이야기합니다.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려고 애쓰는 것은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입니다. 그게 없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삶에 너무 많은 희망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주는 대로 먹고 밟히는 대로 밟히고 그렇게 허접하게 인생을 살다가 죽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21. 기술 개발 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롤모델이 될만한 과학자나 연구자가 있을까요? 사람을 대상으로 하거나 사회사업, 의사, 선생님, 이런 사람들과는 달리, 그냥 물건 만드는데 나의 모든 노력을 경주할 뿐 인것 같고, 이것을 하나님의 위해서 일한다는 느낌이 잘 안듭니다. 신자는 물론, 숨쉬는 것조차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연관성이 잘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굉장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내가 리모콘을 만들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리모콘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습니까? 이 리모콘으로 선교영화만 계속 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까? 이것 가지고 섹스체널도 돌립니다. 질문이 다 그런 식으로 굳어져 있습니다.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내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방식은 아무도 없는데서 이런 재료들을 사용해서 이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그리고 이 물건이 하나님 마음에 맞게 쓰여지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까? 그럼 우리 중에 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당신이 만든 볼펜을 가지고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내용을 쓰지만 어떤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세상에 투서질을 하고 나쁜 일을 하고, 당신이 만든 자판을 가지고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지식을 만들지만, 어떤 사람들은 악성댓글을 달아서 연예인들을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왜 그런 식으로 자꾸 생각을 합니까? 생각자체가 잘못 된 것입니다. 자, 이 재료 세 개를 합쳐서 리모콘을 만들기까지 나 혼자 못 만들고 껍데기 납품하는 사람도 만나야 되고 둘이 서로 의논하면서 디자인도 해야 됩니다. 이 사람하고는 색칠도 해야 하고 저 사람하고는 물품도 구매하러 다녀야 하고 이사람하고는 건전지도 사가지고 집어넣어야 합니다. 그런 수 많은 사람하고 만나면서 하나님을 전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행복을 느끼게 만들고 그 속에서 주님을 경외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고 더 가치높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라는 것을 느끼게 만들어 주는 것 자체, 나는 이것을 만들려고 하는데 만들기 위해서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더 많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이해됩니까? 의사나 사회사업에서는 롤모델이 있다고 하는데 기술 만드는 사람에게는 롤모델이 없다? 롤 모델을 어떻게 찾을 수 있겠습니까? 선교영화이외에는 안 틀어지는 리모콘을 만들면 그게 팔리겠어요? 야한 동영상이 나오면 저절로 폭발해 버리는 모니터를 만들면 팔리겠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런 생각은 너무나 닫힌 생각입니다. 이 사람이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열심히 과학기술자로서 일을 합니다. 그러면 돈도 벌고 자기가 사업을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이 사업에 성공하려면 목회자의 마음을 가지고 사업을 해라. 직원들 이용해 가지고 등골 빼가지고 돈 벌어서 자기나 부를 축적해야겠다고 하면 나쁜 사람입니다.
재산을 불려서 사업을 해 가지고 한 사람 두 사람 모여서 고용창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한 사람에 네 식구정도 딸렸으니까 직원이 1000명이면 4000명 정도 먹고사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일반은총의 한도 내에서 법대로 살려고 하는 사장,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사장, 그 밑에서 불법을 강요받지 않고 그 속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밥을 먹고 직업활동을 하면서 사회에 이바지하고 그렇게 살아가게 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는 굉장히 칭찬받을 만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왜? 비록 그 사람들을 하나하나 전도해서 구원받게 하는 데는 미치지 못하지만 지조를 팔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밥 먹고 살 수 없는 세상인데 사장이 올바른 사람이어서 그렇게 살게 해준 것 자체가 하나님께는 굉장히 칭찬받을 만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종류의 삶을 우리들이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사람이 그럴 수는 없지만 젊은 친구들에게 얘기합니다. 회사에서 인정을 받고 열심히 30대를 보내라. 그리고 40대는 니 사업을 해라. 월급쟁이 해봐야 별로 큰 비젼이 없다. 그래서 큰 꿈을 품고 기업을 일으키리라. 그리고 적어도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그런 기회를 줄 수 없어도 거짓보고서, 사기 보고서, 뇌물 갖다주라고 하는, 술먹고 뇌물 받으면서 겨우 이어가는 직장생활, 그래서 집 식구들에게 풀칠이라도 해주고, 항상 떳떳하지 못한 월급봉투를 가져다주는 사람들이 내 회사에는 없는 그런 세계가 되게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도 하나님 앞에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모두 예수 믿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으면서 직장을 만들어서 예수 믿는 사람만 직원으로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잘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회사는 반드시 망합니다. 교회니까 불신자 받아서 쓸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만약 일반회사의 사장이라면 6:4정도로 뽑겠습니다. 예수 믿는 신실한 사람 6, 안 믿는 사람 4정도. 그 중에서 기독교에 상당히 가까운 사람1 중립인 사람 둘, 기독교에 대해 약간 배타적인 사람을 쓰겠습니다. 아주 극단적으로 배타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그래서 가끔 예수 믿는 사람이 그따위로 사는 사람들과 섞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아, 이렇게 살면 안되겠구나. 우리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하나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저 불신자도 우리를 보고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직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함이 유지됩니다. 뒤에서 호박씨까는 그 사람들을 데려다가 교회에서 세례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불러다가 씁니다. 신학교에 있으면서 부도덕이 은혜에 비례한다는 것을 내가 경험했습니다. 뭐든지 정확하게 규정을 만들어야 됩니다. 학장님이 있었는데 학교가 작아서 퇴직하겠다고 하니까 퇴직금을 주었습니다. 사람들도 다 봤습니다. 주는데 싸인을 못 받고 준 것입니다. 일주일 있다가 다시 퇴직금 달라고 편지가 날라왔습니다. 주지 않았냐하니까 자기는 받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증명이 있어야지, 그래서 두 번 주었습니다.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엄청 잘못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면 안된다하는 이야기입니다.
22. 미디어 군에 있는 직종은 업무 특성상 보는 것, 듣는 것,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문화를 접하다 보면 안 좋은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영상, 디자인, 미디어, 문화 컨텐츠 제작 등등의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직무를 신앙과 같이 병행해 나가야 할까요? 미디어군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실제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그렇겠죠? 왜냐하면 보는 문화 엄청나게 많고 또 어떤 사람이 굉장히 괴로워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음란물 조사하는 조사요원인데 그리스도인입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계속 안 좋은 것만 실컷보고 퇴근할 때는 울렁거리고 머리가 깨질 것 같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이럴때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뭐라고 대답했겠어요? 퇴근할 때 꼭 교회에 들러서 기도해서 은혜 많이 받고 눈물로 청소를 하고 아침에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많은 사람이 이것을 못 보도록 내가 마음의 의사역할을 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해야된다. 그리스도인 아닌 사람이 그 잣대를 잡으면 기준을 자꾸 높일 것 아니에요? 그래서 정확하게 하고. 여러 가지 케이스가 있습니다. 이것 보다 훨씬 폭넓은 질문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보고 듣는 것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들이 수없이 병균에 노출 되잖아요? 근데 우리는 기본적으로 면역력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들어와도 이기면서 살아갑니다. 면역력이 저하되는게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티끌만한 균도 이겨낼 수 없이 심하면 무균실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건에 노력하고 힘쓰면서 살아야 되지 않겠어요? 디자인 이런 것은 어쩔 수 없이 계속 자기를 소모하는 직업일 수밖에는 없구나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레고리 ( )에게 물어봤답니다. 어떻게 그렇게 수학을 어마어마하게 잘 할수 있느냐? 이 사람이 열여섯살 때 세계대회, 국제올림피아드에서 1등했습니다. 수학에 대해서 간절히 생각하고 있으면 누가 옆에 와서 해법을 속삭여주는 것같답니다. 몰입의 경지에 들어가면 그것이 가능해집니다. 여러분 63빌딩이 기도하는 손에서 힌트 얻은 것을 아십니까? 옆에서 보면 기도하는 손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든지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하면서 힘쓴다면 훨씬 더 깊고 오묘한 디자인들을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디자인을 담당하는 나동훈집사가 그런 경험들을 얘기했습니다. 기도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디자인을 생각나게 해 주신답니다. 많이 영상들로 채우고 마음이 하나님을 향한 갈망으로 채워지기 힘들 때일수록 오히려 더 적게 보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지혜를 구하면 더 좋은 결과물들을 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일하는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면서 산다면 얼마든지 우리들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노력을 하십시오. 그리고 항상 공짜, 작은 희생에 커다란 댓가 이런 것들을 미워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게으르지 않고 노력을 해서 죽는 날까지 자신이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해도 안 된다고 하는데 대부분 안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하는 사람들은 많이 빨리 발전하는 사람도 있고, 천천히 조금씩 발전하는 사람도 있지만 마음을 쏟으며 열심히 하면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직장생활에 있어서 감사나 너무 없습니다. 오늘도 친구들이 모였는데 한 사람이 밥 사면서 자기는 이제 끝날 때가 돼서 직위도 다 내려놓고 평범하게 일하는데 젊은 사람들이 막 옆에서 오는데 그것 따라가면서 일할려니, 그 사람들 7시간 일할 것을 자기는 11시간 일해야 하는데 요즘에 뭐를 물어보고 그래도 두 번 세 번 물어보면 우습게 본다며 사는게 힘들다고 하니까 옆에 있는 친구가 야,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고맙게 생각해라 딴데는 45살이 되면 명퇴해 가지고 집에서 얘나 보거나 치킨 집 하는데 너는 박사가 되가지고 일 할수 있는 기회를 나라에서 줬는데 얼마나 감사하냐고 했습니다. 내가 그랬습니다. 바로 그거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성당다니는데 우리 중에서 제일 좋은 직업은 목사다. 누가 나가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정년도 없고. “정년있어. 이 사람아”했더니 “우리 중에서 정년이 제일 길고” 그러니까 그런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마음을 가지고 무엇을 하더라도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서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번 질문과 연결되는 질문인데요, 오늘날은 포스트모더니즘사회인데 어느정도 우리가 받아들여야 되는지, 시간이 허락되면 포스트모더니즘의 형성과정, 긍정적인 면은 무엇인지요?
포스트모더니즘의 형성과정을 이야기하려면 시간이 길고,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은 기본적으로 모더니즘의 변종입니다. 모더니즘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자율을 내세우기 위해서 그래서 인간의 이성을 최고의 판단기준으로 삼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성도 자꾸 이성의 판단으로 삼다보니까 이성도 자꾸 최종적인 규범에 자꾸 호소하려고 하게되니다. 그런거 자체가 하나의 거대하게 선언적으로 만들어지는 수탈과 악재의 수단이 된다고 보고 인간의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서 그것의 전제로부터 벗어나야 됩니다. 그러고 인간이 왜 존재해야되느냐.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겁니다. 그게 바로 이제 그 실존주의 철학들이 일어나게 하는 잉여 전제의 개념이고 피투성이 전제의 개념이고 그렇게 해서 마지막에 내가 여기에 있게한 모든 필연성을 다 부인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마지막에 도달하는것이 자유입니다. 하이델베르크의 표현에 의하면 무시무시한 자유입니다. 너무 무시무시한 자유입니다. 그대신 그 자유의 신념에 직면하면서 인간은 결국은 그안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건전한 방법으로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좋은 책들을 통해서 무비판적으로 읽지 말고 좋은 태도를 가지고 공부를 하는것이 좋다 그렇게 봅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 어느것정도까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느냐 라고 하는것은 무엇이냐하면 항상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화 활동이나 이런것들을 우리들이 완전히 담쌓고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것의 자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책을 낸 신경숙씨의 Please Look After Mom (엄마를 부탁해)에서도 엄청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완전 3류 크리넥스라고...눈물찔찔.. 김치냄새 나는 삶들의 크리넥스 작품이라고... 그렇게 욕해도 그 작품이 뜨긴 떴습니다.. 나도 그렇게 좋은 번역자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떴는데, 문제는 무엇이냐하면 그런식으로 그런 기준자체를 다 거부하는 겁니다. 그런것 자체도 하나의 반 패미니스트적 사고방식의 입각한 작품이라고 여겨지는 겁니다. 어머니라는 실체를 집어넣고 그리고 그 어머니에게 그런 희생과 이런것들을 강요하는 내용이다라고 그렇게 보는 겁니다. 근본적으로 결국은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변종입니다. 다른것들도 맥락을 같이 합니다. 그 속에서 어느 부분을 어느만큼 받아들이고 어느부분은 배척해야되는지 그런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은 모두 우리가 배척해야되는 사상입니다. 다만, 문화가 이미 그런 속에서 젖어있기 때문에 그것을 쿨하게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져야하는 겁니다. 아바타로 예를 들었던 것처럼,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이고 뉴에이즈 작품이고 그러니까 보지마라 그러면 사실은 보지말아야되는데 우리가 보지 않습니까? 교회에서는 안본 것처럼 하고 밖에서는 다 얘기하지 않습니까. 자기가 왜 그런지도 모르고 빠져들어가는 겁니다. 근데 설명을 다 듣고 보게되면 그 코드들이 보이게 됩니다. 아..이렇게 간교하게 코드가 들어와서 이런식의 사상을 벽에 깔고 가는구나. 이렇게 개관적으로 쿨하게 볼 수 있어야 되는 겁니다. 살찌고 건강을 헤치우는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이냐하면, 한번도 음식을 객관적으로 못바라본 겁니다. 닭다리, 치킨, 피자 이게 몸에 들어가면 우리 몸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생각을 하면 먹으면서도 자기 자신이 조절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치킨! 오아~ 맛있겠다. 피자! 기름 줄줄~", 그런후 퍼먹기 시작하는 겁니다. 감당할 수 없는 비만이 되게 됩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것이 무엇이냐하면, 모르는것도 죄냐하는데 죄입니다. 그래서 allmost evil 또는 very evil, 둘 중의 하나입니다. 블랙스완 봤습니까? 블랙스완 가지고 한시간 강의하라고 하면 할 수 있습니다. 기가막힌 코드를 거기에 쫙 깔아놓았습니다. 마지막에 무엇을 느꼈습니까? 마지막 메세지는 이겁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보람되고 가치있는 것은 자기를 철저하게 구현하는 것이다. 자기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게 블랙스완이 주는 메세지입니다. 덜 종교적인것 같아 보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사실은 그 아바타의 코드는 굉장히 이상적이고 철학적인 코드를 가지고 있지만 더 위험한 코드를 블랙스완이 깔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아바타를 보고 재밌다라고 하는 사람이 만일 블랙스완을 보면서 가슴저린 감동을 느낀 사람이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만약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좋은 신앙으로 포스트모더니즘에 벗어나 있거나 아니면 무엇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멍한 상태...그래서 사실 우리가 시간이 없긴 하지만 분기에 한번씩이라도 이렇게 같이 영화평론같은 것을 하면 눈들이 많이 열리게 됩니다. 영화뿐만이 아니라 건축, 패션, 철학, 문학 이런것들을 하면서 삼위일체 그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 얘기들을 기대하십시오. 지금 450페이지 썼습니다.
또 질문~
예를들면 이런 겁니다.
직장일이 하나 주어졌는데, 대부업체 채권 회수를 하는 직업인 겁니다. 실적에 따라 돈을 받는데, 필요한 경우, 횟칼을 품고 찾아가야하는 직업입니다. 그럼 기도를 많이 해볼 필요도 없고 처음부터 아닌 겁니다. 그런데 그런게 아니라 정상적으로 열심히 일해서 오퍼하는 무역회사에서 일을 해서 정상적으로 월급을 받고 회사도 도덕적이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하더라도 그게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개별적인 하나님의 인도가 있기 때문입니다.그런 원칙은 설득력이 있는 원칙입니다. 그런것을 가지고 검증하고 확인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질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라고 했을때 구체적인 실천방안에 있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것이 확인이 되면 거기에 자신의 삶을 맞추는데 맞춤에 좀 불리한 것이 있을것 같아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것이다라는 이야기지 않습니까? 네, 맞습니다. 어느정도는 맞습니다. 그런데 지혜롭게 잘 해야되는 것이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하면, 나는 비록 얼굴도 못생겼고 사교성도 없고 매력도 없지만, 그러나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면 언젠가 시집도 보내주시고 장가도 보내주실 것이다는 대의적으로 맞는데, 그러다가 못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뜻이냐하면, 항상 한쪽으로 쏠리면 나머지는 눈을 감아버리기 쉬운데 그것이 종교적으로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는 점에서는 분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것이 맞지만 그러나 우리의 삶은 항상 입체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전쟁과 같아서 죽기 살기를 각오한 육군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 공군도 폭격을 해야되고 UDT도 물속으로 들어가서 적 잠수함 파괴할 때도 있고 아니면 공수부대가 낙하산 뛰어내릴 때도 있고 종합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풀어나가야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