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4일 새벽예배
너희를 인도하는 자와 및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 (히 13 : 24 - 25)
녹취자 : 김용재
이 뒷부분에는 편지를 모두 끝내고 인사를 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디모데가 잠시 박해를 받아서 명확하진 않습니다만 박해를 받아서 잠시 메인 것 같은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저가 속히 오면 내가 같이 가서 보고 싶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원래 이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자체가 주님을 만나지 않았으면 사실 개인적으로 신앙생활 자체가 시작될 리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시작이 되었고 또 목회자도 개인적으로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말의 핵심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면 사랑의 변화입니다. 예전에는 주님 만나기 전에는 세상에 있는 것들이 제일인줄 알고 사랑을 했는데 주님 만나고 나니까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 보다 예수님이 가장 사랑스럽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것,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니까 하나님이 내게 가지고 계신 뜻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것입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누구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이 무엇에 마음을 쓰는 가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그 사람에 대해서 배려하고 생각하고 그 사람이 이런 걸 좋아할까 저런 걸 싫어할까 하는 것을 생각 안하게 됩니다. 그 사람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걱정 하거나 그런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게 되면 예수님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우선은 소극적으로는 그 분이 안 기뻐하시는 일을 해서 그 분의 마음에 고통을 드리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이 생기고 적극적으로는 내가 뭘 해드리면 그 분이 기뻐하실까 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매 순간마다 그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가 무엇이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빠져들게 되면 그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에게 그 사람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간절하게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형제 된 사람들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는 말입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한 사람이 되어가려고 많이 애를 쓰고 예수를 닮아가려고 애쓰는 그 많은 몸부림과 그런 성화의 길을 내 옆에 있는 사람들도 걸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길을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습니까? 심지어는 나를 나아준 우리 엄마나 내 아버지나 내 가족들도 이해 못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만난 형제자매들이 정말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오늘 그들을 그렇게 보고 싶어 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사랑이 시킨 것입니다. 마치 큰 회사에 많은 직원들을 두고 많은 물건을 만들어서 그걸 내다 팔아서 돈을 버는 사장이 물건 잘 만드는지를 보기 위해서 그래서 자기 직원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 그런 이해적이고 타산적인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이냐면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변화를 받은 진실한 성도들과 성도들 사이에 혹은 진짜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고 그 영혼들을 목양하는 목회자의 마음속에 있는 자기의 양떼들을 향한 말할 수 없는 사랑. 그것이 이들을 이렇게 보고 싶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소망이 그 뒤에도 너희를 인도하는 자와 및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래서 로마에 그 중심부라고 하는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들도 편지를 쓴 사도한테 있었던 모양입니다. 자기만 그들을 보고 싶어 한 게 아니라 자기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도 그들을 그렇게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 고백을 하면서 동시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과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사람들 모든 성도들에게 문안하라.
그래서 문안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인사라기보다는 그들을 진실한 사랑으로 돌아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필요한 일이 생기면 도와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진 문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쭉 성도들을 돌아보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신앙생활이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 있는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하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지체들은 잘하기 때문에 그렇게 잘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을 돌아보고 싶어 하고 미끄러진 지체들은 미끄러졌기 때문에 돌아보고 싶어 하고 병든 지체들을 병들었기 때문에 돌아보고 싶어 하고 하는 이런 사모하는 마음과 그 모든 그리움들이 우리의 마음 갈피갈피에 배어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사랑입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을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오늘날은 세상은 바빠지고 복잡하고 많은 모임이 있고 단체들도 많이 가입을 하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옛날에 농사지으면서 살아가는 시절에야 그런 게 뭐가 있습니까? 우선 교통편자체가 없으니까 그냥 태어나서 그 땅에서 어떤 사람들은 동네 바깥에도 못나가 보고 그냥 그 땅에 태어나서 가족들과 함께 이웃들과 함께 살다가 죽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많은 모임도 많고 소속된 곳도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옛날보다 훨씬 더 외로워 진 것입니다. 가족들과도 그렇고 이웃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 문 쾅 닫으면 알지 못하는 단절됨 가운데 살아가고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만나고 그래도 모두 자기 목적을 위해서 만나는 것이지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리고 마음을 주고받는 그런 연합이 거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이런 목양의 관계,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가 근심하는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문안하고 돌아보고 헤어져 있으면 보고 싶어 하고 그리고 함께 있으면 헤어지기 싫어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고 여기까지 걸어왔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실 어떻게 보면 기막힌 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길을 걸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오늘도 또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들이 그렇게 기막히고 어려운 길을 걸어서 신앙생활을 해왔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그렇게 온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가족들을 버린 사람도 있고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박해를 받은 사람들도 있고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좋은 것들을 포기한 사람도 있고 지금도 시련을 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도의 일생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외롭고 고통 받을 때 지체들로부터 위로를 받고 또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힘을 얻었을 때에는 연약한 자를 붙들어주고 마음에 사랑과 근심을 가지고 서로를 돌아보고 문안하고 그렇게 하면서 일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복된 생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