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새벽예배
“그러므로 함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의 몸을 제물로 드려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독특한 대제사장으로 오셨다고 어제 말씀을 드렸죠. 그렇게 오셔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시는 동안에 그분이 당하신 것은 시험 이었습니다. 그분은 죄는 없으시고 유혹에 넘어 가실 수도 없는 분이셨지마는 그러나 어쨌든 끊임없는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시험을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당신이 구속하셔야할 인간들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이고 그리고 얼마난 비천한 존재 인지를 더 많이 느끼 실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시험을 받으시는 생애를 사심으로 말미암아, 시험을 받는 사람들을 긍휼이 여기는 마음을 더 많이 가지시기 된거죠. 그러니깐, 믿음의 길을 걸어 가려고 할 때에 많은 시험을 만나고 어려움을 만나는데, 그때에, 예수님을 바라봐라 그리고 3장으로 넘어 가는 거에요. 3장 1절에서 이야기하는 거는, 하늘의 부르심을 함께 입은 형제들아! 그 하늘의 부르심이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우선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니깐 하늘의 부름이고, 또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지 마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놓으신 이후에는 이 세상을 내 멋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고 새사람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살아가는 것이니깐, 이것도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구요. 또 마지막으로 결국 우리들이 수고와 노고를 마친 후 에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이니깐, 그러니깐 결국은 이 모든 것들로 미루어 볼 때에 결국은 우리의 구원의 부르심이 하늘로부터 온 것이다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는 거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말하는데, 대제사장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나왔잖아요. 앞에서 2장에서 길게 쭉 나왔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다 그분이 아니며는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앞에 나아갈 수 없고 그분이 아니며는 우리가 깊이 하나님의 자녀로 용납 될 수가 없는 거죠. 그렇지 않아요! 그런 그렇게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단절되어서 도저히 용납 될 수 없는 우리를 불러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거죠. 우리의 눈길을 끄는 건 바로 그 앞인데,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그랬거든요!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우리의 믿는 도리라고 하는 도리가 교리를 가리키는 것이에요. 교리! 우리가 믿는데, 어떻게 믿고 그리고 무엇을 믿어야 할까 하는 그 신앙의 골조가 되는 뼈대 있잖아요. 이것의 사도이시다. 사도라고 하는 것은 뭐냐하며는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으신 분이시다 그런 뜻이에요. 그러니깐, 예수님을 믿는다! 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준 믿음의 교리를 믿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에요. 그러니깐 만약에 우리가 믿음의 교리에 대해서 모르고 믿는 다면, 그 믿음은 성경이 말하는 온전한 믿음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아주 엄격하게 이 문제를 해석해서, 이렇게 보는 거죠. 구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상을 많이 섬겼잖아요. 그 우상 중에는 하나님과 다른 그런 우상!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드릴 경배를 다른 우상에게 드린 그런 우상도 있었지마는 그러나 그것 말고, 상당히 많은 우상의 부분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겠끔 형상화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우상이에요. 예를 들자면, 여로보함이 벧엘과 단에 세웠던 그 신상! 이것도 결국은 절대적인 이방의 우상이라기 보다는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자신 나름대로 이미지를 만들어서 세워놓고 여호와를 섬기는 방식을 그 우상을 보고 하게 한 거에요. 또 하나 예를 들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죠. 아론과 함께 그 금송아지를 만드는데, 그게 힌트는 이방의 신상에서 얻었지마는 그러나 그것을 만들어서 사실 그것을 통해서 예배하려고 했던 것은 하나님이었단 말이죠. 그래서 애굽에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낸 신!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잖아요. 그 하나님을 보이는 형상으로 만든 것이 바로 금송아지 였단 말이죠. 마찬가지로 신앙에 열심은 있는데, 교리는 배우지를 않아요. 교리를 배우지 않고 예전에 지 멋대로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들을 종합을 해서 그래서 열심을 낸다 이거죠. 일종의 신약시대의 새로운 우상 숭배에요. 마음만 하나님께로 향하면 된다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는 마음이 당신께로 향할 뿐만 아니라 당신을 예배하고 경배할 때에 당신이 지정하신 방법을 따를 것을 엄격하게 요구하시는 거에요. 그러니깐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할 뿐 아니라 또한 그 하나님을 경배하는 방식도 하나님이 지정해 놓으셨으니 엄격하게 그 방식을 따라서 지정해 놓으신 것을 따라야 한다 이게에요. 그러면 교리를 배워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자기가 이제껏 예수 믿으면서 겪었던 제 나름대로의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지도 않은 자기 자신의 체험이나 그리고 어떤 말씀에 기초하였다 생각 하더라도 전체적인 얼개가 이것이 기독교의 참 진리가 아닌 것에 매달려 있는 이런 잡다한 체험들을 가지고 열심을 내면 안되는 거에요. 그게 점점 더 죄를 짖게 되는 에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십계명에서 내 앞에 다른 신을 내 앞에 있게 하지 말라, 이건 뭐냐하며는 경배를 이야기 하는 거죠. 그것만 이야기 하신 것이 아니라 내앞에 다른 신이 있게 하지 말라 그러면 충분하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이어서서 두 번째 나오는 것이 뭐냐하며는 만들지 말라! 보이지 않는 나를 예배하기 위해서 보이는 어떤 형상을 만들고 거기에다 절하지 마라! 나는 그건 참을 수 없다!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그러니깐 중요한 것은 먼저 경배와 예배가 있기 전에 정확한 지식이 필요해요. 그게 바로 무엇에 대한 지식이냐며는 교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에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고 전해주신 신앙의 도리가 무엇일까 그 도리를 깊이 깨우치고 그 도리를 깊이 터득한 다음에 그다음에 비로서 예배가 있고 경배가 있고 섬김이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계속 공부해요. 그래서 교리를 꾸준히 공부하고 그리고 그런 설교를 들으면서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 생각하고 그러면서 교리의 뼈대가 자신의 이 삶속에 온전히 박히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에요.
예) 여러분 저기 노량진에 가보며는 건녀편에 63빌딩이 서있잖아요. 지금이야 높은 빌딩 많으니깐 별로 화재거리도 아니지만, 먼처음에 세워질때는 굉장했습니다. 허가를 내 주냐 마냐, 왜 그랬냐며는 밤중에 거기다가 불을 켜 놓찮아요. 비행기 부딪히지 말라고, 그러며는 캄캄한 밤중에 이북에서 그것을 보고 쳐들오 올거라 라고 생각 한거에요. 동력이 달려 있지 않은 그런 비행기를 띄어서 글라이더처럼 만들어서 그래서 날아오면 그 등불을 보고 날아오며는 서울쪽으로 인도되는 그런 역할을 하지 않냐.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았어요. 근데, 그것을 세울 때 말이죠. 그 많은 사람들이 건축 전문가들이 고민을 했는데, 그 고민이 뭐냐하면 지반이 강바닥이니깐, 강이 잖아요. 거기가 지반이 과연 63층을 지탱 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 하겠느냐, 고민을 많이 한거죠. 그러면 어떻게 하는 거에요. 마침 그아래에 암반이 나오면 좋겠는데, 암반이 안 나오면 타일을 박는 거에요. 타일을 쇳덩어리를 위에서 뚜드려 가지고 말이죠. 밑으로 계속 무른 바닥을 뚫고 계속 내려가는 거에요. 그래가지고 도저히 두드려도 안들어갈 수 있는 곳까지 가는 거에요. 그래서 거기서 암반이 나오겠죠. 암반, 그래서 수백개의 파일 박아가지고 말이죠. 수백개를 박아서 암반이 가지고 있는 지지력이 타일을 통해서 위로 전달 될 수 있을정도가 되요. 그렇게 만든 다음에 그 위에 골절을 세우고 집을 짖는 거에요. 그러니깐 그렇게 높은 빌딩을 지을 수 있는 것이에요. 말레이시아에 쿠알렐룸푸루에 가며는 페트로나스 빌딩이라고 그래서 빌딩 두 개가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머리 좋은 사람들이냐며는 두빌딩을 똑같이 짖는데, 한 빌딩은 한국의 삼성한테 주고 또 한 빌딩은 일본한테 준거에요. 누가 안전하게 빨리 짖나 경쟁을 시킨거에요. 근데 삼성이 한달인가 두달 늦게 공사를 시작했어요. 어마어마 하죠. 세계에서 지금 현제 제일 높은 빌딩입니다. 그 밑에 가보며는 어질어질 하죠. 그 빌딩을 진거에요. 결국은 우리나라가 이겼어요. 사고도 적게 내고, 그다음에 정확하게 공개를 마쳐서 먼저, 두달 늦게 시작했지만, 먼저 마쳤어요. 일본도 지었어요. 근데 2년 전인가 3년 전인가 갔더니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나요. 뭐냐하며는 한국이 짖고 일본이 둘이 같이 지었는데, 일본이 진 빌딩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거에요. 그 이유는 뭘까요. 그이유는 간단해요. 물론 그 사람들도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탄탄하게 세웠겠죠. 근데 지형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면서 금이 가지 시작한 거죠.
모든 건물의 이치가 그래요. 그뿐만 아니에요. 저는 청년들을 만나고, 청년뿐이 아니지 장년들도 심방하다 보며는 불행 할 수 밖에 없겠어요.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인생에 기초공사가 덜됐어요. 기초공사가, 살아가면서 좋은 기회를 만나서 입신양명을 한다든지 큰 돈을 벌게 된 다든지, 무슨 학문적인 업적을 크게 성공해서 애기치 못했던 그런 명예를 누린다고 하는 것은 인간에게 늘 일어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 안 일어 날수도 있는 일이에요. 그런 것들은 부과 적인 거고 그런 것에 인생을 걸면 안되요. 우선 이 기초가 인생의 이 기초가 탄탄해야되요. 한사람의 인생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성품이 걸어온 괘적에요. 그러면 기초 공사가 탄탄해서 먼저 사람속에서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 하는 이 기본적인 관계, 신의, 사랑, 우정, 의리 이런 것들이 도리 이런것들이 탄탄해야되요. 그 위에 그런 것들이 부어질 때에 그 사람이 그것과 어울리는 지위를 누릴 수 있고 명예를 누릴 수 있는 것이지 인간성의 기본이 안 돼 있는 사람들이 허황되게 그런 것만 찾아 다니면, 만약에 그런 것을 얻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인생에 기본적인 태도가 안 돼 있는 사람들! 기초공사가 안 돼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손에 넣으면 방자해 지는거에요. 돈을 많이 얻게 되며는 아주 교만해 지는 거죠. 지식을 많이 얻어서 명예를 얻게 되며는 아나무인이 되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불행해지는거에요. 남도 불행하게 만들고, 기초공사가 탄탄하게 되야되요. 저는 그래도 저 나름대로 교인이나 청년들이나 가까이있는 특히 자주만나는 직원들이나 교역자들, 그런 것을 가르치려고 애를 많이 쓰잖아요. 교회 지면서도 더 그러지 않았어요. 아무튼 기가 막히잖아요. 하루는 말이에요. 내가 목사지만, 여기서 소리소리르 질렀어요. 8시에 출근인데, 8시15에 터덜터덜 걸어오는 거에요. 당신들이 그렇게 해가지고 밥을 먹겠느냐고! 당신들 같은 사람들 때문에 이 나라가 이렇게 부지런 하고도 이것 밖에 못산다고! 내가 소리소리 질렀어요. 인간성부터 변하라고 말이지, 어디가서 말이지 한번 어떻게 해가지고 이나 남겨가지고 돈이나 벌어먹을라고, 기본적이 신이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야단을 쳤어요. 그 다음부터는 이제 기선을 제압해서 말이지, 항상 일을 하다가 잘못하면, 항상 인간성을 이야기 항상 했어요. 이것을 말이죠 엉터리로 막 해 논 거에요. 다 부셔버렸어. 다시해라. 어떻게 그렇게 하냐 이거에요. 당신돈 들여서 이렇게 하겠냐고, 당신이 당신돈 들여서 하면 이렇게 하겠느냐 이거에요. 해 놓고 가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정신 때문에 나라가 이 것 밖에 못산다 이게에요. 기초 공사가 제대로 안 됐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 가를 믿음의 도리! 그리고 그 도리에 대한 첨착! 그 도리에 대해서 이렇게 집착하고 그것을 꼭 붙드는 이것이 없이는 신앙의 열심히 아무것도 아니라 이거에요. 어제도 제가 한국의 지식인들이 사회를 비판하면서 쓴 글을 읽었어요. 뭐라 그러냐면 교인들을 할렐루야 부대라고 불러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뭐냐하며는 생각이 없이 그렇게 움직인다 이야기에요.. 뭐가 있다면 우르르 몰려가고 말이지 그런 식을 한다 이거에요. 그렇게 하면 되겠냐고 이거에요. 자신 나름대로 신앙의 참된 도리가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먼저 알고 먼저 지성적으로 알고 그리고 그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굳게 붙들고 살아야 한다는 거에요. 그러고 살아야 되잖아요. 근데 이러한 것들은 그저 기본적인 장식일 뿐이고 문제는 어떻게 내가 예수를 믿고 예수님 덕좀 보고 이 세상에서 잘좀 살까. 어떻하면 좀 내 인생 살이 해나가는데 예수님을 이용할 수 있을까 이런 식으 생각을 가지면 안된다 이거죠. 그래서 오늘 사도가 뭐라하냐면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네 인생을 생각하지 말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이게 바로 사람의 몸을 입고 대제사장으로 오시고 우리의 믿음의 도리의 사도이신 그 예수님을 따르는 방식이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거.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거. 그래서 이 책을 손에서 놓으면 안돼. 성경책은 물론이고 그다음에 무슨 책이든지, 나로 하여금 믿음의 도리를 깨닫게 하는 책을 “무슨 책 몇 페이지 읽어요?“ 그럼 그것을 다 대답을 할 수 있어야 되요. 항상 들려져 있어야 되요. 언제까지 죽기 직전까지, 왜! 하루라도 살아야 하니깐, 진리의 빛없이 어떻게 살겠어요. 거기에 마음을 두고 그것을 굳게 붇들고 살아가는 그것이 바로 구도자의 삶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