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일 새벽예배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
말씀으로 인도하는 목자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사도가 간곡히 타이릅니다. 그리고 하반절에서는 왜 그래야 되는 지를 설명을 하는 거죠. 그것이 물론 전체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이니깐, 그렇게 하도록 하지마는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영혼을 인도하는 자들, 그들에게 순종해야할 이유가 있고,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그렇게 순종하고 복종해야하는 이유가 두가지인데, 하나는 그렇게 말씀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사람들에게 있고, 또 하나는 가르침을 받는 자신에게 그러해야 할 이유가 있다 이 이야기죠. 첫째로 말씀에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해야 할 이유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고 있느냐며는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애를 쓰되 마치 경성하기를 마치 자기가 회개할 자인 것처럼 한다. 여기서 회개는 뉘우치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어카운트 하는 것이에요. 해하려서 계산하는 것, 정산하는 것을 이야기 하는 거거든요. 여기서 경성한다라고 하는 의미는 깨어있다 라고 하는 뜻이란 말이죠. 사실은 잠드는 것은 굉장히 쉽지만, 깨어있는 것은 굉장히 어렵죠. 단순히 깨어 있는 것을 여기서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있는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감지하고 그리고 거기에서 감지되는 어떠한 것들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그런 준비를 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거든요. 여기에서 경성한다라고 하는 의미는 단순히 깨어있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면밀하게 살피면서 어떤 문제가 일어나면 거기에 대처하고 그러는 거죠. 비유를 하자며는 응급환자를 돌보는 것과 같은 그런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에요. 그런 사람들은 너희영혼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만약에 너희가 영혼이 병들거나 아니면, 죄를 짓거나 아니면 뒤로 물러가거나, 한 이런 모든 상태에서 마치 응급실에 있는 환자를 돌보는 의사나 간호사처럼 그렇게 깨어있는 상태에서 너희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는 그 사람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이 맡다. 목양의 관계에서 순종이다 복종이다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기계적이고 비인격적인 복종을 이야기 하는 것이아니에요. 그러며는 어떤 의미의 순종이고 복종이야. 인격적이고, 그리고 신앙적이고 그리고 하나님 말씀 중심적인 순종이고 복종이어야 한다. 라고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영혼을 인도하는 목회자들도 그리스도를 만났고 또 그리스도를 담고 온전한 신자가 되기 위해서 주님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니깐, 그렇게 주님을 추구하고 온전한 삶을 살아가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니깐 그렇게 하다가 보며는 그러며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주님을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할 지를 가르치고 이런 모든 것들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권위와 목자에 대한 존경심과 이런 것들이 모두 어울어져 순종하고 복종하는 그런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깐 어떤 두려움과 내가 목회자에 뭔가 이렇게 잘 해야지만, 내가 하나님께 복을 받을 것이다 라고 하는 기복적인 기대에서가 아니라 물론 올바르게 목회를 잘하는 목회자들에게 순종하고 잘 협력하고 하면 물론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죠. 단순히 그것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하나님의 말씀이니깐, 그렇게 하는 것이어야 된다 이거죠. 그러나 사실은 목회자가 어떻게 교인들에게 개인적으로 당신은 나에게 복종하라 이렇게 요구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그들에게 감동과 감화를 주고 그래서 하나님 때문에 순종하게하고 예수그리수도 때문에 복종하게 하고 그런 것이 되야 되잖아요.
예) 한번은 교회에서 가슴아픈 것은 뭐냐하며는 무지한 상태에서 불순종할 때, 그때에는 제일 마음이 아파요. 한번은 어떤 일이 있었나며는 어느 지체가 제가 참 귀하게 생각하고 가까이 신앙생활 잘 하게 해주고 싶었던 형제 였는데, 어느날 교회를 떠났어요. 떠나는 이유가 뭐냐 그랬더니, 너무 황당해요. 그때에는 교회가 커졌기 때문에 사실 한사람 한사람 불러서 왜 교회를 떠났냐. 그럴 개제도 안되고, 본래 그렇게 목회를 안해 왔으니깐, 근데, 왜그러냐. 이유가 굉장히 황당해요. 자기는 성격상 성경 한절을 가지고 그렇게 깊이 오래 하는 설교가 싫태요. 그게 교회를 떠나는 이유에요. 그래서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교회로 가보고 싶데요. 그래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그랬죠. 이런 것들이뭐냐하며는 무지한 상태에서 판단의 기준도 없이 자기 중심적으로 흔들리는 거거든요. 이런거죠. 굉장히 성령님께서 슬퍼하시죠. 벌써 오래된 이야기 인데, 지금도 그런 이야기 할 때면 마음이 아파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고 어떻게 살라고 하시는 가 라고 하는 거거든요. 비유가 하나 떠올랐는데, 옛날에 보면 왕이 조서를 내리잖아요. 누구누구에게 사람을 보내잖아요. 누구누구아무게는 이러이러한 관직에 임명하니깐, 와서 받아라. 보낼 수도 있고 아니며는,어명이요! 하며는 맨발로 뛰어나와서 마당에 엎드리잖아요. 그러면 넌 사약! 그러면 약사발 먹고, 또 임금이 보낸 그것도 선물인데, 사약도 선물이란 말이에요. 사짜가 선물이란 말이에요. 그것을 임금이나 먹으라 그래라 그러고 발길로 차는 장혜빈 같은 사람도 있지마는 대부분 사람들은 일단, 선물을 주셨으니깐, 임금님 있는 쪽으로 절을 한번 하고 대게 사약은 원삿으로 한번에 쭉 마시고 죽는 거 아니에요. 근데 인제 이런 내용이던 저런 내용이던 간에 어명이요 하면 막 뛰어나와서 엎드리죠. 그리고 왕이 내리는 조서는 비단으로 꾸며져 있잖아요. 마치 이런 것과 똑같아요. 어명이요! 그랬는데, 막 뛰어나와서 절을 하고 그리고 어명이요. 그리고 사실 어명을 낭독 하는 동안에는 고개를 못 들거든요. 임금이 말씀하시는데, 그래서 땅에 엎드려서 어명을 다 듣고 나서 고개를 들고 어명을 이행하시오. 나는 이런 파란 비단 종이에 싼 것은 싫어해!. 그리고 집어 던지는 것과 똑같다 이거에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비단으로 쌓여 있느냐 아니면 창호지로 쓰여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임금의 어명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그런 황당한 경우도 참 많이 만나게 되고 그래서 결국은 자기 안에있는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미끄러 지고 불순종하고자 하는 마음, 이런 것들이 함께 어울어 지면서 탈출구를 찾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불순종 하게 되는 거죠. 사실 이 세상에 완벽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지마는 여러분들은 만족을 안하실지 모르지마는 사실 저는 교회를 돌보고 행정을 하고 원칙을 세워서 원칙대로 교회를 이끌어가 가고 하는 것에 사실은 설교 못지않게 신경을 많이 쓰고 힘을 기울입니다. 설교야 설교 할 계획을 따라 한다고 하지만, 교회 이 행정과 부지부식간에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서 올바르게 대처하는 이런 일관된 교회의 운영, 이런 것들은 사실 시도때도 없는 것이 거 든요. 설교는 그래도 시도 때도 있잖아요. 언제 언제 한다라는 그 계획이 있잖아요. 그래서 교역자들하고 제가 힘들어 하는 것중에 하나가 뭐냐하며는 교역자들이나 직원들이 일을 처리해 나가는데, 일관성을 잃어 버릴 때, 이럴땐 이렇게 하고 저럴땐 저렇게 하고 이사람한테는 이렇게 하는데, 또, 저사람 한테는 저렇게 하고 이런 것들 때문에 제일 힘들어 합니다. 사실 이번에도 제가 힘들었어요. 많은 것들을 부교역자에게 맡겼는데, 엄마 아빠가 교회 나오는 사람들은 엄마 아빠 모두다 문답교육을 받아야 되었거든요. 근데, 어떻게 교역자들이 부교역자들이 쉽게 결정을 했는지, 엄마 아빠 중에 한사람만 받으면 된다 이렇게 한거에요. 제가 아주 심하게 나무랬죠. 아빠가 아에 교회를 안나 올 경우에는 어쩔 수 없죠. 문답에 참여 시킬 수가 없잖아요. 교회 자체를 안나오는데, 그럴 경우에는 한 쪽만 보고 교육을 시켜서 줬는데, 멀쩡히 둘이 나오는데, 부부중에 한사람만 받는다면, 그러면 신앙에 대해서 뭘 물어보면 “아빠 하나님이 어떤 분이야? 그러면 나는 모른다 엄마에게 가서 물어봐라!” “엄마 어디갔어? 일 나갔는데, 저녁때에 올 거야” 이렇게 교육시킬 수는 없잖아요. 그러면, 그 전해에 그렇게 바쁜데 부부가 나와서 4주동안 참석하면서 힘들게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것 아니에요. 뭐! 이렇게 다 바쁜 아빠 안 나오고 엄마만 나와도 세례주면서, 왜 그때는 우리 남편 안 나왔다고 세례에서 우리 아이 떨어 트려가지고 일년동안 세례도 못받하고, 이럴껏 아니에요. 이렇게 하면 교회가 자꾸 공정성을 잃어버리고 사람들에게 자꾸 불신을 사게 된다 이거죠. 그게 왜 그렇게 문제냐! 그런 것들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가지고, 그렇게 자기가 하나님의 나는 하나님이 싫다! 나는 은혜가 떨어졌기 때문에 내 영혼이 병들었고 그리고 죄성이 살아나서 나는 하나님이 말씀에 순종하기 싫다 그렇게 떠들고 다니는 교인들은 거의 없어요. 대부분 문제는 뭐냐하며는 그런 비 합리적이고 말도 되지 않는 교회의 처사를 보면서 분노나 아니며는 마음에 상한 것들이 촉발 되고 그리고 그런 것들을 계기로해서, 불평과 불만을 가지게되고 그리고 그 뒤에는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자기가 순종하지 않으려고 하는 모든 것들을 한거번에 담아가지고 다 쏟아 내 놓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아주 그런 문제에 있어서 올바르게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교회를 운영하면서 어떻게 모든 사람이 다 좋다 그러겠어요. 그리고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다 좋다 그런 것은 없거든요. 오죽 했으며는 탈무드에서 만장일치는 무효라고 그랬겠어요. 그렇니깐 다 그런 거거든요. 그렇게 사람마다 열가지면 열가지 색깔이 다 다르고 생각이 모두 다른데 어떻게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깐 모든 사람의 마음에 맞을 수는 없죠. 현실 적으로 그리고 사람마다 다 판단이 다를 수도 있고 그러니깐, 지도자란 사람이 필요한 거에요. 교회 지을 때도 마찬가지 였거든요. 그래서 먼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로 다 들어보고 전문가의 조언도 구하고, 고민을 많이 하죠 결단을 합니다. 그리고 나면 그러면 결국은 누군가가 그것을 짊어 지고 일관되게 한사람이 끝까지 쭉 가야되요. 근데 그것이 완전 할 수 있겠어요. 완전 할 수 없죠. 그러기깐 교회를 다 이렇게 지어놓고도 지금도 그래요. 어떤 것은 그래요. 아이 저것은 아이 잘못했다. 돈을 좀더 들여서 아끼지 말고 재데로 해서 후환이 없도록 했어야 했는데, 그때 저것 아끼는 바람에 계속 돈들어 가는 구나. 또 어떤 부분은 아이 괜히 좋을 줄 알고 돈을 더 들였더니 관리 하기만 힘들고 계속 애만 먹는 구나, 참 판단 잘못했다. 그런 것 있거든요. 지금도 그런게 교회 보면서 반성을 많이 해요. 있어요.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보며는 그래도 그 수준에서는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해냈다. 그렇게 생각하죠. 그래서 마당은 A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천정은 B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바닥은 C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문짝 만드는 것은 D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다음에 색깔 칠하는 것은 다수결로 칠하고 그렇게 해가지고는 일이 될 수가 있겠냐고요. 안돼거든요. 그래서 모든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켜 줄 수가 없어요. 천사가 내려와서 무슨 일을 하면 모든 사람에게 만족이 될 수 있겠어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도 사람의 마음에 안드는 적이 있는데, 어떻게 이게 되겠어요. 그러니깐 피할 수가 없는 거에요. 요번에 교육관 문제도 그거 거든요. 뭐 어려움이라고 하는 것은 말 할 수가 없죠. 솔직히, 그리고 어떤 때는 저 자신도 아! 정말 하나님이 주셔서 했지만, 한 2년 후에만 했어도 내가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죠. 그러면서도 이제 생각을 하게 되는 거에요. 2층에 2부예배 끝나고 나서 3부예배 그 사이에 한번 지나가 보세요. 아이들이 복도에서 쭈구리고 신문지 깔고 앉아서 공과 공부를 해요. 그러니깐 그러면서 골목자체를 이렇게 지나 갈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부딪쳐요. 그래서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에요. 불편한 것은 참을 수 있죠. 근데 미래에 저 아이들을 교육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되나? 즉흥적으로 결정했겠어요! 전문가의 조언도 듣고, 고민도 하고 의논도 해보고 다 기도도 해보고, 근데 피할 수 없는 하난의 부르심이에요. 그러나 사실은 누가 그런 결정을 모두 다 좋다고 그러겠어요. 그런데어서 오는 지도자로서의 이 외로움이나 고충 같은 것들이 늘 있는 거죠. 설득시키고 이해시키지만, 아에 마음을 딱 세우고 설득 안되고 이해 안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거죠. 그러니깐, 그런 것은 어떻게 할 수 가 없는 거죠. 그래도 여러분들은 매우 착하고 말씀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니깐, 목회자를 믿고 순종하고 그러면서 이제 오는 거거든요. 근데 사실은 가장 어려운 것은 뭐냐하며는 미래를 우리들이 미리 보는 거거든요. 근데 그것은 미래를 보는 것도 힘들지만, 미래를 보고 지금 무엇인가를 미리 할 때에 그때는 희생을 당겨서 하는 거에요. 그것은 굉장히 어려운 거죠. 그래서 어떤때는, 너무 힘들다 라는 느낌이 들 때, 그런 생각을 내 스스로 고쳐 먹는 거죠. 커 다란 일을 결정을 했는데, 희생이 없이 어떻게 되겠는가, 작은 일이 아니라 엄청나게 큰일 인데, 이정도며는 그 일에 비하며는 희생이 적은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냥 믿음으로 가니깐 가지 정말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아직 신념과 확신이 있죠. 그것이 뭐냐하며는 지금은 그러한 결정에 대해서 조금은 동의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아마 3년만 지나가면 그때에 그렇게 하기를 참 잘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거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죠. 그것들을 미리 읽고 그렇게 결단을 하고 나아가할 의무가 목회자에게 있는 거에요. 그러니깐 마음속에는 항상 그런거에요. 이렇게 무엇인가 중요한 결정을 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희생, 결단 이런 것들만 없다며는 사실은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사면서 목회자로서 살 수 있을 것 같고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죠., 근데 그런 가능성은 별로 없죠. 그러니깐 고독하고 외로울 때가 있는 거죠. 어떻든지 간에, 여기서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했는데, 그때도 비록 지금 같이 커다란 교회가 건물을 가지고 이렇게 서 있던 것은 아니였지마는 당시에는 이 교회개념이 한 도시개념 이었거든요. 그러니깐 빌라델비아 교회, 그러며는 빌라델비아에 뭐 큰 교회가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빌라델비아에 있는 작은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들이 전체 연합을 가리쳐서 빌라델비아 교회라 이렇게 이아기 하는 거거든요. 가정교회의 연합을 이야기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깐 거기에도 조직이 있었을 거 아니에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으니깐, 교역자들도 이렇게 세워 져있고 장로들도 세워져있고, 다 이렇게 해서 움직일 거 아니에요. 헌금도 걷을 거고, 그걸 모아서 어떻게 쓰느냐는 문제도 나올 것이고, 행정이 없이 이세상에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 모든 일들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결국은 지도자가 있었을 것이고, 그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였고, 또 그 옆에 집사들이나, 장로들이나 돕는 사람들이 있어서 같이 의논해 가면서 해나갔을 거라는 거죠. 그래서 순종하라, 복종하라고 하는 것은 예수 잘 믿어! 그것만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것이 삶과 그리고 교회 생활 속에서 적용되어 나타난 모든 하나님의 말씀과 연장선상에 있는 모든 가르침에 대해서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것을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그것은 순종 할 수 없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 있고, 그리고 그 말씀이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과 목회속에 적용되어서 그래서 그 이끌어 가는 그 지도자들에게 잘 순종하고 복종하면서, 협력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된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죠. 나는 가끔 다른 교회에 가서도 하소연 하고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면, 거의 목회자 하고 어떤 인격적인 교류도 없이 그렇게 목회자를 막대하고, 목회자도 마음속에 특정한 교인들을 향해서 원망과 설움이 주렁주렁 맺혀있는 그런 관계를 보거든요. 그렇게 하면 신앙생활이 안됩니다. 그렇게 하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요. 저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데, 그사람을 인간적으로 아주 하찮게 여기고, 자기가 가슴을 풀어서 말씀의 젖을 먹여야 할 그 교인에 대해서 굉장히 경멸하고 모멸감 같은 것들을 느끼면서 원망하는 마음이 차있고 그런 속에서 어떻게 목양이 성럽하겠냐 이거죠. 심지어는 그런 속에서 노골적으로 사람들을 귀압을 해서 목회자를 대적하고 또 목회자가 몇몇 사람을 타겟으로 삼아가지고 정치적으로 공격을 하고 하는 그런 관계속에서 결국은 손해를 보고 파괴되는 것은 교회에요. 그리고 자신들의 영혼이 그렇게 망가지는 거죠. 이번에도 제가 어느 목사님을 잠깐 만났는데, 이런 이야기를 해요. 자기는 목회를 하면서 정말 어려운게 뭔가 그랬더니, 서운함을 이기는 것, 그것이 뭐냐 그랬더니 교인들이 자기를 섭섭하게 대해준다 이거죠. 그러했을 때, 그 섭섭함을 품고는 말씀을 전할 수 가 없지 않냐 이거죠. 질서가 잡힌 교회 후임 목사로 갔으니깐, 교회가 자기 맘대로 움직여 지겠어요. 말을 잘 안듣죠. 그런데 좋은 것으로 그렇게 하면 괜찮은데, 안좋은 것을 고치려고 그러는데, 안듣고 하면 마음에 상심이 생기 잖아요. 그러니깐, 그것을 그렇게 반대하고 그렇게 섭섭하게 할 때에 서운한 감정이 남는데, 이것을 생기는 것은 쉬운데, 털어 버리는 건 너무 힘들다 이거죠. 그러며는 사실은 목회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교인들도 마찬가지에요. 똑같이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 것들이 제일 용렬하고 마음에 어떤 것들이 탁 찍혀서 상하면, 그것을 절대로 마음에 풀지 못하는 사람들중에 한 종류의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들이에요. 안믿는 사람들은 가서 대포라도 한잔 하면서 푸는데, 하여튼 정말 용렬해요. 많은 사람들이, 그 목사님 이야기는 심지어는 그것이 20년씩 30년씩 돼서 대를 물려 온다 이거야. 그집에서 애가 태어나서 손수 자식 나서 며느리 얻으면, “저집 하고 상대 하지 마라.” “아주 아무개네 집안은 대대로 문제가 많은 집안이다.” 투표를 해도 탁 편이 갈려서 나오고 그렇게 해서 무슨 목회자 되겠냐 이거에요. 무슨 신앙생활이 되겠냐 이거에요. 그러니깐 그런 것들이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매우 나쁘고 아주 악한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잘 분별을 하고 그리고 목회자는 교인을 교인은 목회자를 이해 하려고 애쓰고 그래서 다른 것들은 거기에다 비하면 사소 한 것이에요.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들러 가고 감화를 받고 또 변화되고 또 새로워 지고, 하는 이것은 다른 것과 바꿀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중요한 거에요. 그러면서 순종하고 복종하는 관계속에서 살아가는 그런 신앙생활이 되야 되는 것입니다. 근데 왜 목회자에게 순종하려고 하냐 하며는 그 사람들은 너희의 영혼을 마치 자기가 회개할 자인 것 처럼 한다. 그게 뭐냐하면 저사람이 신앙생활을 잘못해서 영혼의 상처를 입으면, 내가 문제가 되는 것처럼, 내 영혼이 그런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민 하는 사람들 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깐 어떤 의미에서는 환자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몰라도 의사가 그것을 정확하게 잘 알 듯이 그렇게 영혼을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이니깐 너희들이 순종해야 된다. 이것을 애기해야 되는 것은 무슨 뜻이에요. 이때에 이렇게 은혜가 넘치는 때에도 불순종하고, 악심을 품고, 대적하고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아니에요. 어느시대나 그런 사실들이 있기 마련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