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4일 새벽예배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
녹취자 : 한지인
가르침을 받는 양떼들이 말씀을 가르치는 하나님의 일꾼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해야 할 두 가지 측면의 이유가 있다고 어제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는, 그 사람들에게 이유가 있고 또 하나는 가르침을 받는 본인들에게 이유가 있다고 말씀드리면서 어제 그 첫 번쨰를 말씀드렸습니다. 전체를 다 반복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귀한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고, 그것은 기계적이고 노예적인 복종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신앙적인 복종이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교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지식의 밝은 빛이 없으면 그가 올바르게 순종하려고 해도 순종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단에 속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오히려 그런 쪽에 있는 사람들이 순종을 잘합니다. 또 그렇게 무언가 자기가 복종할 수 있는 이유가 없으면 정상적인 신앙을 버리고 이단에 깊이 빠질 수가 없습니다. 그럼 한번 생각해봅시다. 올바른 복음 교리를 가르치지 않고 교리가 전체적으로 틀렸고, 바른 신앙을 가르쳐주지 않는데 거기에 순종하고 복종하면 마지막에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은 자신의 영혼과 신앙, 인생에 대한 전적인 파괴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본인들이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그릇된 신앙을 가르치는 사람은 더 많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순종하고 따랐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순종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참되고 분명한 지식이 없다면 본인 자신이 이러한 나를 인도하는 말씀 사역자, 목자에게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가 아니면 순종해서는 안 되는 사역자인가 분별해낼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제일 처음에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시면서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드러내는 것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았다고 온 사람들을 처음에는 천사처럼 맞이했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과정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물려주시려 했던 참된 신앙이 아니라고 드러내서 그 가르침을 믿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그 교회에 처음 사랑이 있었을 때에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신앙의 아름다운 덕목으로 회고하시면서 칭찬을 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에게 이런 의문이 생겨날 것입니다. 어떻게 내가 한 목자가 또는 말씀사역자가 내게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이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그들보다 훨씬 더 말씀을 적게 아는 내가 판단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두 번째는 이 세상에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들 중에 진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사람, 전적으로 모두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할 수 있을까. 우선, 두 번째부터 답변을 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이것이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유일한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해석과 적용이라고 하는 두 틀을 통해서 성도들에게 가르칩니다. 성경만 읽어주는 것은 말씀사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존재할 때에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말씀을 풀고 해석해서 사람들이 알아듣게 적용해 줄때에 성령의 눈부신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를 들면, 그들도 모두 구약성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도들이 설교하면서 그 구약성경을 풀어내기 시작했을 때에 성령이 역사하시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우리가 어찌해야할꼬 하고 찔림을 받으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이미 구약을 알고 있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시편부터 시작하여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시면서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신지에 대해서 풀어서 그들에게 알려주시기 시작할 때에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 세워주신 사람이 바로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전해주는 목회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과 적용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풀어서 여러분들에게 알려주는 일이 목회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에게 기대해야 할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실 이일이 기대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고, 가장 대부분의 일이며, 다른 일에 있어서 다소 모자란다 할지라도 이일을 잘 하면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것이고, 다른 일을 잘한다 할지라도 그 일을 올바르게 하지 못하면 올바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인간이 그것을 풀고 적용할 때 그것이 완전하게 하나의 차이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100% 부합한 완벽한 해석과 적용을 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은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천사들도 그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어떻게까지 신뢰하고 판단할 수 있느냐. 그것은 이렇게 답할 수 있습니다. 설교를 비롯해서 그 어떠한 성경에 대한 가르침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성경에 기초해서 해석되고 적용되어 나오는 것으로써, 해석된 가르침과 성경사이에 정확한 연관성을 유지하고 있으면 그 해석과 설교도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정도는 기본적으로 성도들이 판단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양떼는 목자를 알고 목자도 양을 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경을 읽으면서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사람들은 성경 66권을 모두 외우지 못해도 누가 기독교에 대해서 가르쳐주면 그 가르침이 올바르다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교리적인 지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가르침이 참다운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부분적인 인격적인 결함이나 교회를 이끌어 가고 운영해 가는데 있어서 자기와 생각이 조금 다르다는 견해의 차이, 혹은 인간적인 미숙함에서 오는 실수 이런 것을 한 두가지, 서 너가지 발견하면서 그런 결함과 실수가 있으니까 당신이 전해주는 모든 하나님의 말씀도 틀렸다고 덮어버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매우 올바르지 않습니다.
그럼 그 바로 위에 질문한 내용은 그럼 우리가 어떻게 가르치는 자 보다도 성경지식이 미숙한데 어떻게 그것을 모두 다 알 수 있겠는가 이것은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먹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집에서 흔히 해먹을 수 없는 많은 기술을 요하는 요리를 먹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 요리를 만들 수는 없지만, 요리를 먹으면서 맛있다 맛없다 정도는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들어가는 식재료나 요리 방식을 보면서 우리가 그것을 그대로 재연해낼 수는 없지만 몸에 해롭겠다 이롭겠다 정도는 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기름기가 많고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튀겼는데 그 기름속에 있던 탄 가루들이 묻어있으면, 우리는 그런 요리들을 만들지는 못해도 보면 이것이 오래된 기름에 튀긴 것이고 매우 몸에 나쁠 것 같다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비록 성도가 성경 66권을 모두 외우고 전문적인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정상적으로 올바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알고 영접하고, 그리고 성경을 꾸준히 읽게 되면 성경 속에 흐르고 있는 전체적인 통일성에 대한 이해가 생겨납니다. 그래서 존 오웬이라고 하는 청교도 신학자는 성경을 읽는 것 그 자체가 성경 전체 속에 내재하고 있는 통일성을 이해하게 하는 가장 훌륭한 방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배우지 않으면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고 알아도 항상 코끼리 다리 하나를 만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지체가 열린교회에 와서 신앙생활한 느낌이 어떻습니까 물었더니, 예전에 신앙생활을 할 때에는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코끼리 전체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눈에 볼 수가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교리를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려고 하지 않는 교인은 신앙생활을 하기를 포기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엄밀히 말하면 성경에서 우리의 섬김을 받으시길 원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가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또 다른 신을 숭배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리를 배워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식이 생겨나고 그것을 깨닫고 나면 그 다음에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참다운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가 하는 기본적인 얼개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인간이기 떄문에 해석이 완벽할 수 없고 조금씩 차이 날 수 있지만, 그러나 아주 사소한 견해 차이일 수 있는 것이 있고, 이것을 받아들이면 나의 기독교 신앙이 망가질 것이라고 하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후자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전자는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그 가르침이 워낙 없거나 혹은 많이 잘못됐을 경우는 그런 목양 관계 속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 자체가 비영적인 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거기에서 신앙의 회복은 불가능해집니다. 그런 것들을 판단하면서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순종할 착한 마음이 있어도 총명한 지식이 없으면 어느 때에 순종해야 되는지를 알지 못하고 이 순종이 올바른 것인지 그릇된 것인지를 스스로 판단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이 풍부해도 옳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모두 순종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보십시오. 그렇게 말 안듣고 공부 안하고 학교 가서 까불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나쁜 짓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하고 싶어 하고 한다는 것입니다. 알아도 순종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데, 아예 모른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순종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의 밝은 빛 속에서 살고 또 한편으로는 올바르다고 판단되는 것에 대해서 순종하려고 애를 쓰면서 자신의 마음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고민할 때에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놓고 고민해야 됩니다. 그래서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다면 순종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중요하게 만드는 신앙입니다. 거기에 복종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이 목양의 생활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너무 가슴 아픈 것은 경제적으로 힘들고 육체적으로 고단한 것은 견딜 수 있지만, 한때 말씀의 은혜를 받고 그래서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참된 기독교 신앙이 어떤 것인가를 알던 사람들이 어느 한순간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고 교회를 박차고 나가거나 악한 마음을 품고 교회에서 쓴 뿌리로 자라는 사람들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볼 때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이것은 참된 신앙이 무엇인가 하는 많은 진리는 필요가 없습니다. 어느 한 지점에서 목회자와 생각이 다른 것입니다. 그것 한 가지를 가지고 그 많은 진리를 다 엎어버린 것입니다. 이점에 있어서 나는 목회자와 생각이 다르니까 지금까지 당신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쳤든지 간에 이것은 다 아니다 하고 덮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럼 마지막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순식간에 영혼에 어두움이 가득 드리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아예 덮어버리고 그런 어떤 한 가지 사실이나 혹은 한 두가지 자신의 상식과 판단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그 사람으로부터 말씀 듣기를 거절하고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 영혼에게 어떤 유익이 있겠습니까. 캄캄한 어두움이 드리웁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립니다. 교회가 합리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한사람에 의해서 휘둘리는 교회가 아니라, 지도자가 있지만 할 수 있으면 지도자들이 그런 것들을 신앙이 있고 올바른 교리적인 판단을 가진 사람들에게 자꾸 위임을 해서 그들이 동일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 안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합의를 이루고 합리적인 길을 찾아가게끔 해야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런 것들을 만들어도 소용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사람이 결정해도 마음에 안 들고 백사람이 결정해도 마음에 안 들어 결국엔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한 두사람에 의해서 휘둘릴 순 없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바르지 못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멀어지는 영혼들을 가끔 볼 때에는 그렇게 가슴이 아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일평생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정말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과 어떻게 신앙적으로 올바르게 관계를 갖고 어떻게 밝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안에서 그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해서 성령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무지 속에 맹종하는 그래서 결국 자신의 맹종에 대해서 스스로 신앙으로 책임을 지는 그런 불행한 길로 달음질하지 않도록 나 자신을 지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에 있어서 언제나 가슴에 새겨야 할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마음이 아픕니다. 그리고 그런 복종하고 순종하지 않는 양떼를 보면서 나는 하나님께 고민하고 이 길이 옳다고 가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명백하게 그것이 아니다라고 하는데도 만약에 목회자가 간다면 그것은 잘못된 사람입니다. 그런 모든 판단을 내리고도 이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가는데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가야되는데 그것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그것 때문에 합리적인 해결과 협의를 거두어 버리고 그것 때문에 신앙자체를 덮어버리고 지금까지 배우고 가르침을 받은 말씀 자체를 덮어버리는 상황을 볼 때에, 정말 그것이 목회자로써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경험하는 형벌과도 같은 고통입니다. 개인적으로라면 모든 것을 양보하고라도 그 영혼을 얻겠는데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목회자의 자리는 반드시 그럴 수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거기에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이 생겨납니다. 그런 것들이 너무나 아프면 하나님께서 차라리 데려가셨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까지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성숙하게 자기 스스로를 통제하고 그러면서 이끌어 갈 것인가 그런 것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