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새벽예배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히 7:13-15)
녹취자: 이새봄
앞에서 언급한 것과 똑같이 이제 아주 신비한 존재인 멜기세덱과 그리고 그 멜기세덱의 반차로 오신, 반차라고 하는 것은 같은 계열이다, 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 반차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제사장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이것을 상세하게 지금 사도가 설명을 하냐면,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이니까 무슨 사상에 젖어 있겠습니까? 가깝게는 유대교사상에 젖어있고 멀게는 구약사상에 젖어있을 것 아닙니까. 그들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한 제사장이시다, 그럴 때 선뜻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뭐냐하면, 제사장은 무슨 지파에서만 나옵니까? 그렇습니다. 레위지파에서만 나오는데 예수님이 그 육신적인 지파로 보면 유다지파인데 거기서 나온 예수님이 제사장이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그게 유대인들에게는 선뜻 잘 이해가 안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이해가 안가니까 이제 이것을 사도가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사도가 상세하게 설명한 것을 제가 더 상세하게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이런 것입니다.
이미 레위지파에 의해서 제사장 직분이 세워지는 것은 모세가 받은 율법에 의해 세워진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율법이 사람을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옛날에 드리던 그 제사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제사를 드림으로 속죄를 이루신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오셔서 다른 제사장들이 한 것과 똑같은 그 짐승을 죽여서 제사를 받치고 하는 그런 제사였다면 예수님이 레위반차를 좇아서 나셔야 마땅했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셨을 때 그 보내신 의도 자체는 그렇게 하려고 보내신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속죄가 아니라 영원한 속죄를 이루기 위해서 예수님 자신을 매우 특별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사의 성질이 그처럼 다르니까 역시 율법 아래서 지정된 그 제사장의 지파인 레위에게 속할 필요가 있었겠느냐, 그런 얘기입니다.
또 하나는 뭐냐하면, 율법이 들어오기 전에도 그 제사장이 있었잖습니까. 그 대표적인 사람이 멜기세덱이라는 존재 아닙니까. 그 사람은 족보도 없고 밑도 끝도 없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어떻게 해명할 것입니까. 그러면 만약에 예수님이 새로운 대제사장으로 오셨는데 그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 이전에 율법에 의해서 만들어진 제사장의 지파가 있었으니 그게 레위이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레위지파가 되어야 한다 , 라고 하면, 그렇다면 그 앞에 있었던 멜기세덱에 관련해서 이야기 하자면, 이미 율법이 들어오기 전에 멜기세덱이라는 대제사장이 있었으니까, 그러면 그 율법에 의해서 만들어진 제사장 지파도 멜기세덱과 관계가 있어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러나 멜기세덱은 신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육신의 지파를 가질 수가 없는 존재라 이것입니다. 그러면 율법에 의해서 만들어진 레위지파와 예수님 사이에 연속성이 없다고 한다면, 그 똑같이 신적인 존재인 멜기세덱과 율법 사이에도 연속이 없는 것 아닙니까. 연속이 없었어도 멜기세덱은 멜기세덱대로 제사장의 역할을 했고 그리고 레위지파의 후손들은 레위지파의 후손대로 제사장 노릇을 했으니, 그 레위지파의 일시적으로 드리는 제사를 위한 제사장들과 영원한 속죄를 드리는 예수님의 그 제사장 직분 사이에 연속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문제가 안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뭐냐하면, 그러면 이런 반론이 생길 수 있잖습니까. 멜기세덱이야 신적인 존재로 왔으니까 밑도 끝도 없고 족보도 없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지만, 예수님은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는데 그래서 유다지파에 속했는데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그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신적인 존재로 오실 수 있습니다. 밑도 끝도 없고 족보도 없는 존재로. 쉽게 얘기하면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서 육신의 부친인 요셉의 집안에 마리아가 시집을 가지 않았다, 라고 할 것 같으면 다시 말해서 사람의 몸을 빌고 사람의 족보를 빌지 않았다고 할 것 같으면 예수님이 유다지파일 이유가 없습니다. 성인으로써 하늘에서 내려오셨다면 어느 지파에 속했겠습니까. 진짜 새로운 멜기세덱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오셔서는 안되는 분이었단 말입니다. 왜. 멜기세덱은 제사를 드렸지만 자기의 몸을 제물로 드린 제사장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신적인 존재로만 그쳤어도 그는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사자체를 자신의 육신을 제물로 바쳤어야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 사람이셔야 됐고 참 사람이시기 위해서는 사람의 몸을 빌어서 태어나셔야 했고 그리고 사람의 몸을 빌으셔서 태어나셔야 했고 그렇다면 그 집안의 족보도 필요했고 어느 출신의 집안의 사람이다, 라는 그 지파의 소속까지도 따라 나온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님이 그 레위의 지파에 나오시지 않으셔도 됐다, 그리고 진짜 어느 한 지파에 속한 그 자체가 예수님이 참 사람으로 오셨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이 드리는 독특한 제사와 관련이 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뭐냐하면,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율법이 끝나고 복음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폐했으면 그 제사장의 직분도 함께 폐한 것입니다. 엄격한 의미에서는 예수님의 표현을 빌자하면 그 율법을 완성하신 것이지만, 어쨌든 완성이 되었든 어쨌든 간에 그 율법을 완성하셨지만, 그러나 어쨌든 믿는 자들에게 더 이상 율법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이야기입니다. 비유가 적합할는지 모르겠는데, 이런 것입니다. 어두우면 이제 우리들이 촛불을 켜거나 불을 켜지 않습니까. 그렇게 어두우면 촛불을 켜거나 불을 쭉 켜는데, 그렇게 불을 켜고 이렇게 하면 말입니다. 어두워지잖습니까. 그러면 불을 켭니다. 이게 밤에는 아주 유용하게 씁니다. 아침에 해가 떠서 온천지를 찬란하게 비춥니다. 태양이 떴다고 해서 그 불이 아까 켜놓은 그 여러 가지 등불들이 불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것이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됩니다. 밝은 태양빛 아래에서 책을 읽을 수 있으니까. 말하자면 그런 것입니다.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완성되고 더 이상 믿는 사람들에게 믿는 사람들을 율법으로 다스리지 아니하시니까 당연히 인간을 구원하는 제사도 일시적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제사의 그것들을 폐하고 또 완성하셔서 영원히 하나님 앞에 단번에 나아가는 속죄의 제사가 가능해지게끔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일을 하셨으니까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 또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유대인들에게 쭉 설득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를 위한 제사장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그리고 참 사람으로 오셔서 레위지파의 자손들이 드린 육신적인 제사장, 율법 아래에서의 제사장들이 드리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신다, 그 속죄의 은혜를 우리가 기억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