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6월 5일 교직원예배
“당신이 득의하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고하여 이 집에서 나를 건져내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치 아니하였나이다”(창 40:14-15).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은 잘난척 하는 사람, 직장 생활에서 왕따가 되는 비결은 잘난척 하면 됩니다 그러면 정말 자기 혼자있게 됩니다 그 잘난척 하는 사람이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 그나마 권력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그 사람곁은 떠날수가 없는데, 권력이 없으면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합니다 잘난척 하는 사람은 비록 권력을 가지고있어도 주위에 남는 사람은 아첨꾼들만 남게 됩니다 그런데 그 잘난척 사람들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임을 전가하거나 고자질하는 사람입니다 잘난척 하는 사람은 그냥 싫어하는데 싫어하니까 사람들이 피한단 말이에요 사람들이 고자질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들은 주위에 사람이 공격적인 사람들이 생겨나는 거에요 제가 이 요셉을 아주 좋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직장 생활을 7년 반정도 했나 그렇습니다. 3년은 지긋지긋해서 사표를 써서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직장생활을 했어요. 불행했어요 정말 치사하고 더럽고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 어디 다니냐고 사람들이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싫었어요. 3년 반 그 후는 정말 행복하게 직장 생활했어요. 마지막 그만둘 때 한 몇 달을 제외하고는 정말 행복하게.. 그때 직장생활 할 때 저는 요셉처럼 되는게 꿈 이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제가 어느 정도는 그렇게 직장생활을 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에게 이렇게 마음이 끌리는 중요한 이유가 뭐냐하면은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지금 이 성경의 무대가 어디냐 하면은 감옥 속에 있는 거거든요 감옥 속에 있는데 이 감옥 속에서 무슨 얘기를 하다가 이 얘기가 나왔냐 하면은 감옥에 있는데 굵직한 죄수 둘이 들어왔어요 바로 가까이에서 술을 맡은 관원장과 떡을 맡은 관원장이 들어왔어요 근데 각기 꿈을 꿨는데 그 꿈을 해석해달라 그러는데 요셉이 신령한 사람이기 때문에 꿈 해석을 잘했거든요 그래서 해석을 했는데 떡 맡은 관원장은 삼일후에 왕께 부름을 받아서 목이 잘리고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을 하겠다는 해석이 나왔어요 그러면서 이제 이 사람에게 입을 여는거에요 나는 히브리에서 끌려온 노예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곳에 이렇게 갖혀 있을만한 일을 한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자기의 그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간곡하게 부탁하기를 바로 곁에가면 내 이야기를 해서 나로 이 억울한 옥살이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그 얘기였거든요
이 사람이 왜 옥살이를 하게 되었어요? 보디발의 아내 때문이거든요 보디발의 아내가 이 젊고 준수한 청년을 보며 마음이 동해서 확 덤벼든거에요 그리고 끝까지 거절하니까 앙심을 품고 이 남자에게 누명을 씌운거에요 그래서 결국은 보디발에게 이 일이 알려졌고 보디발이 분노해서 이 종을 내어쳤단 말이죠. 그런데도 이상하게 거기서도 변명하는 말이 안 나와요. 사실은 여러분이라면 그럴수 있겠어요? 지금 보디발의 집에 왜 감옥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은 경호실장쯤 되는 사람의 집에 있는 옥이었으까 구약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추측하냐 하면은 여기는 중요한 정치범들을 가려서 가두는 아주 엄중한 감옥이었을 거라고 생각을 한단말입니다 들어온 사람들이 잡범들이 아니라 범털들이, 큰 죄수들이 들어오잖아요 그러면 자기 운명이 어떻게 될것이라고 하는 것은 뻔하잖아요 엄밀하게 말하면 이 옥에 갇혀있는 사람은 거의 사형받을 사람들만 갇히는 거잖아요 그러면은 당연히 진실이 그게 아닙니다라고 외칠거 아니에요 “저 여자가 나를 유혹했는데 내가 끝까지 안된다고 그랬더니 옷을 팽개치고 도망을 갔습니다 이게 지금 나의 상황입니다” 라고 누가 얘기를 안하겠느냐 이거죠 그게 무슨 고자질이냐, 책임전가가 이거죠? 그랬는데 왜그런지 일체 얘기를 안하는거에요 그러면 동기가 무엇이었을까요? 왜 말을 안했을까요?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자기를 거두워주고 그 집에서 이제껏 순적하게 종살이를 하게끔 돌봐준 보디발의 행복을 위해서죠 후의에 대한 보답이었어요. 이 사람이 한 나라를 경영할만한 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거죠
한 사람의 유능함과 한 사람의 마음의 크기는 꼭같은게 아니에요 유능한 사람은 어디가든지 실무자로서 일을 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어요 유능하기만 하면 돼요 그런데 경영하고 사람들을 부리는 지도자가 되기위해서는 개별적인 일들을 처리하는 유능함 그 위에 정신의 크기가 커야돼요 그 큰정신으로 사물과 사람들 속에 이루어지는 질서를 입체적으로 불수있어야 돼요 그런 정신의 크기가 매우 크도록 요구받는 직위가 뭐냐하면 왕이나 대통령이이에요 이건은 보통 커다란 마음의 크기가 있어서는 안되는거에요 아주 커서 평범한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다른 국면들을 보면서 총체적으로 이것들을 다룰 수 있는 지략을 가진 사람이어야 된다는 거죠 그런거에요 이런 것들이 잘 나타나는 것이 어디냐 하면은 전쟁터에요
그런데 이 사람에게 그런게 있었던 거죠 아니 어떻게 저딴 여자가 있을수 있나? 그리고 분노해서 그 여자를 고발해서 처벌하게 하고 그리고 보디발에게 이야기를 하면 그러면은 그 여자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고 보디발의 집안엔 말할 수 없는 고통스런 일이 일어나잖아요 그죠? 그러면 우리가 추측하자면은 보디발의 이 아내가 정실이었을 텐데 그렇게 해서 바람을 피워서 가문에 먹칠을 했다는 얘기가 바로의 궁에까지 퍼지게 될것이고 그러면 그 집안은 말할수 없는 많은 질서들이 깨뜨려지는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되는거죠 그런 많은 일들을 일으키면서 자신 혼자 그 위기를 모면해 보고자하는 그것이 없었다는 거죠 이게 바로 그 사람이 가지고있는 마음의 크기를 보이는거에요
교회에서도 종종 보면은 진실을 가려낸다는 미명하에 교회를 온통 박살을 내는 사람들이있거든요 근데 그 사람들이 꼭 누구냐하면 빈대를 잡기위해서 초가 산간을 태우는 격이에요 그렇게 해서 자기 자신이 법원에서 옳은 사람이다라고 판결을 받았어요 그 동안에 교회는 수없이 상처를 받은거에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뭐라 그래요 “차라리 너희가 불의를 당하는것이 낫지 아니하냐? 고린도서에서.. 근데 이제 잡힐 그당시 가장 격렬한 감정의 상태에서 보디발에게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는 것도 참 대단한 거지만 그렇게 세월이 많이 흐르기 전에 곧바로 이 사람이 죄수로 들어간 그 감옥에서도 또 간수들에게 인정을 받는거에요 그래서 옥에있는 모든 죄수들을 이 사람을 총무 비슷하게 삼아서 죄수인 요셉에게 맡겨서 돌아보지도 않는 그런 고난을 준다 이거죠 그러니까 이 사람의 정신과 마음의 크기가 그 도량이 얼만나 활달하고 컸는지 보여주는 거죠 비록 가정의 상처는 지울수 없어서 크게 통곡하며 가슴을 찢으며 울었지만은 과연 한 나라를 경영하고 남을만한 그런 마음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쓰시는거죠 근데 세월이 한참 흐르고 이제 술맡은 관원장에게 얘기를 할 만도한데 끝까지 그 얘기를 묻어두는 거에요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만 얘기를 하죠 나는 여기에 갇힐만한 일을 한 사람이 아닙니다
요셉은 요즘말로 말하면 그렇게 쫀쫀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죠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큰 나라를 경영하겠느냐 이거죠? 그뿐만이 아니죠 이 요셉의 마음의 씀씀이의 크기가 어디에서 나타나냐 하면은 그 흉년이 들면서 곡식을 모으죠 그 땅들을 다 사잖아요 바로의 것으로 다만들어 버리잖아요 그래놓고도 ‘주십시오‘ 그러는 사람들에게 곡식을 또 주는거에요 빌려주는거죠 그렇게 해서 뭐라고 상기시키냐 하면은 온 세계를 보존하고 구하기위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이런 기회를 주신것입니다 이런 큰 마음의 크기를 가진 사람이에요
끊임없이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의 특징이 뭐냐하면은 누구에게도 신뢰감을 주지 못해요 끊임없는 핑계속에서 자기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들은 누구에게도 신뢰를 받을수 없어요 상사에게 뿐만 아니라 동료에게도 피해를 당한 부하직원, 누구에게서도 신뢰를 받을수가 없는거에요 그렇게 되는거죠 그리고 끊임없이 관계가 깨뜨려지게 되는거죠
보디발의 아내는 그 이후로 성경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지만 아마 요셉이 그렇게 그렇게 그 고난을 모든 거치면서 국무총리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았을 거에요 그때 무엇을 느꼈을까요? 근데 이제 더 재밌는 것은 이렇게 애원을 했는데도 이 배은망덕한 인간이 또 잊어버립니다 신경을 안썼다는 거죠 요셉이 해석을 해 주어서 결국은 희망을 갖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경 안쓰죠 해서 세월이 많이 흘러간 다음에 그때서야 바로가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이 사람이 생각이 나서 불러오는데 그때 요셉의 나이가 30세였어요 후에 애굽에서 나오는 고고학적 자료를 뒤져보니까 당시에 공무를 담당할 수 있는 최소 나이가 30세로 나와요 하나님이 그때까지 감춰놓으신 거죠 그 이전에 감옥 속에서 풀려 나왔으면 다시 노예로 컴백해서 버벅거리다 인생을 마쳤겠지요 30세까지 감옥속에 딱 묻어 두셨다가 섭리속에 딱 꺼내 놓으실 때 공직에 취임할 수 있는 나이로 딱 되게 하신거에요 그래서 바로 앞에 국무총리로 불림을 받은거에요 이게 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그렇게 올바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간 사람의 마지막 결과에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내가 잘못 하지 않았는데 애매하게 당해본적 있지요? 그게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다른 사람이 당해야 할 일을 내가 당하게 됐을때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열받겠지요 그런데 신앙없이 이런 일을 계속 당하면 마음에 한이 생깁니다 그렇지않겠어요? 이 사람이 신앙이 없다면 마지막에 감옥속에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있다가 마지막에 죽어가면서 막 이를 깨물면서 “보디발의 아내, 그년...”피가 쫙 흐르면서 죽었을거 아니에요 이를 악물고 그러면서..... 눈을 부릅뜨면서.. 누가 행복해 지겠어요? 그랬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어떻게 그렇게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불행해 질수 상황이잖아요 보디발은 직위를 잃어 버릴수도 있고, 보디발의 아내는 당연히 사형이겠지요 그죠? 그런 와중에서 하인들은 고통을 받을거고 뿔뿔히 흩어질거고 자기는 감옥속에 들어가고 이런 상황속에서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었어요 근데 그것이 이 사람에게 이를 악물고 피를 흘리면서 두눈 부릅뜨고 화병으로 죽지 않을수 있는 이유는 뭐냐하면 하나님의 은혜에요 그래서 주님과 동행하는거 이 사람에게는 그런 섭리를 믿는 신앙이 있었어요 우리 눈에 보기에는 다 이해할수 없고 가슴아프고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나지만 그러나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이 주인이시듯이 내 인생도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시다 이 신앙을 가져야죠 그래서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당해서 감옥 속에 끌려왔는데 즉시 쾌활하게 살아가는 이 신앙적 낙천주의를 이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거에요 그런 사람이 되야 되는거에요 그러면서 매일 기쁘게 주님을 섬기는 거에요 그러면서 그 감옥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섬기고 거기에 있는 간수들에게 인정을 받아요 사실 감옥 밖에 있을때에는 이 간수들하고 요셉의 신분하고 겨룰수가 있겠어요 가정의 총무삼고 보디발에게 말할 수 없는 총애를 한몸에 받았던 사람인데 비교가 안될거 아니에요 근데 거기에 가서 다시 그 간수들에게 고분고분하면서 자기의 위치를 지키는거에요 그러면서 살아가는 거에요 이게 정말 신앙안에서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에요 그러면서 오직 하나님 한분 만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모든 억울함을 푸시고 그가 겪었던 고통을 능가하는 기쁨을 안겨주시는 거에요 아무도 잃어버리지 않고 자신도 하나님앞에 발견되는 이런 복된 길을 선택할 수 있었던 거죠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삶의 태도, 그래서 결국 보디발도 보디발의 아내도 모든 사람들도 간수도.. 요셉은 죄수로 끌려온 사람일뿐인데 그에게 모두 신세지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게 바로 주안에서 복의 근원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에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사람은 틀려요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내가 정말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가 생각해 보세요 그런 사람들이 되어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