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6.9 새벽설교
6월 9일 새벽설교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니라(히브리서7장9절~10절)
녹취자 : 권정희
‘조상의 허리에 있었다’ 라고 하는 이 표현이 히브리 사람들이 즐겨서 사용하는 아주 토속적인 표현입니다. 그게 뭐냐하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의 형태라는 표현입니다. 그러면 그게 무슨 의미냐?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은 남자로서 자손을 끼치는 그 기운이 허리에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사람들의 생각이 남자가 허리에 자손을 많이 가지고 있다가 그 자손을 아내에게 끼쳐서 아이들이 태어나게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흔히 쓰는 표현에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그렇게 표현하듯이 히브리 사람들도 아버지가 자식을 낳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표현입니다.
계속되는 논증이 뭐냐면 너희들이 멜기세덱을 매우 신비하게 생각하고 그리고 그 멜기세덱을 신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율법이 생기기 전부터 이미 탁월하고 뛰어난 제사장인데 예수님은 대제사장 되심에 있어서 멜기세덱보다 훨씬 더 뛰어나신 분이시다 그것을 논증하고 싶은 것입니다.
멜기세덱에 반차로 오셨지만 그렇게 표현한 이유는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은 사람이 제사장이 된 그들의 후에 예수였고 오히려 굳이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에 있어서 대제사장으로서의 반차를 잰다면 그거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온 것이다 이렇게 말 할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멜기세덱이 밑도 끝도 없고 신적인 존재였던 것처럼 예수님도 그러하다. 그러나 멜기세덱보다 더 뛰어나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러니까 멜기세덱보다 예수님이 제사장으로서 더 뛰어나시다 말할 것 같으면 또한 그 멜기세덱에 미치지 못하는 레위집하들에게서 세워진 그 제사장과 예수님을 비교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아니냐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예수님이 당신 자신을 재물로 삼아서 제사를 드리신 그 목적은 과거 그 사람들이 드리던 레위사람들을 통해 드리던 제사와는 틀리다. 예수님의 제사는 영원히 단번에 드린 무한한 효과가 있는 제사였고 그리고 레위사람들이 드린 제사는 일시적으로 죄인을 하나님 앞에 나가게 만들었던 제사다 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레위 자손이 십분의 일을 바쳤는데 그 십분의 일을 바친것도 해석을 합니다. “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이 허리에 있었음이라.” 무슨 뜻인가 하면은 레위 지파는 열두 지파 가운데 하난데 가나안 들어갈 때 아예 기업이 없습니다. 기업은 땅을 각기 나누어 주면 거기에서 그 땅에서 살면서 경작을 해서 누리는 것이 기업입니다. 그런데 레위는 기업이 없습니다. 그래서 열한지파가 십분의 일씩 드려서 레위를 먹고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될까요? 십분의 일이 열한사람이 십분의 일씩 드린다면 나머지 열 사람보다 레위지파가 거의 평균적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레위인들을 그렇게 먹고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 뜻은 무엇일까요? 레위인들은 이 세상에 기업이 없다 하나님 자신이 그의 직접적이 기업이 되시고 그래서 그들은 경작하고 땅에서 추수하고 수고하는 대신에 그 나머지 형제 지파들이 나누어준 그 십일조를 받고 그리고 자신이 경작하고 땅을 일굴 그 여력을 가지고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면서 부름을 받은 사람이 레위인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위에 있는 수고, 소득 이런 것 때문에 고민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매달려서 하나님 앞에서만 섬기면서 살게 하시기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들을 낳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그들이 대제사장이 될 수 있었다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 때문에 결국은 십일조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칠 수 있었고 레위지파들이 그것들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 그때 이들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그리고 조상이 아직도 허리에 있는 중 이었습니다
이 모든 논증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결국은 모든 레위지파는 그 속에서 세워진 제사장은 멜기세덱은 그 제사장들과는 비교될 수 없이 뛰어난 하나님의 제사장이요. 밑도 끝도 없는 족보도 없는 신적인 존재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예수그리스도는 그 멜기세덱과는 도저히 비교될 수없는 단번에 영원히 우리를 위해 제사를 드려주시는 아주 독특한 대제사장 이십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분을 힘입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지금도 그분의 은혜를 의지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고난을 당하신 것은 예수님의 생애 중에 모두 끝납니다. 그 중보사역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모든 좋은 것이 주님의 중보를 통해 우리에게로 오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들이 예수님의 중보를 통해서 아버지께 이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는 영원히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한 가운데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