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5일 새벽예배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행 13: 49-52)
녹취자: 김용재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때 유대인들은 그것을 가만 두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 지방의 유지들 그리고 영향력 있는 귀부인들을 선동해서 사도바울을 쫓아내도록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할 때 핍박해서 그들을 쫓아내게 됩니다. 그 때 이 사도들은 발에 있는 먼지를 털어버렸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힘써 전했고 그리고 이제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 더 이상 책임이 없다고 하는 표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비록 믿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것은 전하는 자가 없어서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힘써 전했으나 그들이 마음을 완악하게 함으로 믿지 않은 것이라고 하는 하나의 종교적인 표현이었습니다. 그리고 돌아 나왔습니다.
여기에서 하나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는 환란과 핍박, 고난 모든 어려움을 이기면서 온 맘을 다해서 이 복음을 전하지만 그러나 사실은 그 결과는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왜냐하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는 하지만 모든 사람이 복음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복음을 전하셨을 때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을 믿은 것은 아닙니다. 힘써 복음을 전하셨지만 어떤 사람은 믿고 어떤 사람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가 있느냐면 믿을 사람과 믿지 않을 사람을 갈라놓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진정 하나님을 향해 가지고 있는 태도가 무엇인지를 복음을 전파해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중에 어떤 사람은 처음 전할 때는 안 믿었지만 두 번 전할 때 믿게 되는 수도 있고 두 번 전할 때도 잘 안 믿었는데 세 번 전하니까 믿게 되는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번만 복음을 전한 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또 복음을 전하고 전한 사람에게도 또 복음을 전하고 합니다.
그래서 어제도 몽골에 단기선교 갔다 오고 오늘 진도 팀들이 올라오는데 많은 은혜의 역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도 보면 간곳에 계속 가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도 바로 들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또 복음을 함으로 말미암아 안 믿는 사람들도 믿게 되는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충분히 인정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결과는 주님께 맡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도와 바나바가 얼마나 간절히 그들이 예수 믿게 되기를 원했겠습니까. 눈물로 늘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을 텐데 얼마나 그들이 예수 믿게 되기를 원했겠습니까. 그래서 온 맘을 다해서 그들 예수 믿게 하기를 원했고 사랑을 가지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핍박이 있고 그들이 복음을 거절하게 되자 그러자 끝까지 믿지 않는 사람을 향해서 발에 티끌을 털어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에 있어서 전도는 자신들이 하지만 그러나 이 복음을 전할 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주님을 깊이 의지하는 그것이 바로 여기서 보여주는 바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래서 매 순간 주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주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합니다. 결과가 좋든지 좋지 않든지 간에 복음을 전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이 구원하실 수 있는 사람은 구원하시도록 자기를 하나님의 도구로 내어드리는 그런 것이 바로 전도자의 자세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마지막 장면입니다. 제자들은 기쁨과 충만하니라. 그랬습니다. 그게 제자들은 바울과 바나바 둘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함께 돕고 따라다니는 지체들이 있었겠지 않습니까. 그 사람 모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함께 복음을 전하던 사람들이 기쁨과 성령이 충만해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렇게 박해를 받고 미움을 받고 경건한 귀부인과 그 도시의 유력한 유지들에 의해서 박해를 받고 결국은 거기서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쫓겨나게 될 지경이 됐는데 얼마나 많은 모욕을 받았겠습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기쁨과 성령이 충만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복음전도에 있어서 이런 기쁨과 성령의 충만함은 어떤 결과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결과에 의해서 결과가 좋으니까 그것 때문에 기뻐하고 하는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비록 열매가 적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우리에게 큰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큰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 일의 성과가 아무리 커도 우리 안에 기쁨이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면 우리가 아무리 많이 하고 큰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지 못하면 우리의 마음에도 기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비록 박해를 받고 쫓겨나게 되었지만 그러나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서 박해를 받고 쫓겨나는 것은 사실 이 전도자들의 책임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 전도자들의 복음 전도를 듣고 회개하지 아니하는 그들의 악하고 완악한 마음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 전도자들의 책임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그 일이 성공할 때에만 항상 기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시련과 고난이 오고 핍박이 오고 때로는 그 일이 이루어 지지 못하게 하는 가로막는 수많은 장애요인들이 생겨나도 그것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 앞에 기뻐하고 그리고 담대하고 승리하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믿음입니다. 매일매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제도 몽골에 다녀온 사람들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면 거기서도 그렇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몽골어를 얼마나 하겠습니까. 그래도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그런 역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 안에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게 됩니다. 오늘 보십시오. 바나바와 바울이 사람보기에는 결국엔 그 성에서 실패하고 쫓겨났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들을 쫓아낸 사람들이 아니라 쫓겨난 바울과 바나바의 일행들을 인정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기쁨과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이고니온으로 장소를 옮겨서 거기에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를 많이 받을 뿐 아니라 또 한편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에 이런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계속 역사하고 충만하게 움직이는 그런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