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 새벽예배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행 1:3)
사도행전 시작부터 관심사가 예수님이 고난당하신 그 후부터 그게 사도행전의 관심사예요. 왜그럴까요? 예수님이 고난당하고 마지막에 죽으시는 장면까지는 복음서에 모두 기록이 되어 있어요. 그리고 부활하고 승천하시는 그 전까지의 이야기들이 대게 복음서에 기록이 되어 있거든요. 이 사도행전은 시간적으로 볼때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을 사도행전이 적고 싶었던 거예요.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에 이땅에 계셨고 당신이 친히 살아나셨다는 증거를 많이 말씀하시고 그렇게 하셨다는 얘기가 여기에 나오는데 사실은 사도행전의 진정한 관심사은 부활하신 예수님 40일동안 무엇을 하셨는가가 아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마직막으로 승천하시거든요. 하늘에 오르시고 하늘에 오르신 결과로서 우리에게 당신의 약속을 따라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는데 그 성령보내주신 이후에 위대한 역사에 대한 기록이 사실은 사도행전의 직접적인 관심사예요.
그래서 40일 동안 예수님이 계신것에 대해서 복음서에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의 기록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여기 사도행전은 그렇게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에 이후에 기록들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당시에 있었던 하나의 문학양식과 관련된 것인데 누가복음을 보면은 누가복음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을 사도행전에서 다시 언급을 해요. 앞에 나온 글이 있는데 두번째 나오는 글이 겹쳐서 나오는거예요. 그래서 앞에 나온 이야기를 다시한번 반복을 하면서 이어지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의 그시대에 역사기록의 한 방식이었어요. 마치 설교시간에 지난주 설교 그 다음을 해야하는데 그 다음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끝난 부분 앞부분부터 해서 지난시간에 한 설교가 다 생각나게 한 다음 어느 정도 시간을 끌고 그 다음에 새로운 이야기를 서술해 나가는 방식을 이야기 하는 거죠. 그냥 그렇게 해서 사도행전을 기술해 나간거죠.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이땅에 계셨을때 크게 두가지로 요약을 하고 있는데 하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 자신의 사심을 나타내 보여주신것이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많이 보여주심으로써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신 것이었죠.. 그런데 그 나타내시는 방식이 에전에 이 땅에 계셨을때 처럼 수만명의 사람들에게 혹은 예루살렘에 입성하면서 그렇게 보여주시지 않으셨어요..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하게 믿어야 될 중요한 사람들은 누구였냐하면 이미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을 알았던 이미 믿은 제자들이 바로 그렇게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야 했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그렇게 굳게 믿게 될때 그들이 그 이후에 일어날 사건, 예수님의 승천, 성령강림의 사건, 이런 사건들을 옳게 받아들일 수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예수님이 당신 자신의 살아나심을 보이신 것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불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주로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당신 자신이 살아나심을 보이신 거예요.. 두번째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거거든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여전히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가르쳐 주셨어요. 예수님이 이전에도 이 땅에 계실때에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도 예수님이 가르치셨죠. 그때도 예수님이 가르치신 주된 가르침의 주제가 역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부활하신 후에도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계속되었죠.. 부활하신 후에는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이 이땅에 윤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야 할 도리, 이런것 보다도 오히려 도래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위대한 전망을 더 많이 말씀하셨어요.. 이유는 무엇때문인가하면은 두가지 이유때문인데, 하나는 이제 그런 세세한 것들은 성령님께서 오시면 다 가르쳐주실 것들이었어요. 또하나는 이제 당신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는데 곧 하늘에 오르실 것이거든요, 그 이후에 임하게 될 성령의 놀라운 역사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시대였거든요. 구약의 백성들이 꿈도꾸지 못하던 예수님과 함께 가르침을 받던 사도들조차도 꿈꾸지 못했던 위대하고 놀라운 성령의 시대가 열린 작정이였거든요. 그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의 뒤에 오는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의 전개방식이었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말씀하셔야 했고 그것을 말씀하셔야지만 그들에게 새로운 성령의 시대가 도래하였을때 그것이 주님의 약속을 따라서 주어진 것이란 것을 그들이 굳게 믿을 수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게 되신 것이죠. 오늘날 우리들이 주님을 믿으면서 크게 감사하지 못하고 있는 것중에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너무 복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거예요.
복된 시대라는 것은 반드시 이세상에서 경제가 좋고 부요한 나라에 살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풍부하고 충만한 복음의 시대에 성령의 은혜에 살고 있다라고 하는것, 그래서 구약의 백성들이 느낀것보다 더 많이 예수그리스도를 느끼고 예수님께 몸소 가르침을 받았던 제자들보다 더 많이 성령오시기전에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았던 예수님의 제자들보다 더 많이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알수 있게 되었고 그 나라를 누리게 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축복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여자가 나은자 중에서 세례요한 보다 더 큰 자가 없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작은 자도 세례요한 보다는 크다” 결국은 천국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세례요한과 함께 끝난 구약의 시대에 이어서 성령의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영적 축복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거죠.. 그러니까 더 많이 하나님을 더 잘 믿을 수 있고 그분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 큰 특권을 오늘날 우리들이 받고 있는 것이예요.. 이 기쁘고 감사하게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이 모든 새로운 시대에 은혜를 가능하였던 것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 그리고 승천이었다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앞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