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새벽 예배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요20:19-20)
녹취자: 백지영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처음 본 사람은 열 두 제자들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몇 명의 여인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이 아니라 이 여인들에게 먼저 자신을 보이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할 수 없이 이 여인들로부터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여인들의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이 이야기를 안 믿을 수는 없었지만 그러나 자신들이 직접 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또 완전히 신뢰하지도 못하는 가운데 아마 이 제자들은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셨다. 이게 정말일까? 그리고 만약에 살아나셨다면 이것은 정말 중대한 사실인데 왜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들이 아니라 이 천한 여인들에게만 모습을 보이시고 사라지셨을까? 그리고 또 밖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그 이후에 혹시나 예수를 믿는 자들이 다시 또 자기들이 믿는 그 구원의 도를 전파할까봐 두려워한 유대인들의 무리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에 의한 박해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위험을 느꼈을 것입니다. 뭔가 불안하기 그지없는 그런 상황에 모여 있을 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두 번째 모습을 제자들에게 모두 볼 수 있도록 자기를 드러내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일 먼저 하신 그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 만남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른다고 저주하고 부인한 베드로를 비롯해서 다른 모든 제자들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 잡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도망간 그 이후로 처음 예수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바로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평강은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평안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나타나셔서 제일 먼저 하신 그 말씀이 이 평강을 제자들에게 비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진정으로 우리 인간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분과 화목한 관계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손과 그리고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손과 옆구리에 무엇이 있었을까요? 우리를 위해 못 박히신 못자국과 그리고 우리를 위해 물과 피를 흘리시기 위해 허리 깊이 찔렸던 창 자욱이 그 옆구리에는 있었습니다.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영광스러운 부활의 시간에 보여주시고자 하는 의미는 무엇이었습니까? 모든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죽음을 이기신 분으로 놀라고 그리고 예전에 이 지상에서 살아가시던 육체를 입으셨던 초라하고 소박한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한 부활의 영광을 입으신 그분이, 감추셔야 할 그 부끄러운 못자국과 그리고 사람들에게 살 깊이 찔렸던 그 창 자국을 우리에게 보이시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그 십자가와 그리고 다시 사신 이 부활이 얼마나 떨어질 수 없이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비노라.” 하나님과의 화해를 통해 너희들이 누리게 될 그 평안이 너희의 것이 되기를 비노라 말씀하신 후에 당신의 못자국난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면서 당신 자신이 바로 이와 같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고 죽으신 그 사건이 이제 하나님과 너희 사이에 망가진 그 관계를 고치고 불화한 그 관계를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너희는 이제 나의 이 그리스도로서의 속죄의 사역을 기초로 당당히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과 평화를 누리고 거기서 오는 참된 평안을 누리도록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평강을 빌고 계신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이 이 슬픔과 죄가 많은 세상 그리고 여전히 제자들을 실망시켰던 것과는 다른 이유이지만 그러나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낙심시키고, 낙망시키고, 좌절하게 만들어서 우리로 하여금 정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셨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의 삶으로서의 참 소망을 수시로 잃어버리는 우리들에게 주님이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들에게 평강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평강을 우리들이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져야 하고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지는 것이 힘겹다고 느낄 적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을 항상 우리들이 기억하며 담대함으로 아버지 앞에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여 그의 이름으로 우리의 모든 하나님과의 잘못된 관계들을 고백하고 아뢸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 제자들이 다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뵈었을 때 그들은 큰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소식만을 깨달았을 때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의미도 제대로 몰랐거니와 그가 죽으신 소식만을 들었을 때에 이전에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많은 교훈들은 그들의 삶을 주장하지 못했고 그리고 예수님께로부터 받았던 그 큰 능력도 그들의 마음에 기쁨을 줄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기쁨을 주신 분은 예수님이 주신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를 진정으로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 한 가운데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평안을 말씀하시고 우리를 만나주실 때 무덤과 같았던 우리들의 삶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현장이 되어서 어둡던 마음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실망과 좌절과 낙심과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인생이 변하여 즐거움과 소망과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나 하고 싶어 하시는 일이 바로 이 일입니다. 무덤과 같이 삶의 모든 현장에서 낙담하고, 실망하고, 마치 무덤 앞에서 사랑하는 자를 잃어버린 것처럼 소망이 끊어진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내가 그로라” 말씀하시며, 다시 사신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심으로 그와 함께 구속함을 받은 우리들도 또한 그를 믿음으로 다시 살 것이라는 소망과 기대를 우리들에게 주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부활의 아침에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결심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을 가장 즐겁게 해 드릴 수 있는 선한 결심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이 안 계셨기 때문에 어둡고 눅눅했던 우리의 옛 삶은 모두 오늘 새벽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묻어버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부활이 그 죽음과 연결이 되지만 그러나 그분의 그 부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죽으심의 의미가 새로워졌던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에 대한 우리의 모든 감격이 부활의 기쁨으로 승화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내가 그리스도와 또 그리스도가 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합일된 장사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같이 그 그리스도가 나를 살리시고 또 그리스도와 함께 내가 다시 사는 이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잠자는 것과 같던 신앙이 다시 깨어나서 부활하고, 하나님 안에서 잃어버렸던 우리의 모든 기쁨과 소망이 다시금 부활하는 놀라운 은혜와 변화를 누리는 그런 복된 영광스러운 그 회복이 이 부활절을 기해서 우리들에게 있어야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어둡게 하고 잠들게 하는 이유가 아무리 많아도 그렇게 거기서 깨어나게 하는 그 놀라운 기쁨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변화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길 이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이 부활의 아침에 더 더욱 주님의 그 영광스런 주님과의 그 만남으로 들어가도록 도와달라고 우리들이 기도하고 주님께 매달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