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양과 학문
진짜로 그랬는지 안 그랬는지 잘 모르지만 무슨 말을 했다고 그래요? ‘너 자신을 알라’ 우리는 그것을 뭐라고 하냐면 ‘네 분수를 알고 좀 자중해라’ 그렇게 많이 써먹습니다. 그래서 철없이 까불면 ‘너 자신을 알라’ 그러잖아요? 원래의 그 말의 뜻은 희랍 문맥에서 ‘너 자신을 알라’ 그것은 ‘니가 영혼을 가진 지성적인 존재임을 자각 하거라’ 그 이유는 인간에게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라 하는 인간의 자긍심을 일깨워주는 말입니다. 이 지식은 하나의 결과물입니다. 이 결과물이 어떤 사항들을 알게 된 덩어리들을 가리켜서 지식이라고 합니다. 이 지식은 자기라는 존재가 있으면 자기 안에 있는 사실이든지, 자기 바깥에 있는 사실이든지 간에 어쨌든 이 사실이 수집이 되어서 자기가 이해해야지만 그것이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라는 이 존재에는 이것을 뭔가 자기 밖에 있는 사실들을 수집해 오고, 또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아서 이 사실들을 수집해 오고 그 다음에 정리해서 인식하고 있을 때에 이것이 지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수집하는 것이 무엇으로 지식을 수집을 하는 것입니까? 이 모든 사실들을 통해서 정보를 얻게 되는데 그 수집하는 영혼의 기능을 가리켜서 우리들이 ‘지성’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인간의 정신의 크기가 사람마다 다를까요 아니면 똑 같을까요? 사람마다 정신의 크기가 각각 다릅니다. 정신의 크기가 각각 다르면 어떤 사람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부를 때에 돈이 많으면 위대한 사람이라고 합니까? 아닙니다. 한 사람을 위대하다고 할 때에는 그것은 정신의 크기가 큰 사람을 가리켜서 우리들은 위대하다고 부릅니다. 이 정신의 크기는 하나는 지성의 크기이고 또 하나는 감성의 크기입니다. 이 두 개의 크기가 지성과 감성을 넘어서는 정신의 크기입니다.
그러면 이 두 개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우선 전체적인 것부터 이야기하면 인간이 이렇게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있으면 먼저 감성을 이야기해봅시다. 사람의 정신적인 기능에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은 사물을 보면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것에 대해서 마음의 기울어짐입니다. 하나는 지성에 관계되고 하나는 감정과 의지에 관련됩니다. 즉 무슨 이야기냐면 ‘무엇이다’라고 사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마음의 움직임이 있을 때 이 두 가지가 합쳐져서 어떤 사물을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자기 밖에 있는 어떤 사물을 인식할 때에는 다섯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보고(시각), 듣고(청각), 만지고(촉각), 냄새 맡고(후각), 입맛(미각), 이 다섯 가지를 가리켜서 우리들이 오관이라고 부릅니다. 오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입맛을 다시고 할 때에 밖에서 볼 때 이 안에 어떤 커다란 감정의 파도가 생겨납니다. 이것이 작동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서 문학과 예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것들이 확 파도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뛰어난 예술가들은 대부분 불행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너무 감성이 풍성하여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셔서 이 감성이 뛰어난 사람은 대부분 지성이 약간 모자랍니다. 지성이 쭈그러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이 감성의 크기를 모두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그만큼 지성도 그렇게 타고난 사람은 많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기억해야 될 것은 아주 논리적인 학문조차도 이 지성을 통해서 이론이 서고 탐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감성으로 밀려와서 새로운 학설이 나오는 것입니다.
상대성 이론을 내놓은 사람이 아인슈타인입니다. 특수상대성 이론, 일반 상대성 이론을 내놓았습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예전에는 개념이 시간과 공간을 따로 따로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은 시간과 공간은 그렇지 않다, 시간은 공간에 따라서 빨라질 수도 있고 늦어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것이 상대성이론입니다. 시간은 어차피 정해진 길인데 이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근거 있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근거가 없이 주장합니다. 아, 시간과 공간은 함께 엮여졌을 것이다. 결국 시간과 공간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증거는 못되었습니다. 그런데 후에 천문학적으로 증거가 나옵니다. 그것은 빛이 똑바로 간다고 생각했는데 빛이 무거운 중력에 의해서 휜다는 것을 아인슈타인이 죽은 다음에 발견이 되었습니다. 빛이 휜다고 하면 이것은 시간과 관계가 있는데 이 시간은 빛에 의해서만 측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측정하는 시간이라는 것이 결국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는, 변화를 가늠할 수 없는 곳에서는 시간이 측정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물이 있고 그 사물이 변화하는 곳을 보면서 기간이 측정이 되는데 그 변화를 알게 해주는 것이 빛이라는 것입니다.
빛이 이런 식으로 휜다는 것입니다. Time space라는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과장을 하자면 시계가 높은 하늘에 떠서 로켓으로 날아가면 이 시계보다 그 시계가 빠른 것입니다. 요즘도 보면 우주에서 잠깐 시간을 보냈는데 지구에 와보니 2천년이 흘렀다고 하더라 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상당히 과학적인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럴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어느 한 순간에 영감처럼 확 들어오게 하는 그것이 감성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감성의 크기가 아주 왜소한 사람은 공부를 잘해도 독창적인 학문의 세계를 수립하지 못하고 남이 한 것을 정리해서 계속 그 사람 것을 설명하면서 수입을 올리고 먹고 사는 것입니다. 러시아 수학자 페렐르만이라는 사람은 인류의 십대 수학 난제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를 한국 사람이 풀었고 이 사람은 하나의 공식을 풉니다. 이 사람은 은둔해서 러시아의 어느 도시 외곽에서 쪽방 살이처럼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그것을 풀었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100년 동안 안 풀린 문제인데 이 사람이 그것을 풀었다 하니까 미국에서 비행기타고 와서 설명해보라고 하니까 한달동안 미국 대학에 가서 풀었습니다. 미국 교수들이 이 모습을 보고 다 나자빠졌습니다. 그 사람이 인터뷰를 했는데 페렐르만이 푼 것을 학생들에게 잘 설명해주기 위해서 잘 정리해서 그것을 페렐르만의 이해를 학생들에게 설득해주기 위해서 그 사람은 5-6년간 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렇게 수준이 틀립니다. 그러니까 세계 수학자 협회에서 당신의 업적이 너무 훌륭해서 우리가 시상을 하겠다 했는데 상금이 12억이었습니다. 그런데 답장이 왔습니다. 당신의 심사위원들 사이에는 내 수학실력을 판단할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 놀라운 것들이 감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감성의 크기만 있으면 다 위인이냐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가끔 자살하는 사람 중의 어떤 사람들은 이 감성이 너무 커서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낙엽이 떨어지다니, 이럴 수가...’하고 자살해버립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이런 것들이 막 일어날 때 이것들을 해석할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이 있다면 이런 것들이 아주 고상한 형태로 해석이 되어서 나오는데, 이런 것들이 없고 이 사람 성향 자체가 이런 것들을 해석해내지 못하거나 아주 낮은 문화로 해석해내면,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크리스찬이니까 대중가요 잘 안 듣잖아요? 제가 21세 때 회심을 했는데 세상맛을 많이 보고 20대 때와 10대 말에 팝송을 굉장히 좋아했었습니다. 제가 깨달은 것은 인생의 쓴 고비를 회심하기 전이나 회심을 거치면서 깨우친 것은 대중가요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인생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복음성가를 들으면서 울잖아요? 그것도 안 되면 은혜가 많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 속에 비록 수준이 낮은 정서라고 할지라도 일어나는 이 정신의 크기는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정신의 크기에 따라서 모든 사유가 감각적인 것에 얽매여 있는 사유는 커다란 감성이 있어도 그것은 위대한 정신의 크기를 형성하지 못합니다. 감각적인 것에만 매여 있는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그것에 비해서 파스칼의 ‘팡새’를 읽어보면 ‘우주의 영원한 침묵은 나를 두렵게 한다. 아무 말 안하고 가만히 침묵하고 있는 이 우주가 나는 무섭다’ 이것을 느끼는 것은 연애나 해야 감성이 움직이게 하는 것과 바탕은 같지만 다른 크기의 정신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통해서만 감성이 형성되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독특한 상상력이 있습니다. 빨간 사과를 상상해 보십시오. 먹지도 않았는데 입에 신물이 고입니다.
또 하나는 지성입니다. 이 지성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뉩니다. 이 지성은 라틴어로 맨스라고 합니다. 이 지성은 오성과 이성으로 나뉩니다. 이 오성은 소위 이야기한 ‘디아렉티케’라고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변증작용입니다. 이 변증작용은 논리적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아, 이것이구나’하고 그냥 확 들어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보고 ‘아, 쟤 정말 예쁘네’ 라고 하는 것은 어떤 논리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정말 객관적인 미의 기준을 갖췄을 때는 괜찮은데 그렇지 않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설교를 듣거나 강연을 들을 때에 ‘아, 저것이 진리구나’라고 느끼는 것을 눈치 채는 것도 논리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인간의 영혼 안에 그런 것들을 초 논리적으로 포착하는 지적인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 수단이 신앙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맨 처음 창조하시고 자기 밖에 있는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두 가지 능력을 주셨는데 믿음과 이성입니다. 믿음이 오성입니다. 이것은 ‘사피엔티아’ 라는 지혜인 판단력과 관련이 됩니다. 이성은 ‘라치오’라고 하는데 라치오는 ‘키나치오’의 작용, 즉 추론작용을 말합니다. 추론이라는 것은 어떤 사물들이 있으면 그 사물들이 있게 되는 원인이 있고, 그 결과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이 원인은 다시 이쪽의 결과를 낳고, 그 결과는 또 다른 원인이 되는데 이 거대한 인과관계가 생겨납니다. 이 인과관계가 생겨나면서 A 때문에 A'가 오고 A' 때문에 II가 오고 III IV가 왔다면 이것에 의해서 A6는 무엇이 될 것인가를 추론해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성입니다. 이 이성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분석하고, 똑같아 보이는 것들을 나누어서 다른 점을 찾아내고, 달라 보이는 것들의 일치점을 찾아내서 그것들을 종합하는 기능을 이성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이성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공부를 잘 하는 것입니다. 잘 외우고 이해를 잘 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정신의 크기를 절대적으로 보면 이미 하나님께서 다 주십니다. 그런데 주셨는지 안 주셨는지는 해봐야 압니다. 해보기 전까지는 모릅니다. 그래서 유능한 교수나 뛰어난 학자나 예술가가 된 사람들 중에는 어릴 적부터 인정받은 사람들이 있지만 별 볼일 없었는데 어느 계기에 그것이 묻혀있는 것들이 드러나서 그것이 발견되어 놀라운 예술가나 학자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열심히 개발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주시잖아요? 주셨을 때에 주신 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해도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안 되는 것이 안 주셔서 안 되는 것인지, 내가 노력을 안 해서 못 캐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해 봐야 안다는 것입니다. 캐보고 캐봤는데 안주셔서 못했다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마데우스 영화를 보면 살리에르가 마지막에 뭐라고 이야기합니까? 살리에르와 같은 시절에 태어난 사람이 모차르트입니다. 살리에르는 성실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작곡가였습니다. 그런데 방탕하고 망나니 같은 모차르트가 나타나서 자신이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 악보에 잠깐 손을 대는데도 훌륭한 악보가 만들어져 명곡으로 남습니다. 그것을 보고 살리에르가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이 소명을 주셨으면 재능도 주셔야지 소명은 주시고 왜 재능은 주시지 않습니까?’(I'm the champion of the ordinary man. 나는 모든 사람의 챔피언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보면서 여러분들은 누구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까? 살리에르가 이해가 되는 것은 천재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감성과 정신의 크기를 끊임없이 키워 가면 그렇게 키울 때 정신의 크기가 커집니다.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 정신의 크기가 커야 합니다. 이런 정신력의 크기가 그 사람 속에 일어나는 수많은 감정들을 담아냅니다. 그런 정신력의 크기를 계속 키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해야 합니다.
첫째는 아름다운 것들을 끊임없이 접하고 그것이 왜 아름다운 것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느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감격할 수 있는 절대적인 능력의 크기는 하나님께서 이미 부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묻혀있는지 원래 안 주신 것인지는 실험을 해봐야 압니다.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지식의 도움을 필연적으로 받아야만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루블 박물관에 가면 웃을 듯 말 듯한 모나리자 그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2-3시간씩 모나리자의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습니다. 약 30분만 그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들어도 그림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아는 것만큼 들리고 아는 것만큼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산에 갔을 때 내가 식물에 대한 지식을 가졌다면 산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예술에 대한 공부, 자연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감격을 느끼게 됩니다.
H(수소)라는 원소에 열이 3만도쯤 가해지면서 세 개가 합쳐지면서 헬륨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역사상 인간이 계속해서 시도한 것이 금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금을 만드는 기계가 있다면 떼돈을 벌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50억 도의 열이 필요합니다. 그 50억도라는 열을 인간이 아직까지 과학기술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1억도까지는 만들었는데 그것도 놀랍습니다.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런 것들이 먼지가 확 퍼져있는 것입니다. 특이한 것들입니다. 그것들이 먼지가 구름처럼 퍼져있는데 그것이 뭉치면서 중력에 의해서 핵반응을 일으키면서 거기에서 분열하면서 폭발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원소들이 수없이 많은 양태로 변질되면서 이 지구 같이 딱딱한 것들이 나오는데, 그 나오기 전에 가스덩어리들이 팡 터지면서 그 별에서 폭발이 일어나면서 떠내려가는데 이것이 새로운 별의 탄생입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형성이 되는데 수십억 년의 세월이 걸리지만, 이 별 구름이 모여 있는데 그 별 구름이 수없는 알집 같은 것들을 가지고 거기에서 별들을 만들어 내 구름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 구름의 길이가 3광년이랍니다. 빛이 3년을 가야하는 길이랍니다. 그런 것들은 잘 몰라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산에 대해서 잘 몰라도, 한라산 꼭대기에서 눈이 막 쏟아졌을 때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그런 것들을 계속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도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아름답게 되면 인간이 말을 잊어버리게 되고 두려움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슬픔이 확 밀려오게 되는데 그런 감정을 가리켜서 ‘처연의 감정’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서 감정의 크기를 키우게 되는 것입니다. 음악도 정신의 크기에 도움을 안 주는 랩같은 것들은 듣지 말고 크레식같은 음악을 들으면서 자기 자신의 감성의 크기를 키워나가야 합니다.
두 번째는 이성을 발달시켜야 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부지런히 공부를 해야 합니다. 원인과 결과를 찾는 훈련을 부지런히 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철학, 논리학, 수사학, 그러면서 역사학, 문학, 언어 이런 공부들을 광범위하게 부지런히 공부해나가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 이것은 자기가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서 상당히 발전될 폭이 굉장히 많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공부한다는 것은 살아가야하면서 밟아야 할 과정이지만 공부를 잘 하게 되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건들을 만나고 변화된 환경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때에 올바른 판단력을 갖게 되고, 그것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하는지를 알게 되면서 자신의 행복을 지키는데 있어서 필수적입니다. 제가 부모에게 받은 좋은 것이 있다면 이빨입니다. 제가 여섯 살 때 치과에 간 이후에 치과에 간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이빨을 잘 관리를 못하면 심장병으로 죽거나, 심근경색으로 죽거나, 콩팥이 나빠져서 죽거나 한답니다. 얼마나 황당합니까? 잇몸이 곪거나 하면 이것이 핏줄을 통해 폐와 콩팥에 들어가 병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아, 참 너무나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부지런히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추론하는 이런 모든 것들이 삶의 모든 방향에 있어서 발달하게 됩니다. 그것은 행복한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게 되고, 인간은 결국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사는 것이 보람입니다. 인생의 보람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며 사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식이 가늠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현실은 지식 가운데 ‘automatism 지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단추만 누르면 캔 커피가 쏟아져 나오는 인터넷 검색 같은 지식을 가리킵니다. 이런 지식은 절대로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자신을 점점 더 옭아매고 근원적인 사유를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책을 읽을 때 성경을 중심에 놓고 역사, 철학, 인문, 자연과학, 이렇게 하나님의 질서가 자연세계에 반영된 것이 자연학이고, 인간세계에 적용된 것이 인문학이며, 이 대상이 하나님이 될 경우에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도 아니고 이런 물질을 넘어서는 어떤 개념과 관련되었을 때 철학 또는 형이상학이라고 부릅니다. 이런식으로 공부를 다방면에 걸쳐서 부지런히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독서를 균형 있게 해야 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논리로 우리를 훈련시키는 독서를 해야 합니다. 공부하는 목적이 도대체 뭐냐면 성경이 우리의 삶에 있어서 믿음과 생활의 유일한 규칙인데 이 성경은 하나님이 세워놓으신 자연세계와 인간세계의 이성적인 질서의 엑기스입니다. 이것들이 외현 적으로 확장되어서 펼쳐져간 것들이 바로 자연 속에서 나타나고, 사회 속에서 나타나고, 인간 안에서 나타나고 이렇게 펼쳐진 것입니다. 옛날 그리스의 사람들은 학문에 있어서 세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피지카, 에티카, 로지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자연학은 자연적인 것들을 보면서 지식을 얻어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자기의 삶과 연결하면서 여기에서 윤리학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동양에서도 많이 닮고 있습니다. 자연을 보면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이치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나의 삶을 위한 학문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는 것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모든 인생의 시기 중에서 여러분들이 다니는 이 대학의 시기는 다른 일을 전폐하고 이 일에 자기 인생을 올인 하기 위해서 주어진 시기입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생각 없이 빈들빈들 돌아다니고 교회 가서 기타나 치고, 새우깡이나 먹고, 자매들하고 어울려 다니면서 쓸데없는 농담이나 하고 다니면 30년 후에 지불만기가 되어서 돌아 올 어음입니다. 지금 공수표를 난발하는 것입니다. 인격이 우아해요? 철학이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고상한 미학적 관점이 개발되어있어요? 감성의 크기는 있는데 방향이 비뚤어져 있어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성은 어차피 책을 안 읽었으니까 자판기 뽑는 기계 같은 인간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하루에 200페이지 정도의 책은 읽어야 합니다. 지적인 역량을 강화시켜줄 수 있는 그런 책들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절대로 컴퓨터에 빠지면 안 됩니다. 이것은 전부 우리의 정신을, 이러한 지적인 사고들을 마비시키는 도둑들입니다. 꼭 필요할 때만 들어가서 찾아서 검색해야 합니다. 학교 공부를 할 때 내가 만약에 교육학을 공부한다 하면 또 언제 이 공부를 하랴 이번 학기에 완전히 끝내 버려야겠다라는 마음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한 학기에 하나씩이라도 치고 올라오면서 4년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2년을 그런 식으로 공부했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지하철에서 15분 동안 20년을 읽는다면 그 사람은 대학을 4개를 나온 사람과 같다고 합니다. 그것은 지하철에서 그 사람이 책을 많이 읽는다기보다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얼마나 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우리 한국 학생들 너무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학문은 전문적으로 높은 세계로 들어가게 되면 다른 분과와 연결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면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자기의 지식 또한 잘 모르는 것입니다. 한 방면만을 깊이 공부하는 사람을 우리는 전문가라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은 모르는 말입니다. 박사가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깊이 있는 박사가 아니고 얕은 지식의 박사가 있습니다. 공부하다가 심심하면 드라마나 영화 이런 것들은 거의 남는 것이 없으니 보지 말고 다큐멘터리를 보십시오. 거기에서 사회, 인간의 문, 우주, 생명, 환경, 이런 것들에 대한 북극의 눈물 그런 것들 참 잘 되어있으니 그런 것들을 보십시오. 공부는 내 인생을 복되게 하기 위해서 해야 합니다. 민족사관학교나 서울대학교의 도서관에 들어가서 추천도서를 보십시오. 몇 권이나 읽었는지 보시면 아마 참담한 생각이 들 것입니다. 형제들은 얼굴 예쁜 것만 보지 말고 정신의 크기가 큰 자매를 찾아 결혼하십시오. 외모는 6개월이면 유효기간이 끝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지출을 줄이고 차라리 덜 먹고 덜 입더라도 돈보다 시간에 집착해서 그 시간을 모두 쏟아 부어서 이런 지적인 능력을 배양하는데 집중해야 합니다. 그 시기가 지금밖에 없습니다. 이 시기가 굉장히 중요한 시기입니다. 온전히 매달려서 공부만 해야 합니다. 고전을 중심으로 해서 플라톤 소크라테스, 그리고 철학, 역사학, 과학, 논문학, 다양한 것들을 공부해야 합니다.
이런 공부들을 하기 위해서 해야 할 것이 어학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섭취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 독서를 통해서 섭취하게 되는데 그 장벽이 대부분이 언어에 의해서 가로막혀있습니다. 최소한 영어는 극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뜻을 세우냐면 아직까지도 중학교 문법이 전혀 안되어 있으면 방학을 이용해서 머리 질끈 동여매고 한 달 동안 문법을 끝내야합니다. 부지런히 단어를 외우면서 책을 무조건 읽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 제일 좋은 것은 번역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야간 신학대학을 다니면서 직장을 불우하게 다녔습니다. 그래서 3학년 때까지 직장생활을 하다가 여름방학 끝나면서 그만 두었습니다. 그 때 열심히 해서 3학년 때 뉴욕타임즈, 워싱턴 포스트지 같은 것들을 사전만 있으면 자유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뜻을 세워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외우기 좋은 때입니다. 부지런히 노력해서 내가 우주에 대해서 공부하고 싶다면 우주에 대한 한국어로 된 책을 읽은 다음에 영어로 된 책을 구해서 읽어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남의 말로 된 곳에서 지식을 습득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잘 안 되지만 자꾸 훈련이 되면 무슨 내용, 무슨 내용 하면서 정리가 되는 것입니다. 어학을 하면서 내가 궁금해가는 것들을 발견해 가는 학습의 과정이 되는 것입니다. 여력이 있어서 학문적으로 습득을 하려면 불어를 하십시오. 신학을 하는 사람들은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를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성의 힘을 계속 키워야 합니다. 책을 많이 읽게 되면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벌써 향기가 틀립니다. 학문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산이 있다고 하면 밑에서 어느 길로 가든지 결국엔 산꼭대기에서 만나게 됩니다. 인문학은 무엇을 공부하든지 모두 철학박사 학위를 줍니다. 올라가는 길만 틀리지 사회학을 공부한 사람도 올라가면 철학박사 학위를 줍니다. 철학을 해도 철학박사, 신학을 공부해도 철학박사 학위를 줍니다. 저는 유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어로 논문을 발표하라고 할 때 곤혹스럽습니다. 하기는 하되 발음상의 문제가 있어서 익숙하지 못합니다. 내 나이가 50대 중반인데 저는 지금도 도전을 합니다. 제가 도전하는 그 일이 하나님을 위한 도전이라면 그 일을 할 것입니다. 매일매일 삶 속에서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는 사람이 상상 속에 있는 엄청난 십자가를 지고 어느 날 작렬 하게 전사할 것처럼 상상하는데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죽여서 뭐하겠습니까? 매일매일 자기 죽음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을 위해 온전한 삶을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주님을 위해 작렬하게 죽을 때 그 피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여섯 시간 이상 자면 회개해야 합니다. 몸이 아파서 특이한 몸의 이상이 있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저는 여섯 시간 이상 자면 부끄럽습니다. 그런 치열한 분투의 삶이 없기 때문에 열렬한 기도가 안 나오는 것입니다. 눈물이 확 쏟아지도록 기도를 하려면 치열하게 살아야 합니다. 빠삐욘이 감옥에 갇혔을 때 죄목이 뭐였습니까? 인생을 낭비한 죄입니다. 제가 제일 혐오하는 사람은 삶의 초점이 없는 사람입니다. 소원을 물어봤을 때 대답할 수 없는 그런 즉각성이 없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쏟아 붓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오성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필요합니다. 충만한 믿음. 그래서 인간이 아무리 학문이 발달하고 이성의 능력이 증진되어도 파악할 수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증거 합니다. 만약에 온 우주에 변두리에 줄을 둘러서 줄을 확 잡아당길 때 한 점으로 수렴하게 되는 그것이 우주이다 라는 것이 프앙카르의 추측입니다.
믿음생활을 잘 해야 합니다. 불신자들은 이해를 못합니다. 불신자들은 한 다리가 없이 뛰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 안 믿고 공부 잘해서 행복해지는 사람도 없습니다. 똑 같이 지성위에 감성이 못 받쳐주는 사람들도 행복해지는 사람도 없습니다. 천재들은 대부분 불행합니다. 여러분들은 불행한 천재보다는 행복한 보통사람이 되고 싶을 것입니다. 수학문제를 풀 때 답을 먼저 알고 풀면 쉽습니다. 성경이 결론을 가르쳐줍니다. 아, 그렇구나. 그러니까 믿음으로 성경을 읽으면서 아멘, 하고 받아들입니다. 이 오성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것은 마음이 깨끗해야 합니다. 마음이 깨끗한 것은 물로 씻어서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온전히 사랑할 때입니다. 믿음이 제일 좋을 때가 언제입니까?
주님 사랑해요. 사랑해요
주님 사랑해요.
그럴 때 잘 믿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아멘’, 토를 달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 어서 오십시오.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그 속에서 오성이 깨끗한 상태가 되어서 계시의 말씀을 아멘, 온전히 받아들이는 상태가 됩니다. 이것이 끊임없이 개발되어서 발달되고, 훈련이 잘 되고, 청빈한 상태로 유지가 될 때 발견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 중심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감정이 있습니다. 감성, 이성, 오성의 모든 상태들이 주님을 사랑ㄴ하는 중심으로 됩니다. 만약에 마음속에서 주님을 깊이 사랑하게 되면 모든 것을 주님 중심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제가 50을 넘어서 1년 동안 천문학을 과외 선생을 구해서 에누리 없이 과외비를 주고 공부를 했는데 얼마나 가슴이 벅차고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설명만 들었는데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공부한 모든 순간에이 모든 세계가 무로부터 창조되었다는 감동적인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3개월 동안을 밤마다 별을 보면서 미친 듯이 감격을 했습니다. 그 때 깨달은 것을 핸드폰으로 깨알같이 적어놓았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귀하신 이름은
내 나이 비록 어려도 잘 알 수 있어요.
그 다음에 생물학을 다시 읽었습니다.
30대 중반에는 신학이 통일되는 것이 보였고 40대 후반에는 비로소 학문 전체가 통합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것들이 거슬러 올라가서 10대 후반 20대 중반에 일어났어야 되었습니다. 이제 벌써 인생의 퇴근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지금의 신학생들을 보면 어떻게 그렇게 사는지 안타까워서 제가 눈물이 납니다. 허리가 휘도록 교회에서 봉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전도를 하는 것도 아니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어떻게 목회를 합니까?
무엇이든지간에 깊이 진지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지하지 않는 사람과 사귀는 것은 시간낭비입니다. 인생을 절약하며 살아야 합니다. 인생을 부지런히 분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진지하지 않는 사람과는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젊음을 낭비하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끔찍한 죄입니다. 청춘은 30년 후에 지불만기가 되어 돌아올 어음을 지불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지금 수표를 남발하면 안 됩니다. 열심히 믿고,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느끼고 그래서 정신의 크기를 크게 하면서 그 모든 것 중간에는 감성, 이성, 오성 그리고 주님 사랑해요 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버려두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공부는 준비이고 언제가 써먹을 때는 본게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묻고 싶습니다. 학생으로 살다가 죽어버렸고 주님 앞에 갔다면 인생에 대한 판단이 어차피 각각 하나님 앞에 살았던 질이 있을 것입니다. 공부를 하는 사람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무디는 공부는 잘 못했지만 그렇게 진실하고 사욕이 없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무디가 찬송가를 만들어 팔 때 수익이 1년에 10만불이었습니다. 그 당시 10만불이면 상상도 못할 금액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잡음이 있자 그 자리에서 음반을 불태워버렸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하면 진실하게 정직하게 살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쓴 것입니다. 나는 한 번도 나 자신을 학자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스스로 나를 고 3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심지어 생물학을 공부할 때도 주를 위해서 공부를 합니다. 신학교를 수석으로 나오고도 순교지에서 순교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 지금 분별하는 것입니다. 신학교 다닐 때 공부는 하지 않고 전도만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공부해야 합니다. 나중에 목회하면서 자신이 딸리니까 공부하러 다니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닙니다. 한 교회의 목회자를 평가할 때 다른 것은 열심히 하고 목회를 열심히 안 할 때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본 업무를 충실히 하고 펼쳐져야 합니다. 절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공부 하나보고 그 사람을 훌륭하게 쓰는 것은 아닙니다. 학문이 많이 모자라는 데도 하나님께 훌륭하게 많이 쓰임 받고 사는 사람도 있고 공부를 많이 했는데도 하나님께서 안 쓰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매 순간 내 인생의 가치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다 그러지 말고 하루하루의 삶을 주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충실하게 살아가서 주님의 구속에 부끄럼 없이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날 나의 양심에도 자유를 주고 주님 앞에서도 나에게 자신감을 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만 키우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주위에서 교회에서 지성을 너무 문제화 될 정도로 성장시킨 교회를 본 적이 있습니까? 묻고 싶습니다. 어느 교회가 지성이 지나칠 정도인지 묻고 싶습니다. 저희 교회에 60-70%정도 수평이동 한 교인들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물어보면 절망적일 정도로 모릅니다.
최근에 ‘돌이킴’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제 설교를 모아놓은 것인데 팔리지 않습니다. 게으름이나 싫증 같은 것들은 정말 많이 팔립니다. 누가 지성적으로 설교합니까? 있지도 않는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 설교자들이 신학적이고 학문적으로 제켜두었기 때문에 잘못된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처음부터 신학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신학적인 반박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지식이 어떻게 통합을 이루는지 문제를 물어봤는데 그것은 한 두 시간 만에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적으로는 아는 것과 느끼는 것, 그 다음에 행하는 것, 사랑하는 것이 분리가 되지 않고 모두 하나입니다.
그것이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을 아는 사상입니다. 그것이 신약에 와서 그리스도를 아는 사상이 되는 것입니다.
통섭이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로 설명해야 합니다. 일반 학문에서 말하는 통섭이라고 하는 것은 학문을 융합하는 것입니다. 금융학과 공학하고 묶는다든지 이런 식으로 학문을 함께 엮는 것인데 신학에서 필요한 것은 그런 식의 통섭의 개념이 아니라 영적인 개념입니다. 일단은 분야가 무엇이든지간에 신실하게 규정된 과정을 따라서 신학과 다른 학문들을 병행해서 공부해 나가면 그 전체적인 지식과 사유가 정도를 높여 발달하는 것만큼만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자기가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에 대한 지식의 중심이 신학이 되어야 합니다.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철학의 필수적인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평생 부전공이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공부하고 사유 속에서 끊임없이 사유함으로서 자기의 모든 것들을 스스로의 자신의 지성 속에 체득하는 그런 과정들이 필요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