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lms 28
목 차
반석이신 하나님(시 28:1) 37
악인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시 28:3-5) 41
의지하는 자를 도우시는 하나님(시 28:6-7) 44
찬송하게 하시는 하나님(시 28:6-7) 47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시 28:9) 49
반석이신 하나님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시 28:1)
반석, 탄탄한 기초
탄원시는 무언가 절실하게 기도가 필요한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종류의 ‘기도 시’를 가리킵니다. 여기에서 시인이 하나님을 ‘나의 반석이요’라고 불렀습니다. 이 반석이라는 말은 최소한 세 가지를 의미합니다.
첫째는 반석은 히브리어로 ‘추르’(rWx)라고 하는데 널찍하고 큰 바위를 말합니다. 집을 짓거나 어떤 건축을 할 때 이 반석 위에 지으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그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인생의 모든 기초가 되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설계하고 계획할 때 하나님을 우리의 인생의 반석으로 생각하고 그 위에 집을 지어야합니다. 하나님을 반석 삼아서 집을 짓는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의 터 위에 세워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그 계명의 뜻을 모두 이해하지 못해도 순종하면, 우리의 인생이 요동치지 않게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당신을 반석 삼는 자들을 굳건히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커다란 반석 위에 세워진 집은 지진이 일어나고 요동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반석, 피할 바위
둘째는 “여호와는 나의 피할 바위시요”라고 할 때 이 바위가 바로 반석입니다. 전쟁터에서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질 때 커다란 바위 뒤에나 아래에 숨는 만큼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반석 삼는다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리로 삼으면서 살아간다면, 세상에 시련과 고난과 유혹의 화살이 날아와도 우리가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아픔도 있고 고통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육체만을 죽음에 몰아넣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의 육체와 더불어 영혼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업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난과 어려움이 닥쳐와도 하나님을 반석 삼은 그들의 영혼을 해치지는 못합니다.
반석, 생수의 기적
셋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반석’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모세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물이 없어 죽어갈 때 반석을 터트려 샘물을 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가 물을 냈다기보다는 하나님이 반석을 깨뜨려 놀라운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바위가 터뜨려져 샘물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반석이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이 바위가 터져서 샘물이 나오는 사건을 가리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비유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기의 육체를 깨뜨리심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생수가 쏟아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명 되신 하나님을 풍족히 누리면서 사는 공로가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반석삼아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를 기초로 그것을 붙들고 힘을 얻으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잠잠하지 마소서
시인은 하나님께 ‘잠잠하지 말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인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서 부르짖을 때 주님이 아무 소리도 듣지 않으신 것 같은 상황이 있었다는 것은 반증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믿음이 식고 우리의 영혼이 부패했기 때문에, 때로는 그렇지 않아도 우리의 무지 때문에, 때로는 우리를 에워싼 지나친 환경의 고통이 마음을 수없이 흔들어 놓기 때문에, 차마 하나님을 볼 수 없고 주님의 음성도 들리지 않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신자의 생명은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에 있습니다. 성경을 펴고 설교를 들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능력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곧 생명인고로 하나님께서 새 생명을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짓밟힌 자 같으나 말씀의 은혜를 받고 내일 아침에는 다시 살아납니다. 그래서 고난의 때에 하나님께서 은밀한 장막에 불러들이셔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은혜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면 넉넉히 이 세상의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실로 광야와 같은 세상의 길속에서 우리의 유일한 위로가 무엇인지 생각해야합니다. 우리가 먹고, 입고, 마시고,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들은 영혼에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영혼의 진정한 위로는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생명이신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당신의 생명을 이입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쓰러지지 않습니다. 짓밟히는 자 같으나 다시 일어나는 자요, 패배하는 자 같으나 승리하는 자요, 버림받은 자 같으나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자입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
고통 가운데 계신 주님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시인이 잠잠치 말아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살지 않고 보이지 않은 것으로 사는 것이 믿음생활입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 생활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은 것들이 우리에게 느껴져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감각은 그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합니다. 우리의 이성에 있는 확신들은 우리의 마음의 경험을 통해서 유지됩니다. 그래서 기도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는 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꼭 붙들고 세상을 이기면서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악인과 하나님을 경외 하는 자
“악인과 행악하는 자와 함께 나를 끌지 마옵소서 저희는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저희의 행사와 그 행위의 악한대로 갚으시며
저희 손의 지은 대로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보응하소서
저희는 여호와의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저희를 파괴하고 건설치 아니하시리로다”(시 28:3-5)
악인과 같이 취급하지 마소서
시인이 악인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하나님께 탄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기와 악인을 동급으로 취급하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가 이토록 하나님 앞에 탄원하지 않을 수 없는 심리가 있습니다. 시인 자신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지만 악한 사람들처럼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지만 겉보기에 악한 사람들과 비슷하게 사람의 눈에 비치는 적이 있다는 심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시인이 불신자들이 보기에도 가끔은 악한 사람들과 유사하게 보이는데, 하물며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분이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 시인이 악인과 같아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니 모두 다 치우쳐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심리적으로 이 시인은 그런 무거움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바라보실 때, 이 세상의 인간들이 모두 똑같이 악을 행하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자기를 그 악인과 똑같이 취급하지 말아달라고 하나님 앞에 탄원을 드리고 더불어 악인들에 대해 하나님께 고소하고 있습니다. 그가 악인들을 고소하는 이유는 “저희는 하나님이 하신 일과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의인과 악인에 대해
시편에서 나오는 선인과 악인, 의인과 악인에 대한 견해를 고려해야 합니다. 시편에서 바라보는 악인과 선인의 구별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토대로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착하고 좋은 행실, 한두 개를 통해서 의인이냐 악인이냐를 판가름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영혼의 질을 판단기준으로 선인과 악인이 나누어집니다. 물론 의인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악을 행할 때도 있고 혹은 옳지 않은 행동을 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아 내면의 세계가 변한 사람들입니다. 주도적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마음의 경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경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죄를 짓고 창조의 목적에 어긋나는 것 같은 자기사랑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도적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면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흘러가는 그런 마음의 경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그러나 악인도 가끔은 선을 행하고 덕스러운 행위들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고 심지어 그의 내면세계의 질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을 보면서 하나님을 묵상하지도 않고 심지어 하나님이 그것을 지으셨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자기는 그런 사람과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기를 긍휼히 여겨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악인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결론과 적용
마찬가지로. 우리도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때때로 하나님을 거스르며 불순종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수시로 하나님 앞에 꺾어져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신앙의 체험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끊임없는 자기꺾임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경향이 내면 깊은 곳에서 훨씬 더 우세하게 주도적으로 심겨져 있음을 입증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이 진짜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 됩니다. 그때 하나님을 수시로 의지하면서 기도해야합니다. “나는 약하기 때문에 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나는 악한 사람들과 다릅니다. 내 마음에는 주님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순종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 고난을 받으나 의롭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인 것입니다.
의지하는 자를 도우시는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시 28:6-7)
힘과 방패이신 하나님
다윗은 시편에서 자주 “하나님이 나의 힘이며 방패”라는 신앙고백을 합니다. 이것은 전쟁에서 얻은 모티프입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한 나라가 아무리 선하고 좋은 뜻을 가지고 있어도 힘이 없으면 지게 됩니다. 그러니 전쟁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힘입니다. 한 나라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나라를 먹느냐, 먹히느냐가 좌우됩니다. 여기서 ‘방패’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입니다. 빗발치듯 쏟아지는 화살의 공격과 칼의 공격에서 자신을 방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힘이며 방패의 근원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영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삶은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영적 전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세상과 더불어 싸우고, 자신과 더불어 싸우고, 마귀와 더불어 싸우고 끊임없이 전투하며 살아갑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인데 여기서 승리하게 하는 원동력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능력과 보호를 덧입어서 영적인 전투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특별한 사랑과 능력이 없이는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예전에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다고 해서 오늘도 저절로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예전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했듯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도우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이 자신을 도우심입니다. 하나님께서 방패와 힘이 되어주시는 것을 다시금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경험할수록, 주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되고 그분의 이름을 높이고 찬송하게 됩니다. 그래서 물론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은혜가 충만하신 분이심을 우리들은 머리로는 압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우리의 순종하는 삶 속에서 경험하게 될 때 하나님에 대한 감격이 마음에 체험됩니다. 그래서 더욱 뜨겁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변화들이 생겨납니다.
시인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전쟁과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시는 원인을 고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는 그분이 자비로우시고 언약에 충실하기 때문에, 시인의 편에서는 자기가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했더니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신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넓은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우리 모두가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개념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지만 실제적으로 마음이 가난해져서 주님을 꼭 붙들고 “주님 없이는 내 인생의 길을 한 발짝도 앞으로 갈 수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결론과 적용
하나님을 깊이 의지할 때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차지 않습니다.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될 때 인간은 전적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이유에서든, 정신적인 이유에서든, 육체적인 이유에서든, 어떤 이유에서든지 다른 곳에서는 해결할 수 없고 오로지 주님에게서만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가십니다. 거기에서 마음의 묵은 때들을 다 털어버리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만들어주십니다. 그 안에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깨달으며 변화되고 하나님께 가까이 하게 되고 그분을 전심으로 찬양하게 됩니다.
찬송하게 하시는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시 28:6-7)
하나님을 찬양하는 때
시편에서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단지 찬양 인도자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에서 저절로 가슴 벅찬 찬양이 우러나오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 찬양을 드릴 때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오랜 기도를 응답해주셨을 때입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으고 집중해서 간구하는 기도제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기도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더욱 인정합니다. 기도응답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자기를 사랑해주신다는 사실을 새록새록 느낍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제목을 주시는 것 자체가 커다란 축복입니다. 모든 것들이 물 흘러가듯 편안하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할 절박한 이유가 없을 때 우리의 삶이 부패하고 잘못됩니다. 흐르는 모든 물이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숲 속에 들어가서 흐르는 물소리를 내는 이유는 물들이 흘러내릴 때 부딪히는 돌멩이와 계곡의 곡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없다면 개울이 흐르는 산이 얼마나 적막하겠습니까? 졸졸졸 물소리 때문에 산에 정취가 더하고, 숲 속에 이파리들이 더욱 청청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의 삶도 이렇게 하나님께서 때때로 고난을 주시고 기도제목들을 남겨두기도 하십니다. 그래야 우리는 마음을 모으고 기도하며 응답이 온즉 심령 저 깊은 곳에서부터 찬양이 흘러넘치게 됩니다.
기도의 제목을 주심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기도의 제목을 주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기도의 제목이 남아있어 매달려야만 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것이 가시밭길같이 고생스럽지만 그로 인해 우리의 인생은 향기롭고 우리의 마음이 부패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매순간 주님을 의지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복된 삶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사랑하지만 우리들이 늘 힘이 없고 연약하고 무능력해서 무미건조한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의적절한 기도의 제목들을 주시고 또 원수들을 남겨두어서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십니다. 또한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된 것들을 남겨두셔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사랑하는지 보십니다. 만약 우리가 문제들에 에워싸여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만 하면 언제나 이 문제보다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시어 승리하게 해주십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의 영혼에는 노래가 있고 우리의 삶에는 향기가 있습니다. 그처럼 자기의 백성들을 버리시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를 매일매일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시 8:9)
본문해설
앞에서 기름 부름 받은 자를 대적해서 원수들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해하려고 하는 많은 무리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산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의 인생의 위기에서 유일한 구원자요, 도움이신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강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지하는 자들을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까 당연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불쌍해 보입니다. 악을 행해도 선으로 갚고 고난을 당해도 참고 시련이나 고통이 와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오늘날 같이 치열한 경쟁시대에는 어울리는 않는 삶의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면서 살 때 하나님의 백성들을 홀로 두시지 않습니다.
구원해주소서
시인은 세 가지 기도를 하나님 앞에 간절히 드리고 있습니다. 첫째는 구원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여기서 사용되는 구원이라는 의미는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는 것보다는 좁은 의미로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건져달라는 구출, 도움을 의미합니다. 다윗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나라의 임금이지만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하며 주님의 도움을 호소합니다. 그런데 그의 태도는 자신이 권력이 있어도 이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힘으로 어떤 것을 해결할 능력이 있어도 하나님을 의지해야합니다. 우리의 권력이나 돈 또는 물리적인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내면적인 문제가 아니라 외면적인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 속에 깊이 뿌리박은 고통과 미움과 상처 같은 것들은 돈이나 권력으로 절대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견지에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이 우리의 실질적인 삶 속에서 풍성하게 나타나기를 구해야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의 모든 삶까지 온전히 하나님에 의해서 구출되어 주님과 함께 구원받은 성도의 기업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 성도의 행복입니다.
복을 주소서
둘째는 주의 산업의 복을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 산업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간단히 말해서, 주님을 위해서 도모하는 산업들입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우리의 직업 활동이나 일상생활이 여기에 속합니다. 좁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사업을 뜻하는 것입니다.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 앞에 도모하는 모든 일들 여기에 속합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직접적으로 애쓰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의 사업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늘 기도하고 헌신해야할 것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의 번영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교회의 번영을 통해서 우리의 인생의 목적인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에 이바지할 수 있고, 이것은 곧 우리가 창조 목적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의 번영을 위해서 기도하고 헌신하는 것은 교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것보다 더 큰 목적인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에 이바지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각자가 한 알의 밀알로 교회를 위해 헌신함이 교회의 번영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위한 밑거름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도록 빌어야합니다. 한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았는가는 그 시대의 사회적 번영이 아니라 교회의 번영을 통해 가늠되는 것입니다. 전쟁과 기근, 시련과 고난이 많아도 하나님의 교회가 번영하는 때가 있고, 모든 것이 평안하고 넉넉해도 주의 산업의 하나님의 복이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시대에 태어나서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헌신적으로 살았는가에 달린 것입니다.
목자가 되옵소서
셋째로, 시인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저의 목자가 되어 주십시오. 그리고 영원토록 드십소서.”라고 말합니다. 목자란 양들을 위해서 꼴을 공급하고 맹수로부터 양떼를 보고하고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속에는 시인 자신과 언약 백성들은 양떼일 뿐이라는 고백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언약 백성들의 처지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 그래서 우리 각 사람이 하나님을 의존하는 마음으로 살 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을 깊이 의존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이 주님을 의지하고 살 때 각자가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처럼, 공동체 전체가 주님을 깊이 의존하며 살 때 공동체가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생활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만물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기 전에 신자의 마음 안에서 영광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 전에, 선교지에서 영광을 받으시기 전에, 전도의 현장에서 영광을 받으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공동체 안에서 영광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먼저 교회의 마음이 전체적으로 주님을 의지함으로 주님이 무엇을 분부하시든지 그대로 따를 수 있는 교회의 마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시편28편 강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