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lms 29
목 차
영광을 돌릴 여호와(시 29:1-3) 53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시 29:4-9) 56
왕으로 좌정하신 여호와(시 29:10-11) 58
영광을 돌릴 여호와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뇌성을 발하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위에 계시도다”(시 29:1-3)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이 찬송시도 역시 다윗의 시입니다.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는 원어상으로 보면 힘 있는 자들, 권세 있는 자들, 권력이 있는 자들이란 뜻입니다. 힘은 육체의 힘뿐만 아니라 지위의 힘, 물질의 힘 등의 작용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런 힘이 있는 사람들아”라고 부르면서 찬양을 올리고 있지 않습니까? “너희 권세와 능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굴복함으로써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지만 권세 있는 자들이 굴복하는 것은 더 많은 영광의 효과를 가져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선교 초기에 포교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선교사들이 왕궁에 먼저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병원을 지어 왕실가족들을 치료하면서 그들과 친분이 쌓고 선교에 대해서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또 아프리카 선교에서도 한 부족에서 추장이 예수를 믿게 되면 단번에 하나님을 믿는 부족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보더라도 힘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굴복하면 그 효과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미치게 되니,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힘 있는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 꺾어지고 굴복하는 놀라운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영광과 능력을 하나님께 돌린다.”라는 것은 자신들이 힘을 가지고 있는 그 자체가 영광입니다. 그리고 또 거기에서 나타나는 효과, 그런 것들이 다 영광입니다. 그러한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하나님 앞에 돌리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 때문에 온 것이라는 것, 이것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그 권력과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권력과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그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참 크시구나.” 이것을 고백하게 되는 것, 이것이 하나께 영광을 돌리는 방식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런 권세와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습니까? 그런 권세와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하나님께 영광과 능력을 돌리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하나님 앞에서 그 영광과 능력을 뽐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뽐내는 것이 교만이고 거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영광을 보게 되면 굴복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영광과 능력을 도움을 받기 위해서 혹은 부러워서 혹은 압도당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 앞에 머리를 숙이고 그 사람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그런 인정에 조금도 마음 쓰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께 깊이 무릎을 꿇고 그분의 이름을 깊이 높여 드리고 그 앞에서 꺾어집니다. 권세를 가진 사람이 꺾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가 경배하고 있는 하나님은 얼마나 높으신 분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보면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이 후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하나님 앞에 자기를 굴복시키도록 힘 있는 자들을 향해서 다윗이 외치고 있습니다.
모든 물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
뒤이어 3절에서 덧붙이는 말이 “하나님은 모든 물 위에 뛰어나신 분이시다”라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물이 히브리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신비한 물체였습니다. 이것의 1차적인 의미는 아주 신비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물은 모든 것들이 생성되는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이 물로부터 모든 것이 나옵니다. 이러한 신비함, 그리고 모든 것의 생명을 전달하는 근원이 되는 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 위에 뛰어남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아주 놀랍고 위대한 창조의 능력, 이런 모든 개념들이 모두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 그런 많은 권세 있는 자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굴복해야 하며, 왜 그 권세와 영광과 능력을 하나님께만 돌려야 합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물 위에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초월하신 하나님으로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세와 능력 그 모든 영광의 원주인이시기 때문에 모두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높고 뛰어나신 분이신지를 배움으로 그분을 인정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고 인간에 대해 알고자 합니다. 그런데 인간을 자유하게 하는 놀라운 능력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봄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영혼의 자유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은 언제나 인간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지식이 생기는 것만큼 인간에 대해서 올바른 이해가 생겨나게 됩니다. 우리의 참된 소망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워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큰 은혜와 사랑을 발견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많은 권세와 영광과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은 그 위대한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자신의 교만을 꺾게 됩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되는 것입니다.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가 힘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그 나무를 송아지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같이 뛰게 하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하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으로 낙태케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 전에서 모든 것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시 29:4-9)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하는 이유
앞에서 시인이 권세 있는 자들에게 영광과 능력을 하나님께 돌리라고 외쳤습니다. 4절부터 9절까지는 왜 권세 있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 굴복하고 영광과 능력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되는지를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는 비교될 수 없는 권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권능과는 비교될 수 없는 아주 탁월한 권능과 능력으로 존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더 커보고 그래서 어리석은 사람은 육신의 눈의 현혹되어 ‘사람의 권세는 크다’ 그리고 ‘여호와는 없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 위에 뛰어나서 만물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신다는 것을 성경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 시인은 자연계 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도덕적 권능을 유추하고 있습니다.
질서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에는 두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연적인 질서고 또 하나는 도덕적인 질서입니다. 자연적인 질서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법칙대로 움직이게 하시는 그 아름다움의 질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것들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백향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변하지 않는 나무 그 뿌리가 매우 단단하게 박혀서 웬만한 바람에는 쓰러지지 않는 그런 나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하나님이 보내신 폭풍의 바람 속에서 이런 나무들이 쓰러지고 뿌리가 뽑혀 길길이 뛰는 것 같은 모습을 목도했습니다. 하늘을 가르고 번쩍이는 낙뢰와 그리고 거기에서 모든 산촌초목들이 뒤흔들리고 땅들이 흔들리는 경험들을 하였습니다. 그 모든 것들을 움직이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나서 이 땅에 권력이 있다고 해서 교만하고 자만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권세가 많지만 그러나 너희들과 비교될 수 없는 위대한 권능을 가지신 하나님 앞에 복종하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가르치지만, 신앙을 가진 사람의 눈에는 어디든지 하나님이 계시며 주님이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주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는 것이 보이기 때문에 그 사랑의 질서를 따라서 이용하여야 할 사물과 사랑하여야 할 하나님을 구별하면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의 진수입니다. 그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렇게 하나님 앞에 매일매일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왕으로 좌정하신 여호와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영토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시 29:10-11)
홍수 때에 좌정하신 여호와
29편 앞부분에 나오는 자연계의 큰 변화는 어쩌면 홍수 때를 생각하면서 지었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위엄 있는 폭풍과 물과 자연의 변동과 이런 것들을 주장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자연적인 질서가 아니라 인간 세상이 사는 세상 속에서의 도덕적인 질서, 이것은 더더욱 하나님이 강력히 주장하시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삶에 간섭하셔서 그들의 풍파가 많은 삶 속에서도 하나님이 모든 세상과 인간의 일들을 다스리시는 통치주임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환난과 풍파와 시련과 이런 것들을 통해서 예전에는 하나님이 모든 사상에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들은 언제든지 일어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평안할 때는 하나님을 몰라보았지만 29편 3절 이하부터 나오는 많은 백향목이 꺾이고 사슴이 낙태하는 등 커다란 자연의 변동이 일어나는 것처럼 인생 전체의 뿌리가 흔들이는 것 같은 위기상황 속에서 주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라는 사실, 이런 것들을 깨달으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의 세상사에 간섭하셔서 풍파 많은 인생의 위기 속에서 당신이 살아계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거기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위엄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인간 자신에 대한 많은 해답을 인간자신 속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찾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바로 인간이 유래하게 된 본고향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관해서 우리들이 많이 깨닫게 될 때 인간이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며 우주에서의 인간의 자리가 어디인가 하는 것에 대한 답들이 나옵니다. 오늘날은 모든 관심들이 인간 자신에게로 시작해서 인간 자신에게서 끝납니다. 자기 자신의 행복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주님을 만나고 거듭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육신에 매인 사람은 자신의 행복이 최고의 가치이지만 하나님에게 매인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마음의 기쁨이 되는 것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행복한 것이 최고의 가치지만 한 사람의 가치는 거룩해지는 것이 가치입니다. 또 전자의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인생의 가치지만 후자의 사람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인생의 가치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것입니다.
왕으로 좌정하신 여호와
시인은 홍수가 일어나서 커다란 자연의 변화가 일어나는 비범한 변동 속에서 하나님의 위엄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왕이신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다스리심을 경험합니다. 그런 식으로 인간의 제일가는 본분은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군가를 깨닫고 그분 앞에 부복하며 그분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주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자기를 중심으로 행복하기 위해서 아무리 많이 애를 써도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행복은 우주의 모든 사물들의 질서 속에서 자기의 위치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 위치에 정확하게 자기를 둘 때, 그 올바른 질서 속에서 자기를 사랑하게 될 때, 비로소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것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으로서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것이 하나님 주권사상입니다.
시인은 이 커다란 자연의 현상, 홍수, 폭풍과 같은 백향목의 뿌리째 꺾이는 커다란 자연의 현상들을 보면서 마지막에 깨닫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이 모든 인간세계의 통치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적 질서를 이 커다란 자연현상의 변동을 통해서 이 모든 질서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위엄 있는 능력을 발견하고 거기에서 바로 인간의 도덕적 질서를 통치하시는 주재자로서의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름다움을 자연 속에도 나타내시고 인간의 영혼 안에도 나타내십니다. 당신의 위엄도 이 자연세계 속에 드러나고 그리고 도덕적인 질서 속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이 만물과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하나님이심을 입증합니다.
시인은 본문에서 이러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며, 또한 어그러진 자에 의해서 고통을 받을 때에 힘을 주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 큰 위엄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 위엄의 정체가 바로 힘입니다. 힘이 무엇입니까? 도저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 혹은 그렇게 있을 수밖에 없는 어떤 것들을 변동시켜놓는 에너지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가지고 계셔서 백향목은 그대로 심겨있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하나님이 그것을 뿌리째 뽑아서 길길이 뛰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힘입니다.
결론과 적용
하나님은 변함없이 있는 것 같은 것들도 바꾸시고, 또 변하는 것 같은 것들도 요동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실 수 있는,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이 세상의 사물도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 놓는, 그런 놀라운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인간은 그 무한한 힘이 없기 때문에 자기에게 주어진 처지를 숙명처럼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시간이 끊임없이 그를 뒤흔들어서 다른 곳으로 움직일 때 그는 그것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 순응하면서 사는 자기의 체념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당신의 백성을 위해 힘을 주셔서 운명과 같은 상황을 바꿔 놓으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백성들을 불러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런 평강을 자기의 백성들에게 아낌없이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지고 있는 문제가 아무리 많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매달려서 그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면 그분은 능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힘을 가지고 우리의 삶의 질서들을 바꾸어 놓아서 결국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힘은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방향이어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고려하지도 않은 채, 자기가 원하는 인생의 방향으로 가면서 힘만 빌려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이 힘을 빌려주시지 않으십니다. 자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며 창조의 목적을 따라 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을 주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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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29편 강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