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사모인턴십 수료예배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2:3-4)
녹취자: 김미영
우리 모두가 원하는 바는 기왕에 우리가 목회 사역을 하도록 부름을 받았으니까, 사역을 잘 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겁니다. 우리가 마음이 식을 때에는 그렇지 않지만 은혜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이 길을 선택할 때 세상의 부귀와 영광을 위해서 이 길을 선택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적어도 가던 인생의 길을 꺾고 신학을 공부하고 그 고통과 괴로움이 기다리는 목회 사역을 하겠노라고 발을 들여 놓았을 때에는 사실 그럴 만한 사연이 없이는 결단을 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된 사람은 언젠가는 한 번 쯤 다 주님을 위해서 죽으라면 죽을 마음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실제로 목회를 해 보면 교회가 잘 안 됩니다. 그게 이제 문제인 겁니다. 제가 잘 아는 목회자 한 분은 큰 교회에서 훈련도 잘 받고 학교도 아주 좋은 학교 나왔고 준비가 됐습니다. 교회를 했는데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잘 안 됐어요. 그러고 나서 한 2년 뒤에 만났는데 저한테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 저는 목회가 안되는 게 이유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부목사 때는 사람들을 이렇게 보면서 ‘설교를 저렇게 하면 교회가 될 일이 있나? 인격이 저러니 교회가 될 까? 행정을 저렇게 못하니 교회가 시험에 들지 그랬는데 자기가 해 보니까 교회는 원래 안 되는 거다 안 되는 거는 이유가 없고 되는 것만 아 저렇게 헌신을 하니까 교회가 되는구나. 목숨까지 바치니까 교회가 되는구나. 아니면 저렇게 학문이 뛰어나니까 목회가 탄력을 받는구나. 인격이 훌륭하니까 교인들이 따르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을 이렇게 보면 한 편으로는 기대도 되지만 한 편으로는 염려와 걱정이 많이 앞서요. 쉽지 않은 이 길을 여러분이 걸어갈 텐데.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요? 가야죠? 그래서 오늘 가는데 그 가는 길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오늘 성경에 나옵니다. 그게 뭐냐 하면 그리스도 예수를 위한 좋은 군사가 되라 그러면 된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역사에 보면 로마가 아주 강한 나라였죠? 그렇게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강력한 군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가 우리 이 편지를 쓸 때에도 머릿속에 군사라고 할 때 그리는 그림이 용맹스럽게 전쟁터로 나가거나 혹은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로마의 군인들을 어려서부터 보아 왔을 거고 그것을 염두에 두면서 이 편지를 썼다고 봐야 합니다. 로마가 강력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군대의 힘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많은 군대가 전쟁에 나가야지만 승리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로마는 그런 상식을 깼습니다. 여러분 영화 같은데서 보면 희랍 군대들이 쓰던 방패, 페르시아 군대들이 쓰던 방패는 굉장히 큽니다. 그리고 사각형입니다. 특히 그리스 군대의 것들은 마케도니아 군대는. 그래서 방패를 세워놓고 방패아래 살짝 숨으면 아무리 화살이 날아와도 안 맞는 그러한 무기였습니다. 로마 군인들의 방패는 조그마합니다. 그리고 동그랗게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짧은 치마를 입고 칼도 긴 칼을 사용했습니다. 칼로 맞서 싸울 때는 긴 칼이 유리하잖아요? 이 사람들은 짧은 칼이에요. 그래서 어떻게 하냐 하면 아주 용맹스럽게 정신을 집어놓고 육체를 단련시켜서 아주 작은 방패로 날렵하게 움직이고, 짧은 팔로 신속하게 움직여서 큰 방패 큰 칼을 두고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을 찌르는 겁니다. 군대 단위도 단위를 작게 만들어서 많은 군인을 거느리면 전투에 불리하다고 본 겁니다. 살찐 사람이 싸우는 것처럼. 그래서 소수가 싸우면서도 강한 군인 정신을 집어넣어서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싸우게 하는 겁니다. 그런 군인들이 잘 발달된 도로를 이용을 해서 반란이 일어났다 왜적이 침입했다 그러면 변방에 있는 군대가 막지만 도시에 있는 부대에서 그 잘 닦여진 도로를 타고 질풍같이 달려 들어가서 단 번에 섬멸을 해 버립니다. 그래서 말하자면 게르만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된 겁니다.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냐면 그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철저히 훈련을 받는 겁니다. 특히 장교들은 귀족의 자제들 중에서 선발이 되는데 아예 우리로 말하자면 중학교쯤 들어갈 나이부터 파란 풀밭에다가 수영장까지 갖춰 있는, 당시로선 초현대식 건물에서 소수 정예로 훈련을 시키는 겁니다. 그게 대부분의 훈련이 레슬링입니다. 온 몸에 올리브유를 바르고 레슬링을 하는 겁니다. 거기서 짐나지움이라는 문법학교라는 이름이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훈련을 시켜서 어려서부터 너희는 위대한 로마의 군인이다 로마를 위해서 너희는 받쳐진 사람이다 그런 영광스런 특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나라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바쳐라 훈련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 그런 정신으로 성장한 사람이 위대한 로마를 위해서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충성하는 겁니다.
그럼 여러분이 앞으로 목회를 하게 된다고 할 때 정말 필요한 것은 뭐냐 하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주님을 위해서 무지한 자신을 포기 하겠다는 헌신입니다. 그런 군인 정신이 있으면 교회가 크게 될 수도 있고 작게 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단단한 교회가 뭉쳐집니다.
그런데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가 겁이 많고, 미적미적하고, 그런 점에 있어서 사생결단이 안 돼 있어서 비겁한 군인이 되면 교회는 처음부터 성립을 안 합니다. 자 전쟁이 납니다. 전쟁이 나면 이제 전쟁이 나서 팽팽하게 전투가 벌어지는데 밀리는 겁니다. 원래 전쟁할 때 지휘관은 앞에 서는 게 아니라 뒤에 섭니다. 지휘관이 먼저 죽어 버리면 부대가 오합지졸이 되잖아요.
저희 아버님이 참전 용사이셨는데 항상 지휘관은 뒤에 선대요. 그래서 ‘돌격’ 하는 겁니다. 심지어 안 가면 뒤에서 총을 쏘고 가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위기가 오면 부하들이 다 두려워서 후퇴하려고 할 때에는 장교가 지휘관이 앞으로 뛰어나가는 겁니다. 그러면서 ‘나를 따라라’ 하는 겁니다. 그 때에 겁에 질렸던 부하들이 용기를 얻게 됩니다. 요새 중앙일보에 계속 나오고 있는 백선엽 장군의 6.25 체험에, 말하자면 자기의 자서전에 나옵니다. 똑같아요. 막 돌진하는 겁니다. 그런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그런 정신이 필요하고 그러면 좋겠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 그 정신은 한 순간의 만용으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서서히 그 정신이 굳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이 올 때 ‘좍-’ 자기 자신을 쏟아 부으며 주님 앞에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할 수가 있는 겁니다. 훈련 받는 것도 매이지 않고 철저하게 자기를 드려야 됩니다.
그래서 로마의 군인들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로마의 군인들에게 훈련은 피 흘리지 않는 전투였고, 전투는 피 흘리는 훈련이었습니다. 거기에서 위대한 제국의 힘이 나왔던 겁니다. 그러면 그 정신은 담임 목사가 된 다음에 어느 한 순간에 불쑥하고 솟아 나오는 게 아닙니다. 물론 여러분이 목회를 하는 교회가 목사님이 훌륭한 목회자일수도 있고 별로 그렇지 못 할 수도 있고 또, 아주 생각과 정신이 올바르실 수도 있고 좀 덜 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목회자니까 자기 교회에서 헌신하는 교역자들은 알아 볼 것 아닙니까? 그래서 여러분이 사역을 지금 있는 교회에서 피 흘리지 않는 전투처럼 그렇게 사역을 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해 주는 대우나 목사님의 인격이나 이런 것을 보지 말고, 하나님 한 분 앞에서 그래서 여러분이 3년이나 5년, 혹은 7년을 봉사하고 그 교회를 떠난 후에도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이 여러분의 이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수없이 실험을 해 봐도 교사 잘 하던 사람이 소명을 받고 신학교를 가면 그 사람 전도사 시키면 잘 합니다. 전도사 잘 하던 사람이 부목사 시키면 똑같이 잘 하고 그렇게 부목사로서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하던 사람이 담임 목회를 하면 잘 하는 겁니다. 똑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니까 내가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영광을 누리자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 자신이 고난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제자인 디모데에게도 ‘나와 같이 고난을 받자’ 라고 말 할 수가 있었던 겁니다. 그것이 바로 군사입니다.
여러분은 초등학교 때 읽었던 백제와 신라의 마지막 황산벌의 전투를 기억하죠? 온갖 간신들의 농간에 그 적을 섬멸하기 좋은 마지막 길목을 다 내어주고 그리고 계백 홀로 남았을 때 전쟁터에 나가면서 그가 마지막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가족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이들의 목숨에 매이지 않고 전쟁하리라 그런 마음으로 전투에 임했습니다. 그런 자세가 중요한 겁니다.
언제 매일 매순간 전도하는 영혼 하나를 위해서도 이게 마지막 전투인 것처럼 오늘 새벽기도에서도 이게 마지막 전투인 것처럼 오늘 수요 예배 설교에서 구역예배 인도에서도 이게 마지막 전쟁인 것처럼 그렇게 자기를 쏟아 붓는 가운데 주님이 부르시면 자기를 무제한으로 헌신할 목숨을 건, 죽든지 살든지에 대한 이러한 절실한 결단에 힘이 그렇게 축적되어서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긴 세월은 아니지만 공부도 해 오고, 교회 목회도 해 오고 영적인 많은 경험들을 거치면서 목회에 필요한 근력, 어떤 근력이 있을까? 정신적으로는 학문적으로는 지성적인 근력이 있겠죠? 그 다음에 또 뭐가 있습니까? 또 어떻게 보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품고 갈 수 있는 인격적인 근력도 있잖아요? 인성, 성품적인 근력, 그 다음에 영력도 있습니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요? 그 이외에도 사역을 해 나가면서 우리들이 만나게 되는 많은 도전을 헤쳐 나가는 어떤 정신적인 연단과 인내의 근력,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절대로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장시간 동안을 자기를 바치고 연단하는 가운데 간신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다른 겁니다.
어느 회사의 CEO가 제 나이 또래 됐는데 그야말로 바디빌딩을 열심히 해 가지고 정말 몸짱입니다. 사장이 자기 회사의 광고를 자기 육체미를 이용해서 찍었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 얘기가 거의 40년을 했다고 합니다. 10대 때부터. 그러면서 하는 얘기가 뭐냐 하면 젊은 사람들 배 나오고 기력이 없으면 갑자기 도장에 와서 3, 4개월 만에 자기 같은 몸을 만들려고 한다는 겁니다. 안 먹고 막 미친 듯이 운동을 하는데 그 사람이 얘기해요 ‘도둑놈들이죠’ 절대로 그렇게 되는 게 아닙니다. 지금도 새벽 5시부터 7시, 7시 반까지 매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렇게 운동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 세월이 장구하게 흐르면서 근력이 생겨나게 되는데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과 인격, 성품, 영역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어린 아이 적에 광야에 보내져서 이스라엘에게 나타난 날 까지 빈들에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지금 있는 그 곳에서 불평하지 말고, 뭐 교회가 어떠니 우리를 이해해 주느니 어떠니 목사님이 말씀이 있니 없니 그런 얘기 하지 말고 주님이 보내주셨다는 확신이 서 있으면 그 곳에서 ‘이곳이 내 마지막 순교지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헌신을 해서 하나님의 강력한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도록 그런 자기 죽음의 길로 사역 속에서 걸어가야 됩니다.
주님을 섬기면서 죽어 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많은 지체들을 앞에 놓고 짧은 한 마디의 말로 심금을 울리는 연설을 하기 위해서는 가혹하리만치 긴 세월동안 자기희생과 고난의 길을 가야 하지만 그것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지금 온 마음을 다 쏟아 부어서 그렇게 섬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 좋은 동료를 사귀세요. 게으르고 나태하고 부패하고 미끄러지고 지성이 혼란스러운 사람들하고 사귀면 여러분 자신은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라고 착각을 할 겁니다. 그러지 말고 아주 올바르고 신실하고 거룩하고 열정적이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귀세요. 그런 사람들로부터 도전을 받으세요. 그리고 자기 부족을 날마다 깨달으면서 전진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