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섬김 기도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마26:6-13)
녹취자:장형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면 우리 예수님을 섬겼던 한 여자가 나옵니다. 마태복음뿐만 아니라 누가복음에도 이 기록이 나옵니다. 아마도 이 여자는 창기였던 사람으로 여겨지고 그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어서 복음을 듣고 은혜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초대받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이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 대접을 받으실 그 때에 그 자리에 찾아왔습니다. 아마 문둥이는 아니고 문둥병의 걸렸다가 나아서 사람들이 그저 문둥이였던 시몬하고 불러주던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섬긴 것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행하여 기념하리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그렇게 이 여자의 섬김이 탁월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여자의 섬김은 어떤 종류의 섬김이었겠는가? 우선 첫 번째는 말없는 섬김이었습니다. 상당히 긴 이야기가 식사와 함께 마지막까지 이어지는데 예수님의 말씀도 나오고 또 제자들의 이야기도 나오고 사람들의 대사가 많이 나오는데 유독 이 여자의 대사는 안 나옵니다. 그러니 이 여자는 말없이 주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교회에서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많이 있지만 말없이 섬기는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섬기는 것은 고맙지만은 섬겨서 쌓은 것만큼 말로 허물어 버려서 교회의 화평을 깨뜨리고 작은 일을 해서 하나님께 유익을 드렸지만 또 많은 일로 말로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와 고통을 주면서 아파합니다.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면서 그러면서 교회는 사랑으로 하나 되어야 할 교회에서 서로 사람들이 상처를 주고받으며 미움과 원망의 씨를 뿌리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해서 좋은 일은 마음속에서 금세 잊혀 지지만 나쁜 기억들은 오래갑니다. 우리의 마음 밭 자체가 부패한 마음 밭이기 때문에 미움과 갈등의 씨는 빨리 열매를 맺고 사랑과 온유의 씨들은 더디게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니 말없이 섬긴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은 기왕에 주님을 섬기기로 결심한 사람들이었으니 이렇게 말없이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섬기는 동안에 말없이 섬긴다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주님께 부르심을 받아서 이런 저런 일로 일 년, 이 년을 섬길 때 수많은 사연이 있습니다. 오해를 받을 때도 있고 때로는 터무니없는 모략에 직면할 때도 있고 때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다른 사람들의 말 때문에 당하여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때에도 말없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마다 사람을 바라보면 참을 수 없고 인간을 바라보면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앙망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계실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평화로울 때에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고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셨지만 고난을 당하셨을 때에는 그 분은 묵묵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하기를 그는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어린양과 같았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참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오래참게 만들어주는데 은혜는 바로 그 사랑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섬겨서 남겨놓은 일 뿐만 아니라 섬기는 과정, 섬기는 그 마음자체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만한 그런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모든 과정이 주님을 섬기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 앞에 드리는 어떤 것도 주님께는 새로운 것일 수 없고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모든 것이 원래 주님 것인데 우리를 통해서 당신에게 오는 것이니 주님에게는 새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히려 그 결과보다는 우리들이 그 분 앞에 드리는 섬김의 과정을 통해서 드러나는 마음 때문에 우리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점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는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섬김의 두 번째 특징은 최선의 것을 드리는 섬김이었습니다. 당시 이 향유는 재산 축적의 수단이었습니다. 금이나 은이 돈은 아니지만 그것을 사가지고 있으면 언제든지 시장에 나가서 팔아서 화폐로 바꿀 수 있었던 것처럼 또한 이 향유도 그러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이 기록이 나오는데 제자들이 가격을 산정하기를 삼백 데나리온이라고 했는데 삼백일분의 노동자 품삯이었습니다. 지금 아마 8만원이나 십만원 정도 받는다고 치면 2400만원에서 3000만 원 정도의 액수가 나가는 향유였습니다. 아마 이 여자는 뭇 남자들에게 웃음을 팔고 술을 따라 주면서 모은 돈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돈이 모두 모이면 이 부끄러운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 아마 재산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 향유가 늘어나면서 이 여자 마음 안에 미래에 대한 꿈도 함께 자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달았고 주님이 자기의 죄를 용서해 주신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고 나니까 섬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 찾아보니까 자기에게 있는 가장 소중한 것 생각이 났습니다. 그것이 바로 향유였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예수님께 가지고 나가서 깨뜨려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드렸습니다.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최선의 것으로 주님을 섬기도록 부르시는 것입니다.
(예화) 주후 110년 안디옥이라는 도시에 이그나티우스라고 하는 훌륭한 신앙의 인물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데 그게 로마의 비위를 건드렸다고 해서 그래서 옥에 갇혔습니다. 믿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안디옥의 많은 시민들이 이그나티우스를 살려달라고 로마 황제에게 탄원을 올렸습니다. 조정에서 어느 정도 그 의견이 받아들여져서 감형이 되거나 혹은 석방이 될 수도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제자들이 찾아와서 이그나티우스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희망을 가지십시오. 이제 우리 제자들뿐만 아니라 안디옥의 모든 시민들이 선생님을 석방시켜달라는 진정서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이 믿음의 사람 이그나티우스는 말했습니다. “제자들이여 나를 석방시키려는 운동을 하지 하십시오. 나는 이미 살만큼 살았고 이제 나는 우리 좋으신 주님께 최선의 것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순교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이 여성은 비록 그런 위대한 신앙의 인물은 아니었으나 자기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예수 안에서 발견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분이 가장 소중한 분이시기 때문에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그 분 앞에 드려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생명과 같은 향유 한 옥합을 주님께 깨뜨려 드렸습니다. 우리에게 최선의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깨뜨려져 주님 앞에 드려질 때 우리의 단단한 인격도 깨뜨려지고 죄를 사랑하고 굳어졌던 우리의 심령도 깨어집니다. 그래서 거기서 하나님의 은혜의 커다란 생명이 넘쳐나고 거기에서 은혜의 생수가 솟아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좋은 환경에 처한다 할지라도 주님만을 사랑하지 않는 동안에는 근심과 염려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최선의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릴 때 그 때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가슴에 손을 얹고 ‘우리에게 있어서 최선의 것은 무엇일까? 다른 것을 다 드려도 마지막에 주님께 드리는 것이 싫어서 감추어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물질이든 재능이든 시간이든 아니면 깨어지기를 싫어하는 나의 자아이던 무엇이던지 간에 주님께 그것을 드리는 것은 주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우리 자신을 그것에 얽매었던 데서 풀어주어 자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사랑하는 것이 없는 사람, 주님께 자기를 다 드렸기 때문에 최선의 것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심지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결국은 이 세상에서 상실할 것이지만 그 모든 것들 붙들고 계신 주님은 잃어버려질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로 이 여자의 섬김은 주님을 사랑한 섬김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서는 동일한 기사로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이 여자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왜냐하면 이 여자가 나를 사랑하였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성공하고 나면 우리가 그 사람들의 친구인 것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 성공한 사람들은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게 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정말 눈꽃같이 순결했던 여인이 주님을 사랑했다더라. 그래서 주님이 받으셨다더라.’ 얼마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 입니까? ‘창녀요 기생이었던 여자가 있었더라. 그런데 주님을 사랑했다더라.’ 주님께 명예로울 수가 있었겠습니까? 오죽했으면 바리새인들이 비난하기를 ‘너희 선생님은 어째서 죄인들과 함께 먹고 창기들과 함께 마시느냐?’ 그러면서 예수님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비난했습니다.
(예화) 옛날에 오래전이지만 눈이 나빠서 군대를 갔다가 도로 와서 방위생활을 했습니다. 근데 육군사관학교에 커다란 연못이 있습니다. 거기서 밤에 몇 달 동안 보초를 선 적이 있는데 거기 가보면 달이 밝은 날이면 연꽃이 보입니다. 근데 고기가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데 낚시질하러 철조망을 넘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 잡으면 삼일 휴가 가는 것입니다. 청소하러 들어갔던 사병들 이야기를 들으니까 들어가서 발을 물속에서 휘젓는데 커다란 팔 만한 잉어들이 걸리더랍니다. 그렇게 고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물이 말할 수 없이 지저분합니다. 오물이 들어가서 그런 것은 아닌데 시커먼 흙입니다. 또 그런 오물과 흙이 많아야지만 연은 잘 자랍니다. 바닥에 뿌리를 내리니까. 신기한 게 그 연꽃입니다. 그 연꽃은 흙탕물 속에 자라는 데도 자기는 깨끗합니다. 물을 휙 끼얹어 보면 어김없이 물이 하나도 안 묻고 구슬처럼 또르르 굴러 내립니다. 그래서 하얀 연꽃은 하얀 그대로 분홍빛 연꽃은 분홍빛 연꽃 그대로 연 잎에도 물이 구를지언정 묻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향한 사랑은 연꽃과 같습니다. 그가 비록 한때는 더러운 죄인이었고 낙인찍힌 창기였고 버림받은 여자였고 가문도 그를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아녀자였으나 직업여성이요 화류계여자였으나 그가 회개하고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자 예수님은 그 천한 여자의 신랑 되신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다른 것들, 지식이나 또 다른 영적인 은사나 산을 옮길만한 믿음조차도 한 가지를 능가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한 사랑 그것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사랑 없이 기이한 이적을 불러일으켜 지구를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마른하늘에 비를 내릴 수 있는 은사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힘이 없이 주님을 순전하게 사랑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에 가득한 예수님 사랑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연약해보이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은 당신의 뜻들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기도생활이 힘든 이유는 기도하는 게 힘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없이 섬기고 최선의 것을 주님께 드리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힘든 것입니다. 가장 기도에 열려진 마음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주님의 뜻에 맡긴 마음, 살든지 죽든지 자기의 일생을 우리 주 예수님의 주권에 맡긴 마음, 그래서 주님을 의존하는 마음이 기도하기에 가장 좋은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세 가지 아름다운 여인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있는 날 동안에 주님과 깊은 은혜의 교통을 누리면서 사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