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따라간 사람들
"저희가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로서 오는 것을 잡아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좇게 하더라.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는지라"(눅 23:26-27).
여러분! 이렇게 만나 뵙게 되서 정말 반갑습니다. 20년 전에 제가 이 학교에 신학과 교수로 34세의 나이에 전임교수로 왔는데 20년 후에 와보니까 너무 많이 달라졌고 정말 감회가 큽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말씀에 은혜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과거를 돌아보면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눈물을 많이 흘렸던 때가 사실은 주님과 깊은 교제 속에서 살던 때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시는 마지막 광경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죄인으로서 재판을 받으시고 사형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죄인 취급을 받으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게 되신 것이었죠. 이 십자가는 인간이 만들어낸 사형방법 가운데 가장 잔인한 사형제도였습니다. 이 십자가의 형벌을 집행하기 전에 두 가지의 관습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기 전에 채찍을 맞는 일이었고 또 하나는 자기가 질 십자가를 스스로 짊어지고 현장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혀 죄가 없는 분이셨지만 사형언도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중에는 나쁜 일이 하나도 없고 오직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고 그들을 위해서 수고하신 생애였지만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사형언도를 내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예수님의 이 재판은 잘못된 재판이었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셨는데 체포되셨다는 점에서 잘못된 재판이었고 혹시 잘못해서 죄가 없는 사람을 죄가 있는 사람으로 오인하여 잡아갔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심문해서 백 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죄 없는 사람을 억울하게 형벌하지 않는 것이 법의 정신입니다. 그러나 재판장인 빌라도조차도 예수님의 죄가 없음을 확신했지만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그 함성으로 인해서 위협을 느낀 이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형언도를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더 넓게 보면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즉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들이 지은 그 죄는 이 세계와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지은 죄였지요. 그래서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마땅히 자신들이 지은 죄에 대한 대가를 죽음으로 치러야했는데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자기의 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내려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지은 그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담당하시고 그들의 죄 위에 부어져야할 하나님의 진노를 한 번에 감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형벌을 당하셨으니 이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싫어해서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하나님은 사람들의 이 악한행동을 수단으로 삼아서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 모든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게 하셔서 대신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그 십자가를 보고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다시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여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면서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들의 지은 많은 죄는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용서를 받게 해주시고 그들이 하나님이 자기를 지으신 그 목적대로, 창조의 하나님의 계획대로 살고자 할 때의 부족한 힘과 능력을 공급해주시도록 그렇게 영생의 구원을 예수를 통해서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언덕을 오르기 전에 이 로마의 규례를 따라서 ‘블라이도리온’이라고 하는 왕궁의 수비대가 있는 곳으로 끌려가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무수히 채찍에 맞으심으로 옷은 벗겨지고,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그렇게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그 당시의 채찍을 연구한 사람들에 의하면 당시에 널리 사용되던 채찍은 말채찍 같은 그런 채찍이 아니라 거기에 아홉 개의 가닥이 매달려 있어서 금속이나 뼈 같은 것을 깎아서 매달아 채찍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벗은 몸에 그 채찍을 후려치면 채찍이 온 몸을 휘감고 살점을 물고 후드득 떨어지는 그런 무서운 채찍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는 십자가를 지고 가기 전 채찍을 맞는 과정에 절명하는 사람들이 속출하였다고 하니 예수님이 블라이도리온에서 당하신 그 채찍의 형벌이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옷을 다 벗겨지시고 홍포를 입고 머리에는 그 긴 팔레스타인의 가시관을 눌러쓰셨습니다. 그리고 이마로부터 피가 흘러내리고 사람들은 벗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채찍으로 내리치기 시작했고 그 분의 온 몸은 피로 물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다언덕을 올라가기 위해서 무거운 십자가를 메고 쓰러질 듯이 나타나셨습니다. 그 때의 시간은 아마 아침 7시쯤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미 그 전날 밤부터 별로 잡수시지도 못하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온 몸의 땀이 피가 되도록 진액을 쏟아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셨고, 기도하신 그 후에는 사랑하던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셔서 병정들에게 끌려가셨고, 빌라도에게로 거기에서 욕을 보시고, 헤롯에게로 거기에서 수치를 당하시고, 다시 빌라도에게로 끌려와 밤새도록 고문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지금으로 치면 120킬로그램 내지 140킬로그램이 되는 무거운 나무십자가를 메고 골고다언덕을 향하여 올라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길의 뒤를 따르고 있었으니 이는 그때가 바로 유대인의 최대의 명절인 유월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지만 그 사람들을 두 부류의 사람들로 아주 선명하게 나누어 놓았습니다.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랐다고 되어있습니다. 도대체 이 백성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오늘 성경에는 백성들이라고만 나오는데 34절을 한번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는지라 저희가 그의 옷을 나누어 제비 뽑을 새 백성들은 서서 구경을 하며…….’ 47절은 ‘백부장이 그 뒷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이를 구경하려 모인 무리도…….’ 그러니까 이 백성들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구경하기 위해서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주간에 유월절에 모두 모인 유대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빌라도에게 잡혀가셨는데 과연 사형을 당하고 죽을 것인가? 죽은 자도 살려내시고, 물위도 걷고, 다섯 개의 보리떡으로 수만 명의 사람을 먹이던, 그 놀라운 기적의 능력을 발휘해서 살아날 것인가? 하는 것이 당시의 최고의 뉴스거리였습니다. 그래서 여기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어떻게 죽는지를 보기위해서 구경 왔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이 일이 무슨 구경거리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오히려 이 사람들 중의 많은 사람은 오늘 처음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미 예수를 만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벳새다 광야에서 두 마리의 물고기와 다섯 개의 보리떡으로 먹이실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 물고기와 떡을 먹고 배불렀을 때 수만 명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팔복 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 퍼질 때 그 말씀을 들으며 은혜를 받았던 사람들도 이 속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생각에 맞을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지만 자신들에게 와서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주고 병을 고쳐주고 이럴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좋았지만 참으로 자신들의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신 못 박혀 죽고 이렇게 고난을 받으실 그 때에는 예수님이 하신 행동이 자신들의 기대와 맞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구경하기 위해 모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오늘 평범한 죄수들조차 처해지지 않는 이 비참한 십자가의 형벌, 두 팔고 두 다리를 십자가에 대못으로 박고 거기에서 쏟아지는 출혈, 거기에서 머리가 터지는 것과 같은 두통과 통증 속에서 서서히 피가 말라 죽어가는 이 끔찍한 형벌을 받을 정도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나쁜 일을 하셨습니까? 이 세상에 내려오시기 전에 그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내려오신 후에도 하나님이셨습니다. 영광과 존귀를 한 몸에 받으실 거룩하신 하나님이셨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가난하기 짝이 없는 목수의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하나님이셨지만 아주 비천한 사람의 아들이 되어서 멸시와 욕을 당하시며 이 세상에서 온갖 고난을 당하시며 일생을 사셨습니다. 일생을 사셨고 수만 명의 추종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그 분은 머리 둘 곳 없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병든 자들의 친구였고 외로운 자들의 이웃이었고 고난 받는 자들의 보호자였습니다.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사신 33년간의 생애는 특별히 죄가 없으시면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동안 사셨던 3년의 생애는 철저한 섬김의 생애였습니다. 그래서 한사람, 한사람의 질병을 고쳐주시고, 주린 자들은 먹이시고, 병든 자들은 치료하고, 진리를 알지 못해 어두운 세상 속에 살아가는 친절한 아버지처럼 그들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어머니처럼 진리의 젖을 먹이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로 하나님의 생명으로 돌아오도록 온 마음을 다해 섬기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 운데 멸망당할 내 불쌍한 자녀들을 위하여 네가 대신 십자가를 지고 이들이 받을 형벌을 대신 당하고 이들을 구원하라 하셨기 때문에 주님이 일평생 섬기시던 그 손과 발에 못 박히시고 그리고 십자가에서 그들의 죄를 모두 짊어지시고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감당하게 되었으니 이게 십자가의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며 아주 비참하게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타는 목마름 속에서 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언덕을 향해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 위해 올라가는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자신은 죄도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무서운 십자가의 형벌을 당하기 위해 언덕을 올라가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사람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는 이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 의미도 모르는 채 요즘으로 말하자면 슬리퍼를 끌고 껌을 씹고 떠들면서 골고다 언덕을 올라갔던 것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전에 주님을 알고 믿었다고 할지라도 신앙은 일회용이 아니에요. 한번 주님을 알고 은혜를 받았어도 끊임없이 십자가의 사랑에 붙들려서 주님의 그 크신 사랑에 붙들려서 매일 매일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에요. 그게 신앙생활이에요. 그래서 아무리 훌륭한 신앙생활을 하고 주님을 위해서 일생을 헌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기만 하면 자기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에요.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아주 헌신적으로 살았던 일군이 아니라…….
(찬양)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의인은 아무도 없고 죄인들뿐이에요. 어떤 사람은 용서를 받은 죄인이고 어떤 사람은 아직 용서를 받지 못한 죄인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은 용서를 받은 죄인들인 여러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셔서 이 특권을 누리게 하시는 것은 이렇게 지식의 빛을 많이 얻어서 사랑과 은혜를 많이 받아서 그래서 이 지식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이 사랑을 모르는 곤고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처럼 다가가서 그들의 발을 씻기고 그들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씻기고 어두운 그들의 영혼에 진리의 빛을 비추어 주라고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시는 것이에요. 우리 모든 사람들이 대치할 수 없는 의무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에요. 그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의 행복보다 아주 소중하게 여기고 그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섬기고 무릎을 꿇어 그들의 발을 씻기고 그래서 예수님이 하신 그 일의 뒤를 잇는 그것이 자기의 생명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 그것이 신자의 본분이에요.
1904년과 1905년도에는 인도에 카실 지방이라는 곳에서 큰 부흥이 일어나고 있었어요. 사람들마다 주님을 만나고 회개하고 그렇게 사람들이 기뻐하던 때였어요. 존 스톤이라는 선교사가 카실 거리를 가보니까 어른들은 다 예배드리러 교회에 가고 어린아이들이 골목에 모여 앉아서 놀고 있었어요. 그래서 선교사가 가서 어린아이들에게 물었어요. ‘얘들아! 너희는 왜 울고 있니? 엄마가 없어서 우니?’ 그랬더니 6, 7살밖에 안된 아이들이 대답했어요. ‘아저씨, 그게 아니에요.’ ‘그럼 왜 그렇게 우니?’ ‘아저씨 우리는 지금 모여서 기도하고 있는데 예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많이 사랑하셨는데 우리는 예수님을 이렇게 조금밖에 사랑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니까 우리 모두가 너무 슬퍼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어요.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모든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는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경하려고 따라가는 이 백성들과 같은 모습이 아닌지 한번 반성해보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 이 무관심한 방관자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예수의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성경에 보니까 여자의 큰 무리라고 되어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저 멀리 갈릴리로부터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여자들은 피투성이가 되어서 끌려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인들은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예수님이 이 십자가를 지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그들이 아는 것은 다만 예수님은 이 십자가를 지고 죄인처럼 죽으실 정도로 나쁜 일을 하신 적이 없는 분이었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올라가고 계셨던 것이에요. 그러면서 이 여인들은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악한 로마병정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도록 허락했을 리가 없습니다. 십자가의 대열이 골고다 언덕을 향할수록 여인들의 눈물은 심한 통곡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왜 어떤 사람은 구경하며 갈 수 있는 이 길을 이 여자들은 통곡하면서 예수님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을까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이 여자들 안에 백성들에게는 없는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었어요. 비록 이 분이 십자가를 지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몰랐고 또 이렇게 부끄러운 십자가를 지고나면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을 것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어떻게 자기를 위해 완전히 헌신된 생애를 사셨는지를 알았습니다. 고통 하는 자들과 함께 배나 아파하시고 그들을 먹이고 돌보기 위해서 당신은 없는 생애를 사셨던 것이죠. 마지막에 남은 것이라고는 그분의 육체밖에 없었는데 하나님이 그 육체를 제물로 바쳐 그들을 위하여 구원의 길을 열라고 말씀하시니까 예수님은 당신의 그 한 몸도 십자가에서 내어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면 이 학교는 복 받은 학교입니다. 20여 년 전에 제가 교수로 들어왔을 때에 이 학교는 부도의 위기에 있었고 심지어는 선생님의 월급도 제대로 못주던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학생은 2000명도 안되었고 가난하기 짝이 없는 학교였습니다. 이제는 경기도에서 널리 알려진 큰 대학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아침마다 책가방을 들고 배우기 위하여 이 학교의 언덕으로 올라오는 6000명의 학생들 가운데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구원받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그리고 만약에 교회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수업을 받고 있는 여러분들이 그들을 위해 울어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누구를 위해서 누가 대신 울어주는 사람들일까요? 34살의 나이에 저는 여기에 교수로 왔고 5년 동안을, 30대를 여기에서 묻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학교와의 첫사랑이었어요. 아무것도 없고 내 마음에는 오직 학교와 학생들밖에 없었어요. 온 마음을 다해서 가르쳤어요. 강의가 끝나고 언덕위에 이렇게 서면 저녁때 하나씩, 둘씩 불이 켜지는 안양시내 전체가 들어왔어요.
(찬양)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두워진 세상 중에 곳곳마다 상한 영에 탄식소리 들려온다.
한없는 슬픔이 밀려들어왔어요. 가서 저 많은 사람들을 구원해내야 할 학생들이 이 학교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고 예수를 뜨겁게 사랑하고 선교를 위해서 복음전도를 위해서 목회를 위해서 생명까지 버릴 사람들로 빚어져야 되요. 지금도 그때와 똑같은 상황일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진리에 아주 붙잡힌 사람들이 되어서 그래서 주님의 뜨거운 사랑으로 이 사람들의 가슴에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사랑을 아로새겨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매순간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복음의 진리를 굳게 붙들고 아버지 앞에 매달려 주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고 그런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