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복음주의의 동향
이 모든 강의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우리들이 교회가 역사적으로 늘 있어 왔는데 좋은 교회도 있고 안 좋은 교회도 있어왔단 말이죠. 그래서 이 참된 교회가 있는가 하면 거짓된 교회가 있고 또 완전히 참되고 완전히 거짓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오류와 진리가 함께 섞인 가운데 이 교회가 참된 교회 가까이 다가가기도 하고 교회의 참된 모습에서도 멀어지기도 한다 이거죠. 이러한 그럼 어떤 교회가 참된 교회냐 라고 할 때 이것을 구성적 요소와 고백적 요소로 나누어서 우리들이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됩니다.
그러면 교회가 참된 구성이 되기 위해선 구성적 요소라고 하는데 이게 뭐냐? 이것은 다시 둘로 나뉘어지는데 과연 그 교회에 가입된 사람이 참된 신자냐 라고 하는 것이죠. 자 우리 한 번 이런 생각을 해 보십시다. 우리들이 어느 나라든지간에 특수부대라는 것이 있습니다. 특수 부대라고 하는 것은 특수전을 수행하는 부대를 가리키는 거죠. 이 특수전을 수행하는 부대는 일상적 전쟁은 전쟁인데 일상적인 상황하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부대가 아니라 극한의 어려움 속에서 극한의 어려움 속에서 극한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부대에요. 이 부대는 이 부대가 사실은 이제 현대전에 있어서는 그 군대의 전체적인 숫자보다도 더 중요해요. 이런 특수전을 수행하는 부대를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 북한을 물론이고 모든 나라들이 집중적으로 육성을 하고 있고, 현대에 와서 이런 특수전을 수행하는 부대들의 규모는 오히려 점점 커지고 과학화되고 전문화되어 가는 추세다 이 얘기에요. 그러면 똑같은 군인인데, 게임이나 하고 공이나 차고 농구나 하고 놀던 애들이 왔을 때, 그 때에 그런 똑같은 사람들이 왜 그런 특수전을 수행할 수 있는 아주 능력있는 부대를 구성할 수 있느냐..그것은 바로 철저한 훈련과 그리고 특수전을 수행하기 위한 부대의 구성요소가 되는 사람의 자격을 아주 높이는 거죠. 실제로 미국에 그런 특수전을 수행하는 해군 특수부대 같은 경우는 100명이 입학을 하면 40명이 졸업을 한다 그래요. 졸업을 한다고 해서 갑자기 무슨 뭐 어마어마한 대우를 해 줄 수는 없을 것 아니에요? 그래도 거기서 피나는 훈련을 통해서 최고의 전사가 되는 거죠. 그래서 그들은 그런 훈련을 모두 마치고 그 특수 부대의 한 일원이 될 때에 그들은 이미 기본적인 퀄리티 자체가 일반적인 전투를 수행한 부대의 사람들과는 현저히 다른 거다 이거죠. 로마가 이 세상에서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강력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로마의 시민권을 아무에게나 주질 않았어요. 아주 중요하게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선별하고 선별해서 엄격하게 그것을 주기 시작한 거죠. 조선 시대에서도 맨 처음 초기에는 양반이 10퍼센트에 지나지 않았어요. 양반만 진정한 국민이었어요. 근데 나중에는 70퍼센트가 넘는 사람이 다 양반이 되는 거죠. 이러면서 나라가 무너져 버리는 거죠. 그러니까 그 뿐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도 진짜 어떤 사람이 참 교회의 회원이 될 수 있는 신자가 되느냐...이것을 먼저 설정을 해야 돼요. 그래서 종교 개혁자들과 이후의 개혁파 정통주의자들은 세례를 주어서 그 사람을 교인으로 그 입적시키는 것을 아주 조심해서 했어요. 근데 오늘날은 그렇지가 않고, 일단 사람들을 다 교회에 모으자..언젠가는 그들도 은혜 받고 교인이 되지 않겠느냐...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이러면서 교회 전체적인 힘들은 와해되고 사람들은 많이 모이지만, 예수 믿는 사람의 공동체로서의 독특성을 드러내는 일에 실패를 하고 있는 거라라고 하는 것이에요.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현대의 기독교의 정신과 성경의 진리가 배치되는 부분이라고 하는 것이죠. 또 하나는 뭐냐하면 목회자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죠. 오늘날은 목회자라고 하는 것이 커다란 교회 조직체를 이끌어가는 리더, 혹은 행정적인 관리자, 그 정도를 넘어서서 오늘날에는 커다란 기업의 CEO와 같은 그런 이미지로 부각이 되어 있죠. 물론 이제, 오늘날과 같은 현대 사회에서 이 복잡한 환경 속에서 선교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목회자에게 그러한 능력이 요구되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그러나 이런 재능들, 이러한 능력이 높이 평가되는 동안에 진짜 목회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독특한 개념들이 오히려 사라지게 되었다라고 하는 것이죠. 이러한 현상은 최근에 와서 이 19세기 이후에 생겨난 현상이에요. 정확하게 말하면 20세기 들어와서 생겨난 현상입니다. 미국을 기준으로 볼 때, 185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목회자 그러면 그에게 있어서는 많은 학문이 요구되고, 그리고 그는 진리를 전달해 주는 사람이다라고 하는 아이덴티티가 분명했어요. 근데 이것이 잠시 후에 설명할 여러 가지 사회 변화에 의해서 깨뜨려지게 되는 거죠. 근데 이러한 진리와는 상관이 없는 이제 교회 전체를 경영하고 이끌어가는 사업가적인 이미지로 목회자가 말하자면 되는 거죠. 그래서 교회가 목회자를 고를 때에도 얼마나 신실하게 학문을 하고, 깊이 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진리의 사람인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격은 어떤가, 교인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인가, 그리고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는 사람인가,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인가, 수안이 있는 사람인가, 이러한 등등의 경영가적인 재능을 보는 시대가 되었다라고 하는 거죠. 이러면서 결국은 교회는 구심점을 잃고, 진리의 공동체라는 독특성 보다는 오히려 이 사회와 함께 타협을 하면서 경영적인 기술을 가지고 교회를 이끌어가고 변모시켜 가는 그러한 집단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이 얘깁니다. 이것은 참된 교회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가를 보여주는 거죠. 또 하나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고백적 요소가 필요한데, 그 고백적 요소는 다시 둘로 나뉘어지는데, 하나의 지식의 체계로서의 고백과 삶의 체계로서의 고백이에요. 그러니까, 교회가 어떤 교회인가 라고 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그들이 믿는바 신앙의 내용에 의해서 규정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날은 이런 교리가 중요하다는 사실 조차도 잊고 있는 거죠. 18세기 중반 미국을 기준으로 18세기 중반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20세기 초까지만 보더라도 분명하게 교회는 무엇을 믿는가 하는 것이 신앙에 있어서 중심자리에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장로교인은 장로교인대로 믿는 바가 있었고, 감리교인은 감리교인대로 나름대로 믿는 바가 있었어요, 그럼 교리가 매우 중요했다 이거죠. 그런 교리들이 중요했기 때문에 항상 그 교리는 이전에 형성되어 온 것들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신앙의 뿌리에 대한 관심이 늘 있었어요. 그리고 성경 말씀을 다양하게 해석하는 많은 사람들 갈래 속에서 자신들이 믿는 신앙의 내용이 어떤 것인가를 명확하게 정리된 지식들을 가지고 있었단 말이죠. 그리고 그런 것들이 교회에 의해서 비교적 철저하게 가르쳐졌단 말이죠. 그렇지만 이런 것들이 이제는 모두 사라지게 된 거죠. 그래서 심각할 정도로 교리에 대한 무지가 생겨나게 되는데 이런 속에서는 참된 교회의 조건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것이죠. 뿐만 아니죠. 이렇게 어중이 떠중이가 다 들어와서 교인이랍시고 이름을 올리고, 그런 사람들을 참된 회심의 여부에 상관없이 교회의 회원으로 받아주고 성찬에 참여하게 해 주고, 그렇게 하면서도 자기가 무얼 믿는지는 모르는 사람들이 되었으니까 삶에 있어서 거룩한 생활이 나타날 수가 없겠죠. 자신들이 믿는 신앙의 내용을 삶으로 고백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어지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이러면서 결국은 이제 오늘날의 교회는 참된 교회로부터 훨씬 멀리 떨어져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 다음으로 우리들이 이제 미국의 복음주의와 산업혁명의 관계를 우리들이 살펴보려고 해요. 미국의 복음주의와 왜 미국 얘기를 왜 하느냐 하면..우리 기독교가 사실은 기독교가 미국에서 생겨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영국이나 혹은 다른 유럽의 나라의 기독교와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별로 관계가 없어요. 우리 기독교는 미국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이것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문화적으로 우리들이 그만큼 미국을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나라의 30년이나 20년이나 30년 후에 교계가 어떻게 변할 것인지는 미국의 판도를 보면 그대로 따라가게 된다라고 하는 것이죠. 이것은 종교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나 경제, 사회에 있어서도 그렇게 미국에 예속된 것처럼 그렇게 유사하게 미국의 과정들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제 한국 교회를 더 잘 알기 위해서도 한국에 선교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끼치고 있는 미국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라고 하는 것이죠. 미국에서 영국은 이제 18세기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납니다. 원래 이 산업혁명이라는 그 인더스트리알 레볼루션이라고 하는 이 단어를 사용한 사람들은 프랑스 학자들이었어요. 그러나 이것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아놀드 토인비라고 하는 영국의 경제사학자가 이 단어를 쓰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거죠. 이 산업혁명이라고 하는 것은 이제 네 가지의 커다란 그 변화들을 가져오게 되는데, 우선 기술의 발전이에요. 그래서 이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이제 폭발적인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게 되는 거죠. 그래서 내연기관차라든지 증기기선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을 이루게 돼요. 이러한 기술의 폭발적인 발전은 어마어마한 재화들을 생산해 내게 만들죠. 예전에는 손으로 만들던 게 기계로 만들어지니까 어마어마한 그 이 그 재화들을 생산해 내게 되고, 그리고 예전에는 생산되면 항상 생산된 그 지역 안에서 소비되었는데 이제는 교통의 발달로 거리감이 줄어들면서 엄청난 물량들이 이동을 하게 되는 거죠. 또 하나는 이제 도시의 형성이에요. 근데 이렇게 산업화가 이루어지게 되다 보니까 이 산업화라고 하는 것은 대량생산이고, 그 다음에 기술 의존적이잖아요? 그러니까 이제는 전에는 혼자서 구두 같은 것을 다 만들었는데 이제는 그렇게는 안 되고 대량생산을 해 내니까 깔창 만드는 사람 집에서 깔창을 사다가 그 다음에 가죽만 만드는 사람 집에서 가죽을 사다가 오리는 집에서 그것을 오리고 끈 만드는 집에서 끈을 사다가 조립을 하면서 이렇게 분업화 된 가운데에서 산업이 극대화 되게 되는 거죠. 이렇게 하면서 그 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회사들, 그리고 많은 기업들이 각기 이익을 얻게 되는 거죠. 이렇게 하면서 이제는 이제 이러한 도시화 현상들은 이제 어떤 재화를 생산하는데 있어서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함께 구성요소가 되어서 산업을 일궈낸다라고 하는 생각이 번지며서 상대주의가 들어오게 되는 거죠. 너도 나도 유일하게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 힘을 합해서 하나의 물건을 만든다라는 생각이 들어오면서 이제는 이런 생각들이 종교에까지 번지면서 절대적인 진리, 그런 것들은 없다라고 하는 계몽주의적인 정신을 말하자면 그 그 물려받게 되는 거죠. 또 하나는 뭐냐면 문화의 변혁이 일어나게 되는 거죠. 예전에는 예전에는 사실 경제라는 것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국가가 모든 질서를 지배하고 정치를 통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거죠. 그러나 이제는 예전에 가지고 있었던 그런 중요한 질서들, 가족, 국가, 뭐 이런 지역 공동체, 이런 것들이 무너지고 이제는 생산을 중심으로 질서가 다 재편되게 돼요. 그래서 어떻게 되죠? 가족들이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이제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하는데, 아내도 남편도 애들도 다 일하러 가는 거죠. 가족관계가 해체되는 거죠. 이제는 나 낳아준 부모가 사는 땅, 조상이 물려준 땅,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월급 많이 받는 대로 다 이동을 하는 거죠. 그러면서 기존의 우리의 그 주체성을 형성하던 우리의 정체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던 이런 모든 사회집단의 질서들이 무너져 버리고, 그리고 새로운 경제를 중심으로 한 질서들이 세워지게 돼요. 예전에는 권력 하면, 나라의 권력이 가장 무서웠는데 이제는 그런 권력 보다는 오히려 돈을 많이 가진 자와 적게 가진 자,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 고용하는 자와 고용 당하는 자, 이런 사람들 사이의 권력 관계가 형성이 되는 거죠. 그렇게 하면서 심리적으로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요. 어떤 변화가 일어나냐면 결국은 두 가지 점에서 일어나는데 좋은 점으로는 자신감이 생겨난 거죠. 이렇게 이제 자연을 정복하면서 인간이 큰 힘을 가지고 이 자연을 변화시켜서 인간에게 필요한 재화들을 만들고, 자연을 정복해 갈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생겨나는 거죠. 이 자신감이 지나쳐서 교만이 되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이제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렇게 사는 이런 것들이 점점 멀어지는 거죠. 오늘날 바다의 수온이 올라가면서 이런 폭풍 같은 것들이 생겨나고 이제 이 그 뭐죠? 기후 변화들이 생겨나는 것을 봤잖아요? 이번에 빌 게이츠가 야심적인 프로젝트를 내 놨잖아요. 바닷물을 기계로 이동 시켜가지고 이러한 기상 이변을 없애 버리겠다는 거죠. 2000미터, 3000미터에 있는 바닷물을 다시 위로 퍼 올려 가지고 그래서 바다 전체의 온도를 떨어뜨려서 폭풍 같은 것들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거죠. 가능할지 안 할지 모르지만 만약에 가능하게 된다면 또 다른 예기치 못 했던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기상학자들은 경고를 하고 있는 거죠. 인간이 이런 정도로까지 이제 말하자면 자만심에 가득차게 된 거죠. 또 하나는 이제 심리적인 외로움과 공황 상태가 시작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그런 관계들이 다 깨뜨려지고 직장 생활 속에서 생산을 위해서 만나는 사람들의 관계는 예전에 친척집에서 씨족을 중심으로, 그 다음에 뭐 그 내 고향 남쪽 바다에서 어울리던 그러한 인간관계와는 전혀 다른 관계죠. 그 속에서 인간은 아주 바쁘게 살면서도 군중 속에 살면서도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그런 혼돈 속에 빠지게 되는 것이에요. 이러한 산업혁명은 사실은 계몽주의로부터 발생하게 되는 거죠. 계몽주의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임마누엘 칸트 같은 사람에 의하면 미성년 상태에서 해방되는 거라고 보는 거죠. 미성년자들은 부모의 지도를 받듯이 우리가 옛날에는 종교의 지도를 받았었는데 이제는 인간의 이성이 성숙했기 때문에 그런 종교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는 성인이 되었다라고 하는 선언이에요. 그래서 프리드리 헤겔 같은 사람은 아예 이 계몽주의라고 하는 것은 종교에 대한 투쟁이라고 설명을 했어요. 그의 정신현상학이라고 하는 책 속에서 그는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이 계몽주의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이제까지 우리를 미몽에 빠뜨렸던 종교로부터의 해방이고, 종교에 대한 투쟁이다...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간섭으로부터 철저히 벗어나서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라고 외치는 것이 이게 바로 계몽주의에요. 자유, 행복, 지식, 이런 것들이 인간의 목표라고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이러한 것들은 결국은 이제 이 그 인간의 능력을 아주 높게 평가하면서 인간의 이성을 최고 우위에 놓는 지식 체계를 가지고 있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예전까지만 해도 인간은 구원 받아야 할 그런 존재였어요. 그런데 이 계몽주의를 통해서 인간이 누구인가, 신이 누구인가, 자연이 누구인가 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이 중세로부터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이제 인간은 구원 개념 자체가 변화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할 그리스도의 대속이 필요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구원은 인간이 인간성을 충분히 발휘해서 행복하고 자유롭게 그리고 지식을 추구하면서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참 구원 받은 상태라는 해석들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이런 사상이 일어나면서 이제 영국을 비롯한 유럽을 중심으로 이신론이라는 새로운 사조가 생겨나게 되는 거죠. 아무리 이성이 최고라고 생각을 해도 이성에 의해서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여전히 종교의 필요는 존재하잖아요? 그러나 종교의 전제는 이성을 초월하는 믿음을 요구하고 그 다음에 이런 계몽주의는 이성이 그 신 위라고 생각을 하니까 그러니까 결국은 해결이 안 나잖아요? 그래서 이 두 개의 융합이 이루어지는 거죠. 그걸 가리켜서 이신론이라고 불러요. 이신론이라고 하는 뜻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당신이 직접 관여하시지를 않으시고 시계 태엽을 감아 놓듯이 법칙만 만들어 놓으셨다는 거죠. 그래서 법칙이 움직이는 그것이 곧 신이고 하나님이기 때문에 법칙을 잘 판단하고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고 그리고 참된 행복을 이룰 수 있다라고 하는 사상이 번져가게 되는 거죠. 이러한 자연신학을 넘어선 급진 사상들이 이제 생겨나기 시작해요. 그래서 이런 이신론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급진적인 사상이 생기면서 무신론, 사신론, 유물론 같은 사상들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자 이렇게 되어가도 결국은 문제로 남는 것은 있죠. 인간이 도대체 ‘나는 누구이고 그리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것인가’하는 문제를 과학의 발달이 해결해 주지 않거든요? 법칙의 문제가 그걸 해결해 주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여기에서 심리학과 윤리학이 떨어져 나오는거죠. 예전에는 이 인간이 누구고, 어떻게 살아야지 참된 삶인가 하는 것은 종교에서 대답을 주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이제 철학에서 그런 것들을 추구하지만 사실은 종교의 도움을 받아서 그 문제를 해결하게 돼 있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종교를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벗겨 내니까 그 다음에는 인간이 누구인가에 대한 심리학에서 연구하고 그 다음에 인간이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를까 하는 것은 윤리학에서 연구하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심리학이 인간의 정신에 일어나는 많은 현상들을 임상적으로 설명해 주는 학문이지만 그게 왜 일어나지는 설명을 못 하는 거죠. 또 이렇게 사는 것이 윤리적인 것이다 라고 또 왜 인간은 윤리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어떻게 교육 해야지만 윤리적으로 살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이 연구해 낼 수 있지만 왜 인간이 그렇게 살아야 되는가, 왜 인간은 악하게 살아선 안 되고 선하게 살아야 되는가,, 이 대답은 사실은 윤리학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학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는 거거든요. 이런 것들과 연결된 가운데에 인간이 어떻게 살 것인가, 인간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탐구해 왔는데, 이 위에 있는 종교의 뿌리를 잘라버리고 나니까 이제 이것들은 독자적인 학문으로 태동을 하게 된 거죠. 그런데 그런 것들이 그렇게 태동되었다고 하더라도 종교로부터 학문이 떨어져 나오게 되는데 이제 이것들이 많은 문제들을 만들어 내는 거죠. 그러면서 영국의 18세기 17세기 18세기에 경험주의라는 것이 생겨나게 돼요. 여러분들이 잘 알다시피 존 로크를 중심으로 하는 이제 프란시스 베이컨 이런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이런 경험주의가 생겨나게 돼요. 여기에서 이제 인간을 인간 자신의 모든 지식들은 본래 가지고 있는 그러한 선천적인 지식, 하나님을 알고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하는 이런 것들은 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었는데 이런 것들을 다 부인하고 인간의 모든 지식은 후천적으로 획득되고, 인간은 중립적인 상태에서 ‘따벨라라싸’ ‘백색서판’의 상태에서 생겨나고 환경과 교육, 인간관계 이런 것들을 통해서 거기에 무엇을 쓰느냐에 따라서 어떤 인간이 되느냐가 결정된다...이런 이론들을 앞세우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이제 토마스 홉스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인간이 원래 선한 존재냐 악한 존재냐 라고 논하던 과거의 모든 논의에 종지부를 찍고 인간은 중립적인 상태의 존재다...그는 자신의 행복과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일 뿐이지 별다른 인간이 아니다..라고 규정을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이러한 사상이 국가론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요. 예전에는 이 국가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제도이고, 그리고 인간 세상에 살아가는 이 국가의 모습은 하나님의 나라인 신국을 본뜬 것이다..그래서 이 눈에 보이는 국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의 법을 구현해 나아가는 가운데, 우리들이 그 그렇게 구현해 나아가는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국가를 이루고 인간도 그 질서 안에서 행복해 질 수 있다라고 하는 고전적인 자연법 사상들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이런 것들이 다 무너져 버리는 거죠. 국가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혼자 사는 게 불편하니까 사람들이 모여서 계약을 맺은 것이다..이게 사회계약설이에요. 그래서 국가는 이제 국민과 함께 계약을 맺어서 그래서 국민은 의무를 부담하고 국가는 이제 이 국민들을 행복하게 살도록 지켜주겠다고 약속을 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국가가 어겼을 때는 언제든지 혁명이 가능하다는 사상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것이 이제 영국에서는 개혁으로, 프랑스와 미국에서는 이제 혁명으로 나타나게 되는 거죠. 그래서 계몽주의가 결국은 이런 혁명으로 이제 변하게 되는 것이에요. 이제 그런데 이제 문제는 이렇게 그 계약 관계를 설정을 했지만 실제 현실 속에서 보면 국가의 횡포가 아주 심하고, 권력 가진 자들의 이 횡포가 너무나 심하기 때문에 결국은 비판, 개혁, 혁명을 지향하는 사조로 이제 변하게 되는 거죠. 이게 이제 미국으로 들어가면서 이제 유럽에서 로크나 벤담, 존 스튜어트, 몽테스키외 이런 사람들, 재퍼슨 이런 사람들, 볼테르 이런 사람들을 거치면서 미국으로 들어가서 토마스 제퍼슨 같은 사람들이 이제 극단적으로 국가의 권위를 비판하는 이러한 그 사상들을 제시하면서 그러면서 이제 그 대안으로서 뭘 만들어내냐 하면 누구도 맘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없는 국가의 그림을 그려내는 거죠. 이게 현대 민주주의의 정치체제를 만드는 거죠. 이렇게 만들게 되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되죠? 이제 이렇게 되면 결국은 누구도 혼자서 독자적인 권위를 가지고 행사할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런 사고체제가 아주 보편화 되었을 때, 사실은 예전과 같이 하나님이 모든 인민들 위에 중심 자리의 왕으로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고 모든 백성들은 그 아래 복종하고 살아가는 이러한 어떤 그 왕정국가적인 그런 영적인 나라이긴 하지만 이러한 체제 자체 같은 것들이 인간 현대주의적인 그 근대정신으로써 인간을 주체로 생각하는 생각하는 이런 사람들에게는 아주 받아들이기 어려운 비현대적인 정신이 되는 거죠. 그렇게 되면서 결국은 이제 영국에서는 개혁으로,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혁명으로, 미국에선 이제 독립운동을 비롯한 이런 혁명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그 결과 이렇게 계몽주의가 결국은 이러한 근대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럼 종교적으로는 어떻게 되느냐,..문제는 뭐냐면 구원과 어떤 영적인 위안을 사람들이 찾잖아요? 교회 와서는...이런 계몽주의와 이성주의에 빠지게 되니까 결국은 이러한 구원과 영적인 위안을 찾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지 못 하는 거죠. 이신론이 있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이 모든 자연의 법칙 속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했고 어디서든지 하나님이 계시는 증거가 이 법칙 속에 나타나 있다고 말했지만 그런 법칙 속에서 엄격하게 움직이고 인격적인 하나님은 하늘로 철수해 버린 속에서 인간들이 실제로 이 산업화 사회에서 경험하는 불안과 개인화, 그 다음에 이 두려움, 소외감 이런 것들을 실질적으로 극복해 줄 수 있는 영적인 실재를 전달해 주지는 못했던 것이에요. 이러면서 결국은 재밌는 게 뭐냐면 이런 와중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문화사조가 있었는데, 로만티시즘이에요. 역사에서 낭만주의라고 불리우는 사조에요. 이 낭만주의는 그야말로 인간의 아름다움을 인간의 그 아름다운 감정, 그 자체에 탐닉하면서 즐거움을 추구하는 그야말로 낭만파 운동이에요. 이런 낭만파 운동이 문학, 예술 특히 미술, 음악 모든 방면에 약간의 색깔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대등하게 나타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인간의 최고의 행복은 골치 아프게 그런 진리가 있냐 없느냐 따지는 게 아니라 인간이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아주 즐거울 수 있고 그 다음에 빠져들어서 어떤 느낌을 받으면서 행복해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제일 좋은 것이 아니냐 하면서 낭만주의 운동이 확 일어나게 되는 거죠. 이렇게 되면서 이제 그 이성이 발견한 진리라고 하는 것은 진리일 수 있지만 그것은 언제든지 수정될 수 있고 수정되어야 하는 그런 종류의 진리다라는 상대주의적인 생각으로 발전하게 되는 거죠. 이런 산업혁명이 결국은 기독교에 이러한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죠. 1517년의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그 성당에 95개조항을 걸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되고 그 다음에 근대 시민사회를 여는 폭발적인 사건이 프랑스에서 발생하게 되는데 이게 프랑스 혁명이에요. 흔히 우리는 이러한 그 프랑스 혁명이 1789년에 일어났다고 하지만 이 프랑스 혁명은 한 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사실은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은 불완전한 것이었죠. 이 프랑스 혁명을 통해서 앙샹레짐이라고 불리우는 구체제의 질서들이 모두 무너지게 돼요. 이렇게 무너지게 되어서 일단은 성공을 했는데 보나빠르트 나폴레옹이 구테타를 일으켜서 시민 공화정을 전복시키는 거죠. 그래서 다시 뽀나빠르트가 황제가 되잖아요. 그러니까 새로운 형태의 황제국가가 되어 버린 거죠. 그래서 1880년과 1830년 7월과 1848년에 이제 2차혁명이 일어나게 되는 거죠. 이 혁명을 통해서 부르봉 왕조는 몰라을 하고 그리고 두 번째 혁명에서는 부르봉 왕가를 대신해서 왕이 되었던 이제 루이 필립이라는 왕도 처단이 되면서 이제 프랑스 혁명이 종결되는 거죠. 최초의 혁명으로부터 약 50년이 뭐야. 60년이 지난 후에야 프랑스 혁명이 종결되는 거죠. 이러한 그 종교 개혁으로부터 프랑스 혁명에 이르는 이 최소한 300년 어간 동안에 일어난 두 가지 괄목할 만한 중요한 사건이 이후 19세기 이후의 기독교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요. 첫째가 뭐냐면 과학의 발전이에요.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뉴튼 이런 사람이 등장을 하면서 이제 기존의 우리들이 종교를 통해서 배워오던 세계관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가를 깨닫게 되면서 성경 자체에 대한 회의주의에 빠지게 되는 거죠. 두 번째 나타난 사건이 데카르트의 출현이에요. 이 사람의 철학은 맨 처음에 시작하면서부터 의심으로부터 도입해요.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만 의심할 수 없고 나머지는 모두 의심할 수밖에 없다..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만 확실하고 나머진 다 의심스럽다는거죠. 이런 의심주의가 도입이 되고 나서, 이제 인간의 존재의 확인을 의심하는 데서 찾으려고 하는 거죠. 근데 그 의심하는 이성은 의심을 안 하는 거야...그것까지 의심해야지 하나님께 의지할 텐데...이성하는 의심은 틀림없이 의심하고 있다는 거야..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을 안 해요. 그게 문제죠. 그래서 결국은 어떻게 됐냐하면 이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기 밖에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의심해야 되는 것들이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은 뭐냐면 의심하고 있는 나 자신만 신뢰할 수 있는 거죠. 결국은 계시의 말씀, 바깥으로부터 오는 객관적인 진리, 이런 것들은 모두 의심해야 되는 것들인데, 그것을 의심하고 있는 나는 의심해선 안 되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인간의 이성이 그 모든 것들 위에 최고의 판단기준이 되는 거죠. 이렇게 절대적인 진리를 부인하게 되니까, 모든 의심의 눈초리가 이제 이제까지 중세의 모든 유산들, 신학적인 유산, 철학적인 유산, 모든 것 다 깡그리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 모든 것들을 쌓아올렸던 기초가 있었는데 그게 뭘까요? 성경...성경에 대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되는 거죠. 그 때부터 이제 자유주의적 비평주의라고 하는 것이 성경 연구에 들어오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제 성경을 다 해체시키는 거죠. 성경과 유사한 시대의 문헌들을 놓고 어떻게 서로 영향을 받으면서 이 불완전한 성경이 생겨나게 된 건지를 설명을 해 나가는 거죠. 그것을 종교사학적인 연구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은 성경이라고 하는 것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고민하고 살았던 신앙의 흔적일 뿐이지, 그게 무슨 객관적으로 주어진 세대가 영원불변토록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라고 하는 그런 생각을 버리게 되는 거죠. 자, 그럼 이런 객관적인 진리가 성경을 통해서만 온다는 것이 고전적인 신앙이었는데, 이 성경도 신뢰할 수 없고 이것은 한 시대의 종교의 산물이다라고 생각을 해야 되니까 그럼 어떻게 되죠? 우리 시대의 성경은 우리가 써야 되는 거죠. 그러면 그 의미는 결국 무슨 이야기에요? 우리가 모두 책을 써서 그것을 교과서를 들고 신앙생활 할 순 없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결국은 객관적인 기준 자체를 폐기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고 그 다음에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이 모든 것들이 그것이 가장 중요한 그 신앙생활이요, 또 우리의 그 우리의 신앙생활이요 그리고 그것이 결국은 우리의 모든 그 가치를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이다 그렇게 되는 거죠,., 아주 쉽게 얘기해서 과거에 무슨 신앙을 고백했고 그것은 성경을 포함해서 그 모든 유산들은 참고할 재료일 뿐이지 우리에게 절대적인 것은 될 수 없다라고 부인하는 거죠. 결국은 그런 것들을 인정하게 되면 우리의 이성을 거기에 종속시켜야 되니까 그것을 거부하게 되는 거죠. 이렇게 하면서 결국은 이제 계몽주의와 산업화가 연결이 되면서 인간을 인간을 스스로 그 신격화하려는 현대주의 정신의 음모는 계속 되는거죠. 이제 그러나 이제 오늘은 오늘날은 이제 이게 근대주의가 아니라 후기 근대주의라고 말하고 혹은 우리들이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얘기하는 거죠. 잘 그 단어를 보면 포스트라는 말은 ‘후에’라는 뜻이고 모던이라는 말은 현대주의라고 번역하는데 사실 엄격하게 말하면 근대주의에요. 모더니즘 이전이 미들 에이지...중세에요. 중세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 아래 하나님이 계시고 계시가 있고 그 아래 인간의 이성을 복종시키는 가운데 진리를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거죠. 모더니즘은 중세와 단절된 가운데 그런 것은 다 잘못된 것들이고 인간의 이성이 위에 있고 인간의 이성이 그런 종교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진리를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러니까 근대주의까지만해도 자기 위에 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은 인정을 한 거예요. 그런데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는 그런 진리는 없다는 거예요. 그럼 없으면 어떻하냐? 없으니까 결국은 자기 그런 객관적인 진리라는 건 없으니까 자기가 판단내리는 것이 최종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권위 있는 것이다 이거죠. 근데 사람마다 내리는 판단이 각자 틀린데 그건 어떻하냐? 다 맞기도 하고 다 틀리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중요한 것은 그럼 어떻게 되죠? 다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중요한 건 뭐죠? 그러면 그런 객관적인 기준이 사라지고 나면 가슴에 와 닿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진리가 되는 거죠. 이러면서 이제 20세기에 펼쳐질 이 신학적인 방황, 19세기 이후에 일어나게 될 이 자유주의의 모든 물결에 대한 길들을 20세기 이후에 일어날 길들을 이제 열어주게 되는 거죠. 그래서 계몽주의가 사실은 망한 거죠. 망하면서 변종이 되어서 나타난 모습이 포스트 모더니즘이라 이 얘기에요.이런 배경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그러면 19세기 오늘 본론이라고 할 수 있는 19세기 이후에 미국의 이런 그 복음주의의 역사를 우리들이 한 번 살펴보려고 하는 것이에요. 제일 먼저 우리들이 미국의 복음주의를 이야기 하려면은 구 프린스톤을 생각을 해야 됩니다. 이 프린스톤 신학교는 1735년에 유명한 장로교회의 목사 가운데 텐던트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이 윌리엄 텐던트라는 사람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이 세 아들을 훌륭한 목회자로 만들기 위해서 이 세 아들을 학생 삼아서 자기가 직접 가르쳤어요. 통나무집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이 세 아들을 불러다가 신학 공부를 시켰어요. 이게 통나무신학교에요. 근데 이 세 아들이 다 훌륭한 목회자가 되었어요. 그것을 보면서 너도나도 이 텐던트에게서 배워서 그런 훌륭한 목사가 되고 싶다고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한거죠. 그렇게 모이기 시작을 해서 1756년 약 20년이 흐른 후에 뉴저지대학이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달았어요. 이 때에 초대총장으로 초대 받은 분이 여러분들이 잘 아는 조나단 에드워즈였어요. 총장이 된 후에 얼마 안 있다가 돌아가시게 되죠. 그러고 나서 이제 그 훌륭한 사람들이 학장을 지내면서 학교를 이끌어가다가 그 후로부터 이제 약 140년 정도 흐른 1896년에 이제 프린스톤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날 프린스톤 대학교에요. 근데 이제 이 때 이러한 와중에서 이제 프린스톤은 이제 이 개혁주의 사상을 미국에 이끌어가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사람들이 이제 그 그런 일들을 해나가게 되는데, 여기에서 이제 초창기에 유명했던 사람들이 J.A 알렉산더라고 하는 사람, 그 다음에 찰스 핫찌, 벤자민 브레이크웟필드(?) 이런 사람이에요. 근데 이런 사람들이 이제 약 그 한 알렉산더로부터 웟필드까지 시대에 이르는 동안에 약 100년에 걸쳐서 6356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는데 이 사람들이 그 미국의 교회와 문화, 정치계 이 모든 곳에 포진하면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들을 수행해내요. 그래서 미국에서 그나마 개혁주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신앙이 유지되게 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내게 되는 것입니다. 근데 여기에서 이제 찰스 핫찌라고 하는 19세기 후반에 중요한 인물 한 사람이 등장을 하게 됩니다. 19세기 중반에..이 찰스 핫찌는 영국에 유학을 합니다. 영국에 유학을 하면서, 토마스 리들리라고 하는 스코틀랜드의 철학자에게서 상식 철학과 실재론을 배우게 됩니다. 상식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설명하면 복잡하지만, 상식 철학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이렇게 의심하면서 파악해야지만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진리에 대해서는 감각들을 주셨기 때문에 상식으로 모든 사람에 의해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구지 증명할 필요가 없이 진실이다..이런 주장을 가지고 이러한 철학을 기초로 해서 이제 양쪽의 사조, 즉, 극단적인 사고들, 그래서 이제 어떤 거냐 하면, 그 예를 들자면, 이러한 그 사상을 기초로 해서 그래서 이제 그 이 그 한쪽에서는 이제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법칙만 만들어 놓고 하셨다는 이런 자연신론도 거부하고, 그 다음에 인간이 무엇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하는 회의론도 거부하고 하면서 나름대로의 이 개혁주의적인 신앙을 견지해 나가는 중요한 논리로 삼았던 것이에요. 이 찰스 핫찌가 이제 이렇게 오고나서 이제 그 해 나갔는데, 조나단 에드워즈 같은 사람은 만약에 개혁주의 신학을 미국적인 독창성으로 소화해 낸 신학자였다면, 이 사람 찰스 핫찌는 오히려 미국적이라기 보다는 그러한 그 개혁파 정통주의의 신학을 그대로 계승하려고 했던 순수한 인물이었어요. 이 사람이 그 조직신학 교수로써 일생동안 교과서로 사용했던 책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프란시스 튜레티니의 변증신학강요라고 하는 책이에요. 종교개혁이 있고 칼빈의 제자인 베자 이후의 시대의 150년 동안에 이 기독교의 지성이 아주 최고도로 발달을 하게 되는게 그 때에 나온 세 권의 역사상 가장 탁월한 조직신학 책이 있어요. 하나는 피터판 마스트리허트의 이론실천신학 강요라는 책과, 그리고 두 번째는 레이든의 4명의 신학자들이 쓴 순수신학공관이라고 하는 책과, 그리고 세 번째가 프란시스튜레틴이라고 하는 사람이 쓴 이 그 변증신학 강요라고 하는 책이에요. 저도 지금 이 책이 세 권으로 되어 있는데 한 700페이지 정도, 800페이지 정도 되는 책 세 권이에요. 이천 몇백페이지 되는 책인데 지금도 제가 공부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런데 탁월합니다. 어마어마한 책입니다. 그 책을 쓴 튜레틴이라는 사람 자체가 바로 17세기의 초엽을 살았던 최고의 개혁신학자였습니다. 이 사람의 책을 거의 그대로 정리해서 학생들을 가르쳐요. 그 책이 지금도 남아있는 찰스 핫찌의 세 권으로 된 조직신학 책이에요. 이렇게 철저하게 개혁신학을 따라가려고 노력을 함으로써 미국에 이런 칼빈주의와 순수한 개혁신학을 보존하는 큰 역할을 해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이 사람이 이 사람을 중심으로 한 프린스턴 신학자들이 이제 개혁주의 정통사상을 파수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이미 이 사람들 시대의 미국사회는 격변하는 변화의 흐름 속에 있었던 거죠. 말씀드린 것 같이 강력한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기존의 가족관계들, 지역관계들이 해체되고 그리고 발달한 물질문명이 들어오고 향락주의, 공산주의, 이런 이제 공산주의는 그 이후지만 이런 사상들이 막 생겨나기 시작할 때 무엇인가 적절한 대안을 내놓는 일에 실패를 하게 됩니다. 이제 프린스턴 신학자들이 이제 19세기의 미국의 칼빈주의자들과 함께 이제 순수한 개혁신학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과의 대립을 강조하고, 그리고, 그렇게 철저하게 자기의 순수한 신학을 지키려고 했던 것은 높이 평가하지만, 이게 이제 진짜 이렇게 격변하는 산업사회 속에서 강력한 복음의 능력으로 이들을 전도하고 이들을 말씀의 능력으로 굴복시키는 개혁주의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힘은 잃어버리고 있는 그런 시기였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사회자체는 사회 자체대로 세속화되어 가고 산업화 되어가고 세상 나름대로 고민을 하고 개혁신학은 그것을 끌어안지 못하고 이러한 세상의 풍조에 의해서 자기의 사상이 훼손될까봐 폐쇄적으로 개인주의적으로 자꾸 변모해가게 되면서 그러면서 선교적인 접촉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세속화, 산업화, 그 다음에 공산주의, 향락주의, 경제적 불평등, 이러한 이렇게 급속하게 세상이 물결치듯이 변해감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안을 내놓는 것은 실패하게 되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알렉산더로부터 시작해서 찰스 핫찌에 이르기까지는 이 그 신학이 교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유명한 신학자들의 이름이 곧 유명한 설교자의 이름과 명단과 거의 같았어요. 그런데 이제 벤자민 브리큰리즈 워필드라고 하는 사람에게 와서 이제 이 사람들 때가 1890년대에서 그 때쯤 되는 사람이에요. 900년대 초..그런데 이 구 프린스턴이라고 불리는 마지막 말기의 사람이에요. 이 벤자민 브링클리 워필드는 원래 화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개혁신학을 철저히 공부해서 20세기에 3명의 칼빈주의자, 아브라함 카이퍼, 벤자민 브리클리즈 워필드, 그리고 헤르만 바빙크, 이 3인중의 한 사람이 될 정도로 칼빈주의에 정통한 천재였어요. 아내가 평생 아파서 공부할 시간이 쪼달렸지만 그러나 하여튼 탁월한 분이었어요. 지금도 그 분의 전집이 한 열권 정도로 남아 있어요. 그런데 어쨌든 그런데 벤자민 워필드에 와서부터는 이제 이러한 그 신학자들이 설교하고 교회와 가까운 이런 현상들이 끊쳐지고, 전문적인 신학자의 시대가 열리게 돼요. 그래서 신학과 목회의 분업화가 이루어지게 돼요. 오늘날 신학교 선생은 목회를 거의 못 하고 신학만 하고, 신학교 선생님들은 안 그런 분도 있지만 설교 잘 못 하고, 오히려 목회는 목회에서 잔뼈가 굵은 목회자들이 이론은 없어도 몸으로 부딪히면서 잘하고, 이렇듯이 그래서 아예 일찌감치 신학교에서 신학자 될 사람, 목회자 될 사람...이렇게 나뉘어서 신학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목회자가 되고, 목회를 못 하는 사람이 신학자가 되는 이런 분립 현상이 일어나잖아요. 그래서 학자들은 드라이스칼라가 되고 목회자들은 생각이 없는 목사가 되고, 이렇게 분립되잖아요 그쵸? 그렇게 해서 서로 욕 하죠. 아는 게 없는 목회자..그럼 저쪽에서는 영성 없는 신학자...그러면서 서로 비방을 하고 이렇게 되는 그런 현상들의 분할점이 벤자민브리클리즈 워필드에서부터 이뤄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야 되는 이런 식의 갠념들이 들어오게 되는 거죠. 이런 문제들을 남기게 되는 거에요. 결국은 프린스턴 신학이 한편에서는 훌륭하게 개혁 신학을 보존해서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역할들을 했고, 그랬지만, 결국은 이 프린스턴 학파의 약점은 문화적인 분석, 수용력의 약화, 급변하는 산업화 사회 속에서 그것을 설명하고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는 교회, 이런 것들은 실패를 하게 되었다라고 하는 것이죠. 이제 이런 일들이 있는 와중에 찰스 다윈이라는 사람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사람이 찰스 다윈이라는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이제 갈라파고스라고 하는 섬에서 이제 자연에 관한 생태를 연구한 가운데, 다른 대륙에서는 사라진 종자들이 거기에 멀쩡히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발견이 되는 거죠. 이것을 착안을 하면서 연구를 계속해서 종의 기원이라고 하는 혁명적인 책을 내놓게 됩니다. 이 이론에 대해선 더 이상 시간이 없어서 얘길 안 하겠어요. 이 진화론이라는 생각은 창조론을 전면적으로 뒤집는 사건이었어요. 그렇지 않아도 성경에 대한 신뢰가 한쪽에서 성경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고 있던 차에 하나님이 창조한 게 아니라 이것은 자연적으로 진화한 거다라고 하는 생각을 하고,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결국은 원숭이로부터 유래되었는데, 원숭이가 한 쪽에 있다가 그저 모여 살던 일단의 원숭이들 중에 몇 부류는 도대체 더 내려가면 뭐가 있을까 하고 호기심을 가지고 원숭이들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위치이동을 하게 됐는데 그것이 바로 이제 인간의 시작이다...이런 식으로 설명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그러니까 결국은 인간이 영혼을 가진 존재이고 독특한 존재이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만물의 영장이고 창조의 목적에 대해서 책임있고 이런 모든 개념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버리는 거죠. 인간도 결국은 동물에 불과하다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이 모든 것들은 발전해 왔다는 진화의 개념이 정치, 경제, 역사, 심지어는 의복, 음식, 복식사, 이런 모든 것까지 다 신학 연구에도 들어오는 거죠. 그래서 뭐냐면 모든 종교에 대한 개념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퍼뜩 하고 주어지는게 아니라, 이제 인간이 그냥 이렇게 살아가면서 필요 종교적인 필요에 의해서 또 하나의 개념을 만들어내고 만들어내고 만들어내고 만들어내고 하는 가운데 발전하게 된다..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러한 시기적인 발전의 단계를 따르지 않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 들어온 것이다라는 사상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이제 그런 진화론적인 성경해석의 예가 구약성경 가운데 사사기에요. 사사기에 보면 하나님도 없는 그런 시대거든요.근데 그 바로 앞에 사사기 앞에 그 여호수아서에 보면, 유일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상이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이거는 뭐냐면 기준이 사사기다...이 앞에 있는 건 뭐냐면 후대 사람들이 그 때 우리 조상이 이렇게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그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그러고 그렇게 했다고 갖다가 쑤셔 넣은 거라 이거에요. 그러니까 성경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보지 않으면 다 홀린다.그렇게 홀린 사람들이 만든 종교가 전통적인 성경을 진리라고 믿는 이런 사람들의 가짜 종교다. 우리는 이런 데서 해방되어야지만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이런 생각들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여러분들은 황당하지만 그 당시에는 아주 진지하게 이 문제들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이제 잉 기독교 이 많은 신약학, 구약학, 그 다음에 여러 가지 신학 연구 분파에 이 진화론이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거죠. 이런 와중에서 이제 19세기에 미국에 복음주의가 형성이 되게 됩니다. 근데 이 미국의 복음주의 형성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2차 대각성을 이야기 않을 수가 없는 거죠. 1차 대각성은 조나단 에드워즈를 중심으로 하는 18세기에 일어난 것이고 19세기에는 새로운 형태의 그런 그 말하자면 부흥 운동이 일어나게 돼요. 근데 이 부흥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미국의 상황을 좀 살펴봐야 되죠. 이제 그들이 1620년에 메인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을 건너올 때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온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때로부터 시작을 해서 그 1776년 7월 4일에 독립선언이 있게 되잖아요? 이제 이렇게 그 이렇게 되는데, 이제 1776년에 이 그 저 독립선언을 발표하고, 그 후로 한 10여년 정도 있다가 1787년에 미국에 연방헌법이라는 것이 등장해요. 이 때는 메인 플라워호를 타고온 지 약 160년 정도 세월이 흐른 다음이죠. 이 때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거죠. 그 때까지는 이제 미국 사람들의 전통적인 생각이 신정국가에요.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백성들이다..우리 나라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시다...그리고 우리는 제사장의 나라다...이런 공통적인 확신이 있었던 거죠. 그것을 가지고 오다가 그 다음에, 이제 뭘 경험하게 되냐면, 독립전쟁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미국 영국과 이제 싸움을 하잖아요? 그래서 결국은 독립을 쟁취하잖아요?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그들의 중요한 관심사가 신앙적인 신정국가를 이루는데에서 멀어져서 어떻하면 우리가 영국으로부터 미국의 독립을 지키고 우리의 자유와 재산을 쟁취한 것처럼 어떻게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국가의 권력과 폭압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고 그리고 우리 개인의 행복을 지킬 수 있겠는가라고 하는 관심사로 넘어가게 돼요. 그게 18세기 말이에요. 그러면서 이제 여기에서 이제 미국이 모든 기독교의 기독교 국가라고 하는 이 개념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기본권을 국가가 존중하고, 우리는 그것을 보장 받아야 되야 된다라고 하는 인간기본권 사상이 훨씬 더 강조하게 되면서 정교분리가 시작이 되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이제 정치와 그 다음에 종교를 이전까지는 하나가 되었었는데 이제는 이 둘이 분리가 되는 거죠. 이러면서 이제 오랫동안 청교도들이 소중하게 간직해 오던 이제 칼빈주의의 정신이 와해되기 시작을 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제 이러한 자유주의적인 사조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이제 학문에 있어서도 큰 변화가 일어나요. 유럽에선 이미 100년 전 50년 전에 일어났던 변화들이 미국에까지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면서 18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신학이 모든 학문의 왕좌에 있었는데, 이것들이 계몽주의 정신에 의해서 끌어내려지면서 그러면서 이제는 인간의 이성이 모든 학문을 지배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결국은 이제 인간을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회개하여야 될 존재로 보지 않는 신학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을 하는 거예요. 우리들은 흔히 이 미국의 2차 대각성 운동이 피니에 의해서 주도되었다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은 휘니는 2차 대각성 운동의 말기의 사람이에요. 오히려 맨 처음은 피니가 찰스 피니가 움직이던 이러한 그 이 이전에 이미 벌써 1796년에 장로교의 목사였던 제임스 맥그리디라고 하는 사람에 의해서 부흥 운동이 시작이 되고, 이 부흥 운동이 예일대학을 강타해요. 그래서 그 때 학교 다니던 225명의 예일대학 학생들 가운데 75명이 회심하는 역사가 나타나요. 이 때 바로 조나단 에드워즈의 손자인 디모디뚜와이트가 바로 예일대학 학장에 있었던 시절이었어요. 이러다가 결국은 찰스 피니에 의해서 이제 그 대각성 운동이 신학적인 커다란 수종을 거치게 돼요. 찰스 피니라고 하는 사람은 원래 1821년에 회심한 변호사에요. 변호사 사무실에서 난롯가 곁에서 기도하다가 이 사람이 회심을 하게 되는데 성경을 읽다가 회심을 하게 되는데 이 사람이 정상적으로 신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이 사람은 이미 벌써 칼빈주의가 인기를 잃어가고 있던 시대에 전통적인 개혁주의사상은 미국 교회에 부흥을 가져오고, 많은 사람을 교회로 끌어들이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신학사상이라고 생각을 하고, 이제 자기 나름대로의 신학을 만들어내는 거죠. 예를 들자면 인간의 원죄 같은 것은 없다...이렇게 보는 거죠. 그러나 인간은 결국은 죄를 짓게 된다..그래서 그리스도 예수가 필요하다...성령이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뭐 그래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거 없고, 인간은 의지적으로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그래서 하나님은 죄인들을 끊임없이 회개하라고 하시는 것이다..이런 아주 펠라기우스적이고 펠라기우스주의, 알미니안주의, 웨슬리안주의 이 모든 것을 다 믹스해 가지고 아주 심하게 개혁사상과는 정반대되는 방식으로 이제 이 부흥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을 해요. 그렇게 하면서 이제 이 사람이 소위 얘기하는 뉴메주얼..새로운 기법이라고 하는 것을 창안해 내는데 이건 부흥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라디오가 잘 안 들리다가도 싸이클을 딱 맞추면 라디오가 선명하게 들리듯이 그렇게 하나님이 미리 규정해 놓으신 부흥의 법칙이 있는데 그것을 딱 맞출 때에 하늘이 금고의 문이 열리는 것처럼 하늘이 열리면서 막 영적인 축복들이 쏟아져 내려온다 이렇게 해석을 하는 거죠.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하는데, 될 수 있는 한 많이 회심시키는 것이 새로운 부흥의 방법이라서 대중집회를 많이 하게 돼요. 그렇겍 해 놓고 이 앞자리를 회심하는 사람들 자리를 만들어 놓는 거죠. 그래서 가서 회심할 기미가 보이는 사람은 이제 사람들이 구석구석에서 끌어다가 이 앞에다..여기가 복 받은 자리라고 그러고 앉히는 거죠. 소위 얘기하는 제단 초청이라는게 그런 거예요. 그렇게 놓고 이제 여기다가...심지어는 막 그 설교하면서 그래서 이제 전통적으로 근엄하고 그 다음에 경건하던 이런 예배 형식을 파괴하면서 예배 순서를 갑자기 바꾼다든지 예배를 갑자긱 말도 안 되게 길게 연장한다던지 거칠고 통속적인 말을 사용을 해서 사람들을 자극한다든지, 심지어는 15분내에 회개 안 하면 당신 죽는다고 이런 식으로 막 그 하고 이름을 불러가면서 너..김XX 회개 안 해? 이러고...이렇게..너 네 인생에서 마지막 기회야...이러면서.. 이런 식으로 말이지..그런 것들이 일어나면서 그걸 본받은 부흥운동들이 많이 일어나게 돼요. 근데 이제 말년에 이 사람이 죽을 때, 자기의 전도자로서의 삶을 되돌아보는 가운데 이런 중요한 고백을 남겨요. 그렇게 하나님이 함께 했다고 믿었던 사람이...부흥이라고 생각했던 강한 은혜의 역사들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쉽게 뒤로 물러가는 것을 보고, 나는 실망한다....실망한 그것이 결국은 뭐냐면 그 부흥의 열매들 속에는 참되지 않은 열매들이 너무 많이 섞여 있었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이러한 대각성 운동 2차 운동이 일어나면서 미국은 아주 커다란 신학적인 변화를 이제는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총체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그것이 뭐냐면 칼빈주의가 알미니안주의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죠. 이러면서 이제 관용주의가 이루어지게 되는 거죠. 이러면서 이제 수많은 이단들이 들어오게 돼요. 안신교, 만인구원론자, 스웨덴보르그, 몰몬교, 이런 것들이 다양한 이단 사상이 2차 대각성 운동의 바람을 타고 미국에서 생겨나거나 대륙 쪽에서 미국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죠. 자 이렇게 돼서 결국은 이러한 그 2차 대각성 운동에서의 찰스 피니로 이제 이어지는 이런 인위적인 부흥운동들과 그리고 교회의 물량주의 운동들, 이 많은 것들이 결국은 이후에 이런 20세기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방법론에 의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할 수 있다는 사상들을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거죠. 그가 쓴 ‘부흥에 관한 강의’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 ‘렉춰 리바블릭’이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에 보면 부흥을 일으키는 기법들이 상세하게 소개돼요. 어떤 것들은 참고할 만한 내용들이 있지만 어떤 것들은 신학적으로 매우 잘못된 것들이에요. 이렇게 이런 현상들이 이제 일어나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이제 그러면서 이제 중요한 이제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게 뭐냐면 이제까지 개혁신학을 파수해 오고, 그 칼빈주의정신을 유지해 오던 뉴프린스턴 신학교라고 하는 이 중요한 기둥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일이 일어나는데 이게 바로 뉴 프린스턴 신학교의 자유주의화 현상이에요. 당시의 미국은 신학에 있어서는 유럽에 대해서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많은 그 신학적인 유산들이 유럽에 있었기 때문에 그 신학의 주도권이 미국이 아니라, 유럽에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미국에 있는 젊은 신학자들은 유럽으로 유학을 가는 것이 학자가 되는 길이었죠. 그래서 그들이 특히 독일로 유학을 많이 가게 됩니다. 가서 독일에 가서 공부할 때 이미 벌써 독일은 완전히 자유주의화 되어 버린 이후의 일이었어요. 그 때에 미국에서 유학을 간 많은 유학파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인물이 있었느데 그 인물이 바로 슐라이어 마허라는 사람이었어요. 이 사람은 이제 슐라이어 마허라고 하는 사람은 철저한 계몽주의의 불신앙의 시대에 태어나서 여기에 영향을 받았어요. 아버지는 독일 개혁교회의 목사였고 성경을 철저한 하나님의 계시로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비교적 이런 신앙에 있어서 보수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워라비안 계통의 그 학교에 유학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의 영향 보다는 세상 사조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그리고 이 사람은 종교적인 천재였어요. 그리고 대개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은 대중과 잘 소통을 못 하고, 텔레비전에 나와서 대중하고 소통을 잘 하는 사람은 혼자 조용히 앉아서 공부를 잘 못 하는데 이 사람은 둘 다 잘 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이 사람은 이제 그 당시에 계몽주의가 이미 유럽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이 계몽주의를 기독교 신학으로 설명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을 하면서 이제 슐라이어 마허는 이제 그의 종교론이라고 하는 그 출세작을 집필하게 됩니다. 이 종교론에서 그는 이제 최초로 계몽주의가 일어난 이후로 최초로 이 계몽주의 사상 전체를 기독교적으로 해명해 보려고 하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뭐냐면 정상적이라면 기독교 신앙의 중심점을 꽉 가지고 계몽주의가 무엇인지를 분석하고 그 계몽주의를 깨우쳐서 기독교 신앙으로 돌아오도록 그런 주장을 했어야 되는데 이 사람은 반대로 그렇게 하질 않고, 기독교라고 하는 있는 기존의 모든 신학적인 개념과 용어를 모든 사람에게 편만하게 번져 있는 이 계몽주의 사상을 끌어들여서 설명해 보려는 거죠. 그래서 기독교를 다시 설명을 했는데, 계몽주의정신에 딱 들어맞는 기독교로 고쳐서 설명해 주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이제까지는 기독교에 대해서 독일 사람들이나 유럽 사람들이 강력하게 저항을 했던 것이 뭐냐면, 결국, 인간을 죄인으로 보고, 그리고 인간이 구원 받아야 될 존재라고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이제 계몽주의 하에서는 이제 인간이 구원을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부각시키려고 노력을 했지만 슐라이어 마허는 구원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을 한 거죠. 그러면서 종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느냐는 믿음의 내용이 아니라 결국은 내 마음 속에 다가와서 나를 움직이는 그 실재, 그 영적이고 정신적인 경험이야말로 그것이 종교의 본질이다 이렇게 생각을 한 거죠. 그러니까 결국은 뭐냐면 객관적인 진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객관적인 진리가 있고 너희들은 이 진리로 돌아와야 된다. 회심해야 된다라고 외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계몽주의 정신에 빠져 있는 사람이 슐라이어 마허를 대치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죠. 그리고 오히려 그런 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느끼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주장을 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갖게 되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인간은 아예 인간 외부에서 오는 구원을 받을 필요가 없는 존재이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결국은 이제 이 사람이 성경이 이야기하는 기독교는 교리, 어떤 것을 믿느냐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느끼느냐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라는 사상을 갖게 되는 거죠. 이것이 후에 이제 진리의 객관성을 부인하고, 무엇이든지 내 마음에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고 느낄 수 있게 해 주면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하고 붙들고 사는 자율성을 강조하는 포스트 모더니즘 정신과 맞어 떨어지는 말하자면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 낸거죠. 이런 속에서 이제 그는 아주 그 놀라운 인기를 누렸어요. 그 이유가 뭐냐면 천재성 때문이에요. 천재성...그래서 언어학자, 철학자, 설교자로써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수사학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리고 신학에 대해서는 남을 비판하지도 않고 비판받지도 않았으니까 사실은 그런 객관적인 교리 문제를 가지고 싸우질 않았으니까 광범위한 추종자를 얻을 수가 있었던 것이죠. 기존의 기독교인들은 이제 어떤 생각을 했냐면 이 사람에 의해서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이제 새로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라고 생각을 하고, 이 슐라이어 마허에 의해서 기독교는 다시 재건될 것이다..왜 ?그 때까지 사람들은 기독교를 다 버리는 입장이었으니까..그런데 그 슐라이어 마허에 의해서 다시 기독교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러면 그 기독교의 힘을 빌어서 내가 한 번 그것을 느껴볼까? 이런 사조들이 생겨나게 되었던 거죠. 그러면서 이제 많은 사람들이 슐라이어 마허의 이 태도를 이제 말하자면 따르게 되었던 거죠. 또 일반 대중들은 그의 사상이 그렇게 아주 복잡하고 이렇게 모든 것을 또렷하게 보여줘서 나는 이런 칼빈주의 반대한다 이런 개혁주의다. 이렇게 얘기한 게 아니라 편안하게 얘기하는 거죠. 그래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는 우리들도 요즘 쏟아져 나오는 책들을 보면 굉장히 은혜로와요. 괜찮아요. 근데 나중에 알고보니까 그 사람이 도대체 무슨 신학사상을 가진 사람인가 파헤쳐 보니까 순 나쁜 사람이에요. 근데 그런 전문적인 이야기를 안 하는 거예요. 다 감추는 거예요. 이단이에요. 이단인데 그렇게 은혜롭게 글을 쓰는 거예요. 네? 그렇게 쓰는 거예요. 이번에도 영국을 갔더니 어느 목사님이 줄 치면서 그걸 읽고 있다고 그래서 “그 사람 누군지 아냐?” 그러니까 자기는 모르는데 너무 은혜롭대..그래서 그 사람 말도 되지 않는 이단이라고 쭉 신학적인 배경을 설명해 주니까 그 사람 그렇게 나쁜 사람이냐고 그래요. 그러니까 그 한 두권 가지고는 모르는 거죠. 그런 걸 숨기는 거죠. 심지어는 말이죠. 1857년에 프린스톤 신학교의 그 유명한 찰스 핫찌 조차도 이렇게 얘길 합니다. 슐라이어 마허에 대해서 말하기를 “독일에서 정통 신앙과 대다수 기독교인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판단이 쉽지가 않은 거예요. 알고 보면 순 새빨간 말하자면 이 기독교 신앙의 진리 자체를 허물어버리는 이러한 것들을 느끼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예전까지는 이제 슐라이어 마허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이 뭐냐면 예수 믿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것에 대한 커다란 영향을 미쳐요. 예전까진 어떻게 생각했냐면 어 예수 믿는 사람..그러면 무엇을 믿는다는 신앙의 고백이 분명하게 있고 예수 만난 체험이 있고 그 다음에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 이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었어요. 근데 이 사람은 뭐냐면 무엇을 믿느냐? 그런 건 소용이 없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냐 아니냐 필요 없고 무엇을 자기가 느꼈느냐 그것이 중요한 거예요. 무엇을 자기에게 느꼈느냐 하는 종교적인 인식이 중요한 거죠. 이렇게 되면서 이제 프린스턴의 이러한 사상이 들어오면서 큰 신앙 논쟁이 일어나면서 자유주의가 들어오게 되는 거죠. 그래서 자유주의가 인간의 이성을 성경 위에다 세우고 성경을 난도질 하면서 비평주의를 받아들이고 문서설을 받아들이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이제 기독교의 독특성 그런 것들은 없는 것이다. 진리는 신학을 통해 교리를 통해서 이해할 수 있고 그 교리의 기반은 성경이다라는 것이 이제까지의 신앙고백이었거든요? 근데 이런 것들 깡그리 무너지고 진리는 내가 직통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고 오히려 성경이나 이런 교리 이런 것들은 편견으로 작용하면서 우리의 영혼이 순수하게 진리를 바라보는데 방해가 된다..이런 사상들이 나오게 되는거죠. 그러면서 이제 이제 그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을 반대하지 않아요. 노골적으로 반대하는게 아니라, 어떻게 하냐면, 신앙의 본질이 신학이 아니라, 삶의 문제다..그래서 결국은 우리가 어떻게 말하자면 예수 믿는 사람답게 사느냐..이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결국은 그러한 객관적인 진리, 성령의 역사에 의한 인간의 본성의 변화, 주님을 두려워하는 경건에 대한 인식,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경험, 이런 것들 다 날려 버리고 나니까 마지막에 남는 건 뭐냐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어울려서 사는 인본주의적인 삶, 이것이 이제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중요한 표지가 되는 거죠. 그러면서 이제 넬슨 다비라고 하는 사람과 세대주의가 등장을 하게 돼요. 넬슨 다비는 이 사람은 이제 그 경건주의 운도의 물을 먹은 마지막 사람이고요 경건주의 운동이 초기에는 건전한 복음주의 운동으로 시작이 되지만 후에 가서는 이것이 아주 그 탈교리적이고 신학을 무시하는 그래서 경험주의로 흘러가는 위험한 사상으로 변하게 돼요. 이러한 넬슨 다비에게서 영향을 받은 사람이 워치만 리라고 하는 사람이에요. 지금도 그 책이 남아있죠. 뭐 영에 속한 사람...그런 책들 있잖아요? 출판사에 전화해서 그 책 좀 그만 찍으라고 내가 몇 번을 얘기했는데도 계속 찍더라구요. 근데 그거 저 신학적으로 건전하지 않은 거죠. 워치만 리 사상이.. 그래서 이 넬슨 다비의 책에 탐독해요. 그렇게 하면서 그런 그 이상한 경험주의와 직통주의 ,신비주의 이런 것들을 만들어 내게 되는 거예요. 이 세대주의는 이제 커다란 싸움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세대주의라고 하는 이 세대는 우리는 하나님이 행위언약, 은혜언약, 모세의 율법이 있지만 형태는 달라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규정하는 언약의 통일성이 있고, 그 통일적인 언약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모든 시대의 우리를 믿음으로 구원하셨다..십자가로 구원하고 믿는 자들에게 그 구원의 용서를 주셨다고 믿잖아요? 그런데 이제 세대주의는 그렇게 안 보고,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시기가 이렇게 7개의 시대로 나뉘어진다는 거죠.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시대는 이제 한 시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시대라는 거죠. 노아 시대는 노아 시대대로 독자적인 언약이 있어서 이것들이 단절되어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 시대가 끝나고 나면 마지막 시대에는 또 다시 행위로 구원을 얻는 시대가 온다는 거죠. 이렇게 성경의 구원의 일관성들을 깨뜨리는 거죠. 이런 사상들이 이제 뭐 666 비롯해서 세계정부, 적그리스도의 출현, 등등의 개념을 안고 막 번져나가고 특별히 제스위티에서 나오는 그런 그 문서들을 통해서 깨어라, 파수대 이런 것들을 함께 그 저 번져나가는 거죠. 이런 일들이 있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현대 자유주의자들이 극성을 부리게 되고 세대주의가 혼탁한 연대를 일으키는 가운데, 이러한 자유주의화 되어가는 프린스턴 신학에 대해서 응전이 이뤄지게 돼요. 그것이 바로 근본주의라고 하는 것이죠. 근본주의라고 하는 데서 뭐가 근본이냐면 기독교 신앙에서 죽어도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인 진리들, 성경의 무오설,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속죄의 유일성, 이런 등등 인간의 원죄..이런 것들 아주 기본적인 아주 최소한의 교리들을 거기에 철저히 헌신하고, 그 교리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은 적으로 생각을 하면서 대치하는 그런 종류의 운동이었어요. 이것은 이제 자유주의자들이 아주 넓게 뭐 다들 형제라고 부르고 하니까 그것에 대한 반감으로 생겨나게 되는 거죠. 이러한 이랬는데 이제, 그 메이첸 그레이샨 메이첸 같은 사람이 이제 그 후대 사람인 그레이샨 메이첸은 근데 이제 20세기 사람인데 그레이샨 메이첸 같은 사람은 이제 철저하게 이제 그 자유주의자들과 싸웠져. 근데 이제 근본주의자들의 사상이 메이첸의 사상과 아주 유사했어요. 그래서 메이첸을 지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제 그 메이첸과 그 동료들은 근본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으면서 그래서 이 기독교의 중심 기둥이 되는 중요한 교리들을 절대로 타협하거나 양보하지 말고, 우리들이 이것을 고수해야 된다고 생각됐는데 그런 점에선 일치를 했는데 근본주의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긴 싫어했어요.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면 그들의 신앙의 고백은 너무나 단순해서, 과거 복음주의가 갖고 있었던 이 폭넓은 신학, 그래서 개혁신학 안에서의 이 세계 전체를 그 설명하고 이해하던 이런 것들에 대한 광범위한 포괄적인 성격을 상실한 근본주의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런 근본주의들이 결국은 아까 이야기한 것같이 산업화 사회에서의 그런 격변하는 사회의 변화, 인간의 소외의 문제. 그 다음에 새로운 권력의 문제 이러한 모든 이 그 공산주의와 이런 모든 문제에 대해서 적절하게 대처를 하지 못 하는 거죠. 그리고 철저하게 교리를 중심으로 하는 근본주의가 이뤄지게 되는 거죠. 그래서 치열한 교파분열과 싸움이 일어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제 메이첸과 이런 사람들은 신학적인 부분에 있어서 그들과 유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주의자라고 불려지기를 거절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서 이제 근본주의자들 안에서 계속해서 딴 살림을 차리는 분열주의가 일어나게 되는 거죠. 1929년을 기점으로 이제 결국은 프린스턴에서 견디다 견디다 못한 일단의 신학자들이 나와서 새로운 신학교를 설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교단을 새롭게 만들게 돼요. 그 자유주의적인 교단에서 이 사람들을 제거해 버립니다. 그렇게 태어난 학교가 웨스트 민스터 신학교였습니다. 근본주의 문제로 말미암아서 이제 웨스트 민스터 신학교는 다시 갈라져 나온지 얼마 안 돼서 약 10년이 약간 안 돼서 그래서 근본주의를 전적으로 따르고자 하는 일단의 무리들과 원래의 개혁주의적인 이 교리와 복음주의는 이 근본주의와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럴 수 없다라는 입장에 의해서 다시 학교가 또 나눠지는 분열의 아픔을 겪게 돼요. 자 이렇게 하면서 결국은 이제 그 오늘날의 웨스트 민스트 신학교가 내려오게 돼요. 찰스 파함과 오순절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오순절 운동은 한국에서 순복음 교회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60년대부터 일어나게 되잖아요? 이 운동의 역사는 이미 벌써 1906년에 태동되게 됩니다. 흑인 성결교 운동의 지도자인 세이 모어라는 사람이..세이 모어가 쓴 책들도 우리나라에 여러 권 나와 있습니다. 근데 이러한 사람이 그 엘에이 아주사 거리에서 새로운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는 사도적 신앙 복음 선교회라고 하는 것을 만들어요. 그리고 강력한 은사 운동을 펼치게 됩니다. 모든 예수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성령의 불을 받아야 된다고 외치게 됩니다. 이러면서 이들은 자신들에게 일어나는 이런 운동들을 1904년에서 06년에 있었던 웨일즈의 복음 저기 부흥 운동과 연관을 지으면서 그러면서 이제 강력한 은사운동을 펼치게 돼요. 이제 복음주의적이고 개혁주의적인 교회들이 영향력을 상실하고 수많은 분파주의들이 생겨나게 될 때 아주사를 중심으로 해서 이 시작된 이 오순절교회 운동은 미국에서 가장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세력 중의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여러분들이 잘 아는 빌립 그레엄과 복음주의운동이 일어나게 되는 거죠. 자 그러면 맨 처음에 개혁주의적인 복음주의가 있고 그 후에 자유주의가 생겨나게 됐어요. 잘 봐요. 개혁주의적인 복음주의가 있고 계몽주의에 의해서 흐려지니까 자유주의가 생겨나게 돼..자유주의가 생겨나니까 이건 안 되겠다 그래서 근본주의가 생겨나게 돼. 근본주의를 보면서 이것은 안 되겠다 해서 생겨난 것이 신복음주의운동이에요. 이 신복음주의운동의 전면에 나타난 사람이 빌리 그레엄이었어요. 이 빌리 그레엄이라는 인물은 원래 이 사람은 철저한 근본주의자였어요. 근본주의자고, 보수주의자였는데, 장인과 아내가 훨씬 더 브로드 하게 넓은 복음주의에 대해서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결국은 서서히 설득이 되면서 이 사람이 신복음주의의 운동의 중심 인물로 등장하게 됩니다. 신복음주의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아주 간략하게 설명을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복음의 기본적인 내용들을 배척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함께 손을 맞잡고 복음주의 운동을 펼칠 수 있고. 그리고 종교 간의 대화도 가능하다라고 하는 사상이 신복음주의운동이에요. 기본적인 신학적인 골격에 의해서는 예전의 복음주의를 계승한다고 보기 때문에 복음주의라고 부르고, 그러나 예전과 같지는 않은 새로운 시각으로 이 전도 운동과 그 다음에 복음, 그 선교 운동을 펼치고, 종교간의 대화를 이룬다는 점에서는 ‘신’자가 들어가서 신복음주의운동이라고 불리게 되는 거죠.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그 크리스챤 투데이라고 하는 잡지가 바로 이 때에 이제 빌리 그레엄이 만들고 이 빌리 그레암이 그 당시의 이제 그 지금도 있는 훌러 신학교의 이사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이 훌러 신학교가 이제 이러한 그 신복음주의 운동의 본산지가 됩니다. 이 때 이 때 이제 아주 중요한 사건이 하나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게 뭐냐면 1757년에 뉴욕의 전도집회를 벌이게 됩니다. 이 때에 근본주의자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데 예전에 아까 설명 드렸던 자유주의자들과의 연대를 통해서 거대한 복음전도 집회를 시도하게 돼요. 근데 그 자유주의자들은 그러면 자기들은 왜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성경의 무오성, 이런 진리를 다 부인하는데 왜 그럼 그렇게 그런 것들을 진리라고 믿는 빌리 그레엄 같은 사람하고 손잡고 전도 운동을 하느냐..교회가 안 되는 거예요. 교회가....예전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기 때문에 흰 소리 그냥 뻥뻥 치고 예수는 그냥 사람일 뿐이야. 심지어는 사생아야..우리가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역사적인 인물이냐가 아니라 우리의 신앙 안에 있는 거야..이렇게 가르쳐도 사람이 많았으니까 그러니까 교회가 유지될 수 있는데 사람들이 다 떠나는 거야..이거 가지고 안 되겠구나..하고 깨닫는 거야..그렇다면 뭔가 대중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주고 어쨌든 신학 사상은 달라도 예수를 믿고 싶어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만드는데 재능이 있는 사람이 누구냐...빌리 그레엄이다...이해가 맞아 떨어지죠. 그래서 빌리 그레엄이 자기들은 신학적인 입장에서 동의하지 않는 설교를 한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것들의 골격이 같다고 보고, 일단 전도를 하자라는 마음을 가지고 빌리 그레엄하고 연합을 이루게 되는 거죠. 사람이 계속 모였고 헌금이 이뤄졌으면 아마 이런 연합이 안 일어났을지도 몰라요. 이런 연합이 일어나게 되는 거죠. 이것을 두고 이제 결국은 근본주의자들하고 빌리그레엄과의 관계는 완전히 끊어지고 근본주의자들은 빌리 그레엄의 신학을 아주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되는 거죠. 근데 이렇게 되면서 결국은 결국은 1954년에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데 그게 뭐냐면 영국이 런던에서 이 빌리그레엄을 모셔다가 대규모의 집회를 열게 돼요. 근데 그 대규모 집회를 연 게 왜 문제가 되느냐...문제가 된 게 대규모 집회 자체가 문제가 된게 아니라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이 영국의 런던에 있는 교회 80프로의 교회를 교파를 막론하고 모두 결집시키는 거예요. 근데 결집시키는데 거기에 자유주의, 성공회 교회 그 다음에 이런 모든 사람들이 초교파적으로 연합을 하게 되는데 이게 나중에는 무슨 문제를 일으키게 되냐면 그 신학적인 차이를 다 무시하고 전도집회하면 모두가 연합을 이룰 수 있다고 되면서 이제 영국 안에서도 막 그 신학적인 차이가 굉장히 좁힐 수 없을 정도의 차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이제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까지도 말하자면 이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연합해서 함께 전도집회를 하는 것이 허락이 될 정도로 이렇게까지 발전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은 이제 이러한 일들을 두고 그 신복음주의 안에서도 칼 헨리 같은 사람은 초창기부터 동참했던 사람인데 강력하게 비판을 해요. 신학적인 공통 분모를 최소화해서 이렇게 에큐마니칼 운동을 펼치는 이것이 결국은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염려해요. 그래서 결국은 이제 이러한 그 그 염려에도 불구하고 저기 이 빌리그레엄이라는 사람 자신이 워낙 거대한 인물이니까 이제 이런 것들이 모두 묻히게 돼요. 그리고 인화력이나 이런 점에 인품이나 이런 점에서 아주 뛰어났기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거죠. 교파를 막론하고.. 그렇게 해서 이제 되어오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제 그 1967년에 더 결정적인 일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때 이제 키예 대회라고 하는 그 전국 성공회 복음주의 대회가 열리게 돼요. 이 때 이제 대회장이 존스토트 목사님이었고 개회사는 렘지 대주교가 맡고 그 다음에 이제 이 대회에서 슐라이어 마허의 신학정신이 정신에서 이야기하는 이 경험이 신학 보다 더 중요하다라는 점을 주지시키고, 그리고 그리스도를 하나님이요 구원자로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다 그리스도인이다..라는 입장을 천명하게 됩니다. 이게 이제 아까 맨 처음에 얘기했던 그리스도인을 누구라고 규정할 것이가 하는 이 문제와 관련이 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이것들이 무너지게 돼요. 여기에서 이제 로이드 존스가 등장을 하게 되는데, 그 보다 앞선 1966년 10월 전국복음주의 대회에서 이제 로이드 존스는 이 운동에 대해서 절대 반대하면서 결국은 이것은 결국은 이것은 결국은 교회의 성경적인 연합을 헤치는 것이고 마지막에는 재앙스런 결과가 올 것이라고 경고를 함으로써 이제 거기에서부터 이탈하게 됩니다. 이러면서 결국은 존스토트와의 30년이나 사귀어 왔던 좋은 관계들도 깨뜨려지게 되는 거죠. 이렇게 하면서 이제 이 혼란 속에서 미국에는 1964년에 새로운 이민법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전까지는 1924년의 이민법은 이민법이 있었는데 그 때는 비서구계의 사람들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할 수 없도록 그렇게 갈라놓습니다. 근데 1964년도에 새로운 이민법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제3세계의 국가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게 됩니다. 이 때 아시아, 라틴, 그 다음에 인도, 이 쪽에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오게 되고, 이민의 목적은 대부분 잘 살아보려는 것이었어요. 근데 들어오면서 모두 자신들의 종교를 가지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미국은 이제 종교천지가 되는 거죠. 이런 종교를 이제 모두 관용주의로 나가지 않으면 미국 사회의 연합 자체가 깨뜨려지게 되는 거죠. 그래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앞선 종교 다원주의화의 온상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거죠. 1924년 이전에도 이제 활발하게 유럽으로부터의 이민이 왔는데 그 이민은 문화 다원화였어요. 즉 그들이 각각 모두 기독교 신앙을 갖곡 들어왔지만 기독교, 천주교, 유대교 또 뭐 이런 여러 가지 신앙을 갖고 들어왔지만, 그러나 그들의 문화는 각각 달랐잖아요. 그것을 훌륭하게 소화낸 거죠.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해서 이번에는 종교까지 소화해 내게 되는 거죠. 그래서 다원주의화가 이뤄지게 되는 거죠. 다원주의라는 것은 뭐냐면 진리가 기독교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종교에 진리가 있기 때문에 한 종교 어디서 시작하든지 진리를 끝까지 찾아가면 최종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 그게 이제 말하자면 그 다원주의에요. 이런 사상들이 번져 나가면서 이제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그 인간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그것이 진리다라고 믿는 이 사조에 다원주의는 아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거죠. 이러면서 이제 이런 와중에서 맥가브란 이란 사람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게 마케팅 교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거죠. 30년간 인도에서 선교사역을 했던 이 사람은 다년간의 선교를 경험으로 성장하고 있는 교회와 성장하지 않는 교회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라고 하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속의 법칙을 상관관계를 연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만들어 낸 것이 뭐냐면 동일집단의 원리에요. 복음을 전파해 보니까 이 사람 저 사람 섞인 데 되는 게 아니라 젊은이들은 젊은이 모인 곳에, 그 다음에 늙은이들은 늙은이들 모인 곳에, 그 다음에 사업하는 사람들은 사업하는 사람 모인 곳에..이런 식으로 복음이 전달될 때 아주 빨리 되더라..이런 원리..그 다음에 어떤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연쇄반응을 회심하게 하는 이것이 대중운동의 형태로 나타나야 된다..이런 걸 주장하는 거죠. 잘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에게 빨리 복음을 전하자. ..그리고 이제 결국은 이방 세계에 복음을 전할 때 서구 문화의 옷을 과감히 버리고 토착화 신학을 이루자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한국에서 성찬식 할 때 막걸리를 쓰고 그 다음에 뭐 그런 ..떡을 사용하고 뭐 시루떡을 사용하고 하는 그런 거죠. 말하자면...그런 식으로 바꿔 가야 된다라고 주장을 하게 되는 거죠. 이러면서 이제 교회의 성장학파라고 하는 것을 풀러 신학교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이래서 이제 확장 성장, 연장성장, 내적 성장, 선교 성장 등등 여러 가지 선교의 개념을 내세우는데 결국 중요한 것은 수적 성장에 치우치게 되는 결과를 갖는 거죠. 그래서 영적 성장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게 되고, 이런 영향들이 이제 우리나라의 K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몇몇 교회들이 이제 이 성장 이론들을 받아들이면서 이제 맥가브란의 성장 이론을 자기의 목회에 말하자면 적용시키면서 이제 성장을 가속화 하게 돼요. 그래서 결국은 산업화와 함께 이제 대형화 교회의 추세로 가게 되는 거죠. 여기에서 마케팅 교회들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극단적인 자아 중심주의와 신비주의가 일어나게 되는데, 이제 이것들은 지난 번에 여러분들에게 많이 설명을 했을 거에요. 이렇게 객관적인 진리를 모두 거부하면서 최종적으로 인간을 누구로 보려고 하냐면 자율적인 자아로 만들려고 하는 거죠. 그래서 자율적인 자아이고 마지막에 유일하게 남은 현실이라고 하는 것은 객관적인 진리도 없고, 그리고 나를 가르치고 지도할 수 없는 더 높은 권위도 없기 때문에 마지막에 남은 최종적인 현실은 인간의 내면 밖에는 안 남는 거예요. 인간은 그 내면의 주인이고 그리고 모든 현실의 축소판이 됨으로써 권위있는 것은 절대적으로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거죠. 원래 개인주의는 미국에서 꽃 피게 됩니다. 근데 미국의 초기 개인주의는 자기 의무를 이해하고, 공동체의 커다란 객관적인 규율을 인정하는 가운데 더 이상의 간섭을 받지 않는 그런 종류의 책임이 있는 개인주의였어요. 근데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얘기하는 개인주의는 그것이 아니에요. 사회 도덕이 뭐라고 했든지 간에 내가 원하면 하는 거다...이런 사상이 벌써 실존주의에서 보이는 거죠. 여러분 알베라까뮈가 쓴 이방인이라는 책을 읽어보셨을 거죠. 거기에서 이제 살인을 하게 되죠. 그래서 묻죠.왜 너 사람을 죽였냐고 법정에서 물으니까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 사람을 죽였다..햇빛이 너무 눈부셔서 사람을 죽였다고 얘기하는 거죠. 이것을 벌써 그 이전 시대에 씌여졌던 도스트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라스꼴리니꼬프가 그 노파를 전당파 노파를 살해하고 난 다음에 막 죄를 지었다고 고뇌하는 이 장면하고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장면이라 이거죠. 이렇게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인간의 사고가 변하기 시작한 거예요. 결국은 이제 자아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이러면서 이제 뭐가 들어오게 되냐면 자아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적인 신앙과는 달리 인간을 무제한 존재로 보고 무한한 존재로 보는 거죠. 그래서 인간이 이제 이러한 영적인 차원에서 인간이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신과 합일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스피토자 같은 사람들이 새롭게 각광을 받기 시작하는 이유? 그리고 미국에서 스토아시즘 같은 것들이 새롭게 각광을 받기 시작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미국적인 사고방식의 변화에서 영합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들이 일어나게 되는 거죠. 이러한 자아 운동들이 수없이 번져가면서 그러면서 결국 인간이 인간의 죄, 그 다음에 하나님의 진리 앞에서의 객관적인 실존, 이런 것들은 모두 다 무시되어 버리고 인간은 그냥 무조건 피해를 입은 존재, 상처 받은 존재, 고쳐져야 될 존재, 그러면 언제든지 방해하지만 않고 자유롭게 내버려두면 행복해 질 수 있는 존재, 이런 식으로 묘사하는 거죠. 여러분 가만히 보면 기독교 안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불렀던 노래인데, 세상에서 대히트를 치고, 텔레비전전의 씨엠송으로 여러번 나왔던 노래가 있어요. 당신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그거 나오잖아요. 그거 처음부터 끝까지 다 불러도 예수라는 얘기는 하나도 안 나오고 하나님이라는 얘기도 거의 안 나와요. 세상 사람들이 딱 보기에 너무너무 좋은 노래에요. 그러면 그것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불렀다는 이유 때문에 예전엔 싫어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에요. 예수 믿는 사람이 불렀든지 불교 믿는 살마이 불렀든지 나 자신을 중요한 존재로 인정해 주고 이렇게 그 나 자신이 그렇게 소중한 존재라고 인정을 해 주면 That's OK란 거예요. 네? 그런 거죠.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에요. 그게 칼빈주의에요. 네? 참...이러한 것들이 어떤 곡들이 그렇게 히트를 치느냐가 현대성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거죠. 참..그러면서 이제 리차드 포스트와 레노바레 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리차드 포스트는 기도라는 책이 수십만부 팔리면서 우리나라에 아주 유명한 사람이 되었고 리차드 포스터의 글들이 많이 읽힙니다. 저도 몇 권의 책을 읽었는데 굉장히 순수하신 분이라고 하는 것들이 느껴져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근데 이제 리차드 포스터는 이제 아주사 퍼시픽의 영성신학 교수이고 이 사람이 창설한 운동이 레노라베 운동이에요. 한국에 있는 유명한 교회들이 이 레노바레 운동을 받아들여서 레노바레 성경까지 나온 걸 여러분 봤을 거에요. 레노바레란 말은 라틴어로 개혁하다, 갱신하다 그런 거예요. 그런데 이제 이 분의 신학적인 기반이 뭐냐면 청교도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아요. 그런데 이제 퀘이커 교도에도 영향을 받는 거예요. 이 케이커 교도는 이제 그 18세기의 독일에서 일어나는 운동인데 퀘이커라는 말이 막 떨다라는 말이거든요? 그래서 떠는 사람들이에요. 거기서 유래한거죠. 무슨 뜻이냐면 신비체험을 강조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관상기도 같은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직과하고 직통계시를 받고 하나님과 합일을 이루는 그런 거죠. 이런 운동을 한국에서 펼쳤던 사람들이 함석헌, 돌아가신 함석헌 끼 같은 분들, 많이 존경을 받던 그 저 장길여 박사 같은 분들이에요. 무교회주의자들이었거든요. 이런 눈에 보이는 이런 교회들은 말하자면 해로운 것이다 이렇게 본 거죠. 오히려 하나님을 못 보게 만드는 요소다 이렇게 보는 거죠. 그러면서 명상을 강조하고, 내적 직관, 순수한 삶 이런 것들을 강조한 거죠. 만약에 우리들이 그 민중신학이 하나님의 정의를 찾았다면, 오순절 신학은 성령의 은사를 찾은 것 아니에요? 복음주의는 하나님의 진리를 찾았고 이랬다면 이제 민중신학이 하나님의 정의를, 복음주의가 진리를, 그리고 오순절 운동이 은사를 추구했다면 이것은 하나님과의 교통과 사랑을 추구하는 거죠. 그래서 이것들은 종교, 물론 신앙 안에는 이런 신비를 찾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는 하나님과의 교통을 누리고 하는 그런 것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어요. 근데 문제는 뭐냐면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고 하나님과 교통하고 그 분의 음성을 듣고 하는 이런 모든 것들이 이게 전체적인 신앙 사상의 원리 속에서 이뤄져야 되는 거잖아요. 근데 그런데 이제 아주 내면화 되고, 내밀화 되어 가는 거죠. 그러니까 오늘날 하나님과의 교통을 거의 느끼지 못 하는 메마른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이런 운동들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이제 한국에서도 여러 교회들이 여기 이것을 받아들여요. 근데 한국 교회에서 이런 것을 받아 들일 때에는 그 목회자나 교회가 이걸 막 진지하게 고민하고 뿌리를 캐 보고 아....나는 거기 동의해...그리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어느 한 좋은 면을 보고 도장을 찍는 거예요. 그리고 나중에는 그 속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모르는 거죠. 그런 경우가 많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점에서 이제 이 레노바레 운동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거죠. 근데 문제는 이런 레노바레 운동들이 뒤에서 설명할 이제 이머징 교회 운동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데 이제 문제가 되는 거죠. 마케팅 교회는 이미 설명을 드렸듯이 이제 결국은 마케팅 교회가 리워렌리나 세틀백 처치나 그리고 엘로우 크릿 교회 등등을 통해서 마케팅 교회가 굉장히 커다란 인기를 끌고 뭐 미국에서 가장 많이 모이는 교회들로 성장을 했잖아요. 그러한 마케팅 교회의 이론들을 한국에 있는 몇몇 교회들이 상당히 받아들여서 수많은 사람 출장도 보내고 배워오게 해서 그것을 그대로 답습을 해서 한국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뒀어요. 일단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된 교회는 대부분 마케팅의 전략을 지지하는 교회였기 때문이죠.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이미 벌써 이런 마케팅의 교회가 지고 있어요. 그래서 마케팅 교회의 기본적인 개념은 편의점을 만드는 방법하고 유사해요. 먼저 교회를 세우기 전에 모든 사람들에게 지역주민들에게 어떤 교회가 필요하지 설문을 구하고 그들의 기호에 딱 맞는 것을 만드는 거죠. 그러면 생각을 해 보십시오,.그렇게 하면서 만들어 내는 교회인데, 그들은 형식만 그렇게 할 뿐이지 내용은 진지함을 유지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런 형식을 계속 따르게 될 때 사람들에게 대중적인 교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교회의 본질적인 부분들을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죠. 예를 들자면, 비하이블즈는 자기의 책 속에서 이런 얘길 하는 그죠.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예배 시간에 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보는 거죠. 왜냐면 안 믿는 사람이 교회에 왔을 때 얼마나 큰 소외감을 느끼겠느냐 이렇게 보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이제까지 신자 불신자, 중생자 비 중생자, 자연인 거듭난 사람,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죄인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런 식으로 대비를 했잖아요. 이것은 마케팅 전략상 안 좋은 거라는 거죠.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거죠. 왜냐면 그들은 잠재적인 고객이기 때문에 좋게 대해 줘야지 너는 불신자...이러면 되겠냐 이거죠. 그래서 단어들을 만들어내요. 헤리와 테리라는 단어에요. 그게 뭐냐면 이제 교회 다니는 사람의 대명사이고, 그 다음에 언처치어, 처치어...그래서 교회 출석하고 있는 분, 출석 안 하고 있는 분...그게 이제 중생자와 비중생자, 불신자와 신자를 대용하는 용어들이에요. 이런 식으로 해서 사람들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광범위하게 말하자면 이메이징 메이킹을 하는 거죠. 그러면서 그들을 불러놓고 그들을 절대적으로 회심해야 된다라고 이런 식으로 가르치는게 아니라 현대 주의 정신에 맞게 행복해지고 싶어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러한 것들을 교회가 줄 수 있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소외돼 있잖아요. 여기에 바로 너희들의 형제 자매들이 있다..이런 식으로 접근을 해 나가는 거죠. 이런 것들이 인기를 많이 끌고 교회가 성장했는데 이제는 별로 인기를 못 끕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원하는 것은 그런 것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지금 죠에 로스틴의 교회 같은 교회도 성공과 번영을 약속하면서 알미니안 주의, 펠라기안 주의, 그 다음에 동방신비교 이런 것들을 전부다 믹서해 가지고 새로운 사상들을 만들어 내고, 몇 만명의 교인들이 모인다고 하지만 저건 그렇게 오래 가지 않습니다. 마치 비녀드 운동이 일어났던 때와 같다고 보는 거죠. 이런 것들이 가고 이머징 처치가 뜨고 있는 거죠. 이머징이란 말은 떠오르고 있는 교회라고 하는 뜻이거든요. 이머진 처치는 이 대형교회를 비인격적인 걸로 규정하고 이런 대형교회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그마한 중간 규모의 교회를 취하면서 그러면서 인간이 평안을 누리고 위안을 얻고 그 다음에 영적으로 하나님을 관상하며 위로와 채움을 받고 하는 이러한 내적인 갱신들을 도모하는 그런 종류의 운동으로 발전을 하게 되는 거죠. 근데 이런 속에서 우리들이 생각할 때는 이런 이머징 교회들이 아마 이 기존 교회에 식상한 사람들이 모여서 의도적으로 만든 교회일 거다 이렇게 생각하죠. 그리고 아마 젊은이 그룹들이 모여서 이제 자신들의 감각에 맞는 새로운 교회를 꿈꾸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전혀 의외의 조사의 결과가 나와요. 그게 뭐냐면 이러한 이머징 교회 운동 뒤에 누가 있냐면 피터 드러커라고 하는 20세기 경영학의 구루라고, 구루는 최고의 스승을 구루라고 하거든요? 영어로? 스타워즈에 나오는 뭐 이렇게 그 왜 그 할아버지 있잖아요? 그런 사람을 구루라고 그러죠. 도사보다 더 높은 사람이에요. 그러한 피터 드러커라고 하는 인물이 자리잡고 있어요. 그런 피터 드러커라는 사람이 어떻게 연계되냐면 얘기가 좀 복잡한데 그냥 넘어갈께요. 이 사람이 관계가 되는데, 그럼 이 피터 드러커라고 하는 경영의 귀재가 어떻게 해서 이 이머징 처치의 새로운 떠오르는 운동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느냐 이거죠. 마크 드리스콜이라고 하는 사람이 이제 그 어느 집회의 강사로 초청을 받게 돼요. 그게 1990년대 중반의 일이에요. 그 때에 이 사람은 이제 씨애틀의 도시에 교회를 개척하려던 참이었어요. 근데 이제 전도를 하는데, 근데 그 전도 그 집회를 위해서 이제 그걸 하기 위한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이 팀이 점점 커지면서 점점 더 어떻게 하면 이 시대의 교회를 올바로 전파하고, 그 다음에 기독교 사상을 대중화할 수 있겠느냐 하는 하나의 팀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것이 점점점 커져요. 존 바퍼드라는 사람까지 여기에 가입을 하게 되면서 이렇게 되는데, 이 때에 자문을 구하는데 피터 드러커라는 사람을 찾아가게 됩니다. 이 피터 드러커는 1909년에 오스트리아라는 곳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 활동한 경영학의 대가였습니다. 최근에 돌아가셨어요. 2005년에 95세의 나이에 돌아가셨는데 그가 쓴 책들이 굉장히 유명한 책들이 많고 하여튼 피터 드러커는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회사 경영하는데 천재적인 수안을 발휘하던 사람이 어떻게 이러한 영성 운동을 지향하는 이런 교회의 말하자면 조언자가 되고, 정신적인 기초가 되었느냐 이거죠. 이 사람이 이 단체와 관련을 맺고 이제 처음에 이것들을 조직하고 하는 것들에 대한 자문을 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까 이 사람이 아주 신실한 신앙인이었어요. 근데 이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이 누구냐면 쉐안 키에르케고르라고 하는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유신론주의적 실존주의 철학자인 이 사람이었어요. 이 쉐안 키에르케고르를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에 이 쉐안 키에르케고르의 글을 읽기 시작했고 영어로 번역되지 않은 쉐안키에르케고르의 원전을 읽기 위해서 덴마크어까지 공부를 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그것을 원전으로 읽었던 사람인데 그러면 도대체 피터 드러커의 영향을 끼쳤떤 키에르케고르는 누군가죠? 실존주의 철학자인데, 이 쉐안키에르케고르에 가장 영향을 끼쳤던 사람이 누구냐면 중세의 신비자인 에카르트라고 하는 사람이었어요. 이 사람은 신학자인 동시에 영성가이고 신비주의자였어요. 에크아르트, 수쏘 이런 사람들이 중세의 신비주의자들이었거든요? 하나님과의 합일을 도모하고 말씀 너머에 있는 하나님을 직접 바라보고 교통할 수 있다는 이러한 신비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이 사람을 이제 자기도 직접 심취하게 됩니다. 그래서 에칵르트, 이런 사람들, 동방철학, 신비주의, 명상 이런 것들에 깊이 심취하게 되면서 이게 이제 기독교권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거기에서 한 걸을 더 나아가서 이제 동방종교의 구루들, 담 라스타, 여러분들이 잘 아는 크리쉬나무티르라고 하는 이러한 그 말하자면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의 사상과도 접촉을 하면서 그러면서 이제 변해가게 되는 거죠. 이러면서 이제 이러한 피터 드러커의 그 이머징 처치에 대한 개념들은 결국은 신비주의에 뿌리를 내리게 되고 저 멀리로는 유대교의 신비주의인 핫시딤과 핫시디즘과 그리고 더 멀리 가면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100년 후부터 생기기 시작해서 중세 시대에 강력한 인기를 끌었던 까발리즘이라고 하는 유대교 신비주의 운동들이 있습니다. 아주 신비스러운 교리의 체계를 가지고 우주와 하나님과 인간을 설명하는 그러한 그 말하자면 신비주의 운동인데 거기에까지 맞닿아 있게 되는 거죠. 이렇게 하면서 결국은 이런 운동들이 계속 번지게 되는 거죠. 근데 문제는 뭐냐면 릭워렌이나 아니면 또 아까 이야기 했던 그 빌하이벌스 이런 분들이 안타깝게도 이런 사람들의 사상과 손을 잡는다는 거죠. 그러니까 대형교회를 이루긴 했지만 철저한 신학을 가지고 대형교회를 이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회가 성장할 수 있고 사람들의 가슴에 스며드는 이론을 가진 광범위한 신학들과 접촉을 하면서 나름대로 교회의 성장을 도모해 가는 거죠. 그것들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신학적인 깊은 틀들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들을 이어가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결국은 릭워렌의 그 교회, 그 다음에 이제 빌하이벌스의 교회 이런 교회들이 변모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대형교회가 그냥 주저앉아서 이렇게 뭐 문을 닫거나 망하거나 이렇게 되지 않고 재빨리 물을 갈아타기 시작해요. 벌써 갈아타기 시작하는데 그 물이 뭐냐면 이제는 목 좋은 곳에 교회를 설치하고 큰 주차장을 만들고 교인들 서비스하고 교회를 화려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교회에 뭐지? 그 사우나까지 도입을 하고 그 다음에 스포츠센타 도입하고 이렇게 해 갖고 교인들을 편의롭게 해 주는 이것을 가지고는 한계에 왔다고 믿기 때문에 이러한 동방종교, 정교회의 영성과 만나는 그래서 인간이 합리주의를 추구하고 추구하다 보니까 영적인 존재인데 이런 것들이 채워지지가 않는 거야. 하나님 없다고 아무리 작대기를 그어도 자기는 그 분과 접촉하고 싶은 내적인 종교적인 열망을 가지고 있는 거죠,. 이런 것들을 받아 들이기 위해서 고전적인 개혁주의적인 영성으로 돌아가긴 너무나 멀리 온 거예요. 그리고 이것은 이성주의가 용납을 안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것 상관없이 깊은 명상과, 그 다음에 자기 절제, 관상기도 이런 것들을 통해서 신적인 세계와 접촉하면서 침묵의 시간을 갖고 그리고 자기의 정신을 정화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하는 거죠. 여러분 템플 스테이라고 알죠? 절에서 머물면서 한 1주일씩 숙박하는 것...그게 미국 사람들한테 그렇게 인기를 끌고 있고 우리 나라 사람들도 거기에 참여하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유가 뭐냐면 상당한 돈을 받습니다. 그런데도 거기에 참여하는 이유는 뭐나면 일단 1주일 동안 그렇게 속세에서 떨어져서 명상을 하고 이러고 나면 불교의 가름침이 뭐라고 떠들든지 간에 그걸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마음에 평화가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도원 같은 데 와서 조용히 1주일만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평안이 오는데 그 애 평화가 안 오겠어요? 그런 것들을 찾고 싶어하는 거예요. 그것은 이론적으로 설명되는 게 아니잖아요. 이 욕구가 항상 남아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재빨리 마케팅 교회들이 그걸 갈아타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이제 그 들어오게 되는 거죠. 이렇게 해서 결국은 이제 기독교가 이런 식으로 되면서 이제 그 마케팅 교회들이 재빨리 갈아타면서 그러면서 이제 이런 새로운 쪽으로 갑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이렇게 커다란 교회들이 아니라, 300명 정도 모이는 교회들, 예배당은 성당처럼 짓고, 촛불이 있고. 지붕이 높고, 그리고 목사는 이제 아주 하얀 가운 같은 것을 입고, 거룩하게 나오고, 그리고 위엄이 있는 성가대의 찬양이 울려퍼지고 하는 막 이렇게 기타 두드리고 막 이런 것들이 점점점 사라진다고 봐야죠. 그렇게 되어가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국민일보나 이런 데서 보면 레너드 스위티라는 사람이 자주 글을 쓰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거예요. 레너드 스위트라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도 바로 이러한 계열에 있는 사람이에용. 그래서 글이나 책들 같은 것 보면 이상하게 느껴지지가 않아요. 근데 그 뿌리들은 이머진 사상에 맞닿아 있는 거죠. 자 이렇게 해서 이제 전개가 되고,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신사도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들은 이제 강력한 성령운동이에요. 그 성령운동을 주창하는 거죠. 그래서 이것이 빈야드 운동으로써 나타나게 되는게 피터 와그너 같은 사람에 의해서 이것들이 이뤄지게 되는 거죠. 유명한 그 영역주권설이라고 그래서 마귀들이 지배하는 땅들이 있고 그들을 쫓아내기 전엔 절대로 선교가 되지 않는다고 그렇게 주장하는 거죠. 이러한 지역신 이론 같은 것들을 토대로 해서 만들어 내게 되는 거죠. 이 신사도 개혁운동의 뿌리는 대개 셋으로 구분되는데 1830년대에 영국의 에드워드 어빙의 운동, 1900년대에 시작된 독립교회 운동, 아프리카 그 다음에 중국교회 가정교회 운동, 라틴아메리카의 풀뿌리 운동 정도의 네 가지 구분으로 나뉘어져요. 공통적인 특징이 뭐냐면 어떤 인물을 절대화 하는 거예요. 예를 들자면 12명의 사람이 성령을 받았는데 이 사람들이 예수님이 20세기에 세운 사도다...이런 식으로 나가는 거죠. 그래서 거기에 아포스토릭이라는 말이 붙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전에는 자유를 중심하면서 민주주의적으로 되는데 여기에서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이번에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강한 무엇을 카리스마를 받은 사람을 내세우고 그리고 그 분이 사도와 같은 인물이기 때문에 성경도 새롭게 해석하고, 계시도 전달해 주고, 하나님의 뜻도 알려주고 하는 이런 사도적인 인물을 세우는 거예요. 사도적 운동이 되는 거예요.그래서 이런 것들이 결국은 들어오면서 한국에도 이런 것들이 개인의 카리스마를 강조하면서 그러면서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둘로 나눠요, 로고스는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말씀이고 레마를 받아야 되는데 레마는 하나님과의 직통적인 관계를 통해서 우리의 가슴 속에 경험되는 말씀이다라고 보는 거죠. 로고스는 중요한게 아니라 레마가 중요한 거다 이거죠. 그러면서 결국은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그 중에서 자기가 경험한 말씀만이 강력한 가치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이런 식으로 가게 되는 거죠. 이런 운동들이 한국에 굉장히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오늘날 그 소이 얘기하는 뭐 안녕하세요 성령님을 비롯해서 그 기도운동을 펼치고 있는 일단의 사람들과 그리고 또 강남구에 있는 그 강남구의 어느 교회에서 주도되고 있는 예언 운동, 사람들 불러다 놓고 네 앞날을 예언해 준다라고 하는 예언운동, 그 다음에 신유 운동, 이런 많은 것들이 결국은 바로 이러한 이제 그 이 신사도운동의 한국적인 적용들을 보여주는 거죠. 그렇게 해서 이제 이러한 기도운동들이 고전적으로 개혁주의 안에서 일어났던 경건의 실천으로써의 고전적인 기도운동이 안니라 이렇게 아주 그 강력하게 뒤틀린 그러한 그 말하자면 사도적인 권위를 새롭게 주장하고 그 다음에 하나님 그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은사, 이 은사 중 어떤 것들은 지속되고 있고 어떤 것들은 중지되었다고 봐야 되는데 이 모든 것들이 완전히 개방되어서 전달되고 있다고 보고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오류는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하는 거죠. 그래서 신사도운동에 가입된 많은 사람들은 결국은 어떤 생각을 하냐면 이제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보는 거죠. 그래서 말끝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성령과의 직접적인 교통을 강조하는 거죠. 성경을 제쳐놓고..이런 운동들이 광범위하게 퍼져가면서 이제 기존의 이 그 윤리적인 설교, 영적인 것들이 없는 이런 모든 인간의 이성에 부합하는 모든 신앙생활 이런 것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이제 재빨리 이러한 그 신사도운동에 합류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이제 또다른 종류의 은사 운동들이 새롭게 일어나는 거죠. 예전의 영성은 내가 세상을 개혁하고 변화시키고, 그 다음에 내가 축복을 받고 병 고침을 받기 위해 성령 충만이었다면 오늘날의 영성은 그게 아니라, 이렇게 늘 기계적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나 자신의 영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자기만족적 영성이에요. 신비감 이런 것들을 경험하게 하는 그런 황홀의 영성,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해서 성경과는 거리가 먼 자기만족적인 영성을 추구하게 되는 거죠. 이러한 일들이 이제 일어나게 되면서, 이제 열린 신학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특히 피터 와그너 같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데,,이제 이러한 열린 신학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면 하나님이 인간의 의지에게 맡겨놓은 것은 하나님도 모르신다 이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스스로 그렇게 모르신다...그래서 이 세상에 일어날 일들을 모르시는 게 아니라 기계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은 하나님이 다 아시는데 내가 지금 도둑질을 할지 안 할지, 내 의지에 맞겨진 모든 것들은 하나님도 모르신다고 보는 거죠. 하나님도 그것을 하나하나 배워가면서 하나님이 되신다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얼마나 신나는 일이에요? 하나님도 모르니까..그러니까 나는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거죠. 예지, 예정 같은 것...철저히 부인돼요. 이런 것들이 새로운 사상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것은 이미 벌써 종교 개혁 시대에 소키누스라는 사람에 의해서 제창된 것이었고, 더 고대로 올라가면 이런 이단들이 수없이 나와요. 그래서 하나님을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주창하면서 12세기에는 재스위트 교파의 수도사를 중심으로 중간 지식의 이론이라는 유명한 교리들이 발생하게 되는 거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인간이 결정할 걸 모르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안다...어떻게 아는 거냐? 하나님은 인간이 뭘 결정할 진 모르시지만 어떤 걸 결정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알고 계시다...이게 중간지식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 이론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님을 성경이 그려내는 신실하고 전능하신 분으로 알지를 않고, 이것을 부인하려고 하는 사상들이 생겨나면서 기존적인 신관, 삼위일체, 기독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의 문제, 이 모든 것들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런 신사도 운동들을 한국에서 광범위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이제 서울 근교에 있는 교회들 속에서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 피터 와그터 센타 같은 것을 만들어 가지고 6개월씩 수련을 하면서 거기에서 말하자면 능력 받는 법, 그 다음에 예언 하는 법, 사람들 쓰러뜨리는 법, 이런 것들을 교수해서 그래서 그 사람들을 길러서 내보낸다고 하는 이런 운동들을 펼치면서 이것이 마지막 시대의 주님의 명령리고 뜻이라고 이렇게 생각을 한다 이거죠. 그럼 결론적으로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라고 하는 거죠. 이러한 처지에서 매우 혼란한 영적인 상황 속에 우리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럴수록 우리들은 우리의 신앙의 뿌리를 굳게 믿고, 내가 성경과 맞닥뜨려서 깨닫는 그것 뿐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수많은 오류 속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교회를 지켜 오셨고,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이 진리를 파수해 왔는지를 올바로 배우면서 성경적인 개혁신학을 굳게 붙들어야 된다..두 번째는 알기만 하고 체험하지 못 하면 더 좋은 감언이설에 시달려서 결국은 자기의 신학적인 입장을 양보하게 되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으로 성령 안에서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고, 그 실재를 누리면서 살 때 이러한 모든 이단 사설들을 이길 수 있다..또 하나는 참된 지시과 생활이 완전히 일치해서 사람들에게 참된 기독교인의 참된 신앙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나타내 보일 수 있어야 된다..결국은 이제 개인주의적인 시대 속에서 교회의 거룩한 공동체성을 온전히 이루면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해야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그래서 우리는 단지 성경을 읽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토대로 조직된 교리, 신학, 이것들을 철저히 배우면서 참된 기독교 사상으로 무장을 해서 그래서 이 시대에 일어나는 참된 것 뿐만 아니라 오류에 빠진 것들도 분별하면서 암초가 있는 바다를 항해해서 가는 지혜로운 선장처럼 주님의 손을 굳게 붙들고 의지하면서 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지만 승리할 수 있다 이 얘깁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