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lms 2
목 차
왕을 시온 산에 세우시는 하나님(시 2:1-6) 1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시 2:7-12) 15
하나님을 경외하는 비결(시 2:10-12) 18
왕을 시온 산에 세우시는 하나님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맨 것을 끊고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 때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시 2:1-6)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시편2편은 하나님과 당신의 아들의 권세와 영광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지위와 권세가 높아지면 마치 하나님이 된 것인 양 모든 영광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비록 일국의 황제나 국가의 권력자는 아닐지라도, 비슷한 일들이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도 늘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염려와 근심이 없게 하시고, 또 많은 자원들이 주셨습니다. 그러면 사물의 질서를 우리의 마음에 맞도록 움직일 수 있는 여력이 생겨납니다. 사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권력입니다. 권력은 높은 지위에 올라야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움직이는 힘입니다. 우리는 물질이 많고 지위가 높으면, 그만큼 사물의 질서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권력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힘이 생기면 예전에는 하나님을 많이 의지했더라도 하나님을 덜 의지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독립의 정신입니다. 인간은 처음 창조될 때부터 독립하여 살도록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창조한 인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며 살도록 창조된 인간이 독립해서 살아가는 것은 아주 더러운 것입니다. 추해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들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진짜로 수천만, 혹은 수억의 사람이 자기의 지위 아래 굴복하고 모든 것을 움직여서 살 수 있는 커다란 힘과 권력이 있을 때 그들이 하나님 앞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 않습니까? 부패한 본성을 가진 인간에게 이런 일들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새 열방과 새 군왕들과 새 방백들이 세상의 권력이 많아지자, “이제 여호와와 기름 부은 받은 자와 관계를 끊자, 결박한 것을 끊자.”라고 합니다. 여기서 결박은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행해야할 어떤 의무를 이릅니다. 이런 것을 끊어버리자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하나님께 지시를 받고 그분의 명령과 분부를 따라서 사는 종류의 삶을 집어 치우자’ 그리고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이 정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인인 것 것처럼 살자’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그와 같은 시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개입하셔서 그들을 요절내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교만해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그분의 말씀이 없으신 것처럼 만사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인내하심을 보여줄 뿐이지, 하나님 무능하다거나 혹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향해 한없이 업신여기는 삶을 살아도 하나님께서 한없이 참으신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홀로 온 땅과 만물의 주인이고 세상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그런 시도를 하는 인간을 비웃으십니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의 첫 걸음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부 안셀무스는 자신의 책속에서 이렇기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곧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판단하신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순종해야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당신의 뜻을 가지고 계시다면, 인간이 그분의 뜻대로 사는 것과 살지 않는 것 사이에는 현저한 격차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한다면, 인간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너무나 분명하게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시온에 세우심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의 아들을 시온에 세우셨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서 시온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산지입니다. 원래 ‘시온’이라는 뜻은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찌온’(@/yxi)은 ‘마른땅, 요새’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산지입니다. 그것들이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그 시온 산지들은 아주 매우 신성하게 여겨졌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예루살렘을 보호하는 약속이 있는 땅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포함하는 시온은 항상 성경에서 교회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상징인 이유는 우선, 언약 백성들의 공동체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곳이 시온이고 예루살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성전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시온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왕권을 행사하셨습니다. 왕권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행사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시온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라고 여겨집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받은 자를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나실 것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단순히 미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서, 비로소 기름 부은 받은 자가 세워진 것이 아니라 이미 이전에 삼위 하나님 가운데, 2위이신 성자는 구별되고 기름부음을 받아 세워진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과 함께 시온을 중심으로 통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삼위 하나님을 만나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말씀을 통해 감화를 받고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바로 성자께서 감당하시는 몫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시온을 중심으로 왕권들을 펼치고 왕권의 행사를 통해서 궁극적인 왕이신 삼위 하나님의 위대한 존재가 이스라엘 왕들을 통해서 펼쳐집니다. 그 일의 핵심에 ‘기름 부은 받은 자, 주님이 계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권력이 많고 하나님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우리가 매인 것을 끊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가 바로 시온이 되어서 하나님의 임재의 통치를 보여주고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이 왕권이 행사될 때, 세상의 있는 모든 나라의 어리석음을 우리들이 꾸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회개시켜서 하나님을 향해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이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 받은 자가 교회 안에 충만히 계셔야 합니다. 그분이 바로 성령을 통해서 오늘도 우리 가운데 오시는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그분이 교회 안에 충만히 계실 때, 열방과 관원들 방백들이 ‘여호와와 기름 부은 받은 자와 맺은 것을 끊자’라고 말할지라도, 정녕 끊을 수 없는 하나남의 통치를 교회를 통해서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과 적용
이것을 여러분 개인에게 적용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의 시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분 가운데 주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실 때, 그리스도가 느껴지고, 그리스도가 여러분을 다스리고 통치할 때 여러분을 에워싼 세상이 아무리 하나님을 비웃고 멸시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당하면서 하나님을 보여주는 여러분들이 더 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여러분들이 빛들이 되어서 어둠을 꾸짖고, 여러분들이 소금이 되어서 그들이 부패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또한 여러분이 진리의 증거자가 되어서 그들을 빛 가운데로 돌아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에게는 주님이 교회를 충만하게 다스려주시는 이런 통치가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복이 있도다”(시 2:7-12)
인간의 독립선언의 배경
사람들은 권력이 많고 돈이 많아지면 상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스스로 독립해서 큰일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주님 없이는 내가 살 수 없습니다. 주님 없이는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런 고백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지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는 신자의 마음 안에서 먼저 영광을 받고 싶어 하십니다. 그렇게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서 영광을 돌리는 바로 사람의 섬김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명백히 알고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데, 하나님을 모르는 열방의 많은 군왕들과 방백들이 하나님을 의지할 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서, 심지어는 하나님을 알았던 사람들도 “여호와와 맺은 것을 끊자”하면서 독립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독립을 선언하는 배경에는 자신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것이 저변에 깔려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해서 혼자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런데 세상을 다스리고 심판하시는 권한을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그로 하여금 세상 만물을 다스리시고 통치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권력과 지위가 뛰어난 군왕과 방백들을 포함해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에게 급선무는 그분의 아들에게 입 맞추는 것입니다. ‘입맞춤’은 화해와 애정의 표시입니다. 그러한 화해와 애정으로 중보자이신 그리스도께 화평하게 될 때, 그때 사람이 하나님을 향하여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화목을 이루고 화평을 이루게 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받아주시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결론과 적용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데 우리가 하나님께 돌려야할 영광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우리 자신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힘으로 우리가 훌륭하게 살아갈 수 있다’ 혹은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존하지 않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으로 우리 인생을 스스로 꾸려가는 것처럼 생각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추한 것입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을 의지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게끔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기대어 있게끔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께 기대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될 때 하나님을 중심으로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를 갖게 되고, 거기에 합당한 작용들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빛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계획과 하나님이 배열하신 질서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사물들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서 그것들을 제자리에 돌려 놓으셔야 됩니다. 그때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이 있습니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세상에서의 지위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에 인생의 참다운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비결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시 2:10-12)
권세와 주를 의지함의 관계
여기에 ‘그런즉’이라는 말은 바로 앞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에게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모든 권한과 권세를 주셨고, 그런 권세를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들이 아버지의 명을 따라서 그것들을 다스릴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 군왕들아 여호와를 경외하고 세상에 있는 관원들아 하나님을 거스르는 삶을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왕들은 항상 나라에서는 자신이 최고의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최고의 존재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위에 계시기 때문에 자신도 하나님의 질서를 따라서 살아야할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그것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에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을 멸시하고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들을 하찮게 여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자기가 이러한 정치적 권력, 경제적 힘 등이 많아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굴복시키며 살 수 있고 자기사랑의 질서를 펼칠 수 있는 처지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주님을 적게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세상에 있는 많은 자원과 권력이 있는데도 그것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의 깨어진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군왕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세상의 관원들은 주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 재물 등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그것들로 인해서 자신의 인생이 보호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들에게 입 맞추라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혜를 배우는 비결은 아들에게 입 맞추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화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용서를 베푸실 때도 아들 안에서, 창조하실 때도 아들을 통해서, 타락한 인간들을 구원할 때도 아들을 통해서 그들을 용서하실 때도 아들을 통해서, 용서받은 그들을 다시 살리실 때서 아들을 통해서, 그들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은혜를 주실 때도 아들을 통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은 아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십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도 아들이 없이는 지음 바 된 것이 없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아들을 통해서 태어납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한 사람이 하나님과 화해한다”고 할 때도 아들을 통해서 화해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거스르며 불순종하며 죄 가운데 살던 사람들이 하나님과 더불어 화해하고, 하나님을 등지면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돌이켜 서서 하나님을 향하여 살게 될 때도, 결국은 자기 자신으로 말미암아 자기 혼자 스스로 하나님을 향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하여 다시 돌아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 죄를 짓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간 죄인들을 부르시는 방법도 아들을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최고의 공경심의 표현은 복음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의 초청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를 닮아서 성화의 삶을 살아가라는 하나님의 진실한 권고를 아멘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리스도에게 입 맞추는 것입니다. 입맞춤이라고 하는 것은 최고의 사랑과 화해의 표현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아무리 훌륭하게 가르쳐도 징계를 하고난 다음에는 반드시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꼭 끌어않고 입 맞추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자기를 징계했으나 다시 자기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과 화해의 표시입니다. 그리스도께 그러한 사랑과 화해의 입맞춤을 함으로써 하나님을 등졌던 인간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다시 돌아서고, 하나님 뜻대로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과 적용
우리의 모든 삶이 바로 이러한 원리를 따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자기가 깊이 깨뜨려질 때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앞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깨뜨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고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해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날 때도 그리스도께 대한 태도자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제시된 복음의 풍미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의 고난이 감격스럽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내게 주신 은혜와 사랑이 기쁘지 않고, 그리스도를 통해 내게 주어진 놀라운 구속과 은총이 나에게 기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멀리 떠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입 맞추고 돌아서는 삶,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경하는 삶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야기하기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멸망시키실 것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 의지하는 사람은 복이 있는데 왜냐하면 의지하는 것이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의지하는 감정을 내포합니다. 원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없는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통해서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서로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만 완전하시고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사랑을 통해서 의지하고 사랑을 받으면서 자신도 의지하고 그러면서 의존적인 관계가 완성되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화해의 초청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자의 삶이고 인간의 삶입니다.
시편2편 강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