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해질 때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7)
녹취자 : 오희열
아마 본문은 사도행전에서 그려내고 있는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몇 안 되는 구절 중 하나일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는 첫 번째 특징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했다고 했습니다. 음식점과 교회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처음엔 잘 합니다. 그러다가 손님이 많이 오면 음식의 맛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이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어떤 영향력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해졌을까요? 그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해진 실제적인 효과가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라고 했는데, 얼마나 많아졌으면 더 많아지고도 아니고 '더 심히 많아지고' 라고 했을까요? 저는 여기 ‘마데테스’(μαθήτης), '제자'라는 말에 주목을 해봅니다. ‘예루살렘이 있는 제자의 수가 더 많아지고’ 라고 했는데, ‘제자’라고 번역된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크게 세 가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첫 번째는 열두 사도를 가리키고, 두 번째는 예수님을 열심히 따르던, 신자로 말하자면 완전하진 않지만 좀 더 온전해지고 성숙해진 신자를 가리키며, 세 번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모두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여기 7절에 나온 의미에서는 수가 늘어났다고 했으니 열두 제자를 가리킬 수는 없을 것이고, 그럼 일반적인 믿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냐 아니면 예수를 믿고 성숙해진 신자를 가리키는 것이냐 일 텐데, 사실 불특정 다수로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사도행전에서는 믿는 이, 무리들로 표현을 하는 것으로 보아 여기처럼 ‘제자의 수가 많아지고’ 라고 표현한 것은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이런 결론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더니 예루살렘에 진실하게 예수님을 잘 믿는 진실하고 헌신되고 성숙한 신자들이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사람이 모인다고 해서 그 교회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교회의 크기를 보고 놀라는 게 아니라 품질을 보고 놀랍니다.
(예화) 한국에 있는 덴마크 대사관에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가장 맛있는 신고 배를 포장하여 덴마크 왕실을 포함한 정부 주요기관에 자신들이 근무하는 한국의 명품 배라고 소개하며 보냈다고 합니다. 한국의 배는 해외에서 품질이 좋고 맛이 좋기로 유명해서 가격도 비싸게 판매된다고 하는데, 왕실에서는 생전 처음 그 신고 배를 먹어보고는 그 아삭함과 시원함에 놀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년 하반기부터는 덴마크에 이 배를 수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태어나서 이때껏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맛있는 배를 통해서 한국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명품 배 같은 사람이 되라고 예수 믿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얼마 전에 누가 배를 선물했는지, 누가 사왔는지 모르지만 잘라보니 칼이 안 들어갈 정도로 뼈가 배겨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배는 소용이 없습니다. 명품이 되라고 하나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그런 역사를 이룬 것입니다. 제가 오전에 교회가 이렇게 커서 뭐하겠느냐고 했는데, 만약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제자가 된다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겠습니까? 그래도 좀 흩어져야합니다. 오늘도 사람이 앉을 데가 없어서 난리였습니다만, 그런 것만이 최고는 아닌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규모를 보고 놀라지 않습니다. 문제는 품질입니다. 교회의 품질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교회 수양관에서 한 15년째 수련회를 하고 있는데, 언젠가 그 책임자 한 분이 "목사님, 저희는 본 교회와 일정이 겹치지 않고 열린 교회에서 쓰신다면 항상 1순위입니다." 얻어 쓰는 주제에 얼마나 감사합니까? "집사님,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저희가 그렇게 열린 교회에 우선권을 주는 이유는 저희가 여기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수많은 팀들을 받아봤는데 열린 교회처럼 우리 수양관을 아껴 쓰고 성숙하게 관리해주는 팀들이 없었습니다." 제가 그 말을 듣는데 얼마나 기쁜지 몰랐습니다. 만약에, "목사님, 어떻게 교인들 교육을 그따위로 시켰습니까? 변기에는 온갖 더러운 것을 다 버리고, 청소도 안하고 가고 머리카락도 세면대에 잔뜩 끼고, 어쩌면 그렇게 무질서합니까?" 그랬더라면, 얼마나 제 낯이 뜨거웠겠습니까?
제자들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습니다. 사람들의 수로 승부를 한 것이 아니라, 정말 예수 믿는 사람다운 사람들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빛을 발하도록 그렇게 사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세 번째는 큰 말씀의 능력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제사장이 누굽니까? 제사장은 골수 유대인들이고 유대교에 깊이 젖은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도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도리에 복종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크게 나타난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런 교회가 되고 싶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교회가 됐을까요?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두 번의 위기를 만납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세 번의 위기인데 첫 번째는 4장에 나온 핍박의 사건인데, 이 일은 위기라고 할 것도 없는 것이, 핍박으로 오히려 더 기뻐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5장에 나타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이었습니다. 재물, 헌금에 대한 부정직의 문제였습니다. 이 부부가 뭔가 감동을 받고 전 재산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그것을 떼어먹은 것입니다. 헌금 약속하고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이것도 물론 죄가 되겠지만 오늘날로 생각하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소한 사건처럼 보이는 일로 기차처럼 질주하던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멈춰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놀라운 기사가 나타납니다. 그 부부가 죽습니다. 그리고 정리되고 나니까 다시 말씀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는 불의에 대한 심판으로 정리하고 나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6장에서는 밖에서 온 시험이 아니라 안에서 온 시험이었습니다. 과부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시대에는 남자들의 평균 연령이 25세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여자들이 남자보다 더 오래 살았습니다. 지금 현재도 여자의 수명이 5년에서 7년 정도 더 길다고 나옵니다. 결혼한 남자가 결혼하지 않은 남자보다 수명이 길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결혼한 남자들 중에서는 죽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고도 합니다. 아무튼 그렇게 과부들이 많았고, 전쟁으로 남편을 잃기도 하고, 가난했기 때문에 사회복지도 없던 당시에 교회에서 그들을 돕는 것은 커다란 일이었습니다. 이 과부들이 두 부류가 있었는데 헬라파 과부들과 히브리파 과부들이 있었습니다. 출생이 아니라 사용 언어로 구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서 빠진 것 입니다. 일부러 그랬다기보다는 사람이 하다 보니 실수로 그런 일이 생겼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들의 원망이 생기고 다시 이 말씀의 역사가 다시 멈춰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심판을 통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헌금을 떼어 먹은 것은 죄였지만 구제를 형평하게 하는 것은 죄의 문제가 아니라 지혜와 상식에 속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혜로 이 문제를 풀게 해 주십니다.
열두 사도들이 모여서 의논을 했을 것이고, 제자들을 불렀다고 했는데 이 제자들은 신실하게 잘 믿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불러 모울 수는 없었을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지혜롭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도들은 지혜롭게 한다고 했지만 일이 이렇게 어렵게 되었고 원망받게 되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했으니 우리는 말씀사역과 기도하는 일에 힘쓸테니 이 일은 너희들이 맡도록 하라고 합니다. 이 때 예루살렘교회에 선택이 있게 됩니다. 목회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게 해 준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것이 필요합니다. 목회자가 무슨 욕심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뭘 바라겠습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말씀사역을 하는 것인데 말씀사역을 하려면, 석탄을 캐다가 불을 떼려면 누군가 내려가 석탄을 캐 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열심히 목회자들은 공부하고, 무엇보다 기도 많이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니까 세상을 알아야만 성도들이 세상에서 무슨 물을 먹고 온지를 알 수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역학조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사람에게 병이 생기면 그 사람이 어디에서 있다가 뭘 먹고 왔는지 모든 것을 조사를 해서 그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뿌리는 좋은 것은 하나님 안에 있고 나쁜 뿌리는 세상에 있고, 그 죄인의 본성 속에 있는 것입니다. 약에 대해서 연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병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약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공부하면서 힘닿는 데까지라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사역을 하고, 잘 준비해서 잘 전하고 그것으로 성도들이 변화되게 하는 것, 이것이 말씀사역에 집중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해야할 일이고 이 모든 일들이 목회자의 손이나 발끝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체의 건강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됩니다. 뭐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이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도록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후에 일의 질서를 세웠습니다. 최초로 집사 일곱 명을 선택합니다. 그 조건이 세 가지였습니다. 성령 충만 할 것, 지혜 충만 할 것,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것,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목회자를 대신해서 섬기는 사람으로 어떤 사람을 선택했는가를 보여주지만, 오늘날 신약 교회에서 이렇게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첫 번째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은 두 가지 이유인데, 첫째는 성령이 충만해야지만 신령한 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의 영적인 의미가 무엇인가? 교회는 어떤 가치를 위해서 헌신해야 하나? 궁극적으로 교회의 부흥을 통해서 어떤 신령한 일들이 일어나야 되는가를 성령 충만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이 성령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은 은혜의 결과가 사랑이기 때문에 교회의 일을 섬길 때 성령 충만한 사랑의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뱃속으로 난 아이와도 생각이 다르고, 한 이불 덮고 자는 남편과 아내의 견해가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세뇌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완벽하게 똑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유대인의 탈무드에서는 만장일치는 무효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를 알아서 사랑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서 일꾼의 자격을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성령 충만한 사랑의 사람을 세우도록 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신령한 지혜와 자연적인 지혜가 있는데, 신령한 지혜는 하늘나라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것이라면, 자연적인 지혜는 자연적인 질서와 일의 순서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일을 시켜보면 일머리를 아는 사람이 있고 사람은 순수한데 일머리를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머리를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일하면 죽도록 고생하다가 마지막에는 자기가 직접 다 해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 지혜가 있는 사람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가 직면했던 이 위기를 하나님은 슬기로 극복하게 하기 위해서 사도들을 통해서 교회 일꾼의 자격을 지혜로운 사람으로 했던 것입니다.
세 번째는 칭찬받는 사람을 세운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인격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은 달라도 대화를 나누고 난 후, '저런 나쁜 인간..' 이라는 인상을 남기고 돌아와서는 안 됩니다. 비록 생각은 달라도 대화를 나누고 나서 '사람은 다르니까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짧았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 반성하게 하는 인격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잠시 전까지 하나님 찬송하고 십자가 사랑을 이야기했던 사람들이, 얼굴을 붉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싸운다면 그게 교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일을 잘 하는 것이 수술을 하는 것이라면, 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어떤 의사가 수술을 마치고 기다린 가족들에게 생애 최고의 수술이었고 완벽한 수술을 했노라고 하면서 환자는 죽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닌 것입니다. 교회는 일을 잘 해야 하는데 그 일을 하는 목적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주신 사랑과 성결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꾼들을 세웠더니, 여기에 보면 간절히 기도했다거나 금식했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사도들은 의견을 제시하고 성숙한 성도들이 따르고 일머리로 정리를 하고 났더니 사람들이 뽑혀졌고 사도들이 그들에게 간절히 기도하고 안수하고 섬기도록 했더니 멈췄던 말씀의 능력이 갑자기 나타나고 이전에 나타나지 않았던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지고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제사장의 무리들도 이 도에 복종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이 금년이 이런 아름다운 교회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스러운 열린 교회가 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