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맛을 아는 신앙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규례는 확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시 19:9~10)
녹취자: 윤부진
우리의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진공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불완전한 세상에서 불완전한 인간으로 끊임없이 시련을 당하면서 우리들이 사역을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도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하는 동안에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갑니다. 더군다나 성경은 이일이 그냥 단순한 일이 아니라 영적인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및 이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항하는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런 것들을 하나님 앞에 섬기면서도 그 원래의 그 일을 하게 했던 순수한 동기를 계속 간직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 뭐냐 하면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니깐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금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변하지 않는 특성 그리고 이지구상에 유한하게 존재한다는 특성 때문에 사람들이 그 금을 중요한 재산이라고 여겼고 또 그것을 가진 사람은 가지지 않는 못한 사람들을 지배 할 수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도 1974년도까지만 해도 찍어내는 돈 만큼 정확한 금을 중앙은행에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대환지폐라고 합니다. 1974년도에 그걸 포기하면서 표시된 금액만으로 거래를 하고 금과는 상관이 없는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국가에 부를 재는데 있어서도 금의 보유량이 그 모든 특정을 좌우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금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 그 말씀의 은혜를 받는 것이라고 오늘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은 진공에서 산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악인들과 부딪기고 고통을 받으며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입니다. 비록 그 앞 절에 보면 자연의 많은 이치들을 터득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영광을 보았지만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살면서 그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는 생활이 없었다면 그 자연세계에 대한 위대한 통찰도 그를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도록 만들어주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에 오늘 이 시인이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한 이 고백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삶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 우주의 자연의 위치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과 위대함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본다면 우리도 역시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또 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속에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게 느껴지는 은혜와 행복 속에서 우리가 매일 매일 사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한사람이 일을 하면 일을 할뿐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면 삶 전체가 하나님을 위한 섬김이 되는 것입니다. 한사람이 일을 하면 일할 뿐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의 모든 삶이 주님께 바쳐지고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도구가 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가 교회에서 일하고 직분을 갖게 되면 자신은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오히려 멀어지는 사람을 많이 봅니다. 목사나 장로가 은혜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오히려 정말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그의 인생터널 끝에서 교회 문을 두드리던 이름 모를 신자들이 주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고 변화되고 새로운 삶을 살고 하는 것들을 정말 많이 보지 않습니까? 그런 어린아이 같은 신앙을 간직하면서 사는 그 생활이 얼마나 복된 생활인가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지난 한 주간 동안 기도원에 있으면서 사경회를 준비했는데 며칠 기도원에 있으니깐 거울을 보니깐 얼굴까지 피워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이 부대끼고 행복하지 않고 그리고 끊임없이 일 속에서 우리자신을 소진해가는 그런 삶이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무엇보다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말씀을 깊이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주님 앞에서 사는 그런 생활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을 빌어마지 않습니다. 사경회에도 이런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