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주는 진리
녹취자:이경순
저는 닭발요리를 그렇게 썩 좋아하지 않아요.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닭발요리를 그렇게 좋아하더라고요. 돌아가신 저희아버님도 닭발 요리를 좋아하셨어요. 그분의 이론에 의하면 모든 짐승의 영양분은 다리에 모두 모이기 때문에 개도 사실은 통째로 개를 삶는 것보다 개발만 모아서 삶으면 그 개의 더 진한 개소주 국물이 나온다고 그렇게 믿으셨어요. 그러고 가만히 보니까 짐승들의 발이 모든 요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요 곰발바닥요리부터 시작해서 여러분들이 즐겨먹는 돼지족발 족도발이고 발도 족인데 왜 둘 다 같이 붙어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다음에 몸이 좀 허하고 힘들 때 우족을 삶아먹으면 참 좋죠. 그뿐만 아니라 해파리를 먹었는데 이상하게 맛있다 해파리의 발만 먹은 겁니다. 이렇게 발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지금도 여러분들은 도대체 이 설교의 서두가 본문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궁금할거예요
서울에 닭발요리집 잘하는 집이 있는데 한번 가보고 싶어요. 그런데 그 집은 여섯시부터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야 된답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저녁시간이 시작 되기 전에 이미 만석이랍니다. 그래서 30미터씩 40미터씩 줄을 서서 그 닭발요리를 먹기를 기다리는데 거기는 주문도 없고 무조건 닭발통일이고 매운맛이냐 순한맛이냐만 결정을 하면 된데요. 그런데 거기에 어떤 사람이 그 기술을 전수받으려고 하는데 그거 가르쳐 주겠습니까? 안 가르쳐주죠, 그래서 이 남자가 손님으로 맨 처음 들어가서 닭발요리를 시켜서 매일 가서 닭발요리를 먹다가 자기도 이것 좀 배웠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쳐다도 안 보더래요. 그래서 그다음 주일날부터 무조건 아침 문 열기 전에 일찍 와서 사장을 비롯해서 주방에 일하는 사람들 출근하는 시간에 출근해서 무조건 마당부터 쓸기 시작했데요. 그러니까 처음엔 귀찮아하더니 그 일을 한 달 이상 했더니 그담엔 들어와서 설거지를 하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두 달째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자기도 언제나 이것을 가르쳐줄지 모른대요. 그러나 계속 두 달 동안에 올라가서 이제 주방에 와서 설거지를 하던 사람이 이제는 닭발을 묻히는 소스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다듬는데 까지 승급을 했답니다. 그러면서 그거 하나 배우겠다는 일념에 구박을 받으면서 그것을 하는 것을 이렇게 보면서 텔레비젼이니까 조금 과장이 있겠지만 그것을 이렇게 보면서 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인데 진리나 혹은 하나님의 교회를 목회하는 일에 있어서 저런 정도의 열심을 품고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했을까?
엊그제 우리교회에 있었던 청년하나가 한라봉 한상자하고 천혜향을 들고 결혼을 했노라고 인사를 왔어요. 장승엽이라 는 형제예요, 기특하잖아요. 그래서 너 열린교회 떠나서 사역을 한지 얼마나 되었느냐 물었더니 1년 끝나고 이제 2년 들어 갑니다. 그친구가 총신대 수석으로 입학한 친구입니다. 그래서 내가 사역을 잘하냐 하니까 그럭저럭 잘하고 있습니다. 네가 무슨 사역을 하고 있니? 유초등부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어요. 네가 유초등부 사역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유초등부사역에 네가 보기에 정말 배우고 싶을 정도로 존경스럽게 잘하고 있는 사역자가 누구냐 하고 물어봤더니 생각해 본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너는 네 얘기를 잘 들어라 너는 두 사람중의 한 부류니까 어디에 속하는지 생각해봐라 누구도 가 본적길이 없는 유초등부 사역에 새 지평을 열고 있는 선구자이던지 너무 탁월해서 스승이 필요 없는 사람이던지 아니면 그 사람들이 하는데로 걸어가기 때문에 특별히 배우고 싶은 욕구가 없던지 둘 중에 하나다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산 사람이어도 좋고 죽은 사람이어도 좋고 한국 사람이어도 좋고 미국사람이라도 상관이 없고 아무라도 상관없다 남자라도 좋고 여자라도 좋고 현직에 있는 사람이라도 좋고 은퇴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그가 여기에 있었더라면 정말 훌륭하게 사역을 했을 것이다 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한번 찾아봐라 그리고 현장을 직접 가서 봐라 그리고 먼저 잘못되고 너와 견해가 다른 것부터 보지 말고 네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 너는 못하는 부분 다시 말해서 네가 배울만한것이 무엇인지를 겸손하게 먼저 찾아보도록 해라 그리고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해라.
어느 교회에서 유초등부 사역이 활짝 꽃이 피어서 내가 그 친구한테 한 이야기를 지금 여러분들한테 다시 하는 거예요. 정말 많이 모아, 그런데 전도 많이 한 초등학생들에게 노트북을 상으로 준대요. 아마 유초등부 애들중 에서 자기 개인 노트북을 가지고 있는 애들이 그렇게 많지 않을 텐데 그러니까 얘네들이 눈에 불을 켜고 전도를 하는 거야 이건 세속적인것이겠죠 그런데 어쨌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모았어요. 그러면 너는 그것을 보고 와서 어떻게 아이들을 모으는지를 잘 본 다음에 너는 노트북을 상품으로 걸지 말고 설교를 해서 전도를 잘하는 어린이들에게 하늘나라에서 주시는 그 상급은 이 세상의 노트북하고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주어서 그렇게 전도를 하게하면 저쪽교회의 가장 세속적인 것을 너는 가장 성경적인 방식으로 실행하는 것이 되지 않느냐.
오늘 여기에 나오는 잠언8장은 유명한 지혜의 장입니다. ‘누구든지 네게 들으며 내 문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까? 무엇인가 청탁을 하기 위해서 남의 집에 가서 신세를 지기 위해서 하소연하는 탄원자의 모습 이예요. 적당한 그림이 될지는 모르지만 ‘내게 들으며 이것은 제자의 모습이겠지요. 그러나 그다음에 나오는 문 옆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며 등등이 나오잖아요. 그러면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돈을 꾸러간다든지 추천서를 받으러 간다든지 아니면 요즘은 많이 없어졌지만 옛날엔 취직하려면 보증인이 필요했잖아요. 웬만해서 사람들이 보증을 서줍니까 보증을 얻기 위해서 간다든지 하면은 얼마나 간절하고 절실하겠어요. 그 사람 한마다 말에 모든 게 달려있는데, 그런 마음으로 가서 그 집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러면 무엇에 대해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까? 그것이 지혜예요 더 쉽게 이야기 하면 진리예요 진리. 지혜는 진리의 빛을 받은 결과예요, 진리의 빛이 그 사람에게 비추어서 올바른 판단을 갖게되는것이 바로 지혜예요. 그래서 이 지혜는 우리에게 있어서 진리의 효과로서 이 진리가 바로 이 사람에게 있어서 간절한 만나고, 찾고, 그리고 알고 싶어 하는 아주 중요한 대상이 되었더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것이예요.
바쁜 와중에도 책을 쓰는데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지금 현재는 350페이지 정도 쓴거 같은데요, 쓰면서 참 많이 깨닫게 되는 게, 평소에 알고 있는거지만 인간의 모든 비극은 결국은 스스로 진리를 버린데 있는 거예요 그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거지요.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유의지론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하나님의 진리는 모든 곳에 명백하게 있지는 않지만 어디에나 있다. 어떤 곳에는 명백하게 있고 또 다른 곳에서는 명백하지 않은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성경계시의 도움 없이 진리를 찾는 자연적인 사람들의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못 박았고 그래서 그의 성경관을 박윤숙 목사님도 그렇게 극찬을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에 관해서 그는 수없이 많은 말을 남겼는데 그 중에 크게 감동적인 구절이 몇 구절 생각이 나는데 이런 구절들이예요 그대로 외울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마는 “내가 너무 늦게야 당신을 알았나이다. 사랑스러운 진리여 영원이여, 아름다움이여”고백록 속에서 토하고 있는 감탄이지요. 이런 말을 또 남겼습니다. “인간은 진리의 빛을 받지 않는다면 영혼과 육체중 육체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래서 그 진리의 빛을 받으며 사는 것만이 자기라는 인간을 공정하게 사랑하는 유일한 길”이다 라고 말입니다 더 유명한 말은 이런 말이죠. ‘까리따스 로비 베르닷 뎀’ 사랑은 진리를 이해합니다. 혹은 사랑은 진리를 붙듭니다. 다른 곳에서도 이런 말을 남깁니다. ‘인간이 그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붙들 때에 그때에 진리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때이다’ 라고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사람마다 재능이 다르고 어떤 사람들은 아주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학문의 능력을 사람들은 예술의 재능을 어떤 사람은 논리의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번에 한권의 책을 쓰면서 다시 한 번 뼈저리게 확신하게 된 것은 교회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 세상에서 방황하는 모든 인간을 거느리는 유일한 길이고 교회에서는 언제든지 사람들이 오던지 이 세상에서 늘 듣던 이야기가 반복되는 친근감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는 전혀 들을 수 없었던 그런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곳이 교회이여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흩어진 삶의 실존은 바로 그 진리를 드러내 보여주는 삶이되어야 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진리의 아름다움들을 매일 느끼면서 그러면서 그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와 함께 살아가는 그 곳에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느 한순간 주어지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오늘 성경에 보면 간절히 찾는 자가 그 진리를 만나고 지혜를 대면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행복은 진리를 알고 사랑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 이외의 다른 곳에서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영혼이 병들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런 진리에 대한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있고 무엇보다도 그 진리에 자기를 부합하는 삶을 사는 그것이 자신에게 진정한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되는 그것을 매일매일 체험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소개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철학은 단지 우리에게 진리가 이런 것이라고 우리에게 자기의 생각을 가르쳐줄 뿐 이지만 참된 진리는 기독교 안에서 발견되는데 이 진리의 발견이 있는 그곳에는 언제나 생명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알기만 하고 진리가 나를 붙들어주지 못하는 그런류의 진리에 대한 앎은 진정한 진리에 대한 앎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단어는 노예를 해당시켜주는데 잘 사용되는 단어였습니다. 노예에서 해당된다 라고 하는 것은 굉장한 권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지요.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이 진리에게는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삶의 한계 상황 속에서도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생애벼랑 끝에 서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길을 돌이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많은 자신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는 그 한계와 그 극한 상황들을 이겨내게 만드는 힘이 바로 생명의 힘이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영적인 은혜의 힘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느 때보다도 바쁘고 고단한 이때에 진리의 말씀으로 큰 위로와 힘을 얻길 바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열렬히 탐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해요. 그런 간절한 탐구, 알고 싶어 하는 절실한 마음,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