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2-3)
녹취자: 허혜숙
여러 해 전에 제가 영국에 갔을 때 250년 가까이 된 포도원에 간 적이 있습니다. 왕국은 아니지만 왕실에 속한 어떤 건물 옆에 있는 포도 정원이었습니다. 크기가 200평은 약간 안 되는 것 같고 약 150평 되는 기다란 유리 온실이었는데 놀랍게도 그 큰 포도나무가 한 그루의 나무였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계속 가지를 쳐서 (거대한 포도덩굴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설명에 의하면 그 포도나무가 처음으로 묘목이 심겨진 것이 250년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포도나무가 그렇게 오래 사는 것인 줄 처음 알았습니다. 길이가 100m 정도 될까요? 포도나무 옆에는 바로 템즈강이 붙어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에 영국에 엄청난 가뭄이 들어서 길거리에 서 있던 큰 나무들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방대원들이 물을 퍼서 그 나무에 들이부으면서 나무를 살릴 정도로 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포도나무는 예년과 다름없이 아주 청청하게 잎이 피고 잘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포도나무가 워낙 유서가 깊으니까 사람들이 그 포도나무를 많이 염려했는데 아무 염려 없이 잘 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식물학자들이 궁금했습니다. 도대체 그 비밀이 뭘까? 저 정도의 나무라면 엄청난 양의 물을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조사를 해 나가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긴 세월동안 포도나무는 생존하기 위해서 계속 뿌리를 뻗어나갔고 그 뿌리가 템즈강까지 다다랐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가물어도 그 포도나무는 뿌리가 템즈강까지 닿아서 거기에서 물을 빨아들여 가뭄에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곤고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아마 예수 믿고 은혜를 받았던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말씀입니다. 곤고하다고 해서 큰 환란이 닥쳐서 자살하고 싶다고 할 정도의 상황도 곤고하다고 하겠지만 그것보다도 마음이 매우 건조해지고 내 삶의 윤기가 사라지는 것 같을 때, 기계가 돌아가는데 윤활유가 부족해서 힘들게 돌아가는 모습처럼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를 우리는 곤고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럴 때에 자기를 힘들게 하는 것이 뭔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찾아봅니다. 그러면 생각되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찾아보면 인간관계 때문에, 우리 엄마 때문에, 자식이 속을 썩여서, 사역이 힘들어서 등등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경험을 우리가 하게 될 때 문제를 우리가 외부적인 환경에서 찾지만 가만히 돌아보면 지금보다 더 곤고할 때도 많았습니다. 진짜로 어려운 일이 닥쳐서 숨도 쉴 수 없을 것 같았던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겼습니다. 차이가 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가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에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면서 찬양을 하고 설교를 듣고 감화를 받고 은혜를 받는 것은 좋은데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이 주일이면 늘 반복했던 일이 설교를 들은 것을 묵상하거나 혹은 그 설교를 나누거나 신앙서적을 읽거나 성경을 읽거나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 속에서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그 당시에는 성경을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에 오면 성경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예배시간에 성경을 석 장, 넉 장씩 설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있어서는 설교를 들은 내용을 기억하고 그것을 반복하는 일들은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었습니다. 서로 함께 모여서 신앙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우리보다도 훨씬 중요한 은혜의 통로였습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 사라지기 쉬운 것인가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수시로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에 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속에 살아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악인과 하나님의 사람들을 대조합니다. 악인과 하나님의 사람들은 삶의 양식이 다릅니다. 그 다른 양식에 뿌리를 계속 더듬어 밑으로 내려가면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의 뿌리를 두고 그 말씀이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도록 거기에서 나오는 자양분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하면서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입니다. 당신의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파를 헤쳐 나가며 살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이것이 없으면 금방 쓰러집니다. 여러분, 생일축하 한다고 저녁 때 받은 꽃다발을 한 번 보십시오. 활짝 피어서 얼마나 예쁩니까? 그것을 받아가지고 그냥 책상에 올려놓고 피곤해서 잠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쓰레기통에 갖다 당장 버려야 될 정도로 금방 시들어버립니다. 그런데 그 꽃을 깨끗한 꽃병에 꽂아 놓아 보십시오. 아침이면 싱싱하게 살아있습니다. 국화 꽃 같은 경우에는 깨끗한 물로 자주 갈아주면 그 속에서 수경재배가 되어 아예 뿌리가 나옵니다. 물이 그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진리에 뿌리를 내림으로써 영원히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것을 우리 속에서 깊이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의 기반이 하나님과 은혜의 세계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 뿌리가 되어야 할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우리가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믿음을 통하여 그것을 우리가 경험함으로써 그 실체를 우리의 삶에 기초를 삼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방패이시기는 하지만 하늘에서 사각 방패가 내려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이시기는 하지만 빛나는 면류관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지만 주님은 어떤 상황에도 보좌를 타고 눈에 보이도록 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분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의 눈으로 그 분을 뵈옵는 것입니다. 믿음이 어디에서 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지성이 접촉함으로써 거기에서 믿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롬10:17)’,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성경을 들고 다니면서 읽을 처지가 아니니까 사도들이 설교하는 것이 중요한 말씀의 통로였습니다. 또 회당에서 성경을 읽는 것, 그러니까 ‘들음’이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말로 바꾸면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때’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매일 아침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기도할 뿐만 아니라 시간을 내어서 우리가 성경을 깊이 묵상하면서 그 말씀 속에 자기의 마음을 오이지를 담그듯이 풍덩 담그는 것입니다. 시퍼렇게 살아있는 배추나 오이들이 소금으로 절이면 풍덩 담가지면서 아주 부드럽게 되듯이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그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고르게 합니다.
세례요한에 대한 예언이 이사야 40장에도 나오고 말라기에도 나오는데 ‘외치는 자의 소리’로 나옵니다. 배경이 있는데 고대 근동에서는 왕이 지나가기 전에 외치는 자가 지나갑니다. ‘왕이 모년 모월 모시에 이곳을 지나가신다.’ 이렇게 외치면 곡괭이 부대가 등장을 해서 길을 높은 곳은 낮게, 낮은 곳은 높게 닦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고르게 합니다. 말씀을 받으면 어이없게 높아서 교만했던 마음을 하나님이 낮추시고 근거도 없이 주저앉아 찌그러져서 낙심했던 마음은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그래서 마음을 고르게 합니다. 너무 낙관적이어서 교만한 사람은 적절히 낮추어서 자기의 위치를 깨닫게 만들어주고 비관적으로 사로잡혀서 살아갈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격려를 해 주십니다. 그래서 마음을 고르게 해 주십니다. 고르게 된 길에 왕의 마차가 지나가듯이 고르게 된 그 마음에 주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당신의 영광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름은 아무래도 사역도 많아서 기도에 집중하고 말씀에 집중하기가 제일 어려운 때입니다. 그런데 어제 밤에 교회 나오면서 보니까 바람이 열풍의 기운이 꺾였습니다. 계절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입추가 지났습니다. 마음에 깊은 다짐을 하고 이번 가을에는 주님의 말씀과 함께 나의 영혼이 부흥해야 하는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말씀을 깊이 접하며 그 속에서 은혜를 받고 뿌리를 내리는 사람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