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느니라(히 4:12-13)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님의 일을 위해서 크게 쓰시고 사용하시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참 집요하게 고치시려고 하는 것들을 여러분들은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내가 열심을 내고 애를 써도 내가 고쳐지기 전까지는 어느 한계까지는 축복이 있지만 그이상의 놀라운 축복은 마치 연기되는 것처럼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이번 사경회 때 생각한 배역을 고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불순종하고 또 우리의 영혼에 병적인 존재들이 깊이 들어와 있어서 우리의 영혼에 질병이 생기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대로 살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 우리 삶 중심부가 깊이 병들고 잘못되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토해져 나오는 모든 삶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망가진 것들 투성이에요. 그런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고치시죠. 그리고 이러한 고치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은 때론 우리에게 고통스럽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다루시려고 한때 그것이 감사하지 않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굉장히 많은 부분이 내가 하나님 앞에 바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사랑으로 가득해 질 때에는 얼마든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역사하시는 것들을 감사하게 받아들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멀어지고 속사람이 병들게 되면 그런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조차도 견딜 수 없어하는 그런 마음으로 바뀌게 된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우리의 패역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못 살아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질병과 같은 영혼의 문제를 고치시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는 것이 우리의 영적인 생활을 계속하는데 매우 커다란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오늘 히브리서 4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묘사는 아주 그림과 같기 때문에 강렬하기 때문에 말씀의 능력을 묘사할 때에 우리가 많이 인용하고 생각하는 성경구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어떤 역사를 일으키느냐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 속에 있는 우리의 어떤 깊은 영혼의 질병 그리고 인생의 불행의 원인이 되고 있는 우리의 영혼의 깊은 암적인 존재들을 고치려고 하실 때에는 먼저 그것이 드려 나는 일이 먼다. 있다 우리는 말이죠. 통증이 없는 한 우리는 우리 몸에 붙어 있는 종기나 우리 몸속에 자라고 있는 암 덩어리나 이런 것들을 거의 불편하다고생각하지 않습니다. 통증을 느꼈을 때에는 대부분 너무 시기가 늦은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는 그렇게 우리 속이 병들어가도 잘 인식하지 못한단 말이죠. 그래서 깊은 회개가 필요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기 죄에 대해서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에 대해서 깊이 인식하고 예민하게 인식하는 사람일수록 회계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비교적 적은 사람들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고치시기 전에 먼저 우리의 문제를 우리 안에 넣어 두시고 고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바꾸러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만 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우리 안에 그런 문제가 있어서 그것이 궁극적으로 나의 신앙생활과 영적인 생활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하나님의 커다란 축복을 가로막고 내 인생에게 한없는 좌절을 안겨 주는 것들을 직접 눈으로 보개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무엇이냐하며는 하나님의 말씀이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으로는 그것 때문에 자신이 질식되어서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고 거기에 성령이 함께 해서 우리 속에 깊이 응어리져 있고 뭉쳐져 있는 우리의 생각과 사고를 인제 밝히 드러내서 그것이 밖으로 나타나게 만들어준다. 그것을 통해 우리자신이 바깥에 얼마나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내 안에 있는 하나님과 잘못된 관계 패역한 죄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그릇된 생각 이런 것들과 연결이 되어있지 보여 주시는 거여 거기서부터 치료가 시작이 된다. 나는 이렇게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저희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시골에 땅이 좀 있었습니다. 산이 좀 이으니까 그때는 워낙 가난한 시절이니까 지금 같으면 돈을 주고 관리를 잘 안 해 주겠지만 밤이 많이 열리는 나무가 여러 그루 있고 감이 실하게 열리는 나무가 여러 그루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거기에 있는 사람에게 부탁을 하면 자기네 들이 뭐 돌봐줄게 있습니까. 큰나무가 뭐 누가 베가지 는 않냐 지키는 거죠 가을이 되면 밤나무에는 밤이 열리고 감나무에는 감이 주렁주렁 열립니다. 그러면 는 장대를 떨어서 다 따죠. 따고 자기네 들이 대부분 먹고 인제 주인이니까 섭섭하니까 밤 큰 것 한 자루 어른 허리쯤 올라오는 두어 말 세말 들어갈 밤 한 자루하고 감 한 자루하고 딱 두 자루를 가져옵니다. 그때는 보통 성의가 아니죠. 자가용이 있습니까? 뭐 있습니까? 달구지를 타고 마석 역에 와서 그것을 기차를 타고 와서 버스를 타고 와서 골목을 매고 오니 지금 같아서는 안 털어먹고 말지 그것 배달해주겠어요. 그대 밤은 어떻게 먹는지 다 아는데 감은 지금은 나무에서 따서 깎아서 먹으면 너무 맛있잖아요. 그죠 얼마나 달아요. 그때는 그런 감이 없었습니다. 나무에서 따면 아주 떨어서 먹을 수가 없어요. 그것을 먹는 방법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침시라 하여서 소금물에 담가둡니다. 거기에서 나오는 탄 인산이 쭉 빠지면서 떨뿐 맛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조금 지리죠. 또 하나는 그것을 가져다 쪄먹기도 해요. 솥에다 넣고 빵처럼 쪄서 껍질을 벗겨먹으면 먹을 만하지 않아요. 그렇게 맛이 없어요. 그래도 하여튼 그렇게 먹었습니다. 마지막 방법이 있는데 커다란 독에다가 하나씩 하나씩 정성껏 놔둡니다. 뚜껑을 덮어 놓습니다. 그러니 그때 30년도 넘는 이야기니까 얼마나 춥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추었는지 몰라요. 겨울에 독을 갖다 열어보면 꽝꽝 얼어붙습니다. 감이 얼었다가 녹았다가 하면서 그 안에서 밤에 텔레비전이 있었어요. 뭐가 있었어요. 9시나 10시쯤 됐을까 애야 거기 가서 감 좀 가져와라 그러면 감을 꺼냅니다. 감이 돌덩이입니다. 얼음이 다는 말이죠. 그것을 어떻게 먹는단 말이죠. 참 신기하죠. 통풍을 해서 차가운 물을 틉니다. 양푼에다가 그리고 먹고 싶은 감개수만큼 물에다 집어 너요 안방으로 가져옵니다. 울묵에 내다놓고 바느질을 하신다던 지 라디오를 듣는다던지 한 삼십분 지납니다. 그러면 조금 있다가 그것을 가져오잖아요. 아주 재미있는 일이 생깁니다. 감을 이렇게 꺼내면 감이 얼음으로 코딩되어 있습니다. 두껍게. 무슨 소리냐 하면 감을 차가운 물에 집어넣더니 감속에 배어있던 얼음이 밖아 으로 다 나옵니다. 그래가지고 이게 두꺼운 얼음 코팅이 됩니다. 똑똑 치면 은 달걀껍질 까지듯이 허르르 까집니다. 껍데기를 베끼면 은 거기서 떫지도 않고 얼음이 살짝 배어있는 말랑말랑한 감이 나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 놓냐 하면 오늘 문득 그런 생각했어요. 이 본문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우리 속에 있는 문제를 고치시려고 하실 때 그때에서 먼저 하나님이 우리 속에 있는 것들이 밖으로 다나오게 만들어주십니다. 속에 넣고 고치시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실 때도 우리 마음속에 묻어둔 죄를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죄 때문에 고통 하는 한 영혼이 그 죄를 밖으로 토설하고 토설하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냐하며 이 마음속에 있는 죄가 필연적으로 자신이 밖으로 들어나는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서 고통과 아픔을 가져온 후에 고통이 자신 속에 있었던 죄와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그것을 진실로 토설할 때 그때 하나님이 고치십니다. 난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여러분 막 추운데 있다가 온몸이 입 입이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추워서 그렇게 된 적이 있죠. 아주 뜨거운 방에 들어갔을 때 더 추워지는 느낌 못 받았어요. 못받았는 모양이네 예를 들 자면은 아주 추운데 군인들이 팬티만 입고 구보를 하고 그러다가 펄펄 끊는 목욕탕에 쑥 들어갔을 때 이상하게 물속에서 차가운데 에 나왔을 때 소름이 돋는 것처럼 아주 뜨거운 탕속에서 온 몸이 소름이 돋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을 거예요. 잘 모르겠으면 오늘밤 한번 해보세요. 달밤에 체조가 되겠지만 한번 해보세요. 그게 뭐냐 하면 몸 안에 있는 환기가 밖아 으로 빠져나오고 나서 우리 몸이 더워지기 시작하는 거죠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고치시기 전에 우리 안에 있는 문제들을 드러내십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으로 이일을 하시냐하면 오늘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이 이일을 하시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 어떤 말씀을 들어야 하실 건가 이것은 하나님이 결정해요. 왜 그러냐 하면 언제 하나님이 자기가 도저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그런 문제들을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실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어요. 소망은 오직하나에요. 뭐냐 하면 자기가 자기 속에 있는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정직한 말씀 앞에서 드러나 질 때 드러날 때 그때 비로소 자기가 정직하게 문제를 인식하게 되고 거기서 하나님이 우리를 고치시는 일들이 시작되게 된다는 거죠 그러기 때문에 오늘 성경에서 언급한 말씀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고 그 말씀 앞에서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받아드릴려고 하기만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모든 것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뜻 감춰진 생각 심지어는 잠재의식에 있어서 자기 자신조차 깜짝 놀랄만한 하나님을 향한 잘못된 태도 그리고 왜곡된 자신의 생각 진리에 대한 그릇된 이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오해 이런 것들은 모두 들어내 보여주시는 거예요. 그러기 때문에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중요한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정직해지는 것입니다. 그 것 없이는 누구도 진실한 신앙의 생활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다 옳다고 하여도 성경이 나를 옳다고 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나를 그릇되다고 하여도 내가 내 신앙의 근거를 성경 위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 나는 안전하다라고 하는 신념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그런 신념은 공급되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입증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진리 위에 서있을 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요. 그리고 우리가 진리위에 서있지 않으면 금방은 살아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곧 더 깊은 죽음으로 들어가고 있는 자신의 영혼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가 있는 그곳 거기서 진리에 대해 옳다르게 반응하는 신앙이 있는 그곳 거기에는 예외 없이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일하신다는 거죠 하나님의 말씀이 관절과 혼과 골수를 찔려 쪼개어서 만물을 벌어 벗은 것처럼 들어나게해주시는 이런 놀라운 역사도 말씀이가지고 있는 은혜로운 능력에 의해서 이 같은 일들이 가능해 지는 겁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들으면서도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이러한 자기가 바뀌고 변화 되는 축복을 경험하지 못하는 가장 커다란 것은 자신의 인생을 불행하게 하고 자신의 신앙을 왜곡되게 하는 그 불행과 고통의 궁극적인 원인을 자신 속에 넣어둔체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고침을 받길 원하는 거여 그것은 의사보고 배 가르지 말고 수술하라는 이야기와 똑같은 거고 가슴을 파 해치지 말고 심장만 꺼내라는 거와 똑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역사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되어진 것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결단내는 그런 많은 문제들을 고치실 때는 반듯이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신다는 거에요. 그니까 말씀을 읽고 전하면서 느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게 매번 달라요. 성경을 읽으면서 어떨 때는 성경에다 메모를 해놓거든요. 어떨 때는 깜짝 놀라요. 이게 오 육 년 전에 성경을 볼 때 보였던 진리가 그 후에는 더 풍성하게 보여야하는데 오히려 더 안보리는 것이 확인될 때가 있어요. 그때 굉장히 좌절스럽죠. 이렇게 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니까 그때 마다 틀려요. 분명히 하나님이 뭔가 저 사람속에 있는 문제를 지적하고 드려내서 고치시려고 하는 데 쉽게 이야기하면 하나님 말씀 앞에 정직하게 반응하지 않는 거여 그러면 드려낼 수 없어요. 여러분 우리는 말이죠. 일반적으로 물론 특별한 경우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의 신앙은 말이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말씀을 통하여 우리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드려나게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숨기면서 살려고 몸부림치면 우리 일생도 그렇게 살수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은 불순종이에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요소가 하나님의 말씀과 결합되고 나서야 반듯이 우리 속에 있는 문제가 들어나고 하나님이 우리를 고쳐나가시는 거여 하나님은 절대로 홀로 안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에게 협박 비슷하지만 오늘 신앙의 중심을 못 잡고 그저 메마른 상태 여서 이리 저리 헤매면서 그저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잘못된 신앙생활이 일년이나 이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그렇게 살다가 평생 죽을 수 도 있다는 이러한 충고가 허황된 것이 아니라 아주 정확하게 성경의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축복받는 삶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있으므로 우리의 존재자체가 뻗어나가는 나무 가지와 같은 그런 존재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깃들게 할 수 있는 그러한 복음자리를 제공해주는 하나님의 훌륭한 은혜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 속에 있는 이 잘못되고 더럽고 그리고 하나님과의 참된 생명을 가로막고 있는 해로운 요소들을 무엇인 가하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정직하게 들어내 실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를 허락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약국에 가서 약을 먹을 때는 자기가 다 조제해가지고 가는 사람 있죠. 물론 바카스를 달래든지 아니며 활명수를 달라든지 그럴 때는 이해가 가요 워낙 많이 주서 들었으니까 어떤 사람은 약국에 가서 한번 보니까 아에 들어와서 약을 짓는데 아줌마 콘택 600하구요 지미코프 하구요 뭐하고 뭐하고 주세요. 다섯 가지를 주는데 약사가 하도 기가 막혀서 그것 뭐 하려고 그래요 열이 나고 콧물이 나고 목이 아픈데 먹으려고 그래요. 자기가 다지어가지고 온 거여 약국에 가서 그러면 안돼 줘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가서 약국에 갈 때는 제발 그러지 말아요. 나는 그 약사심정을 깊이 이해해요. 대개 기분 나쁘다고 교회 와서 그런 사람 있거든요. 목사님 저는 딴 건 문제 가없는데요. 축복에 대해서만 말씀을 들으면 되거든요 요즘 그런 거 하고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가끔 있을 수 있어도 수술을 환자하고 의사하고 같이 수술하는 것 보셨어요. 국부 마치 시키고 배만 마치 시키고 들어 누워 같고 선생님 이쪽을 찢으시고요 저쪽은 내버리어두세요. 3센치 이상 찢으면 혼나요 이런 식으로 코치하면서 자기를 수술하는 사람 봤습니까. 전신이 마치 되어서 자기를 맡기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고치시게 하기 위해서는 말씀 앞에 이렇게 들어 눕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래서 충분히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리 속에 있는 것들을 들어내시고 그리고 주님의 마음에 고통스러운 것들은 말씀을 통해 들어날 때 오히려 우리도 고통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해야되 그래야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빨리 알고 그것을 털어 버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정직해질 때 하나님은 매우 빠른 속도로 우리의 패역을 고치고 상상할 수 없는 우리의 고질적인 질병들을 하나님께서 신속하게 고쳐 나가시는 거여 그래서 우리를 놀랍도록 새로운 사람을 만들어 주시는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말씀으로 우리의 모든 고통의 원인을 병들어 있는 우리의 심령을 드려내시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을 하나님 앞에 허락하지 않으면 우리의 패역 우리의영혼의 질병 우리의 인생을 궁극적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죄악의 근본적인 원인은 치료되지 않는 겁니다. 이것을 깊이 명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정직한 기대와 진실한 반응을 생명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