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용서의 모범을 보이신 그리스도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 5:2)
녹취자: 이경순
우리가 미음을 버리고 용서하는 것이 우리자신의 인격에 호소하거나 아니면 사랑하기를 원하고 또 용서해주기를 원하는 그 사람의 태도를 보고서는 이일을 이행할 수 없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사도가 왜 우리에게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라고 용서를 말하다가 그렇게 우리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지난시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 또 갑자기 하나님을 본받으라고 사도가 말하다가 갑자기 그리스도이야기를 가지고 들어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본 받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너희에게 어떻게 행하셨는지 기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의 일생은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무슨 일을 하기를 원하셨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그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 일생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서 예수님은 자신이 아니면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이미 보았다 진리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무엇을 하셨는지를 알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바가 무엇이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가지셨던 소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들이 깨닫게 된다면 그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통해서 이루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또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기를 원하셨는지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부요함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계시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사랑은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의 행위 속에서 사랑의 인격 속에서 우리에게 나타낸바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기원한다면 이미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시고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일생을 사셨고 그 기록을 우리가운데 남기신 예수그리스도의 생애를 배우십시오! 예수그리스도를 배우시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깨닫게 될 때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깨닫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깨닫게 될 때 여러분들은 비로소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먼 하늘에 계신 그 하나님이 오늘날 왜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아버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도가 바로 이점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에 관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기를 원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서 뛰어난 신앙의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곧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와 그 교훈과 그 인격의 깊이와 넓이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 하는 말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그리스도 인격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탐독하고 있습니까? 오늘도 찾아 오셔서 우리가운데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붙드시고 우리에게 인격으로 말씀하시며 당신의 말씀과 당신이 행하신 이유를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내 보여주시는 예수그리스도와 끊임없이 만나고 있습니까?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이것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 때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 예수의 인격에 깊이를 이해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놀랍고 위대한 성품을 왜 그렇게 구약에 성도들과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을 찬송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용서의 연장선상에서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한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명심하십시오. 혼동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세상이 가르쳐주고 있는 단어와 같은 단어를 사용해도 그 기초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마음씀씀이가 넓은 것, 우리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용감하게 자신의 손해를 위해서 양보하는 것 그런 희생도 우리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사도는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그 기초와 동기가 그리스도에게 바탕을 두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용서의 보증으로 인치시기를 원하는 그 참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반짝이는 모든 것들이 금이 아니고 빛나는 모든 것들이 등대의 불빛이 아님을 기억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것일수록 모조품이 많고 비싼 것일수록 위장된 비슷한 물건들이 많은 법인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랑이야 말로 모든 사람이 받기를 원하는 것이고 소유하기를 원합니다. 물론 신청하기도 원합니다. 그렇지만 오늘 사도는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알기를 원하는 너희들은 그리스도를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원하는 너희들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인지를 알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일을 이루는지는 부활한 그리스도를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는 그 사랑을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행하셨는지를 오늘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말합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예수그리스도가 어떻게 사랑하셨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우리를 위한 사랑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워하면 안 된다 그러는데 자꾸 가슴속에서 솟아나는 이 미움을 우리가 극복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엇 때문에 미워하면 그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되고 내 영혼에도 상처를 주고 또 미움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도 고통을 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미워하는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미워하는 마음에 자신을 개방하고 미움이 시키는 바대로 그렇게 행하게 자신을 방치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놀라지 마십시오. 우리가 남을 미워하게끔 자신을 방치하는 것은 자기사랑 때문인 것입니다. 더 쉽게 말씀 드려서 이기심 때문인 것 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은 미워해야지 나의 감정이 배설될 수 있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통이며 형벌인 것입니다. 저는 이 평범한 진리를 지난여름 수련회때 손동인 권사님 간증을 들으면서 나는 깊이 공감이 왔습니다, 나는 그 사람처럼 원수진 사람은 별로 없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살아오면서 마음에 미운사람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나에게도 몇 사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면서 내가 그 정도 까지는 체험은 못했지만 깊이 공감했습니다. 정말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런 깊은 고통이 손 목사님 에게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면 우리는 비할 대 없는 사람이 되지만 주께서 내버려 두시면 그 인간이 그 인간이고 그 인간이 그 인간입니다. 하늘에서 하나님이 내려다보시면 끼리끼리 묻어 다니면서 사는 것이 그게 인생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아니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미워하고 살인을 해야지만 이 모든 것이 마음에 감정이 풀어질 수 있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것을 치루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자기사랑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자기사랑이 아니라 이기심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쟁이 왜 일어납니까? 나라와 나라의 극단적인 이기심이 충돌하면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살인의 기초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기심에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으면 되는데 그 참는 것이 견딜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토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워하는 것이 곧 살인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그 예수그리스도의 인생 자체가 우리를 위한 인생이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로 하여금 용서의 생애를 살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버리는 인생을 사는 것이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미워했고 미워하는 마음대로 행동에 옮겨서 사람에게 그것들을 복수하고 어떤 때는 말로 토해내고 적극적으로는 행동으로까지 옮겨서 그래서 그 사람을 상처 나게 해야지 속이 시원한 그것을 누르고 그 미움을 사랑으로 하나님이 바꾸시도록 몸부림치며 기도하는 것은 아골 골짝 빈들로 복음을 들고 고난의 길을 떠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한 사실하나는 사랑의 감정이 죽음의 공포를 이기는 사실들을 보면 미움의 감정이 또한 그러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인생은 우리를 위한 인생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낮고 그리고 당신을 조금도 환영하는 사람이 없는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이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았으나 그러나 부활의 영광을 담보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사랑이 예수그리스도로 하여금 자신을 우리를 위해 주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께서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도바울을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만나주시기 까지 또 오늘 사도바울의 이 고백을 이 교훈을 풀어서 말씀으로 듣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르기까지 예수그리스도는 한결같이 우리가운데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위해 역사하셔서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혹은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지 않고 엇간 길로 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종아리를 치십니다. 여러분 이 모든 일들이 결국은 누구를 위한 일이었습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 누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그리고 그 십자가를 지고난후에 부활로 말미암아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이곳에 보내시고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들을 보내어서 당신의 교회를 섬기게 하시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 입니까? 누구를 위하여 교회가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드러내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예수그리스도의 생애가 우리를 위한 생애였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가장 커다란 이익을 얻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지 아니하셨더라면 당해야 했을 운명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누리게 된 성도의 기억사이에 커다란 축복의 격차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사람은 바로 우리 인간들이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역시 동일한 말씀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남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충성되고 자기를 위해 충성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된 사람 자기보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된 사람은 조금 사람을 용서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가 그런 용서의 확실함을 인치는 사랑의 보증까지 우리에게 주실 수 있었던 그 이유는 예수그리스도의 생애 자체가 우리를 위한 생애였기 때문에 이 일들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정말 하나님을 위해 충성된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도 여러분이 기억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질문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생명도 다 드리는 사람이 왜 그렇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데 이웃과 자기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을까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드리는 것보다 자신 속에 있는 미워하는 감정을 죽이는 것이 훨씬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하나님 앞에 드린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마틴 루터의 고백대로 진리를 향하여 죽고 진리를 향하여 다시 태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지만 우리가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해서 누구보다 많이 묵상한 이 사도는 그리스도의 생애가 우리를 위한 생애였다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치 없는 우리를 위해서 존귀한 자신의 신분을 포기하고 괴롬과 슬픔이 많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늘 ‘나는 세상체질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나는 세상이 체질에 딱 맞는다. 나는 천국에서 못살 것 같다 생각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우리가운데 아무도 이세상이 체질에 맞는 사람 없습니다. 옛날에는 체질에 맞았거든요 거기서 먹고 물고 뜯고 싸우고 지금도 가끔 그러지만 그러면서 부딪히면서 다른 사람과 살아가는 거거든요.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에서 보면 갈매기 들이 아침만 되면 바다 가장자리로 내려와서 배에서 생선토막을 잘라서 버리면 그것을 주워 먹기 위해서 그냥 하늘을 날던 갈매기들이 하얗게 모여 들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한 놈이 그걸 물어 가면 그것을 뺏기 위해 위에서 날아와서 뒤통수를 쪼아댑니다. 그래서 그것을 토해내게 합니다. 쉽게 얘기하면 등쳐먹는 겁니다. 등을 때리면 입이 벌어지니까 입에 물었던 것을 토하게 됩니다. 갈매기들은 그렇게 해서 먹고 사는 겁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우리가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때에는 그것이 체질에 맞았고 안 맞아도 그것이 운명이려니 하고 살았습니다. 다 우리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열심 속에서 그렇게 산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보십시오.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그리고 예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니까 세상이 체질에 안 맞게 되는 것입니다. 죄 가 너무 많습니다. 어떤 때는 좋아서 죄를 따라가지만 그러나 훨씬 더 많이 죄지은 것을 후회하고 죄지을까봐 두려워하고 죄가 운데 있을 때 영혼이 고통 받는 것을 체험합니다. 여러분 우리를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셔서 그 거룩하게 한 성품을 조금 가지고 있는 우리도 이 세상에 사는 것이 고통스러운데 완전히 거룩하시고 경건하고 그리고 거룩함 그 자체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사셨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에이는 그 고통은 이 세상에서 우리처럼 오늘은 무엇을 먹고 내일은 마실까 하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께서 왜 그 고난을 당해야 되었다는 것입니까 왜 당신자신의 성품에 어울리지 않는 고통과 죄와 눈물과 슬픔이 가득한 이 땅에서 30여년이 넘는 생애를 사시고 마지막에는 자신을 생축과 제물로 드리셨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다는 것입니까? 성경에 왜 그런 예수그리스도께서 적합하지 않은 인생을 이 땅에서 사셔야 했고 어울리지 않는 대접을 받으며 이 땅에서 33년을 이 세상에서 눈물과 고통과 근심으로 이 어두운 세상을 지나며 하나님께서 당신을 부르실 그날을 기다리며 그렇게 이 세상에서 산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사도바울이 왜 그리스도와 함께 이 세상을 떠나서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훨씬 더 좋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빌립보 교인들과 함께 이 땅에 살고 있기를 원했던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내가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땅에서 고통당하는 성도들과 함께 이 땅에 있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 때문 이었습니까?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이 죄와 슬픔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때로는 입술을 깨물며 때로는 마음에 다가오는 유혹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말씀의 칼로 자신의 신앙의 허벅지를 찌르며 진리의 말씀대로 살기위해서 고통하며 그렇게 어두운 세상을 살았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자신을 위해서는 그렇게 하면서 까지 이 세상을 살아야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모두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잡히시던 날밤 그리스도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실 때 가장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무겁게 내리누르던 고통이 무엇이었습니까? 잠시 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이라고 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음을 여러분들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7장이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잡히시던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한 내용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읽어보셨습니까? 요한복음 17장을 묵상해 보십시오. 그 내용은 모두 거룩한 하나님과 이 땅에 두고 가야 하는 당신이 택한 양들을 향한 하나님의 염려였습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죽으셨으나 사신 것은 우리를 위해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를 위한 인생입니까? 여러분 누구를 위한 인생입니까? 우리가 살아있으므로 말미암아서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이 누구입니까? 여러분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생애가 우리를 위한 생애였음을 그 사랑을 입은 너희의 생애 또한 이 세상의 사람들을 위한 생애여야 한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힘주어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위해서 사셨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 사랑에 빚진 사람들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한분이 자신을 버리고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위한 생애를 사시므로 말미암아 미움은 십자가에 못 박혔고 미움이 십자가에 못 박힌 순간 하나님의 진노는 녹아졌고 하나님의 사랑이 물밀듯이 이 세상에 밀려와서 구원받은 자녀들이 그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사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생애를 우리를 위해서 사신 인생이었으니까 이렇게 인생의 관점 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과 이 세상에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 반드시 충돌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높은 수준에 살았던 사람들이 고민하는 내용을 올라가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끌어내려서 고민하는 이상한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십시오. 무엇보다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이제는 자신을 위한 생애가 아닙니다. 만약에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사랑을 입고도 여전히 우리를 위해 산다면 우리는 모두 도둑놈들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생애를 사셨지만 그러나 이것은 명목상의 생애가 아니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캣치 프레이지를 가지고 사신 것이 아니라 삶으로 실천하며 사셨습니다. 매순간 매번 살아가시는 모든 삶의 원리를 이것이 지배했던 것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고 나는 너희를 위하여 왔다는 것입니다. 내 기쁨이 너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얼마나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리고 지체들을 뜨겁게 사랑하는가 하는 것은 훈련의 문제가 아니라 그가 그리스도 예수의 인격 안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가 한 것을 깨달은 것에 비례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생애는 명목상의 생애가 아니라 자신을 버리는 생애였다고 오늘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여러분 버리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어떨 때 우리는 버리십니까? 정상적인 목회를 하는 사람은 이것을 버릴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쓸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누가 금반지를 하나 묻어놓고 갔습니다. 이렇게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쓰레기통에 버리는 물건을 기억해보십시오 그것은 모두 개인적으로 필요가 끝났고 가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던 것입니다. 무엇을? 자신을 그렇게 가치 없게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을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오신 생애였고 그 예수그리스도의 삶과 섬김의 모든 목표가 우리를 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버린 것입니다. 또 자신을 버렸기 때문에 우리를 위한 생애를 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자신을 위한 욕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 하나님만을 위해서 산다 하나님을 위해서 죽는다는 것은 그런 것들은 다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셨지만 우리를 위한 그 표적이 그대로 남아있으니 그것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버리신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그야말로 버리셨습니다.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시고 자기 자신을 폐기처분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생명은 죽음에 항거하는 모든 기능임에도 불구하고 생명이 생명을 버렸습니다. 생명이 생명을 버렸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무가치한 것으로 폐기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그곳은 내게 죄지은 자들을 향한 진정한 용서가 설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들은 유의 하십시오. 이 말을 여러분들은 다른 곳에 가서 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집에 가서 여러분의 남편이나 여러분의 아내나 여러분의 부모나 자식을 향해서 ’당신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자신을 버린 것 같이 당신을 폐기처분하고 나를 사랑하시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이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손 양원 목사님은 고민 끝에 이 일을 실천했을 뿐인데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 전 세계의 사람들을 감명시키고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을 제시했고 손 목사님은 그 평범한 것을 실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이 시간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주시니 이 거룩한 초청에 미치지 못하는 우리의 자신이 미천한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 앞에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와 우리 자신이 한없는 격차가 나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마다 복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바로 애통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엄청나게 살아 역사하고 있는 이기심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사랑의 정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것들을 무너뜨리고 깨뜨리는 여러분들이 되시 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을 너무나 가치 있게 여기고 반면에 상대방을 너무나 무가치하게 여기는데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는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예수그리스도는 자신보다 훨씬 더 커다란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 이었습니다. 구원의 계획안에 있는 우리의 생명이 있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서 자신을 드리셨지만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자신을 다 드리셨지만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멸하신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육체뿐이었습니다. 십자가에 죽음이 끝났을 때 그리스도는 자신의 영혼을 고이 아버지 손에 부탁했습니다. 하나님 내 육체는 이 세상에서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고 위하여 이 땅에 보냄을 받은 나의 양떼들을 위하여 찢기고 저주받아 이 세상에서 사라지거니와 그러나 하나님 내 영혼은 당신의 손에 보존하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계속해서 상대방보다 여러분자신을 훨씬 더 가치 있게 생각하는 한 용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불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상대방의 인생보다 훨씬 가치 있고 여러분 자신의 상처가 다른 사람들의 상처보다 훨씬 크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훨씬 더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고 상대방은 훨씬 적은 사랑밖에는 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한 미움밖에는 거기에 깃들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무가치함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매달려있는 그 예수그리스도의 육체는 사실은 우리의 육체였다는 것입니다. 가시면류관을 쓰고 힘없이 피 흘려 죽으신 힘없는 죄인 예수그리스의 그 육신은 예수그리스였거니와 그 육신 안에 바로 우리의 육신이 있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육신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무가치한 것으로 처분이 되어서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사망의 형벌을 당하게 될 때에 사실은 그것은 우리의 육체에 대한 무가치함에 선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늘 기도하며 자신의 인생의 무가치함을 깨닫는 사람들 속에서만 진정한 용서의 능력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찬양)
늘 울어도 눈물로는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한 인생이고 그리고 감히 입을 열어서 내 인생으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겠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것인지를 아는 사람들은 용서에 대한 힘이 있습니다. 자기를 향한 사랑을 버렸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여전히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용서의 능력이 없습니다. 언제나 가치 있는 나, 가치 없는 너, 따라서 똑같이 가치가 똑같이 않으니까 작은 고통도 나한테는 큰 것으로 취급되어야 합니다. 왜 ? 나는 가치 있으니까 크고 엄청난 고통도 너는 당해 싸고 그리고 너한테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 너는 가치가 없으니까 세상에서도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게 대접을 받아 마땅하지만 나는 남다른 대접을 받아야 하는 특별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용서가 불가능 해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우리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의 공간조차 없을 정도로 자기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은지 봐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어떻게 피 묻은 십자가가 설 수 있겠으며 그런 영혼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십자가의 감격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얼마나 저 자 신이 자신만을 가치 있게 생각하고 그래서 상처도 크게 보상을 받아야 하고 고통도 넘치도록 보상을 받아야 하고 그런 하나님은혜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런 것들이 바로 이기심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향해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괜찮은데 하나님을 향한 그 생각을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저 사람은 가치가 별로 없기 때문에 고통을 많이 당해도 괜찮고 나는 당하면 안 되는데 그런데 이 사람이 자기가 남한테 고통을 준 것에 대해서 보상을 안 해줍니다. 그러면 그것이 또다시 상처가 됩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사랑을 위해서는 자신을 버리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보고는 나를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보면 버릴 수 있습니까? 나보다 훨씬 존귀하신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이유하나 때문에 나를 버리셨다는 그 사실에 나도 나를 버리는 것입니다. 하고 하나님 앞에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한사람이 그렇게 할 때 그 긴 미움의 고리가 끊어집니다. 이 미움의 고리가 어떻게 이어지고 어떻게 끊어지는지에 대해서 이제 미움과 용서시리즈 마지막으로 다음 주 수요일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미움의 고리를 끊고 용서의 샘물을 길을 때 이 세상에서 정말 희망이 없는 사람이 어떤 면에서 예수를 믿어도 그렇게 믿어서는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 예수의 놀라운 사랑을 배웁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샘물을 마시고 예수의 사랑을 위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 그렇습니다. 사람이 이런 말 하면 누워서 침 뱉기지만 사랑이 많은 목회자 밑에서 목양을 받은 사람들이 그 사랑을 배웁니다. 그리고 진리에 대한 충성이 투철한 목회자 밑에서 자란 사람들이 진리를 위해서 투철한 삶을 삽니다. 여러분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그 속에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배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자신을 무가치한 것으로 버리심으로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미움의 고리를 끊으셨습니다. 우리는 범죄 했고 하나님이 우리를 싫어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와 고통가운데 두시자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 고리가 끊어지지 않을 때 예수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쏟아지는 그 형벌을 다 받으시고 하나님을 향해 속죄의 피를 하나님께 드리고 인간을 향하여 하나님을 향한 모든 원망을 한 몸에 받으시고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전에 너희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과는 달리 너희와 얼마나 뜨겁게 화목하시기를 원하고 화해하기를 원하고 진심으로 너희를 친자식처럼 사랑하시기를 원하시는가 하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계 회복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가슴 아픈 결론이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며 그렇게 속으로 씹으면서 위로를 삼고 상처를 위로하고 살아가는 동안 주님은 고통 하신다는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미움과 그리고 그 모든 상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보십시오. 그러니까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종식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모두 버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참다운 자유와 용서를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이 세상에 참다운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지 못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것이 이 땅에 진정한 부흥의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 아십니까? 여러분 교회가 마음을 합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우리는 상상치 못하는 위대하고 놀라운 일을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이루시는 것들을 봅니다. 여러분 마음을 합해서 한 교회가 전심으로 기도하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까? 나는 아직 한 번도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찢어지고 미움과 원망으로 갈기갈기 차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두 손을 높이 들고 울부짖으며 부흥을 부어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여러분 그리고 그 모든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자신이 희생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리 수많은 사람들이 헌신해도 부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아무리 고행을 해도 아무리 금식을 해도 닫혔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려지는 성경에서 언급되어지고 설교자를 통해서 가끔 듣는 그런 은혜의 축복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 너희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 할 것은 죄가 너와 나 사이를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수없이 모여서 기도합니다만 그러나 정말 마음을 다하여 기도합니까? 마음을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까? 여러분 단 둘이라도 정말 한마음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부족한 것 없이 아 정말 다시 한 번 하나님이 그런 시간을 주시 더라도 그이상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렇게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쏟아놓게 기도 해 본적이 언제였습니까? 그러면서 사람들은 기도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만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리된 미움에 대한 용서만이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고개를 돌리지 마십시오. 고개를 돌리면 하나님도 고개를 돌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지금 그 문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제 앞에서 여러분들이 영적인 태도에 있어서 고개를 돌리게 되면 하나님의 얼굴빛을 내게 비쳐달라고 하는 여러분의 기도는 무엇을 위한기도입니까? 여러분 사도는 오늘 말합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드렸다 어떤 주석가는 생축은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전체를 의미하고
제물을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기도 하였습니다. 어쨌든 예수그리스도는 자신의 전부를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는데 그 동기는 우리를 위한 것이었는데 오늘 성경을 보니까 그렇게 예수그리스도께 드린 것은 우리에게 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린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 사실이 여러분에게 주는 교훈이 그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진심으로 여러분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용서하면 그 일을 위해서 여러분이 치른 입술을 깨무는 그 모든 고통은 하나님 앞에 상달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은 그것이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확신합니다. 여러분이 누구하나를 마음에 진심으로 용서하고 그리고 그를 깊이 그 영혼의 고통을 진정으로 사죄해 주고 그리고 진심으로 여러분들이 그 사람을 사랑해서 그 영혼에 자유 준다면 그것은 죽음에서 한 생명을 건진 것만큼이나 하나님 앞에 값진 것입니다. 여러분 선교사로 나가지 않아도 선교사보다 위대한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자기에게 죄 짓고 또 사람들을 미워함으로 말미암아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용서하고 그리고 더 큰 용서의 주체이신 그리스도예수를 알게 해서 진정한 용서를 영혼 속에 경험하고 그래서 그 속에서 칼을 가는 그 미움을 몰아내고 그 사랑으로 자유하게 하여 그 영혼에 얽매인 것을 풀어줄 때 그는 한 발작 도 해외에 나가지 않으나 그는 위대한 선교사 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고 교회만 다니면 다 자유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수없는 결박과 사슬들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에 염려와 근심이 발목을 조이고 있습니다. 충성된 사람들에게는 교묘한 하나님의 일을 빙자한 유혹이 발목을 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인생을 다 바치면서 불꽃처럼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불꽃처럼 확 타올라서 죽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나 죽기는 원해도 죽어도 할 수 없는 그 일은 이 속에서 내게 내 죄지은 자 들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그를 사죄하여 영혼의 얽매인 것을 풀어 주는 것 이것을 이행하려고 하니까 입술을 깨무는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우리는 용서의 학교에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깊이 용서해줄 때 그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한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때는 정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한 15~6년 ~7년전 이었습니다. 퇴근해서 보니까 집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우리 동네가 평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한참 있다 보니까 저 굴속에서 우리식구들이 한사람씩 나오는 겁니다. 어머니가 나오는데 머리가 터져서 피가 흐르는 겁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 그러니까 철거반이 나와서 삽인가 뭐로 밀어서 상처를 냈는데 아주 심하게 피가 흐는 겁니다. 그 순간에 확 뒤집어 지는 것입니다. 이 나쁜 놈들 그리고 그 파출소로 뛰어갔습니다. 꽤 먼 거리였는데 막 뛰어서 한 십분 가야 되는 거리였습니다. 파출소문을 차고 들어가서 순경들이 웬 놈인가 하고 네댓 명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당신들 중에 누가 우리 동네에 와서 우리 집을 헌것까지는 내가 법적으로 했다 그러니까 말을 안 하겠는데 누가 우리어머니를 건드려서 저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대라 안내놓으면 내가 당신들 전부 다 고소정도가 아니라 난 특별한데 가겠다 하였습니다. 그때 특별한곳은 국보위였습니다. 국보위에 한번만 투서하면 백차가 달려오는 좋은 세상이었습니다. 국보위에 다 고소해서 내가 너희를 다 콩밥 먹일 거라고 대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이렇게 보기에 대충 나갔으면 뭐라고 그랬을 텐데 워낙 아마 분명히 내 얼굴에 살기가 있었을 겁니다. 칼을 안 들었지만 이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진정하라고 하는데 ‘놔라’ 당신들이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관리들인데 그것을 모른다면 직무유기고 안다고 그랬으면 그 철거반인 분명히 그 현장에 경찰이 있었다고 여러분들도 있었다고 분명히 내가 주민들한테 들었으니까 대라고 하니까 거기서 해결이 납니까. 늦게까지 대답을 안 합니다. 알았다고 두고 보자고 하고 파출소장 명패가 있어서 수첩을 꺼내서 이름을 적고 며칠 있다 다시 만납시다. 그러고 왔습니다. 이 속에서 눈물과 함께 큰 분노가 타오르는데 혀끝이 탑니다. 그렇게 걸어오는데 위에 철길이 있었는데 성북역으로 들어가는 철길인데 그 밑을 걸어오는데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한 것 같이’ 왜 하필이면 그게 가슴을 때리는 겁니다. 그때는 신앙도 깊지도 않았는데, 나중에는 울음이 나오는데 그 울음은 분노의 울음이 아니라 고통의 울음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용서해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정말 고통이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깊이 하면서 나는 그때 아마 깊이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신앙이 어릴 때라 많이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이 이 미워하는 것 그것을 얼마나 슬퍼하시는가 하는 것을 그때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말씀을 준비하면서 다시 그때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미움이 확 마음을 지배하게 되니까 그때 은혜생활을 열심히 할 때이거든요 직장 다니면서 성경공부도 하고 그런데 그 모든 낮 시간에 받았던 모든 은혜, 눈물 흘리며 기도했던 은혜로운 간증, 이런 것들 감각이 한순간에 싹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혀끝까지 독이 밀려오는 겁니다. 이게 살인입니다. 그때 아마 그 사람들이 나를 더 약을 올리든지 옆에 적당한 흉기가 있었다면 아마 휘두르지 않았다고 장담 못합니다. 한순간에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께서 오늘 바울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 그렇게 혀를 깨물고 그 용서해주라는 주기도문의 그 구절을 들으면서 이 원망의 눈물이 그 다음에는 고통의 눈물이 될 때 결국은 그것을 참고 이를 악물 때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나님이 당신을 향한 제물로 이해를 해 주신다는 겁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면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미워하는 것을 용서하는 것은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는 말하자면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찬송가 가운데
(찬송)
예수가 내게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 없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이것을 작사한 사람이 바이 글이라고 하는 목사님 이었습니다. 순회 복음전도사였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목회지 없이 그냥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러 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집을 많이 비우고 복음을 전하러 돌아다니니까 부인이 삐쳤습니다. 나중에 그것이 점점 깊어지고 나중에는 어느 날 집회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그 스토리를 모르겠는데 와보니까 이혼을 당했읍니다. 이미 상황이 끝났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너무나 좌절을 해서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는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실 수 있을까?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했나 한 것이라고는 영혼들이 불쌍해서 복음 전하러 간 것밖에 없는데 그렇게 해서 집을 비웠다기로서니 나 모르게 어떻게 어떻게 해서 와보니 이혼을 당하고 부인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깊이 좌절하면서 절망하면서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절벽을 향해 걸었습니다. 하나님 한 많았던 내 인생을 여기서 정리합니다. 내 영혼을 받으시옵서서 뛰어내리려는 순간에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속에서 ‘예수가 내게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 없네 세상의모든 것은 나를 버려도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이가 예수그리스도시니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리라’ 그리고 죽을 때까지 외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우리들 속에 가지고 있는 그 미움과 그리고 그런 모든 원망들을 이기는 것이 오늘 설교 들으면서 오늘 다 이기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을 이기기 위해서 고통을 받으며 자기를 가치 없게 여기고 남을 가치 있게 여기기 위해서 그 따르는 그 끔찍한 고통 이런 것들이 하나님 앞에 여러분들이 박하와 회향과 근처의 십일조보다 훨씬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이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우리는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매일 예배드릴 때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질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우리에게 물으시는 것이 너희가 왜 여기에 나왔느냐 주님 오늘 이 예배를 통해 우리는 주님과 화목하기를 원합니다. 너는 형제와 화목했느냐 물으시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용서했느냐 물으시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인 쳤느냐 물으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