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을 구하라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찌니라 시기오놋에 맟준 바 선지자 하박국의 기도라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소서 진노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 2:20-3:2)
하박국 선지자는 유대가 망하기 직전의 선지자였습니다. 불우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죠 나라는 이미 아람 나라에게 먹혀 버렸고 국권은 껍데기 밖에 남지 않았고 왕은 허수아비였습니다. 이때 이미 왕궁에서도 바벨론 사람들과 함께 통하면서 나라를 팔아먹고 거기에 빌붙어서 권력과 부를 누려보려는 배신자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니까 선지자의 눈에 아무데도 하나님이 안계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 선지자의 별명이 회의주의자 하박국이에요 그러다가 후에 비로소 깨닫게 돼요 그 깨달은 바가 뭐냐 하면은 아 그렇구나 세상에 어디를 봐도 하나님이 안계시지만 결국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구나 하면서 눈앞에 펼쳐진 하나님 없는 현실이 사실은 그들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욱 더 믿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거죠 그러니까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 결국 눈앞에 하나님이 없는 것 같아도 그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굳건히 믿고 살아갈때에 그 사람이 진짜 그 혼란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이다 그런 뜻입니다. 여기서 얘기하는 의인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의를 덧입는다는 의미가 없진 않지만 일차적으로는 율법에 부합하는 삶입니다. 그러니까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것이 어리석다고 여겨지지 않고 그렇게 살아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 이렇게 여김을 받는 사람들은 모두 눈에 보이는 현실은 하나님이 없는 것 같아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굳게 믿고 살아가사는 사람이다 이런 얘기입니다. 2장 마지막 절과 3장을 보면은 이제 이 회의주의자였던 하박국이 깨달은 새로운 놀라운 사실이 하나 등장해요 그게 뭐냐하면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부흥하게 하시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선지가가 부흥하게 해 달라는게 무엇이겠습니까? 부흥이라고 번역이 되었지만은 사실 히브리 성경에 보면은 ‘살려내라’ 그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선지자가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형편은 거의 다 죽어있는 것 같았어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어있는 것 같으니까 하나님의 교회도 죽어있는 것 같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새롭게 살리는 이 놀라운 역사는 아주 현저하게 침체되어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것을 하나님이 확 다시한번 살아나게 해 주십시오’ 라고 하는 기도였습니다. 도대체 아무대도 하나님이 안계신것 처럼 생각이 되던, 그래서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왕궁에 가득할 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냐고 묻고 싶은 이 회의주의자 하박국 선지자가 이렇게 하나님이 주의 일이 다시 한번 불일듯 수년내에 확 일어나게 해 달라고 하나님앞에 이렇게 다시 열렬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어디에서부터 왔겠는가 하는거죠 한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갈때에 그 일에 대해서 기대하는 바는 자기가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난 그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넘어설수가 없습니다. 에스라서에 보면은 학사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다시 짓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전에 지대를 다시 놓고 지을때 그 터는 솔로몬 성전이 파괴던 터였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아마 인류 역사 이래로 가장 화려한 건물이었을 거에요. 어떤 사람이 계산해 놓은걸 보니까 금이 2.5톤 트럭으로 80대 분이고 은이 2.5톤 트럭으로 300대 분이었대요 나머지 보석과 이런것들은 치지도 않고 금과 은만 그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어마어마한 성전이었으니 이민족이 그것을 약탈할때에 얼마나 재밌었겠습니까? 결국 솔로몬 성전이 회파되고 그 이후에도 이방 민족들의 공격을 받아서 많이 쓰러졌는데 그 기초 공사를 다시 놓을때에 그때에 젊은이들은 성전의 기초공사가 다시 놓인 것을 보면서 기뻐서 소리를 쳤고 노인네들은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노인네들은 솔로몬 성전의 영광을 보았던 사람들이죠 에스라가 놓은 성전의 기초는 처음 그것보다 훨씬 축소된것이었죠 그 영광스러운 성전을 본 사람들이 기억 속에 초라하게 놓여지는 그 지대는 정말 슬픔을 자아냈죠.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이전 영광의 모습을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일단 성전이 다시 놓여진다는 것만 해도 기뻐하고 감격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 회의주의자였던 하박국 선지자가 다시 하나님앞에 주의 일이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해 달라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 소망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맡겨진 이 일에 커다란 부흥을 주시도록 하는 소원을 가져야 됩니다. 연말이 되면 이제 각기 자기 하던 일들을 셈 하죠 어느 구역은 두 구역으로 나눠지고 어느 구역은 세 구역이 합쳐져서 한 구역이 되고 두 구역장이 사표를 내거나 다른 구역으로 가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부흥을 주신 구역들은 계속 변화되어서 새로운 구역으로 나뉘어지고 그렇지만 못한 구역들은 사라져 갑니다. 교회학교에서도 마찬가지죠 처음에는 한 두명으로 시작된 반이 연말이 되어서 15-20명 되는 반이 있는가 하면 어느 반은 7-8명으로 시작됐는데 12월에는 아이들 공과 공부하는 시간에 선생 혼자서 성경을 읽고 있는 반도 있어요 이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께서 부흥하게 해주시는 것이 얼마나 요긴한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사람됨과 그 사람이 하고자 일이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의 부흥을 보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되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라” 예수님을 기뻐하셨고 예수님이 하시는 일도 기뻐하셨으니까 하나님이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복을 주신거죠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주님께 사랑을 받고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 부흥을 보는 비결입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한 부으심과 함께 나타나는데 이것은 제도나 인간의 방법위에 부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위에 친히 부어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한 사람이 주님께 사랑을 많이 받는 그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시는 것이죠
엊그제 신문을 보니까 이런 이야기가 나왔어요 이렇게 사회가 어려울때 구조조정을 막 하는데 어떤 사람부터 구조조정이 되나? 그게 뭐냐하면 첫 번째가 안 보이는 사람부터 잘린다 그래요 일은 바쁘고 정신은 없는데 사람이 경영자의 눈에 띠지 않을때 경영자의 마음속에는 저 사람은 없어도 되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생각된다는거죠 두 번째는 어떤 사람이 구조조정 1위냐 그랬더니 잘 다루어 지지 않는 사람 쉽게 애기하면은 유능하고 혹은 나름대로 자기 할 일을 한다고 하더래도 그 사람을 관리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뺏기는 사람부터 구조조정 1순위 라는거죠 회사가 잘나가고 사람이 계속 필요하고 사람을 구하는데 사람을 찾을 수 없을 때는 그 사람이 성격이 좀 유별나고 다루기 좀 힘들어도 그냥 쓰는데 어차피 사람을 줄여야 할때는 다루기 힘든 사람부터 내 보내기 시작한다는 거죠 그래서 조금 다루다가 힘이 자꾸 들때에는 유능하고 쓸모있어도 경영자는 어떤 생각을 하게되냐 하면은 나없이 니가 일 할수 있나 봐라 이런 사람을 제일 싫어한답니다 그래서 다루기 힘든 사람이 일순위로 구조조정의 대상에 오르는거죠 평안할때는 괜찮은데 회사가 어려울때는 에너지를 많이 뺏어가는 사람, 신경을 많이 쓰게 하는사람, 이 사람이 구조조정 1순이라는거죠 그러면서 충고하는 말이 뭐냐하면은 BE EAZY! 다루기 쉬운 사람이 되어라 자기를 고집하고 자기 스타일을 주장하지 말고 회사 전체가 움직일때 거기에 쉽게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라 그리고 세 번째로 구조조정 1순위는 쓸모가 별로 없는 사람. 그래서 Useful 하지않는 사람이 제일 먼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다는 거죠 한번 회사에서 그런 일이 있었답니다. 외국계 회산데 막 구조조정을 하는데 그 한국의 사장이 회장보고 그랬데요 “회장님 그래도 이사람은 좀 놔두시죠 왜? 이 사람은 오랫동안 우리 회사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되게 성실합니다. 정말 자타가 공인하는 성실한 사람입니다”. 그랬더니 회장이 하는말이 “김사장 이 사람이 성실한게 우리 회사에 무슨 도움이 되나? 불성실하면 무슨 상관이 있니? 회사에 보탬이 되야지” 아주 유명한 얘깁니다. 하나님이 정확하게 사람을 보십니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일에 복에 내리셔야 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셔요 그리고 거두실만한 사람에게 거두시는 것이니 절대로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셔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 사람을 기뻐하시는것과 그리고 하나님이 그의 에 복 주시는 것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거죠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앞에 섬김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항상 균형있게 두 가지를 강조해요 충성과 지혜! 아주 충성 러운면서도 동시에 아주 지혜로워서 나님이 주신 자원들을 낭비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께 복을 내리시고 그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케 하시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이 선지자가 그렇게 회의주의자였는데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이 어디에도 안계신것 같고 처처에 불법과 악이 난무하는 세상이 하나님의 통치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 같은 그런 무정부적인 느낌을 받았던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시금 열렬히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하나님이 마음을 먹으시면 하나님이 없는것 같은 역사의 상황도 수 년내에 돌이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어요 이 믿음은 3장에서 점점 상승해서 3장 마지막에 가면은 무화과 잎이 마르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우리에 송아지없고 외양간에 짐승이 없어도 여호와를 즐거워 하리라는 찬송으로 이어집니다. 사실 위와 같은 비극적인 상황들은 어떻게 발생한 상황이냐 하면 하나님이 이 불법을 행하는 이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해서 생겨나는 미래의 황폐한 상황이거든요 이 황폐한 상황을 전망하면서 이 선지자가 기뻐하는 것이에요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들어날 수만 있다면 이 육신의 나라는 껍질처럼 부수어 져도 거기에 들어나는 하나님의 통치의 증거를 보면서 나는 하나님을 기뻐하겠습니다 라는 최고의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이 하박국은 C마이너스에서 시작해서 A플러스로 끝낸 사람이에요.그러면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었느냐? 2장 20절에 나오는 말씀이 이에 대한 답이에요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찌니라" 선지자가 이걸 몰랐던 것이에요 1장에서 보면은 하나님이 안계신것 같은 깊은 신앙의 회의주의에 빠지게 되요 그때 선지자의 눈이 어디에 있었는지 살펴보십시오 그 포커스가 이 세상, 왕궁 그리고 하나님없는 이 세상 나라에 있었어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왕궁, 정치가들이 결탁하여 밀담을 나누는 밀실, 이런데를 보니까 어디에도 하나남이 계시지 않아요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이길것이라고 하는 추호의 증거도 보이지 않는거에요 그래서 1장에서 크게 낙담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를 좀먹고 팔아먹는 악인들이 번영하고 의인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깊은 회의주의에 빠지게 되는거에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요 그게 뭐냐 하면은 “여호와는 성전에 계시니 천하는 잠잠할 지어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거죠 그래서 보면은 회의주의가 팽배하고 하나님이 어디에도 없다는 이 배교적인 사상이 충만한 시대에도, 시대를 연구하던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집, 하나님의 성전에서 주님의 은밀한 성품을 알고 교통하던 사람들은 회의주의로 가득한 시대를 이기면서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의 비밀을 터득할 수 있었던 것이에요 마지막 때에는 상대주의와 그리고 회의주의가 온 세상에 누룩처럼 번지게 되요 그것을 막는 유일한 도구는 교회에요 교회가 교회될 수 있는 것은 교회가 대중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사람들이 그 교회에 발을 들여놓을때 마다 오직, 여기서 오직은 그러나 여기도 하나님이 없고 저기도 하나님이 없는것 같을때 그러나 하나님은 그 성전에 계시도다 하는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에요 그 일이 참 중요한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다름이 아닌 진리의 힘이에요 그래서 그 성전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임재를 경험하는 그것이 회의주의적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참 훌륭한 비결이에요 교회의 역사를 보면은 어느 시대던지 참된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훌륭하게 이 경건한 삶을 살았던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은 절대로 오래가지 않아요 한 세기를 넘어가지 못해요 15C 화란에서 나데레 레포르마티에 라고하는 운동이 일어나요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일어난지 30년쯤 되었을때 종교개혁의 정신이 쇠퇴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면서 그때에 화란을 중심으로 보이티우스라고 하는 아주 훌륭한 개신교 신학자가 이 새로운 개혁운동을 일으켜요 그래서 철저한 엄격주의를 재창을 해서 그래서 아주 엄격한, 성경의 규율에 따라 살아가는 삶을 주창하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소그룹 모임을 주창해서 철저하게 경건을 가르치면서 제자들을 양성해요 이 사람은 아주 뛰어난 중세 신학의 대가였고 개신교의 거두였어요 그가 철저한 개혁운동을 일으키게 되요 후일에 그게 데보치오 모델리오 라고하는 그 화란의 경건주의의 시조가 되고 그게 독일에 까지 영향을 미쳐서 한 1세기 반 이후에 이 진젠도르프, 빌립야고슈페너에 의한 독일 경건주의의 뿌리가 되요 거기에 비해서 여기는 철저한 개혁 신학에 입각한 경건 운동이었지요 한 세대 뒤에 가서 화란이 세속화되면서 이 사람의 엄격한 삶의 가르침을 다 거절합니다. 진리는 언제나 그런것이에요 그래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오직 정사와 권세와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한 것이라’ 그래서 성전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끊임없이 경험하는 영적인 축복이 없이는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기대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여러분 자신이 이 교회에서 하나님이 과연 여기 계시구나 드넓은 이 세상에서 오는 수많은 회의주의를 이 교회안에서 만나는 하나님에 대한 경험으로 이겨나가는 이러한 영혼의 참된 은혜, 이것이 없이는 우리도 별 수 없는 사람들이다 라는 것이죠 그래서 금년 한해 동안에 교회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서 세상의 회의주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여기 살아계셔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구나 그리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일을 맡기셨으니 이 일에 놀라운 부흥을 하나님이 주실것이다 라는 소망을 가지고 크고 위대한 일도 기대하면서 한해를 시작을 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