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용기를 잃을 때
(2004-2005년 설교모음)
설교기간|2004-2005년
편집내용|녹취원본
출 력 일|2013년 3월 23일
목 차
1. 주를 인하여 고난 받는 자(마5:11-13) 2004.12.12 교직원예배 1
2. 옛 것을 잊고 새 일을 시작하라(사43:18-19) 2005.1.4 교직원예배 9
3. 곁에 계셔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딤후4:17) 2005.1.25 교직원예배 12
1. 주를 인하여 고난 받는 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1-13).”
예로부터 한 신자가 박해를 받는 것은 참된 신앙을 가진 중요한 표지였습니다. 시대가 강한 배도와 핍박이 교차하던 시대였으니 그렇겠지만 그래서 마틴 루터가 말하기를 참된 설교자의 자격 요건을 들 때 그는 반드시 박해받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시대는 그 때와 지금이 많이 다르지만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박해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것입니다.
박해가 없는 이유는 오직 두 가지인데 하나는 세상이 주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서 살아가는 세상으로 변화되었든지 아니면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동질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타협하고 살아가고 있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난을 받는 이유가 진리 때문에 박해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격의 허물 우리의 부족 심지어는 우리의 죄 이웃에 대한 사랑 없음 우리의 부도덕 이런 것들을 통해 받는 우리의 고난과 고통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들이 고난을 받고 우리들이 핍박을 받기도 하지만 여기서 오늘 이야기하고 있는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박해가 아닙니다. 오늘 여기에 보니까 ‘나를 인하여’라는 말을 예수님이 맨 앞에 첨가하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욕을 먹고 박해를 당하고 거스려 너희를 말하게 될 때 그 때에 기뻐하라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복을 주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인하여’라는 것이죠. 분명히 예수님을 인하여 고난을 받게 되면 그것이 큰 상급이 된다 라고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항상 고난을 이야기 하고 핍박을 이야기 할 때 배도의 시대에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는 순교의 현장만을 이야기합니다. 모든 순교의 시대를 경험한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모든 순교는 하나님의 은사라고 해요.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아주 특별한 은사인데 이러한 순교는 하나님께서 아무렇게나 살던 신자들을 어느 한 순간에 나타나서 갑자기 강력한 믿음이 솟아나게 하셔서 순교를 당하게끔 하시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평소에 평화로운 환경에서 믿음을 지키기에 분투하고 양보하지 않고 고난을 받으면서 신앙의 순수함을 지키려고 했던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 순교하는 것이지 얼마든지 타협하면서 살아가던 사람이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죽음 앞에서 순교하게 되는 용기를 발하는 적은 없다 이것이에요.
그러면 결국 우리에게 적용하면 어떤 가르침이 되겠습니까? 우리가 매일 매일 우리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복음의 빛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갈 때에 그 때에 매일 매일 우리들이 살아갈 때 항상 우리가 양보하지 않는 신앙, 그리고 이 세상에 그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이 주신 자리에서 그분의 뜻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우리의 중요한 존재의 목적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분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그런 사람들이 순교하고 그런 사람들이 고난을 받는다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각자 행한 바를 따라 상을 받을 터인데 그 때에 우리들이 고난 받은 것인지 주님을 위해 고난을 받은 것이 아주 중요한 상급이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 남들이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많은 힘을 쏟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많은 고통을 수반하고 절제를 수반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포기하는 희생을 동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위해 많이 손해 본 사람, 그 사람에게 상급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여러 곳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어디에 서있든지 하나님을 잘 섬기며 변함없이 사는 사람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래서 내가 동료나 후배 목사들을 만나면 늘 대화할 때 이야기 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섬기고 헬퍼가 되어서 담임 목사와 동료 교역자들과 성도들을 섬길 텐데 꼭 그런 사람을 후에 동역자로 만나게 된다고. 어느 교회 목사님이 그러셨대요. 부목사님 한 분이 하도 요령을 피우고 신실하지 않으니까 지가 몇 년 뒤에 나가서 목회 할 텐데 더도 말고 그만두지도 말고 모두 자기 같은 부교역자들만 모여 봤으면 좋겠대요. 그럼 아마 뒤집어 질 거라고.
하나님이 정말 자기가 하나님 섬기는 대로 하늘에서 뿐만 아니고 이 땅에서도 복을 주십니다. 근데 그렇게 섬기기 위해서는 많은 고난이 필요해요. 교회 와서 아무것도 안 섬기고 주일날 달랑 와서 예배드리고 축도하기 전에 도망가면 교회 안에서 마음 상할 일도 없어요. 아는 사람도 없고. 그러나 섬기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요.
내가 아는 목사님이 간 지 얼마 안 돼서 목사님이 굉장히 힘들고 중요한 일을 맡기셨대요. 다른 사람들이 다들 6개월가량 걸려야 한다고 생각한 일인데 한 달 만에 밤새워서 그 일을 해 냈어요. 그랬더니 모든 동료들이 자기를 미워하더래요. 왜냐하면 네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러면 결국 우리는 할 수 있는데 안한 것이 되지 않았느냐 얼마나 미워하는 지.. 교회를 떠나고 싶을 정도로 1년 동안 괴롭힘을 당했대요.
오늘 새벽에도 설교 말씀이 나왔어요. 사도들이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붙잡혀가서 심문을 당하고 말했습니다. 너희 말을 듣는 것이 옳겠느냐 하나님의 말을 듣는 것이 옳겠느냐 생각해보라. 누구의 사람이냐 하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섬기려고 하면 항상 고통이 뒤따라요.
그리고 그런 고통이 동반되는 상황에서 멈추면 더 이상 고통은 오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의 사역의 질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잘 보여주는 거예요. 두 개가 마치 상관이 없고 대립 상태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 안돼요. 물론 특별한 경우에는 사람이 일은 열심히 하는 데 인간이 도대체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되먹지도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지요.
육군사관학교 가면 학생들이 외부인에게 잘 보여주는 데가 연병장이에요. 축구장 하나 될 만한 연병장인데 거기서 국기 강하식을 매일 합니다. 모두 모여서 5시 되면 아무 것도 안 해요. 국기 강하만 해요. 그런데 거기 잔디를 쭉 심었어요. 나 같으면 그런 잔디 안 심을텐테 - 나 같으면 그런 잔디 안심을 거예요. 질 좋은 양 잔디 심으면 되는데- 풀밭은 매일 잡초가 나요. 그래서 하루에 한 번씩은 아니고 아마 사흘에 한 번씩은 그 축구장 넓은 데를 이쪽저쪽에서 쭉 쪼그려 앉는 거예요. 그리고 요만한 구간에서 잡초를 뽑으면서 전진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프라인 쯤에서 만나는 거예요. 뽑아서 옆에 놓으면 뒤에서 갈코리로 챙겨 오면 3일에 한 번 뽑는데도 몇 리어카씩 나와요. 그런데 뒤에서 보잖아요. 비록 방위들이지만 인간성이 다 보여요. 애가 성실한 애는 다 뽑으면서 가요. 잡초는 계속 쌓이고 그 친구가 지나간 자리는 깨끗해요. 그런데 방위 올 자격도 없는 개기는 친구들 있어요.
막대기 들고 탁탁 치면서 이거나 뽑고 말이지 하면서 심지어는 뽑기 싫으니까 털썩 앉아서 다른 사람이 뽑은 잡초를 갖다가 자기 뒤에 흘리면서 앉아서 잡초야 모두 나오너라 내가 뽑지 않아도 모두 나오너라 하면서 지나가요. 뒤에서 보면 한 쪽에는 파란 잔디가 나오고 다른 쪽에선 삐죽삐죽 다 튀어나와요.
나는 그걸 보면서 어린 나이지만 너는 인생 살아도 회사 들어가서도 매일 고생 안하고 살 궁리만 하고 살거다 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확신합니다. 그 사람들이 잔디 뽑은 방식대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확신해요.
그러니까 오늘 여기 보면 핍박받고 고난 받는 이야기가 나오는 데 갑자기 그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이게 무슨 이야기 같아요? 이 소금이니 빛이니 하는 두 개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한데 붙은 얘기예요.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세상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빛이 아니고 소금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분명하잖아요?
그게 뭐냐하면 팔복의 사람들만 빛이요 소금입니다. 빛이 되어라가 아니라 너희는 빛이라. 직설법이에요. 본질 자체가 주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어서 어두운 이 세상에 빛을 비추고 썩는 세상에 항거하며 거기에 소금으로 살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변화된 사람들이고 여기 팔복에 나오는 사람들은 변화된 인격의 특성이에요.
그 중의 하나가 뭐냐하면 그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 삶이에요. 주님을 위해서 깊이 변화되고 예수에 사로잡힌 사람은 어려움이 올 때 참아요. 왜냐하면 지금 내가 당하는 어려움과 고난이 주님을 섬기며 살아야 한다 라고 하는 절대가치보다는 사소한 거예요. 언제든지 덜 중요한 것은 더 중요한 것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것이지요. 절대가치를 위해 상대가치는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할 것 같으면 고난이 오고 어려움이 올 때 편안한 길을 행하고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는 가운데 큰 어려움이 오면 그 길을 회피하고 더러운 마음이 있는데 그 마음을 깨끗 게 하기 위해 죄를 죽이고 순전한 사람이 되려고 분투하지 않고 그리고 죄와 비참한 일들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자기 안의 불의를 보는데도 그것을 인해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며 눈물 흘릴 줄 모르고 고통해 할 줄 모르고, 불의가 가득한 세상에서 의로운 세상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하지 않고 적당히 욕하면서 묻어서 살아가는 이러한 삶은 뭘 보여주는 거예요?
그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충분히 변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거예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그 언약 백성으로서의 독특성을 유지하며 살아가기에는 받은 변화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우리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쇄신하는 은혜와 우리의 인격의 특징이 분리되지 않고 주님을 섬기면서 사는 우리의 실제적인 삶이 나뉘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항상 그렇게 생각을 해요. 날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자기에게 맡겨진 일들을 더 완전하게 성취하기 위해서 고난도 참고 시련도 견디고 희생도 감수하고 거기서오는 깊은 외로움도 참고 인내하면서 걸어가던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도 역시 자기의 독특성을 유지하면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냐 하는 것은 앞으로 그 사람이 어떻게 ,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나아가서 그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 자녀로서의 독특한 맛을 가진 그런 사람으로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우리들이 요즘 흔히 매니아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잖아요. 오디오 매니아, 카 매니아, 레이싱 매니아 등 많이 합니다. 그런데 매니아의 세계에 들어가면 그들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즐거움도 크지만 그것을 위해 그들이 얼마나 많이 투자하고 분투하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럴 기회가 올 리는 없지만 한 번 제가 해보고 싶은 것을 카 레이싱인데 할 가능성이 별로 없죠. 스타 tv같은데서 나오는 것은 우스워 보여도 350km 짜리입니다. 상상이 안 가는 것이지요. 부산까지 한 시간 20분 정도면 내려가는 속도예요.
살인적인 속도입니다. 포물려 카가 1억 5000만원... 죽기 살기 하고 가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운전하기 위해 입고 있는 그 옷이 가장 싼 게 300만원이고 비싼 것은 천 만 원이 넘어요. 방염복 이에요. 레이싱 하는 것 보셨지만 서너 바퀴 돌고 가는 것 보셨을 거예요. 바퀴 뿐 아니라 브레이크 패드까지 한 번 경주하고 갈아버리는 것이에요. 경주 몇 바퀴 돌고 갈아 버리는 것이에요.
버리는 거예요. 어마어마한 투자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세움을 받았다고 할 것 같으면, 그 일을 완성되게 잘 하려고 할 것 같으면 고난이 있습니다. 때로는 박해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고통을 참아야 하는 깊은 괴로움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잘 견뎌야 된다고 하는 것이지요. 오늘날 같은 때에는 적극적 의미에서 뛰어나가서 당하는 고난 보다는 소극적인 의미에서 주님이 자기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안고 내적인 고통과 외적인 시련을 견디면서 훌륭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오늘날과 같이 신앙의 완벽한 자유를 누리면서 살고 있는 이때에 훨씬 더 어울리는 고난의 모델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오늘 같은 시대에는 박해를 받기 때문에 신앙에서 파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패 때문에 파산하는 것이지요. 그것을 잘 지켜 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저는 오웬을 공부하면서 특별히 제 마음을 깊이 흔들어 놓았던 대목이 있어요. 오웬 박사가 여러 곳에서 은혜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 비난을 하다가 어느 지점에 와서는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죄를 죽이고 생각을 미끄러지지 않도록 잘 지키면서 하나님 앞에서 잘 지키는 비결이 뭐냐 하면 일을 잘하는 것이다 하는 거예요.
거기서 반전을 하는 거예요. 개별적으로 주어지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도움을 구하고 그분이 맡겨주신 일들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아파하고 그분이 맡기신 일들을 감수하기 위해서 고통을 감수하고 시련을 견디고 아파하면서 그것들을 감당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그대들의 영혼이 보호된다 라고 하는 것이에요. 생각이 죄에 미끄러지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경성하게 된다는 것이에요.
지금은 예수님의 시대보다도 더 많이 부패하기 쉬운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 세상의 소금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진정으로 이 세상을 빛으로 비추고자 한다면 빛이 되고자 한다면 우리에게는 진정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정말 순종하면서 고난을 받으며 고통을 참으며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목표를 바라보면서 마치 자기를 깎고 완성하듯이 고난과 시련을 이기면서 주님의 뜻을 성취하려고 하는 끈기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는 좋은 인격의 열매는 모두 견디기 힘든 고통과 연단의 과정 속에서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빚어지는 것이지요. 참을 수 있을 때까지만 참고 견딜 수 있을 때까지만 견디는 것은 진정한 인내가 아니고 그것은 참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해요. 그래서 한 번 우리 각자가 잔디밭과 같은 우리 인생의 길에서 우리들이 쪼그리고 앉아 서 잔디를 뽑으며 걸어 온 우리의 인생길을 한 번 돌아봐요.
우리의 섬기는 삶도 우리들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마음을 갖는 것처럼 올곧은 섬김의 길이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 변화되어야 합니다. 약함과 강함은 매우 가까이에 있습니다. 동시에 약함과 악함도 매우 가까이에 있습니다. 약한 사람이 주님의 은혜에 붙들리면 그 약한데서 하나님의 강한 은혜의 능력이 나타나지만, 약한 사람이 은혜에서 멀어지면 악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잘 견디면서 올곧게 주님이 나를 여기 세우셨을 때 부르셨던 그 뜻을 끝까지 인내하며 따라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우리들이 해나갈 수 있고 또 우리 자신도 훌륭하게 성숙될 것이라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저는 얼마 안 되는 목회생활이지만 내린 결론이 그거예요. 사역에도 모두 적용되는 거예요. 목회를 올바르게 하려고 애를 쓰면 그 사람은 거룩해지지 않을 수가 없어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릴 게요. 하나님을 온전하게 잘 섬기려고 애를 쓰면 반드시 그 사람은 거룩하게 변화되어가요. 하나님을 잘 섬기면 우리가 주님의 인격을 닮아서 변해가는 것은 우리 일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의 신앙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거잖아요.
하나님의 일을 잘 완수하면서 고난보다도 더 큰 가치, 시련을 참는 것보다도 더 큰 가치, 주님의 일을 위해서 나의 시간과 재능 심지어는 나의 재물을 허비하는 것보다도 더 높은 가치를 두고 우리들이 믿음생활 해 나가고 신앙생활 해 나갈 때 그 때 우리는 깊이 변화된 사람으로 하나님 앞에 새롭게 빚어질 수 있는 것이지요. 결국은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일생을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인생의 뒤안길에서 발견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주님이 우리를 보시는데 하나님의 사람인가 사람의 사람인가 평가하시는 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 길을 꾸준히 고난과 어려움을 견디고 시련을 참으면서 걸어가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느 청교도는 말하기를 ‘참음’ ‘인내’는 모든 하나님을 섬기는 데 들어가야 할 양념이라고 말했어요. 어디든지 다 들어가요.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의 삶이 온전해지고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을 섬긴 날들이 될 거예요.
언제나 기분 좋고 행복한 섬김의 날 그런 것은 없어요. 늘 기쁨과 고통 외로움과 환희 좌절과 희망과 만족과 고통이 공존해요. 그 모든 것들을 견디며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 옛것을 잊고 새 일을 시작하라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 43:18~19)
옛적 일을 기억하지 말라는 것에서 옛적일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늘 따라다녔던 옛적일 그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자주 떠났던 사람들 주님께 자주 불순종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주님께 징계를 받고 그래서 곤고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독특한 맛을 잃었던 과거, 그런 옛날을 이야기 한다. 이것은 아주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다. 실패의 반복은 우리로 하여금 미래에 대한 모든 희망을 사라지게 만든다. 사실은 실패의 반복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에 대한 기억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사라지게 한다. 20세기 미국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존재가 베이브루드 라는 사람이다. 어마어마한 인기를 끈 사람이었다. 그가 홈런왕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지만, 얼마나 많은 삼진아웃을 당하고, 아웃으로 들어갔는지 그 통계를 알면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홈런을 1000개 친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게임에서 지고 물러났던 사람이다. 과거에 실패하고 과거에 자기가 잘못하고 과거에 자신이 무능한 것은 그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거기에 집착하고 그랬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어떤 소망도 못 갖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실패 속에서 성공한 모든 사람들은 실패를 회피하거나 비겁하게 변명하거나 하지 않는다. 모두 인정했지만 과거에 묶인 사람들은 자기의 꿈을 따라 살 수 없었다. 오히려 과거에 많이 실패했지만, 정직하게 인정했지만, 기억은 과거에 묶이지 않고 꿈을 따라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서 새로운 미래들이 창조된다.
저는 최근에 알렉산더라는 영화를 보면서 감동을 참 많이 받았습니다. 그중 오랫동안 기억나던 대사였다. 역사는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의 몫이 아니라 꿈을 따라 산 사람의 몫이다. 그래서 현실에 안주하면 산 사람들은 역사상 큰 권력을 휘두르고 어마어마한 영토를 소유했어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은 되지 못한다. 알렉산더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나는 고레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종이었다고 생각한다. 알렉산더의 위업은 이 땅의 존재했던 제국의 왕들 천명을 합쳐놓은 것보다 위대한 일을 알렉산더가 이루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였다. 알렉산더의 치열한 정복과 헬레니즘보급의 사명감을 통해서 예수님 오시는 때가 무르익었다. 전 세계가 한 언어로 통일 되었다. 꿈을 따라 산 사람들은 과거에 매이지 않았다.
지난해에 내가 무능하고, 실패하고, 나에게는 이런 성품의 약점이 있으니까, 지난해는 내가 잘못했으니까 이것이 새해를 넘어오지 않는다. 똑같은 고백이 사도바울에 의해서 주어졌다. 내가 한일 곧 뒤에 있는 일을 잊어버리고 오직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 후회되는 길도 많아도 잊고, 과거의 영광과 수치에 묶이지 않고 미래의 꿈에 매여서 산다. 그래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한다. 오늘아침에 말씀을 보면서도 내 마음속에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여러분들 모두 사랑하지만 그러나 내 마음에 있는 여러분들을 향한 이제까지의 느낌을 지우자. 누구에게 일을 맡기면, 불성실하고, 흐지부지하고, 기도하지 않고, 성장한 모습도 지우자. 과거에 매이지 말자. 그 사람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자. 새로운 기회를 맡기자.
이렇게 생각하였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냐하면, 새 일을 내가 행하리라. 새 일을 행할 텐데 너희 편에서는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다. 내가 새 일을 행할 텐데 너희는 준비하라. 그 준비가 과거의 실패 무능 죄악에 메이지 말라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떨어져 나오라. 그리고 이제 새롭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 모든 사역자들 마찬가지지만, 특별히 교역자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픈 것은, 마음 깊은 곳에 깔려있는 패배감이다. 이런 깊은 패배감이 깔려있다. 하나님이 큰일을 행하실 수 없다.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큰일을 행하셨다. 이 꿈은 야망과 질투 성공에 대한 집념으로 꾼 꿈이 아니었다. 계시적인 비전이었다.
요셉이 올 때 그 형들이 “보아라 저기 꿈꾸는 녀석이 온다”그러지 않았는가? 요셉이 꿈을 꾸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가진 사람이었다. 모두 하나님이 그 꿈을 꾸는 사람을 통해서만 일을 이루셨다. 다윗도, 모세도 그리하였다.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옛날에 묶였던 것들과 결별한 사람들.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가는 것을 가로막는 제일 큰 장애는 우리가 어찌 애굽을 떠나 살까 하는 집착, 종살이에 대한 운명적 처지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여러분들에게 정말 부탁하고 싶다. 하나님이 크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것이다. 오늘 여기서 보니까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한다.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이 흐르게 할 것이다. 사실은 그 당시에 가장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이 얘기하고 계신다. 옛날 국가경영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일이 길을 만드는 일과 강을 치수하는 일이다. 중국 등의 모든 문명은 강을 끼고 생성이 되었다. 고대의 역사에서는 강이 범람하거나 비가 오지 않아 한발이 계속 되면 백성들 사이에서는 하늘이 왕을 버렸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비가오지 않거나 홍수가 나거나 하면 제일 먼저 왕이 그 하늘에 석고대죄를 한다. 그것이 고대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광야를 생각해보라. 그 광야에 어떻게 길을 낼 수 있겠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그 광야로 왕래 한다. 사막 어떤 생명의 기운도 깃들 수 없는 그 사막에 물이 흐른다. 사막에 강이 흐르면 사막을 옥토로 바꾼다. 풀과 꽃들 생태계를 만드는, 즉 다시 말해 생명으로 말미암는 번영의 역사.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을 행하심으로 사람들이 오가는 길들이 열린다. 얼마나 놀라운가. 하나님이 그런 일을 행하고 싶어 한다. 광야는 길이 아니어서 안 다녔다. 사막은 물이 없어서 식물을 심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광야와 사막이 지시하는 것은 여태까지 불가능하다고 하는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이다. 거기에 하나님이 위대한 가능성을 심으신다. 길이 아닌 곳에 길을 내시고 아무것도 심을 수 없는 곳에 강물을 흘려 풀과 나무와 꽃과 수많은 열매들을 맺게 하시는 생명으로 말미암는 번영의 역사가 나타난다. 그래서 광야와 같이 메마른 심령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속에 성령의 놀라운 역사로 말미암아 주님 오시는 길이 예비 되고 도저히 이 이상은 안 된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사역, 그밖에 있는 사막과 같은 영역들, 도전해 보지 않고 생명의 역사가 없었던 영역들에 하나님이 생명의 강물이 흐르게 하심으로 놀라운 번영의 역사가 나타난다. 이런 일들을 하나님께서 행하시려 한다.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겠는가? 광야도 주님이 창조하신 것이고 버려진 사막도 주님이 손으로 지으셨다. 광야에도 길이 나서 주님이 걸어가 통치하기 원하시고 사막과 같은 사람들의 마음에도 생명의 강물이 흘러들어가 거기서 주님 만나는 영적인 번영을 이루시길 원하신다. 하나님이 우릴 위해서 그런 놀라운 일들을 계획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에 매인 사람들이 되지 않아야 한다. 과거의 실패, 과거의 불순종, 과거의 불신앙, 시기, 탐욕 분쟁 다툼의 종지부를 찍고 순전한 마음으로 달려가는 그런 백성들이 되어야 한다.
금년 한해는 교회 창년 11주년이 되는 해인 동시에 아마 우리의 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워주시고 우리에게 그런 꿈을 주셨다. 이건 우리들이 자의로 꾼 꿈이 아니라 10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꿈꾸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정말 교회가 흐르는 강물처럼 그렇게 사막과 같이 메마른 땅에 흐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잘 사용하셔야 한다. 과거의 실패 불순종, 무기력한 삶의 고리를 끊고 주님이 여러분의 영혼 안에 그리고 교회를 통해 행하실 그 위대한 일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3. 곁에 계셔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딤후4:17)
모든 사람에게 그렇지만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중차대한 사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 이였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특별히 이방인에게 전파되기 위한 복음 이였습니다. 복음이 이방인만 살리는 것은 아니지만 사도 바울은 특별히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도록 명령을 받았고 이 사람은 이방인에 대한 가장 지독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사람 이였습니다. 그런 사람을 사용해서 가장 미워하고 하찮게 생각하던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입니다. 바로 그 일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는데 그 길이 너무 어려운 길이였기 때문에 동역하는 사람들이 자주 사명을 버리고 바울의 곁에서 떠났습니다. 언제나 그런 일은 있을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위급하고 어려울 때 동역 자들이 또 바울 곁을 떠났고 공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커다란 섭리 안에서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도는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감당해나가는데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두 가지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우선 하나님이 사도 곁에 계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교통과 거기에서 오는 위로를 뜻하는 겁니다. 이 세상에 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연약한 갈대와 같고 어떤 사람이 어떤 일에 있어서 강한 사람처럼 보인다면 그는 저절로 강한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 그에게 맡겨주신 사명 때문에 강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강하게 해 주는 겁니다. 바울의 생애가 다 적힌 것은 아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바울과 및 바울의 이름과 함께 하셨던 것을 봅니다. 유로굴라 라고 하는 풍랑을 만났을 때도, 옥에 갇혔을 때도 함께 계셨습니다. 아덴에서의 전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크나큰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고린도로 갔을 때 거기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우리의 가장 커다란 자산은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자산이고 밑천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기뻐하시는 사람 곁에 있고 싶어 하십니다. 주님이 항상 우리 옆에 계시는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이 되 야 합니다. 그러면 고난 속에서 시련 속에서,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어려운 상황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주님이 곁에 계셔서 그를 강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강하게 하시고 ,마음을 굳세게 하시고, 환경도 열어주셔서 처음 그에게 주셨던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사명감이 투철한 사람들은 사명감이 투철한 만큼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되는 은혜가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이 힘을 안주셔서 사명감이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명감을 잃어버리니까 우리 안에 부패하게 하는 작용이 주님이 주시는 신령한 힘을 소진시키기 때문에 힘이 없는 겁니다. 해야 할 일에 대한 목표가 분명하고 자기가 그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고 그 일을 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으며 그 일을 잘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 참된 목표라고 생각하면 하나님이 힘을 주십니다. 사명감이 강한 사람들은 그 사명감을 이룰 수 있도록 그들에게 힘을 주십니다. 영혼, 마음, 환경, 육체에 힘을 주시고 길을 열어주셔서 자기의 부르심을 감당하게 한다는 겁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은 반드시 그의 인내에 의해서 입증이 됩니다. 자기가 좋아서 계속 할 수 있고 어떤 인내도 필요하지 않는 일이 있다면 그건 오락이지 사명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우리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반드시 인내가 필요하고 그렇게 인내 할 때 그에게 힘을 주십니다. 때로는 인내가 너무 크고 자신의 분량을 넘어서는 정도의 인내가 요구되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이 여겨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그 고통 속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참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도는 잘 참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고난 중에 강건하게 하시는 힘을 주셨습니다. 동역 자와 사랑하는 지체들이 자기를 무거운 사명의 자리에 내버려두고 떠났을 때 닥쳐왔던 외로움이 오히려 주님을 더 친밀히 만나는 계기가 되었고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힘없는 것이 오히려 강건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로 이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축복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한해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공급해주시는 은혜와 복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에 용기를 잃을 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