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머리를 드실 때
(2011년 설교모음)
설교기간|2011년
편집내용|녹취원본
출 력 일|2013년 3월 23일
나의 머리 드실 때 1. (2011. 04. 18. 새벽 십자가 사경회)
목 차
나의 머리 드실 때 2. (2011. 04. 19. 새벽 십자가 사경회)
나의 머리 드실 때 3. (2011. 04. 20. 새벽 십자가 사경회)
1. 고난 속에서 찾는 하나님(시3:1-2) 2011.4.18 십자가사경회(새벽) 1
2. 나의 머리를 드실 때(시3:3) 2011.4.19 십자가사경회(새벽) 7
나의 머리 드실 때 4. (2011. 04. 21. 새벽 십자가 사경회)
3. 나의 방패와 영광이신 하나님(시3:3) 2011.4.20 십자가사경회(새벽) 13
4. 환란 가운데 부르짖으라(시3:4) 2011.4.21 십자가사경회(새벽) 17
5. 붙드시는 하나님(시3:5-6) 2011.4.22 십자가사경회(새벽) 22
나의 머리를 드실 때 26
나의 머리 드실 때 1. (2011. 04. 18. 새벽 십자가 사경회)
나의 머리 드실 때 2. (2011. 04. 19. 새벽 십자가 사경회)
나의 머리 드실 때 3. (2011. 04. 20. 새벽 십자가 사경회)
나의 머리 드실 때 4. (2011. 04. 21. 새벽 십자가 사경회)
나의 머리 드실 때 5. (2011. 04. 22. 새벽 십자가 사경회)
1.고난 속에서 찾는 하나님
I. 본문해설
- 압살롬의 반역을 당한 때
- 신하들의 배반과 백성들의 조롱
II. 고난 속에서 만나는 대적들
A. 많은 대적들
- 고난 속에 등 돌린 민심
- 영광이 사라질 때 악인들이 일어남
- “네 속을 보아라”하고 말씀하심
B. 대적들의 비난
-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 “하나님이 저를 버리셨다”
- 이 도움은 언약적 도움, 불변적 사랑의 단절
III. 하나님을 불러야 할 때
2.내 머리를 드실 때
I. 본문해설
II. 내 머리를 드실 때
A. 여호와여 주는
B. 내 머리를 드시는 하나님
III. 하나님을 바라라
3.나의 방패와 영광이신 하나님
I. 본문해설
II. 환란 가운데 부르짖음
-고백에서 이어지는 기도의 실천
-기도는 상념, 막연한 의존, 무계획한 희망이 아님
-구체적인 부르짖음; 직접적 기도
-부르짖음의 기도; 심중의 절박함, 상황을 통해 하나님과의
ALIENATION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나아감
-영혼의 유익한 기회로 삼으심
III. 응답하시는 하나님
-응답을 주시는 방식
1)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함
2) 환경을 열어 주심
-성산에서 응답하심
1) 하나님의 언약
2) 구원의 그리스도
IV. 하나님께 기도하라
4.환란 가운데 부르짖으라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시 3:4)
I. 본문해설
II. 환란 가운데 부르짖음
-고백에서 이어지는 기도의 실천
-기도는 상념, 막연한 의존, 무계획한 희망이 아님
-구체적인 부르짖음; 직접적 기도
-부르짖음의 기도; 심중의 절박함, 상황을 통해 하나님과의
ALIENATION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나아감
-영혼의 유익한 기회로 삼으심
III. 응답하시는 하나님
-응답을 주시는 방식
1)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함
2) 환경을 열어 주심
-성산에서 응답하심
1) 하나님의 언약
2) 구원의 그리스도
IV. 하나님께 기도하라
5.붙드시는 하나님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 하리이다”(시 3:5-6)
I. 본문해설
II. 부르짖는 자를 붙드시는 하나님
- “누워 자고 깨었으니” 삶의 불안정을 보여줌.
- 붙드시는 하나님
1) 평안을 주심으로써
2) 원수들을 물리쳐 주심으로써
III. 환란 속에서 담대할 수 있음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함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침
-정결해진 영혼으로 하나님께 순종함
IV. 의지하는 자의 하나님
나의 머리를 드실 때 26
나의 머리 드실 때 1. (2011. 04. 18. 새벽 십자가 사경회)
나의 머리 드실 때 2. (2011. 04. 19. 새벽 십자가 사경회)
나의 머리 드실 때 3. (2011. 04. 20. 새벽 십자가 사경회)
나의 머리 드실 때 4. (2011. 04. 21. 새벽 십자가 사경회)
나의 머리 드실 때 5. (2011. 04. 22. 새벽 십자가 사경회)
1.고난 속에서 찾는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시 3:3)
녹취자 : 김세나
I. 본문해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은 다윗의 시입니다. 이 시를 지을 때, 그는 자기의 인생 가운데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를 지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압살롬은 자신의 아들이었고 이러한 반란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다윗이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압살롬의 반역이 일어났을 때, 벗은 발로 황망히 도망하지 않을 정도의 위기를 만났던 것입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더 뼈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은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이 아주 면밀하게 반역을 준비하고 거사를 도모했을 때에는 자기를 이제껏 사랑하고 신뢰하고 따르던 많은 부하들이 배반을 했고, 자신을 이제껏 존경하고 통치에 복종하던 헤아릴 수 없던 많은 백성들이 마음을 돌려 자기를 조롱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깊은 고난 속에서 만나는 대적들이 누구이고, 또 무슨 일로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는지를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II. 고난 속에서 만나는 대적들
A. 많은 대적들
제일 먼저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많은 수의 대적들이 일시에 일어났습니다. 아마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다윗 왕처럼 백성들에게 존경과 신망을 받고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던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후로도 이 다윗은 이스라엘 왕의 모든 행실과 하나님 앞에서의 왕국을 다스리는 태도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었습니다. 선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나라를 은혜로 다스린 왕들은 다윗의 길로 행하였다라고 하였고, 사악한 길로 간 사람들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였다고 기록할 정도로 후대의 왕들에게 말하자면 규범이 되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여러분도 너무도 잘 아는 이야기이지만, 이 다윗은 그야말로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나라를 시작할 때에 억울하고 빚지고 고통 받는 사울의 치하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안고 정말 목자의 마음으로 자신의 백성들을 돌보면서 민심을 규합하여 정말 위로와 사랑이 있는 통치로 자기의 나라로 이루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 세우셨지만, 나라를 세우는 것은 다윗의 몫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훈련시킨 그 신앙을 따라서 하나님이 다윗을 돌보던 마음으로 사랑하며 통합하며 이끌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이제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 부으셨지만 밑에 있는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얻으며 신망을 받는 가운데 나라를 구축한 인물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운이 좋은 것이 아니라 그는 전쟁터에 나아가 싸우고 또 싸우고 하면서 그러면서 자신의 나라를 형성해 갔던 것입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고난의 때에 그는 이중으로 쓰라린 배신을 맛보았습니다. 하나는 자기의 사랑하는 핏줄인 아들이 자기를 향해 등을 돌리고 자기를 죽이고 왕이 되고자 하는 의도를 품은 것이었고, 또 하나의 아픔은 이 큰 고난 속에 자기에게 등 돌린 민심을 직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광이 자신의 삶 속에 사라질 때, 수많은 악인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영광tm럽게 나라를 다스리고 통치할 때에는 복종하던 그 많은 신하들과 존경하던 많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지자 악인들이 일어나고 수많은 백성들이 등을 돌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압살롬의 편에 서서 반란을 주도한 장군들 중에는 다윗이 그가 자신에게 등을 돌리라고 하는 것은 상상한 적이 없을 정도로 신뢰를 하던 사람들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을 우리들이 위대한 인물이라고 보는 이유는 완벽하고 흠이 없이 나라를 다스리고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윗을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게 자기가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자기가 지극히 사랑하던 백성들에게 등 돌림을 당하고 고통을 받고 있을 그 때에 자신에게 그러한 괴로움을 안겨준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삶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면서 자신을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이 끔찍한 반역과 반란들을 이 모든 모형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하나님께서 이 나라의 수많은 백성들이 너를 존경하고 사랑하다가 일시에 장수들과 함께 일어나 너를 대적하고 너를 죽이려고 반역을 일으키는 것과 같이 네 마음속에도 이런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을 보아라고 말씀하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고난스러운 상황을 삶의 상황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찰하였던 것이 다윗의 위대함이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영광이 사라질 때, 우리 안에서 수많은 죄악들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그 영광이 사라질 때,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수많은 대적들이 일어나서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괴로움을 주는 일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광이 그러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영광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지금 한나라의 왕으로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정말 자랑해야 할 영광은 부귀와 영화, 군대들의 수의 많고 적음 그리고 자기를 신뢰하는 장수와 부하들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윗이 왕이 되기 전 사울에게 쫓겨 이 광야, 저 굴로 도망을 다닐 때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누가 다윗을 따르는 사람이 있었으며 누가 다윗을 위해서 싸워주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홀홀단신으로 도망을 다니고 때로는 미친 짓을 하면서 수염에 침을 바르고 연극을 하여야 했지만, 그러나 그 수많은 대적들에게 고통을 받으면서도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이 언제나 그를 지켜 주셨고, 악인들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고통을 주었지만 내가 다윗의 위를 영영히 서게 하리라고 한 주님의 약속은 지켜졌습니다. 그래서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았으나 다윗의 삶은 영광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디서나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 주님이 가까이 계셨고 배신을 당하거나 악인들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할 때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아파했지만 그 눈물과 고통을 인해서 아버지께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영광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가엾은 사람들은 핍박을 받거나 고난을 많이 당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정말 가엾은 사람들은 이 큰 고난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도 없고, 자신의 음성을 하나님께 올려 드릴수도 없게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사람들이 정말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다윗이 바로 그러한 깊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이 고난 속에서 악인들은 다윗을 에워싸고 있었지만, 그 원수들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영역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의 하나님을 부르고 그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었습니다.
(찬양)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내 심사를 통촉하시고 부르짖는 소리 들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내가 주께 기도하니 주께서 내 소리 들으시니
간절히 하나님을 불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변함없이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사랑할 수 없는 인간들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종종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때리십니다. 하나님이 사실은 당신의 손으로 우리의 마음을 때리시는 것 보다는 우리의 지성에 건네는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때릴 때 우리가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주일 설교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베드로는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이루신 구원의 경륜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너희가 못 박은 그 예수가 바로 하나님에 의해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느니라, 설교했습니다. 언제 베드로의 손에 채찍이 들려 있었습니까. 베드로의 손에 무슨 찌르는 칼이 들려 있었습니까. 베드로는 그냥 말했을 뿐인데, 저희들의 양심은 깊이 찔렸고 마음은 채찍질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이어야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세상에서 정말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다루어지는 사람입니다. 다루어지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B. 대적들의 비난
아이들에게 매질을 하는 것이 약이 될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아이를 쳐다보면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이에게 더 커다란 매질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러한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펴고 그 속에서 찔리는 사람, 그래서 삶의 뿌리까지 흔들려 주님을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온전해 보이는 삶 속에서 죄의 뿌리를 찾아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그렇게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환경의 변화를 통해서 때려주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정말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마 우리가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런 점에서 다윗이 이때에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다윗의 마음을 한번 때려주셔야 할 필요가 있던 때였습니다. 다윗이 빗나가고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멀어져서 였는지 혹은 주님을 의지하고 살았지만, 다윗의 신앙을 다시 한 번 불일 듯 일어나게 하여 말년에 주님 한분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순결을 주시기 위하여 그러셨는지 우리는 이 성경만을 보고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들이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마음을 때려 주시는 이것이 그 당시에 꼭 필요한 하나님의 섭리였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수많은 대적들은 다윗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마음을 가장 찔렀던 이 대적들의 비난은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받지 못한다하는 비난이었습니다. 이것은 대적하는 이 원수들이 다윗의 얼굴에 대놓고 말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선동하면서 퍼뜨린 유언비어였던 것입니다. 자신들도 함께 사울이 어떻게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멸망당하고 다윗의 가문을 일으켜 나라를 삼으셨는지를 다 본 사람들인데, 그리고 함께 힘을 합쳐서 왕권을 접수한 사람들인데 그들이 이스라엘의 왕, 다윗의 왕권의 정당성을 부인하고 이제와서는 하나님이 다윗을 악인처럼 생각하고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외쳤던 것입니다. 이것은 돌려서 말하는 것이었지만, 의미는 하나님이 저를 버리셨다. 이 말이 다윗의 마음속에는 뼈아프게 다가왔기에 그는 황망히 피난을 가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때린 이들의 비난을 이 시 속에 기록을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버리신 지도자가 말로가 어떻게 되는지를 자기의 전임자, 사울의 생애를 통해서 뼈저리게 보았던 것입니다. 한 때는 하나님 앞에 준수하고 최초의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던 그 사람이 주님이 그를 버리시자 악신이 그에게 임해 귀신들린 자가 되었고, 흉악하게 그렇게 멸망의 길을 간 사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 다윗은 자신에게 이 모든 것을 자신에게 이 모든 것을 닥쳐온 모든 이 비난을 보면서 그는 마음이 쓰리고 아프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무시할 수 없는 비난이었던 이유는 자신이 당하고 있는 그 고통스러운 현실이 마음까지 후벼 파는 무서운 고난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대적들의 이 말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어떠한 언약적인 도움을 받을 수가 없고 불변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다 라고 하는 고발이었습니다. 수많은 믿었던 사람들은 등 돌렸고 자기를 정말 사랑했던 사람들은 자기를 지켜줄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왕이여 빨리 몸을 피하시옵소서 하고 기껏해야 피난길을 열어주는 연약한 사람들 밖에는 자신을 위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때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단 하나, 하나님 한분을 우러러 바라보고 그 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하고 난 후에 여호와여,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을 다시 불렀습니다. 주는 나의 방패요, 나의 영광이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몇 해 전에 아침에 마당에서 시편 3편을 읽으면서 한 없이 울었습니다. 정말 우리의 영광이 땅에 떨어지고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등을 돌릴 때, 믿고 의지하던 사람들이 나의 가슴에 칼을 겨눌 때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때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습니다. 하나님과 매일 매일 은혜 속에서 사는 것, 그래서 주님의 도움으로 매일 매일 이기면서 생활하는 것, 이것이 사람이 보기에는 큰 영광이 없는 것 같지만 결국 우리 언약 백성들의 참된 기쁨과 행복은 이 세상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영광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영광은 십자가 밑에 감추어져 있고,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아무 영광 없어도 우리가 그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며 그 때에 이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주님과의 교제가 있고 거기에 기쁨이 있고 용서와 사랑이 있으면서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들의 마음속에 찾아오십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고난과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실망, 마음을 후벼 파는 것 같은 고통과 괴로움들은 대적들과 대적하라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들을 움직여 여러분들의 마음을 때려서 그렇게 고난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을 여러분들의 마음을 한번 치료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대적들이 일어나고 고통이 넘칠 때에 이러한 괴로움으로 인해서 네 마음이 고통이 넘치지, 너 때문에 나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너도 한번 네 속을 들여다 보거라 하고 우리의 마음을 때려 주시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에 신앙이 없을 때에는 괴로움을 당하면서 고난 때문에 아파하고 신음하지만 주님이 우리의 마음 까지 때려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앙망하게 하실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세상에서 당하는 많은 고통의 아픔과 함께 그 고통과 아픔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같은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간섭하시는지를 우리가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외롭고 고통을 받기 때문에 비애를 느끼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아주 아름다운 신앙의 관계들이 있었는데 주님을 너무나 멀리 떠나왔다는 자신의 신앙에 대한 후회에서 오는 비애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비애는 마음에 겹쳐서 고통을 더하고 심령을 여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님을 붙드는 시간인 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아 보이는 것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나빠 보이는 것을 통해서 좋은 것을 주십니다.
III. 하나님을 불러야 할 때
다윗은 이 마지막 압살롬에게 받은 이 반역을 통해서 자신의 생애 가운데 살을 도려내는 것 같은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압살롬이 결국 반역을 일으키고 죽었다는 보고가 올라왔을 때 문 위에 울면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라면 하고 울부짖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자식은 아비를 죽이고 왕이 되겠다고 칼을 겨누었지만 그 아들이 죽었을 때에 아들은 이미 죽고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극도의 고난을 자기가 너무나 사랑하는 다윗에 주셨고, 이것을 통해서 그는 자신의 인생의 황혼에 마지막 큰 부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마음이 그렇게 녹듯이 움직일 수 있었던 사람에게 왜 그 끔찍하고 살을 에는 것 같은 고난이 필요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한번 여쭤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은 다윗이 노년에 받은 이 큰 시련을 통해서 마지막 부흥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성경에는 성령으로 시작했으나 육체로 마친 왕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히스기야 임금도 그랬고, 아사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성령으로 시작했고, 잠시 육체에 흐르는 것 같았으나 인생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이런 고난을 통해서 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바로 이러한 고난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했던 이 다윗은 쓰라린 이 고난을 통해서 마음을 정결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향한 목동 시절의 신앙을 다시 되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고난을 통해서 다윗의 마음을 때려 주셨기에 그는 이 세상 다윗의 나라, 사람들로부터 받는 영광, 왕에 앉은 그 보좌의 영광을 버리고 오히려 자신의 왕국을 통해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시는 영원한 그리스도의 왕국을 더 사모할 수 있는 영안이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무엇 하나 안 주신 것이 없이 모든 영광과 권세를 다 주셨지만, 그것에 탐닉하여 신앙을 버리고 주님과의 관계에서 미끄러지는 대신에 그는 오히려 자신의 왕국의 영광을 뒤로하고 이 왕국의 껍질이 깨어지고 서게 될 그리스도의 나라를 바라보고 그 그리스도를 즐거워하며 주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수시로 이러한 상황을 만납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환경, 그리고 내 마음을 찌르는 나의 고통스러운 상황들, 때로는 은밀히 감추어진 죄악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야위고 때로는 내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삶의 고단한 상황 때문에 마음 문이 여의어져 주님께 쓰러질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받는 오해와 시기로 말미암아서 우리의 마음이 찔릴 때가 있고, 그리고 우리가 깊은 고통을 당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던 다윗을 기억해야 합니다. 수많은 대적들이 일어나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대적들이 누군지 알아보고 그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어느 때에든지 하나님은 자신을 버리지 않으시리라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눈물로 고백하기를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로다 노래했던 것입니다.
(찬양)
폭풍 후 흑암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고난이 오고 마음이 산란하고 살아있는 것이 아플 때마다 하나님이 나를 기다리시는 하늘나라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잠시 잠깐 후면 이 땅의 고난과 괴로움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고난도 이기고 시련도 견뎌야 합니다. 확실한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들이 당신을 부를 때, 응답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겹치고 시련이 힘들게 할 때마다 주님이 우리의 마음을 때려 당신을 부르라고 우리에게 지시하시는 때인 줄을 우리가 알고 주님을 간절히 찾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고난 속에 만나는 하나님은 달콤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소망은 하나님 한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사시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던 가장 소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따뜻이 하라는 교훈보다도 더 큰 교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33년의 짧은 생애를 사시는 동안에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 아버지, 한분만을 우러러 바라보며 사셨던 것입니다. 이른 새벽과 깊은 밤, 그분은 매일 아버지의 이름을 눈물로 부르며 기도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사랑의 대상일 뿐이었지 하나님 대신 의지할 대상이 아닌 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시면서도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셨고 하나님과 자신이 함께 하시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너희도 나를 이렇게 따르라고 가르쳐 주시는 교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에게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를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여러분의 편이시고 그리고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원없이 하소연 할 한분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계심을 기억하십시오. 사람들은 우리의 마음에 있는 고통스러운 소리를 혹시 들어준다 할지라도 알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해결해 줄 능력은 없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은 듣기만 하실 뿐만 아니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주님을 간절히 찾는 여러분들이 주님을 의지하고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고 도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주님을 깊이 의지하고 고난 속엣 하나님을 찾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2.나의 머리 드실 때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시 3:3)
녹취자 : 김세나
I. 본문해설
자신을 둘러서 치려고 하는 대적들이 많다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난 후에 그는 즉각적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대신 겸손하게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 이전에 시인이 살아왔던 모든 삶의 역정 속에서 이미 알았던 하나님의 성품을 오늘 되새기면서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 고백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시라는 사실을 모르실 리가 없으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께 그것을 상기시켜 드릴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피할 바위요, 산성이십니다. 하나님이 원래 그런 분이셨으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그것을 생각나게 해 드릴 이유는 없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고난을 당하는 언약 백성들의 습관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언약 백성들의 태도,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고 그 성품을 고백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셨고, 그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고백을 통해 당신이 누구인지를 새롭게 깨닫게 되시기 때문에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고백하는 가운데 마음 깊은 곳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다시 알고 사랑하게 되는 정신 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을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백이 가지는 아주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남녀 관계에서 같이 아무리 가까이 지내도 또 마음으로 정을 느껴도 고백을 하기 전까지는 마치 어린애 낳지 않은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일단 자기가 중심으로부터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이 밀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남녀 관계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신앙에 있어서도 똑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목사님, 왜 주님을 고백한 사람들이 왜 삶이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뭐냐 하면 건성으로 고백을 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건성으로 고백하면 그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중심에서부터 깊이 고백이 되게 되면 그 고백은 사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주로 시인하면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라고 시인하면 그러면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단순히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 깊은 곳에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이후의 인생을 바꿔 놓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렇게 고난을 당하는 속에서 당신 자신의 존재와 성품을 묵상하고 고백하는 그것을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어두운 세상을 해치며 살아가는 경건한 삶의 기술이었습니다.
II. 내 머리를 드실 때
그래서 할 수 있으면 찬송 안에 하나님의 속성을 묵상하게 하는 내용들이 아주 많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찬송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인은 악인이 에워싸 시인이 자신을 치고 고통스럽게 있을 그 때에 그가 한 일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는 것이었습니다.
A. 여호와여 주는
그러면서 그는 여호와여라고 먼저 부르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오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라고 말입니다. 여호와여 주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지칭하는 성함이 두 개가 대표적인 것이 있는데 여호와와 엘로힘이라는 단어였습니다. 그 중에서 이 하나님, 엘로힘이라는 단어는 높고 그리고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난 능력의 하나님을 가리킨다면, 야훼는 여호와는 언약 백성들과 관계를 맺으신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이 야훼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계시된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언약 안에 들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불러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를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고난 속에서 시인이 여호와라고 부를 때 그는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맺은 언약을 생각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언약 속에 있는 한 백성으로서 자신도 그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의 언약 안에 있다는 것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시인이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언약이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것은 한편으로는 자신이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지시하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자신과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에 자신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켜 주실 것이라고 하는 언약적 보호에 대한 신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도 의미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행함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덕이 우리의 인생을 붙들어 주실 것이라고 하는 신앙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시인이 주라고 불렀는데, 히브리말로 아도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언약 백성과 관계를 맺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가리킨다면, 이 주는 그 권세로 실제적으로 자기의 백성들을 주권을 가지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 아도나이, 곧 주는 자신의 인생을 향해 가지고 계신 주권적인 하나님을 뜻하신 것입니다. 지금 시인이 고난을 당하고 악인들에게 에워 쌓여서 깊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잠시 한눈을 파셨거나 혹은 시인을 잊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시인은 알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 시인은 고백을 하면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이 끔찍한 고난과 상상하지도 못했던 자기 자식의 반역이 실현되었지만 인간의 악한 그 의지이지만 주님의 그 주권은 여전히 자신의 인생에 미치고 있다는 것은 이 시인은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주권 신앙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일어나지 않지만 그렇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기계처럼 움직이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악인들이 일어나 우리를 치려고 하면 그들이 우리를 쳐서 멸망시킬 수야 없겠지만 우리에게 고난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지키셔서 우리를 통해 이룰 수 있는 일들을 이루게 하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하나님이 이제 이스라엘을 위해 파송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쇠기둥으로 삼으리라.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원수들이 너를 칠 것이나 그러면 너는 맞을 것이나 무너뜨릴 수 없으리라. 예레미야를 하나님 앞에 흔들리지 않는 말씀의 종으로 세우는 것은 양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었지만 고난을 당하고 시련을 당하는 것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래서 보면 우리의 인생을 살아보면 신앙이 좋아도 덕이 모자라는 사람들은 고난을 많이 당합니다. 신앙도 있고 덕이 있어서 늘 사람들에게 친절히 하는 사람들은 사람들로 말미암는 고난이 현저히 적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한 방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우리의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모든 확신을 가지고 때로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면서 시련과 고난을 당할 때마다 무조건 무조건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과 악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미루지 않고 우리가 뿌린 어떤 삶의 열매인지를 반성하고 되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여호와는 우리의 삶의 주권을 가지고 계시니 그래서 우리에게 고난과 시련이 온다 할지라도 그것을 묵묵히 감당하고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견디고 이기고 감당하고 살아가는 그런 신앙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이 고난과 시련을 당하고 자신의 맘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어려움들을 만납니다. 할 수 있으면 피해보고 싶고 도망치고 싶고 그것도 불가능하면 죽어 버리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생각을 좀 바꾸십시오. 그래서 뭐냐 하면 이것이 때로는 나의 잘못으로 일어났던지 애매히 당하는 고난이든지 피할 수 없이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일어난 것이라면 내가 기꺼이 이 모든 것을 감당하며 살아가리라. 그리고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면 이 고난도 나를 우리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이끄실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그런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B. 내 머리를 드시는 하나님
그러면서 시인은 아주 중요한 고백을 하나님께 합니다.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제일 먼저 그의 마지막 고백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시인에게 머리를 드시는 자라고 고백되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이 시를 쓴 사람이 왕이 아니었다면 아마 이러한 고백을 하나님께 하기에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누구든지 왕 앞에 고개를 들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왕은 그 나라의 최고의 권세자요,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혹은 누명을 쓰고 혹은 악한 자들에게 모함을 당하여 혹은 실제로 잘못해서 죽음을 예상하며 왕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을 그 때에 왕의 말 한 마리에 죄수의 모든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들이 왕 앞에 엎드린 죄인의 마음에 스쳐 갈 때에 인자한 왕의 목소리가 들리고 죄인은 고개를 들라. 이미 왕의 음성 속에서 자기를 용납하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는 왕의 사유하심을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왕은 그 모든 자신의 통치를 통해 그러한 일들을 경험했기 때문에 지금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키고 나라가 위기에 놓여 있을 때에 그는 자신의 생명을 보장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위기를 만나 황급히 도망을 치고 있는 때였습니다. 그는 반란군의 숫자를 헤아리거나 어떻게 반란군과 교섭을 해서 이 위기에서 벗어날 지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가 깊이 생각한 것은 지금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자비로운 용서로 수많은 죄인들이 죽음의 위기 앞에서 고개를 들고 삶이 바뀌었던 것처럼 하나님이 죄인 다윗은 고개를 들라고 말씀해 주시기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는 이 사건을 당하였을 때에 분명히 하나님의 예언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너희 집안에 칼이 그치지 아니하고 부끄러운 일들이 일어나리라고 하는 그 끔찍한 예언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론 이미 오래전에 있었던 다윗의 범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지금에 와서야 화를 내시면서 이 시인에게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윗의 죄를 용서하셨고 그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지만, 이번에는 이 끔찍한 반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자신의 신앙을 거룩하게 연단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목적으로 주어지는 고난이든지 간에 아프지 않은 고난은 없고 쓰라리지 않은 시련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시인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하나님 앞에 다 용서를 빌었고 하나님이 용서해 주신 죄악이었지만 그는 고난을 당할 때에 다시 한 번 지난날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오직 하나님이 매일 매일 용서해 주시는 그 은혜 안에 살 살아가는 용서받은 죄인일 뿐이라는 고백을 우리 하나님 앞에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도 우리와 똑같은 부패한 성품을 물려받은 인간이었으니 그 역시 마음속으로 그 부패함을 피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평안하던 이 말년에 하나님이 커다란 시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상하지도 못했던 끔찍한 시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고 영원한 나라에 소망을 품었던 다윗이니 죽음을 무서워했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찬송)
하늘 위에 주는 높이 들리며 주의 영광은 주의 영광은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III. 하나님을 바라라
그러나 이 시인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그리고 자기가 당하는 이 고난과 끔찍한 시련 속에서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며 선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주권을 신뢰하였던 것입니다. 악인에게 보복을 꿈꾸고 그들의 멸망을 궁리하기 보다는 자신의 인생, 자신의 시대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 라고 하는 것을 믿으면서 주를 깊이 의지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 앞에 주는 내 머리를 드시는 자입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 앞에 용서 받았고 주님의 은혜 안에 살던 다윗이었지만 그러나 이 큰 고난 앞에서 그는 주님 앞에 다시 머리를 숙인 죄인이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마음을 돌이켰고 한때 사랑하던 자신의 군주인 다윗을 욕하기 시작했고 자기가 생명처럼 아끼던 동지들이었던 그 부하들은 배신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백성과 그리고 부하들로부터 받던 존경과 신망을 잃어버리고 이제는 하찮은 백성들에게 저주를 받는 그러한 불쌍한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때에 원한을 품고 복수를 꿈꾸지 보다는 오히려 그렇게 자신에게 욕하고 모욕을 주던 백성을 단칼에 배어 버리려 하던 부하들을 말렸습니다. 그리고는 고백했습니다. 그러지 말아라. 혹시 하나님이 저들을 통해서 나를 욕하시는 줄 누가 알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오히려 고난을 당할 그 때에 자신의 인생의 주권이 주님께 있음을 더 깊이 생각했습니다. 주님을 더 잘 섬기고 사랑할 때가 있었는가 하면 주님을 잘 섬기지 못하고 시련을 당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이 지금 자기가 당하고 있는 큰 부끄러움을 부당하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 앞에 그는 할말이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린아이처럼 무릎을 꿇고 주님의 처분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으니 이 큰 풍랑을 인해서 그는 은밀한 하나님의 그늘 아래 숨어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 앞에 이제껏 일생을 살아오면서 주님 앞에 배운 주님의 한 성품을 노래했습니다. 주는 내 머리를 드시는 자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별로 인정도 받지 못하던 목동이었던 시절에 형들의 영광은 자신과는 비교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사무엘 선지자가 자신에게 와서 기름을 붓는 그 순간 여호와는 이 어린 다윗의 머리를 들어주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고도 사울에게 쫓겨 고난의 피난길을 도망다녔습니다만, 집요하게 자객을 풀어서 자기를 죽이고자 하였을 때 이 세상 누가 보더라도 영광과 존귀는 사울에게 있었고 자신은 반역의 무리 중 하나가 되어서 도망을 다니는 비천한 죄수의 신세였던 것입니다. 다윗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물론 아마도 사람을 규합하고 이렇게 해서 사울과 대적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는 기름부음 받은 종의 명예와 영광을 지켜 주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는 광야에서 우연히 굴에서 만난 사울의 옷자락을 베고 물병을 빼앗아 오고 나서도 그는 기름부음 받은 종의 옷자락을 베었다는 자신의 행동 때문에 깊이 뉘우치며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했던 그러한 순전한 신앙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언제 이 도망자의 생활이 끝날지 그리고 자신이 당하는 이 끔찍한 고난과 수취를 면하게 해 주실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시때때로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찬양)
시시때때로 주만 봅니다
맘속에 시험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면서 그는 조용히 하나님의 주권을 바라보았습니다. 악인은 교묘하게 이 시인의 마음을 찌르고 부끄러움이 넘쳐나 왕의 그 큰 위험과 존귀는 사라져 버렸지만 그러나 이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자신이 그렇게 주님의 주권에 굴복하며 살았을 때에 영원히 원수들에게 짓밟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그 끔찍한 수취에서 자기를 건져내 주신 것을 경험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이 자기를 그렇게 미워하던 사울을 거두시고 자신을 모든 사람들 앞에 기름 부은 바대로 왕으로 삼아주신 그 때에 마치 주님이 모든 사람들 보는 앞에서 이 다윗에게 죄인은 머리를 들라 하시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오늘 넘치는 치욕 속에서도 이 시인은 자신의 머리를 들어주셨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했던 것입니다. 이전에 행했던 많은 죄와 불순종의 기억들이 시인의 양심을 찔렀겠지만 그러나 그는 송사에 매이지 아니하고 자신의 인생을 붙드신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습니다. 내가 너로 이스라엘의 영원한 나라의 위를 물려받게 하고 너를 통하여 영영한 나라를 세우시리라는 자신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신뢰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마치 한 사람의 죄수처럼 왕의 말 한마디에 목숨이 오갈 죄수처럼 하나님의 존전에서 무릎을 꿇고 그는 주님의 주권 하나만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주님의 뜻이면 죽기도 하리라는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깊이 앙망하며 주님 앞에 매달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사람, 다윗이 가지고 있는 주권을 믿는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그때까지 이 시인은 견뎌야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추구해야 할 덕목과 가치는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충성스럽게 사는 것, 얼마나 중요합니까. 지혜 있는 것, 그 사람이 하나님 섬기는 일에 있어서 면류관입니다. 그 위에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자신의 일에 대해 감사하는 것,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가 없으면 그 모든 것들은 마치 담을 접시 없이 흩어진 유리구슬과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인내. 잘 참는 것입니다. 특히 지도자의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들은 인내에 있어서는 정말 하나님의 특별한 지시를 받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은혜는 우리의 끊임없는 참음의 근거가 됩니다.
(찬양)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옵시고 주 말씀 따라서 용감하게 하소서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한 깊은 고난 속에서도 요동함이 없이 굳게 참으면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라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참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늘 걱정이 됩니다. 다음에도 이제 투표를 하고 임직을 하게 되겠는데 일꾼들을 세워 보니까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애틋하기도 하고, 또 은혜도 받았고 또 어떤 때에는 헌신할 마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내가 없습니다. 인내가. 그래서 임직을 해 놓고도 쉽게 넘어지고 물러갑니다. 그래서 임직을 하게 한 것을 후회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주권을 굳게 믿으면서 고난도 슬픔도 이기면서 살아가는 그 인내가 부족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시인, 다윗은 하나님 앞에 주님은 내 머리를 드시는 자입니다. 왕이 그 말을 하기 전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 마디씩 거들어서 죄인을 용서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죽여 버리셔야 됩니다. 저 놈은 믿을 수 없습니다. 수많은 이야기들이 들려도 한번 왕이 죄인은 머리를 들라 내가 너를 용서하노니 한번 선포되고 난 후에는 누구도 왕의 선언에 이의를 달 사람이 없었던 것처럼 이 시인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 자신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며 주님이 자기의 머리를 드실 때에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미움도 그리고 모든 사람의 시기와 원망도 그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한분이 머리를 들어 주시기만을 기다리며 그는 폭풍과 같은 고난의 때를 지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이 배워야 할 것이 바로 이런 신앙입니다. 그래서 마음 깊이 주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면서 이 고난의 길, 시련의 길을 이기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언약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3.나의 방패와 영광이신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시 3:3)
녹취자 : 김세나
I. 본문해설
어제는 머리를 드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머리를 드신다고 하는 것은 그 모든 원한을 신원해 주시는 때이고, 또 하나님께서 자신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시고 원수들 앞에서 인정해 주시는 때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고백이 있기 전 시인은 그 하나님을 여호와여 주는 이라고 말했습니다. 언약의 여호와가 자기의 인생을 향해 가지고 계신 주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의 거대한 주권 아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시련과 환란이 와도 묵묵히 그것을 참고 견디는 것, 그리고 자신의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면서 사는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하는 그런 신앙을 갖게 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II. 환란 가운데 부르짖음
그리고 나서 시인은 먼저 하나님이 자신의 방패요 영광이라는 사실을 노래하였습니다. 이 시인 다윗은 전쟁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서 이 방패가 무엇이고 또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절실하게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방패의 용도는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데 사용되는 무기입니다. 그래서 그 방패, 커다란 방패를 항상 가지고 전쟁에 나가고 비 오듯 쏟아지는 그 화살, 공격 앞에서도 방패를 세우고 몸을 낮추어 방패 뒤에 숨으면 어떠한 화살도 그를 찌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방패는 원수들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그러한 가장 중요한 무기였던 것입니다. 한 때 자신에게 복종하고 공경하던 신하들이 배신을 했습니다. 군주인 자신에게 영광과 명예를 돌리고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던 백성들이 반역하는 마음을 가지고 왕인 자신을 모욕하고 욕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원수는 강한 것 같았고 사면을 두루 살펴도 자기를 돕는 자 보다는 자기를 해하려 하는 원수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아마 자기를 존경하고 사랑하던 부하들의 배신은 자기를 찌르는 창과 같았을 것이고, 백성들의 수없는 비난의 목소리는 자기를 향해 쏟아 부어지는 화살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 때에 그는 비로소 자신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그 질서 안에 살아가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섭리 속에서 우리들의 명예를 보존해 주시고 또 우리의 생명을 지켜 주십니다. 그러나 일단 사람들이 그 질서를 무너뜨리고 났을 때 백성들의 생사 여타를 한 손에 가지고 있었던 제왕인 이 다윗도 별수 없었습니다. 평민만도 못하고 욕을 맞고 비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자신에게 화살처럼 퍼부어지는 악인들의 공격에 대해서 칼을 빼들고 단번에 그 원수들을 처결하는 대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의 방패라고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전쟁에서 화살이 비 오듯 쏟아지고 칼과 칼이 맞부딪히며 적군들의 공격이 자신들을 애워 쌀 때 그에게 많은 권세와 부귀, 가문, 그 모든 것들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을 그 모든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방패가 자기의 생명을 지켜 줄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방식으로 방패 하나를 의지하며 그 모든 비 오듯 쏟아지는 화살의 공격에서 자기를 보호했던 옛날 전쟁터에서처럼 이번에는 바로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보호해 주시는 유일한 방패이십니다 라고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압살롬에게 반역을 받아서 황급히 도망을 치면서도 그가 하나님 앞에 보인 신앙은 두 가지였습니다. 한 가지는 도망갈 때에 법궤를 가지고 가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법궤는 왕권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아주 중요한 종교적인 표징이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악한 무리들이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법궤를 손에 넣은 다음 이제 사울을 하나님이 정리하고 다윗을 하나님이 세우셨던 것처럼, 다윗을 버리시고 이제는 압살롬을 택하셨다 라고 말할 수도 있는 근거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법궤를 가져가려는 부하들을 만류하면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내가 돌아와 보리라고 주님의 주권을 인정했던 것입니다. 또한 백성들이 욕을 하고 원망을 할 때에도 하나님의 주권을 생각하며 하나님이 저를 통하여 나에게 이렇게 비난을 퍼부으시는지 누가 알겠느냐 하며 생사 간에 하나님을 의지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방패 신앙입니다.
(찬양)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라
이것이 시인 다윗의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고난이 넘치는 그 날에 오히려 원수를 향해 이를 갈기 보다는 자신의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자신의 방패임을 고백을 했습니다. 전에는 불순종하고 악을 행하여 주님의 마음에 못을 박았지만 이제는 회개하고 주님만이 자신의 방패이고 내가 당신 뒤에 숨을 수밖에 없나이다 라고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압살롬의 반역을 통해서 다윗은 낙심하고 실망하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의 마음을 품기 보다는 오히려 인생 말년에 하나님만이 자신이 참 의지할 유일한 대상이요, 주님만이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단 한분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마음이 주님께 대한 절대 의존의 신앙으로 불타게 되었고 그 불길 속에서 티끌처럼 남아있던 이 세상에 대한 욕망과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모든 어리석은 마음들이 불타버리고 정화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우리를 고난 가운데 두시지 않습니다. 지혜가 모자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시련 가운데 내버려 두시는 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에도 불구하고 시련에 내어주시고 원수들의 비난, 화살과 같은 공격에 우리를 노출 시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피할 바위요 산성이 우리 하나님 한분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황소를 드림보다 천천의 수양을 바치는 것보다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으로 그 분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외에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그것이 우리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는 우리의 신앙의 행동인 것입니다. 아직도 여러분들이 다윗과 같이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등 돌리고 원수들의 부끄러운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면서 수치스러운 시간들을 지내고 있지 않습니까. 인간의 방법과 사람의 꾀를 모두 써서 많이 노력을 해도 부끄러움과 수치를 면할 수 없을 때, 그 때 이 말씀을 기억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나의 방패시오, 하나님만이 그 모든 화살로부터 보호해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이 시인은 하나님이 나의 영광이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이 사람 다윗은 한 나라의 왕이었고 그 이스라엘의 전성기에 다스리던 임금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는 왕의 영광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이러한 쓰라린 환란을 통해서 이 세상 임금이 꾸며 쓴 면류관, 이 땅의 영광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도 동시에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 앞에 비교적 순결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살아왔지만 그러나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서 국가적인 위기와 시련, 환란, 심지어 오늘 이렇게 사랑하는 부하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백성들에게 욕을 먹으며 황망히 피난길에 오르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왕의 영광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는가 하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자신이 수치스러워지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깊이 신뢰하고 사랑하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들도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는 중요한 사람으로, 필요한 사람으로, 자신이 다른 사람들 보다는 훨씬 더 요긴한 사람으로 그렇게 인정받고 쓰임받기를 원하지, 아무렇게나 버려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광이 아니라 수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인은 이 뼈저린 시련을 통해서 자신이 누리는 그 모든 영광이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하나님이 자신을 영광스럽게 해 주시는 한도 안에서만 자신이 왕으로서의 영광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이 바로 자신의 영광이라고 노래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영광이 영광이 되지만,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시면 그 영광이 새처럼 자기에게서 날아가버린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영광을 아무리 구해도 그것으로서 영광스러워지지 아니하고 그 사람은 하나님이 세워주신 그 자리에 그 때에 가장 영광스럽고 소중한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다윗은 오늘 원수들에게 반역을 당하여 황망히 도망을 가면서 이전에 수많은 백성들이 자신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부하들이 자기를 진심으로 신뢰하고 따르던 과거를 회고하였을 것입니다. 그 속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영광과 존귀를 인정받았습니다. 그것들을 반역을 통해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자신에게 원래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을 그 때에 자신도 그 하나님 앞에 영광스러운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Ⅲ. 결론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지 못하고 늘 미끄러지면서 죄악 가운데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정말 소중하게 사용하신다는 신앙의 고백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흠뻑 받고 그리고 하나님께 붙어 있을 그 때에 주님은 우리를 사용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고백하고 경험하게 됩니다. 그 때 우리가 은혜 가운데 있을 때는 그렇지 않지만 은혜에서 멀어지고 나면 자신이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이 자신에게 섬김을 받으시면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살아가는 그 믿음의 삶의 자리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리인지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헛된 생각을 품고 하나님의 영광 보다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며 미끄러지게 됩니다. 신앙을 다 잃어버리고 은혜에서 멀어지고 난 다음에 비로소 자신이 집을 나간 탕자처럼 돼지우리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정말 하나님 없이 영광을 구한 부끄러운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에 하나님 앞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름도 없고 빛도 없지만 주님의 이름을 빛내 드리며 살던 섬김과 신앙의 때를 그리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광은 이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영광과 다릅니다. 우리의 영광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그 분께 인정을 받으며 살아가느냐가 바로 우리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순간 우리를 붙드시고 그리고 주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우리를 날마다 붙잡아 주셔서 그래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매일 매일 해나가도록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오늘도 살아계셔서 이렇게 다신을 우리가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시고 그리고 우리가 당신을 의지하여 영화롭게 할 그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영광스럽게 해 주셔서 거기에서 우리의 존재가 빛나고 누구에게도 무시당하지 않는 존귀한 사람들이 되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집에 심겨진 소중한 감람나무처럼 하나님 앞에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광은 성도의 영광이고 성도의 영광과 빛이 우리에게서 사라질 때 우리도 또한 그 모든 영광 속에서 함께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깊이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의 방패이시고 영광이십니다. 주님이 우리의 방패이시고 영광이시니 우리가 주님을 떠나면 원수의 공격에 노출되고 우리의 얼굴에는 수치가 가득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전부가 되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잘못 사랑하여 우리에게 수치가 될 것을 영광인 것처럼 찾지만 우리의 참된 영광은 신앙에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깊이 의지하고 주님이 전부인 것처럼 믿으며 하나님 바라면서 사는 언약백성들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잠시 원수들에게 공격을 받고 고난을 당하는 것 같고 또 나의 영광이 사라진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를 들어주십니다. 그래서 부끄러움이 변하여 다시 존귀가 되게 하시고 그래서 주님을 의지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영광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사 간에 주님을 깊이 의지하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언약백성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4.환란 가운데 부르짖으라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시 3:4)
녹취자 : 김세나
Ⅰ. 본문해설
대적들에게 에워 쌓여 고난을 당할 때 시인은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자신의 방패요 영광이며 또 머리를 드시는 자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깊은 묵상과 고백이 있고나서 그는 환란 가운데서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고백에서 이어지는 기도의 절실한 실천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묵상은 우리의 마음을 일깨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마음에까지 내려오는 하나님의 지식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일깨워서 실천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묵상은 머리에 있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마음으로까지 흘러내려 오도록 만들어 주는 깔대기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II. 환란 가운데 부르짖음
기도는 개인적인 상념이나 막연한 의존, 혹은 아무런 계획이 없는 희망 같은 것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도는 구체적인 부르짖음이고 영혼이 하나님을 향하여 움직이는 활동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인이 하나님 앞에 성품을 묵상할 때에는 잠잠히 마음으로 묵상하였으나 기도할 때에는 부르짖었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소리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말 소리쳐서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기도였는지 아니면 정으로만 소리쳐서 자신의 마음으로 통절한 기도를 드렸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 간절해 졌고 마치 피를 토하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뿐입니다. 악인들이 처처에 자신을 에워싸고 그리고 아무런 희망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 그는 과거의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돌보셨고 이러한 위기 속에서 어떻게 건지셨고 특별히 전쟁 가운데 수많은 적들의 화살이 날아올 때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셨는지를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나의 방패이십니다 라는 고백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주님이 그렇게 주님을 보호해 주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든지 적들은 수시로 일어나서 자신을 공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하나님이 막아 자신을 보호해 주시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 적을 깨뜨리고 파괴하여 승리하는 것이 시인에게 있어서 더욱 간절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냥 평소에 살아갈 때에는 나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떤 지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마음으로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큰 죄를 짓는다든지 불순종하는 것 아니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어떤지 잘 모릅니다. 때로는 현저히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렇게 절박한 기도 제목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 절실하게 매달리다가 비로소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너무나 먼 거리감이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 이번에는 원수를 물리치고 자기를 보호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있는 많은 거리감과 자신의 악들을 발견하면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영혼의 문제를 위해서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시편은 종종 원수들에게 에워 쌓여서 고통을 당할 때마다 자신 속에 있는 죄와 악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은 환란 가운데 부르짖는 성도의 기도를 통해 성도의 영혼의 유익한 기회를 삼으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인도 지극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였지만, 원수들의 배반을 당하고 커다란 반란이 일어났을 그 때에 도망을 치면서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했고 환란 가운데 간절히 부르짖으면서 사실은 원수들이 자신의 왕국에서 반역을 일으킨 것 못지않게 자기 안에도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는 우리 안에 있는 죄와 맞붙어 싸우는 실제적인 몸부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매달리며 기도하지만, 사실은 기도가 죄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기도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바쳐지도록 죄를 죽이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부르짖음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렸고 어린 아이처럼 울며 매달릴 때 그는 한 나라의 임금도 아니었고 위대한 장군도 아니었고 시인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어린아이처럼 주님의 은혜가 꼭 필요한 그러한 하나님의 자녀였을 뿐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시인을 내려다 보셨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지은 죄이고 하나님이 그를 친히 용서해 주신 죄이지만 오늘 하나님께서 이 다윗의 삶 속에 일으키신 이 커다란 어려움으로 말미암아서 하나님이 이 다윗 안에 이루고자 하시는 일들을 그대로 이루고 계셨습니다. 보다 더 넓은 섭리 속에서 악인들의 모든 반역은 이 시인을 거룩하게 만드는데 마지막에 이 시인을 정결하게 하는데 그래서 이 시인으로 하여금 하나님 한분만을 앙망하도록 만들어 주는 그 일에 이바지하고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깊이 탄식하며 하나님 앞에 매달렸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나오기까지 그는 죄를 짓고도 그릇된 안정감 속에서 지냈으나 선지자가 나와 책망을 받은 후에 그는 눈물로 침상을 띄우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고 밤마다 요를 적시며 주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식음을 전폐하고 은혜를 구하며 용서를 비는 가운데 그의 몸은 수척해지기까지 하여 뼈까지 만질 수 있도록 드러났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이 시인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정결하게 하기 위해 다시 한번 환란을 주셨을 때 이 시인은 그 때처럼 똑같이 하나님 앞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오직 어린아이처럼 주님의 품으로만 파고들었습니다.
III. 응답하시는 하나님
이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시인을 더 이상 징계의 채찍으로 내리쳐 그의 마음도 아프고 당신의 마음도 쓰라릴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라고 말입니다.
A. 응답을 주시는 방식
1)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함
이 응답을 주시는 방식은 두 가지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시인의 잠자던 영혼에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리고 당신의 언약 백성들을 사랑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실 뿐 아니라 당신께 부르짖는 언약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가득 채우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절실하게 깨닫도록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큰 사랑과 은혜로 깊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그 능력과 은혜로 마음에 깊은 감화와 사랑을 입었습니다. 그리하여 이 시인은 다시 한 번 노년에 그 마음이 뜨거워졌고 정결하게 되는 하나님의 큰 은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2) 환경을 열어 주심
뿐만 아닙니다. 이렇게 간절히 부르짖을 때에 주님은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응답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졌고 그 응답도 하나님의 말씀이시기 때문에 목적을 이루는 법이 없이 허공에 흩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시인은 환란이 일어나서 원수들에게 쫓겨 황망하게 도망을 가면서 아버지 앞에 간절히 부르짖었고 그리고 주님은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아마 이때부터 다윗은 주님이 자신을 치셨으나 아주 멸하지는 않을 것이요, 원수들이 잠시 자신을 부끄럽게 하였으나 하나님이 그 원수의 손에서 자기를 이끌고 건지실 것이라고 하는 확신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 이 응답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드러나기 시작했고 결국은 하나님이 악한 무리들을 징벌하고 책망하시고 그리고 압살롬을 죽이시고 그 원수로 대적하던 자들을 멸하심으로써 하나님이 환경 속에서 응답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어려움이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면서 먼저 환경으로 응답해 주시기 전에 우리의 마음속에 확신을 주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을 의지할 마음을 갖게 하시고 그 응답이 우리의 삶 속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 요동치는 세상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확신을 가지고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B. 성산에서 응답하심
1) 하나님의 언약
오늘 성경은 그 성산에서 응답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이후에도 이 시인이 성산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기도한 것일 수도 있고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때에 이 시인이 하나님의 그 큰 구원의 응답 속에서 자신이 바로 하나님과 맺고 있는 언약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 환란과 시련이 계속 되었고 그는 요단강 건너편으로까지 피난을 가야 했으니 아마 이 사람이 실제로 성산, 곧 시온에 올라와 하나님 앞에 기도하거나 혹은 하나님의 성소에 와서 아버지 앞에 기도했을 가능성은 적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성산이라고 하는 이 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성산은 하나님의 언약이 깃들여져 있는 장소를 가리킵니다. 하나님 앞에 그렇게 지정받은 장소가 있고 거기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겠다고 하는 약속은 장소에 매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수립된 언약 관계에 기초하는 것이었습니다. 악인들이 일어났고 반란이 시작되었고 자신은 황망하게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만, 저들은 하나님의 언약과 상관없는 자들이고 비록 자신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주 앞에 뼈저리게 견책을 받을지라도 자신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었고 자기의 왕권은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을 따라 만들어진 왕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왕국은 이제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항하여 하나님이 특별히 지정하신 왕국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서 시인은 황망하게 도망치는 길에 원수의 강함을 인하여 낙심하고 좌절하는 대신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신의 왕국을 세우셨고 이름 없는 목동이던 때에 하나님이 그 나라를 자신에게 맡겨 주어 주님을 섬기며 일생을 살아오도록 하나님이 엮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신앙의 강점인 하나님 한분을 바라보는 그 은혜의 실천을 오늘 이 환란 속에서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항상 우리의 마음속에는 양심이 있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면 올바르신 하나님이 느껴지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변절하고 악을 행하면 주님의 진노가 우리 머리위에 있는 것이 늘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올바르게 살면 하나님에 대해서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을 가져 자기 의에 빠지게 되고 자신이 잘못 살 때에는 지나치게 율법에 정죄를 받아서 양심에 송사를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시인은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나는 환란과 시련을 당하고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셔서 때로는 악인들이 하나님을 거스르며 반란을 일으키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언약 관계로 부르셨고 변함없이 그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지 아니하실 줄을 알았던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모세와 맺은 언약이 있었고 자신을 직접 불러 세운 다윗의 언약이 있었습니다.
2) 구원의 그리스도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언약들보다도 분명한 하나님의 언약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맺어주신 새로운 언약입니다. 이 언약에 비하면 그 모든 모세와 다윗의 언약은 그림자에 불과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제는 이스라엘의 어느 한 장소가 성산이 된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마음으로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 희생의 피를 바른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성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알고 올바르게 믿을 때 주님이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그의 흘리신 보혈의 피로 하나님이 자기를 받으셨다는 확신을 가지셨다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을 하나님이 성산으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마음에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받은 사람들의 부르짖음은 하나님의 마음에 마치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울부짖음처럼 들릴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인은 하나님 앞에 그 성산을 생각하며 감격했지만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당신의 찢으신 옥체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의 길을 열어주신 우리 하나님의 그 은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 감격하며 주님의 뜻을 따라서 순종하며 살 마음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다윗이 감격하던 하나님의 성산 보다 더 보배로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가 있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이 될 때 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는가, 이제는 그 은총이 다하였는가 마음속에 회의가 밀려올 때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자기를 버리고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고난의 형상을 보면서 로마서 8장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과 함께 우리에게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말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으랴 라고 노래했던 이 시인의 울부짖는 기도처럼 말입니다.
IV. 하나님께 기도하라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온 마음을 다하여 아버지 앞에 매달려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까지 내어 주셨다면 주님의 마음에 우리를 위해 아까운 것이 무엇이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멀어지면 그 분이 우리를 내 치심이 아니요. 우리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불순종하여 악에 기울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으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운 것인지를 알게 해 주시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깊이 뉘우치며 우리의 죄를 토설하고 아버지 앞에 용서를 빌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당신 가까이 계셔서 그 크신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불러 주십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아버지 앞에 나아갈 때마다 하나님은 더 크신 사랑과 용서를 덧입혀 이전에 알 수 없었던 비밀스러운 은혜의 세계를 보여 주십니다. 시련과 환란 속에서 주님으로부터 멀어질 때마다 그 은혜로부터 소외될 적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붙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 번도 그 분이 우리를 버리신 적이 없고 은혜를 입은 것도 우리요, 주님을 배신한 것도 우리였다는 것을 고백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면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를 불러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나는 말씀을 드립니다.
(찬양)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옵시고 주 말씀 따라서 용감하게 하소서
간절히 기도하고 양심에 송사를 받고 정죄를 받을 때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굳게 붙들고 주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기도하는 자의 부르짖음을 하나님이 들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 기도하겠습니다.
5.붙드시는 하나님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시 3:5-6)
녹취자 : 김세나
I. 본문해설
우리가 읽은 5절과 6절에서는 환란 속에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 붙드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인은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가 낳은 아들에게 반역을 당하여 황망히 피난의 길에 올랐습니다. 아마 자신의 왕권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현실적인 고통보다는 그러한 고통을 안겨준 자가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의 마음은 더 많이 아팠을 것입니다. 그래도 시인은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껏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어오고 왕으로 제직하면서 하나님이 수시로 자기를 붙드셨던 언약의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의 방패요 영광이요 머리를 드시는 자라고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고백을 따라서 하나님 앞에 구체적으로 간절한 부르짖음으로 매달리며 하나님 앞에 간구하기로 결심하였던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면서 주님 앞에 기도하기로 뜻을 세웠고 또 실천하였습니다. 그 때 시인은 그렇게 부르짖는 자를 붙드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다.
II. 부르짖는 자를 붙드시는 하나님
오늘 시편 기자가 처음에 고백하고 있는 내가 자고 깨고, 내가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노래하였습니다. 이것은 시인의 삶이 얼마나 불안정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원수들에 에워 쌓여서 황급히 피난의 길에 오르고 도망을 치고 있었는데 그 피난의 노중에서도 잠들고 그리고 아침에는 깰 수 있었습니다. 간밤에 무사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자기를 지켜 주시고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이 자기를 붙들고 계시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당장 원수들이 파멸되고 승리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도 하나님은 고난의 날에 자기를 주님의 오른팔로 강하게 붙들고 계시고 시인이 다른 곳에서 고백했듯이 그래서 자기의 시대가 주의 손에 있다는 것을 의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 앞에 더욱 감사하며 기도했습니다.
시련과 고난 속에서 고통을 느끼는 것은 개나 돼지 같은 짐승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 짐승과 다른 것은 고통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가 이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은 그 고통의 의미를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에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은 자기가 자고 깨고 또 누웠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붙들고 계심이라는 것입니다. 환란은 어차피 임했고 시련의 폭풍은 불었습니다. 자기가 뱃속으로 낳은 자식이 자신을 죽이고 왕이 되겠다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모든 일이 피할 수 없이 일어난 일이었지만 이 시인은 그런 시험의 모든 결과를 하나님의 손에 부탁하였습니다. 악인이 처처에 횡횡하고 세력을 얻는 것 같아서 그들이 모든 일들을 주관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도는 가늘어 보이고 자신이 울부짖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도 자신이 이 모든 환란과 시련의 상황의 칼자루를 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생각이었고 하나님은 시인을 붙들고 계셨습니다. 악인들이 악한 의지로 의인을 괴롭히려고 할 때 마음먹으면 괴롭힐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파멸시킬 수 없도록 하나님이 붙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시인도 주님이 꼭 붙들어 주셨기 때문에 시련의 폭풍이 아직 불고 있어도 이 시인은 오래된 신앙의 감각으로 원수가 어찌할 수 없도록 하나님이 자기를 붙들고 계심으로 지난밤에도 편히 자고 깨었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였습니다.
신앙은 우리를 붙들고 계신 주님을 보게 만들어 줍니다. 믿음은 환란과 시련 속에서 주님을 꼭 붙들고 신앙으로 살아가도록 만들어 줍니다. 고난과 시련을 당할 때에 하나님이 시인을 붙드셨습니다. 평안을 주심으로 그의 마음을 붙드셨고 편히 자고 깰 수 있도록 원수의 그 모든 공격으로부터 이 시인을 자기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어 주셨습니다. 악인은 약한 자 같았으나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셨으므로 강한 자 같았으나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셨으므로 그들은 약한 자이고, 시인은 지극히 연약한 자 같았으나 하나님이 그 날개 그늘 아래 이를 보호하심으로써 이 시인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의 보호 속에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련과 환란 속에서 이렇게 그 시련과 환란이 모두 물러간 것이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 것이 아니다 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를 굳게 붙드시고 도우시는 증거를 일상 속에서 보여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더 많이 의지하고 이 시련의 계곡을 통과하는 가운데 강한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III. 환란 속에서 담대할 수 있음은
또 한 가지 마지막으로 살필 사실은 이 사람이 환란 속에서 이렇게 담대해 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 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라고 말입니다. 이것도 시인이 전쟁을 누빈 군인이었기 때문에 고백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이것은 명백히 전쟁을 치르다가 적군에게 포위가 된 상황을 염두해 두고 이 시를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병사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포위라고 합니다. 그래서 6,25 전쟁사도 보면 그렇게 매복된 군인들에 의해서 포위가 되어서 그래서 커다란 낭패를 만나고 고난을 당하는 그러한 일들을 우리들이 많이 보게 됩니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급히 후퇴하며 산 사이 계곡으로 들어섰는데 완전히 계곡에 들어섰을 때 사방에서 포 소리와 총 소리가 나고 여기저기에서 조명탄이 터지고 어느 한 곳으로 대응하여 사격을 하려고 했더니 사방에서 적군들이 총을 쏘기 시작할 때 그 때의 그 두려움과 공포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시인은 전쟁하면서 적을 포위해 보기도 하고 적군에 의해 포위를 당해 보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천만인이 자신을 에워싸고 이제는 이 시인을 죽이고 승리를 쟁취하자고 하는 절망적인 상황을 아마 전쟁터에서도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시인은 천만인이 나를 애워싸는, 전쟁터에서 가장 절망적인 포위의 상황이 된다고 할지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아들이 반역을 일으키리라고 추어도 생각해 본 적이 없고 아들은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군사들을 모으고 무기를 수집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도면밀하게 일어난 반란이었기 때문에 다윗이 속수무책으로 도망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다윗이 이 싸움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때에 다윗은 고난의 많은 시련을 통과하면서 영적으로 지극히 성숙한 때였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을 붙들고 믿음으로 이길 수 있는지를 깊이 체득한 때였습니다. 칼과 무기의 숫자를 헤아리고 말과 병사의 수효를 헤아림으로써 이 시인은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시인은 우리의 모든 생명의 주관자이시고 인간의 마음을 붙드시고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약속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때문에 이 시인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비록 하나님 앞에 한 때는 범죄하고 쓰라린 고통을 당하였고 그리고 지금도 자신이 온전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러나 자기의 시대가 주님의 손에 있고 자신의 왕권이 하나님의 권능의 팔 아래 붙들렸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보고 낙심하기 보다는 인간의 모든 환경을 능가하며 우리를 붙드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면서 이 시인은 주님을 앙망하며 믿음을 가졌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은 이러한 노래를 부르도록 만들어 주지 않았지만 모든 상황을 초월하여 바라보는 그 하나님이 자기를 붙들고 계시고 원수의 손에서 자기를 보호하고 지키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가장 고난을 받는 이 때에 여호와의 구원을 노래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찬양)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
상황은 시인에게 너희 하나님은 없다, 너는 이제 죽었다, 너의 시대는 끝났다, 악인이 너를 삼키리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상황보다 더 큰 목소리로 신앙은 외치고 있었습니다. 주 하나님이 너의 편이라, 하나님이 너를 붙드시는도다, 방백을 의지함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낫도다. 주 너의 하나님은 붙드시는 자시며 너를 건지시는 자시라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인이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하나님은 내 편이시라고 노래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환란 속에 담대한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왜냐하면 패배할 것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패배가 무서운 힘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의 인생이 주님의 손에 있고 그리고 저는 주님의 주권 속에서 살아갈 따름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나 병사들 때문에 내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움직이시고 당신의 분명한 뜻을 가지고 계시며 누구를 위해서도 그것을 양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신앙을 가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에서 오는 힘일까요? 도대체 시인에게 무엇이 있길래 환란 속에서도 이렇게 담대할 수 있었으며 황망히 피난길에 오르면서도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평화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비록 환란을 당하고 있으나 하나님과의 지극한 평화 속에 있었기 때문에 환란과 시련이 일어나도 자기는 영영히 삼킨바 되지 아니하리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소나마 하나님과 올바르지 못한 관계에 있었던 결함을 고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은 이 시련의 때에 시인이 왕궁에 편하게 호의호식 하는 대신 망명의 길에 오르며 주님을 의지하고 왕이 아니라 한 사람의 어린아이처럼 주님께 은혜를 달라고 자기를 이 환란에서 건져달라고 이 쓰라림을 낫게 해달라고 아버지 앞에 간절히 빌었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몸부림 속에서 그의 영혼은 원수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혜택을 입게 되었으니 환란 속에서 주님을 부르짖음으로 정결해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고 오히려 주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악한 자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안을 버리셨도다 라고 한 예언이 비난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는 이 큰 풍랑을 인하여 주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갔고 폭풍과 흑암 속을 지나면서 그는 이전에 사울에게 쫓겨 도망 다닐 때의 그 순결했던 다윗처럼 아버지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자하며 그 한분만을 붙들기를 다짐했습니다. 세상에 대한 사랑과 의지하는 마음들이 모두 녹아서 사라지게 되었고 왕이었으나 한 사람의 천한 노예처럼 우리 하나님 한분만을 앙망하면서 은혜와 사랑을 구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 피했고 거기에서 주님은 이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평화를 주시고 그리고 그분이 이 다윗의 왕국을 향해 가지고 계신 주권적인 그 뜻이 변함이 없다는 것을 시인의 마음에 속삭여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IV. 의지하는 자의 하나님
이것이 경건한 사람들이 환란을 통과하는 방법입니다. 시련과 고난이 넘치고 악인의 더러운 반역이 우리를 괴롭힐 때마다 우리는 복수를 꿈꾸고 커다란 무력을 꿈꾸지만 오늘 시인을 보십시오. 자기의 인생을 주님의 손에 맡겼고 자신의 미래도 원수의 앞날도 주님의 손에 의탁하였습니다. 자신은 자기를 사랑해도 가장 좋은 것을 항상 선택하지 않지만 주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자기에게 가장 좋은 것인지를 정확히 아시고 그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굳게 믿으며 자기를 통째로 하나님께 맡겼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그 분의 손을 의지하고 그래서 여종이 주모의 손을 노예가 상전의 손을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을 앙망하면서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서 피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한번 묵상해 보십시오. 시인을 지극히 사랑하시던 언약의 하나님의 눈에 한 나라의 위대한 왕이면서도 자신을 왕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부귀와 영화를 모두 가졌으면서도 이것이 자신의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고백하지 않고 아직도 자신을 따르는 많은 군인과 마병이 있었지만 그것을 의지하는 대신 자기의 시대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며 어린아이가 엄마의 품에 피하듯이 아버지 하나님의 품에 피하는 이 시인이 우리 하나님 보기에 얼마나 가엽고 사랑스러웠겠습니까. 그래서 이 날개 그늘 아래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비할데 없는 하나님의 그 큰 은혜를 맛보며 주님의 손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폭풍과 흑암속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자기의 시대가 주님의 손에 있고 자신의 일생은 주님께 매였다고 고백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악인의 핍박과 고난이 크면 클수록 그의 부르짖는 소리도 더 커져 갔습니다.
(찬양)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 잡고 날 인도 하소서
시험에 들 때 죄짓기 쉽고 원수들에게 공격을 받을 때 그 원수들 못지않게 악한 사람이 될 가능성은 많습니다. 그래서 시련과 고난이 겹칠 때 그 때 우리는 붙드시는 주님께 부르짖어야 할 때입니다. 오늘 설교를 듣는 여러분들 가운데는 아마 일생중 가장 고통스러운 인생의 시기를 지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마다 사람을 향해 복수의 칼을 갈지 마십시오. 이미 지나가버린 일들에 집착하며 후회의 아픔을 곱씹지 마십시오. 도울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사람들을 미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주님이 나를 이 폭풍 가운데 세우심으로 나로 하여금 보아라 너의 인생에는 나 밖에는 도움이 없지 않느냐는 우리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래서 그 분과 나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십시오. 티끌만큼도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려 주님의 친밀함에 내 마음에 사라지게 하였던 것을 뉘우치십시오. 그리고 오직 주님을 굳게 붙들고 하나님 한분께만 소망을 가지십시오. 주께서 나로 하여금 원수의 손에 멸망당하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시면 나는 주님의 기쁨을 따라 그렇게 되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 인생의 유일한 주권자이시고 우리의 모든 시대가 그 분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나의 머리를 드실 때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