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보내신 사랑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녹취자: 장소연
I. 본문해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을 우리를 위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의 나타남이었습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인생의 문제를 사랑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곳곳에서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들이 늘 접하는 대중매체 속에서도, 문학 작품 속에서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인류 역사 이래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물질주의적인 폐해가 현대 사회에서 깊은 그림자를 어둡게 드리면 드리울수록 이러한 인간의 사랑에 대한 욕망은 더욱더 강렬하게 나타납니다. 이처럼 사랑이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런 사랑이 우리에게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은 이 사랑 때문에 불행해져 가고 있습니다. 올바르게 사랑하는 대신 잘못된 방식으로 하는 사랑이 자신과 이웃에게 불행을 안겨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반짝이는 모든 것이 금이 아니듯이 오늘날 우리들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II. 보여주신 사랑
A. 우리의 죄를 속하심
그래서 오늘 요한 사도는 우리 주 예수께로부터 받은 그 사랑의 교훈을 따라서 마땅히 우리 인류가 돌아가야 할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류가 진정으로 돌아가야 할 사랑은 사람들이 발견하고 찾아낸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낸바 되었다고 사도는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 바로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토록 보여주고 싶으셨던 하나님의 사랑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요?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제일 먼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우리의 죄를 속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속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속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속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자,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정말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모든 세계도 선합니다. 하나님은 아름다우신 분이시죠. 그래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들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이 세상에는 죄가 들어왔습니다. 이 죄는 인간에게 심각한 관계의 파괴를 가져왔습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의 파괴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는 자연과의 관계의 파괴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의 파괴도 가져왔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영혼과 육체 사이에 조화로운 관계도 파괴되는 결과도 낳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끊임없이 의지하고 그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아야 할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생명과 참 사랑을 잃어버린 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늘 순응하고 인간은 그것을 잘 다스리고 정복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위대한 계획들을 드러내야 할 이 자연은 인간에게 복종하는 대신 인간에게 반항하고 심지어는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는 투쟁하여야 할 무서운 대상으로 변화되어 다가왔습니다. 자연과의 관계가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람을 지으시고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고백하기를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고백 속에서 아담과 하와뿐만 아니라 이후에 태어날 모든 인류가 그런 사랑의 고백 속에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살인이 들어왔습니다. 나라와 나라간의 이익들이 충돌할 때에는 끔찍한 전쟁이 들어왔습니다. 이 모두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우리의 영혼과 육체 사이에는 아름다운 조화가 있어서 영혼은 하나님의 진리로 말미암아 양식을 얻고 이때에 인간의 육체는 영혼에 의해 규제되면서 하나님이 자기를 창조하신 뜻을 깊이 생각하며 위로 하나님을 우러러 보면서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맺으며 이 세계를 아름다운 세계로 가꾸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영혼과 육체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는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영혼으로는 하나님의 진리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는커녕 육체를 위한 종으로서 그렇게 기능하며 사는 비참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동물과 구별되도록 주신 인간의 좋은 특성들은 모두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데 이바지하는 비참한 결과가 찾아왔습니다. 이 모든 궁극적인 문제들의 핵심에는 결국 죄가 있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너무나 멀리 떠났고,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진노아래에 있고 자신 안에 죄의 결과인 비참을 간직한 채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올 모든 아름다운 자원들이 끊어진 채로 살아가게 된 것은 모두 죄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좋은 것이 빛들의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데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자 이 모든 것들은 한꺼번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속죄는 바로 이와 같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인간은 죄를 지을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자신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습니다. 만약에 이 죄의 문제에서 해결하지 않으면 인간에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어떠한 사랑도 의미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당신의 이 위대한 사랑을 속죄를 통해서 나타내 보여주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이 속죄라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성경은 이 속죄에 대해서 네 가지 범주로 말합니다.
첫째로 이 속죄는 희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희생은 우리가 죄를 지은 장본인이지만 우리 스스로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죄에 대한 대가를 예수께서 오셔서 대신 지불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결국 이 희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고난을 당하신 희생입니다. 이것이 바로 속죄입니다.
두 번째로는 이것은 유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학적으로 유화란 죄를 덮어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는 하나님 앞에 범죄 한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는 백성들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체로 태어나고 하나님과 원수 된 채로 살아가던 불효막심한 인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형벌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그 피를 흘려주시자 하나님은 그 피로 우리의 죄를 덮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유화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마음을 푸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전에는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에게 당신이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우리가 죄 때문에 당하는 이 비참에서 우리를 건져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에 녹는 마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가려주고 덮어주게 하시고 당신의 마음을 푸셨는데 이것이 바로 속죄의 의미입니다.
세 번째는 화목입니다. 이 속죄를 통하여 원수 되었던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가 다시 평화를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샬롬으로 일컬어지는 이 평화는 하나님과의 평화인 동시에 그 평화가 모든 사람들에게서 함께 누려지는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전한 하늘과 땅 모두를 아우르는 평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우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원수 되었던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고 이처럼 화해가 흐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속죄의 세 번째 의미입니다.
마지막 속죄의 네 번째 의미는 구속입니다. 원래 이 구속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사람이 부채를 졌을 때 대신 누군가가 그 부채를 갚아주어 그 의무에서 면제시켜 주는 것을 가리켜서 구속이라고 말합니다. 또 구약에서 어떤 사람에게 그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위해서 누군가가 대신 그 일을 해 줄 때 이것을 가리켜서 구속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속에는 아주 명백한 구출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무엇으로부터 구출해 주시기 위해서 이 구속을 이루신 것일까요? 첫 번째는 우리를 율법으로부터 구출해 주시기 위해서 이 구속을 이루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의하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율법 아래 나셔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심으로 우리를 그 율법에서 구해내셨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대로라면 모두 죽었어야 할 인간을 대신하여 그 율법의 요구를 감당하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의 정죄 아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고 정죄함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죄로부터의 구속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전에는 우리의 신분은 죄의 종이요, 우리의 상태는 몸과 마음과 정신과 영혼이 이 죄에 사로잡혀 있어서 죄를 행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치 술주정뱅이가 술 없이 살 수 없는 것처럼, 게으름뱅이가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런 절망적이고 숙명적인 존재였는데 바로 그 죄로부터 우리를 구출해 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속죄의 의미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속죄는 하나님이 인간 세상에 대해서 하신 가장 위대한 일중의 하나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할지라도 속죄가 없었다면 결코 이 세상에서 인간은 하나님이 그들을 창조해 놓으신 원래의 계획대로 돌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인간이 모든 동물보다 탁월하고 뛰어나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가 올바로 인간답게 살지 않으면 이 세상의 모든 짐승들을 부러워할 만큼 불행해 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죄에서 우리를 속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나타남인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를 이렇게 속죄하실 수 없었을 것이고, 그 분이 만약에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더라면 결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실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셨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몸을 입으셨지만 인격으로는 사람의 인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격을 가지신 분으로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 독생자를 사람의 몸 입혀 이 세상에 내려 보내셨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들을 이 낮고 천한 세상에 인간의 천한 몸을 입혀 내려 보내신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천상에서 하늘의 경배와 천사들의 모든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신 영원하신 그 분을 사람의 몸 입혀 이 시간 세계로 보내신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몸 입혀 이 세상에 내려 보내셨던 것입니다.
한 가지는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무엇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을까요? 제일 먼저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이미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과 그리고 많은 주의 종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증거 하셨지만 그러나 그것은 듣기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내려오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은 그 분의 인격과 삶 속에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이 어떠한지를 모두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오셔서 가난하고, 병들고, 굶주리고, 무지한 자들과 함께 그들을 먹이고, 그들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그들의 질병을 고치며 사셨을 때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신지를 보여주는 응변적인 증거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낮고 천한 세상에 오셔서 당신의 인격과 모든 삶을 통해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있게끔, 손으로 만져볼 수 있게끔 그 품에 안겨서 그분의 고동소리를 들을 수 있게끔 생생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자기의 아들을 사람의 몸 입혀 이 세상에 내려 보내셔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사람이 누구인지 보여주기 위해서 이 세상에 사람의 몸 입혀 오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보여주셨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우리 모두에게 모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또한 모든 죄로부터 벗어난 하나님이 이 땅에 존재하게 하고 싶으셨던 진정한 사람이 무엇인가 하는 그 그림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참 사람이란 이렇게 당신처럼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알고 그 사랑에 붙들려서 모든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자기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속죄의 사랑을 사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 사랑의 본이며 우리 모두가 함께 따라야 할 참 인간의 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병든 자 앞에서 그들을 고쳐주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 속에서 우리는 듣습니다. “너희도 가서 이와 같이 병든 자를 섬기라”고 말입니다. 무지한 자를 멸시하지 아니하시고 친절하게 하나님의 나라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는 교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속에서도 너도 이렇게 무지한 자들을 위하여 가르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나누어 주는 자가 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속에서 네가 너희를 이렇게 섬겼으니 너희도 가서 이웃을 이렇게 섬기라는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멸망을 앞둔 예루살렘을 향해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눈물인 동시에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망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 한 인간의 눈물이라는 사실을 동시에 그 인격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로마서에서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말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우리들을 위해 보여주신 사랑은 이처럼 우리의 죄를 속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우리가 아기 예수 오신 이 성탄절을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슬퍼해야 할 성탄절이 아닙니까? 죄 없으신 영원하신 그 분이 비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낮고 천한 세상에 오셔서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다가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아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떠난 기독교 신앙이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기 예수 오신 이 성탄절을 기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기 예수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그 분에게는 비참한 죽음과 고난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우리에게는 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속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생명과 구원의 길을 열어주실 위대한 증거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성탄절에 가볍게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슬픔 속에 기쁨입니다. 또한 이 환희는 하나님을 향한 구원의 경륜에 대한 깊은 감사 속에서 우러나오는 환희여야 하는 것입니다.
B.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주심
주님이 보여주신 이 사랑은 또한 독생자를 화목 제물로 주신 사랑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말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화목의 제사는 그야말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을 기념함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이고, 이 화목의 결과를 모든 이스라엘 백성 이웃들과 함께 기뻐하며 평화를 누리는 것이 이 화목제의 본질적인 정신입니다.
이 화목제는 공동체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드려졌습니다. 뜻밖에 기쁜 경사가 있을 때에 이 감사제를 올렸고, 서원과 관련돼서 서원제를 드렸고, 그리고 하나님께 특별히 기쁜 날이 올 때에는 낙헌제를 하나님께 올렸습니다. 이 모든 제사를 아울러서 화목제라고 불렀습니다. 화목제에는 반드시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제물은 하나님 앞에 죽여서 바쳐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제물을 제사장과 그리고 모든 이웃들이 함께 나누며 하나님 앞에 기뻐하던 날이 화목제의 날이었습니다. 이처럼 구약에 나오는 이 화목 제사는 커다란 기쁨과 행복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을 얻고, 하나님 앞에 이 화목제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평화를 회복하고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뻐하여 은혜를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이 열리고 주어지는 그 은혜 때문에 기뻐하고 행복해 합니다. 그리고 이 기쁨과 행복, 이 샬롬을 모든 이웃들과 함께 누리면서 나의 기쁨에 모든 이웃들이 동참하게 하여 평화 속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는 이 복된 시간이 화목제입니다. 놀라운 경사요, 커다란 행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 앞에 헌제 하던 제사장과 함께 기뻐하고 그 제물을 함께 나누며 그 기쁨에 참여하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쁨의 함성소리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이런 놀라운 화목의 기쁨이 있기 위해서는 죽어가는 제물이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에게로부터 오는 은혜 때문에 기뻐하고 사람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평화 때문에 행복해 하는 동안 모든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 홀로 죽고 제단에 바쳐져 하나님 앞에 불태워지는 제물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런 화목제물로 이 세상에 내려오셨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바로 이 하나님과의 평화, 사람들 속에 이루어지는 그 평화의 핵심부에 있는 종종 잊어버리기 쉬운 화목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사랑을 많이 받을 때에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이 물밀 듯이 다시 밀려올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큰 복을 주셔서 이 땅의 많은 좋은 것들로 여러분이 행복할 때 하나님이 무엇 때문에 여러분에게 그런 좋은 것을 주시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한때 원수였던 우리들, 아직도 마음속에 죄를 간직하고 있는 우리 인간, 그리고 나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도 못하는 이 비천한 인간에게 이런 은혜와 사랑을 베푸시는 이유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로 죽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좋은 것도 나의 공로로 말미암아 나 스스로 얻었다고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모든 좋은 것들이 우리를 위해 화목제물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 때문에 우리에게 온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잊지 않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평화가 실현되어서 기쁨이 넘칠 때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고, 또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용서를 받을 때, 분에 넘치는 호의를 입어서 하나님께 감사할 때 그때 누구를 생각해야 합니까? 피도 살도 섞이지 않은 우리의 지체들이 눈물과 사랑으로 나를 1년 동안 섬긴 것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자신의 모든 소유를 기꺼이 주님을 위해 내어놓고 자신의 모든 재능을 가지고 우리를 섬기면서도 오히려 우리 앞에 더욱 낮아진 은혜 받은 모든 지체들의 아름다운 섬김은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요? 그들의 마음속에 자기를 위해서 화목제물로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이 그들에 감화를 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예수 때문에 당신들을 섬기게 했고, 예수 때문에 교회를 봉사하게 하여습니다. 예수 때문에 그들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살기를 원하였습니다. 이 모두 하나님이 먼저 독생자를 화목 제물로 주심으로 우리가 돌아가야 할 참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치열하게 사랑해도 불행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우리는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여러 사랑으로 돌아온다고 해서 인간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 하나님의 그 아가페로 돌아오는 사람들만이 진정으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기 예수가 오신 이 성탄절에 우리는 그 분이 화목제물로 오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지지 않습니까? 죄는 우리가 지었고, 우리가 문제를 일으켜서 하나님과 불화하게 되었는데 희생은 예수께서 하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아기 예수로 오셔서 33년 동안을 충분히 사신 후 완전한 인간이 되셨을 때에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로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입니까? 그는 단지 교회 다니는 사람일 수 없습니다. 기독교 가정에 태어나서 기독교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회심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죄인인지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비천한 죽음이 바로 자기의 죄 때문임을 확신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단 한순간도 이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아는 그리스도입니다.
뉴턴이라는 사람은 한때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잡아다가 유럽에 팔던 악명 높은 노예 상인이었습니다. 주님을 만나서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결국은 목회에 헌신했습니다. 노년에 그는 치매기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건강 상태를 염려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이런 고백을 남겼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 내가 늙는다 할지라도 내가 나의 이름조차 잊어버린 다 할지라도 내가 두 가지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참으로, 참으로 저주받을 더러운 죄인이었다는 사실과 좋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 같은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찬양)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III. 화목제물로 주심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화목제물로 주신 것은 그 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입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기를 버리신 것처럼 우리도 또한 우리의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화목제물로 모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온 천하가 그 분이 지으신 것이었고, 우리 모두가 그 분의 소유였지만 그 분은 이 세상에 오셔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건만 당신은 머리 둘 곳 없는 생애를 사시면서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버려 우리 모두를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이끄셨습니다. 당신은 저주를 받으시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혀주셨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는 비록 죄인이요, 하나님 앞에 흉악한 죄인들이었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찢으신 당신의 몸을 통해 우리는 그 휘장을 지나 보혈의 핏길을 걸어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담대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의의 모든 신발을 버리고 보좌에 이르는 새롭고 산 길, 그리스도의 피 뿌려진 그 길을 걸어감으로써 우리는 주님 앞에 다시 사랑받는 자녀로 열납 되고, 그 분과 화목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의지하며 살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 모든 위대한 일들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하나님이신 그 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야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위해 사시고, 우리를 위해 섬기시고, 우리를 위해 진리를 가르치고 마지막에 남은 당신의 몸 하나를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로 온전히 드렸습니다. 그 분의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 분은 모두 우리의 것이었고 또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우리 모두에게 흘러 들어왔고, 우리가 이 사랑을 받은 것은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이렇게 우리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드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우리의 이웃들을 위해 흘려보내고, 마지막에 우리의 이웃들은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우리를 이처럼 예수 알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IV. 결론
오늘 여러분이 이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아직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에 결정을 하십시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까지 사람의 몸을 입고 낮아지시기까지 여러분을 구원하고자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이제 잠시 후 우리를 위하여 아니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이었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앞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향해 어떤 태도를 가지시려고 합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아직까지도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다면 진심으로 회개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신 그 분이 이렇게 내려오신 것,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고 굳게 믿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모든 것들을 주님께 맡기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베푸실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미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면 나는 하나님의 이 사랑을 잊지 말라고 여러분에게 일깨워주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여전히 서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 성탄을 맞을 때마다 우리 같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분에 넘치는 사랑, 가슴 저미는 하나님의 은총을 여러분은 느끼고 있습니까? 그래서 주님이 우리를 위해, 나를 위해 이 모든 것을 주셨으니 나도 이제는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하는 고백이 있습니까?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고 하는 신앙의 고백이 있습니까? 이것을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가지고 우리 주님을 섬깁시다. 땅 끝까지 이 복음을 전하고 어두운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가슴에 바른 그리스도인이 빛으로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 아기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