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요 21:15上)
녹취자 : 조원정
상반절만 보겠습니다. 그들이 조반을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우리가 저녁 먹고 나서 지나온 이야기들을 여러 시간 동안 되돌아보고 회상을 했습니다. 21년 지내오면서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 중에서도 교회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섬긴 사람들 정말 많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가고 어떤 사람들은 남고 또 떠나가고 나면 새로운 사람들이 오고 이렇게 교회를 이어왔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딱 둘로 나누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한 사람을 교회에 보내실 때 담임목사님도 떠나보내신 적이 있는데 영원히 있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갈수도 있고 남을 수도 있고 한데 둘로 나누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유종의 미를 거두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무슨 뜻인가 하면 처음에 큰 믿음을 가지고 교회에 들어와서 섬기기 시작했는데 마지막에는 신앙적으로도 많이 미끄러지고 그런 상태에서 사역에서도 별 열매가 없이 끝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처음에 들어올 때는 불타는 확신이 있어서도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신앙생활도 잘하고 유종의 미를 맺고 사역을 끝맺고 누가 보더라도 아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새로운 길로 가는구나, 혹은 남아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섬깁니다.
차이점은 결국 뭐냐 하면 그 살아가는 삶과 모든 섬김의 동기가 얼마냐 올바른가, 다시 말해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서 있는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 사랑하고 하나님 의지하는 마음으로 봉사하고 섬깁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그 당시에 요한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원래 히브리어입니다. 여호와 더하기 하난이라는 동사입니다. 거기에서 요한이라는 말이 옵니다. 요한이 영어로 존, 독일어로 요한, 다음에 요한네스, 스코틀랜드로 가면 이안이라는데 이안 머레이, 이안 토마스 할 때 존입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하고 부르신 것은 베드로라고 부르시지 않습니다. 처음 예수님이 물고기 잡던 사람을 불러 주셨을 때 자신을 생각나게 하는 호칭입니다. 믿음의 반석 이런 뜻이 아니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한 인간의 실존으로서 정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보다 저 중요한 질문이 없다. 주님을 사랑하면 무엇을 하든지 결국 그는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아까도 그런 얘기 많이 했지만 정말 일을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중요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교회를 위해서 우리들이 섬기고 봉사할 때, 만약에 우리가 여기에서 섬기는 것이 교회에 부담스럽고 보탬이 안 되고 한다면 교회에 미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불러주신 그 부르심에 너무 죄송한 것입니다. 주님이 보실 때 난 네가 거기에 있는 것이 좋다. 넌 참 쓸모 있다. 너 같은 사람 만난 적이 없다. 진짜 최고라는 그런 소리는 못 들어도 네가 있는 것이 아름답고 좋다. 그러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도 잘해야 합니다. 슬기롭고 유능해져야 합니다. 틀림이 없어야 합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늘 말씀을 드리지만 그만 두려고 하면 한두 번쯤은 간곡하게 붙잡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좋은 것입니다.
중국에서 내 책이 처음 나왔지 않습니까? 기적적으로 그 책이 잘 나갔습니다. 아주 확실한 것은 모르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재판을 찍을 것이라고 합니다. 놀랍습니다. 내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았는데, 물론 우리가 좀 팔아주긴 했지만, 그래서 이번에 대개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처음 들어온 인쇄료로 CRTS 학생들 장학금을 주라고 했습니다. 그 이상도 우리가 CRTS를 많이 도와줬지만 이번에 중국 사람들이 책을 사서, 어떻게 보면 중국 사람들이 자기네 중국 사람들이 주는 장학금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감격스럽고 그런지 모릅니다.
거기에 그 일을 하는 찐신 자매인데 출판사를 다녔습니다. 출판사 직원이 삼천 명입니다. 누가 뭘 하는지도 모릅니다. 삼천 명이라는데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중국이 출판물을 관리하는 것이 제일 골치 아픈 일입니다. 출판사를 많이 안 만들고 삼천 명의 출판사가 육백 개 있다고 합니다. 13개성인가 몇 개성이 있는데 육백 개니까 한 성에 오십 개 정도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성도 우리나라만하고 웬만한 성은 우리나라 세배만합니다. 인구가 14억이니까 계산을 해 보십시오. 한 성에 1억 될 거 아닙니까? 우리나라에 출판사가 삼십 개 정도 있다면 사람들이 믿겠습니까? 출판사가 수천 개도 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한 출판사에 삼천 명이 모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매가 직장을 그만 둔 것입니다. 6개월 동안 월급이 통장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만두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마치 아주 영웅인 것처럼 만들어서 글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이 염증을 느낀 것입니다. CRTS 졸업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해서 관두었는데 그 사람이 나이가 오십이 다 되었지만 얼마나 그 회사에서 인정을 받았으면 출근을 안 하는데도 6개월 동안 월급을 보내주는가 입니다. 늦지 않았으니까 돌아오라고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오늘 성경은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는 것입니다. 네가 왜 그 일을 하고 있느냐? 네가 무엇 때문에 그 일을 하고 있느냐? 물으시는 것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것입니다. 교역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직원들도 이제까지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교회 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이 교회에서 주시는 은혜가 감사하고 하나님 사랑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이 나에게 그 일 하는 것을 기뻐하셨기 때문에 교회에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봉사하게 된 것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하잘 것 없이 보일지 모르지만 이 커다란 체계를 구축하고 슬기롭게 교회가 흘러갈 수 있는 그런 체계들을 만들게 된 것도 여러분들의 힘이 굉장히 크고 늘 마음속에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향해서도 가지고 있지만 특히 옛날에 정말 고생 많이 했던 직원들은 더더욱 그런 부채의식이 많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나와 있는 것처럼 우리가 교회를 통해서 은혜를 받고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담임 목사님 만나서 은혜 받고 하면서 사역을 시작했지만 그러나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보다도 더 근본적인 것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아주 분명한 자기의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실망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사람을 사랑해서 사람을 실망시키고 또 교회가 커지면서 서로 맺는 관계나 이런 것도 복잡해가고 교회의 각양 기능들이 다 통일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 간섭하는 사람들이 많아져가고 그래서 우리의 사역의 여건은 늘 다릅니다.
여러분 지하실 교회 있을 때에 기억나지만 그때 교인들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얼마 안 되니까 이렇게 해라고 하면 아멘 하고 다하고 이쪽으로 가라하면 아멘, 아 내가 생각을 잘못했는데 그게 아니었고 이것인 것 같아, 목사님 괜찮습니다. 그럽니다. 그런데 이제는 다릅니다. 사람도 많고 그 중에는 회심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가하면 내가 하나님 때문에 하는 것이다. 만약에 사람이 나를 실망시켰을 때 사람이 나를 실망시킨 것이 나에게 사역을 하고 안하고 아니면 나에게 사역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하게 된다면 이것은 하나님 때문에 섬긴 것이 아니라 사람 때문에 섬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좋게 대해 줄때는 나도 좋게 하지만 실망했을 때는 나도 실망해서 그만 두 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달아 보시는 것입니다. 네가 진짜 나 때문에 섬기는 것이냐? 사람 때문에 섬기는 것이냐? 네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너를 인정해 주고 너를 사람들이 이해해주고 도와주고 밀어주고 이러니까 하는 것이냐? 아니면 그것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이냐? 다 잃어버려도 신앙은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려움을 만나고 역경도 있고 이 일을 하면서도 요구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질지도 모릅니다. 좀 더 완전하게 일을 해내기를 원할지도 모릅니다. 근무한 관록이 붙어, 처음 온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달라야 되지 않습니까?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것을 또 기대하고 그렇지만 처음에 사역을 시작할 때에는 정말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일을 잘하게 되고 요령이 생기면서 나이가 들면서 하나님 보다는 경험을 의지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입니다. 그것을 늘 가지고 있어서 정말 무엇을 하든지 주님을 향한 신앙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 구김이 없는 삶을 살면 됩니다.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를 충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그런 것을 너무 마음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좀처럼 웬만한 말이나 환경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2002년도에 교회를 이리로 왔습니다. 20억 조금 넘게 헌금이 들어왔는데 실제로 걷힌 돈은 16억 정도 밖에 안 거둬졌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열린교회 금융비용까지 다해서 80억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러니 대부분 빚을 지고 와서 했습니다. 그 다음에 2년 지나서 주일학교 애들이 300명에서 600명으로 불어나는데 그 위에 올라가는데 겁이 납니다. 그러다가 결국 교육관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그 교육관을 구입하지 않을 수 없는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주 소수였습니다. 헌금 거의 안 나왔습니다. 얼마나 나왔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10억도 안 나왔을 것입니다. 정말 얼마 안 나왔습니다. 다 빚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때 교인들이 하나님이 은혜를 많이 부어주시니까 그것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은혜 받으니까 그냥하고 또 헌신할 만한 교인들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거의 불에 튀기는 것 같은, 불길 같은 시험을 내가 통과를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돈 때문에 울어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목사 되기 전에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어도 눈물까지는 안 흘렸습니다. 너무 괴로운 것입니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비난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담대하게 찾아와서 목사님은 잘못했습니다.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감히 못합니다. 그때는 내가 또 못됐으니까 누가 와서 그렇게 얘기하면 아마 말로 확 밟아 버렸을 것입니다. 나도 귀가 있는데 안 들리겠습니까? 욕심이 많다느니 어떻게 하려는지 사실 뭐 어떻게 하려는 것은 맞지만 맨 처음에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노무현 대통령이 있을 때인데 그때 법과 경제상황으로 다 계산을 하니까 그것을 사면 월세가 이천 삼백만원씩 나왔습니다. 그 빌딩에서 꽉 찼습니다. 그것을 빌리고 다해도 교인들이 헌금 안 해도 다 굴러가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노무현 대통령이 사람들이 집을 너무 많이 빌려서 산다고 도와주지 말라고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그 빌딩을 샀는데 15억인가 20억이 비는 것입니다. 법적으로 못 빌려 주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고통이 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말도 못하게 고생하고 소수의 얘기 듣고 그것 때문에 목사님이 순수한 줄 알았더니 전혀 그런 분이 아니라면서 교회 뛰쳐나가고 굉장히 괴로웠습니다.
지금 이렇게 지나고 나니 지금 같으면 아마 그런 상황이 되었으면 사겠다고 결정 못했을 것입니다. 절대 못했습니다. 그때도 다 찬동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밀어붙였습니다. 지금 같아서는 아마 그 결정도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돌아보면 만약에 그것 없었으면 어떻게 했을까는 생각입니다. 물론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이지만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지금보다 더 빚에 헤맸을 것입니다.
요즘 뭐라고 하냐 하면 나중에 사람들이 다시 얘기를 합니다. 목사님이 선견지명이 있었다. 그것 없었으면 어떻게 했겠냐고, 물론 그런 것 생각도 안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데 아무도 찾아와서 목사님 그때 제가 목사님 비난한 것 제가 잘못했습니다. 목사님이 맞았습니다. 하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 것입니다.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린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람을 너무 두려워 할 필요도 없고 사람을 너무 기쁘게 할 필요도 없고 최선을 다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주님이 주신 지혜와 능력 안에서, 사자의 울음소리에도 깜짝 놀라지 않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주님 섬기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존재의 울림이 있는 섬김입니다.
보기에는 열린 공간에서 컵이나 닦고 커피나 타주는 것 같지만 확고하게 하나님이 나를 여기에 보내셨고 인도하셨고 그래서 난 여기에서 하나님을 섬김으로 그리스도 교회에 유익을 끼친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때 흔들림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계셔서 여기에 있고 언제든지 주님이 가라고 하시면 가고 남아 있으라면 남아 있는 사람이 나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주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내어 쫒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모든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고 겸손하되 흔들리지 않는 그 중심을 가지고 담대하게 이 세상에 누구보다도 내게 맡겨진 이 일의 의미를 알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섬기는 사람들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