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늦게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녹취자 : 오지윤
첫 번째 문제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나무스꾸리의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들어봅시다. 노래를 들을 때 생각나는 당신 인생의 한 장면은 무엇입니까?
나나무스꾸리는 1934년, 연세가 꽤 드셨습니다. 그리스 태생의 팝페라 가수입니다. 현지에 가보니 굉장히 존경받는 분이라고 합니다. 94년도에서 99년도까지 유럽의원도 하셨고, 여러분이 잘 아는 하얀 손수건부터 사랑의 기쁨, 금지된 장난, SBS에서 하는 하늘이시여 이러한 앨범을 내놓았는데, 4억 장을 팔았다고 한 것을 보면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픔도 있습니다. 이분이 항상 유명세를 탙때 남편이 너무 고독해서 자살해버립니다. 그 아픔을 딛고 재혼을 해서 지금은 존경받으면서 산다고 합니다. 15년 전 이야기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기분도 그런데, 우리 한 번 들어보지 않겠습니까? 정말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우리 이 음악을 들을 때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수많은 가수들이 부르는 것을 들었는데, 저는 사실 별로였습니다. 이분이 부른 것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를 것입니다.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터뷰 1)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조금 더 특별했던 순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여러 가지 가치관들에 정신을 못 차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신앙을 놓칠뻔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때 믿음의 사람들을 의도치 않게 만나 함께 말씀을 배우고 복음을 듣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시간들을 통해서 어린아이 같던 제 신앙이 조금 더 단단해지고, 가장 아찔했던 순간이 가장 큰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 2) 10년 전 어느 날 새벽, 제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어느 날 새벽 어떤 공항에서 필름이 끊겨져 있다가, 술에 만취한 채로 깨어났습니다. 비틀거리며 일어났을 때 저는 금방 제가 토한 것 위에 쓰러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일 이후 얼마 뒤에 복음을 듣고 회심하게 되었고, 그동안 제가 품었던 세상적인 언행과 가치관들이 제 몸에 묻어있던 오물과 같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의 더럽고 부끄러운 죄를 씻기시고 가져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때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많이 눈물을 흘렸던 것 같습니다. 이 노래는 저의 회심했던 때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입니다.
인터뷰 3) 특정한 한 장면보다는, 파노라마처럼 여러 장면들과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것들을 종합해보면, 죽을뻔한 장면들과 죽고 싶은 만큼 괴로웠던 기억들이었습니다. 아주 어렸을 적에 재래식 화장실에 빠졌다가, 극적으로 구조되었던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폭우에 운전 중에 시야가 흐려져서 반대 차선 차량과 크게 충돌할 뻔한 장면도 있었습니다. 질병과 사별의 아픔에 생의 여지가 꺾였던 기억도 떠올랐습니다. 이러한 회상의 파편들은 결국, 내가 아직도 살아있는 이유, 내가 과연 내 생사를 스스로 주관할 수 있느냐는 근원적인 질문들을 제게 던져주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겠지만, 저의 경우에는 회심하던 순간을 아주 명료하게 보여준 것 같습니다. 한때는 내가 잃은 바 되었지만, 이제는 내가 발견되었네, 한때는 내가 눈멀었으나 이제는 내게 보게 되었네 하는 그런 것들입니다. 작사자가 존 뉴턴인 건 아십니까? 노예의 상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주님을 깊이 만나고 아주 훌륭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어록 가운데,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희미해지고 치매 증상도 나타나고 그러지 않습니까? 정신이 온전하냐고 누가 물어보니, 내가 아무리 정신이 흐려져도 두 가지 사실, 내가 죄인이었다는 사실과 그리스도께서 나를 십자가에서 못 박혀 구원해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이라는 어록을 남겼습니다. 비슷한 일화가 18세기의 영국의 전설적인 설교자인 조지 휫필드가 있습니다. 뭔가 이렇게 자기의 신앙이 약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그때 자기가 처음 회심했던 예배당에 찾아가서 그 의자에 입을 맞추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어떻게 구원받았는가를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때 생각을 하면 사실 못 이겨낼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첫사랑의 구원의 감격 속에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2번 문제를 보겠습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저자의 회심 이야기를 들으며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회심의 경험을 짤막하게 나누어봅시다. 우리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인터뷰 1) 세상에 어떤 것으로도 마음 한구석에 뚫린 구멍을 채울 수 없음을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면서,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셨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만족할 수 있게 지으셨기에 내가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게 되고, 마음 깊이 이해가 되면서 회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뷰 2) 저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밤에 자려는데 갑자기 내가 어디에 있다가 여기에 왔지? 죽으면 어디로 가지? 라는 생각이 엄습한 후, 지독한 외로움과 불안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 제가 아사밤을 읽었으니 얼마나 많이 울었겠습니까? 목사님께는 이 책을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20살 때 마지못해 따라간 수련회에서 회심했습니다. 2,000여 명이 넘는 청중은 안 보이고, 설교자와 나만 있는 것처럼 말씀이 들리더니 하나님이 내가 너를 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놀라서 제 이름을 아시는지 마음으로 물었습니다. 그날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위로를 경험하고 밤새 울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숨을 쉴 것 같았습니다.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인터뷰 3) 닻이 끊어진 배처럼,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모른 채 세상을 탐닉하며 방황하던 삶이 지난날의 제 삶이었습니다. 저는 학교 가기가 너무 싫어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1년간은 종일 영화를 보며 살았고, 1년간은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며 살았고, 대학에 와서는 동양철학에 몰두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제 인생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움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친한 교회 형의 권면으로 로마서 성경공부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로마서 말씀을 통해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회심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구원의 감격, 인생의 목적과 의미의 발견, 하나님을 사랑함,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변화 등을 경험하고 알게 된 그 시절의 제 눈가에 맺힌 눈물은 슬픔이 아닌 기쁨으로 가득 찬 눈물이었습니다.
사람마다 회심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기 때문에, 누구의 회심을 꼭 따라 해야 한다든지, 어떤 회심이 바람직하다든지, 그렇게 획일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확실한 사실 하나는, 우리에게 회심의 순간이 분명히 있다는 것, 특히나 성인이 되어서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에게는, 회심은 요약하자면,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죄인이 된 것에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회심은 딱 한 번만 하지만, 회심의 은혜가 계속해서 새로워지는 것이 회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회심의 은혜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마다 각자 다르게 회심을 하는데, 아사밤을 읽혀보니 호불호가 갈리는 것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말장난이다. 어떤 사람은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겠다. 또 어떤 사람은 그렇게 가슴에 끌립니다. 그것이 저는 마음의 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 안에 있는 내적인 구조가, 그러한 고민을 자기가 모두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그러한 고민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말씀이 말할 수 없이 강력한 흡입력을 가지고 다가오게 되고, 아직까지도 그러한 의식이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우주에 관해서 관심이 없는데, 누가 우주에 의한 이야기를 방정식까지 동원하면서 상세하게 하면 짜증이 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이 만약에 먹방에 관심 있는데, 맛있는 맛집 이야기를 하면, 아무리 복잡하게 지도를 그리면서 설명해도 너무 재밌지 않습니까? 그런 것입니다. 할 수 있는 한 우리가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이러한 고민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그 무게를 온전히 느끼면서 살아야 합니다. 생각이 가벼우면 인생이 무거운 법입니다.
어거스틴의 고백록에서 아마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유명한 구절일 것입니다.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제가 라틴어로 읽어보겠습니다. 쎄롯데 아마뷔 폴크로튜돗 땀 한딧꾸바 에트땀 노바 쎄롯데 아마뷔. 내가 늦게야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나이다. 이처럼 오래된, 그러나 또한 이처럼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이제야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나이다. 어거스틴의 처음이 담긴 고백입니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늦게야 라는 단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사밤에서 제가 이야기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리 빨리 만났어도 너무 늦게 만난 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하고는 언제 헤어졌어도 더 일찍 헤어졌으면 좋을 뻔했다는 후회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다음 본문을 보겠습니다. 이처럼 오래된 또한 새로운, 오래된 그리고 새로운 입니다. 무슨 뜻이냐면, 하나님은 아름다우신 분이신데, 지금 내 앞에서만 아름다우신 것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그렇게 아름다우셨는데, 나에게 인식되는 것은 날마다 새롭게 인식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에서도 선지자가 노래하지 않았습니까?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새로우실 리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가 그것을 새롭게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화의 삶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매일매일 더 많이 더 새롭게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3번을 읽어보겠습니다. 저자가 상상 속의 초등학생이었던 자신을 만나며 느낀 바를 말해봅시다. 지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인터뷰 1) 왜 소리내어 울지 못했냐는 물음에, 원망이나 하소연을 쏟아놓기보다는 그저 모르겠다고 답을 하고 풀이 죽은 아이가 가엽고 측은하게 느껴졌습니다. 충분한 사랑을 받은 아이는 구김이 없고 자신감이 있다고 생각된다면, 책 속의 이 아이는 그와는 반대로 연약하고 위태롭게 보여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쩌면 이 모습에 하나님을 알기 전에, 혹은 하나님 안에서의 평강을 누리지 못할 때의 제 모습이 무력하고 불안정하고, 또한 두려움 앞에 담대하지 못한 것과 닮아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인터뷰 2) 초등학생 때에 마땅히 누려야 할 감정의 욕구들을 참으며, 또한 남들에게 서러움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안 해도 되는 노력을 하는 저자를 발견했습니다. 저 역시 그 당시의 나이에 가정환경이나 개인적으로 닫힌 생각 때문에 항상 의젓하려고 노력했고, 또 제 안의 감정의 욕구들을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저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진정한 기도를 드렸던 순간, 그 장면에서 저 역시 하나님이 오래된 책과 이론 속의 신이 아니라, 내 하나님 아버지가 되어주심을 강력하게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인터뷰 3) 소리내어 울지 못할 정도로, 홀로 무거운 짐을 진 채 떠내려간 유년 시절이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과거의 나를 용기 있게 증명하고, 하나님 안에서 사랑받고 사랑할 줄 아는 존재로 우뚝 서 있는 저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자가 경험한 하나님을 아는 영광이, 유년 시절 질그릇 같은 기억에 담긴 보배이기에 지금, 이 순간도 어디선가 소리 없이 고통받는 수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가 되도록 영광을 담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은 제가 아사밤을 쓰면서 밤에 연구실에서 자고 그러면서 가장 많이 울었던 대목이 여기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것이 나만의 특별한 경험이었겠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느끼는 경험이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초등학교 2학년 때라고 아까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일찍 느끼는 사람도 있고, 지금 암 투병 중이시라고 하는데, 이어령 교수의 자전적인 글 속에서 제가 한 번 읽었는데, 6살 때인가 굴렁쇠를 굴리면서 애들과 놀다가 갑자기 자기가 죽어야 할 존재라는 사실에 말할 수 없는 설움이 밀려오면서,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소위 이야기하는 메멘토 모리입니다. 죽음의 순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이 모든 사람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경험을 매우 늦게 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특별한 사람들은 애써서 그러한 기억들을 외면하는 회피가 불행하게도 성공을 거두어서, 미친 듯이 세상에 몰두하며 살다가 허무하게 일생을 마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쓰면서, 자신과의 화해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부분을 쓰면서 굉장히 많이 울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평소의 의식 속에 그때 그렇게 혼자 울었던 일에 대해서 어마어마한 설움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지금도 사실은 제가 울 때 똑같은 노릇이 있습니다. 통곡하면서 울지 않는, 소리 내지 않으면서 우는 버릇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초등학교 때 그래서 지금도 어마어마한 상처가 되어서 나를 괴롭혔냐,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러한 것을 회상함으로써 회상하고 그때의 나 자신과 만나면서 그 아이와 내가 불화하고 싸웠던 것은 아니지만, 진정으로 그때의 나 자신, 그러한 장면을 제가 묘사했는데, 그 아이는 아파서 울었고 나는 그 아이가 아파서 우는 그 모습이 아파서 울었다고 썼습니다. 그렇게 만나면서 사실은 과거에 나를 불행하게 했던 기억도 내 인생의 정말 일부분이고, 그것이 내 인생의 한 계단이 되어서 나의 인생의 계단을 걸어가게 만들었던 순간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까, 놀라운 평화가 왔습니다. 정말 모든 것을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탁월한 사랑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 그러한 시간이었고, 여러분도 아마 방식은 다르지만, 그렇게 여러분 과거의 자신과 만나서, 때로는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이 어떻게 오늘날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만들었는가를 생각한다면 여러분의 인생 중에 어느 한 인생도 버려야 할 만큼 무가치한 한 토막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여러분들이 미끄러지고 잘못했던 순간까지도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그러한 큰 고난, 심지어 범죄까지도 경험했지만, 결국 믿음으로 살아서 그 모든 순간을 하나님 만나는 기회로 삼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4번 문제, 예수 믿기 직전 방황하던 당신을 만난다면, 지금의 당신은 무엇을 그에게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지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인터뷰 1) 어렸을 때는 하나님보다 세상 친구들의 인정을 더 많이 받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관계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하나님 원망도 많이 하고, 많이 힘들어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한테 하나님만이 진짜로 유일하신 참된 친구고, 변하지 않는 사랑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래도 그때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이러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니까, 끝까지 신앙을 놓지 않고 잘 버텼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인터뷰 2) 방황하는 저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진짜로 마음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말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삶과 삶의 방식에 만족하는지를 말입니다. 만약에 만족한다면 더 이상 해줄 말은 없지만, 상당히 불만족스럽고 뭔가 새로운 변화를 찾고 있다면 두 가지를 알려주고 싶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꼭 만나보라는 것과 또 하나는 인생은 머리로 사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인터뷰 3) 홀로 고통하는 내 영혼이 참으로 애처롭구나. 내가 세상 가운데서 내 영혼의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여러모로 애쓰나, 거기에는 참 빛과 생명이 없단다. 내가 괴로운 이유는 세상의 것을 덜 소유해서가 아니라, 내 인생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란다. 내 고집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눈을 돌려라.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알아보고, 그분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그분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가야지만 네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단다.
다들 전도자가 되셨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전도하시면 됩니다. 저는 요새 파스칼에 조금 빠져서 매일매일 파스칼의 팡세를 묵상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책도 써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읽었던 팡세지만, 다시 읽고 보면 인생에서 무엇이 제일 필요한가 하는 것을 하나 아주 충격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부인할 수 없이 동의해야 될 사실 하나는, 인간은 비참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참의 핵심부에는 필멸할 존재라는 것,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 그리고 그 죽음의 순간은 나의 동의에 상관없이 찾아온다는 것, 그 죽음 이후의 순간에 대해서는 아무도 갔다 와 본 사람이 없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죽음은 두렵지 않습니까?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할지라도, 매일매일의 일상이 행복하기 때문에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일찍 교회에 나왔습니다. 6시 50분쯤 됐습니다. 라디오를 켜니까, 작년에 우리 국민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아주 깊은 외로움을 느꼈다고 조사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중에 어떤 사람은 심각한 정도일 것입니다. 소득이 낮을수록 외로움을 느낀 비율이 훨씬 더 높았다고 합니다. 소득과 외로움을 느끼는 것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데, 그게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소득이 있고 생활이 넉넉한 사람들은 그러한 인생의 괴로움과 외로움을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원을 소비함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우울하다. 벚꽃 여행이나 떠나볼까?" 겨울이라면 "스키나 타볼까?"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 않겠습니까? 회피하는 것입니다. 근원적인 문제의 해결은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을 보면서 결국 인간에게 유한한 존재라는 것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 인생을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고, 두 번째는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솔직히 말해서 얼마나 많은 고통이 우리의 인생에 있는지 말해주고 싶습니다. 결코, 세상을 감사하게 사는 것도 필요하고, 낙관적으로 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정직하게 본다면 인생은 끊임없는 고해다. 고통의 바다다. 거기서 그 고통의 바다를 지나는 인생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그 고통의 바다가 과정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것을 설득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제가 여러분처럼 그렇게 전도하지 않았을까 물으시는데, 저는 그 나이에 무신론자가 되려고 결심을 했는데, 전도한다고 해도 받아들여지겠습니까? 안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나 같았으면 아마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 아주 객관적으로 놓고 볼 때 네가 원하는 것들을 얼마 동안 갖는다고 하더라도 인생이라는 것 자체가 끊임없는 고통의 바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눈에 보이는 세상 말고, 이 세상 너머에 있는 세계에 대해서 눈을 떠보라고 이야기를 함으로써, 설득해서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해주고 싶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 뉴스를 들으면서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깊은 외로움을 느꼈다는 것을 들으면서, 어떻게 보면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진짜 사랑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주위에도 돌아보면 외로운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나 외롭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게 잠수를 탑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시야에서 멀어집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닙니다. 많은 고립사 하는 사람들이 무소식 속에서 사라져서, 죽은 지 두 달 석 달이 지나도 발견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한 번 곰곰이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소식이 끊어진 사람들이 누구인지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잘살고 있으면 좋지만, 분명히 말할 수 없이 외로운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과 한 번 이루어지는 통화, 한 번 건네주는 따뜻한 말, 그리고 작은 선물, 짧은 교제의 시간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지금이야말로 정말 우리가 사람들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할 시간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음다음 주에 다시 만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