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7)
녹취자: 조원정
제가 아는 선배 목사님 한분이 늘 가족에게 유언을 했습니다. 내가 죽거든 우선 이 서랍에 있는 편지 봉투를 뜯어보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 그래서 식구들은 그 유언장에 아마 거창한 유언이나 아니면 재산분배에 관한 목사니까 재산이 별로 없다 하더라도 뭔가 후손들에게 줄 수 있는 깊고 긴 교훈이 아마 장문의 편지 형식으로 들어 있을것이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가고 결국 그 목사님은 돌아가셨습니다. 그 목사님이 평소에 말을 기억하든 사모님이 서랍을 열고 그 유언장을 뜯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무 유언도 없고 순서지 하나가 나왔습니다.
의인은 자기 이름을 써놓고 장례식 예배 순서 해놓고 사회 볼 사람 기도할 사람 설교할 사람까지 다 정해놨고 본문하고 설교제목까지도 아예 자기가 박아놨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읽어드린 로마서 8장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7-39)
여러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놓치기 쉬운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시고 우리의 인생을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가장 완벽하게 사랑과 선으로 수를 놓으시면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분이신 줄을 늘 잘 알면서도 우리가 그런 하나님의 성품을 믿고 따르지 않기 때문에 인생의 모든 불행과 교만한 삶의 태도는 바로 거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께서 율법의 요구대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그것을 보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죠. 이 세상에서 흐르는 물은 댐으로 막을 수 있고 그리고 흐르는 개울은 둑을 막아서 그 길을 변형 시킬 수 있지만 우리를 향해 계속되고 있는 하나님의 이 놀라운 사랑은 불로 비유하면 끊을 수 없는 불이고 물로 비유하면 막을 수 없는 물이라는 것입니다.
하수와 같이 그리고 물같이 흘러가서 도저히 누구도 그것을 거스리고 그걸 막아 설수 없을 만큼 그런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인생들을 향하여 흐르고 있고 특별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속받은 자녀를 향하여는 이렇게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는 우리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의 삶도 결코 평탄한 인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 받아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알았지만 그러나 그것 때문에 우리가 갑자기 양탄자가 깔린 것 같은 그런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이 이야기를 남의 이야기처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삶에 간증을 통해서 말해주는 것입니다.
다메섹 가는 길에서 생명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인생은 안전하고 탄탄한 길이었을 것입니다. 비난받을 필요도 없었고 사람들에게 버림받을 필요도 없었고 미말의 찌끼와 같이 저주 받은 자와 같이 깊음을 일주일이나 지내면서 사형선고를 받은 자와 같이 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탄탄한 길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장래는 약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났습니다. 자기는 원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즉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같은 죄악 된 인생들을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목메이는 사랑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이었습니다. 그가 걸어오신 33년이 되는 지상 생에의 모든 발자취 그걸 움직인 것도 바로 바울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움직였습니다. 어두움이 전혀 없고 찬송이 그치지 않는 거룩한 하나님의 보좌를 마다하고 천하고 더럽고 추운 이 땅에 내려오게 만드신 것도 하나님의 불붙는 사랑이 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마지막에는 자기와 같이 만물의 찌끼와 같은 더러운 죄인에게도 박해를 받으셔서 처음 사도바울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 존귀하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것이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바로 네가 핍박하는 예수란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계속된 자신의 핍박을 마다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와 같은 죄인을 찾아오신 그 원동력을 사도바울은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발견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알았지만 그러나 그의 생에는 넘치는 고난과 살 소망이 모두 끊어지는 고난의 길을 걸어야했습니다.
여러분 평탄한 길을 걷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증거가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고난의 길을 걷는 것 그것이 꼭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깊이 알고 은혜와 사랑을 깊이 경험한자들로 하여금 고난의 길을 걷고 눈물의 길을 걸어가게 만드십니다. “이 모든 일에 이기느니라” 말했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이 모든 일을 겪었습니다. 환난이나 핍박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저주아래 떨어진 것 같은 고독과 모든 괴로움의 나날들을 사도는 경험하며 이 길을 걸어왔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우리들은 바로 이러한 정신들을 가지고 세상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약합니다. 너무나 나약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 하나님은 그 들에게 은혜를 주시지만 그러나 그 은혜는 거저 부어주시지만 하나님이 그 은혜를 부어주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다만 주를 믿을 뿐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기 위해 은혜를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곳에 교회를 세워놓으셨습니다. 여러분 맨 처음에 이 교회는 하나님이 제게 기도의 응답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교회를 개척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학교에 신학대학의 교수로 청빙을 받아갈 때에 그런 것 안하겠다고 각서에 도장을 찍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93년 11월 제가 어느 날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제 마음을 불같이 움직이셨습니다. 개척을 해야 된다는 것 이었습니다. 하나님 생각해 보십시오 무조건 하라고 그러지 마시고 제가 신학대학을 그만두라고는 말씀을 안 하시고 교회를 하라고 그러시면 어떡합니까? 인간과의 약속도 지켜야 하는데 제가 만약에 개척하는 줄 알면 학교에서는 생활비 대주고 집주고 학교 다닐 등록금 까지 대주고 저를 온전히 다 후원을 했는데 죽일 놈이라 그럴 것입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그런데 ‘하라’ 이거 어떻합니까? 설마 가끔 자다가 개 꿈꾸는 수도 있으니까 이게 응답이 아니라 아마 내 맘속에 일어나는 객기일지도 모릅니다. ‘남들 다 당회장 되니까 너도 한번 되보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냐? 주제의 무슨 개척은 신학교나 열심히 다니지.’ 하고 드러누워 잤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는데 다른 기도는 하나도 안 시키고 나도 모르게 ‘기도가 쏟아져 나오는데 하나님 능력을 주시옵소서. 깃발을 꽂아야 되겠사옵니다.’ 한참 기도하다가 이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그날도 부인하고 하나님 객기가 이틀을 안 간다 했으니 ‘오늘은 3일째니까 별일 없겠죠.’ 하고 드러누워 자는데 이번에는 하나님이 전혀 잠들지 못하게 하시더니 드러누우면 다시 깨고 일어나서 침대 맡에 엎드려서 기도하면 “개척해라. 개척해라.” “너는 교회를 세워야 하느니라.” 또 드러누우면 다시 잠이 안 오고 다시 일어나고 새벽 밤새도록 한잠도 못자고 드러누웠다 일어났다 그렇게 기도를 하다가 그 다음날 되서야 비로소 이게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사실을 확고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아무것도 없고 대개 개척 할 때는 돈 많은 장로님이나 땅 주는 권사님이 있다는데 난 그런 것도 마련 안 해 놓으시고 “네가 알아서 해라” 하나님이 그러시는데 그래서 여기 와서 결국은 교회의 터를 얻었습니다. 불과 열흘 안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터를 얻었는데 사글세를 얻었는데 60만원을 사글세를 낸다고 생각하니 아득했습니다. 60만원 뭐로 돈을 내나 하며 시작을 했는데 참 그렇습니다. 내 누구라고 말하지 않는데 여기 근처에 사는 어느 목사님이신데 이 교회를 하다가 간 자리입니다. 넉 달 동안 폐허가 되어 있던 자리인데 열심히 들어와 가지고 이제 개척할 때 7-8명 있었습니다. 교역자 부부 빼면 세 명입니다. 네 명이 교역자 부부였으니까 빼고 근데 열심히 땀이 범벅이 되어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동네 목사님이신데 오시더니 여기 누가 왔나 그러고 들어오시더니 어떻게 오셨냐고 했더니 교회 할라고 한다 했더니 ‘에고. 쯔쯧 여긴 안 되는 데야. 속았구만. 허당이야. 여긴 안 되는 데야.’ 그러고 돌아가셨습니다. ‘기왕이면 주여 이 자리가 어렵사옵니다만 축복해주소서.’ 하고 그러고 가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그러고 가셨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섰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면서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 없이 이제 모인 지체들이 어떤 사람은 적금통장을 깨고 어떤 사람은 또 월급 받은걸 모은 걸 털어놓고 하면서 그러면서 교회가 서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교회가 서게 될 때 그 지체들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든든한 후원자도 없고 누가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모든 걸 우리 손으로 하여야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가만히 목회하면서 이년 반이 넘는 세월을 돌이켜보니까 하나님이 교회를 이루시는 방법은 놀라웠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받은 사람 앞에 감당하기 어려운 어려움과 시련들을 주시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를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의지하여 그 어려운 일들을 이기고 감당하게끔 만들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년 반 삼년 가까이 되어 오는 동안에 성도들의 수도 불어나고 이제 많은 시련과 어려움들을 겪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변함없이 삼년가까이 한자리에 서 있지만 그러나 저는 그 속에서도 한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는 움직이는 교회를 보았습니다. 좋은 의미에서 움직이는 교회가 아니라 나쁜 의미에서 움직이는 교회도 보았습니다. 지체들이 그 속에 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생애적인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를 위해 살겠다고 결심하는가 하면 신앙생활 하다가 맘이 부패해지고 침륜에 빠져서 불명예를 안고 스스로 교회를 떠나는 그러한 어리석은 사람들도 가슴 졸이며 보아야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께서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교회를 섬겼던 많은 교역자들과 그리고 또 우리 평신도들과 많은 하나님의 지체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하면서 우리 중에 누가 교회가 아플 때 아파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교회가 고통 할 때 고통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마지막 까지 그 고통과 어려움을 눈물을 삼키며 견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사람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교회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인 것입니다.
오늘 사도는 말합니다. 이 모든 일에 이 모든 일 환란이나 핍박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적신이나 이러한 모든 한계상황들이 우리에게는 기다리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도 이러한 위기와 그리고 고난과 시련과 역경과 분투를 요하는 역경과 환경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말할 수 있거니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의 앞에는 이러한 어려움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 1:29) 말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에의 놀라운 사랑과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뜨거운 하나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산 사람이었지만 그러나 그는 액체의 희생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부어주시는 놀라운 은혜 때문에 평탄한 길을 걸어갔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의 부어주시는 놀라운 은혜 때문에 안락한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사명이 없으면 안락한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목표가 없는데 뭐 하러 고난을 무릎 쓰고 걸어갑니까? 목표가 있고 가치가 있고 그리스도예수의 놀라운 사랑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발견하게 된 인생과 신앙의 좌표가 있고 사명이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우리의 인생의 안락보다도 귀한 것을 알기 때문에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거룩한 사명을 완수하겠다고 걸어가는 것이 이게 진정한 기독교인의 삶일 것입니다. 사명이 없는 사람은 영혼 없는 육체가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죽은 자와 다름이 아닌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예수의 놀라운 사랑 속에서 자기에게 주어지신 이 놀라운 복음의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자기의 모든 생애를 다 바쳐서 이제 이방과 임금들 앞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이 피 묻은 복음을 증거하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세상에서 당하고 계시는 그 모든 터무니없는 오해의 누명을 벗겨 주는 것만이 자기의 대치할 수 없는 소명이라고 느꼈습니다. 환란과 핍박이 그의 앞에 언제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 그가 그를 많은 환란과 핍박은 그가 추구하고 따라가려고 했던 사명이 얼마나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목회의 길로 들어 설 때에 호락호락 들어선 것은 아니지만은 그러나 코에서 이렇게 단내가 나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받을 때도 있고 역경을 받을 때도 있고 그리고 보기 싫은 상황에 직면해야 되는 적도 있지만 그러나 우리를 움직인 것이 사람이 아니라 우리를 움직인 것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믿고 의지하며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서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며 고생하는 영혼들을 그리스도 예수의 피 묻은 품으로 불러들이는 이일에 최고의 가치를 느끼고 이일에 들어서게 하시는 이가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 그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이 우리를 버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서 우리를 사명의 자리로 부르고 계시는 한 우리는 이 가는 걸음을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난 3년 동안 우리는 여러 가지 시험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시련들을 당했고 때로는 우리가 두 눈을 부릅뜨고 눈물을 흘리며 악한 원수들에게 먹히고 있는 지체들을 보아야 되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끊임없이 능력을 주시고 또 끊임없는 변화에 도전 할 수 있는 믿음들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겐 그 어느 때보다 불굴의 패기와 그리고 꺾어지지 않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목회하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연약한 존재인지는 몰랐습니다. 용사와 같이 펄펄 끓다가 냄비처럼 식어져서 패잔병처럼 보따리를 싸는 지체들의 뒤를 보면서 ‘아 하나님 이게 바로 우리의 모습이군요?’ 그런 것들을 가슴깊이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집사님들이 살림을 잘하셨지만 경제적으로 저는 한 번도 고통을 받아 본적이 없습니다. 교회를 하면서 교회적으로 언제나 마음에 고통은 하나였습니다. 주님이 이 교회를 주실 때 제가 3일째 기도하는 날인가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마 9장입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잃은 양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그래서 그런지 예언이 맞아 떨어진 것인지 교회 들어오는 사람은 인생 G선상의 아리아 춤을 추는 사람들입니다. 어쩜 그렇게 대하소설 같은 인생을 살다가 온지 모르겠습니다. 좀 그냥 평탄하고 신앙은 뜨겁고 돈은 많고 이런 사람은 안 왔습니다.
한참 우리 집 앞에 빌라를 이렇게 내려오다 보면 예쁜 교회가 하나 서있습니다. 아담하게 서있습니다. 어떤 꼬마가 있는데 아저씨 이 교회 할머니가 지어 준 것입니다. 교회를 한사람이 지어 줬나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사람 안 옵니다. 기도도 안 해 봤지만 하나님이 주신말씀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내가 목자 잃은 양같이 유리하고 고생하여 어디서도 고칠 수 없이 찢어지는 영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이제는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자기를 건질 능력이 없는 사람들 내가 그런 사람들을 너희에게 보내마. 맨 처음에는 그 말씀이 그냥 좋은 말씀인줄 알았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들어오는 수많은 교인들 이 가슴속에 고슴도치 같은 가시를 가지고 온 사람들 찢기고 할퀴고 여러분 상처받은 사람들은 무섭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러면서 막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그 속에서 느꼈습니다. 아 하나님이 정말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렇게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따라 살고 싶지만 그 길이 어디인지를 모르고 하나님을 위해서 향해 불꽃처럼 살고 싶지만 그렇게 살아갈 힘이 없는 사람들 어두운 세상에서 위로자가 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격려와 위로와 사랑을 베풀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은 그러나 어느 듯 사랑을 하기 보다는 받기에 능한 그런 안일한 심령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이 치료하도록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셨구나. 택했습니다. 저는 한순간도 목회를 한다는 생각을 한 적 없습니다. 언제나 저는 ‘나는 특수목회자다. 난 특수 목회하는 사람이다.’ 하는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 중에서 ‘아니요.’ 하는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십시오. 누가 우리 교회 와서 사연을 조금 아는 사람이 그럽니다. ‘목사님. 목사님의 교회는 공포의 외인구단 될 거 같아요.’ 이 소리를 듣고 웃지 못하시는 분들은 요즘 만화를 안 보시는 분들입니다. 상처받고 그러나 저는 낙담하지 않고 한 번도 낙담한 적이 없습니다. 상처받고 고통 받아서 이 세상에 다 찢어진 사람들이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치유 받지 못 했을 때 그 사람들이 모인 곳이 거의 교회될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알고 고침을 받기만 하면 그런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 외에는 삶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는 신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해 오시는 가운데 수많은 위기들을 우리는 만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언제 어느 상황에서라도 굽히지 않는 신념이 저에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교회를 붙들고 계시는 한 교회는 안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로 2년 10개월 만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당을 가득 차게 하시고 그리고 또 이렇게 기도하는가운데 하나님께서 가장 훌륭하고 좋은 교회당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 앞에 있는 현실들이 3년을 기점으로 낙관적으로 바뀌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부흥하고 그리고 성도들이 변화되는 것을 이 골목에서 줄지어 서서 기다리면서 시기하는 악한 자들이 있습니다. 동네주민이 아니라 악한 사단의 졸개들입니다. 끊임없이 도전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강단에서 쏟아나는 생수의 강을 막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서 몸부림을 칠 것이고 강단 아래에서 말씀을 들고 심령을 깨트려져서 영혼 깊은 곳에서 생수의 강이 터져 나오지 못하도록 그것을 방해하고 막기 위해 혈안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곳에서 변화 받는 것을 시기함으로 말미암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우리를 도전할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가치 있는 일은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모든 것들을 비웃으며 얼마든지 우리는 우리의 걸어갈 길을 걸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주신 교회의 길 이 목양의 길 이 신앙의 길이 우리가 발견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길이며 주께서 우리를 이곳에 보내셨고 그리고 대치 할 수 없는 소망과 열망을 우리에게 주셔서 이 교회에서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주님을 사랑하고 날마다 인격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그리스도 예수 앞에 결단하고 하나님을 믿게 될 때 이곳에서 신앙 생활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 신념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신념이 있고 특별히 그 신념의 기원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에 두고 있는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약하나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주님이 강하고 우리들은 연약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의뢰하는 하나님은 강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앞으로도 이 일들을 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이곳에 불러 모으시고 하나님이 이제껏 까지 고난과 역경의 가시밭길을 걸어오게 하셨습니다.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면서 우리들은 시작할 때보다 훨씬 더 늙었고 그리고 피곤과 그리고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우리의 건강을 앗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끝까지 이기고 끝까지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는 자는 삽니다.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세워놓으신 거룩한 뜻을 우리는 기억하고 받들면서 끝까지 싸우고 전진해 나아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제 이 뜻깊은 예배를 통해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호소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제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세우시고 이교회를 통해서 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고치시고 이 땅의 교회들을 치료하시고 그리고 이렇게 불신앙의 세력들과 이방의 문화에 둘러싸여서 복음이 빛을 잃어가고 있는 이 이런 탈신앙의 시대에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가 시대의 사조와 풍조를 원망하지 아니하고 이 세상이 흘러가는 인간의 풍조 날마다 달려오는 세상의 사조에 영합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복음을 피 묻은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지닌 생명력 있는 공동체로서 이 조국위에 우뚝 설 수 있는지를 보여 줄 수 있는 간증을 우리는 이교회를 통해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들을 위해서 우리는 이제 용사와 같은 사람들이 필요 하다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완전히 승복하고 삶의 꿈과 죽음에 대한 모든 가치가 거듭난 사람들 그래서 사나 죽으나 나 같은 인생을 건지고 구원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보답하며 그를 경외하고 이 땅을 고치는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가 되어서 살기를 원하는 거룩한 결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우편에 서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모든 일들을 행할 수 있는 은혜와 힘을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을 하나님께서 불러내시어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 올 때는 그리고 이 교회를 올 때는 인생의 마지막 모서리에 서서 갈 바를 모르고 그리고 병든 자처럼 되었지만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여러분들을 고치고 변화 시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소망을 견고히 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바라보는 그 믿음과 은혜를 갈망하는 신앙의 마음을 가지고 고난과 위기의 역경의 파도를 헤치며 이 교회의 일원이 되어서 함께 노 저으며 여기까지 주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왔던 것입니다.
때로는 일주일에 네 번씩 계속되는 폭우로 쏟아져 들어오는 물을 퍼내면서 혹은 발목을 물에 잠근 채 예배를 드리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그 마음을 진리로 움직이셔서 하나님께 마음이 확정되지 않은 사람들은 소수이긴 합니다만 교회를 떠났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은 교회를 떠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커다란 흐름이 필요한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믿음에서 물러가고 그리고 거룩한 전쟁에 참여할 용기가 없어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겁쟁이들은 언제 어느 시대에나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가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살고 나 같은 죄인을 그 인생마지막 고비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죄로 말미암아 물들어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비참한 죄악과 어둠 가운데 있는 자를 건져 내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 자신의 인격 속으로 다가와서 자기를 굴복시키신 예수의 참다운 사랑을 알았던 사람 그리고 그 놀라운 사랑과 은혜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교회의 커다란 흐름이 된다면 교회는 능히 역사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그래서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순수해지길 우리가 기도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바입니다. 처음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십자가에 깃발을 꽂으며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골판지를 깔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 이곳에 주님의 뜻을 이루는 이 땅을 고치는 거룩한 부흥의 도구가 될 교회를 세우시옵소서.’ 라고 눈물로 기도하던 그 가난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온전히 의뢰하는 마음을 우리는 되새겨야 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왜 신앙생활하면서도 교회 생활 하는 것이 곧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교회 생활을 교회생활대로 하면서도 영혼의 끊임없는 갈증을 느끼면서 고통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결국은 자기가 그 교회에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고 최선을 다해서 진리를 알고 자신을 굴복시키신 인격적인 하나님 앞에 자신의 중심을 드리며 살면 그것이 곧 그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시고야 말 것이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의미에서 저의 관심은 이 열린교회가 아닙니다. 저는 이교회를 사랑하지만 그러나 이 조국의 교회를 훨씬 더 사랑합니다. 저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열린교회의 위대한 부흥을 보고 싶으냐? 조국교회의 위대한 각성을 보고 싶으냐? 묻는다면 저는 전자를 버리고 언제든지 후자를 택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제 기억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땅을 고치지 않는 교회는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 짜다, 짜다 말하는 소금창고와 같은 교회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수 천 개의 등을 걸어놓고 불을 밝혀놓고 밖에는 어두움이 가득한 조명상회 같은 교회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누룩만 가지고 어떻게 반죽을 하겠습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우리가 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야 하고 왜 이 민족의 유일한 소망이 정치회담이 아니라 피 묻은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밖에는 소망이 없다는 사실을 외치며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유를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청년이 저희 교회 초창기에 나와서 사경회에 나와서 앞자리에 앉아서 얼굴도 곱상하게 생긴 자매가 한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은혜를 받습니다. ‘야. 이건 완전히 녹는 구나.’ 그랬습니다. 참 얼마나 대견한지 모릅니다. 근데 ‘교회는 어떻게 다니냐?’ 하니 신통치 않게 대답을 합니다. 그러면 이제 참 좋은 일이 일어 나는 거 아닙니까? 잘 다니는 사람 오라고 할 필요는 없잖습니까? 그러더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교회등록을 하겠답니다. 그러라고 그리고 그 다음 등록하겠다는 사람이 안 옵니다. 그래서 갔나보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때 꽤 여러 번 눈물을 흘렸는데 그 눈물은 다 어디가고 또 도망갔나? 나중에 와서 하는 얘기가 뭔 줄 아십니까? 열린교회 와서 자기는 소외감을 느낀답니다. 그래서 누가 또 밥 안줬나 해가지고 누가 그러더냐 하니 뭐라 하는 줄 아십니까? 은혜가 충만 했을 땐 그런 생각 안 들 것입니다. 뭐라 하냐면 잊힐 수 없는 얘기를 했습니다. 이 교회 오면 자기 또래 청년들을 보게 된다고 합니다. 당연하잖습니까? 눈에 보이니깐 보는 것입니다. 자기는 어떻게 살까를 그것도 해결을 못해 쩔쩔매고 있는데 옆에 있는 청년들은 어떻게 죽을까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자기의 생각에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 분명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냐 하면 뭔가 우리교회 청년들 마음속에 우리 교회 교인들 마음속에는 예수 믿고 단지 복 받고 잘 먹고 잘살다가 죽으면 그것이 복 받은 인생이라고 하는 그 이상의 무엇이 가슴속에서 하여튼 응어리지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땅을 고치기 위해서 하나님의 부름 받은 교회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는 언제나 많은 어려움과 역경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만나게 됩니다. 저는 앞으로도 여러분이 저와 함께 신앙생활하며 이 교회에서 함께 하나님을 섬겨가는 과정이 평탄하고 안일한 길이라고 3년 후 5년 후 10년 계획에 청사진을 내어놓으면서 쉰 소리 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내일일은 나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주님이 우리를 이 땅에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신 거룩한 목표를 성취해가려고 애를 쓰면 애를 쓸수록 우리는 고난과 그리고 많은 시련들을 당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런 고난과 시련을 주시는 사람들은 아무나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인격을 아는 남다른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 안에서 여호와를 의뢰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공급되는 은혜와 능력이 무엇인지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런 고난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난을 받고 박해를 받으면서도 그 고난과 박해와 시련이 도무지 기쁨을 앗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교회는 잔디밭에서 꽃이나 따고 노는 어린애 같은 그런 교회가 아닙니다. 교인들을 풀밭에 쭉 눕혀놓고 기저귀나 채워주고 젖병이나 먹여주는 그런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뒤웅 치는 파도를 향하여 잔잔하라고 명하고 이 교회와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고 싶어 하는 많은 이세상의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의 진실을 보여주고 인생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지만 진정으로 가치 있고 보람된 인생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알려주어서 그들로 하여금 파도를 헤치고 시련의 폭풍우를 지나서 안전한 포구로 이끌 수 있는 영적인 지도력을 가진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말하는 것입니다. 안일하고 나태하게 신앙생활 할 사람들은 적성에 맞는 교회를 찾아가고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이 자기를 왜 구원하셨으며 이제 내가 왜 이 하나님을 믿되 이 어두운 세상을 대충 살수는 없고 불꽃처럼 살아가야 되는지 깨달은 사람들만 교회에 남을 것이다. 그래서 작지만 세상을 바꾸어 놓을 수 있고 그 작은 무리들이 크게 뭉쳐서 결국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들이 되어서 120명의 성도들로 예루살렘을 뒤집어서 새 세상으로 만드셨던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기대하는 교회가 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스스로 추구하려고 하는 안락함과 안일함과 그리고 편안한 모든 삶을 하나님의 가치 있는 사명을 위해서 기꺼이 포기하고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부귀 안일함과 명성 원치 않으며 즐겨 고난 길을 가도록 나와 함께하소서. 그리스도인들이 사명을 느끼며 영원히 불러야 할 노래인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두 번째는 이런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능력은 일반적으로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시련보다 훨씬 약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약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갈대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더군다나 상한 갈대 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이미 꺾어져서 바람에 건들건들 하고 있어서 툭 치면 부러 질 수밖에 없는 그런 갈대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기름이 다하고 심지가 다하여 불어오는 바람에 꺼질 듯 꺼질 듯 파란색으로 변하다가 다시 붉은색을 내고 파란색으로 변하다 다시 붉은색을 내는 심지와 같은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요 우리의 처지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우리들이 어떻게 커다란 시련과 그리고 악한 원수들의 대적 함들이 도사리고 있는 위협이 가득 찬 이 세상의 파도를 넘어서 어떻게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완수 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힘은 사랑에서 오는 힘입니다. 우리의 모든 두려움은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많이 사랑하는 사람 그래서 내게 사랑하던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만 받친 사람 그들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모든 두려움은 집착과 애착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요즘 하나님 앞에 늘 즐겨하게 되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제게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가져가시옵소서. 이제 다 가져가시고 조금이라도 집착하는 것들 애착하는 것들이 남아있다면 다 가져가시옵소서.”
여러분 때로는 한 교회를 하고 있다는 것이 집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가지고 있는 소유물이 집착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의 위대한 힘은 순결에서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배우자나 혹은 여러분의 연인들이 여러분을 아무리 뜨겁게 사랑한다 하더라도 조금은 다른 사람도 사랑하고 있다면 그 뜨거운 사랑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를 불꽃처럼 살게 하는 위대한 힘이 하나님의 사랑에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어두운 세상을 불꽃처럼 살아가는 사람은 오늘날 하늘에서 능력 받은 사람도 아니고 성경을 통째로 외운 사람도 아니고 청교도를 연구한 전문가도 아니고 어두운 세상을 불꽃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 또 산 사람들은 ‘그 사랑이 나를 살게하네 ’갈보리의 구속의 사랑 그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알고 그 사랑 때문에 다른 길로 갈수 없어서 이 길에 붙잡힌 사람 내 생명과 그리고 내 귀한 것을 다 분토와 같이 날려도 나의 집착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없는 그런 사람 그런 순도로 사랑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사랑을 보이시고 그들이 그런 사랑에 붙잡히게 될 때에 그들은 불꽃처럼 살지 아니하고는 베길 수 없는 것입니다. 속에서 불꽃이 일어나고 그 불꽃이 속에서 치열하게 타오르는데 어떻게 입을 열어서 그 불을 토해 놓지 않을 수 있겠으며 어떻게 삶을 통해서 가슴속에 저미듯이 들어오는 그 불길을 삶을 통해 쏟아놓지 않을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분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에 불붙게 만드신 분이 세상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들이 세상을 이기는 방법을 찾고 능력을 찾는 때에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어두운 세상을 이기고 환난이나 핍박과 위험이나 이 모든 것을 이기는 영광스러운 능력이 사랑으로부터 말미암는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여러분 사람을 바꿔 놓는 능력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인격을 알고 그리고 우리가 그 사랑을 힘입고 살아가는 삶과 그 사랑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그 삶이 얼마나 커다란 격차가 있는지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이런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우리의 교회에 밑천이 되어야 하고 그리고 우리 성도들로 하여금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6개월 전서 부터 언제 한번 말씀을 잠깐 비추려 했습니다만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비장한 이상하게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교회가 가득한곳에 교회를 세우신 것은 하나님이 이제 단지 명목적인 신자들을 길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진정한 신자가 되는 교회로 하나님이 세우기 위해서 불러 놓으신 것입니다. 교회의 최대의 투쟁은 사람입니다 사람만 잘 길러내면 그 사람은 우리 교회를 떠나도 세상은 변합니다. 흩어져도 역사는 일어나고 변합니다. 모든 것이 다 갖춰줘도 사람이 변하지 않는데 세상이 왜 변하겠습니까? 그 하나님 앞에 그런 비장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어떤 비장한 마음이냐면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이 맨 처음에 교회를 세우시려고 했던 데서는 너무나 멀어져가고 있다는 위기감이 제 마음속에 다가온 것입니다.
목회하면서 두 번의 깊은 영적 위기를 느꼈는데 한번이 94년 6월경이었고 또 한 번이 바로 지금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마음을 다잡아먹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여러분 우리는 교회가 1년도 못되어서 성도들로 가득차서 할 수없이 교회를 옮기게 되는 때가 오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나만 확신하는 거냐?’ 확신합니다. 어느 교회 가서 왜 아멘 안하느냐고 물었더니 한사람이 너무 심각해서 아멘 하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확신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것입니다. 사람이 늘어나는 것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변화된 사람이 늘어나지 않으면 교회는 그 사람들에게 발목 잡히게 됩니다. 해결은 어떻게 됩니까? 그럼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데리고 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신앙이 아닌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계속 예배 속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합니다.
이것은 설교자인 제 책임이 물론 크지만 여러분도 책임이 큽니다. 여러분 여기 오신 분들 중에 열린교회 오신 분들 중에 여러분들 가운데 아무것도 몰랐는데 어느 날 쑥 들어오고 나서 말씀 듣고 예수 믿게 된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별로 없습니다. 다 듣고, 듣고 들어서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렇게 온 사람들은 제일 먼저 교인들은 여러분들이 어떻게 신앙생활하는지를 두 가지를 궁금하게 생각하는데 하나는 ‘어떤 설교를 할까’ 또 하나는 ‘나는 그 사람들 곁에 가면 뜨거워서 데일 거야.’ 그런 생각하는 것입니다. 집회 나가면 그렇습니다. 저희 교회 엊그제 부흥회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목사님이 그럽니다. “거기도 부흥회 합니까?” “왜 그러냐?” 했더니 “원래 불꽃처럼 펄펄 타는데 아닙니까?” 타는데 왜 기름을 또 넣습니까? 여러분 그런데 정말 그렇게 정말 불꽃처럼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정말 열린교회 교인다운 교인들이 있는가 하면 이거는 닫힌 교회에서도 볼 수없는 신앙생활로 살아가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소수이긴 하지만 눈에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속에 다가오는 가책이 그것입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들이 교회에 이렇게 오랫동안 있을 수 있느냐 회개를 하던지 설교하는 나를 향해 방석을 집어던지고 교회를 나가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해야지 어떻게 저렇게 편안하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저렇게 나갈 수 있느냐 말입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자 멜란 히톤에게 편지 쓰는 가운데 그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설교할 때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당신을 향해 화를 내던지 아니면 설교를 하고나서 당신이 당신자신에게 화가 나던지 둘 중에 하나 분명하게 설교하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 비감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아 그렇다. 이 모든 것이 나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야 된다.’ 그리고 주님이 이 교회를 세우실 때 주셨던 그 정신으로 그렇게 설교하고 그렇게 목회하고 그렇게 해서 이제는 말합니다.
환자들이 아니라 용사들을 길러내고 말하자면 잡종인 입만 멧돼지처럼 생기고 덩치는 집돼지 닮은 이런 식용용 멧돼지들을 말하자면 비유될 수 있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용맹스럽게 말입니다. 이세상의 풀밭을 누비고 정글을 달려갈 수 있는 덫을 비웃고 포수의 총질을 말하자면 조소하면서 그렇게 돌진하며 정글을 누빌 수 있는 그런 용사와 같은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에겐 필요 하단 것입니다. 이것만이 교회를 교회답게 살리는 길이라고 각오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우리 앞에 놓여있는 이 거룩한 하나님의 사명들 주께서 교회를 통해서 거룩한 부흥의 맛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신들이 경험했던 위대한 각성들을 온 땅과 교회위에 널리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큰일 이것들에 대한 사모함이 아니라면 누구 말대로 ‘교회 많은데 모두 헤쳐서 각자 다니던 교회로 돌아가시오.’ 하는 것이 훨씬 낫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이 일들이 너무나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결코 그렇게 쉽게 얻어지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합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이 사명은 우리에게 많은 비용을 요구하지만 그러나 오늘 이 시간에도 죄인인 우리가운데 다가오셔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진리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이 새롭게 되기를 사모할 때마다 우리 교회에 찾아오시고 우리를 바꾸시고 우리를 고치시고 우리에게 맘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고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우리에게 거룩한 열심을 불러일으키시는 하나님의 방문하시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위대한 일들을 위한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온 땅을 두루 살피시면서 수많은 교회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지만 그러나 온전히 맘이 하나님께 맘이 기울어진 사람 교회의 모든 지체들이 마음을 하나로 모우고 자신의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이 기뻐하기를 원하시고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사용해서 이루실 위대한 일들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지불해야할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마다하지 않을 사람 하나님은 오늘도 찾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들을 통해서 당신의 위대한 일들을 이루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끊임없이 변하지 않는 소명에 불타게 만들어 주시고 하나님이 교회를 교회답게 세우고 그 교회를 통해서 이 민족의 땅을 고치고 역사를 고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보고 또 사모하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순결하게, 순결하게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을 연단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깊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이렇게 움직이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 교회 속에서 인격적으로 깊이. 깊이 경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저께 밤에는 제가 김천에 내려갔습니다. 기독교청년들이 많이 모여서 집회를 부탁했습니다. 하루 설교하면서 주제가 ‘이 땅 고쳐주소서’였습니다. 제가 얘기했습니다. ‘이 땅은 누가 고치냐면 하나님이 고치시는데 누구를 사용하시냐하면 자기가 먼저 고쳐진 사람을 사용하신단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내가 알고 그리고 그 하나님이 우리 한사람, 한사람 인생을 향해 불붙는 열망을 가지고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기를 바라신다는 사실 이것을 깊이 깨닫고 그 사랑과 그 은혜의 불붙어서 그것이 모든 삶의 동기요 거듭난 사람 그래서 자기 속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경험한 사람 경험 했잖아요 여러분 그런 하나님의 나라를 맛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다스림이 가득한 세상이 되기를 사모하는 마음을 불어 넣어주십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말입니다. 이제는 신앙의 모든 용어에 진정한 이라는 말을 붙여야 된다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이냐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냐 기도를 하냐, 진정한 의미의 기도를 하냐, 예배를 드리냐, 진정한 의미의 예배를 드리냐, 그래서 하나님의 놀라운 인격과 그렇게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놀라운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자기가 치유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올바르게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예수 안 믿는 것을 보는 것 못지않게 고통입니다. 눈물이란 말입니다. 왜 저는 모르는데 나는 압니다. 그게 아닙니다. 그 길이 아닙니다. 그렇게 믿어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계획을 드러낼 수도 없고 행복해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도 우리는 또다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하나님의 치유와 그리고 우리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의 경험들을 통해서 이러한 나라가 다른 사람들 속에 이 땅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사모하는 열망을 주셔서 그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교회에 머물러서 하나님을 믿는 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나셨습니까? 무슨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셨습니까? 여러분 이제 벌써 3년의 세월이 흘러갔고 그리고 잠시 후 10년의 세월이 또 흘러갈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교회 속에서 하나님의 참다운 사랑을 알았던 사람들만이 기뻐할 수 있는 그 기쁨 때문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와 같이 세상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나님의 사랑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교회 안에서 변화되어서 하나님의 참사랑을 알고 변화되었다라고 하는 소문을 듣게 되었을 때 너무나 기뻐하는 거죠 그들과 더불어서 한상에서 먹고 마시며 연약할 때 눈물로 기도해주고 유혹 받을 때 사랑으로 권면을 주고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을 도와주면서 그렇게 외로운 지체들끼리 사슴처럼 기대면서 양들처럼 목을 서로 비비며 그렇게 한세상을 교회에서 사는 것이 한마음으로 우리를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들을 열망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우리들이 겉사람은 후패하지만 날마다 강건해지고 새로워지는 속사람 때문에 위로와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면서 주님 안에서 그렇게 가족처럼 살아가며 주님의 나라를 위해 요긴하게 쓰임 받는 교회가 되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의 소박한 꿈이고 동시에 원대한 꿈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배우십시오. 그 사랑에 잠기십시오. 그리고 그 사랑이 사명을 가지고 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여러분들에게 끊임없이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하시는 여러분들 되셔서 승리하는 여러분들 되셔서 먼 훗날 지상을 내려다보며 하나님나라를 갈 때 하나님 열린교회에서 10년 혹은 20년 30년을 신앙생활 한 것이 제게는 꿈결과 같은 행복이었사옵니다. 내 인생에 감당할 수 없는 은혜가 또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제게 열린교회와 같은 가정을 주신 것이옵나이다. 저와 여러분 모두 하나님 앞에 그렇게 기도 할 수 있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