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사랑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요일 3:1)
이제는 추수의 때가 다 끝나고 그리고 이제 시골에서는 모아들인 알곡을 곳간에 다 쌓아 놓아두는 그런 계절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한해를 보내면서 다시 한 번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누구이고 그리고 우리가 왜 지난 일 년 동안도 변함없이 신앙생활을 해왔고 그리고 내년에도 특별히 이 신앙생활을 그만둬야 되겠다는 생각 해 본적이 없이 또 내년도 우리가 신앙생활을 계속하려고 하는지 오늘 이 시간에 우리들이 한번 점검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요한일서는 요한사도가 썼습니다. 이 요한사도가 아마 이 편지를 쓸 때에는 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쓴 것 같은데 때에 많은 이단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그런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이런 무리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그러한 이단들을 향해서 경계하고 그리고 특별히 사랑하는 교회에 많은 지체들에게 그 예수를 믿는 것 그것이 어떻게 실제의 삶과 연결돼야 되겠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우리들이 누구이고 그리고 또 우리가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소상하게 가르쳐줌으로써 교인들을 진리 안에서 붙들어주고 싶어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사도는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에게 그런 분이시다. 태초로부터 있었던 생명의 말씀인 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는 우리가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것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들은 바요 또 눈으로 보았고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 되었고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 것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가 전함을 받게 되지 않았느냐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시대에는 아직 그렇게 늦은 시대가 아니니까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눈으로 보고 또 만져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그런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져보고,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눈으로 본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 만져지는 것이 아니고 또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만이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우리가 믿음을 가질 때에 우리에게는 또 다른 눈이 있어서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서 보게 되는 것이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신앙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져 봤습니까?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안겨서 요한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의 박동소리를 들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따라주는 그런 만찬에서 그 잔을 마셔본 적이 있습니까? 그 손으로 떼어주시는 떡을 떼어 본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만져 본적도 없고 우리는 그 못 자국에 손을 넣어 본적도 없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목격한 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믿을 수 없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깨달을 수 없었던 그 그리스도를 깨닫습니다. 예수님 옆에 있으면서도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과는 다르게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적이 없고 만진 적이 없지만 그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낍니다. 그 주님이 직접 우리에게 떼어주시는 그 떡과 그 피의 잔을 마신적은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지난번 성찬을 통해서도 그리스도가 나누어주시던 떡을 먹으면서도 의미를 몰랐던 제자들과는 달리 우리는 의미를 알고 주께서 따라주시는 포도주를 받으며 이것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바 언약의 피니라 말씀하심에도 불구하는 감동이 없었던 제자들과는 달리 우리는 그 잔을 떨림으로 받으며 우리는 눈물 흘릴 수 있는 그 느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은 억지로 안 되는 것입니다. 억지로 신앙이 되는 것은 여기 데려다 놓는 것까지는 억지로 되요. 근데 그것도 계속은 잘 안됩니다. 억지로 데려다 놓는 것은 되지만 그러나 억지로 신앙이 들어가게는 할 수 없습니다. 신앙은 자기가 체험을 하고 그리고 예수가 누구인지를 자신이 체험적으로 알게 될 때 예수에게 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우리는 신앙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없고 또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믿을 때에 알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믿게 되었습니까? 예수를 믿고 보니깐 예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까? 말할 필요도 없이 여러분이 예수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는 그 순간은 벌써 믿음이 들어갔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오늘 사도는 우리에게 이런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이단의 위험과 그리고 세상을 사랑할 위험에 직면해 있는 사랑하는 지체들에게 너희가 누구인가 하는 것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것 이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성경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오늘날 우리 신앙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감격해야 될 대목에서는 감격을 안 하고 감격을 안 해도 될 대목에서는 감격을 하는 것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 합니다. 성경은 “보라, 볼지어다” 이런 말을 쓸 때에는 뭔가 커다란 놀라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도입으로 이“보라” 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보라” 혹은 “볼지어다, 보아라” 여긴 뭔가 커다랗고 중대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우리에게 도입하는 것입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먼저 사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우리가 바로 이세상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고 우리의 신분을 확인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일 년 동안 살아오면서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에 대해서 얼마나 우리들이 깊게 생각하고 그리고 그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를 불러주신 사실에 대해서 감격 하였습니까.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가리켜서 우리는 고아라고 말합니다.
(예화) 오래전에 고아원과 자매결연을 맺어서 방문하거나 혹을 도움을 주러 가 본적이 있습니다. 근데 원장이 하는 이야기가 그거에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관계라는 것입니다. 관계 저는 그래서 그때 한번 그 모습을 보고 그 다음서부터는 절대 고아원에 뭐를 도와 준적도 별로 없지만 그냥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저렇게 하지 말아야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물건하고 잔뜩 싸들고 연말이면 찾아가면 그거 선물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그것을 받고 아이들이 아예 익숙해져 있습니다. 뭘 보따리를 가지고 오면 아이들이 꼭 도살장에 끌려가는 아이들처럼 손을 앞으로 모으고 수 십 명이 계단을 줄줄이 걸어 내려옵니다. 그리고 함께 놀아준다는 미명하에 원으로 쭉 둘러 앉혀놓고 하는 것입니다. 그걸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것입니다. 그중에는 벌써 이미 열여섯 일곱 되가지고, 이미 여기 구렛나루가 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거기 앉아서 산토끼를 하면서 박수를 치는 것입니다. 아 역시 고아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하는 이야기가 그 고아원은 참 재정이 넉넉했던 모양인지 옷이 네 벌씩 있다고 합니다. 외출복부터 시작해서 왜 학교에 다니는 다른 애들 보다 훨씬 옷을 잘 입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위축이 되지 않고 그렇게 풍족하게 삽니다.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솔직히 말해서 물질이 아니라 물질도 필요하지만 더 필요한 것은 관계다, 관계, 수 천 명이 와서 이러고 가는 것 보다 한사람을 입양 해주는 것이 훨씬 더 우리에게는 소중하다 이런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아와 같이 버려지고 그리고 갈 때도 없는 우리들을 목자 앓은 양같이 유리하며 고생하며 이리저리 찢기고 짓밟힐 수밖에 없는 우리를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주셔서 우리와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하나님의 집안에 자녀가 될 만한 사람들을 골라서 하나님이 자녀로 삼아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에 가장 부적합하다고 느끼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불러주셔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셔서 관계를 맺으셨던 것입니다. 무슨 비용이 우리에게 지출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그 조건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 하셨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원하지 아니하시고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하였지만 하나님은 우리에 대하여 우리가 그분의 자녀가 되는 그것으로 만족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와 관계를 맺으시고 그 관계 안에서 우리를 자녀로 부르시며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돌보시는 것을 기쁘게 여기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던 것입니다.
지난 일 년 동안에 우리의 인생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또 여러분들이 지난 일 년 동안에 어떤 파도를 넘으며 인생의 격변기를 지나며 올 한해를 보냈다고 할지라도 되돌아보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하나님이 아버지로서 신실하게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밖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습니다. 일 년 동안도 우리의 마음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 그리고 하늘나라를 향한 우리의 믿음은 수시로 변하고 시시각각으로 갈라져 왔습니다. 시작해 볼까요? 연초 사경회를 하면서 은혜를 흠뻑 받으면서 올 한해는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지 깊이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2월 3월이 지나면서 우리의 믿음이 식고 또 어려운 일들을 만나다가는 고난주간에 목요일에 가득 모여서 성만찬에 참여하면서 그리스도예수가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을 기억하며 참회하였습니다. 그리고 5월 6월이 지나다가 그리고 곤고할 때에 우리는 수련회를 또 치렀습니다. 은혜를 받으면서 하 정말 예수를 믿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깨닫고 우리는 가을에 들어섰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식어질만하니깐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으셔서 가을기도사경회로 우리의 기도의 불을 붙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는 언제나 변하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저해되거나 촉진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언제나 우리의 행한 것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 일컫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맺으신 그 관계를 기억하셔서 우리를 필요로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무엇을 해드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원하신 것이 아니라 관계를 원하신 것입니다.
(예화) 얼마 전에 방배동 골목을 내려오는데 현상금이 붙었습니다. 무슨 흉악범이 또 날쳤나 딱 보니깐, 사람이 아니라 개입니다. 주먹만 합니다. 저는 보신탕을 안 먹습니다만 옛날 기준으로 한다면 보신탕 한 그릇감도 안 되는 주먹만 한 개 하나를 사진을 찍어놓고 현상금 100만원이라고 써 붙여놨습니다. “위 개의 소재를 아시거나 보호 하신 분은 연락 주시면 100만원을 사례 하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돌아오면서 야 100만원이면 보신탕이 몇 그릇인데 그 개를 사진을 찍어났는데 주먹만 한 데다 리본을 달아놓고 털은 덮여갖고 눈은 보이지도 않는 그런 강아지라고 그러기에는 비쩍 마른 그런 뼈다귀만 남은 그런 강아지가 하나 있습니다. 근데 100만원이라고 써 붙여놨습니다. 아마 나는 그 즉시 생각했습니다. 내가 저 개를 보호하고 있다면 전화를 걸어서 100만원에는 좀 곤란하겠다고 200만원이면 내가 양도 할 수 있다 그러면 틀림없이 진짜 비자금 계좌에다가 200만원을 입금시켜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개가 200만원이기 때문에 100만원 주고도 100만원이 남기 때문에 현상금을 붙여놓은 것입니까? 그게 아닙니다. 개를 잃어버린 것이 문제가 아니라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주인에게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개가 사라짐으로 말미암아 관계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관계는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짐승이든 사람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애지중지하고 사랑하고 그것과 관계를 맺으면 그것 없이는 못합니다. 저는 이 성경이 없으면 설교를 못합니다. 잃어버리면 안절부절못합니다. 20년 된 성경인데 관계입니다. 이게 얼마짜리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그 개를 가지고 있으면 주인이 매월 15만원씩 수입이 올라가는 겁니까. 그런 것 아닙니다. 관계가 사라졌습니다.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난 한 해동안도 우리를 인도해 오신 하나님의 인도와 사랑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관계를 한없이 사랑하시며 그러면서 우리를 이끌어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여러분이 말씀을 들으면서 오늘 생각해야 될 게 여러분이 살아있는 사실 그자체가 하나님에게는 말하자면 존재자체가 기쁨이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이름 석 자만 떠올려도 가슴 저밀 정도로 여러분을 사랑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삼아 주셨다고 하는 말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 말합니다.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어 주시기위해서 주님이 우리를 위해 지불한 사랑이 있음을 그리고 그 사랑을 위해 지불한 대가가 있음을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대가가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지출해야 됩니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사랑일 수가 없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얻어지는 사랑은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대가없이 주어질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사랑에 자신의 인격을 걸고 자신의 삶을 통해 그 사랑을 완성해 가려고 할 때는 언제나 희생이 따르고 인내가 따르고 고난이 따르고 대가를 지불해야할 수고가 따르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 일컫게 하셨는지 생각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오늘 우리를 하나님과는 아무관계가 없고 심지어는 아버지와는 원수 되었던 우리들을 어두움에서 빛 가운데로 불러내어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아서 우리를 하나님의 친자녀로 삼아주시기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대가를 지불하셨던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기 위해서 먼저 원수 되었던 우리와 그리고 우리와 원수 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새롭게 그 미움과 그리고 그 범죄하고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관계를 사랑과 이해와 그리고 자녀의 관계로 바꾸어 주기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사도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는가 모두 알 수 있는 사랑이기 때문에 오늘 사도는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주셨는지 생각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에 대해서 사도는 또한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시지만 그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죽임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과의 관계로 새롭게 불러주신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었다고 성경은 오늘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목자 잃은 양이 되어서 마귀에게 찢기고 그리고 세상에게 할 키우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으며 그렇게 한을 품고 눈물과 고난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고 또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대적하며 살아갈 수밖에 그런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필요로 한 것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와의 관계가 필요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이루기위해서 사랑하는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멸시와 천대와 고난을 당하신 그 모든 생애는 곧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가 구박을 받고 천히 여김을 받으면서도 이 세상에서 그 고난과 멸시를 다 당하고도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은 바로 얼마나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한 번 죄 가운데 부르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 관계를 맺기를 원하셨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는 그 장면은 우리를 향해 진노하실 수밖에 없는 그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사랑의 힘이 옮겨서 당신의 기장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육체 위에 부으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언제나 회상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행하신 일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출발인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 무얼 보고 알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의 어떤 사랑을 받고 있는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왜 죽음의 사자가 흰 이빨을 드러내고 바다와 같이 밀려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사람처럼 낙심하지 않고 소망 가운데 이 어두운 세상을 헤치며 살아갈 수 있다고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무엇을 통해서 아무도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에 대해 세상의 파도가 밀려와도 우리는 오히려 아멘 할 수 있다고 고백 할 수 있는 이 신앙의 위대한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우리의 마음이 하는 것입니다. 늘 깨어지기 쉽고 늘 넘어지기 쉬운 여러분의 마음을 무엇으로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우리는 과거에 나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시므로 말미암아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셨던 그 아버지 때문에 오늘 우리는 그 옛날의 사랑이 오늘 그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우리에게도 계속되고 있음을 우리는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은 비록 고난의 때를 지나는 것 같고 우리 앞에 펼쳐진 삶들이 힘겨워 보이는 것 같아도 우리가 그 낙망보다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제시되는 소망을 붙들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오늘 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밖아 죽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그 하나님의 사랑을 오늘 우리들이 붙들고 살아 갈 때에 우리는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들에 대한 불안 우리는 극복하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뢰하며 살아 갈수 있는 것입니다. 내년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우리에게는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내년 한 해 동안도 우리를 위해 아들을 주시기까지 더할 수 없는 사랑을 주셔서 우리를 이제 것까지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을 신실하게 붙들고 살아갈 것인가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최대의 관심거리요 과제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도대체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이 무엇이고 우리가 비록 연약한 이 세상의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라 불러주신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먹구름이 끼는 것 같고 때로는 험한 파도를 넘는 것 같은 위기와 고생과 앞길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그런 암담한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는 가하는 것을 믿고 느끼고 살아가고 붙들고 살아가는 그래서 모두들 슬퍼할 그때에 오히려 사람들에게 기뻐하라고 말 할 수 있고, 모두들 낙심할 그때에 오히려 소망가운데 즐거워하라고 말 할 수 있게 하는 그 힘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의미인 것입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우리는 모두 비밀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말 할 것입니다. 도대체 너희들은 무엇을 가지고 있길래 이렇게 불안하고 어두운 시기를 지나면서도 기뻐하고 평안할 수 있느냐 물을 것입니다. 위기 가운데에서도 찬송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도 박수치며 하나님께 노래 할 수 있는 때로는 마라와 같이 쓴 물을 머금어야 하는 인생의 고통스러운 벌판을 지날 때에도 주님의 이름을 찬송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어디서 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그것을 가능케 한다고.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 안에 있는 이 신앙의 비밀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 안에 있는 이 사랑의 비밀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일 년을 보내면서 한해를 마무리하며 우리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 년 전보다 귀밑에는 흰머리가 한 톨 더 나고 그리고 일 년 전보다 주름이 패이고 일 년 전보다 나이를 더 먹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이렇게 세월이 빛바래게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비밀이 있어서 그것이 오히려 세월이 흐르고 우리의 인생이 더 깊은 말년에 접어들수록 찬연한 빛을 밝힐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해를 보내면서 저는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주님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우리가 어느 형편에 처해 있던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세월이 어떤 세월이던지 우리가 주님의 자녀된 사실과 그리고 이일을 위해서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그 놀라운 사랑을 붙들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