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랑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Ⅰ. 들어가는 말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3장 16절은 기독교에서는 성경 전체의 요절이라고 불리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하는 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주제는 멸망하지 않고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원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 먼저 말해야 합니다.
Ⅱ. 창조주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도 지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근거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보십시오. 이것들은 누군가 사람이 만든 것이고, 사람이 그것을 만들었을 때에는 목적이 있게끔 만들었습니다. 마이크는 소리를 크게 내게 하기 위해서 만들었고, 의자는 여러분들이 편안히 앉기 위해서 그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졌습니다. 하찮은 물건들이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고 목적이 있다면, 그러면 이 모든 물건보다도 뛰어난 인간이 우연히 존재하게 됐다고 하는 것은 우리들이 믿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A. 하나님의 계획
12세기에 이탈리아에는 피도나치 라고 하는 수학자가 살았습니다. 이 사람은 창조된 이 모든 자연의 세계 속에 아주 놀라운 질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 놀라운 질서의 본질은 수학적인 이치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부지런히 자연의 세계를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보기에는 하찮은 풀인 것처럼 보이는 이 사물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놀랍게도 아주 아름다운 일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잎이 나고, 그 다음에는 반대쪽으로 잎이 나고, 위에 솜털과 같이 털이 나있는데 이것들도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돋아나 있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규칙을 따라서 이것이 돋아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무 이파리가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돋아나게 될 때 식물은 가장 많은 햇빛을 받으며 생명의 작용을 계속하기에 아주 어울리는 상태가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개껍질을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에 나오는 수많은 반달 문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그것들이 아주 엄격한 수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바람이 없는 대기 중에 기름을 확 뿌려도 떨어지는 그 기름방울은 규칙적으로 수열을 이루며 떨어진다고 합니다. 높은 꼭대기에서 사람이 물건을 던지면 그 물건이 무엇이든지간에 정확하게 9.8t²이라는 가속도의 법칙을 따라서 떨어지게 되는 것이죠. 케플러라고 하는 중세의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천문학을 주로 연구하는 사람이었는데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별들-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등등의 별들의 공존하는 주기를 연구했습니다. 과학적으로 측정한 그것을 비율대로 계산을 해서 오선지에 올려놓았을 때 한 번에 건반을 누르니까 아주 놀라운 화음이 나왔다는 논문을 썼습니다. 그 사람이 쓴 ‘우주의 조화’라고 하는 이 책은 지금도 과학도들에게 아주 유명한 책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몸에는 60조 개나 되는 수많은 세포들이 있고 이 세포들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몸은 생명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몸에도 이런 세포들이 있는데 이 몸의 60조 개의 세포들은 한꺼번에 모두 사는 것이 아니라 세포가 죽고 그 다음에 옆에서 또다시 돋아나고 하는 세포들의 삶과 죽음의 연속적인 계기의 발생으로 생명을 유지하게 됩니다. 조금 더 들어가게 되면 우리의 세포가 죽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생물학적으로 외부로부터 타격을 받아서 죽는 그런 종류의 necrosis의 죽음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아직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데 옆에 있는 세포가 아직 죽을 때가 되지 않았는데 자살하는 세포가 있다고 합니다. 자살하면서 죽는 그 세포는 자살할 때 발생하는 ATP라는 화학 에너지를 옆의 세포에 전달하고 그것을 동력으로 삼아서 세포는 영양을 공급하고 생산해내는 역할들을 하고 세포분열을 촉진하는 거죠. 그래서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들이 마치 전구가 깜박이듯이 우리의 몸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 생명의 활동입니다. 아직까지도 왜 그렇게 스스로 세포가 죽는 아포토시스(apoptosis)의 죽음이 발생하는지 누구도 밝히지 못합니다. 어떤 세포는 서로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함께 강력하게 양분을 서로 빨아들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의학적인 암세포입니다. 죽지 않으려고 살려는 세포들 때문에 온 몸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것들이 이 모든 자연의 이치이고 하늘에 있는 수많은 별들은 별들이 폭발하고 죽는 에너지 때문에 또 다른 별들이 탄생한다고 하니 이 우주의 신비한 조화와 질서를 무엇으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연이면 어떻게 그 우연이 가능하게 되었을까요? 우연에도 원인이 있을 텐데 그 원인은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이런 놀라운 질서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한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이 모든 것들이 설명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보고 믿는 것은 매우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보았다’라고 하는 자체가 아주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인 것이죠. 우리의 눈은 빛을 통하지 않고는 사물을 볼 수 없지만 인간의 시력으로 볼 수 있는 빛의 파장은 존재하는 파장 중에 지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다른 파장을 통해서 파악되는 것들은 인간의 눈으로는 없는 것이 되는 것이죠. 인간의 눈에 없다고 한들 어찌 그것이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지식은 대부분 우리의 감각을 통해서 들어오게 되고 어떤 물건이 있다 없다고 할 때는 이 다섯 개의 그물망, 보고 냄새 맡고 맛보고 들리고 만져지는 것이 없을 때 우리는 없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없는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이죠. 아무리 유물론자라고 할지라도 양심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 사람이 이성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면 믿지 않는 것도 이성으로 판단한 것이니 그것 자체가 모순이죠. 그렇지만 우리가 어디에서 양심이나 사랑, 이성이나 정의 이런 것들을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사람을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배를 가르고 머리의 뚜껑을 연 들 양심이 해부학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아니죠. 그러나 해부학적으로 발견되는 장기가 있는 것을 믿는 확실성 보다는 우리 각 사람 속에 양심이 있고 사랑이 있고 이성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훨씬 더 큽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은 우리가 눈에 보고 들리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정신으로 직접 아는 것, 이것을 우리들이 믿음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믿음이 없는 사람은 더듬이가 없는 사람과 같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이런 양상으로 존재하는 분이기 때문에 눈이나 코, 귀, 입, 혓바닥으로 판단을 해서 하나님이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고 해서 우리의 정신을 통해서도 그 하나님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이 모자라는 것이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당신 이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분이십니다. 그러면 여러분, 모든 물건들은 필요해서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많은 생활을 위한 도구들은 필요하기 때문에 만드는 것이죠. 컵은 물을 따르기 위해, 종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 만들죠. 그러나 여러분, 예술작품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만들까요? 예술작품은 어떤 면에서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우리가 먹고 입고 생활하는데 없어도 어떠한 불편도 주지 않죠. 그러나 여러분, 어떤 사람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예술을 안 할지 모르지만, 이 안에 창작가로서의 정신이 넘치는 사람, 창작가로서의 열정이 넘치는 사람은 밥은 안 먹어도 글은 안 쓰고 살 수가 없고 물은 안 마셔도 그림을 그리지 않고 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잠은 안자도 음악을 연주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예술작품 같은 것이에요. 하나님께 필요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워낙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당신 자신 안에 있는 완전성을 이 피조물을 통해서 드러내어 보이시고, 거울로 우리들이 서로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하나님은 창조하신 세계를 통해서 당신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죠. 이게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이유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 자신이 창조의 원인인 동시에 창조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되 두 세상을 창조하셨으니 천상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가 그것입니다. 천상의 세계에는 천사를 창조하셔서 하나님이 직접 천사들을 통해 다스리시고 지상의 세계는 하나님이 무생물부터 식물과 동물을 창조하신 후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천상의 세계와는 달리 이 지상의 세계에는 인간을 창조하셔서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세계를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인간이 이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위로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 영혼이 필요했고 아래로는 자기 자신이 함께 어울려 살기 위해서 육체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정신과 영혼으로는 자기 위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알아 모시고 그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두 가지 대상에 대해서 이해를 가져야 했습니다. 하나는 인간에 대한 지식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 대한 지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위로는 종교와 신학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옆으로는 인문학을 통해서 인간을 배우고 아래로는 자연학을 통해서 자연의 세계에 대해서 이해함으로써 자기의 자리를 정확히 지키면서 한 분 하나님 아래에 있는 존재이지만, 나머지 모든 피조물들에 대해서는 최고위에 있는 존재가 되었으니, 이는 마치 하나님 창조하신 나라에 임금 바로 밑에 있는 총리와 같은 존재로 창조된 것이죠. 그렇게 해서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며 그 사랑을 가지고 이웃과 함께 어울려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이웃과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할 때 가지셨던 의도에 따라서 모든 만물들을 가꾸고 돌보고 보살핌으로서 창조주 하나님이 이 세상에 대해 가지고 계신 계획이 이루어지게끔 하는 그것이 인간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이었던 것입니다.
B. 선과 행복
여러분들은 주전 3세기에서 5세기 인류 최고의 지성들이 모여 살던 그리스의 역사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풍요로운 물질생활을 토대로 그들은 이른 아침부터 밤 깊은 시간까지 도대체 인간은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고, 어디로부터 왔고, 인간이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가지고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만드신 하나님을 인정할 수 없었고 인간의 참된 가치, 인간의 참된 존재의 목적이 무엇인지 해명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하는 사람 중에 좋은 사람은 전쟁에서 늘 이기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운동을 하는 사람 중에 좋은 사람은 그 운동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무용을 하는 사람 중에 뛰어난 사람은 그 춤을 잘 추어서 다른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쟁하는 자, 운동하는 자, 춤추는 자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간입니다. 그러면 그가 무엇을 하는가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훌륭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을 때에는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자기 자신이 누구이가 하는 것은 하나님과 다른 인간과 자연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앎으로써 비로소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인간을 창조하셔서 몸은 흙으로부터 창조하시고 영혼은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셔서 둘을 결합하심으로 인간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인간을 위해 두 가지 양식을 준비하셨는데, 육체를 위해서는 이 땅에 나는 물과 음료와 실과와 많은 곡식들, 짐승의 고기를 통해서 인간의 몸이 보양되고 육체의 생명의 원리를 유지하게끔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아무리 고상하고 뛰어난 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만약에 여러분들이 밥을 먹지 아니하고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의 육체는 곧 기력을 잃게 됩니다.
그러면 도대체 영혼의 양식은 무엇일까요? 영혼의 양식은 다름이 아닌 하나님 자신의 생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통해서 진리이신 당신 자신을 알게 하시고 그 인간의 생명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뿌리를 박음으로써 이렇게 영적인 생명을 거듭하게 만드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목적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니 인간의 행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이 아름답고 부러운 것이었습니다. 천사들도 부러워할 만한 지위를 가진 것이 인간이었죠. 그의 의무는 너무나 간단하고 그의 사명은 명료하였습니다. 위로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랑하고 하나님을 이해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만물을 잘 가꾸고 다스리는 것에서 만족을 얻고 행복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가 인간을 가장 찬란하게 빛나게 하는 아름다운 자리에요. 악 혹은 추함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자기의 질서를 벗어날 때 그것이 추하고 악한 것이 되는 것이죠. 학생이라면 공부하는 곳에서 발견될 때 아름답지, 쾌락을 즐기는 곳에서 발견될 때 그 학생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것입니까? 그러나 지하실 교회에 있을 때 새 한 마리가 제 공부방으로 날아들었습니다. 그때에 너무너무 불결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할 수 없이 수십 개의 책꽂이를 나사못으로 흔들리지 않게 이어 놓았는데, 할 수없이 그것을 다 풀어서 책꽂이 뒤에 할딱거리고 있는 새를 꺼내서 공중으로 날려 보내주고 난 후에도 손이 그렇게 더럽게 느껴졌습니다. 씻고 또 씻고 할 수 없이 그 방을 모두 걸레질 하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공중을 날 때는 예쁜 새지만, 방안에 들어오면 추한 것이 됩니다.
Ⅲ. 타락한 인간
A. 고통의 원인
인간의 자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가장 아름다웠는데, 그 자리를 인간이 이탈해버린 것입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는 자기 아래 있는 수많은 사물들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지위를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위에 한 분 하나님이 계신 것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보다 높은 지위에 오르고 싶어 했고 하나님에 의해 간섭받지 않는 상태를 찾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악을 행하고 불순종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그가 불순종하게 되자 죄는 제방이 터지고 홍수가 난 것처럼 죄의 물이 이 세상에 강물처럼, 밀물처럼 밀려왔고 모든 인간을 삼켜 버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 안에 있던 그 아름다운 광채와 찬란한 빛깔들은 단숨에 사라져 버리고, 공포영화에 나오는 괴기스런 흉가처럼 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어느 정도만 아름다웠더라면 아마 이 세상은 추호의 아름다움도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아름다움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죄가 이 세상을 덮고 창조의 본래의 아름다운 영광이 사라졌는데도 아직도 이 세계는 맑은 정신으로 바라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는 세상이 되었던 것이죠. 그러나 인간은 이 죄가 들어온 이후로 영혼이 망가지고 하나님을 알아볼 수 없는 눈먼 자가 되었고, 세상도 그렇게 어두움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 세상을 보고는 알 수가 없었던 것이죠. 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행복은 물질에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행복한 상태는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발휘하고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은 것이죠.
우리나라의 로또와 같은 복권제도가 미국에서는 슈퍼볼이라고 존재합니다. 여러해 전 이 슈퍼볼은 당첨자 없이 당첨금이 계속 쌓여서 결국은 2600억 원이라는 상금이 쌓이게 되었는데, 이 상금에 혈안이 된 미국 사람들이 수없이 복권을 샀고, 그 산 복권은 다시 이 상금의 가격을 더 높이 쌓아 올렸습니다. 자동차 공장에서 근무하던 열 명의 근로자들이 계를 들어서 5달러씩 한 달에 모아서 50달러를 복권을 사기로 하고 여러 해 동안 그 일을 계속 해왔습니다. 얼마가 당첨이 되든지 열 명이 공정하게 나눈다는 약속 하에 말입니다. 그런데 대박은 바로 이 열 사람에게 터졌습니다. 졸지에 일등 당첨금 2600억 원을 타고 이들은 260억 씩 나누어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해가 흐른 후에 텔레비전 방송국은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르포로 추적했습니다. 놀라운 일은 이 열 명 중 단 한 사람도 행복한 사람이 없이 모두 완벽하게 불행해졌다는 것입니다. 열 명이 260억에 당첨을 받은 후 모두 첫 번째 한 일은 사표를 내는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 한 일은 멋있는 차를 사는 일이었고 세 번째 한 일은 좋은 집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한 일은 부인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 직장을 떠난 후에 모두 파산한 사람이 되었고, 어떤 사람은 알코올 중독에, 또 어떤 사람들은 마약에까지 손을 대어서 불행한 처지에 이르게 되었고,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목숨을 끊으려는 사람, 범죄 하여 감옥에 간 사람까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비슷한 일은 한국이라고 예외가 아니죠. 몇 해 전 제가 직접 그 텔레비전 방송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텔레비전 방송에서 이제 소위 우리나라에서 복권에 당첨되거나 신도시 개발로 대박이 터진 사람들이 이후에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를 추적했는데, 역시 똑같이 한꺼번에 많은 돈을 번 사람들이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어떤 사람은 노숙자로까지 전락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는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180억의 시세 차익을 얻은 한 농부의 이야기였습니다. 똥지게나 지고 다니면서 거름이나 주던 시골 할아버지가 졸지에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땅값이 180억으로 치솟게 되었습니다. 자기는 농사나 짓고 살고 싶었는데 이제 더 이상 그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자식들은 뭣 때문에 이 생고생을 하냐고, 그거 다 팔아 버리자고 해서 180억 현금을 만든 후에는 이 형제들이 배분의 문제를 놓고 서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부모는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유산을 가지고 법정에서 소송을 하는 새끼들을 보면서 아버지가 쓰러져서 뇌졸중으로 죽었고 그리고 그 광경을 보면서 어머니가 다시 중풍으로 누웠습니다. 결국은 그들은 그 돈 때문에 모두 불행하게 되었고 결국은 그렇게 대박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행복했을 사람들이 자기의 위치를 떠나자 불행한 처지가 되었던 것이죠. 이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그 자리를 떠나서 인간은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이 인간은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서 타락했던 것이죠.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나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인간이 불행해지는 원인을 가난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난이 불행의 이유인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초등학교 저학년이거나 유치원 다닐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길거리에 나가면 깡통을 차고 벌벌 떠는 사람들을 수없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너무 가난해서 정말 하루에 16시간씩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아가씨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조금 더 세월을 거꾸로 돌리면 우리 할머니 말씀이 하루 세 끼만 먹여주면 남자들이 품삯을 받지 않고 일해 주던 때가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가난에 깊이 찌들어서 언덕 위에서 바라보면 하꼬방 천지였습니다. 그런 가난이 인간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무지는 또 인간을 얼마나 불행하게 합니까? 파푸아뉴기니 선교하던 어느 선교사의 간증입니다. 호수 주변에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선교사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그 사람들은 그 호수에다 똥 버리고 오물 버리고 쓰레기 버리고 또 그 물을 퍼서 먹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고기를 잡고 미역을 감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이제 이 질병에 노출되어서 심각한 병에 걸리는 거죠. 온 몸에 신열이 나고 열꽃이 돋고 아이들이 눈이 넘어가서 그렇게 생명이 위급해지는 때가 오면 약을 찾고 깨끗한 환경으로 아이를 옮겨서 기르는 것이 아니라 이 아이를 데리고 냇가로 뛰어나가서 부부가 아이를 거꾸로 들고 입에다가 모래를 쳐 넣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를 열병 들리게 하신 귀신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이죠. 그러나 심지어 그렇게 해서 아이를 오히려 잃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이 무지가 얼마나 끔찍한 불행의 원인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뿐만 아닙니다. 물질이 있고 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인간관계 때문에 불행해지지 않습니까? 아내와 남편의 관계, 자식들을 낳기는 했지만 자식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되는지 훈련되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결혼과 함께 맺어지는 자기와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 이런 것들 때문에 인간은 불행해져서 결국은 인간 불행의 원인은 관계에 있다고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불행의 원인이고 고통의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근원이 아니라 모두 증상일 뿐입니다. 보십시오. 기침을 하고 콧물이 나고 온 몸에 열이 나고 목이 붓는 것은 감기가 들렸기 때문이죠. 코를 아무리 닦아낸다고 해서 감기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기침을 한다고 해서 입에 테이프를 붙인다고 기침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죠. 목이 붓는다고 해서 진통제를 먹으면 그것이 감기가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열이 난다고 해서 얼음물을 뒤집어쓰면 감기가 치료될 수 있을까요? 그것들은 모두 증상일 뿐입니다. 증상을 가지고 싸우는 것은 언제나 한계가 있기 마련이죠.
B. 하나님을 떠남
그 근원이 바로 무엇입니까? 그 근원은 바로 죄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모든 관계는 파괴되었습니다. 인간은 허공에 홀로 존재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자리를 잡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다시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다시 자연 사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리를 잡음으로써 인간이 인간이고 내가 나인 존재가 되는 것이죠.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입증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죽어서 저승으로 갔답니다. 그랬더니 저승에서 이런 이야기가 들려 왔답니다. “야, 넌 누구냐?” “저는 아무아무개의 동네에 사는 아무개입니다.” 그랬더니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대요. “내가 언제 너한테 사는 동네하고 나이 물어봤냐? 너 누구냐?” 그랬더니 그 사람이 다시 대답하기를 “나는 한 남편의 아내이고 세 아이의 엄마이고 어느 교회 다니는 교인입니다.” “나는 너에게 네 남편을 물어본 것도 아니고 자식이 몇 있냐고 물어본 것이 아니고 네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어본 것이 아니다. 너는 도대체 누구냐?” 수없이 이런 식으로 대답을 해도 결국은 너는 누구냐, 너는 누구냐는 질문이 들려 왔는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는 거죠. 대답을 못한 그 사람이 무능한 것이 아니라 인간은 자신 홀로 존재해서는 그게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는 존재에요.
그러니까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하나님 앞에 누구인가, 사람들 사이에서 누구인가, 자연과의 관계에서 누구인가 자리를 잡을 때 비로소 관계를 가지고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 설명이 되는 것이죠. 내 친구를 보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고 내 부모를 보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게 되는 것이죠. 자연의 세계를 보면서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서 이 사람들 속에 있지만 나는 다른 인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나도 존재하고 신도 존재하지만 나는 하나님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인간은 스스로 파악할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뜨려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기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앎으로써 비로소 이 인간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게 되는데 가장 중요한 관계인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새카맣게 잊어버린 불효막심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자연과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그리하여서 이제 자연은 자신의 명령에 굴복하고 자신의 통치에 복종하는 대신 거칠게 항거하고 인간에게 위협을 가하게 되는 존재로 탈바꿈하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인간은 원래의 이 자연의 모든 세계를 지배하고 다스리던 왕 같은 위치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이제는 자연에 순응하고 복종하면서 살 뿐만 아니라 아예 자연을 신처럼 떠받들고 살아야 자기가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이렇게 자기의 지위를 자연과 더불어 바꾸어버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이 세계에 있는 모든 그릇된 종교들의 기본인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완전히 깨뜨려져서 이제는 원래는 사람들을 창조하셨을 때 사람 때문에 사람이 행복해지도록 사람을 창조하셨죠. 그래서 아담은 홀로 있을 때에도 불행하거나 괴롭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하와를 창조하셔서 그에게 아내로 주셨을 때 그는 홀로 있었더라면 느낄 수 없었던 놀라운 기쁨과 행복 속으로 들어가게 된 거죠.
뿐만 아닙니다. 자신과의 관계가 깨뜨려져서 이제는 자기도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비참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심리학이 계속 발달해서 인간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찾아낸다고 하지만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부터 끊어진 인간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를 보여줄 수 있을 뿐 인간 자체가 누구인지를 심리학이 보여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불행과 고통의 근원에는 바로 죄가 있는 것입니다. 죄는 감기라는 질병이고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가난과 무지, 질병, 인간관계의 파괴에서 오는 그 끔찍한 모든 고통과 자연의 재앙은 기침하고 콜록거리고 목이 붓고 콧물이 나는 증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독교는 그런 증상을 완화시키는 종교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뿌리를 고쳐서 그 인간에게서 불행하게 만드는 그 요인을 제거하려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인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자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Ⅳ. 구원자 예수
왜냐하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원자 예수가 우리에게 오시는 것 이외에는 또 다른 길이 없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인간은 죄를 지었지만 죄의 능력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절대로 없습니다. 인간은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오직 증상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할 뿐입니다. 그러나 한 번 보십시오. 가난과 고통을 면하기 위해서 열심히 개발을 하고 노력을 했더니 이번에는 개발한 것이 재앙이 되어서 자연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인간에게 불행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만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암으로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특히 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암으로 죽어갑니다. 이 끔찍한 수많은 질병, 때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신적인 질병 같은 것들이 창궐한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의학에 의해서 인간의 수명은 연장시키지만, 그것이 곧 인간 생존의 질을 높인다고까지는 말할 수가 없는 것이죠. 이런 속에서 하나님은 이 죄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A. 성육하신 예수
근원적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했는데, 하나는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벌 아래 있는 우리를 용서해 주시는 일이었고, 또 그런 악한 증상들을 끊임없이 발휘하도록 만드는, 인간 안에 있어서 인간 스스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이 필연적인 죄의 영향력들을 제거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들이 지은 모든 죄를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 그분은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낮고 천한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베들레헴의 별빛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알려졌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는 그렇게 주린 자를 먹이고 병든 자를 고치고 무지한 자에게 진리를 가르쳐주는 사역으로 이어졌습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선지자들에 의해 알려졌고 기적 속에 나타났지만, 사람들에게 마음에 깊이 다가오는 적이 많지 않은 그런 지극히 높고 초월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친히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내려오셨습니다.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병든 자들을 고치고, 주린 자들을 먹이시고, 아파하는 자들과 함께 눈물 흘리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모습을 통해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보게끔, 그리고 느낄 수 없는 하나님을 느끼게끔, 들을 수 없는 하나님을 듣게끔, 그리고 만질 수 없는 하나님을 만지게끔 만들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 것을 우리에게 알리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나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자기의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보내셨음이라.”고 말입니다.
B. 속죄하신 예수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사랑은 바로 독생자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지은 모든 형벌들을 그리스도 예수께 담당시키시고, 그리고 정당한 형벌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퍼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의 몸을 입고 온 인간으로서는 죽임을 당하고 하나님 앞에 형벌 받는 어린 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형벌 받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살게 하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여러 해 전 외국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죽었고 기적처럼 몇 사람이 살아남았는데 많은 사람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 것은 바로 엄마가 아이를 안고 죽은 시신이었습니다. 엄마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비참하게 죽었는데 아이는 엄마의 품에서 구조대원들이 도착할 때 잠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죄를 지은 우리 모두를 당신 품에 안고 당신이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고난을 당하심으로 당신은 죽으시고 우리는 살게 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 일을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이 영생은 영혼의 생명이니 진리 되신 하나님이 인간의 영혼과 관계를 맺으시고 영혼이 영혼답게 살아갈 수 있는 끊임없이 영적인 새로운 힘과 은혜를 부어주셔야 했는데, 사랑을 부어주셔야 했는데 이것을 가리켜서 생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이렇게 육체는 이 세상의 자원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영혼은 하나님과 생명적인 관계를 가지고 그 사랑과 생명을 풍부하게 공급받음으로 이 영혼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상태가 되어서 위로는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랑하고, 또 사랑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래서 이 영혼이 육체를 끌어안고 육체를 부리며 위로 하나님을 섬기고 아래로 만물들을 다스리고 옆으로는 사랑하는 인간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이렇게 존재하도록 하나님이 복되게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에요. 죄가 들어오자 이 모든 것은 깨뜨려지게 되었고 이것을 다시 회복시키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오셔서 우리도 어찌할 수 없는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외적으로만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안에는 하나님이 아무리 용서해 주셔도 우리 자신 안에 우리도 어찌할 수 없는 죄와 욕심들이 대책 없이 남아있다면 용서받아도 또다시 죄를 짓고 또다시 범죄하고 악을 행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Ⅴ. 결론: 회개와 믿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내가 바로 지은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형벌과 저주를 받으셨다는 사실을 깊이 인정하고, 그리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그만을 의지하며 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에 놀라운 일을 행하시고 마음에 새 일을 행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죄 지을 수밖에 없고 하나님을 등지고 살 수밖에 없는 우리의 악한 본성을 무너뜨리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듯대로 살 수 있는 본성을 새롭게 부여하셔서 성령을 우리 안에 주시는데, 이 성령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신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시며 하나님의 사랑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전달해 주시고 그 생명을 누리게 만들어 주셔서, 죄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그랬을 것보다 더 풍성하게 충만한 하나님의 생명에 뿌리를 박은 삶이 되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제 그리스도 예수를 믿기 전에는 죄 지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우리에게 모든 이 죄의 증상을 가져오는 불행으로부터 이기고 극복하며 나갈 수 있는 놀라운 은혜의 자원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지상의 자원 하나로 살았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은 곤고했으나 이제는 하늘의 자원을 함께 공급받음으로 참된 인간의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게 하셨던 것입니다.
나는 스물한 살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심하였습니다. 회심하기 전까지 나는 구원에 이르지 못했고 교회 다니고 있었던 젊은이였으나 6년 전에 교회를 떠나고 나는 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비웃었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초보적이고 어리석은 사람이 신뢰할 수 있는 책이 성경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이런 인생의 많은 문제들을 문학과 철학과 사상에서 해결해 보기 위해서 지적인 여정을 떠났습니다. 그 모든 과정들은 나에게 때로는 기쁨을 주고 통찰의 빛을 주었지만 그러나 결국 나의 영혼은 점점 더 비참하게 되어갔고 교회를 떠난 지 6년이 된 어느 날 나는 도저히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고 하는 절망적인 벽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도 없었고 권력을 갖고 싶어 하는 야망에 불타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나는 가난해도 충분히 살 수 있고 권력이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믿었지만 나를 살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였습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아침마다 부자가 될 것을 포기할 수도 있고 세상에서 유명해 질것을 포기할 수 있는데, 피할 수 없는 한 가지 현실에 매일 직면해야 됐습니다. 인간으로서 살아있다는 것, 이것은 나 아니고는 대신 짊어질 수 없는 명제였습니다. 내 마음엔 평안이 없었습니다.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의 글들이 일시적으로 마음에 위안을 주었지만 그러나 여전히 그 궁극적인 해답은 내게 주지 못했습니다. 기독교에 답이 있을 것이라고 어느 날 성경을 폈더니 공교롭게 이런 구절이 들어왔습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이 있느니라.” 세상에 하필이면 그 성경구절일까? 보여줄 수 없으니까 도망갈 구멍을 성경 속에 곳곳에 만들어 놓고 핑계를 대는 것이 성경책이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인생의 문제를 상담해보기도 했지만 내 주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만족할 만한 답을 주는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내가 보기에는 그들도 자기가 왜 믿는지도 모르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혹독한 방황이 끝나고 나는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이제 더 이상 나는 삶을 계속 할 수 없다는 그러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삶 보다는 죽음을 훨씬 더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어느 날은 드디어 나의 이 길지 않은 인생의 종지부를 찍어야 되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극심한 고통의 시기를 지나면서 있다고 믿지도 않는 그 신에게 기도하는 버릇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계시다면 나를 굽어 살펴 주십시오. 나는 도대체 어디로부터 온 존재이며 어디로 갑니까? 나의 마음에 행복하기를 원하는데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지고 있는 이 극한 싸움과 불행의 이 모든 징조들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나를 일깨워주십시오.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하는데 도대체 그 자연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간다면 과연 행복해질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 행복해지기까지 포기하는 방법은 없는 것입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때 나의 친구가 서서히 나에게 복음을 전해주기 시작하였고 어느 순간에 밝고 명료한 빛이 나의 어두운 지성을 째고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눈으로 보아서 알 수 없었던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과, 이천 년 전에 나무에 매달려 죽으신 내가 4대 성인 중 한 사람으로 존경하던 그 사람이 사실은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못 박히고 채찍에 맞으시고 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더듬더듬한 말로 다른 사람에게 설명했을 때 어떤 사람은 내 말을 믿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거나 믿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신앙의 세계는 정원과 같은 것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걸어보지 않고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도 내 마음에 이런 찬송이 울려 퍼졌습니다.
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찌 다 말하랴
그 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
눈물이 막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2000년 전에 죽으셨다고 알았던 그분이 가시관 쓰시고 못 박히신 손과 발로, 채찍에 물든 핏자국으로 내게 다가오셨습니다.
못자국난 그 손과 옆구리 보이시면서 하신 말
네 죄를 인함이라 하실 때 나의 죄 짐이 풀렸네.
30년이 훨씬 지난 세월 동안 나는 그분을 가끔 떠났지만, 그분은 한 번도 떠나지 않으시고 나와 함께 동행 하셨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내가 이렇게 모시게 된 예수 그리스도를 모두 만나고 형벌 받을 죄악으로부터 구원을 얻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생명을 누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을 믿어서 손해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생명을 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분이시니 지금도 여러분들의 마음의 문 밖에서 피 묻은 손으로 여러분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며 말씀하십니다. “볼 찌어다. 내가 문 밖에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라.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가족이 되고 싶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지난 날 어떤 인생을 살아왔든지, 주홍과 같이 붉은 죄와 그리고 먹물과 같이 더러운 악이 가득할지라도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그렇게 피 흘리고 죽으신 그 비참한 고난이 나의 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자기의 죄를 회개할 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이라고 고백하고 그분을 믿고 그분께 순종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용서해주시고 하나님이 큰 생명과 사랑으로 여러분들을 맞아주실 것입니다. 그 임마누엘의 샘에서 주님을 먹고 마시며, 이 어두운 세상을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지으신 창조의 목적답게 아주 인간으로서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지위를 누리며 살다가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복된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