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
“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 (고후 5:13 -14)
오늘 오전에 여러분들에게 사실은 기독교의 복음 중에 중요한 대목 하나를 가르쳐 드렸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영적인 전쟁이라 이런 말씀입니다. 오늘 이 시간 설교는 아마 그 오전에 하는 설교를 이어서하는 거는 다음 주에 하겠지 만은 오늘 이 시간에는 아마 그 설교의 보충이 될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치열한 영적인 전쟁을 싸우면서 이기게 만들어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태어날 때부터 이미 공통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사람은 할 수만 있으면 편한 길로 걸어가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흔히 학교에서 그런 걸 봅니다. 화단이 이렇게 있어서 거기 잔디밭이 있습니다. 잔디밭은 보는 게 더 멋있잖아요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은 들어가면 다 뭉개져 버리니까 아 화단에 들어가지 마시오. 그러는데 여기서 저기까지 가려면 이렇게 길을 따라 돌아가면 되잖아요. 그런데 꼭 밧줄을 넘어서 계속 다녀요 하도 다녀 거기다 말뚝을 박아보고 별일을 다 해봐도 안 돼요 할 수 없이 걸로 길이 납니다. 그러고 할 수 없이 사람들이 다니죠. 어떠하든지 우리는 편한 길을 걸어가고 그러고 쉬운 길로 걸어가려고 애를 써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살아가면서 삶에 있어서 어떤 것이 가치가 있는 삶인가에 대한 분명한 삶에 철학이 없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모든 원동력은 편의입니다. 어느 길이 쉬운가? 그리고 어느 길이 편안한가? 그리고 어느 길이 나에게 유익한가? 이런 것을 생각하며 사람들은 움직입니다. 은밀한 의미에서 편하고 안일한 길을 따라 살아가려고 하면 별로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능이 그런 길을 걸어가도록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생가하지 않고 본능에 충실한 삶만 살아도 저절로 편안하고 안일한 길을 따라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말씀이죠.
그러나 이제 삶에 있어 무엇인가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러이러게 살아가는 삶이 가치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삶에 원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아무리 높이 생각하고 있는 가치라고 할지라도 자기가 살아가는 삶이 그 가치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어떤 원칙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으면 자기가 갈려고 하는 방향으로 삶이 도대체 가지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을 누구든지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원칙을 정합니다. 그리고 그 원칙에 따라서 생활하려고 하죠. 그러나 이렇게 원칙을 정해놓고 살게 되면 그 다음에는 삶이 매우 고달프고 어려운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끊임없이 그런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자신 속에 있는 연약함과 더불어 싸우고 환경적인 압박과 더불어서 투쟁해야 된다. 라고 하는 사실이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최고의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오늘 오전에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르심을 주신 거예요 소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때 주신 그 소명을 따라서 살 때에만 우리는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를 믿고서도 믿지 않을 때 보다고 훨씬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좌절과 불만족과 불평과 이런 것들 속에 욕구불만 속에 에여 싸여서 살아가는 소심한 사람이 얼마든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서 주님의 자녀가 되고나면 이제는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살아야 되는가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그의 인생은 끊임없이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오고가며 세상에서도 버림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에서부터도 멀어진 불행한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얻은 우리들에게 약속하신 풍성한 삶은 그런 생활이 아닙니다. 그런 삶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가 있고 생생한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있고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비롯되는 감격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하나님나라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기쁨이 있고 도덕적인 의가 있고 불붙는 복음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아야 될 텐데 우리들은 어떠하면 이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나라를 위하여 살도록 소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또 우리 안에는 평탄하고 안일한 길을 걸어가면서 타협하면서 살려고 하는 이러한 옛사람의 성품들이 여전이 남아 있어서 우리를 죄 가운데 사로잡아옵니다. 이러한 모든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거룩한 소명을 따라 살 수 있게 하는 뭔가 비밀을 발견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마음에는 있어도 그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따라서 살아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비극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제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요소들을 버리고 이전에 하나님 안에 살지 않을 때에 즐거움을 누리던 것들로 자신을 즐겁게 하려는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하나님을 반항하고 어두움의 세력 속에서 마귀에게 종노릇을 하며 두려움 속에서 떨며 그렇게 어둠의 세력들에게 복종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만 이제 주님이 우리를 복음으로 빛 가운데로 불러내셨습니다. 어둠의 속에서 광명한 곳으로 나아오게 하셨고 이전에 복종하든 모든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이제는 자유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렇게 자유를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그 자유를 가지고 자기의 육체를 섬기는 기회가 아니라 이제는 소명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과 함께 즐거워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소명된 사람이 옛날에 자기의 육신을 즐겁게 하던 옛날의 즐거움을 따라서 살고 거기서 얻는 즐거움으로 만족을 누리고자 할 때에 그의 인생은 대단히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우리자신을 자리매김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예수의 피로 구원 하셔서 이제는 주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 나라의 병사로 삼아서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이제는 우리가 세상나라의 백성들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세상나라의 백성들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어서 이제는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영적인 생명과 은혜는 주님이 자기를 부르신 그 부르심을 따라서 살려고 할 때에 유지되고 그리고 그 은혜가 더욱 그 가운데 은혜로 역사 하였어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표의식이 없는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들은 결코 강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경건생활을 열심히 해야지만 여러분들은 좋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건생활도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경건한 생활을 유지해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거역할 수 없는 소명을 느끼고 주님이 나를 이러한 부르심으로 나를 부르셔서 이제는 내가 이렇게 이 일을 하면서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오게 하는 도구로 나를 부르셨으니 내가 이 자리에 서서 살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주신 그 자리는 여러분의 생명입니다.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맡겨주신 여러 자리가 있습니다. 그 모든 자리는 여러분 자신의 영적인 생명과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크고 중요한 일을 맡겨주시고 어떤 사람들에게 작은 일들을 맡겨주십니다. 어떤 사람은 전선으로 보내시고 어떤 사람들은 후방에 배치하실 수 도 있습니다. 어디에 섰던지 주님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부르심을 이루고 또 우리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그 자리에서 우리는 충성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자기의 편의와 그리고 자기생각에 옳은 대로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불충성한 삶을 살면서 그런 것으로 말미암아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부르심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의 그런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지체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와 또 많은 사람들이 받는 영적인 손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만이 가장 커다란 문제이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느끼고 있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올바른 태도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혼들을 회복시키시고 그리고 복주셨어 군사로 만드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회복시키려고 하는 사람들만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바빠도 바늘을 허리에 매어서 바느질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아무리 곤란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우리는 혼돈하지 말고 그 어두움과 혼란 속에서도 주님의 뜻이 무엇이고 그리고 하나님이 나와 유사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하는데에 마음을 기울이면서 우리가 하나씩 하나씩 우리의 신앙의 길을 정리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본성이 있어서 허둥대기 잘 하고 또 고난의 길을 걸어가기 보다는 안락하고 안일한 삶을 살아가기를 기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알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죽었다는 의미는 영적인 모든 생기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육체의 욕심에 따라 살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분투하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 오게 하는 주기도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를 싫어하고 평탄하고 육체가 원하는 대로 안일한 삶을 산 모든 대가는 바로 우리의 영적인 삶의 파멸입니다. 죄를 향하여 싸울 능력도 없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오게 할 수 있는 그럴 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따라서 순종할 의사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다면 그에게 있어서 남은 삶은 무엇입니까? 둘 중에 하나에요 적에게 투항하든가 숨어서 지내든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이 문제에 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분명히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요. 주님이 나를 왜 구원하셨으며 그리고 구원받은 내가 왜 이렇게 가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난 그 하나님을 믿는가?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나에게 믿음을 주셔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해서 살게 하는가? 그리고 오늘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부르심은 무엇인가?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진리가 무엇이고 나는 어떻게 그 진리를 통해서 자유를 얻을 수 있으며 그리고 그 진리가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으며 나는 왜 그 진리를 향해서 올바로 반응하고 있지 못한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도 청교도들이 가지고 있었던 그런 신념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처럼 우리가 오직 은혜로 구원들 받는다는 교리를 강조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들처럼 하나님의 사랑만이 우리를 죽음에서 살리셨고 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우리가 전적으로 무능한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한 사람들도 없습니다. 그들은 엄격한 타락의 교리를 강조했습니다. 인간은 아무 가망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늘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고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 지성에 대해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래서 킷더민스터의 리차드백스터는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당신이 만약에 생각하기 싫어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아마 당신 같은 사람이 가기에는 너무나 높은 곳에 있다’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실제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예상되는 질문을 말하면서 조목조목 반복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목사님 나는 농부입니다. 천하부랑 무식한 놈입니다. 나도 그렇다면 부지런히 생각하고 뭔가를 깨달아야 됩니까? 내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질문을 해 놓고 그러나 나는 말하리라 왜 그러냐하면 하나님이 당신을 구원한 것도 당신이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알게 하셨다. 당신은 부랑무식한 농부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당신에게 알게 하시지 않았느냐 그러고 당신이 알 때 구원을 받았고 그러면서 죽 설명을 해 나가는 거죠
그러니까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역사하던 시대에 쉽게 말하면 어찌하던지 사람들이 자기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인생 이 자체가 소명이라고 보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자살을 미워했어요. 그것은 아주 최후의 악이라고 생각 했어요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면 하나님이 자기를 살게 하시려고 구원 해 내셨는데 스스로 자살하는 것은 소명에 대한 포기에요 그러니까 그들이 하나님이 자기를 구원하신 그 참 사랑을 이해하고 그 뜻대로 살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그들에 가장 필요한 것은 진리였어요. 무엇이 참된 것인가 어떻게 믿는 것이 진실한 것이고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가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되었어요. 그래도 그것은 철저하게 자기가 찾아서 그리고 깨닫고 자기가 동의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죠.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 자기가 깨닫고 그리고 그 깨달음을 통해서 실천하는 그 일을 위해서 최선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의미에선 작은 신학자와 같은 사람들이였어요 왜 신학이 묘미가 있고 흥미가 있어 배운 게 아니라 무엇이 참 진리인가를 깨닫고 그리고 그 진리를 따라서 살고 싶어 하는 강한 소원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이고 무엇이 참 진리인가 하는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숙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구원 얻지 못한 사람에 가장 확실한 표적이 무엇인가하면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 이것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가장 확실한 표적인 것입니다.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설교 같은 것들도 저는 오늘날 한국의 교회에서 평균적인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전 압니다. 뭐 그렇게 복잡하냐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고 내가 구원 받았고 그리고 감사하면 그만이지 뭐가 그리 복잡하냐 자유가 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주님 안에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버리라는 것도 너무나 많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너무나 많고 이거는 자유가 아니라 정말 속박으로 가득 찬 그러나 종교의 세계라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의 모든 원인은 진짜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리들이 복잡하고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려고 하는 진리들이 그 체계가 너무나 혼란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주님을 위해서 주님을 우리를 구원하신 그 뜻을 따라서 살고자 하는 거룩한 결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참 생명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하더라도 이제 그 생명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우리에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를 어둠속에서 건져내신 계획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 뜻을 따라서 군사와 같은 정신으로 분투하고 투쟁하고 살아가지 아니하면 우리는 생명을 얻었으나 생명이 없는 자처럼 살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만 고통이 아니라 교회에도 고통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고통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때는 우리의 준비된 상태와는 상관없이 예배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여러분들이 예배드리러 오는 모든 사람들이 일주일동안 거의 완벽하게 패배하고 죄 가운데 살다가 깨뜨려진 마음도 없고 상한 심령도 없이 교회에 나왔다고 할 것 같으면 그 예배가 예배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모습으로 하나님의 앞에 나올 때 우리의 삶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태도는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다른 사람들이 예배드리는 예배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때에 소명도 함께 주셨고 이 소명을 따라 살지 않으면 우리는 생명의 약속은 받았으나 그러나 그 생명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그러한 짓눌린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곳에 생명이 역사하고 어떤 곳에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역사합니까? 거기에는 승리하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합니다. 승리하는 곳에 하나님의 놀라운 기쁨이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인생은 말이죠. 고난 때문에 우울해지고 시련 때문에 우리의 인생이 갑갑해지는 것만은 아니에요 문제는 그 시련과 고난에 직면해서 그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영적인 싸움에서 우리들이 이길 때에는 우리의 삶이 고난을 능가하는 기쁨과 은혜 속에서 충만한 삶을 살아갑니다.
오늘 이 성경말씀도 바로 바울의 그러한 고백입니다 우겨 삼을 당하고 그리고 많은 고통가운데서도 바울과 그 일행은 하나님의 생명의 은혜를 충분하게 누리고 그리고 우겨 삼을 당하여도 죽지아니하고 그리고 무명한자 같으나 사실은 유명한자처럼 될 수 있었던 그 비결이 바로 이들로 하여금 승리하게 했던 원동력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정직한 복음적인 견해를 갖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결코 살 수 없습니다. 그걸 기억해야 됩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정직한 복음의 견해를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우리의 영혼은 생명을 누리고 살 수 없습니다.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가르쳐주는 가장 복음적인 견해는 우리의 삶은 영적인 전쟁이요 구원받은 우리는 이 세상을 군사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싶어 하는 복음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에 대해서 매우 진지한 견해를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놀랍게 구원을 받았지만 그 은혜에 감사하면 살아가는 것도 삶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찬송하며 살아가게 만드는 것도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삶속에서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승리해야 되겠다. 라고 하는 의욕에 넘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미쳤어도 그리고 정신없는 자처럼 사람들에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주를 위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 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바울과 그의 일행의 삶이 미친 자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으며 보장된 종교적인 엘리트로서 길을 걸어갈 수 있어 매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그는 동족들에게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동족을 잃어버리고 가족을 잃어버리고 고난을 받는 그 이유가 어리석게도 복음 때문 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핵심은 나사렛예수가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라고 하는 그 십자가의 돌이였습니다. 그 십자가의 돌이 사람들이 모두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그 돌을 전파함으로서 우습거리가 되기 위해서 그 대가로서 바울이 지불해야 되는 것은 너무나 큰 것 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의 이러한 삶이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우리가 만약에 미쳤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미쳤고 다른 사람들 보기에 정신병자같이 보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내안에 분명한 삶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인데 그 삶의 목표는 다름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다고 사도바울이 오늘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 속에는 그로 하여금 이렇게 미친듯한 삶을 살아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주는 그 무엇인가 있었습니다. 그 무엇을 가리켜서 오늘 성경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기들을 강권하고 있다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강권했던 것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사로잡아서 자신도 어찌 알 수 없도록 어떤 강제력에 붙잡히게 되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기를 잡아서 자기 마음대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 마음대로 사도바울을 움직이면서 그리스도가 하시고자 하시는 일들을 이루어가고 있는 이런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강력하게 권고하시고 그를 사로잡으신 것이 바로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미친 듯이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오전에 설교와 관련해서 아주 정확한 한 연결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를 주님의 군사로 부르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동의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삶을 살고자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소명이 무엇인지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일에 실패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잠시 주저앉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예 돌이켜 서서 먼 길로 떠나버리고 타락의 길로 가기도 하고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스스로 멀어지는 뒤로 물러나는 길을 걸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사실 하나는 끊임없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그 무엇이 우리에게 역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단지 우리가 주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고 그리고 소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 때문에만 그 길을 걸어 갈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죠. 옳은 것을 다 알면서도 못하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좋은 줄 알면서도 도저히 우리의 힘으로는 그 좋은 것을 행할 수 없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이 소명에 따라 살게 할 수 있는 어떤 원동력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사는 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이 되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원동력이 우리가운데 현재적으로 끊임없이 매일매일 역사하지 않으면 우리는 거룩한 소명을 따라서 살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기대에 따라서 살고 그리고 넓은 길을 버리고 좁은 길을 걸어가고 그리고 넓은 문을 버리고 협착한 문으로 들어서는 이런 어리석은 선택들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하나님께서 내가 이렇게 고난을 받아서 살아가노라면 하나님의 놀라운 상급에 나에게 미래에 주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그것 하나만을 소망으로 삼으면서 편안한 길이 있는데도 고난의 길을 택하고 그리고 고난 받지 않고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핍박을 받으며 걸어갈 수 있는 길을 택한다고 하는 것은 이론으로나 가능하지 현실적으로는 가능하지 않는 것입니다. 불가능합니다.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서 깊은 딜레마에 빠지는 이유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용서도 구해봅니다. 그리고 어떤 때도 기도하면서 자신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 보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불쌍한지 스스로 자기를 불쌍하게 생각하며 슬픈 노여움이 되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렇게 간구하고 기도하는 것은 진실한 기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경험은 그런 진실한 기도가 드려지는데도 우리의 영적인 삶의 상태는 별로 개선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호소하고 어떤 때는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가난한 심령이 되어서 예수님의 도움 없이는 살수 없다고 하나님 앞에 호소하지만 그러나 이상하게 그 도움은 우리 속에 밀려오지 않습니다. 마음이 무너지듯이 하나님 앞에 하소연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만 끝나고 눈물을 닦으면 우리는 역시 하나님의 수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홀로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열렬히 하나님 앞에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적인 삶의 현장에서 무기력하게 패배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세월이 점점 시간이 같은 일들이 계속 반복되면서 이제는 하나님 앞에 뭔가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깊이 호소하며 매달리는 일 자체가 쓸모없는 일이라고 하는 암시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점점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는 철저히 무너지고 그리고 우리의 영적인 삶이 깊은 파멸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마귀가 여러분들을 향해서 찾고 있던 목표였습니다. 목표는 성취되었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여러분들은 그 발아래 들어갔습니다. 완전히 짓밟혀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목을 깊이 누르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이라도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더 자신의 육체 속에서 경험되지 않기 위해서는 죽은 자처럼 마귀의 발아래서 납작 엎드려서 처분을 기다리며 잠잠히 엎드려 있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어나려고 몸부림칠 때마다 목을 누르는 그 발의 압박은 피멍이 들도록 강해 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결과는 우리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우리에게 자기의 생명을 주셔서 우리에게 누리게 하시고 싶으셨던 그 삶이라면 복음은 우리 인생의 불행의 씨앗이요 속임수가 될 것입니다. 내가 온 것은 생명을 주고 또 풍성한 삶을 살게 하려고 오셨다고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양들로 하여금 생명을 주고 그리고 그들이 목자이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시기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그리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이 풍성한 삶을 여러분 자신 속에서 발견 합니까? 주위의 사람들 속에서 발견합니까? 여러분 눈을 들어서 주위의 사람들을 한번 보십시오. 저 사람처럼 풍선한 삶을 살고 싶다. 라고 하는 여러분들의 모본이 되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수인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충분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런 놀라운 약속을 주셨지 만은 그러나 그런 약속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무나 소수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자신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은 뒤에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약속이 무엇이고 또 구원 얻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눈뜨는 삶을 여러분들이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영영 죽음과 다름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까 비유한 것과 같은 그런 삶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복음이 죽음에서 사람들을 살리고 사망에 쳐한 사람들을 건져내는 놀라운 힘이 있고 어둠속의 권세 속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이끌어 내어 빛으로 불러들여서 불행과 어둠속에서 자신과 이웃을 저주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창성하는 도구로 만들 수 있다. 라고 하는 변화의 놀라운 능력이 복음 안에 있다는 사실을 감히 증거 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변화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약속할 수 있겠으며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이 놀라운 변화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자신 있게 선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만약에 우리 자신이 이미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의 그 기쁨과 넘치는 능력과 그 은혜 속에서 그것을 맛보면서 살아가지 아니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정말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분투하고 투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미 자기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경함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는 선택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승리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자녀다운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아까 말씀 드린 것과 같이 그렇게 깊이 밟혀있는 상태에서 패배로 말미암는 평화를 누리면서 살 것인가? 둘 중의 하나에요 만약에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승리하게 하신 그리스도인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면 어떤 그림일까요? 살아가면서 고난을 만나고 위기를 만날 때 그는 하나님의 넘치는 도움을 의지하며 기쁨으로 그 고난과 그 위기를 극복할 것입니다. 시련을 만나면 그는 하나님을 더욱 붙들 것이며 시련 속에서 하나님을 붙들 때 하나님께서는 시련을 능가하는 위로와 평안을 그의 영혼 속에 부어 주실 것입니다. 오직 믿을 이가 한분밖에 없으심을 알고 하나님 앞에 매달릴 때 하나님께서는 그와 함께 하고 계신 표증들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푸셔서 위기 가운데 건지시고 그를 에워 쌓던 위기들을 물러가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영적으로 어려움 속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다가갔을 때 이 사람은 결정적인 하나님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죄 가운데 눌려있는 사람들에게 죄로 말미암는 그 사슬로부터 그를 벗어나게 하기위한 진리를 가르쳐 주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그를 만나는 사람마다 일생을 어둠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이를 가는 인생을 살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그가 그에게 나타나서 의와 진리와 하나님의 나라와 심판과 절제에 대해서 가르치지 시작할 때 캄캄한 그의 지성 속에는 어두움이 물러가고 빛이 들어오기 시작할 것입니다.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마구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아가던 동물과 방불한 그의 삶이 변하여 대낮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사람과 같은 삶으로 변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어둠의 그늘아래서 끊임없이 타락의 길을 걸어가며 영혼의 고통과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사실상 불신자와 다름없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서 자기 안에 있는 풍성한 삶을 보여줄 때 그들은 자신의 인생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 구원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있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은 자신의 동물적인 삶을 돌이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기쁨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아마 그런 도움 받았던 적 있죠. 결정적인 순간에 누군가가 나타나서 여러분들에게 인생의 진실과 그리고 참된 신앙이 무엇인가 가르쳐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이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을 때에는 그 별로 그렇게 중요한 사건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것에 아멘하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떠나서 비참하게 뒹굴고 있는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무엇인가 인생의 진정한 해결을 보고 그것을 계기로 어둠에서 빛으로 들어가는 삶을 살게 되었을 때 세상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어지는 어떤 계기가 되어서 살아가고 있을 때 또 어떤 때는 자기가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면서도 끊임없이 실패하는 영적인 삶속에서 그 어떤 빛을 발견하고 자기의 신앙의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깊이 자기를 회개하고 돌이켜서 참된 길로 걸어 들어가는 어떤 영적인 결정적인 변화가 있을 수 있죠 그때에 그 사람의 한마디의 말은 우리의 인생 전체를 좌우했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죠. 우리의 인생 전체를 좌우했습니다.
(예화) 어저께 지난주간에 제가 말씀 드렸죠. 수요일 날 말씀 드렸나 테임즈강에서 투진자살하려고 가던 사람이 기왕에 물에 빠져 죽기 전에 웨스턴민턴교회당에 가서 저녁예배라도 드리자 주님한테 작별인사라도 해야지 그러고 갔어요. 그런 사람이 예배시간에 일찍 나올 리 없죠. 예배가 다 시작하고 올라가니까 목회기도 했을 때 였어요 계단을 이렇게 막 올라가는데 로이드존슨 목사님의 창창한 기도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여호와는 미끄러지는 자를 보호하시며” 거기에서 완전히 계단에서 거꾸러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와 같이 미끄러지는 자도 하나님이 건지시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어서 죽음을 모면하고 진실한 신자로 변했다 그랬죠.
그때에 그 한마디의 말은 죽음에서 그를 건져준 거예요 할렐루야 그렇죠. 어떤 의미에서 존슨 목사님도 이말 하면은 템즈강으로 뛰어들 어떤 놈이 올라오다가 변화될 것이라는 것은 생각 못하고 기도하셨을 거예요 그죠 그렇죠. 그런데 건져낸 거예요 그런데 그런 일들이 한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살아가고 지나치면서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런 일들을 행하시는 거예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과 아까 말씀드렸듯이 구원받았는데 겨우 주머니에 있는 천국 가는 기차표 한 장 매만지며 그러면서 마귀의 발아래 목덜미가 밟혀서 거기에 복종하고 살아가는 삶하고 비교가 되겠느냐는 거죠 비교가 되겠느냐는 거죠
진실로 회심하고 그리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자기가 비록 여러 가지 이유로 거기에 다다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 삶을 사모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여러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 증언하고 있는 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믿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 그러한 삶을 살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매달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그 어떤 걸들을 희생해서라도 얻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마음이 뛰기 시작할 것입니다.
분명코 뭐 그렇게 복잡해 그냥 아무렇게나 믿으면 되지 하는 사람들이 회심치 못한 사람들의 대표적인 표증입니다. 동물적인 삶 그래서 로이드존슨 목사님이 신앙에 관해서 무슨 질문을 받을 때 모른다고 말하지 마라 다 안다고 말하면 더 나쁜 사람이겠지만 은 함부로 모른다고 말하지 마라 모른다. 그것은 아예 생각을 해 보지도 않았다는 거거든요 그리스도 안에서 있는 승리가 뭐냐 말하면 이런 것이 승리고 이런 것이 승리고 이래서 패배가 오고 이러면 승리를 얻을 수 있다 다 말한 후에 그렇지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성경에 나온 승리를 다 말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난 좀 더 승리에 대해서 알고 싶다. 그리고 거기에 관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초라하다 이렇게 말해야 된다는 거죠 그런데 상담할 때 그런 거 잘 나타나요 “이렇게이렇게 해야지 이렇게 하는 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 아니겠니?” “모르겠는데요” “ 너 이렇게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지” “생가해본 적이 없는 데요” “그러면 이거는 아니” “아뇨” “그럼 넌 뭘 하니” 내가 아는 모든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뿐입니다. 그래 너는 오리지널 깡통이구나. 교회 오는 사람이 말이죠. 여기 말고 닫힌 교회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밀려오는 사람들의 소리 들어봐요 딸랑딸랑 깡통소리에요
어느 교단에 여름교사 강습회한다고 노외에서 연합 집회한다고 모아놓았어요 두 번째 날 강의를 하면서 물어 봤어요. “목사님 지난주일 목사님 설교 기억하는 사람” 한 사람도 나오리가없죠 그 다음에 거꾸로 물어 봤어요. 두 번째 줄 ‘지난주 공과 가르쳤어요. 뭘 가르쳤어요. 껌벅껌벅하고 그다음 “가르친 본문이 어디에요” “공과 가르쳤어요” “주제가 뭐에요” 가만히 있어요 이쪽 앞줄은 설교를 뭘 들었는지 모르고, 뒷줄은 공과를 가르쳤는지 자기가 뭘 가르쳤는지 몰라요 그러니까 앞뒤가 세트여 깡통들의 행진곡이 란 말이요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 아무 희망이 없어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내가 필서라도 써서 여러분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신앙은 동물적 신앙을 벗어날 수 없다. 설교를 들어도 깊이 추적하면서 저것이 과연 그러한 가 그리고 하나님은 이 성경을 통해서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 이것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너무나 멀리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두 삶을 오늘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에요 두 삶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필연적으로 둘 중의 하나의 삶을 택할 수밖에 없어요.
우선은 지는 거 아니면 이기는 거라 말이죠 당연하죠 싸우면은 지는 거 아니면 이기는 거예요 도망 간 거는요 그건 진거예요 뭘 자꾸 따져요 당연하지 도망간 것도 진거지 당연 하잖아요 둘 중의 하나밖에 없는 것이에요 그 어떤 것도 없어요 복음을 자랑하지 않으면 부끄러워하는 것이고 패배하지 않으면 승리한 것이에요 둘 중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그 사이에 무엇인가 제3의 삶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속임수요 편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군사로 살아서 이기든지 아니면 패배하는 것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든지 둘 중에 해야 된다는 거죠 그런데 제가 객관적인 상태에서 보기에는 종말론적으로 보면 그래도 구원을 얻으니까 그래도 결론적으로는 좀 나을지는 모르지만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차라리 예수 안 믿는 것이 훨씬 행복했을 거예요
여러분 죄가 역사하는 곳에서는 은혜는 중지돼요 은혜가 역사하는 곳에서는 죄는 멈춥니다. 그런데 그렇게 마귀에 의해서 짓밟힌 상태에서 자기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죄도 자라잖아요. 그런 속에서 그렇게 완전히 복종하고 있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 마귀가 뭘 심을게 있겠어요 솔직히 말해서 우리 중에 살아가서 여기다 신발자국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 누가 있어요 목덜미에, 그런 사람 없잖아요 제가 하는 이야기는 모두 영적인 현실이란 말이죠 그렇죠 그렇게 철저하게 마귀가 우리를 깊이 몰아넣어서 굴복시켜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그런 철저한 방법이 뭐냐 하면은 하나밖에는 없어요 그건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그치게 만드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역사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그리고 우리 안에 죄와 탐욕이 무성하게 자라서 철저하게 자기 하수인으로 살아가게끔 만들어 주는 것이에요 겉모양은 남아 있다고 할지라도 내면의 세계 속에 이런 뿌리들이 자라서 생명의 기운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귀가 우리를 향해서 철저하게 겨냥하고 있는 목표입니다. 그리고 이목표가 완전히 성취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이제 그를 자유하게 만들어 줘요 마귀 안에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죠 패배 안에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는 당연히 심한 억압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뭔가 내가 기도를 못하고 막 확 눌리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언제냐 하면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뭔가 기도하려고 할 때 깨닫는 거예요 아예 기도 안 할 때는 깨달을 것도 없어요 어차피 질겨 밟혀 있는데 그 뭘 깨닫겠어요 깨닫지 못해요 생명이 역사할 때는 그러고 우리가 놓여 있는 선택은 후자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고 그죠 우리에게는 하나 우리가 어떡하든지 떨쳐 일어나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말이죠
그리고 오늘 이제 중요한 질문은 그거예요 그런데 왜 솔직히 말해서 한번쯤 결심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러지 않나요 한번쯤 다 결심해보고 잘해보리라 그렇게 결심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결심하면 뭘 해 금방 끊어지는 거 30일 새벽기도 나오겠다고 이름 쓰고 싸인도 거창하게 기다랗게 쫙 - 그렇게 싸인까지 했지만 내 힘과 결심이 약하여 늘 깨어지기 잘하는 그 말 한마디로 닦고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렇게 또 살아가는 거예요 모든 면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태도가 이렇잖아요 그러니까 뭔가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죠 그럼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린 이제 다음 시간에도 알아보면 알겠습니다만은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을 통해서 오는 거죠 그렇죠 그리고 그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 우리가 바로 죄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살아 갈 수 있어요 그리고 또 어떤 의미에서 우리들이 그런 삶을 살지만은 그러나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어떤 사람들에게 승리를 주시느냐 자기를 그렇게 속박해서 철저하게 패배하게 하는 것들과 더불어서 투쟁하고 싸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만 그런 힘을 주시는 거예요 그런 힘을 주시는 거예요 낮잠 자다가 성령 받았다는 사람 봤어요 고스톱 치다가 불 받았다는 사람 봤어요 없어요 하나님이 성령 주시는 것이 아무리 주권적이라 그러지만은 그런 예는 없어요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그런 삶을 살아가게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은 성령이 그런 능력을 주시는데 문제는 그 성령이 그러한 능력을 공급해 주시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런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소명을 따라 살도록 충성을 다하는 삶을 살게 하시는 그 어떤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그 어떤 내용이 있는데 그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오늘 성경은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에게 예수님이 우리를 향해 베푸신 이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깊이 깨닫게 만들어 주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사랑에 깊이 감격하면서 자기가 이제는 어떻게 살고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분명한 인식을 갖게끔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의 성령은 분명한 지식이 있는 곳에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분명한 지식이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역사는 대부분 마귀의 역사임에 틀림이 없어요 성령은 분명한 지식을 사용하시고 그리고 마귀는 분명한 지식이 있는 곳에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오늘 사람들이 보기에 내가 하나님을 위해 미친것처럼 보였다고 할지라도 나로 하여금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살도록 만들어 주는 원동력이 있다 그건 성령이 하시는 것인데 그 성령이 사도바울에게 어떤 지식을 통해서 역사했느냐 하면은 한 가지 지식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거예요 그 지식이 무엇 인고 하니 그리스도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그 사랑이 나를 끊임없이 강권해서 나로 하여금 그 사랑에 매여서 예수그리스도를 위해서 살도록 만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십자가의 참된 의미에 대한 깨달음이 없는 성령의 깊은 은혜주심에 대한 사모함, 보다 깊은 영적인 삶을 위해서 노력을 하면서도 복음에 핵심적이 진리를 깊이 묵상하지 아니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삶의 추구가 전혀 딴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모든 영적 체험으로 돌아가는 원인입니다. 그리고 그 문을 통해서 경험된 그러한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만이 안전하고 순수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오늘 이 시간에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이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살고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게 하는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데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도록 부름을 받았고 그것은 충성과 헌신과 희생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충성하는 마음과 헌신하는 마음과 그리고 희생하는 실제적인 실천적인 삶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의 나라를 쟁취할 수 없습니다. 얻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들이 어떡하면 부흥 할 수 있습니까? 문제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부흥 주셔야 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셔야 됩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한 교회나 혹은 영혼들을 책임 맡고 있는 기관이나 혹은 여러 가지 선교 사업들이 천재에 가까운 한 사람의 수완에 의해서 성공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여러분들의 신앙은 전혀 복음적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거기에 부어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이 어떤 현장에 어떤 사람들에게 부어주십니까? 하나님은 자기의 힘을 모두 바친 그곳에 거기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모두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군인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충성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국방부장관 되었다고 칩시다 전혀 그렇게 될 리가 없지만 그런데 전방에 가장 중요한 부대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거기 사령관을 여러분들의 마음에 드는 사람 누구든지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습니다. 누구를 임명하겠습니까? 육사 나온 사람을 임명하겠습니까? 아니면 사관학교를 나왔지만은 경험이 많은 사람을 임명하겠습니까? 아니면 A학점으로 대학과정을 쭉 뽑은 사람을 임명하겠습니까? 아니면 시들시들한 학점을 성적표에 잔뜩 달고나온 사람을 뽑겠습니까? 아니면 군인 되기에 적합할 정도로 FFF권총을 쭉 깔고 성적표를 받은 사람을 세우겠습니까? 누굴 세우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능력도 중요하지만 능력은 있고 충성심이 없으면 이성계 같은 사건이 발생하는 거예요. 위화도로 갔다가 휙 돌아서서 적군을 치라 그랬더니 왜 수도를 향해서 달려오는 거예요 이런 사태가 발생하잖아요 그러니까 충성스러운 것 이것이 군인으로서의 삶에서는 최고의 가치에요 자기를 부른 모집한 사람, 자기를 다스리는 그 땅의 군주를 위해서 생명을 다하는 것이 군인으로서는 최고의 덕목이에요 그것밖에는 없어요 그런 충성스러운 삶을 살아가지 않는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산다 라고 할 때에 그것은 결국은 충성스러운 삶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에요 그 세상 속에 나아가서 직장생활 할 때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지 않는 사람들은 방법과 요령에 따라 살아 갈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편법으로 해결하려 할 것입니다. 그렇죠 곤란한 일을 만나면 뇌물로 해결 하려고 그럴거예요 경제적으로 기업의 이익을 늘리기 위해서 탈세를 밥 먹듯이 할 것입니다. 그리고 범법을 하고 탈법한 일들을 행하면서도 여전히 직장에서는 감사의 예배를 드리겠죠 그건 충성하는 삶이 아닙니다. 충성하는 삶은 원리를 따라 살고 하나님의 성경말씀의 원칙에 따라 살고 정직하게 살고 모든 사람들이 다 해먹은 일이라고 할지라고 그 일이 명백하게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일이라면 고난을 받으면서도 그 일을 거절하면서 살아 갈 것입니다. 그는 이제 밥 벌어 먹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자기의 일터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가 살아가는 독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의 삶속에 실재하고 있는 신앙을 봅니다. 그리고 그 신앙 속에 좌중하고 계신 하나님을 뵙게 되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본능적으로 그들은 함께 월급을 받고 한 솥에 밥을 먹고 살면서도 자기들에게는 최고의 주인이요 사장이요 회장이지만 그러나 이 그리스도인의 삶속에는 사장보다 높고 회장은 마주 할 수도 없는 더 높은 주인이 그의 인생 속에 실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는 복음을 들고 모든 사람들에게 전도하려고 직장에 취직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또 안 되죠 근무시간에만 돌아다니면서 전도만 하고 다니면 그러면 근무가 되겠어요 근무시간에는 근무 해야죠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이 직장에서 교회일 해 오는 것 반대에요 직장 건 직장 걸 위해서 쓰게 되어있는 거죠 직장에 있는 시간은 고용주가 샀어요 그러니까 그를 기쁘게 하기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그렇게 살아가는 삶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직분을 맡겨주십니다. 그리고 섬길 수 있는 자리를 여러분들에게 주십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에게 거시는 하나님의 가장 커다란 기대와 가치는 무엇이겠습니까? 충성스러운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쉬고 싶을 때 불충성한 사람들은 쉬게 내버려 두고 우리는 충성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편한 길로 걸어가려고 할 때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는 지름길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분투하고 노력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부흥하기 위하여 지불해야 되는 그 고난과 수고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기꺼이 지불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에 그에 삶은 많은 고통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꿋꿋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충성입니다. 그럼으로 이 충성은 한 순간에 확 타오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은 그러나 이 충성은 대단히 길고 장기한 장기적인 일이기에 뭔가 하나님 앞에 견고한 그 태도와 자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보다는 나를 부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나보다는 소망하시는 그 주인이신 하나님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살아가야 된다. 라고 하는 철저한 충성심이 우리로 하여금 분투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유 없이 충성하는 사람들은 정신병자 입니다.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이유입니까? 오늘 사도바울은 그렇게 충성하면서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양쪽에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앞을 내다보면서 내가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믿음의 선왕싸움을 다 싸웠으니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이에 면류관이 예비 되어있으리라 하는 상급에 대한 미래의 소망 내가 비록 지금은 절제하고 지금은 내가 고난을 받고 지금은 내가 충성된 길을 가기 위해서 내가 이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처럼 살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 때 사람들이 나를 향해 미쳤다고 말하고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몸 바치면서 살려고 할 때 사람들은 나를 정신병자라고 말하고 나를 핍박하고 박해하지만 그러나 내가 이렇게 고난의 가시밭길을 지나고 난 후에는 최후의 영광스러운 상급이 나를 위하여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울에게 소망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미래에 대한 상급에 대한 소망이 바울로 하여금 충성스러운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다 살고 난 뒤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향하여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하는 것은 교회 출석하는 거 하나 보고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모든 삶을 평가하시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어디에 여러분들이 살고 어떤 모습으로 살고 어떠한 태도로 어떤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분투하며 무엇을 위해서 어떠한 시련을 겪으면서 살았다고 할지라도 일생동안 하나님 앞에 견지해온 삶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그 마지막대에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어려 분들의 모든 삶은 하나님 앞에 백일하에 드러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그렇게 충성되고 분투하는 삶을 살기위해서 아버지 하나님의 소명을 쫓아서 살아왔던 사람들은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작은 일에 내가 충성하였으니 너는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자라” 주님이 상급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다 살고 나서 이러한 칭찬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생은 단지 들풀과 그리고 풀에 맺힌 꽃과 같은 것입니다.
또 하나는 오늘 본문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도바울은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 미래에 하나님 나라로 가면은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커다란 상급을 받을 것이라는 이 기대 하나가 그로 하여금 이렇게 일관되게 충성된 삶을 살도록 그리스도예수를 위해서 미쳤어 그렇게 살도록 살든지 죽든지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되기 위하여 사나 죽으나 자기가 주의 것이라고 말하면서 살아가게끔 만들어 준 것 아닙니다. 미래의 예약금뿐 만아니라 현재적으로 그렇게 살 수 없는 그 어떤 감동과 감화를 끊임없이 공급받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리스도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는 전망적이고 또 하나는 회고적입니다. 하나는 뒤를 돌아다 볼 때 그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포함하여 자기의 동역자들과 우리를 모두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는 사실아 바울과 하여 안일한 길을 걸어가고 평탄한 길을 걸어가며 살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랑은 사도바울에게 어떤 강제력이 되어서 그 사랑이 사도바울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그는 심지어 극단적으로 말해서 하나님이 그것을 그렇게까지 바라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는 그런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랑이 그를 죽음에서 건졌습니다. 소망 없이 태어나서 허울 좋은 종교인이라는 미명을 쓰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주기위해서 오신 그리스도예수는 오히려 죽이고 그리고 거짓된 교훈을 가르쳤어 수많은 사람들을 죄와 사망으로 데려갈 수밖에 없는 그런 일들을 하면서 살다가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불길 앞에 한줌의 재로 화할 수밖에 없는 그 어리석고 아집덩어리의 인생을 누가 살렸습니까? 누가 다나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려고 죽이려고 박해하려고 달려갈 때 그 길을 막아선 분이 누구였습니까? 극단적인 반항아로 바꾸어서 충성스러운 일군이요 복음전도사로 삼으신 분이 누구였습니까? 그리고 그분은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오늘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그렇게 하시 분은 그리스도였고 그리스도가 자기와 같이 무지하고 목매하여서 주님을 대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처지에 있는 자기의 갈 길을 막으시고 자기를 그리스도 복음을 위하여 종으로 불러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었다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거의 모든 서신에서 빼놓지 않고 자기가 누군가의 종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예수의 종 된 바울은 그리스도예수로 말미암아 종 된 바울은 그리스도예수의 심부름꾼이 되었다고 그는 자신의 신분을 명백히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강권했습니다. 미래의 놀라운 상급도 자기를 부르고 있었지만 설령 그 상급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자기를 살리신 그 놀라운 사랑은 자기로 하여금 결코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지 아니하고 그 사단의 발아래 밟혀서 억압받는 인생을 살아가도록 자기를 결코 버려두지 아니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 날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무슨 일을 하셨는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돼야 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한 일은 잊어버릴수록 좋습니다. 그러고 그것이 선하고 착한 행실 이였다면 더더욱 속히 지워버리십시오 기억도 나게 하지 말게 하십시오 예전에 한 모든 주를 위하여 선한 일들은 깡그리 잊어버리십시오 그러나 언제나 기억하십시요 주님이 여러분들을 위해 행하신 일 좋으신 주님이 어떻게 죽음 가운데 있는 나를 살리셨고 그리고 어둠의 죄악 가운데 있는 나에게 빛을 주셔서 나로 살아나게 하셨는지 이것은 늘 회상하고 되새기고 또 되새겨야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제도 그 교사강습회 가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에게는 좋은 학교를 나오고 인격적으로 훌륭하고 성경을 많이 아는 교사들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성경을 많이 알고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려고 애쓴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함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가지고 있는 좋은 장점은 단지 정신병자의 옷치장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정신병자는 옷차림새에 의해서 우리를 불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 나간 그 미친 상태가 우리를 불쾌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안전한 것은 우리가 예수의 그 사랑에 감격하고 그 사랑에 감동하는 이러한 내면의 삶을 오늘도 매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지 한번 보세요 그렇게 강에 뛰어들어서 죽어버리려고 하는 사람을 그것이 오늘 아침이나 저녁때 맘먹은 마음이겠습니까? 그 동안에 수많은 시련이 있고 하나님을 떠나고 범주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반항하고 하나님 원망하고 사람 미워하고 수 없이 속에서 미움으로 살인을 한 후에 마지막 결론이 죽어야 되겠다는 것이 였어요 그런데 그렇게 무성하게 불순종과 죄악이 자랐는데 한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가 여호와는 미끄러지는 자를 건지시며 그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밀어 보내시니까 그 은혜가 밀려오니까 그 모든 불순종과 죄악이 단순에 눈 녹듯이 녹아 버렸습니다.
그런데 반대도 성립한다 말이에요 반대도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충만하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순간적으로 변할 수 있느냐 이상할거 없어요 그거 가능하다 오늘은 주님을 위해서 살고 싶다고 눈물 흘리던 사람이 다음 주에는 싸늘한 마음이 되어 질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런 영적인 삶에 대해서 늘 그리스도예수께 우리가 무엇을 빚졌으며 그리스도예수께서 우리을 위해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늘 현재적으로 하나님 앞에 느낄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경건한 생활을 해나가야 되는 것이에요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그리고 그런 복음의 진리들을 늘 마음에 불붙이기 위해서 애쓰고 하나님 앞에 매어달리고 자신의 죄악을 제하는 그런 삶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가야 된다는 것이죠 그게 바로 하나님 앞에 깨어서 살아간다. 라고 하는 말의 의미인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사도바울을 통해서 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강권하고 있는 동안에 그는 그리스도예수의 사도로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예수의 종처럼 살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랑이 그를 감격하게 했고 그 사랑이 그로 하여금 자기가 겪는 고난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끔 만들어 주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생각합시다. 우리가 만약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계획인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면 우리의 충성을 입증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셔서 이제 당신의 나라를 위해 살도록 소망하셨습니다. 끊임없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이 그를 강권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사랑에 붙잡혀서 절제하고 자기를 죽이며 자기를 복종시키며 하나님의 의를 이뤄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하나님의 참된 사랑의 강권을 잃어버리고 싸늘하게 식은 심령을 가지고 살아가는 말라빠진 사람들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단 하나의 운명이 사단에 발아래 자기의 목을 밟히고 그리고 그와 더불어 화해하면서 살아가는 것밖에는 길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가 패배에 사로잡힌 삶을 살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 악의 세력과 마귀의 세력들이 아무리 강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칼은 단숨에 그런 결과를 끊어 버릴 수 있는 권세가 있습니다. 수십 년 된 죄의 결과를 한순간의 은혜의 칼이 잘라놓습니다.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 수많은 권세들 한순간에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러한 자유와 이러한 섬김과 이런 소명으로 우리를 불러내고 계십니다.
이제 오늘 여러분들은 둘 중의 한 삶을 선택하십시오 용기를 내어서 오늘 기도하십시요 하나님 나는 모든 하나님과의 화해를 거절합니다. 나는 모든 소명을 완벽하게 포기합니다. 나는 끊임없이 이렇게 짓밟히며 살 것이며 하나님은 나를 구원하지 마십시오 기도하시든지 아니면 하나님이여 나는 주님이 나를 구원하신 거룩한 구원의 계획에 따라 죄로 벗어난 몸이 오니 내가 이렇게 살아 갈 수 없는 사람입니다. 나의 신분에 어울리는 삶을 나에게 주시고 실패를 운명처럼 받아드렸던 나의 모든 불신앙이 오늘 하나님 앞에 파괴되도록 도와주시고 그리고 결단코 내가 거짓된 평화를 얻기 위해서 죄악에 굴복하는 이 어리석은 삶을 청산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싸우는 것은 나이지만 승리하게 하시는 이는 주님이오니 예수여 나를 도우소서 주의 소명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면 나의 인생은 사는 것이 아니옵나이다. 나의 일생 전체가 주님의 나라 이루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충성된 생애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둘 중에 하나를 우리는 기도하도록 요청받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