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라는 접속사가 앞에 부분과 연결이 되는것이죠. 그래서 전체를 받으면서 그러므로 받는 내용이 뭐냐면 천사가 그리스노 그러니까 성자와 더불어 비교를 하자나요 성자를 단지 인간으로 오신분이다라고 만약에 생각을 한다면은 천사보다 월등한 지위를 갖는것이라고 느껴질수있자나요 그렇게 성자와 비교되는 그 천사조차를 구원받은 너를 위해서 섬기고 부리는 영들이 되었으니까 그렇다면은 구원을 얻은 너희의 후사들의 지위와 위치는 얼마나 복된것인가 그애기를 하는것이에요 그러므로 우리가 들은 것들을 삼갈지니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모든들은것을 도욱 더욱 삼갈 지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간절히 삼갈지니 라는 것을 이부분이 히라브어로 보면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일지니 충분히 풍부하게 주의를 기울지니 뭘 기울일지니라는 거에요? 우리가 모든 들은 것들 즉 우리의 구원의 도리에 대해서 복음에 대해서 들은 그 모든 것들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충분히 주의를 기울일 지니 풍부하게 주의를 주의를 기울일 지니 충분히 주의를 기울일지니 흘러 떠내려 갈까 합니다.
주체가 누구냐면 우리가 흘러 떠내려 갈까 조심하면서 우리가 들은 모든 것들에 대해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마 우리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이 지칭하는 것들이 두가지가 있을 수있을 거에요. 긍정적 의미에서는 그들이 이제것까지 주의 말씀을 통해 사도들을 통해
배우고 깨달았던 복음의 도리들이 있을수 있을것이고 또하나는 떠돌아 다니는 그릇된 교훈들을 사람들이 들은 그런것이 있을수 있을거라는거죠. 그것이 무었이든지 간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라는 거죠. 후자에 대해서는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라면서 이것이 정말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해주신 신앙의 도리에 부합하는가를 생각해서 그 그릇된 교리 때문에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리고 전자에 대해서는 우리들이 이미 들었던 복음과 성경의 도리에 대해서 충분히 풍부하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그 진정한 의미가 무었이고 그리고 그것이 그 교리가 어떻게 오늘날 이런 거짓 교리들이 유행하는 이때에 어떻게 우리의 삶에 적용이 되며 어떤것들이 우리가 정말 믿고 받아야할 우리의 신앙인가하는것들을 잘 깨닫도록 이미 받은 진리의 내용에다가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신앙의 체계들을 세워가라고 하는 그런 말씀인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바로 흘러 떠내려갈까 하는것을 조심해야한다라고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히브리서 그 배경 자체가 이미 로마제국의 조직적이 박해가 이미 시작되었거나 조직적인 박해를 거의 눈앞에 두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씌여진것이기 때문에 그런 배경을 이해하면 이런 이야기들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것이지요. 여기서 흘러 떠내려간다라고 하는것은 처음 받은 믿음의 도리에서 어긋나서 그래서 뒤로 비끌어지는것을 얘기하는것이지요 .배고나 타락 이런것들이 여기 히브리서에서 다루고있는 중요한 도리이고 그런것들에 대해서 엄격하게 애기하면서 암동 진리에 비춤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맞본 자가 타락하면 다시 죄사함을 받을 길이 없다는 식으로 그 배교에 대해서 굉장히 강력하게 이야기를 하는것이죠. 여기서 우리가 알수있는 첫 번째 교리는 뭐냐하면 믿는 자들에게도 언제든지 흘러떠내려가는 것같은 그런 신앙의 타락이 있을수 있다. 그러니까 자기가 신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믿음의 타락이 얼마든지 있을수 있다 고 하는것이지요
실제로 이 뒷부분에 넘어가서 하늘의 신령함을 맛보고 그다음에 진리의 빛을 받고 신령함을 맛보고 하는 그 사람에 대해서 청교도 조노앤이 굉장히 자세하게 거의 배교의 문제만을 가지고 얘기할 때 빽빽하게 해서 300페이지 400페이지 가까이 다루죠. 다루어 나가면서 그사람들이 얼마나 상당한 사람들인가 그걸 읽으면서 느끼는게 뭐냐면 그런사람이 오늘날 우리가운데에 있다면 굉장한 그리스도인으로 보일꺼다. 근데 오웬의 경우에는 거듭난사람이 아니라는거로 보는거죠. 그러면서 상세히 적으면서 상당히 깊이있는 신앙에 들어간거처럼 느껴질수 있다는 거죠. 근데 아니다.라고 말하는거죠.
그러니까 얼마든지 흘러떠내려가는 미끄러지는 일 이런일들은 얼마든지 상당한 신앙을 고백하는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얼마든지 있을수 있는 일이다라는 것이지요. 여기서는 배교를 염두해 두고 있지만. 배교까지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신앙의 타락으로 말미암아서 미끄러져버리는 경우도 있자나요. 이제 결론을 내리면은 배교는 배교하고 영구히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의 체험이 어떠하던지 간에 그들은 거듭난 사람이라고 볼수 없다는 것이 오웬의 견해고 꼭 배교가 아니더라도 신앙에서 아주 엄청나게 미끄러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죠. 이런것이 정말 진실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에게도 언제나 있을수있는 일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는 이제 안전하다라고 생각하는것은 아주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에요. 그런건 바보나 하는 생각이에요 절대로 신앙에 있어서는 자기자신을 확신하고 믿고하는것 만큼 바보같은 일이 없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별로 실망하지 말아야 해요. 기대를 안하면 별로 실망을 안하자나요. 믿는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거에요. 그걸 우선 보여주는 거에요.보여주는거고 여기서는 배교를 얘기했지만 오늘날에는 더 현실적인것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이 뒤로 미끄러지는 사건이에요 미끄러지는 사건인데 그렇게 미끄러지는 사람들이 그런 배교의 문제보다는 이세상을 사랑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사랑하기보다는 이세상의 안락을 사랑하고 이러면서 미끄러지는 경우 많거든요 그리고 자기의 편견에 사로 잡혀서 정말 균형잡힌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미끄러지는 경우 굉장히 많습니다. 모두 흘러 떠내려 가는거죠. 하나의 모습은 뭐냐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신자들이 마치 막~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앞에 가고있는 주님이 선장되신 말씀의 배를 앞질러 자기의 배에 붙들어 매고 가고 그런것이 만약에 신앙생활이라고 할거같으면 이것은 밧줄자체가 끌러진거여 그래서 결국에는 자기의 맘이 내키는 대로 저 좋은대로 그렇게 흘러가는.. 그런 상황이 된거죠 그렇게 흘러가는 그런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게 떠내려갔다고 표현하는거에요 어떤 목표나 의지가 없이 그냥 이렇게 떠내려가는
것을 의미하는거에요 실제로 그렇자나요 우리들이 믿음으로 살고 신앙안에서 살때는 목표가 분명해요. 하나님뜻대로 살아야지 순종해야지..이렇게 살아가지만 일단 신앙의 끈을 딱 놓고 미끄러지고 나면은 목표없어요 무슨놈의 목표야 그냥 막내키는대로 그냥 그렇게 떠내려가는거에요 어디로 가는지는 자기도 몰라요 다만 확실한거 하나는 떠내려 갈수록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고 진리로부터 벗어난다는 것만 알뿐이죠. 떠내려가는거 이게 주님을 깊이 만나고 뒤집어 지고 펑펑울고 성경을 몇 번씩 공부하고 상관없어요 누구도 그 미끄러짐에서 예외가 될수없다는거에요. 누구든지 미끄러 질수있다는거에요 그러니까 자기자신을 안전하게 생각하는 사람처럼 바보가 없어요. 그위에 한걸음 나아가서 자기가 알고있는 신앙의 지식까지 동원해서 자기의 미끄러짐을 정당화 할정도가되면은 그영혼은 굉장히 불행한 상황으로 접어든것이에요. 그런 위험을 조심해야. 충분히 조심하라. 충분히 그래서 이러한 미끄러짐에 대한 긴장들은 왜 마음지킴의 교리가운데 마음을 지키는 중요한 비결가운데하나가 뭔지 아세요? 자기가 배교할 가능성에 대해서 두려워하는거에요 자기자신을. 난 안전하다 난 괜찮다. 그거 안된다는거에요 그렇게 해서 남는것이 없다는 거에요. 사도 파울이 대표적이자나요 뭐라그래요 내가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나는 버림을 받을까봐 두려워하노라 믿음이 없어서 그런거에요? 그게 아니자나요 그러니까 그만큼 자기자신에 전적인 부패와 타락성을 보면서 자기를 신뢰할수없다는 것을 깨달은 거에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걸 깨달으면서 이제 그게 주님앞에서 그게 오히러 그사람속에 믿음을 보여주는거에요 그렇게 미끄러질수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것이 경성함...깨어있다라는 의미라는거죠 그래서 그런 미끄러짐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커다란 심판아래 있을수있다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두려워하는 그것이 참된 신앙을 가진 신자들이 해야될 일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 긴장은 주님의 나라에 골인 할때까지 진짜 쓰러지듯이 주님의 품에 안길때 까지 그건 쉴수가 없는거에요 그게 신앙이에요 그게.
그다음에 두 번째 교리는 뭐냐하면.
그렇게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들은 것을 충분히 풍부하게 들은바에대해서 주의를 기울여야한다는것이죠. 무슨 얘기냐하면은 결국 들은바라고 하는것은 들은바가 지시하는 것은 제가 두가지 가능성이있다고 말했는데 결국 첫 번째인 복음과 진리에 깊은 이해가 없이는 자기가 들은것이 올바른지 아닌지를 알수가 없는거죠 판단할수없는 틀이 없는데 무슨 오만가지 얘기를 들었을대 어느것이 옳고 그르다라는 것을 어떻게 알수있겠고 그런 기준과 틀이 없이 어떤것이 옳다 그르다 알았다 하더라도 그 판단은 진리를 통한 판단이라고 하기 보다는 자기속에 있는 기분 내킴에 판단되는 평가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건 신뢰할 수가 없는거에요 그러니까 결국 하나님의 이제것들었던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아는 지식 교리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해서 그냥 단순하게 알고이해는 정도만 돼서는 안된다. 그래서 거의 교리나 이런것들에 대해서 알고있는 이해들이 실망스러울 정도로 갑갑하긴 하지만 그렇게 실망스러울정도로 갑갑하고 답답한 그런사람들이 더욱이 더 깊이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기서 얘기하는 바와 같이 신자는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서 신앙에 이제것까지 믿었던 신앙의 도리를 굳게 붙드는 일이 필요하다는거죠. 근데 어떻게 굳게 붙드냐. 예를 들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도리를 굳게 붙들고 살고 싶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는거지. 두가지가 일어나지 않으면은 3가지가 일어나지 않으면 붙들고 사는것이 아니라는거에요 우선 첫째는 뭐냐면 이해가 점점더 깊어져야해 이해가. 그래서 십자가 그러면 십자가의 진리에 대한 이해가 점점 깊어 져야되고 첫째는 두 번째는 뭐냐면 그 진리에 대한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거죠 예를 들자면 수십전의 체험을 가지고 오늘할수있는건 아니에요 그건 그때 살았고 오늘 오늘 체험이 필요하다는거에요 세 번째는 뭐냐면 그렇게 알고 체험한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 풀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것이 그 진리를 붙들고 사는것이라는 것이죠. 여기서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라고 하는 얘기는 뭐냐면 그런 하나님의 말씀이 과연 한가 깊이 생각하고 그리고 그런성도의 축복이 얼마나 고귀하고 놀라운가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끊임 없이 그 진리가 자기의 삶을 주장하도록 그 진리를 탐구하고 그 진리를 경험하고 그래서 그진리와 친숙해져서 그래서 상황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그 진리에 붙들리는 삶
을 살라는 것이 히브리서 기자의 권면인것이빈다 오늘도 세월이 많이 흘러 갔어도 역시 세상을 이기고 이 신앙의 미끄러짐을 이기는 비결은 동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과 그 진리를 깊이 알고 거기에 붙잡혀서 살 때 비로소 이세상에서의 미끄러짐을 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